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경제위기 해결책이 난망이다.

트럼프가 국민들에게 1000달러씩 준다고한다. 전국민기본소득이다. 트럼프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권시장은 급락했다. 무엇때문일까? 미국은 이번 상황을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 문제가 누적되어 있었다. 미국의 문제는 금융자본주의의 한계 때문이 아닌가 한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부터 미국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논의하고 있었다. 미국 경제가 한창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던 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난데 없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밖으로는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 내부에서는 이미 미국 경제체제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적된 문제가 터질 때가 되었는데 마침 코로나 19가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19 치료제가 개발되거나 백신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시장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고 본다.

코로나19는 원래있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지적했는데 이번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미국의 세일가스 문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이었다. 그런데 이번 원유가격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척을 지는 태도를 취했다. 원유가격의 하락을 부추진 것이 러시아와 사우디였다.

산유국들은 미국의 세일가스로 인해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으니 아예 세일가스 업체를 모두 붕괴시키는 전략을 채택한 것 같다. 원유가격이 30달러 밑으로면 미국 세일가스 업체는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고 도산하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세일업체들이 도산하면 은행도 줄도산들 한다. 그럼 미국의 금융체제가 붕괴된다.

당연히 이번 사건은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의 상실을 초래할 수 있는 위기다.

이상하게 나쁜 일은 동시에 일어나고 좋은 일은 찔끔 찔끔 일어난다. 이번에는 미국 금융자본의 한계, 코로나19, 원유가격 하락은 동시에 일어났다. 이런 상황은 백약이 무효다.

아무리 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풀어도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전국민들에게 돈을 푼다고 해도 증권시장은 급락했다. 앞으로 상당기간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결국 무너질 것은 다 무너지고 나서야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경고했다. 그의 경고 이후 경제의 경기순환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순환주기마다 인민대중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일이다. 트럼프가 1000달러씩 나누어주는 것이 일회성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어쩌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이라도 돈을 이렇게 나누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미국의 사회구조적 변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그런데 미국이 지금 다시 루즈벨트와 같은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본다. 설사 다시 루즈벨트가 다시 살아온다고 해도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위기원인은 현재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 세일가스로 드러난 미국 패권의 위기, 코로나 19로 드러난 미국의 내적 모순 등이 중첩적이기 때문에 당분간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살아야 할 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재산기본소득을 나누어준다고 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잘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의 경제상황이 시급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가 현상황의 엄중함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여러가지 경우를 보면서 말과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처리하는 솜씨를 보면 이번 경제위기도 제대로 극복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트럼프가 1000불씩 나누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문재인정권은 여유가 많다. 현실감각마저도 부족하다는 의미다. 정치적 술수에는 능할지 모르나 문제해결 능력은 전무하다는 의미다.

정부 여당이 부족하면 야당이라고 똑똑해야 하는데 그것도 시원치 않다. 지금의 야당은 여당보다 더 무능력한 것 같다.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대한 어떤 책임있는 생각도 읽을 수 없다. 왜 우리나라 정치는 이모양일까? 왜 시정잡배같은 사람들이 정치인이되어 대중을 지배할까? 우리나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없다. 그런데 항상 수준이하의 인간들에게 지배를 받는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시정잡배에게 통치를 받는다는 플라톤의 이야기도 옳지 않은듯 하다. 우리는 관심을 가져도 이 모양이다.

저기서 허리케인이 천둥번개와 함께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무밑에 앉아서 반대방향을 보고 희희락락하고 있다. 허리케인을 보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격이다.

결국 이번에도 국민의 저력에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늘 그랬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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