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비난사이, 진중권을 위한 변호

굳이 진중권의 경우는 아니다. 일전에 조국 딸의 표창장 문제가 되었을때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가짜 학위문제가 대두되었다. 엄격하게 보자면 총장상이 위조되었다는 최성해 총장의 주장의 진위는 그가 가짜 학위를 가졌다는 것과 별 관계가 없다. 물론 가짜학위는 최성해 총장의 말이 지니는 신빙성을 떨어 뜨릴 수는 있지만 가짜학위라는 것이 총장표창이 위조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싸잡아서 비판을 하자, 진중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진중권에 대한 비난의 대중은 그가 관종이라든가 그가 문정권에서 무슨 자리라도 차지하려고 한다는 식의 말들이었다. 그리고 진중권이 최성해 총장의 가짜학위에 왜 침묵하느냐는 이야기도 많았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비판하기 위해서 최성해의 가짜학위를 먼저 비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례를 비판하는 것은 최성해 개인의 비리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최성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개인적 일탈의 범위를 크게 넘지 않는다. 그러나 진중권이 비판한 것처럼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례가 친문세력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의 사고를 마비시키려고 한다는 비판은 사회적인 문제다.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 그리고 권력을 가진 어떤 개인이나 단체 그리고 조직에 대한 비판도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영향력이 큰 조직과 단체 그리고 개인에 대한 비판은 총체적으로 보다 해악보다는 건설적이라고 생각한다.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항상 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 경종을 불러 일으킨 경우는 대부분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군부독재시절에는 개인적 양심선언이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공익적 폭로가 대부분 개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어떤 개인이건 기득권과 조직에 맞서서 비판을 하는 경우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진중권이 관종일 수도 있고 차기 내각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할 수도 있다. 설사 그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가 한 말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그를 관종이라고 하고 문대통령에게 불러달라고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한 말이 타당하고 올바른가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별개이다.

진중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에 어떤 오류가 있고 잘못이 있는지를 비판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냥 싸잡아서 그놈 싸가지 없다는 식이다. 인간을 원래 완전하지 않다. 진중권이 싸가지 없고 관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되돌아 보아 완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공론의 장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악의적인 인격적 비난이 아니고 의견의 개진이라면 그것이 비록 따갑고 쓰리더라도 허용되어야 한다. 지금 진중권에 대한 비난은 공론의 장을 막는 독재적 경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파쇼적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전한 진보라면 싸가지나 관종이라는 말보다는 그가 하는 말의 타당성 논리적 결여를 지적해야 한다. 저놈 기분나뻐식의 접근은 수구보수세력들이 주로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자신이 타격한 거대한 기득권의 벽앞에 좌절할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할말을 다 했으면 좋겠다. 진중권이 친문세력을 비판하니 자유한국당에 눈길을 돌린다고 마타도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로 군부독재시절의 그들과 같은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진중권을 다시 한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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