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하는자와 당하는자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고 세상일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온갖 음모와 책략이 난무하는 국제관계는 알려지는 이야기들의 배후까지 미루어 짐작하고 판단해야 한다. 국제관계는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오로지 힘의 논리만 작동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그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일본의 수출전쟁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의 종료통보 유예, 북미대화의 중지 그리고 북한의 금강산 사업 철수통보, 북한의 서해안 포사격 연습과 동해 장전항의 재 군항화, 이어서 전한미연합사령관 브룩스의 내년도 한미연합훈련 재개주장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형성된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미중간 패권경쟁이라는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냉전체제와 지금의 패권경쟁체제는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냉전체제는 가치동맹을 바탕으로 했다면 패권경쟁에서는 이익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체제는 사회주의의 전체주의와 자본주의의 자유민주주의가 서로 싸우는 형국이었다면, 지금의 미중패권경쟁은 누가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유지할 것인가가 싸움의 핵심이다. 혹자는 중국이 민주화되지 못한 것을 들어 냉전체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할지모르나 지금의 중국은 냉전당시의 중국과 차이가 많다. 비록 중국정치가 아직 서양의 민주주의와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가 완전하게 구속되는 과거와 같은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이미 중국도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편입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서로 싸운다. 서로 협조해서 공동의 발전과 번영을 누리면 좋으련만 인간이라는 종자는 그렇게 하도록 생겨 먹지를 않은 모양이다.

미국은 소위 말하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제시하면서 일본과 호주를 중심으로 중국을 봉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최근 벌어진 일본의 수출전쟁과 지소미아 종료선언은 미국이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을 통제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중심으로 대륙을 통제하고 봉쇄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영일동맹 당시 영국은 일본에게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주었다. 미국도 일본에게 한반도의 식민지배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려 했다.

미국이 일본의 수출통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만 문제삼은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통보 유예를 선언하자 잘했다는 여론이 70%를 넘었다고 한다. MBC의 여론조사 결과를 믿기가 매우 어렵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부의 결정을 비난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북한은 북미대화에 진전이 없는 이유를 미국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북미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주춤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바로 이지점에서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보다 중국에 대한 봉쇄를 더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봉쇄의 방법으로 중거리핵미사일의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 작년 말 한 저널에 미국의 INF 파기 결정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에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빌미로 남한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트럼프가 북미회담에 나선 것은 북한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이용해서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남한에 배치하려고 하는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었다. 트럼프의 북미회담은 미국의 대중봉쇄전략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한 책략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림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미-일-한의 최말단 계서에 위치한 우리의 입장이 실로 곤궁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시켰다면 미국이 생각하는 미-일-한의 최말단 계서적 위치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정부가 속절없이 지소미아를 연장함으로써 우리스스로 미-일-한의 최말단 지위를 받아들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우리는 미-일-한 동맹에 끼일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전략적 평가를 함에 있어서 자신의 위치를 불리하게 평가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야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 나온다. 지금의 한국은 미일동맹을 공고화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하고 냉철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연상시키는 조치를 하고 있다. 어리석은 일이다. 북한은 이런 조치를 통해 미국을 대화로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호전적행동은 미국의 의도에 그대로 말려가는 빌미일 뿐이다.

미국은 북한을 자극하여 남한에 도발을 하도록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남한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다. 남한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면 중국은 어마어마한 위협을 당하게 된다. 중국은 당연히 남한을 사사건건 괴롭힐 것이다. 경제교역은 물론이고 서해안에서의 직접적인 군사적 압박도 거세질 것이다. 당연히 한반도 주변에 전략 폭격기들이 날아 다니면서 핵전쟁의 암운이 드려질 것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만들어 가지 못하면 이용만 당한다. 그동안 우리 안보의 금과옥조였던 한미동맹이 오히려 우리 목줄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용을 당하지 않으려면 입장이 분명해야 한다. 국민들의 생각도 견고해야 한다. 지금 처럼 패권정치가 난무하는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로 나뉘어진다. 우리는 이용당하는 자의 위치를 스스로 고수하고자 한다.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남과 북이 서로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북한도 비록 미국과 대화가 되지 않더라도 남한과는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남한 국민들이 미국의 핵무기 배치를 막아낼 수 있다.

남한이 미국에 이용당하는 것이나 북한이 미국에 이용당하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정신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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