다시 새로운 정치를 위해

좋은 일은 어쩌다 한번씩 간혹 다가온다. 우리는 간혹 다가오는 행운과 행복에 감동을 느낀다. 행복과 행운이 항상 우리곁에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그처럼 목말라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한참 고생을 겪어야 겨우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행운과 행복은 우리 곁을 떠나가고 만다.

불행과 곤란은 행운과 정반대다. 불행과 불운은 항상 우리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옅보고 있다. 우리가 잠시 틈을 보이면 절대로 놓치지 않고 물러 뜯는다. 마치 하이에나 처럼… 그래서 불운과 불행이 다가오면 마음을 굳게 먹고 그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불운과 불행은 모르는척 한다거나 그냥 회피한다고 해서 모면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과 행운이 비슷한 것과는 반대로 불행과 불운은 너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들을 극복하고 밟고 넘어가야 한다. 요행히 어려움을 피하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렵고 힘들수록 냉철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불행과 불운 그리고 각종 어려움이 마치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것 같다. 내부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외부 국제관계에서도 그렇다.

국내 정치적으로 보면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먼저 자한당 3선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의 불출마선언의 변이 마음에 와 닿은다. 자한당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고 좀비가 된 정당이란 평가다. 동의한다.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야당이 쇄신의 계기를 맞이하기 바란다. 물론 이제까지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이며 외세의존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바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영남의 기득권에 안주하던 정치인들이 김세연의원의 발언에 반발하고 있다. 만일 자한당이 영남의 기득권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자한당은 자민련이 될 것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여당이다. 더민당은 책임정당으로서의 책무를 포기해버린 것 같다. 청와대와 정부발 부정과 부패의 흔적들이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있다. 조국사건은 명백한 부정과 부패 사건이다. 여당은 부정과 부패를 옹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여당 지도부는 거의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한때 쇄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던 금태섭의원도 당내에서 무슨 직책인가를 맡더니 바로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역시 사람은 오래두고 겪어 보아야 할 일이다.

임종석의 이해할 수 없는 정계은퇴발언을 했다. 이해할 수 없다. 불과 며칠전까지 총선을 준비하던 그가 갑자기 정계은퇴라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갑자기 정치에 환멸이라도 느꼈다는 말인가? 주변 여러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 그가 부정에 연류된 것이 아니겠는가 추측을 한다. 만일 그렇다면 검찰에서 수사를 할 것이고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임종석의 정계은퇴발언 보다 더 이상한 것은 언론들의 반응이다. 당연히 그가 왜 정계은퇴발언을 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고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김세연의 불출마 선언과 임종석의 정계은퇴발언을 싸잡아서 같은 성격과 의미라고 포장을 하고 있다.

김세연의 불출마 선언과 임종석의 정계은퇴선언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정도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촌부도 다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 언론들은 왜 이런 이상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국내 정치의 심각한 문제는 여당과 야당이 더 이상 책임정당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나번 선거에서는 천정배와 안철수가 같이 뭉쳐서 만든 제3정당이 바람을 일으켰다. 그래서 뭔가 변화할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제3정당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진보적 경향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중도좌파나 중도우파정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말았다. 그는 중도좌파 혹은 중도우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기회주의적인 자한당 일파와 야합을 하고 말았다. 제3당의 바람을 불어 넣은 것도 안철수지만, 그런 실험을 깡그리 실패로 만든 것도 안철수였다.

정의당은 정당이라고 하기에도 미안한 모습이다. 언급하기조차 창피한 수준이다

아무리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정면을 응시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제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는 국난을 극복할때 언제나 일어났던 찬란한 의병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 우리 지도자들이 제대로 해서 나라가 잘 된 것 있었던가? 모두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고 방향을 잡아 나갔기 때문에 우리민족이 생존할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때이다. 정치가 무너지면 희망이 없어진다. 정치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새롭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과거에는 사람을 중심으로 제3당을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가치와 철학으로 제3당을 만들어 쇄신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 중에서 그래도 능력이 있고 깨끗하며 비전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해 정치를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더 이상 사기꾼들을 지도자인양 모시고 살기 싫다.

지소미아 종료 막바지에

일단 지소미아는 폐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일본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지소미아를 연장시키기 위해 미국은 무지 무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

누차 이야기 했지만 일본이 입장을 누그러 뜨리지 않는 것은 그들도 중국에 맞서서 한미일 군사동맹이 굳어져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나서서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이 그렇게 해주니 고맙다고 할지 모른다.

지소미아가 북한의 미사일을 막는 아주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지소미아 100번해도 실제 군사적 대응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기술적으로 일본전역을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소미아는 여당과 야당에 따라 상이한 입장이다. 주말에 kbs 심야토론에서 한미동맹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한미동맹에 관한 주제였으나 주로 지소미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바른미래의 이혜훈, 자한의 원유철, 민주의 이석현, 민평의 정동영이 참가했다. 정치인들의 논쟁은 논점이 왔다갔다해서 상황을 파악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바른미래당의 색깔을 확인하는데 의미가 있었다.

바른미래당은 제3당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자한과 차이가 없었다. 안보나 경제나 자한과 차이가 없다면 왜 별도로 당이 존재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자한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면 자한당을 바꾸면 될 일이다.

전반적으로 두개의 주제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지소미아 연장과 미국의 방위비 요구다. 지소미아연장에 관해서는 보수 진보진영의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나 미국의 방위비 요구에 대해서는 진보보수 모두 입장이 같았다. 의외였다. 당연히 보수정당은 미국의 방위비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 옳다.

정치인들의 말은 믿기 어렵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미당의 이혜훈은 미국의 방위비 요구를 비난했지만 국회에서 방위비 요구를 비난하는 결의안에는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바미당과 자한당 모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은 국민들이 무섭지만 사실상은 국민들보다 미국의 눈치를 더 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한국정치에 미국의 영향력이 국민들의 여론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소위 보수정당이나 언론의 최근 입장도 매우 모순적이다. 조선일보는 그렇게 많은 방위비를 내느니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자주적인 언론이 일본과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선 불에 덴 아이처럼 결사 반대한다. 어마어마한 불일치다.

이혜훈은 냉전시대의 동북아 안보상황과 지금의 동북아 안보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지소미아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 것을 일부러 눈을 감고 모르는척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들은 대한민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하는 입장을 지녔다면 방위비를 많이 요구한다고 해서 핵무장을 하자는 입장을 가져서는 안된다. 서로 양립 불가능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했으면 당연히 방위비를 조금 더 내야한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인 논리적 귀결이다.

최근의 상황은 사이비 보수적 가치관이 한계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정치는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타협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철학과 가치관을 상실하면 정치의 의미를 상실한다.

오랫만에 정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국민들이 믿고 따른다.

주변에서 정부의 결정을 흔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것 같다. 정부는 굳건하게 스스로의 신념을 믿고 가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모병제? 뭔지 알고나 말하나?

유승준, 아니 스티브 유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것이 지나친 것이 아니냐하는 문제로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중인 모양이다. 최종 판결을 대법원에 가서 내려진다고 한다. 그것이 법원까지 가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이라는 매우 버거운 짐이다. 징병이라는 이유로 약 2년 정도 소중한 젊은시절을 희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경제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본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은 시간과 돈을 모두 다 국가에 바쳐야 하는 일이다.

며칠전 민주연구원의 양정철이 모병제를 들고 나왔다. 총선에서 젊은 사람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없어졌다. 이런 현상을 보고 여당의 문화가 걱정이 된다. 여당은 책임을 지는 쪽이다. 야당은 책임을 묻는 쪽이다. 여당의 책임자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여당은 다음 선거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양정철의 책임이 상당할 것이다.

그는 왜 모병제를 주장했을까? 모병제를 주장하기 전에 국민개병제의 차이와 의미를 알아야 한다. 국민개병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다. 부르봉 왕가를 타도한 프랑스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군이 처들어 왔다. 이들을 막아낼 프랑스 군은 모두 없어졌다. 당시 프랑스 군은 왕의 군대이지 국가의 군대가 아니었다. 프랑스 인민들은 스스로 군대를 만들어 혁명을 진압하러 처들어온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군에게 맞섰다. 당시 프로인센과 오스트리아군은 아주 잘 훈련된 용병이었다. 유럽은 당시 용병의 시대였다.

연전연패하던 프랑스 인민의 군대가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발미라는 조그마한 지역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 승리가 혁명 프랑스를 지켰다. 이후 프랑스는 인민의 군대를 만들었고 국민개병제가 등장했다. 국민국가에서 국방은 시민적 권리가 된 것이다. 이후 유럽은 모두 국민개병제를 도입했고 징병제를 유지했다.

미국도 징병제를 유지했다. 제2차대전과 베트남전도 징병제로 치루었다.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꾼 것은 월남전의 경험때문이었다. 월남전은 미군의 패배로 끝났다. 그 이유는 군대가 국가 정치의 도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징병되어온 병사들은 의미없는 전쟁에서 전투할 의욕을 잃어 버렸다.

베트남 전이후 징병제 대신 모병제로 전환한 것은 미국시민의 요구가 아니라 미군의 요구 때문이었다. 미국은 세계제국이다. 세계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업다. 과거 영국이나 네델란드는 자신들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나 서인도 회사에서 군대를 운영했다.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회사의 군대를 보유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후 국민국가의 군대는 모두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한다. 미국은 세계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의미없는 전쟁이 될 수 있는 곳에 보통의 미국민들을 끌어 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미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라도 전투를 할 수 있는 군대가 필요했다. 미국은 세계정치의 도구로 군대를 활용하기 위해서 징병제를 버리고 모병제를 도입한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아주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나 스웨덴같이 잘사는 나라에서도 굳이 모병제를 하지 않고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은 국민국가의 기본이 국방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모병제를 도입한 것은 이제 전쟁의 위협이 없어져서 과거와 같은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코 사람들이 징병제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병역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다르다. 우리의 존경하는 정치지도자들 중에서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안보를 주장하면서 보수를 자임하는 정치인들에서 군대에서 정상적으로 복무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것은 한국의 보수정당이 기회주의자들의 피신처이기 때문이다.

모병제는 군대가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도입하는 제도가 아니다. 차라리 징병제로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에게 봉급을 제대로 지불하는 것이 훨씬 좋은 제도다.

군대에 가서 2년가까이 시간을 국가에 바치는데 거기다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시간과 돈 모두 이중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병장이 약 4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누가 한달에 40만원받고 근무하겠는가?2년간 마치고 나오더라도 퇴직금도 없다. 당연히 최소한 150만원에서 200만원은 주어야 한다. 2년간 병역을 마치고 오면 그 돈으로 대학은 마칠 수 있어야 하고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그 돈으로 사회출발을 하도록 국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

우리에게 징병제는 마치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병역과 비슷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도입하고 있는 징병제는 국민국가의 징병제이지 조선시대의 노예병이 아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인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2년간 의무를 다하면 그에 해당하는 정당한 보상은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 하루 8시간씩 근무한다고 치고 최소한 최저임금은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인기를 끌기위해서 도입하고 있는 청년수당이니 뭐니 하는 것 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국처럼 정예군대를 만들어서 아무데나 가서 전쟁을 벌일 것도 아니니 모병제가 그리 필요하지도 않다.

스티브 유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사회의 통합을 방해하는 가장 최악의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행동은 보수정당의 정치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황 평가

바야흐로 미국은 우리정부에게 모든 압력을 가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위협과 압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단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지소미아를 종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대폭인상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자 가장 심각한 반대는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미국은 지소미아의 연장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이고 미국과 일본이 동맹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한미일이 동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일본도 그런점에서는 마찬가지인듯 하다. 일본이 한국을 동맹으로 받아 들이는 조건은 지금의 한미동맹과 같이 강대국대 약소국의 동맹관계일 뿐이다.

군사비밀조약은 동맹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프랑스와 러시아의 군사동맹의 핵심중의 하나가 군사비밀의 교환과 보호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의 압력이 심각해지면서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소위 보수진영이라고 하는 자들이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보수진영 중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바른미래당 계열의 정치인들에게 주목한다. 유승민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지소미아 연장을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과의 관계강화가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마 그들을 미국이 요구하는 주둔비용도 모두 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들은 정부의 지소미아 연기결정이 우리의 국익에 매우 해를 끼쳤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만일 당시에 우리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일본은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바로 수출 금지품목의 범위를 확대하고 우리 산업 전반에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일본이 비록 몇가지 품목의 수출금지를 지속하고 있지만,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다 그 종류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왜 일본이 수출금지품목을 확대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은 미국의 중재를 거부한다고 했고 미국은 일본과 한국간 중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당연히 일본에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추가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완성 바로 직전에 이런 상황에 직면했으니 곤혹스럽기가 짝이 없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봉쇄를 위한 인도 태평양 전략의 가장 중요한 고리중의 하나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미국은 한일 관계를 복원해야 하려할 것이고 이를 위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 공격이 없는 것을 우연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처음에 경제침략을 할 때, 처음의 조치만 하고 추가적인 조치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면, 그것은 너무 낙관적이다. 당연히 일본은 후속조치를 준비했을 것이나,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일 일본이 행동의 자유가 있어서 무제한적으로 한국경제를 폭격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경제는 지금 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아마 일본은 단기간에 집중적인 경제공격을 해서 한국의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 내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으로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소미아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이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입장이 미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냉전당시 소련 봉쇄에 참가한 것 처럼 중국봉쇄에 참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일본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한국정부를 윽박지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미국보다 국민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이런 굴욕적인 협정을 바라지 않고 있다.

만일 미국이 지소미아를 정말 연장해야 한다면 우리 정부는 이번 지소미아를 파기하고 다시 지소미아 협정을 맺어야 한다. 이때는 자동으로 연장하는 조항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1년이나 2년으로 협정의 종료기간을 명시하고 필요하면 추가적으로 서명해서 연장해야 한다.

미국도 지소미아를 연장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당연히 일본의 경제침략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그것은 한국민들의 자존심과 관련되는 일이다. 일본과 미국사람들은 명분보다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이익보다 명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익은 잃을 수 있다. 그러나 명분을 잃으면 안되는 것이 한국인들이다.

당연히 지소미아를 연장하려면 주한미군 주둔비의 인상과 같은 말도 안되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맺는 동맹이 무슨 동맹인가? 속국에 불과하다. 미국이 한미일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면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힘으로 윽박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과 같은 미국의 행동이 계속된다면 한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이제까지의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길것이다. 이미 지소미아 연장과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으로 한국민들은 미국에 대한 인식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처럼 힘으로 윽박지르는 미국의 태도는 동맹관계를 약화시킬 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과 협상에서 중요한 협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협상수단으로 이용하느냐 아니면 압박을 당하는 수단으로 역이용당하는가는 정부 협상대표단의 능력에 달려있다.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우면 우리는 고래싸움에 끼인 새우가 된다.

그동안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로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다. 미국 중국과 동일하게 동맹관계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 경제보다 안보가 중요하니 미국과 가깝게 지내고 중국과는 거리를 두는것이 좋겠다는 주장, 이제 경제가 중요하니 중국과 관계를 더 가깝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등이 있었다.

일본은 오랫동안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이완시키려고 노력했다. 한국이 언젠가는 미국보다는 중국과 더 가깝게 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일본의 이런 노력은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미국 동북아 전략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일본중심의 안보정책을 주장했다.

지소미아와 관련해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의 역성을 드는 것도 그동안 일본이 지속적으로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 투자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에 경사될 것이라고 일본이 오도한 이유는 다 자신들의 국제정치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동북아 지역에서 오로지 일본이 미국의 진정한 동맹이라는 점을 부각해서 재무장을 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말그대로 미국과 중국사이에 끼여서 곤란한 상황이 되고 만다.

한동안 중국과 관계를 가까이 해야 한다는 주장들은 많이 들어갔다. 사드 배치이후 태도를 보건데, 앞으로 우리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중국에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한국내 분위기가 가라 앉으면서 그래도 미국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한국의 정치인, 지식인 중 많은 사람들이 미국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지소미아와 주한미군 주둔비용 요구를 보면서 미국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입장이 커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우리의 행보에 대해서 반성을 해보아야 한다. 안보와 경제를 어느 한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안보적으로 미국과 가까이 가면 갈수록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중국과의 경제적인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미국의 국제정치적 압력을 받게 된다. 정치권들은 이런 딜렘마를 어떻게 해결하고 빠져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해결책은 쉽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입장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를 좀더 벌릴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보는 우리스스로의 역할을 더 강화하고, 경제는 중국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번에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요구한 것은 단순한 일회성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전부터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제기했다. 이제 우리는 미국없는 안보를 준비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불안을 극복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남의 호의만 기대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사드배치 이후 중국의 태도를 보면서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사람들을 예전에 뗏놈이라고 불렀다. 중국에 사람이 많아서 떼로 몰려다녀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엉뚱한 어깃장을 많이 놓아서 뗏놈이라고 한단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떼를 쓰듯이 중국은 우리에게 떼를 많이 부렸다는 것이다. 뗏놈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녹아 있는 말이다.

해방이후 미국놈 믿지말고 소련놈에게 속지말라고 했다. 결국 믿었던 미국이 철수를 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역량이다. 우리의 역량을 모아가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은 우리와 반대다. 그들은 안보적으로는 독립을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적이다. 한반도에서 남북으로 갈려져 있는 남북이 서로 정반대의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남북이 서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 위정자들이 이런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요즘 들어 미국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서 우리에게 과연 미국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소미아와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는 상식의 정도를 벗어났다.

이미 여러번 지소미아 문제와 주둔비용 문제에 대해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을 구구절절 늘어 놓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미국과 미국이 바라보는 우리사이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국은 자유와 정의,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담지자였다.

요즘들어 미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동맹대 동맹의 관계가 아니다. 그저 대국 대 소국, 강대국 대 약소국의 차이다.

미국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서 조선시대 중국이 우리에게 했던 행동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지 모르겠다.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조약이다. 미국의 행동을 보면 우리는 자주적인 외교 교섭권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만일 미국에게 지소미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당연히 한국과 일본에게 모두 동등한 태도로 설득했어야 했다. 일본에게 가서는 아무말 하지 못하고 한국정부만 겁박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미국은 한국이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으면 퍼펙트 스톰을 맞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런 종류의 협박은 이미 동맹 대 동맹의 관계를 넘는 언사다. 이로써 한미동맹은 사실상 그 내용적으로 붕괴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굴복하면 주변국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 대한민국은 국가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자고 지소미아를 연장했다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한국은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실질적인 미국의 속국이라고 여길 것이다. 미국의 속국이라는 평판으로 세계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북한이 한반도의 주인이라는 정당성만 강화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지소미아를 연장하게 되면, 정부는 미국발 퍼펙트 스톰이 아니라 국민들의 분노에 찬 퍼펙트 스톰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의 합참의장이란 작자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올려주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 운운했다. 이것도 웃긴일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길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정상대로 하자면 우리가 미국으로 부터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받아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받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 천문학적 비용을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미국이 지소미아 폐기 문제에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만일 그렇다면 미국은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했을때, 당시 장군들에게 한 말이 있다.

“임자들, 너무 붙잡지 말어. 가려면 가라 그래”

그동안 그렇게 비난했고 비판했던 박대통령의 의연한 자세와 태도가 갑자기 존경스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주한미군문제에 관한 한 적어도 박대통령 정도의 결단과 결기를 가졌기 바란다.

우리사회에는 미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냉전시대였다면 친미 혹은 종미적인 태도가 우리에게 얼마 정도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미국 의존적 태도에서 벗어나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그런 외세 의존적인 사람들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 잘 보아 두시라. 어떤 정치인이 지소미아연장에 찬성하고 어떤 정치인들이 지소미아 연장에 반대하는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국민이 물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가치동맹이라고 해왔다. 유감스럽게도 한미는 가치동맹이라는 의미는 상실했다.

청와대 이상하다 했더니, 이름이 문제였다.

‘사찰의 상징세계’라는 책이 있다. 자현스님이 쓴 책이다. 2012년에 초판이 발간되어 2019년 5쇄를 찍었으니 매우 인기있는 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해야하겠다. 불교에 대한 소개가 쉽게 되어있다. 사진찍은 솜씨가 수준급이다. 하나하나 그냥 대충 만든책이 아니다. 조계사에서 열린 강연회에 갔다가 구입을 했다. 시간나면 조금씩 보고 있다. 절 구경을 많이 다니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책을 보면서 내가 절구경 다닐때 생각했던 것들이 책의 내용과 비슷하게 맞아 들어갈 때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다가 또 터무니 없는 해석을 했을 때는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책을 읽어 나가다가 자현스님이 청와대에 대해서 쓴 글이 나왔다. 요약을 하자면 청와대의 청와라는 말은 독립국인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황제의 집은 황색 지붕을 했다고 한다. 자금성의 지붕이 황색인 이유다.

이말을 유추해보면 청와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를 독립의 자격이 없는 국가라고 낮추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이전의 이름은 경무대였다. 조선 총독의 관저를 독립하고 나서 이승만 대통령이 들어와서 살았다고 한다. 조선 총독의 관저 지붕 색깔이 푸른 색이 었나 보다. 아마도 총독의 관저를 푸른 기와로 쓴 것은 일본의 천왕궁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호사가들은 한국이 일본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도 한국 청와대가 천황의 제후국에 불과한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청와대의 ‘대’라는 말도 문제가 있단다. 대라는 말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란다. “의상대나 낙산대 또는 태종대 등에서 처럼 높은 지대에서 멀리를 조망할 수 있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정자형의 건축물”이 대라고 한다.

자현스님은 청와대라는 작명이 우리가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과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제대로 편안한 여생을 마치지 못한 것도 이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청와라는 이름에는 제후국이라는 좁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게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 이름까지 더해져 있으니, 거기에 사는 사람이 편안할 리가 있겠나?

청와대 터가 풍수지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많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름이 이렇게 문제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내 자신 우리의 전퉁문화에 대해 무지했다는 자책을 한다.

아주 오래전에 청와대 본관에 가본적이 있었다. 높지 않은 언덕위에 이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별로 크지도 않았는데 1층은 집무실로 2층은 주거지로 쓰인다고 했다. 그 때도 오래된 건물이 고색창연했다.

몰랐을 때는 그냥 아무 생각없었는데, 자현스님 글을 보고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적폐청산의 제1번은 청와대 이름부터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청와대 이름 바꾸겠다는 후보에게 무조건 찍겠다.

홍콩과 광주 그리고 불편함

홍콩문제를 보고 있으면 웬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홍콩에서 시위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다루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홍콩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열망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나서서 옳소하고 막상 공개적으로 지지하는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망설이게 만들었을까?

홍콩시민들의 투쟁을 보고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에서 독재와 압제에 대한 투쟁의 공감을 느끼는 것은 광주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서 홍콩시민들의 주장에 동조하기 어려운 것은 또 다른 뭔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사에 재단하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저를 그렇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는 아무래도 홍콩시민들의 운동이 과연 순수한가 하는점에서 뭔지 모르게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홍콩시민들이 범죄인 송환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을때는 저도 관심을 가지고 심정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가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대부분 참가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시위를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시위가 본격적으로 벌어질때 미국의 대사관 직원과 시위지도부가 협의를 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때 미국 대사관 직원은 보통의 외교관이 아니라 정보요원이었을 것이다.

최근의 전쟁을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한다. 하이브리드란 혼합한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방법과 비군사적인 방법을 혼합해서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때 미국 정보요원이 개입한 것을 보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하이브리드 전을 수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민들의 동기와 생각이 순수하더라도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면 그 방향은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기 마련이다.

홍콩의 시위가 순수하다고 보았다면 중국 당국의 대응도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보이고 있는 강경한 대응과 태도는 중국이 홍콩시위를 시민들의 순수한 민주적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심해지면 중국은 천안문 사태와 같은 방식의 해결을 시도할 것이다. 중국은 대륙이고 큰 나라다. 가장 큰 문제는 통합이다. 중국은 홍콩에서 양보하면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신강과 티베트 문제는 섶에 불을 붙이듯이 타오를 수 있다. 중국이 강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더구나 중국은 홍콩사태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패권경쟁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광주의 경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홍콩문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 인권 등의 가치는 국민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확보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나의 자유와 인권은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한때 미국이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면서 세계정치를 좌지우지 한적이 있었다. 그때 미국이 보편적 가치를 주장한 것은 가치 그 자체보다도 그런 주장을 통해 다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가 중요했다면 냉전이후에도 인권과 자유는 계속 미국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이 인권과 자유를 내세우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우리가 누리는 인권과 자유는 부르주아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따라서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마련이다.

국가와 국가간에는 이해관계밖에 없다.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그에 따른 반사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본질이다.

제가 홍콩문제를 보면서 아쉬워하면서도 섯불리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홍콩문제는 홍콩시민들이 해결해야 한다. 외부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광주도 그랬다. 광주의 봉기과정에 그 어떤 외부세력도 지원을 하지 않았다.

홍콩시위를 보면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다. 섯부르게 나섰다가 중국에게 보복을 당하면 그건 또 무슨 꼴이 되겠는가?

그리스 독립전쟁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달려갔던 것은 순수함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시위는 여러가지면에서 광주와 다르다. 다름과 같음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콩시민들의 시위를 보면서 미국과 중국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런가?

서울대학생들이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과연 현명한 짓인지 잘 모르겠다. 홍콩시민들을 지지하는 것보다 우선 지금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비정규직의 안전문제에 관심을 더 쏟아아 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한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가 왜 아직까지 정부가 약속을 안지키느냐고 오열하는 것을 보았다. 왜 사람들은 정장 우리 사회의 문제에는 그토록 무관심한지 모르겠다.

어떤 가치나 의미도 국민국가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미중 무역협상, 비정상적인 미국의 태도와 그 의미

미중무역협상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1단계 무역협상의 결과로 미중이 서로 무역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합의했다고 11월 2일 중국 상무국 대변인이 발표했다.

얼마 있다가 미국 백악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나왔다. 백악관에서 무역 제조업을 담당하는 나바로 국장이 단계적 관세철폐에 반대했고 외부자문위원들도 이에 동조하면서 미국내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뭐가 뭔지 이해하기 어려운 트윗을 날리고 있다. 관세철폐에 합의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닌것이라는 말이다.

지금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이제까지 미국이 대외정책을 수행하면서 백악관내 국장급이 반대해서 흔들거리는 모습을 본적은 없다. 제1단계 협상안은 트럼프가 승인을 했고, 서명직전에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제조업 국장이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 대통령의 참모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한 참모와 각료들은 거의 예외없이 바로 사표를 제출하거나 축출되었다. 물론 그렇게 반대한 참모와 각료들은 대부분 장관급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우리로 치면 청와대 수석 비서관 정도되는 참모가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트럼프가 피터 나바로를 제압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크게 금융자본, 산업자본, 석유자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농업자본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아들 부시는 석유자본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석유의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 금융자본은 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오바마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것이다.

트럼프는 산업자본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트럼프는 산업자본 이외에도 석유자본 그리고 농업자본등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 등장이후 국무장관들이 석유회사의 임원들로 채워진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한 가장 강력한 세력은 산업자본인데, 그것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주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본들의 이익은 서로 대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금융자본은 세계화를 선호하고 산업자본들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요구한다. 이익을 얻는 분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백악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견 충돌은 바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들의 충돌이라고 보면,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블룸버그가 나섰다. 이제까지 금융자본들은 앞에 사람을 내세우고 그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블룸버그가 직접 앞에 나섰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미국 금융자본들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각 부문별로 이해관계가 상충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현상은 과거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 결국 중국의 패권추격을 받으면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들이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결국 패권국가들은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상황으로 간다. 그리고 서서히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패권을 내어주는 경향이 많았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한 것은 다시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면 불가피하게 세계의 패권적 지위를 어느정도 내어 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유일 패권체제에서 다극적 세계로 변화해야 가능한 이야기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고 산업경쟁력도 그대로 다 유지할 수는 없다. 아마도 그런 것은 전세계가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나 가능할 것이다.

미국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지금 바로 세계패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내부 정리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패권국가는 항상 도전을 받는다.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다. 유럽도 재기를 노리고 있다. 중국과 유럽이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차기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는가에 따라서 전체적인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앞으로 미 대선까지 1년동안 세계 국제정치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는 미국은 북한핵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응조치도 내놓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연말까지 시한을 거듭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그때까지 협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연말까지 시한을 준 것은 다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변화는 항상 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극대화시키는 계기를 북한과 이란이 제공할지도 모른다. 내년 1년은 북한과 이란의 해가 될 수도 있다. 만일 북한이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승인해 버리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유럽이 미국을 배제하고 직접 이란과 협상을 실시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아마도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나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국제체제를 붕괴시켜가 자신들의 입지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과 북한은 기존의 후원-피후원의 관계를 넘어 서로 대등한 전략적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이라고 하는 것이 북중간 대등한 전략적 동맹관계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침에 커피 한잔을 놓고 이렇게 횡설수설했다. 좀 더 상황을 두고 보아야 겠다.

정치,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 양정철의 모병제를 보며


정치와 관련하여 다양한 정의가 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정치는 자원의 불만없는 배분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을 구성원들이 가장 불만없도록 배분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해야할 일의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도 결국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책과 정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책은 우리가 해야할 것을 나열한 것이다. 정치는 그런 정책의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말을 하는 것은 현정부와 여당이 정책의 우선순서를 정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연구소의 양정철이 뜬금없이 ‘모병제’를 들고나온 것은, 그가 대한민국 정치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교만의 정도를 지나도 한참은 지났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현안문제는 가지가지 쌓여 있다. 그러나 그는 집권여당의 연구소장으로 중요한 현안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내놓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오로지 국민들의 관심을 현안문제로부터 돌리는데 집중을 하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은 당연히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에 가있어야 한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정부여당이 인정을 받는 것은 그런 현안문제를 제대로 잘 처리하고 성과를 얻을때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야당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고 보면 양정철은 현안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있는 정치인은 되지 못한다. 그냥 역량을 발휘하는 것보다 뭔가를 던져서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싸구려 정치꾼일 뿐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무엇인가? 당연히 지소미아와 미국의 방위비 분담요구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관심은 여기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작 고민해야 할 문제는 외면하고 별로 시급하지 않은 문제는 기를 쓰고 달려든다.

국내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법개혁과 선거법 개혁이었다. 사법개혁은 법원개혁과 검찰개혁으로 나눌 수 있다. 원래 사법개혁의 핵심은 법원개혁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이후 사법개혁은 중지되었다. 조국 사태이후 검찰개혁이 주요이슈가 되었다.

사법개혁하나만 해도 제대로 집중하고 해결한 것이 없다. 여전히 법원은 국민들이 바라는 것보다 멀리 가 있다.

정작 중요한 선거법 개혁은 물건너 가버렸다.

집권해서 2년 반동안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기만 했지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

그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항상 주요 현안에서 떨어져 있었다. 당장 그림이 잘나오는 곳,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에만 가 있었다. 어렵고 힘들고 비난받는 곳에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소미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미국의 방위비 요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문제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단락

어려운 문제를 앞에서 해결하지 않고 자꾸 뒤에서 숨으려고 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