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박형철은 왜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을까?

박형철 전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유재수 감찰 무마건으로 백원우와 함께 공범으로 처리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런데 박형철은 단순한 공범이 아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적인 비리인 유재수 감찰무마건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의 핵심 증인이다.

그는 검찰에서 조국과 백원우가 유재수의 감찰을 무마시켰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자신이 김기현 전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경찰의 영장을 발부하라고 울산검찰에 전화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의 핵심적 인물을 임종석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박형철의 검찰 진술은 문재인 정권의 권력형 부패와 비리를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왜 박형철 전반부패비서관이 이런 증언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박형철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게다가 참여정부와 인연도 있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볼때 박형철 비서관이 스스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행동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유재수 건도 조국이 이야기 한 것처럼 조국과 백원우 그리고 박형철 3인이 감찰을 계속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별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조국과 백원우 등은 박형철이 검찰에서 이런 진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박형철이 이미 유재수 감찰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관련하여 자신들과 공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것이다.

그가 아무말 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검찰이라도 청와대가 직접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밝혀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법원도 검찰의 웬만한 수색영장은 모두 기각한 바 있다. 법원도 이번 일련의 사건과 관련하여 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형철은 자신이 처벌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검찰에서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진술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인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사회적인 사망을 각오하고 진술을 했다. 박형철이 전화했다는 검사는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퇴직한 그 검사도 자신이 전화를 받았다고 할 경우에 구속을 면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도 되면 박형철이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가만 있으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한자리도 꿰찰 수 있었다.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도 처벌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검찰과 법원에서 박형철에 일정정도 정상참작을 한다 하더라도 그가 받아야 할 타격은 심대하다. 그가 당하게되는 사회적 불이익을 고려해 보면, 박형철이 왜 스스로 사회적 죽음을 무릅쓰고 진술을 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말하는 검찰조직에 충성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윤석렬과 개인적인 인연 때문일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검찰조직 보호와 윤석렬 개인과의 인연과 같은 사적 이기적인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피해볼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유추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박형철이 스스로 죽을 각오를 하고 올바른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것을 올바르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심성의 소유자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이런 행동은 올바른 삶을 살겠다는 신념과 기질의 소유자만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혼탁한 세상에, 조국같은 위선자, 조국같은 사기꾼, 조국같은 야비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판치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대한민국에, 박형철은 유일한 의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사람 하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전도양양할 수 있었던 박형철이 스스로 사회적 사망선고를 자초한 이유를 다른 무슨 이유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의 행동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검사의 양심에서 출발한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 조국과 백원우를 기소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재인 정권의 친위 검찰들에 실망한다.

늘상 그렇듯이 실망과 희망은 서로 교차한다. 희망의 힘이 세상을 이끌게 하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의 역할이다.

혼돈의 정치, 정책과 사람 사이

정치가 혼란스럽다. 무엇이 정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원칙과 가치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원칙과 가치가 무너지면 안과 밖도 바뀐다. 사과나 수박이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에 수박은 없다. 사과나 바나나만 있을 뿐이다. 진보를 주장하면서 극우보수 파시즘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진정한 진보를 주장하는 정의당도 하는 행태는 실망스럽기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 층이 되어 버렸다. 우리사회에서 대기업 노조는 최상의 기득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정의당은 말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나라 최상위 기득권 층의 보호자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민중당이라고하는 곳도 문제가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북한과 같이 자유롭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자야’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서정의 ‘백석’이 딱딱하게 말라붙어 버린 곳이 북한이다. 그런 북한의 이념을 추종한 사람들은 싫다. 난 방탄소년단이 마음껏 노래부르고 차별과 탄압이 없는 곳이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정당마다 인물들 영입한다고 바쁘다. 그런데 그 면목을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결국 그렇게 정계에 진출하려고 당신들이 그런 행동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일, 올바른 일을 해도 그 동기가 불순하면 그 결과마져도 비난을 받게 된다. 최근 더민당에서 영입한 사람들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그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정당은 인물을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이 분명해야 한다. 자기네 정당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분명하게 정책을 밝혀야 한다. 최근 정당들이 인물영입을 하는 것을 보고 실망스런 것은 선거가 정책의 대결이 아니라 마치 누가누가 잘났나 하는 인기투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영입도 순서가 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정책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남북한간의 문제에 대한 목표와 방향은 어떤지, 미중패권경쟁에서 우리의 외교정책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부의 편재현상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청년실업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급격한 인구감소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심각한 환경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문제에 대한 정책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야 한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실패한 것은 정책도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고 그런 정책을 수행할 사람도 제대로 발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번 실패한 사람이나 집단을 다시 믿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한심한 것은 대가리가 깨지더라도 문재인을 밀었고, 대가리가 깨지더라도 박근혜를 밀었기 때문이다.

인물영입은 자신의 정당이 지향하는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사람을 발탁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그런 과정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 조국수호를 외치는 서초동 사람들이나, 안철수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아직도 문재인이 최고라고 하는 소위 대깨문이라는 사람들이, 옛날 고리적에 ‘리프 거렛’이라는 가수가 방한공연을 했을 때, 너무 좋아서 실신하고 공연장에 속옷을 벗어서 던졌던 젊은 여자 아이들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스스로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켰다는 점에서 너무나 같다.

요는 새로운 인물영입이라고 하는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슨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말 실현할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잘 찾아 보면 좋은 사람 많다. 물론 내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번드르르한 학벌과 직업, 그리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의지와 능력을 모두 가진 사람들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판사 검사 출신 많이 공천하는 정당부터 심판했으면 좋겠다.

불임정당, 더불어민주당, 대안은 무엇인가

정당은 권력을 장악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구현하고자 한다.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이유가 없다. 정당들이 정권을 장악하기위한 경쟁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정당의 크기와 세력에 관계없다. 규모가 큰 정당은 직접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정당은 연정에 참여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구현하고자 한다.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과 인물이다. 추구하는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제든 내각책임제든 대표적인 인물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보적 성향을 지닌 정당과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비판한 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제대로된 진보가 아니라 겉은 진보를 표방하지만 속은 수구보수 세력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수구보수세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지는 열거하지 않겠다. 현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은 수구보수적 정책이었다. 그나마 평화에 관한 정책도 진정성이 없었다. 그저 국내정치에 이용함으로써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남북화해협력의 기반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의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진정한 진보적 정당과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 문제는 더민당이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게 보인다는 것이다. 정책도 정책이거니와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더민당이 대충은 현상유지를 해주어야 다음에 진보적인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은 오만과 교만으로 지지기반을 급속하게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문재인 정권이 겉만 진보이고 속은 수구보수적이라고 하더라도 다음이라도 진정한 진보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대책없이 무너지는 것은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없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조건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지지할 수는 없고 지지해서도 안된다.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직면한 가장 큰문제의 하나는 급속하게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것과 함께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의 부재다. 지금 더민당에는 다음 대통령 후보로 나설만한 사람이 없다. 지금 당장 이낙연 총리를 꼽기도 하지만, 그는 수없이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조국사태, 지소미아 사태, 검찰문제 등을 다루는데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 지도자는 결정을 하는 것이 주요 책무다. 그는 거의 모든 중요한 이슈에 대해 정확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 방향이 틀렸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대통령 뒤에 숨어서 본모습을 숨길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더민당에서 다음 정권을 창출하려면 이번 총선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손발을 맞추어 정국을 운영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선출될 수 있도록 영향력도 행사해야 한다. 그런 영향력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이낙연은 더민당의 이번 공천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이낙연을 친문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이유이기도 하다.

친문세력들은 이번 선거를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위한 기회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급적 많은 친문세력들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지금의 문재인과 친문세력들의 안위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한 장기적 플랜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다.

비록 자한당은 지금은 지리멸렬하고 있지만 다음 정권 창출이라는 점에서는 더민당보다 훨씬 여건이 좋다. 대선에 나설 인물도 훨씬 많다. 오세훈, 유승민, 안철수 등등이 보수정당의 대선후보 예비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더민당과 비교해 보면 훨씬 여건이 좋다.

결국 정당지지도가 어쩌지 저쩌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더민당은 불임정당인 것이다. 불임정당의 한계는 명확하다. 더민당이 정당지지율이 높다고 자만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보이면 뭔가 변화를 해야 한다. 절망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민당은 친문의 포로가 되어 아무런 변화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정치인은 생활정치인이다. 개혁과 발전 그리고 이상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그저 봉급받고 주어지는 권력을 향유하기 위한 회사원 국회의원일 뿐이다. 그런 국회의원은 아무 필요없다.

정치인은 부단히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해야한다. 저항하고 항의하지 않고 반대하지 않는 정치인은 죽은 정치인이다. 더민당은 앞으로 문재인과 친문의 안위를 위해 이미 정신이 죽어버린 국회의원들을 공천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 그럴수록 다음 정권 창출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지금 이상황에서도 다음 정권 창출을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점점 더워지는 대야속에서 눈을 감고 기분좋게 않아있는 개구리같은 더민당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

김형오, 자한당 공천개혁을 기대하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 실망했다. 박근혜 정권때는 절망했다. 문재인 정권때는 기절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었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지 문재인 정권도 처음출발 때부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권이니 비판보다는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이 비난을 해도 그러면 안된다고 설득을 하기도 했다. 

세상돌아가는 일에 눈이 밝은 선배 한사람이 문재인 정권은 2년만 지나면 끝이 날것이라는 말을 알듯 모를 듯 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그 선배 말이 맞아가는 것을 보고 아쉬워했다. 

그 선배 말인 즉, 문재인 정권은 안팎으로 부패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한당이 너무 무능하고 무력하기 때문이란다.  정권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으니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권도 부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촛불혁명의 기대 속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시민혁명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아쉬울 뿐이다. 

아무리 야당의 견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한당에 눈길을 돌리기 싫었다. 보수적 가치를 어디가서 찜쪄먹은 황교안과 탁핵에 책임을 지지않은 세력들의 몰염치 때문이다. 제정신이라면 군대도 빼먹은 사람이 안보를 제1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정당의 대표가 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한당의 동향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야당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내가 지지해온 진보정권이 건전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때늦은 각성 때문이다.

그동안 처다 보기도 싫었던 자한당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공천관리위원장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김형호 전 국회의장은 ‘황제와 술탄’이라는 책을 썼다. 오래전에 그 책을 읽어 보았다. 전문적인 저술은 아니었지만, 국회의원이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썼다는 점은 매우 신선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을 그만두고 나서 살아온 행적이 그래도 깔끔했던 것 같다. 보수적인 정치인이지만 괜찮은 사람이다. 보수적인 사람은 나쁘고 진보적인 사람은 좋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데 문재인 정권은 아주 훌륭한 역할을 했다. 보수적인 정치인 중에서도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이 있고, 진보적인 정치인중에서도 최악의 인간들이 많다. 요즘 진보정당의 정치인들 중에서 제대로 안된 인간이 더 많은 것 같은 것은 그동안 내가 스스로 내눈에 뭔가를 씌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오 전의장이 공천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우선 황교안과 나경원 같은 막장 정치인들 부터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구와 경북, 부산, 경남 지역에 기생하면서 우리 정치 문화를 좀먹은 기생충 같은 정치인들을 모두 제거해주었으면 좋겠다. 

탄핵정국이후 보수정당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문재인 정권의 적폐는 보수적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보수정당은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이번기회를 놓치면 정말 더민당이 20년 집권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공천혁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한당에게 이런 기대를 하게 될 줄 몰랐다. 

판사, 검사, 군인, 경찰의 정계진출 문제있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니 사법농단을 질타했던 판사, 검경수사권조정을 주장했던 경찰들이 출마한다고 한다.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군인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려면 전역한지 10년이 지나야 한다. 특별한 경우 전역하고 10년 이전에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트럼프의 초대 국방장관 매티스는 해병대사령관으로 전역하고 곧바로 미의회의 승인을 받아 국방장관이 되었다. 매티스는 현존하는 최고의 군사전략가라고 한다. 그는 전장을 지배하고 승리를 만들어 내는 진정한 군인이라는 평을 받은 사람이다. 걸프전의 영웅이었던 파월 합참의장은 이 조항 때문에 국방장관이 아니라 국무장관이 되었다.

미국이 이런 규정을 만든 것은 민주주의가 군대에 의해 유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후진국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군대다. 막강한 물리적 힘으로 정치과정을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쿠데타를 막아야 한다. 미국의 규정도 군사 쿠데타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조지 워싱턴이 진정 위대한 것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보다, 휘하의 군인들이 힘으로 정권을 장악해서 워싱턴을 추대하고자 했던 것을 막고 군에 대한 시민적 통제 체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군대에 의해서 위협을 받지 않는다. 군대는 이미 소위 문민통제라고 하는 체제에 철저하게 복종하고 있다. 최근 일부 군출신 과격분자들이 군대의 반란을 부추기는 언행을 하기도 했지만, 군내부는 그런 언행에 꼼짝도 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다. 실제 군의 반란을 부추기는 듯한 언행을 했던 군 장성출신들의 상당수는 이런 언행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정계에 진출하고자 했다.

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군대의 쿠데타보다 더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위 판사, 검사, 경찰 들이다. 사법농단을 비난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며, 검찰을 비난하던 경찰들이 정계로 진출하려고 한다.

이들은 군대의 반란을 부추기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자산을 쌓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군장성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사법제도와 절차 그리고 수사권과 경찰력을 정치적 입지와 자산을 형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상화되면 사법제도와 치안이 고도로 정치화된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주민의 생활이 위협받게 된다.

일부 판사들과 경찰들이 정계에 진출하려는 것을 보면, 이들이 현역 당시 진정 제대로 정의의 심판을 내리고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로서 역할을 했었을까 의심스럽다. 정당의 간택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왜곡되게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군대가 정치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보다 판사, 검사, 경찰이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 상황이 바뀌면 규정도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정치개혁을 다룰때 판사, 검사, 경찰, 군인들이 정계에 진출하려면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사 검사는 퇴직해도 변호사를 할 수 있으니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경찰과 군인도 퇴직하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이제까지 판사, 검사, 경찰, 군인 출신 정치인들이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기여했나 모르겠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나라의 정치를 퇴행시키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특히 판사 검사들이 자신의 경력을 정계 진출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법관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퇴직이후 일정기간 동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훌륭한 정치인은 얼마나 좋은 학력과 경력을 가졌는가 보다, 어떻게 세상을 살았고 어떤 가치를 지녔는가로 평가 받아아 한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야 한다.

요즘 정세,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

세상은 항상 복잡하고 무질서한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무질서와 혼돈이 세상의 본질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혼란과 혼돈 그리고 무질서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는 그런 것들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원칙을 정의하고 이를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역사를 이루는 문화적 삶의 출발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들이 만들고자 한 원칙은 투쟁의 산물이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하고 보호해야할 원칙이라는 것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그가 이런 입장에 서든지 저런 입장에 서든지 상관없이 존중받아온 원칙도 있었다.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원칙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둑질과 거짓말도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쁘게도 그리고 좋은 것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의적 홍길동과 로빈 훋의 도적질은 무조건 나쁘다고 하기 어렵다. 거짓말에도 white lie 라는 것이 있다. 더큰 선을 위한 거짓말도 있는 법이다. 

그럼 도대체 인간의 삶에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을 비난하면서 거짓말하면서 선동을 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정말 중요한 지적이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진중권이 그렇게 이야기 해도 소위 말하는 대깨문들은 진중권보다 유시민 그리고 김어준의 말을 여전히 신뢰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유시민과 김어준이 선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즐겨 선동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거짓과 선동이 판치는 이유는 유시민과 김어준과 같은 사람들이 선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선동과 거짓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대깨문이니 하는 말로 그들의 행동과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상은 매우 특이하다.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수천년간 내려온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과 사고 그리고 가치체계가 유시민과 김어준 식의 선동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사상을 넘어선 삶의 태도에 대한 기준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확립한 원칙은 우리의 감정적인 부분에 남아 있다. 즉 비열하고 얍삽하고 저열하며 야비한 인간은 나쁜 인간이라는 인식이다. 전쟁과 혁명으로 수없이 많은 인간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그 어떤 도덕도 무의미해 질 때 조차도 비열하고 야비하며 얍삽한 인간은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렀어도 그가 비열하지 않고 야비하지 않으면 그럭 저럭 용서를 받기도 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그가 근본적으로 비열하거나 야비하면 가중 처벌을 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범죄나 잘못보다는 야비하고 비열하고 비겁한 삶의 자세와 태도가 더 큰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조국과 문재인이 가장 심각하게 질타받아야 하는 것은 잘못한 사실보다, 잘못에 대한 태도다. 조국이 저지른 일는 매우 야비하고 비열했다. 법의 지배가 지금처럼 철저한 사회가 아니었다면 그는 저잣거리에서 린치를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문재인은 조국이 저지른 잘못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조국이 보여준 비열한 삶의 태도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진영논리에 갖혀 비열하고 야비한 삶의 자세를 질타하지도 못하는 처지다. 지식인들이 그토록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본연의 일인 공부하고 가르키는 것보다 어떻게 줄을 대서 정치권에 진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시대의 우병우가 비난을 받고 질타를 받은 것은 그가 저지른 범죄보다는 그가 보여준 얄미운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조국의 경우는 우병우보다 훨씬 더 얄밉고 야비하고 저열하다. 조국의 어떤 잘못도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은 국민들이 조국을 우병우보다 더 야비하고 얄미운 법꾸라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그가 한 일이나 그가 저지른 잘못보다 그가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진보나 보수를 초월해서 사람의 가치는 그가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처럼 남앞에 나서고 싶은 사람은 항상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최근에 자한당과 더민당에서 인재라고 등용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삶의 자세와 태도가 평균적 수준에서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특히 외국에서 30대에 여성총리가 나오고 40대에 대통령이 나오니 우리나라도 그런 트랜드에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내세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이보다 그가 어떤 삶의 자세와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정한 원칙을 준수하고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되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앞으로 책임있는 정당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정치인으로 영입해야 한다.

국민들도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울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한때 지나가는 유행열병처럼 들떠서 부족한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우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적어도 김영삼과 김대중 이후 우리는 지도자를 무슨 인기투표 하듯이 뽑았다. 인기도 중요하지만 인기를 지도자의 자질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가 얼마나 원칙을 잘 지키는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고 지키기위해서 노력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 국민의 역할이다. 바람부는 대로 선동에 휩싸여 아무나 뽑아 놓고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국민의 역할이 아니다. 

영남반동, 호남반동, 시민단체 반동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낸 세대가 군부독재보다 저열한 독재의 압잡이가 되어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같은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리게 만든 제1의 책임은 황교안과 나경원에게 있다. 학교다닐때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자한당은 오로지 투쟁 일변도로 일관하다가 더민당에게 말려들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도록 만들었다. 만일 당시에 다른 야당과 긴밀한 협의를 하면서 더민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전략에서 실패했다. 전략의 실패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능력한 자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을 사춘기 청소년 처럼 폭발하도록 만든 것은 광화문의 열기와 영남의 반동적 지지 때문이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박근혜를 탄핵했으면서 탄핵에 머물러 있던 영남의 반동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려주는데 일조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의 무능력을 발휘하고도 저렇게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하게 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호남의 반동성에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조국과 유재수, 그리고 송철호의 행위는 올바른 시민적 삶을 왜곡하고, 국민의 삶을 유린했을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행위를 영웅담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조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국의 행위는 영웅담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기타잡범’의 행태와 견주어도 매우 비열하고 악랄한 수준의 범죄다.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해도 ‘기타잡범’의 수준밖에 안되는 조국을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만들어 가는데 가장 기여한 것은 호남이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이 내준 압잡이 자리에 취해 김대중이래 정신적으로 우월감을 지니고 있던 진보적 가치를 서슴없이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영남보다 더한층 반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남이야 원래 보수적인 동네니 조금만 움직이면 반동화된다.

호남은 원래 진보였다. 이상한 것은 호남이 이번 정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반대에 있는 반동의 영역에 서슴없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호남이 영남보다 더 반동화되었다. 영남이 저러고 있는 것은 그래도 박정희와 박근혜의 향수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해 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전에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반동적 상황에 머물고 있다.

호남의 반동적 상황은 영남의 반동적 상황보다 한층 더 저열하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를 하면서 주어지는 조그만 떡 고물에 취해서 반동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동안 지향했던 진보적 가치를 헌신짝 처럼 내 던져버리고 시궁창에 떨어진 엿조각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제정신을 차렸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시궁창의 떡고물을 찾아 헤매기 보다는 김대중의 정신과 5.18의 정신을 고양시켰어야 했다. 지금은 지하의 김대중과 5.18 영령들이 땅을치고 통곡할 상황이다.

영남은 자기연민에 빠져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 호남은 떡고물을 찾아 스스로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점에서 영남보다 더 저열한 반동의 길을 가고 있다.

진보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한다. 보수는 가치보다 이익을 더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호남은 완전하게 반동화되고 말았다. 반동화된 것은 호남뿐이 아니다. 참여연대와 민변, 우리법연구회 같은 과거 진보적 시민단체와 직능단체들도 예외없이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가 되면서 반동화되었다.

김경률 같은 사람이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그들이 얼마나 반동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양승태를 적폐라고 고발하던 양심적 판사들이 대거 더민당의 품에 안겨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아무때나 유리할 때 엿바꿔먹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일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의 본성은 변한다. 개혁도 그렇다. 이승만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대구였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광주였다. 문재인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서울이 될 것같다. 기득권에 포섭되면 바로 반동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경계선은 수도권이다. 영남과 호남은 기득권 반동일 뿐이다.

진중권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를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더민주만 안찍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있는 한 자한당도 찍으면 안된다. 실패한 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민주도 안찍고 자한당도 안찍으면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 정의당 ? 그들은 더민당보다 더 나쁘다.

왜 비정상적인 권력을 참고 있는가?

아무리 보아도 지금 정권은 정상적이지 않다. 서슬퍼런 3공화국부터 군부독재의 전두환, 노태우를 지나 지금까지 살았다. IMF 사태로 살기 어려워진 김영삼 정권이나 전라도 정권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김대중 정권때에도 국민들이 이렇게 분열되지는 않았다.

국론이 분열되고 오로지 진영논리가 모든 도덕적 가치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때 부터였다. 지금은 노무현이 마치 대단하게 위대한 인물인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태평양에 손목아지가 둥둥 떠다닌다고 했다. 노무현의 무능력과 쌍소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노무현을 찍은 자신의 손목을 짤라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노무현이 뿌려놓은 분열의 씨앗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많다. 그러나 정말로 그 두사람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국민의 분열을 치유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문재인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노무현이 만들어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증폭시킨 결과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을 문재인은 극대화 시켰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가치와 도덕의 분열이다. 혹자들은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우리나라에 진보와 보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정당도 제대로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칭 진보이자 참칭 보수일 뿐이다.

지금 국민들이 분열된 것은 가치가 아니라 태도문제다. 어떤 가치가 옳으냐 하는 것으로 싸우면 그것은 건전한 진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치로 인해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 붕괴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저질적인 분열적 현상을 우리는 겪고 있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수사가 예외없이 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수사가 아무리 길고 오래되더라도 그의 범죄를 무위로 돌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수사가 지연되더라도 범죄는 여전히 범죄다. 수사가 지연되면 범죄가 범죄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가 저지른 짓거리는 길거리의 양아치들도 비열하다고 할 정도의 수준이다.

범죄와 잘못도 수준이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그 잘못이 크더라도 그냥 보아넘겨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작더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조국이 저지른 범죄는 죄질이 나쁘다. 특히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용납받기 어려운 일들이다. 비열하며, 야비하고, 저열하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런 조국의 범죄를 옹호했다. 그리고 그런 수사를 하는 검찰을 공중분해시켰다. 대통령과 직접 관계된 수사를 하는 부서를 거의 예외없이 제거했다. 신라젠은 희대의 사기사건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많았다. 이번 검찰의 조직개편에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금융관련 수사를 할 수 있는 남부지검이 초토화되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정치와 경제의 거악을 징벌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제거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결국 문재인 권력은 그들이 거악을 저질러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렇게 해놓고 문재인이 검찰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 문재인 정권은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을 동원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 경찰은 유일하게 국내정보를 다루는 경찰, 수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찰이 되었다. 경찰은 거의 견제받지 않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보던지 문재인 정권은 이번의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찰조직의 공중분해를 통해 이정도에서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총선에서 승리해서 수사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독재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전두환도 장인을 사법처리했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아들이 사법처리 당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그들이 문재인보다 권력의 힘이나 정치적 정당성이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악이 평범의 얼굴을 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궤변이 합리성과 보편타당함을 억누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나찌 당시 그 수준높은 독일의 지식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한 것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진단했다. 독일 시민들이 자유를 누릴 능력이 되지 않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금 조국의 비열함을 옹호하고 유재수의 부패를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받아 들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부정을 감추기에 급급한 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일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부패에 눈을 감고 있는가 ?

그들 586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전두환의 군부독재에서도 하지 않았던 작태를 옹호하고 있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는 가장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에 서 있다.

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

성경에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라’고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필요한 이유는 어둠과 세균 그리고 곰팡이 때문일 것이다. 빛은 강해질수록 어둠은 더 짙어진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세균과 곰팡이들이 판을 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누가 빛인지 어둠인지, 누가 소금이고 누가 곰팡이 덩어리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누가 빛이며 누가어둠인지, 누가 소금인지 누가 세균 곰팡이 덩어리인지 알 수 있다.

검찰은 소금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검찰이 그동안 비판을 받은 것은 소금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금의 짠맛은 한결같아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어떤 때는 짜다가 어떤 때는 맹물이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왜 소금이 한결같이 맹물같지않고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서초동이나 광화문 모두 비슷하다. 소금이 왜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항상 소금의 짠맛을 지켰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집권 초중반까지는 항상 정권을 위한 맹물역할을 하다가 정권이 힘을 잃을 때가 되면 짠맛을 냈다. 검찰개혁은 소금이 항상 짠맛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짠맛 싱거운맛을 조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소금의 짠 맛을 없애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 버리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이 판을 친다.

윤석렬의 검찰이 문재인 집권초기부터 권부에 대해 짠맛을 뿌렸으면 조국도 사모펀드가지고 장난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재수와 송철호 같은 사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이 일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소금이 짠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소금을 상처에 뿌리면 쓰리다. 아프고 쓰리면 비명을 지른다. 지금 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가 ?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지금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일까 ? 윤석력의 검찰이 빛인가 어둠인가 ? 조국일가, 송병기, 송철호, 백원우가 빛인가 어둠인가 ? 소금이 뿌려졌을 때 비명을 지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세균 곰팡이 덩어리다.

빛이 그 밝음을 잃어 버리면 어둠과 빛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지금 빛에게서 그 밝음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 빛을 흐리게 하는 자들은 절대로 빛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의 자식일 뿐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을 찬양해야한다. 어둠과 세균 곰팡이 덩어리를 찬미할 수는 없다. 물론 때에 따라 밝음을 잃어 버리는 빛과 짠 맛을 잃어 버리는 소금을 찬미해서도 안된다.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곳에서 더 창궐하는 법이다.

트럼프 친서, 누가 누구를 속인 것인가?

정의용 안보실장이 트럼프의 김정은 생일(1월 8일) 축하 서신 전달을 부탁받아 북한에 서신을 전달했다고 1월 10일 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랬더니 11일 북한의 김계관이 자신들은 이미 트럼프로부터 직접 생일축하 서신을 받았는데 남한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북한은 남한이 북미간에 괜스리 끼어들어서 장난을 치지말하는 취지로 이야기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

이번에는 북한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일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러나 경우의 수를 살펴보면 간단하다.

첫번째는 정의용 말처럼 트럼프가 그런 말을 했을 경우다. 미국이 직접 트럼프 친서를 김정은에게 보내놓고, 한부를 더 정의용에게 주면서 김정은에게 전달했을 경우다. 만일 미국이 그랬다면 어떤 상황일까? 김정은이 트럼프의 서신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답해서 다시 한국을 통해서 친서를 한번 더 보내려고 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체신을 보아서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미국은 그냥 한국을 가지고 놀려고 장난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가지고 장난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

두번째는 정의용이 트럼프가 하지도 않은 말을 거짓으로 옮기 것이다. 정의용이 트럼프의 친서가지고 장난친 경우가 있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19년 6월 14일 제1차 북미정상회담 기념으로 트럼프가 북한에 보낸 서신의 사본을 한국에 통보했다. 그런데 마치 문재인과 정의용이 트럼프의 친서를 본 것 처럼 언론 플레이했다. 문재인과 정의용이 친서를 보았다고 한 것은 사본이 아니라 직접 친서를 보았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니 사본을 받아 보았다는 식으로 정리를 했다. 그 당시는 큰 문제를 삼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이번에도 두가지 중의 하나다. 확률은 50%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미국이 거짓말을 했다면, 미국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상대다. 미국이 하는 말과 행동은 앞으로 모두 확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과의 모든 회의와 대화는 반드시 노트로 작성해서 상호 서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만일 정의용이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번 트럼프 친서를 계기로 뭔가 한국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리를 한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고 그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주요 언론에서 이문제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외교안보 최고 책임자가 그런 거짓말을 했다면, 이것은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최근의 국내정세가 어려워지니 북미회담이나 남북관계로 출구를 찾아보려고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정부는 거의 마지막 막다른 골목길에 몰려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와 정의용을 어떻게 볼까? 대화를 하려면 상대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국제관계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속일 수도 있다. 또 그렇게 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것은, 그가 진정으로 남북간 긴장완화나 평화구축을 위해서라기보다 국내정치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정략적인 대북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정의용이 거짓말을 했다면 이것은 창피한 수준을 넘어선다. 정권이 거짓말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린것이다.

정의용은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밝혀라. 누구 말이 맞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