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정당성, 드루킹 사건과 관련하여

권력의 힘은 정당성에서 나온다. 왕정에서는 적통이냐 아니냐가 중요했다.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별문제 없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형식이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된 절차를 통해 권력을 장악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형식만 바르다고 해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식적 정당성을 인정받았으면 그 이후에는 내용적인 정당성도 인정받아야 한다. 왕정과 달리 민주정이 항상 불안한 이유다. 내용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모두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었다. 그점에서는 그 어떤 정권에 비교해도 당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적 정당성에서는 문제가 많았다. 이명박은 국가를 자신의 안방 금고 쯤으로 알았다. 박근혜는 자신을 대통령이 아니라 왕인 줄 알았다. 민주주의 국가를 마치 왕정하의 국가처럼 운영하려고 했던 것이다.

역사에는 형식적 정당성보다 내용적 정당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그런 예다. 내용만 잘 갖추면 비록 형식과 절차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 상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하면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머리에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도 그 난리법석을 떨면서도 형식적 정당성을 잃어 버리지 않았다. 천황이란 존재를 제일 위에 두고 막부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아마 당시 일본의 유신지사들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영남일대와 50대 이후 세대들에게 남아 있는 박정희, 전두환 향수는 절차에 비록 문제가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훌륭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박정희 덕분에 먹고 살수 있었고 전두환 덕분에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용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역사의 숙명이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의 정권에 비해 절차적 정당성과 형식적 정당성에서 매우 미흡하다. 특히 절차적 정당성의 측면에서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보다 한참 부족하다. 드루킹을 말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도 드루킹 사건과 같은 조직적 선거부정 개입은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문제가 기실 절차적 정당성의 부족에서 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법원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판결을 총선이후로 미루는 것을 보면서이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끼리끼리 문화, 진영 논리 이런 것들은, 결국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에 커다란 하자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후과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애시당초 목이 터지게 좀 똑바로 하라고 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절차적 정당성을 내용으로 보완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2년반동안 내용적인 측면에서 문재인 정권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권력형 부정과 부패의 음습한 그림자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뭔가 바뀌기를 기다렸던 것이 허망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경우에도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드루킹과 관련하여 법원이 판결을 연기한 것은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적어도 총선전에 판결을 내림으로써 국민들이 권력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결국 법원 스스로 정당성을 내다 버린 것이다. 자신의 판결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법관은 법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리고 부정한 권력의 공범일 뿐이다.

우한 폐렴, 공포심에 굴복하지 말자

우한폐렴에 대한 공포가 극단에 달하고 있다. 공포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고 또 증폭된다. 간혹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중국인 입국금지 청와대 청원이 며칠만에 5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정부차원의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그랬더니 SNS에 현정부의 친중국 성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난리다.

가만히 보면 그런분들 중의 상당수는 이런 공포심을 극대화하려는 불순한 의도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자한당이 마스크끼고 회의하는 모습도 결국은 국민불안감과 공포심을 조장해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얄팍한 수작에서 기인한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모두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파악한 잘못도 있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청와대 중심으로 대책을 이끌어 가려는 아마추어리즘적 성향도 있다. 많은 언론에서 제대로 지적했다시피 이런 문제는 질병관리본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라고 의학적 문제까지 잘 알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부터 우한폐렴은 질병관리본부장이 대통령이라는 생각으로 대처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의 대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질병관리본부장께서는 언제든지 필요하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정부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알려주십시요”라고 했다면 지지도가 무지 올라갔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한계는 절대로 남 잘되는 것 못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간단한 일도 제대로 안할 뿐이다. 이들의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중국에 마스크 200만장 지원하겠다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필요하면 우리 의료인력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옳은 일이다.

특히 북한은 중국과 완전하게 문을 걸어 잠구었다. 북한은 의료가 취약하기 때문에 아예 원천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행병이 북한을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정부는 이럴 때 북중 국경지역에 의료진을 파견해서 우한폐렴이 북한에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등의 방법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도적 차원에서 지금 당장 북한에 마스크를 대량으로 즉각 지원해야 한다.

중국에 마스크를 지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중국이 발원지인데 발원지를 제대로 봉쇄하지 않으면 우리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바이러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치를 해야 한다.

물론 국내에서의 조치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모두 막아야 한다는 비이성적인 생각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중국도 출국시킬 때 감염자를 차단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 공항에서의 조치가 느슨하다는 지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이면 이성이 마비되어 집단적으로 움직인다. 거기에 기름을 부으면 폭발을 한다. 공포에 휩싸여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벌써 중국인 포비아가 발생을 하고 있다. 심지어 조선족 동포에게까지 혐오적 말과 행동이 난무한다고 한다. 이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

자한당도 이런 공포심을 이용하려는 무책임하고 얄팍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문재인 정권을 비난해왔지만 중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리고 중국과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공포심에 굴복하지 말자. 그리고 그런 공포를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자. 어차피 벌어진 일. 최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절대로 도움이 안된다.

좌절과 공포로부터의 탈출

정치 발전이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면서 좌절한다. 그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방황하면서 만들어낸 기적을 좌절로 만든 것은 불과 2년 반도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인간을 믿는 것 부터가 잘못이었다. 촛불 혁명에 올라탄 그들은 애시당초 우리들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이었다. 도덕적인 결함투성이었고, 능력도 떨어졌다. 그저 사람들의 심금을 조금 울리는 연기자적 자질이 더 앞섰을 뿐이었다. 조금 어눌한 말을 신뢰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선한 얼굴이 선한 행동과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언젠가 형무소에 간 적이 있다. 거기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이 다 착하고 잘 생긴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정권을 보면서 그때가 떠오른다.

개혁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문재인 정권이후 제대로된 제도적 개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내부로 부터 붕괴된 원인에 대해서도 성찰하지 않았다.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아직도 공석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래도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임명은 했다. 문재인 정권은 아예 임명도 하지 않았다.

지금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리고 마음껏 해 드셨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권력형 부정부패의 썩은 냄세가 온세상을 뒤덮고 있다. 이러려고 촛불들고 광화문에 갔던가 하는 자조감으로 서글프다.

검찰개혁이 자신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 보면 그들은 갈때까지 가보겠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결사옹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은 그래도 식자 층에 속하는 것 같다.

좌절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두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소위 식자 층이 사회적 역사적 역할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기본적인 사명은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윤리적 도덕적 가치의 붕괴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둘째는 그동안 진보적 가치의 담지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호남이 한국 정치역사상 가장 반동적인 지역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식자들의 배신은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그들은 조그만 이익에 지조를 팔아왔다. 그러나 호남이 반동적인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은 뼈아프다. 지금 호남은 과거 영남의 행태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영남권력이 권력이 강고할때도 영남에서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목숨걸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의 호남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호남이 이런 퇴행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마도 공포심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무너지면 자신들도 같이 무너진다는 공포감에 휩싸이면서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고 무조건적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호남사람들은 스스로 정권의 마름으로 전락하여 문재인 정권을 옹위하기 위한 결사대가 되어 버린 것은 공포심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잘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부분의 공포는 이성을 상실할때 나타난다. 호남이 느끼는 공포는 자신들이 선택한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정권 결사옹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호남은 자신들의 운명을 문재인 정권과 같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권력은 유한하다. 그리고 권력의 잘못을 자신들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 정치라는 것은 자신들이 잘못한 선택을 인정하고 다시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공포심에 휩싸여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결사옹위하려는 지금의 정권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르며 정의로운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 지금의 정권으로 우리나라가 제대로 발전하고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는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 변화하는 주변상황을 잘 살펴보고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지금처럼 공포에 질려서 그대로 끌려가면, 호남이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를 받게될 것이다.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용기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공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찾아야 한다.

최근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동향

북한이 새로운 길을 선언한 이후 동향이 그리 심상치 않다. 북한이 어떤 행동을 할 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전면적인 악화를 예측하는 것 같다.

먼저 남한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작년 12월 말 금강산 남측시설을 2월까지 철거하라고 최후 통첩을 했다.

둘째, 금년도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이 ‘남북군사합의 파기’라고 주장했다.

셋째, 우리군의 첨단 군사무기도입을 비난하면서 우리군이 노골적인 대결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에 대한 비난의 정도를 보면 북한이 남북관계개선에 더 이상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미관계에 대한 동향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북한은 19년 12월 31 당전원회의에서 자신들이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유할 것이며, 미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실제행동을 하겠다는 것을 공표했다.

북한 발표 직후인 1월 2일 에스퍼 미국방장관은 북한에게 외교적인 대화와 함께 북한의 자제를 촉구하는 동시에 한미연합훈련 재개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북한은 1월 21일 주철용 북한대표부 참사관은 제네바 유엔군축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둘째, 미국은 각종 전략무기들을 태평양과 한반도 인근 지역으로 재배치 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시어도어 루즈벨트 항모를 제7함대 지역으로 투입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북한내부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먼저 북한은 주중 주유엔 대사를 소환했다. 1월 18일 중국을 거처 북한으로 주중, 주유엔 대사가 북한으로 들어갔다. 언론에서는 대미상황과 외환조달 문제 때문이라고 보도하고 있으나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북한의 동향중에서 중요한 것은 인적변화이다.

주러시아 대사를 하던 김형준이 북한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당국제부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군출신인 이선권이 외무상으로 임명되었다. 당 국제부장 김형준이 어떤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선권이 외무상으로 임명된 것은 앞으로 북한은 당분간 외교적인 교섭보다는 일방적인 선언과 같은 역할을 주로 하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움직임을 일련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해 보면 지금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인 듯하다.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을 비난하면서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미래가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자.

걸레를 행주로 쓰면 문제가 생긴다. 병에 걸리기 쉽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걸레를 행주로 사용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 모두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이야기 했다. 매일 똑 같은 행동을 하면서 뭔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몇십년동안 똑같은 사람 똑 같은 정당을 뽑아 놓고 뭔가 좋게 바뀌기를 기대한다.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자한당과 더민당이 걸레라고 했더니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왜 대안이 없는가? 대안은 만들면 된다. 제대로 된 사람을 뽑으면 된다. 대안이 없다고 자한당과 더민당을 찍으면 지금과 똑 같은 일이 생긴다. 오히려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는다.

자한당과 더민당을 찍지 않으면 된다. 호남에서는 대안신당을 중심으로 찍고, 찍을 정당이 마땅치 않은 지역은 좋은 사람 찍으면 된다. 진중권 말처럼 자한당과 더민당 보다는 녹색당이 훨씬 낫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보다 낫게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국민들이 합심을 해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면 된다.

국민들의 힘과 마음이 모이면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냥 자한당 싫으니까 민주당 찍고 민주당 싫으니까 자한당 찍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우리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큰 적은 우리안의 패배의식인지도 모르겠다.

걸레를 행주로 쓰지 않으려면, 먼저 걸레를 버려야 한다. 행주가 마땅치 않다고 걸레를 계속 들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간단하다. 먼저 걸레를 버려야 한다. 깨끗한 행주를 찾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깨끗한 행주도 걸레와 같이 섞어 놓으면 걸레가 된다. 그나마 쓸만한 행주와 걸레를 먼저 나누는 일부터 해야 한다. 기존의 정치권 중에서 어떤 사람이 그래도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분명한가? 그리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할 사람인가를 가려야 한다.

그런 모든 역할을 국민들이 한다. 그래서 호남과 영남 유권자들의 각성과 역할이 중요하다. 똑같은 짓을 하면서 미래가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자.

때로는 모험도 필요하다. 모험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모험에는 적당한 용기도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용기와 결단 말이다.

자한당과 더민당이 빨지 않은 걸레인 이유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아무리 빨아도 행주로 쓰기는 거시기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걸레를 대충 빨면 행주가 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그나마 걸레 빨 생각도 안하고 있지만…

자한당은 박근혜 탄핵 책임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핑계삼아 다시 지지를 요구하고 있다. 자한당이 환골탈퇴하는 정도의 변화를 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어떠한 변화와 개혁도 하지 않았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물갈이를 한다고 했지만 쉽지 않다. 자한당 기득권의 공고한 틀을 김형오라고 해서 쉽게 무너뜨리기는 어렵다. 이미 탄핵반대세력을 대충 품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 같다.

설사 사람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지금 자한당의 기본 정책으로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의 정점인 재벌문제, 부의 재분배 문제를 자한당은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자한당은 기득권을 누리면서 겨우 빠는 시늉만 하는 걸레에 불과하다.

더민당은 자한당보다 상태가 훨씬 나쁘다. 그들은 촛불개혁을 빙자한 친문기득권 세력들이다. 도덕과 윤리와 같은 기본적 가치는 일찌감치 어디서 엿을 바꾸어 먹었다. 군사독재시절에도 감히 하지 못했던 짓들을 서슴없이 한다. 파시즘적 선전선동, 마타도어 등을 아무 거리낌없이 자행한다. 기본적으로 심성들이 나쁘다.

진보와 좌파를 참아주는 것은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성과 가치, 도덕성과 같은 것인데, 지금 문재인 권력은 그 수준이 양아치 잡범수준이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이라는 사람이 검찰이 조사 받으라고 하니 전화를 꺼놓았다고 한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청와대 최강욱이란 작자는 기소를 당하니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을 수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

최소한 나쁜짓을 하더라도 가오는 잃어 버리면 안된다. 이들은 가오도 없는 동네 양아치 수준도 안된다.

품성이 저열하고 악랄한 것과 함께 국정 운영 능력도 최하수준이다. 거의 대부분의 정책에서 실패했다. 성공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기 어렵다. 경제는 더 나빠졌고 안보는 더 위험해졌다. 안보가 위험해진 것은 북한의 비핵화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과 문제가 꼬인 것은 문재인 정권이 진정한 남북화해협력보다는 대충 흉내만 내면서 국내정치적인 지지세력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북한을 우습게 알고 가지고 놀려고 하다가 뒤통수 맞은 것이다.

품성이 저열하고 능력만 없으면 그래도 대충 참아 줄 수는 있다. 권력형 부정부패의 정도는 과거 어떤 정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인 듯 하다.

박근혜 정권은 비록 국정농단으로 탄핵을 당했지만, 지금의 문재인 정권처럼 부패하지는 않았다. 박근혜 탄핵이후 처벌 받은 주변 인물들중에서 돈문제가 심각했던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최순실이 삼성에서 지원받아서 뭔가를 한적이 있어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최순실이 삼성에서 받았다는 돈은 더민당 주변의 의혹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박근혜는 부패했다기 보다는 국민들이 열받게 만들어서 탄핵 당했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알 수 없었던 시장 아줌마 같은 느낌의 최순실이 국가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박근혜 탁핵의 제1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 이후 처벌받은 자들 중에서 부정과 부패에 연루된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불과 2년반 밖에 안되었지만 어마어마한 부정부패 의혹 휩싸여 있다. 조국 정경심의 사모펀드는 애교에 불과하다. 권력 핵심부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신라젠 사건, 국민들의 재산 수조가 날라간 라임 문제, 우리들 은행 특혜 대출문제, 김정숙 여사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청주고속버스터미널 문제 등등이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대형 의혹이 있었던 정권은 일찌기 우리 헌정사에 없었던 것 같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나랴? 라는 속담이 있다. 상당수가 정권의 심각한 독직과 연계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문재인과 그 주변의 최강욱, 이광철, 추미애 등등이 기를 쓰고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려고 하는 이유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정황이다.

자한당이 빠는 시늉이라도 하는 걸레라면, 더민당은 빨려고 생각도 하지 않는 걸레다. 더민당의 오만은 최소한 빨아서 성의도 보이지 않는 오만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빠는 시늉하는 걸레나 빨지도 않은 걸레나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국민들은 어떻게 하나? 걸레는 버리고 새로운 행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파병결정을 걱정하면서 그래도 해야 한다면…

1월 21일 정부와 군은 아덴만에서 활동하던 청해부대 활동영역을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페르시아만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단독활동 조건이지만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정부가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충분한 검토와 의견교환 없이 성급하게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못내 아쉽다. 

우리에게 필요한 원유의 70%이상이 페르시아만을 통해 수입된다. 그만큼 페르시아 만에서의 안전한 항행은 중요하다. 문제는 페르시아 만에서의 안전한 항행이 군사적인 방법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파병결정을 ‘지정학적 자살’이라고 까지 평가하기도 하는 것은 중동정세가 그리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의 파병 결정은 내려졌다. 지금와서 잘잘못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보다는 호르무즈 파병결정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옥죄지 않도록 늦게라도 대비해야 한다.   

대비책을 제시하기에 앞서 먼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안전한 항행이 위협받는 것은 이란 때문이 아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미국이 2015년 5월 합의된 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을 2019년 5월에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지역 정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이 합의파기로 인한 상황 악화이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의 안전한 항행은 미국이 생각하는 것 처럼 군사적인 압박으로 보장되기 어렵다. 오히려 군사적인 압박은 이란의 반발을 초래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미국이 항모전단을 보내고 우리가 병력을 파병한다고 해서 선박의 안전한 항행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면 될수록 선박의 자유항행원칙은 침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페르시아만의 안전한 항행은 전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는 이란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있다할 수 있다. 지리전략적인 특성상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에 의해서 완전하게 통제되고 있다. 아무리 강력한 미국의 군사력이라고 할지라도 이란이 누리고 있는 지리적인 이점을 극복하기 어렵다. 이란은 미국과의 긴장관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자유항행원칙에 따라 선박의 통행을 허용했다. 페르시아 만에 군사적인 긴장이 고조되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항행 원칙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해협과 페르시아만에 일정한 수준 이상의 군사력이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불안정은 고조되고 선박의 자유항행은 위협을 받게 된다. 지리전략적으로 이란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안전한 항행은 군사적인 방법이 아니라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 군이 호르무즈 지역에 파병되더라도 절대 이란과 군사적인 충돌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이 지역에 독자 파병을 하기로 한 일본과 프랑스 등의 국가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청해부대는 미국이 주도하는 IMSC(국제해양안보구상·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여하지 않고 단독활동을 한다고 한다. 한편, 우리군 장교들이 IMSC와의 협조를 위해 파견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부와 군이 명심해야 할 것은 IMSC와의 협조가 사실상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군은 청해부대에 대한 지휘체계와 작전활동을 분명하게 정리해야한다. 무엇보다 지휘체계를 분명하게 수립해야 한다. IMSC에 파견되는 장교는 합참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IMSC와 청해부대가 직접 연락을 주고 받아서는 안된다. 청해부대는 작전활동의 경우 합참의 통제를 직접 받아야 한다. 이와함께 합참은 청해부대의 교전규칙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자위권적 조치의 범위도 엄격하게 설정해서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라면 합참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 

청해부대의 활동범위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아덴만에서 주로 활동하되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 만 진입은 우리선박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경우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합참의 직접 지휘를 받도록 해야 한다. IMSC가 직접 청해부대와 연결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정부와 군은 청해부대의 활동지역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만일 활동지역의 확대가 전투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지역에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국회의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란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이란과 군사적인 충돌이 발생하면 수십년 동안 열사의 땅에서 고생해온 그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격언을 되새겨야 한다. 

 IMSC에 연락장교를 파견하는 것과 동시에 이란과  우발적 군사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란 대사관에 임시무관을 파견해서 이란군과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호르무즈 지역 상황의 미묘한 상황에 비추어 우리 정부와 군의 대비는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듯하다. 정부와 군은  청해부대가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인 대비를 자랑하기 보다, 우리가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에 말려들지 않도록 전략적 접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한미동맹은 가장 중요하다. 동북아 안보상황의 특성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우리 안보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미국은 사실상 유일한 동맹국이지만, 미국은 전세계 수많은 국가와 우리와 같은 동맹을 맺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을 벗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냉철한 손익계산이 필요하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력이 강해졌지만 우리는 아직 그에 걸맞는 전략적 사고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 안보당국자들이 좀 더 깊이생각했으면 좋겠다.  

현상황과 지식인 혹은 지식사기꾼

여기서 현상황이라 함은 국민들이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서로 갈등하면서 정작 우리앞에 다가오는 쓰나미같은 위기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대책도 없는 것을 의미한다.

안보문제에 관한 글을 쓰고자 했다. 지소미아 문제와 방위비 문제로 글을 쓴 것 이외에는 거의 국내정치 문제에 힘을 소비한 것 같다. 각자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기여하면 자연스럽게 사회와 국가도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들어 그런 생각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국내의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데 대외정책이니 안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각과 가치관에 따라 우리 사회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 판단과 균형적 사고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방향을 잡아가는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역할은 지식인들이 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은 거의없다.

지식인들은 서로 진영의 첨단에 스스로 즐겨서기를 마지않으면서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이성과 합리적 판단은 진리를 찾고 추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가 속한 진영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유시민이 스스로 ‘어용지식인’임을 선포했을 때,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살다보면 남으로부터 ‘어용’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어용지식인’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상식밖이다.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철학적 통찰을 도외시한 지식인은 더 이상 지식인이아니다.

유독 최근 들어 그런 어용지식인과 문인들이 판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보다 이익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런 지식 장사꾼이 널리고 널린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그러면서도 자신이 부끄러운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나약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나약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펜이 칼보다 강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 그 엄격함은 자기절제에서 비롯된다. 자기 절제는 절대로 권력자나 있는자의 편에서서 밥을 빌어 먹고 고대광실에서 편하게 살지 않겠다는 결의에서 비롯된다. 스스로 어용이라고 밝히는 자들은 대부분 그런 철학적 통찰의 과정을 생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지조를 굽히지 않던 지식인과 선각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보면서 자라왔다. 우리 자식세대가 진정 불행한 것은 그들은 우리가 보고 마음에 품어왔던 존경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지금의 지식인들은 빵만으로 살 수 없으니 고기와 술을 먹겠다고 달라드는 탐욕스런 권력자들과 진배없다. 어용지식인들이 창피한지 모르고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은 먹을 것 때문에 체면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정치현상인지는 모르겠으니 각료와 정치인에 유독 대학교수들이 많이 등용되었다. 도처에 먹을 것이 많다보니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린 듯하다.

지식인은 권력의 잘못을 질타할 때 비로소 그 시대적 역사적 사명에 근접할 수 있다. 그 권력이 자신이 지지하든 하지 않든 상관이 없다. 잘못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눈감아 주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잘못은 끝까지 뒤집는다면 옳은 것이 아니다. 내가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이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고 질타할 수 있어야 지식인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부정부패를 비판하면 마치 정신줄 놓은 사람처럼 이성을 상실하는 지식분자들을 많이 보았다. 왜 조국만 가지고 그러냐고 말이다. 원래 권력자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같은 일도 무게가 다르다. 청와대 권력자의 범죄는 훨씬 더 무겁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가 공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인들도 현실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인의 현실참여는 문제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그저 한자리하기 위한 현실참여는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위한 타락이다. 앙가주망이라고 떠드는 것은 겉멋든 변명에 불과하다.

자신이 생각하고 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식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죽은 생명이다. 질타할 것을 질타하지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권력의 잘못에는 억지로 눈을 감는다면, 그런 지식인은 지식매춘부일 뿐이다.

이번 총선에 또 엉덩이가 들썩 들썩하는 지식인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중요해진 것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이다. 많이 아는 사람보다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여의도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많이 배운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똑바로 산 사람들이다.

문재인과 추미애가 검찰을 도리쳐 놓으니까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임종석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정계복귀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뭔지 몰라도 임종석은 자신이 당분간 사법처리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국민앞에서 장난을 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보고 넘어간다면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미래가 없다. 여당성향이건 야당성향이건 상관없이 언행의 일치라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무시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기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야 하나? 국민이 바보인줄 아나? 왜 지식인들은 그런 오만에 눈을 감고 있나?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진영의 이익이 아니다. 진영논리보다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수립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진영논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도덕과 윤리적 기준은 최소한 충족해야 한다. 지식인은 사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기준과 원칙을 고민해야 하고 그런 기준이 넘었을 때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주변 상황 돌아가는 것보고 숫가락 하나 더 얹으려고 하는 지식인은 저자거리 사기꾼보다 못한 존재다.

요즘 같아서는 함석헌 선생과 김준엽선생 그리고 조지훈 선생이 그립다. 그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더민당의 적폐가 자한당 보다 더 심각하다.

중요한 것은 많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과 생명이 중요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정의가, 어떤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의 안정과 번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돈과 출세는 논외로 하자.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것은 의사고, 사회의 정의를 담당하는 것이 사법기구들이며, 국가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군인들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의사들 중에서 평생 봉사를 하고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원이 되어 힘든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도 있다. 법관으로 돈과 명예를 짊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원래 군인, 장교는 귀족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국가가 자기들 것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켰다. 옥스포드나 켐브릿지 대학의 벽면에 제1,2차 대전에서 전사한 학생들 졸업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잔뜩 붙여 놓았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은 영국이 자기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이후 국가는 시민의 것, 정확하게 말하면 부르주아지의 것이되었다. 이후 군복무는 시민적 권리이자 의무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군복무는 뭔가 부족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군대가지 않는 사람은 신의 아들이라는 말도 있었다. 병역기피가 중대한 범죄인 것은 자기 것을 스스로 지키지 않고 남에게 기생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들은 보수 정당에서 심각하다.

자한당은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군복무를 고의적으로 회피했다고 의심되는 황교안을 대표로 뽑았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거기에 있지 말아야 할 사람이 거기에 있는 것이 자한당의 비극이다.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자한당에서 군대를 제대로 갔다 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따져봐라.

그래서 자한당은 망해야 한다. 민주당만 아니면 다 찍어도 된다는 진중권은 그래서 틀렸다. 자한당도 찍으면 안된다.

사회적 삶은 정의로 구현된다. 정의를 지키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위해서는 분명한 원칙이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사회적 정의를 실제 집행하는 기관과 사람들은 경찰관, 검사, 판사 들이다.

분배적 정의까지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다. 법무부장관 추미애가 삼성출신 변호사를 검찰국장을 시키려고 한 것은 분명한 범죄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정치권력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은 사법기관 제1의 임무이다. 민생문제로 정치권력의 부정부패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검찰의 사건처리가 늦어서 일반국민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핑계로 권력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기능을 제거하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범죄적 행동이다.

우리나라에는 사법방해라는 명목의 범죄가 없다고 한다. 그냥 직권남용이라고 한다. 이번 기회에 사법방해라는 범죄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권들어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하는 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검찰에 대한 부당한 인사권 행사다. 앞으로 검찰 인사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 검찰인사위워회를 만들어서 담당해야 한다.

이제까지 검찰이 질타를 받은 것은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검찰개혁은 검찰이 정치권력과 결탁하지 않도록 하고 권한을 분산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그런 본질적인 문제의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지금 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검찰의 수사방해이며 범죄이다.

추미애의 검찰 수사방해는 광범위하게 자행되고있다. 문재인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이 벌인 권력형 부정부패를 은폐하고, 삼성과 같은 재벌기업의 범죄를 은폐 조장하고 있다. 문재인과 추미애를 포함한 현정권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삼성과 부적절한 관계임을 추론 가능케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사모펀드와 같이 증권에 관련된 수사를 하는 기능을 아예 공중분해 시켜버렸다.

게다가 일부 권력의 압잡이 검사들은 주요보직에 임명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의 기소도 방해하고 있다.

조국의 사모펀드 이외에도 현정권 실세의 상당수가 사모펀드와 같은 형태로 주가를 조작하여 부정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이미 법원은 문재인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 것 같다. 검찰이 조국과 유재수에 요구한 전화기 및 계좌추적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이는 합법을 가장한 사법방해이다. 당연히 판사의 직권남용이며 사법처리의 대상이다. 명백하게 법관의 양심이 적용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다. 김경수의 드루킹에 관한 판결을 늦추어 버렸다. 법원은 김경수가 대선과 경남도지사선거에 드루킹을 이용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납득할 수 없이 판결을 총선뒤로 늦추었다.

김경수를 재판한 판사는 판결을 늦춤으로써 명백하게 선거에 개입한 것이다.

자한당이 안보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면서 안보를 무시하고 있듯이, 더민당은 공정과 정의를 가치로 내세우면서 가장 앞장서서 공정과 정의를 붕괴시키고 있다.

자한당과 더민당이 모두 적폐이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더민당의 적페는 더 심각하다.

이번에 장난을 친 추미애와 그 밑의 몇명 검사장들 그리고 영장발급을 거부했던 일단의 판사들과 고의로 판결을 지연한 판사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 눈앞에 뻔히 보이는 짓을 저지를까?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잘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식과 지혜는 거리가 먼모양이다. 그들은 기본적인 인격이 부족한 것 같다.

인격을 시험보는 방법은 없나?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박형철은 왜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을까?

박형철 전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유재수 감찰 무마건으로 백원우와 함께 공범으로 처리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런데 박형철은 단순한 공범이 아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적인 비리인 유재수 감찰무마건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의 핵심 증인이다.

그는 검찰에서 조국과 백원우가 유재수의 감찰을 무마시켰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자신이 김기현 전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경찰의 영장을 발부하라고 울산검찰에 전화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의 핵심적 인물을 임종석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박형철의 검찰 진술은 문재인 정권의 권력형 부패와 비리를 밝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왜 박형철 전반부패비서관이 이런 증언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박형철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게다가 참여정부와 인연도 있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볼때 박형철 비서관이 스스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행동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유재수 건도 조국이 이야기 한 것처럼 조국과 백원우 그리고 박형철 3인이 감찰을 계속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별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조국과 백원우 등은 박형철이 검찰에서 이런 진술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박형철이 이미 유재수 감찰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관련하여 자신들과 공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것이다.

그가 아무말 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검찰이라도 청와대가 직접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밝혀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법원도 검찰의 웬만한 수색영장은 모두 기각한 바 있다. 법원도 이번 일련의 사건과 관련하여 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형철은 자신이 처벌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검찰에서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진술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인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사회적인 사망을 각오하고 진술을 했다. 박형철이 전화했다는 검사는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퇴직한 그 검사도 자신이 전화를 받았다고 할 경우에 구속을 면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도 되면 박형철이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가만 있으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한자리도 꿰찰 수 있었다.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도 처벌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검찰과 법원에서 박형철에 일정정도 정상참작을 한다 하더라도 그가 받아야 할 타격은 심대하다. 그가 당하게되는 사회적 불이익을 고려해 보면, 박형철이 왜 스스로 사회적 죽음을 무릅쓰고 진술을 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말하는 검찰조직에 충성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윤석렬과 개인적인 인연 때문일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검찰조직 보호와 윤석렬 개인과의 인연과 같은 사적 이기적인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피해볼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유추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박형철이 스스로 죽을 각오를 하고 올바른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것을 올바르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심성의 소유자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이런 행동은 올바른 삶을 살겠다는 신념과 기질의 소유자만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혼탁한 세상에, 조국같은 위선자, 조국같은 사기꾼, 조국같은 야비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판치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대한민국에, 박형철은 유일한 의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사람 하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전도양양할 수 있었던 박형철이 스스로 사회적 사망선고를 자초한 이유를 다른 무슨 이유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의 행동은 정의를 지키기 위한 검사의 양심에서 출발한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 조국과 백원우를 기소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재인 정권의 친위 검찰들에 실망한다.

늘상 그렇듯이 실망과 희망은 서로 교차한다. 희망의 힘이 세상을 이끌게 하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