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말이 불편한 이유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 불편을 느꼈다. 어제 선배 한분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그 불편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불편이란 정치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품격에 대한 실망을 의미한다.

언제부턴가 막말이 정치권을 휩쓸었다. 서슬이 퍼런 군부통치시기에도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말에는 격조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라는 말의 격조는 예술적인 수준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비난을 할때도 빈정거리지 않았다. 최근들어서는 비꼬고 빈정거리고 왜곡하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과거 정치인들의 격조라는 것은 부르주아 계층의 유산이었다. 역사적 진보를 설명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혁명과 개량이다. 혁명가 레닌도 진보를 과거와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과거보다 나은 현실을 원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의 계승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러시아에 볼쇼이 발레단과 같은 부르주아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도록 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으로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부르주아지의 세계가 되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들은 봉건귀족들의 신사도와 같은 것들은 자신들에게 맞게 발전시켰다. 그래서 자유주의 시대의 정신적 가치도 같이 창출했다. 말과 행동을 격조있게 만든 것이다.

계급적인 특성을 지니는 말과 행동의 격조는 상대적인 계급과의 긴장이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 점점 세계는 이상해졌다. 트럼프와 같은 상스러운 말이 일상이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오만이 극에 달하게 되었으리라.

최근 진보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서 비열함과 비아냥 그리고 비꼼을 듣고 보면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 궁금했다. 우리의 진보는 최소한 보수의 품격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우리의 보수자체가 그정도면 당연히 지녀야할 품격과 격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배울것이 없으니 막말이 난무하게 된 것이리라.

최근의 상황을 보면 진보라는 더민당이나 보수라는 자한당이나 격조와 품격의 측면에서는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당연히 격조를 갖추어야 하는 자한당이 마치 양아치 집단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더 분노를 느낀다. 둘다 비슷하지만 적어도 보수는 조폭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민당이나 자한당이나 양아치 경연대회를 하는 것 같다.

지인의 어머니가 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다. “내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남을 자극하고 욕을 하면, 내가 문제로 삼는 것은 어디로 사라지고 내 말이 문제가 된다”고 하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나경원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 싸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똑 같은 이유로 조국을 혐오하는 이유도 그의 말과 행동이 싸가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둘다 똑같이 그렇게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자웅동체같다.

어제 추미애가 신임검사들에게 ‘상명하복을 거부하라’고 선동했다. 아무리 보아도 법무장관이 신임검사들에게 할 말은 아닌 듯 하다. 신임검사들에게 상명하복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떻게 법무장관의 지시를 따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윤석렬은 신임검사에게 ‘헌법정신을 생각하라’고 훈시했다. 윤석렬이 정치질을 하네 마네 하기전에 추미애의 말과 윤석렬의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추미애도 말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같은 취지라도 훨씬 고급스럽게 말을 할 수 있었을 것같다.

자극적인 말들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그래서 김어준, 김용민, 유시민, 공지영, 안도현 류의 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이 내 뱉은 말속에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들이 숨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지 모르는채 말이다.

진중권에 열광하는 것은 그동안 비아냥 거리고 비꼬는 것이 주무기인 작자들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진중권의 비아냥에 그대로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당하시는 심사가 어떠신지.

대중들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시원한 사이다라고 열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이다는 많이 먹으면 당뇨병에 직방이다. 어쩌다 한번이지 일상이 되면 곤란하다. 결국 사람의 품격이 말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인격을 가졌는가에 따라 말이 따라 나온다.

언제까지 계속 3류 소설과 같은 말만 하도 듣고 살 것인가? 뭔가 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삼년 동안을 따라서 배우기 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 듯 하다.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과거에 격조있던 사람들을 접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저나 불행한 세대다.

정치인들도 점잖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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