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위기 그리고 정치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오랜 역사의 산물이다. 국가라는 틀안에서 사람들은 살아왔다. 국가는 인민을 보호했다. 그리하여 어떤 국가에서 태어나는가가 삶의 행복 상당부분을 결정하기도 했다. 국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또 해오고 있다.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국가다.

최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국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의 특성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싸운다. 발생학적 특성상 서로 싸우면서 만들어진 국가가 서로 협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한 국가간의 협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몇푼 더 벌어보겠다는 얄팍한 이기심앞에 무릎을 꿇어 버리고 말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들이 하는 정책은 국제적인 협조가 아니라 개별 국가들의 단독적인 행동이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보면 이런 종류의 위협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국가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병균은 국경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국만 잘한다고 해서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중국을 도와준다는 것은 옳다. 지금 중국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전선이다. 모든 역량은 최선선에 집중해야 이길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후방이다. 전선이 무너지면 후방이 위험해진다.

정부는 초반에 중국을 지원하다고 하더니 여론이 부정적이되니까 발을 빼는 것 같다. 전세계가 중국이 변종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이기로록 지원하는 것이 옳다. 이기회를 틈타서 반사이익을 보려고 하는 얄팍한 수작을 부리는 것은 곤란하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부르주아지들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한 기구이다. 그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국가의 성격이 아직 19세기적 상황에 남아 있는데, 그런 국가들이 초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국가의 성격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발전을 하면 멸종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발전하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치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장이 아니라 분배를 통해 더 이상 경제개발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먹고 사는 것이 조선시대 임금보다 더 나은데 뭘 또 더 바란단 말인가?

결국 모든 것은 정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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