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의 공천, 국가안보전략의 실책이다.

자한당이 탈북한 태영호 전주영북한공사를 이번 총선에 지역구에 출마시킨다 한다. 한마디로 이해하기 어렵다. 보수정당의 정체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전략 측면에서 태영호의 공천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태영호는 그 성격상 망명객과 비슷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정치적 존재의미는 망명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망명객을 자국의 국회의원으로 공천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상대방과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태영호 같은 인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되는 이유다. 자한당이 태영호를 공천하는 것은 나중에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쪽에서는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만일 자한당이 권력을 잡으면 그 기간 내내 남북은 군사적인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북한은 태영호가 공천이 되는 순간부터 그를 그냥 살려두기 어려울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그를 해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정권과 권력의 속성은 다르지 않다. 박정희 정권 당시 전 중정부장이던 김형욱이 박정희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파다하게 돌아다녔다. 북한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태영호 같은 인물이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일정한 선을 넘으면 태영호 자신도 위험하다. 그런 것을 모를리 없는 태영호가 덥석 자한당의 제안을 받아 들인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태영호는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것을 모를리 없는 자한당이 태영호를 공천하는 것은 정치판을 대화와 타협이 아닌 갈등과 분열로 몰고 가겠다는 의미한다. 황교안이 5.18을 ‘그 사태’라고 한 것과 자한당의 이번 선거전략과 일맥상통한다. 마치 더민당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 하다. 욕하면서 닮는다고 하더니 그 꼴이다. 망명객은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그의 수명만 당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의 신예 부티지지는 어제 자신의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단계적 접근을 하겠다는 것이다. 부티지지의 북핵문제 해결방향은 민주당 주류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바이든이 패배하게 된다면,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고수하는 민주당 주류의 입장도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부티지지가 되던 샌더스가 되던, 다음의 미국 민주당은 지금과 같은 강경한 대북정책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많다.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북미대화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태영호가 자한당 국회의원이 되어 있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설사 자한당이 권력을 잡는다고 해도 북미로부터 소외당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북미관계 긴장완화는 절대로 남북간 긴장완화로 이어질 수 없다.

태영호 공천이 뉴스거리를 만들어 자한당의 총선전략에 유리할 지는 모른다. 그러나 국가 안보전략 차원에서는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다. 자한당이 아무리 북한 강압을 기본정책으로 하고 있더라도 이것은 선을 넘었다. 일정한 선을 넘어가면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태영호 공천이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자한당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안타깝다.

자한당과 새보수의 통합, 친문의 몰락 그리고 호남의 역할

자한당과 새보수가 통합을 발표했다. 통합의 걸림돌이었던 유승민이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자한당과 새보수의 통합은 금번 총선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시간의 문제지만 안철수 당도 곧이어서 자한당과 통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가 제3지대 운운하지만 정치 철학이나 소신이 분명하지 않은 그에게 그런 정치공간이 있을 수 없다. 결국 그는 세를 따라 자한당에 합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국내 정세는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하나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붕괴내지 몰락은 그들이 저지른 부정과 부패의 결과라는 점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할데도 없다.

문재인 정권의 선거개입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박근혜는 당내 공천과정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2년형을 받았다. 문재인은 선거과정에 개입했다. 죄질이 훨씬 중하다. 최소한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실형이 불가피하다. 최근들어 보수언론과 자한당 심재철도 문재인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보면 당연히 탄핵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선거개입 뿐만 아니라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신라젠, 라임 문제, 가습기 문제, 삼성 바이오로직스 문제 등등 권력의 핵심과 관련된 검찰수사는 불가피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들이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더민당도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실패가 불가피하다. 더민당은 야당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정신승리 현상이다. 주변에 더민당 찍겠다는 사람 거의 없어졌다. 문재인과 친문세력의 몰락과 함께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세력들도 같이 붕괴할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문재인과 친문세력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 될 것이다.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이정도면 미리 이탈할 것이다. 문재인 및 친문세력과 같이 하는 세력들은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결과는 정치적 몰락이다.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폐족이되는 것이다.

문제는 더민당이 망하고 나서 들어설 자한당이 과연 더민당 보다 나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럴 가능성은 단연코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들은 탄핵이후 어떠한 내적 개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반민주적이며, 친재벌적이다. 지금 그들의 패러다임으로는 한국이 직면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이 와중에 유승민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향후 자한당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유승민의 불출마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자한당이 새보수당에게 강요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한당이 통합되더라도 최소한의 개량적 정치마처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패권경쟁의 와중에서 대외정책방향도 새로 제시할 수 없고, 경제적 왜곡도 해결하기 어렵다. 구조적인 모순은 그대로 덮어 둔 채로 화장만한 반동정치의 재판이 될 것이다.

물론 부정부패의 고리는 끊기 어렵다. 어차피 자한당이야 말로 부정부패의 온상 아니었던가? 이제는 더민당이 해먹었으니 자한당은 마음먹고 해먹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렬과 같은 인간은 해방이후 딱 한번 뿐이었다. 다음에 또 검찰에서 윤석렬과 같은 사람이 계속 이어서 나올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은 시대의 돌연변이다.

제3지대가 필요한 것은 그런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그런데 안철수의 제3지대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에게 제3지대 공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것은 자한당과 통합하여 중도세력을 몰고 가면서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안철수의 신당은 제3지대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반동적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자한당과 통합하지 않는다면 존재감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혹자는 정의당을 떠올릴 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정의당은 지소미아사태, 조국 사태와 그 이후 이어진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태도를 볼때 더민당의 대안이나 제3지대로서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사실 정의당은 더민당의 기생정당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이번 정국에서 확인되었다.

유일하게 가능한 곳은 호남이다. 지금 호남은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 이런 상황을 극복하거나 아니면 더민당과 같이 폐족으로 사라질 가능성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이렇게 단기간에 부정부패가 창궐한 경우는 없었다. 만일 호남이 더민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는다면 호남도 폐족으로 책임을 지고 대한민국 정치에서 더 이상 진보의 근거지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호남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는 이번 총선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호남이 더민당의 숙주노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호남이 더민당의 정신적 포로상태를 극복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

마침 호남에서 대안신당을 중심으로 미미한 재기의 움직임이 있다. 성공하기 매우 어려운 움직임으로 보인다. 구시대의 정치인들이 겹겹히 둘러싸 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 평화당 그리고 대안신당의 일부정치인들이 통합하는데 국고 보조금 운운하는 모양이다. 웃기는 일이다. 돈이 필요하면 정치하지 말고 시장가서 장사를 할 일이다. 정치에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과 이상 그리고 비전이다. 소위 호남지역 통합에서 돈문제가 나온 것만으로도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남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해왔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호남이 한국정치가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단 한명이 남더라도 개혁의 정신을 상실하면 안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씨앗이 남아 있으면 언젠가 싹이 튼다.

호남은 두가지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의 분명한 결별, 그리고 자한당의 발호를 막기 위한 개혁적 제3지대의 창출이 그것이다. 만일 호남이 자체적인 개혁적 정치세력의 창출에 실패하면 우리는 여당 야당이 돌아가면서 해먹는 남미같은 상황이 될 확률이 많다.

고참 정치인 3인 3색

홍준표, 김무성, 박지원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한다. ‘고참’이란 말을 두고 잠시 고민 했다. 원래는 ‘원로’라고 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존경스런 의미를 담고 있는 ‘원로’라고 하기는 찔렸다. 존경의 의미가 빠진 그냥 오래되었다는 의미가 많은 고참이란 말을 썼다. 그러나 ‘고참’이라는 말에도 나름대로 긍정적 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고참’이란 경험이 풍부하다는 뜻과 한편으로는 ‘고약하다’는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는 것 같다. ‘원로’라는 말도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와 함께 그의 과거 행적이 존경스럽다는 의미가 결합되어 있다. 그런면에서 고참과 원로의 공통점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그것의 바람직 여부는 차치하고)이다. 차이점은 고참은 고약하고 원로는 존경스럽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다. 원래 모두가 만족하는 객관적인 평가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동의하는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제대로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사람이 진보냐 보수냐하는 것은 평가의 기준이 아니다. 세상은 진보와 보수의 두바퀴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그사람이 진보냐 보수냐로 훌륭하다 아니다를 평가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만일 그사람은 보수니까 나쁘고 진보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면, 우리사회는 독재가 발흥하기 좋은 여건에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진영간 갈등이 극심하다는 점에서 파시즘과 독재의 여지가 많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보수도 없고 제대로된 진보도 없는 얼치기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렇게 싸우는 것은 사상과 문화의 변방이 지니는 한계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우리가 살아오면서 체득했던 도덕과 윤리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조국을 처음부터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유는 그가 도덕과 윤리의식을 결여했기 때문이다.

홍준표의 행동을 보면서 실망했다. 자한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서 세력을 확대하고 다음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자한당이 없어져야 할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의 개인적 생각과는 별개로 그 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당의 목표에 헌신을 해야 할 것이다.

당에서 홍준표를 위시한 ‘고참’ 정치인들에게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요구했다. 홍준표는 수도권 출마를 거부하고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출마하겠다고 한다. 당에서 공천을 주지 않으면 무소속으로라도 나가겠단다. 대통령 후보까지 했던 사람이 의원한번 더 하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국회의원이 대단한 권력과 특권을 누리는 것 같다. 그래서 국회의원 특권을 줄이자는 제의에 적극 찬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지리를 소위 보수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내보낸 부끄러운 국민이 되고 말았다. 그는 한때 모래시계 검사라고 해서 칭송을 받았다. 요즘 느끼는 것은 인간은 변한다는 것이다. 검사시절의 홍준표와 지금의 홍준표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겉은 비슷할지 모르나 속은 완전하게 바뀌어 버렸다. 자한당은 당연히 공천을 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무성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김무성을 별로 좋아 하지 않았다. 능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으면서 패거리 정치를 일삼는 사람같았다. 부친의 친일 경력과 함께 그의 왜곡된 현실문제인식은 결코 좋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말과 행동에서 오랜만에 진짜 정치인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말로 그렇게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김무성 정도되는 정치인이 말을 뒤집고 자신의 지역구에 다시 출마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최근 자한당이 김무성에게 호남지역에 공천을 줄테니 나가서 싸우라는 제의를 했다. 누가 보던지 김무성을 호남지역의 희생번트로 쓰겠다는 것이다. 김무성은 통이 컸다. 그는 당의 요구를 수용해서 자신이 나가서 불쏘시게가 되겠다고 했다. 그의 이런 결단을 보고 김영삼 밑에서 정치를 배운 사람이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또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국처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잘못살아가는 위선자와는 격이 다르다. 오히려 가치관보다 그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김무성이 호남에 출마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도 희망을 가졌다. 호남사람들도 그렇게 오는 김무성을 아마 야박하게 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보는 눈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박지원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인들의 나쁜 점을 모두 다 지니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말은 무지하게 잘하고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한다. 정치인이 가져야할 자질 중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다. 그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야합을 서슴치 않는 사람이다. 그의 정치적 행로는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친문이 주도하는 민주당이 싫어서 탈당을 했다. 당시 친문세력들은 민주당내 호남세력을 제거하려고 했고 그에 반발하여 호남 정치인들이 대거 탈당했다. 그 결과 국민의당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박지원은 그 이후 호시탐탐 친문세력의 눈에 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마음에 들어 총리라도 한번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의 본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민주당인지 대안신당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차라리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민주당으로 다시 가면 된다.

나이가 들면 후손들에게 뭔가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이 팔순에 하는 행동은 가장 전형적인 정치꾼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호남 정치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그런 사람부터 정리를 해야 한다.

그는 소속이 불분명한 정치인이다. 정치에서 소속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신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와 가치가 아니라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치판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하는 유형 아닌가 한다.

위의 세사람 이외에도 한국정치를 후퇴시키는 사람은 많다. 예를 들어 손학규와 정동영이 그런 사람이다. 그 두사람은 모두 당대표로 있으면서 당의 개혁과 발전을 저해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정치를 하려고 하면 나보다는 국가와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그 두사람은 국가와 가치보다는 내가 누리는 복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나름 좋은 정치인들 없지 않다. 그런 보석 같은 정치인들을 찾아 내는 것이 국민들의 역할이다. 고양이를 골라놓고 호랑이 같은 행동을 하기 바라면 안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중국혐오증 그리고 공론의 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중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고 있다. 어느 사회건 외국인과 외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중국에 대한 혐오증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다 알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중국 굴종이나 예종(심한 말이다)으로 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초기대처에 대한 비판과 중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비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중국 정부의 초기대응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의 초기 대응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최근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 책임론은 시진핑 개인을 넘어 중국의 국가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 살펴볼 것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간단한 기준을 선호한다. 아마도 구석기시대에 형성되었다는 우리 내부에 탑재된 소프트웨어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적과 아군, 흑과 백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원시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다르다.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조금 복잡해질 필요가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정부와 보건 당국의 대처가 철저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특히 비판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정부와 보건당국의 대처는 솔직히 말해 썩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선 행정력들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정보가 통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벌써 담당자들은 지쳐있는 것 같다. 현정부 제일의 우선순위는 방역일텐데, 대통령은 공수처 운운했다. 정치는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부분을 비난한다면 옳다.

그러나 정부가 중국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출입제한을 하지 않은다고 해서 중국에 예종적이라는 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중국인들의 출입에 관한 문제로 정치인들이 나서는 것 자체도 옳지 않다. 그동안 자한당은 현정부를 중국에 굴종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한당의 이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

의사협회가 제안했다는 중국인들의 입국금지 조치도 매우 정치적으로 읽혀진다. 의사협회장이라는 사람이 수구보수적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안이 과연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정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간혹 뉴스시간에 의사들이 찔끔 찔끔 하는 이야기로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정부가 시진핑 6월 방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정부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이유가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시진핑 6월 방한을 위한 것 때문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시진핑 방한때문에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면, 이것은 대통령이 탄핵받아야 할 사안이다.

WHO의 조치에 대한 비판도 언론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중국에 불리한 발표는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중국정부의 자료만 가지고 입장발표를 한다는 말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WHO는 심각한 신뢰성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신뢰의 붕괴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자초한 측면도 많다. 감염병은 방역하고 치료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모두 문제가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 협오증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중국에 대한 혐오증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순수 의료적인 관점인지 아니면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보다도 의료적 관점보다 정치외교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담론을 전개하는 시기과 장소가 틀렸다. 그런 문제는 순수하게 대외전략적 측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가가 왜곡된다. 왜곡된 평가와 기준은 결국 국민들의 손해로 되돌아 온다.

국민들도 속지 않고 살려면 적지 아니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걱정되는 것은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허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공론의 장이다. KBS는 그런 것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왜 그런 공론의 장이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공론의 장을 막아 놓은 것인가? 왜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저희들끼리 저러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렇듯이 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가라 앉을 것이다. 백신도 나오고 치료법도 나올 것이다. 마치 세상 끝인 것처럼 하지않아도 된다. 지금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뒤에 숨어 있는 사악한 음모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뱉어 놓은 말들에 책임을 지지 않으니 아무말이나 다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북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 협력 절실하다.

북한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와의 관계를 모두 차단했다. 육로는 물론이고 선박 항공기의 출입도 차단했다. 북한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전염이 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전염되면 오랜기간 동안의 경제재제로 인해 치료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정부는 지금 당장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전면적인 지원을 북한에 제안해야 한다. 북한이 외부와의 접촉을 전면적으로 차단했다고 하나 바이러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이 곤궁해지면 북한 주민들이 중국과 밀무역에 나서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염의 위험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북한은 지역과 지역의 이동도 차단했다고 한다. 호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배고픔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축한 식량과 생필품이 바닥나면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동할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북한 주민들은 과거처럼 앉아서 굶는 것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북한이 차단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북한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청정지역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북한으로 침입하면 대규모 감염사태를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의료수준으로 볼 때 한번 감염되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확산될 수도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어느 정도의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외부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정부는 북한의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제의해야 한다. 북한도 우리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하면 정치적 인고려를 하지 말고 바로 수용해야 한다. 남측 정부로부터 물자를 받았다고 자존심 상해할 문제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르면 적어도 초여름까지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지속될수도 있다고 한다. 북한이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완전차단하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몇개월을 지금과 같은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이 싸우고 반목할 시간은 많다. 그러나 서로 협조하여 인민의 삶을 지켜나갈 시간은 별로 없다. 북측 당국이 남측의 도움을 거부하여 전염병이 확산되거나, 우리 정부가 북한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

정치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남북 양측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협력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위기 그리고 정치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오랜 역사의 산물이다. 국가라는 틀안에서 사람들은 살아왔다. 국가는 인민을 보호했다. 그리하여 어떤 국가에서 태어나는가가 삶의 행복 상당부분을 결정하기도 했다. 국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또 해오고 있다.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국가다.

최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국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의 특성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싸운다. 발생학적 특성상 서로 싸우면서 만들어진 국가가 서로 협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한 국가간의 협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몇푼 더 벌어보겠다는 얄팍한 이기심앞에 무릎을 꿇어 버리고 말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몇몇 국가들이 하는 정책은 국제적인 협조가 아니라 개별 국가들의 단독적인 행동이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보면 이런 종류의 위협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국가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병균은 국경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국만 잘한다고 해서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에서 중국을 도와준다는 것은 옳다. 지금 중국은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전선이다. 모든 역량은 최선선에 집중해야 이길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후방이다. 전선이 무너지면 후방이 위험해진다.

정부는 초반에 중국을 지원하다고 하더니 여론이 부정적이되니까 발을 빼는 것 같다. 전세계가 중국이 변종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이기로록 지원하는 것이 옳다. 이기회를 틈타서 반사이익을 보려고 하는 얄팍한 수작을 부리는 것은 곤란하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부르주아지들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한 기구이다. 그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국가의 성격이 아직 19세기적 상황에 남아 있는데, 그런 국가들이 초국가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는 어렵다.

국가의 성격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발전을 하면 멸종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발전하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가치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장이 아니라 분배를 통해 더 이상 경제개발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먹고 사는 것이 조선시대 임금보다 더 나은데 뭘 또 더 바란단 말인가?

결국 모든 것은 정치의 문제다.

미국 대선,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

2월 3일 민주당 아이오아 코커스가 열렸다. 민주당은 아직까지 발표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반면, 공화당은 트럼프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언론에서는 민주당의 일처리가 문제라고 보도를 하고 있으나 실상은 그 내부가 이상하다.

민주당은 개표에 혼란에 빠져 있다. 아직까지 제대로 개표를 완료하지 못했다. CNN는 개표 62% 상황 기준 집계로, 부티지지 전 시장 26.9%, 샌더스 상원의원 25.1%, 워런 상원의원 18.3%, 바이든 전 부통령 15.6%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에서 항상 1등을 달리던 바이든이 제일 꼴찌를 했다. 미국도 여론조사가 시원찮은 모양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의 중간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부티지지는 인디애나 주의 중소도시의 시장이다. 38세로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사람이다. 아직 최종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국사람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바이든이 꼴찌를 한 것은 미국인들이 지금의 민주당식 정책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티지지는 무슨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다. 그가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무엇으로 보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다만 그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고 난 후에도 시장선거에서 80%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대단한 능력의 보유자라는 것은 득표율로 알 수 있다. 그정도 득표율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샌더스와 워런는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빈부격차로 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즈벨트와 같은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샌더스와 워런을 무서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샌더스가 제시한 공약의 내용은 트럼프의 정책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다른나라의 부를 빼앗아와서 미국민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정책이었다. 샌더스는 미국내의 빈부격차를 줄여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 하면 그렇다. 워런은 그런 방법 측면에서 샌더스보다 온건하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샌더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미국 민주당 유권자들은 이미 기득권화해버린 과두적 민주당을 대표하는 바이든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앞으로 바이든은 별 힘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아마도 미국 민주당의 숨은 손들이 비터 부티지지를 찾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선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내세워서 미국의 기득권들을 흔들수도 있는 샌더스와 워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약관 38세의 젊은 정치인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트럼프와 크게 비교될 것이다. 젊은 미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을것이다. 아마 샌더스와 워런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것보다 훨씬 파괴력이 클지 모르겠다.

문제는 지금 미국의 문제는 샌더스와 워런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면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트럼프처럼 약탈적 제국주의 방식으로 일관하면 오히려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점차적으로 더 약화될 것이다. 동맹국들의 이탈현상도 심해질 것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부티지지 현상이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젊지만 이미 능력을 검증받은 정치인이다.

미국은 이렇게 능력있는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정치풍토라는 점이 부럽다. 그들은 20대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치활동을 한다. 그 과정에서 능력을 검증받는다. 그런 사람들이 발탁이 되어 전국구 인물이 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젊은 정치인들이 많이 나왔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그냥 이벤트하듯이 젊은 사람 뽑아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민주당 2번같은 일이 생긴다. 최근 영입되는 젊은이들의 능력이 얼마나 검증되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은 연령을 정해서 쿼터제로 하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처럼 지자체에서 신인 정치인이 지속적으로 나오지 못하면 뿔뿌리 민주주의라는 의미는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각설하고 앞으로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과정이 매우 재미있게 생겼다. 여러가지로 문제도 많지만 앞으로 민주당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것같다. 부티지지와 샌더스 그리고 워런이 업치락 뒤치락하면서 언론의 스포트를 잡을 것이다. 당연히 트럼프는 그런 점에서 훨씬 불리할 것이다. 블룸버그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다고 했는데 만일 부티지지가 바람을 일으키면 블룸버그는 어떻게 나올까?

아마도 미국의 숨은 손들은 앞으로는 매우 참신하고 기후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티지지를 강력하게 밀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그 뒤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고하게 지키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희망이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 미국에는 엄청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쌈빡하게 어필하는 정치인으로 화장하면 문제만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의 대선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정치현실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왜 우리는 항상 그 나물에 그 밥일까?

그들의 말이 불편한 이유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 불편을 느꼈다. 어제 선배 한분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그 불편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불편이란 정치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품격에 대한 실망을 의미한다.

언제부턴가 막말이 정치권을 휩쓸었다. 서슬이 퍼런 군부통치시기에도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말에는 격조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라는 말의 격조는 예술적인 수준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비난을 할때도 빈정거리지 않았다. 최근들어서는 비꼬고 빈정거리고 왜곡하지 않으면 말이 안된다.

과거 정치인들의 격조라는 것은 부르주아 계층의 유산이었다. 역사적 진보를 설명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혁명과 개량이다. 혁명가 레닌도 진보를 과거와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과거보다 나은 현실을 원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의 계승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러시아에 볼쇼이 발레단과 같은 부르주아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도록 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으로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고 부르주아지의 세계가 되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들은 봉건귀족들의 신사도와 같은 것들은 자신들에게 맞게 발전시켰다. 그래서 자유주의 시대의 정신적 가치도 같이 창출했다. 말과 행동을 격조있게 만든 것이다.

계급적인 특성을 지니는 말과 행동의 격조는 상대적인 계급과의 긴장이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 점점 세계는 이상해졌다. 트럼프와 같은 상스러운 말이 일상이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오만이 극에 달하게 되었으리라.

최근 진보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서 비열함과 비아냥 그리고 비꼼을 듣고 보면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 궁금했다. 우리의 진보는 최소한 보수의 품격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우리의 보수자체가 그정도면 당연히 지녀야할 품격과 격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배울것이 없으니 막말이 난무하게 된 것이리라.

최근의 상황을 보면 진보라는 더민당이나 보수라는 자한당이나 격조와 품격의 측면에서는 다 거기가 거기인 것 같다. 당연히 격조를 갖추어야 하는 자한당이 마치 양아치 집단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 더 분노를 느낀다. 둘다 비슷하지만 적어도 보수는 조폭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민당이나 자한당이나 양아치 경연대회를 하는 것 같다.

지인의 어머니가 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다. “내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남을 자극하고 욕을 하면, 내가 문제로 삼는 것은 어디로 사라지고 내 말이 문제가 된다”고 하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나경원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 싸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똑 같은 이유로 조국을 혐오하는 이유도 그의 말과 행동이 싸가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둘다 똑같이 그렇게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자웅동체같다.

어제 추미애가 신임검사들에게 ‘상명하복을 거부하라’고 선동했다. 아무리 보아도 법무장관이 신임검사들에게 할 말은 아닌 듯 하다. 신임검사들에게 상명하복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떻게 법무장관의 지시를 따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윤석렬은 신임검사에게 ‘헌법정신을 생각하라’고 훈시했다. 윤석렬이 정치질을 하네 마네 하기전에 추미애의 말과 윤석렬의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추미애도 말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같은 취지라도 훨씬 고급스럽게 말을 할 수 있었을 것같다.

자극적인 말들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그래서 김어준, 김용민, 유시민, 공지영, 안도현 류의 말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이 내 뱉은 말속에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들이 숨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지 모르는채 말이다.

진중권에 열광하는 것은 그동안 비아냥 거리고 비꼬는 것이 주무기인 작자들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진중권의 비아냥에 그대로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당하시는 심사가 어떠신지.

대중들이 비아냥거리는 말을 시원한 사이다라고 열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이다는 많이 먹으면 당뇨병에 직방이다. 어쩌다 한번이지 일상이 되면 곤란하다. 결국 사람의 품격이 말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았고 어떤 인격을 가졌는가에 따라 말이 따라 나온다.

언제까지 계속 3류 소설과 같은 말만 하도 듣고 살 것인가? 뭔가 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삼년 동안을 따라서 배우기 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 듯 하다.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과거에 격조있던 사람들을 접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저나 불행한 세대다.

정치인들도 점잖아졌으면 좋겠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왜 야당은 비판하지 않는가에 대한 반론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면 항상 왜 상대는 동일하게 비판을 하지 않는가하는 문제제기를 받는다. 그런 질문과 문제제기는 형식적으로는 합리적인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매우 억압적이다.

집권세력과 여당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당연하다. 집권세력과 여당이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정운영에 대한 주도적인 권한은 야당이 아닌 여당의 몫이다. 집권세력과 여당은 국정운영에 대한 무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못했다고 하는 것은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권력을 내어 놓은 것이 옳다.

세계 역사에 어떤 경우도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지 않은 경우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국정운영이 잘못된 것을 야당의 책임으로 돌리는 집권세력은 없었던 것 같다. 발목을 잡는 야당을 설득하는 것도 여당과 집권세력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동일한 분량과 정도만큼 야당을 비판하지 않은다고 해서 여당을 지나치게 폄하한다거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원래 권력을 잡으면 그런 것이다. 현 집권세력과 여당이 비판의 기계적인 평균을 요구하는 것은 권력을 잡지 못하고 국정운영의 권한이 없는 야당 탄압이나 마찬가지다. 국정운영의 권한이 있는 만큼 더 비판을 받아야 공정한 것이다. 산술평균적인 비판은 오히려 야당탄압이나 마찬가지다.

호남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비판을 한 것은 현정권의 탄생에 가장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호남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만들었다. 물론 현정권은 호남 사람들을 동반자가 아니라 마름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지지가 없으면 현정권은 제대로 건재할 수 없다. 호남을 비판한 것은 현정권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호남이 지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맹목적인 지지는 결국 권력을 타락하게 만들고 호남도 비난을 받게 만들기 때문이다.

조국에 대한 수사는 하면서 왜 나경원이는 그대로 두느냐고 한다. 나경원도 싫다. 그러나 나경원과 조국은 서로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조국은 국정운영에 결정적인 권한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나경원은 일개 야당의원에 불과하다. 그녀는 국정운영에 책임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없다. 나경원보다는 조국에 대한 수사를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나경원에 대한 수사를 착수조차 하지 않은 검찰도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책임이 있다고 할지라도 조국과 형평성의 정도를 논할 수준은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신종 코로바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지 약속이나 한듯이 야당인 자한당이 예산을 깍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자한당의 책임인 것과 같이 이야기 한다. 자한당이 설사 예산을 깍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조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집권정당의 책임이다. 만일 예산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했었다면 여당이 죽어도 예산 깍으면 안된다고 나섰어야 했다.

정책중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즉각조치다. 즉각조치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즉각조치를 잘하는 군인이 뛰어난 군인이고, 즉각조치를 잘하는 권력이 뛰어난 권력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모든 지혜를 짜모으고 힘을 합해서 극복을 하면 국민들이 믿고 지지하고 따른다.

예산 타령하고 야당의 협조 타령한다고 해서 집권세력과 여당에게 가야할 비판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미움만 더 받는다. 지금은 쓸데 없는 꼼수 부리지 말고 최대한 노력을 해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이 안되도록 하는데 모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서다.

쓰레기를 지지하면 쓰레기다.

잠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생긴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력을 기울여서 대응해야 할 시기다. 정부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우한폐렴의 확산보다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분리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우한폐렴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잘 되고 있어 여유가 있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다. 확산을 제대로 통제한다거나 상황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혐의로 백원우를 포함한 13명을 기소하자 마자,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운운한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할까. 그 뿐 아니다.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들어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임명도 하지 않았다. 한번도 임명하지 않은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소식을 보니 기가 차지도 않는다. 문재인 정권이 처음부터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임명했다면 조국이 재임기간중에 사모펀드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경심이 차명투자 할 수 있었을까? 김정숙 여사의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의혹이 생겼을까?

조국은 국가의 중책을 맡아서 분골쇄신할 생각을 하지 않고, 마누라 앞세워서 강남에 빌딩을 사서 풍족한 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가 그동안 쏟아 낸 수없이 많은 말들이 결국 강남에 빌딩하나 장만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헛웃음만 든다.

어디 조국 뿐이겠는가? 의혹은 차고 넘친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연루되었다는 청주 고속버스터미널 의혹도 그렇다. 우리들 병원 특혜 대출과 사기사건은 또 어떤가. 이것 이외에도 수면밑에 잠복해있는 것은 그 얼마나 될 것인가.

특별감찰관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무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공포에 휩싸인 것 같다. 그러나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대통령부터 민주당 중진까지 모두 비정상으로 보인다.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정도 되면 공수처를 설치하고 검경수사권을 조정하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생각이 정치검찰을 방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 정치검찰을 만들려고 할 뿐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광재를 사면복권시키더니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겼다. 강원도에서 출마를 시킨다고 한다. 이광재는 삼성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문재인 정권은 유독 삼성을 좋아 하는 것 같다. 추미애는 삼성출신 변호사를 법무부 검찰 국장을 시키려고 했다. 아마 공수처가 출범하면 삼성출신 변호사들이 공수처에 대거 진출할 것이다. 법원도 삼성을 어떻게든 봐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정도니 할말이 없다.

이런 일이 백주 대낮에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직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3-40%라고 한다. 언론조사가 거짓인지 아니면 우리 국민이 엉터리인지 알 수 없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선거고 뭐고 모두 포기하고 그냥 자신들이 살아 남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터널현상이 생겨서 주변의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부정부패로 형을 받은 이광재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불러들이는 짓도 하고, 청와대 특별감찰관 제도를 폐지한다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부패는 부패일 뿐이다. 거짓말에는 좋은 거짓말도 있다. 그러나 부패에는 좋은 부패란 없다. 부패는 무조건 나쁘다. 독직도 무조건 나쁘다. 좋은 독직은 없다. 진보의 부패는 용인할 수 있고 보수의 부패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부패한 자들은 진보건 보수건 모두 쓰레기다.

쓰레기를 지지하는 자들도 쓰레기다. 뭔가 얻어 먹는 것이 없으면 뭐하러 냄새나는 쓰레기옆에 있겠는가 ?

추가)

쓰레기 욕한다고 쓰레기 아님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쓰레기끼리 서로 쓰레기라고 하는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빨간 쓰레기나 파란 쓰레기나 쓰레기이기는 매한가지다.

알록달록한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