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정당, 민주주의의 쓰레기

과연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지금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그냥 속아 넘어가 주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 국민들이 사안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의미할 뿐이다. 지금 발생한 모든 문제는 우리 국민들의 책임이다.

무엇이 중요한가의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인류역사를 추동해 온 철학적 사유의 자리를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인가 하는 사적영역이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위성정당이 만들어졌다.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위성정당에 대한 반대투쟁을 하고 있다. 헌법소원을 내기도 한다. 일부의 뜻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큰소리로 떠들어도 대중들이 호응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부의 선각자가 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대중들이 제대로 호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절망을 느끼게 만든다.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은 논리라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은 완벽한 자기모순이다. 선거법 취지상 위성정당은 완전하게 위헌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둘다 나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더 나쁘다.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때 그렇게 비난하더니 자신들이 앞장서서 위성정당을 만든다.

미래통합당에게 혐오를 느낀다. 더불어민주당에게 좌절을 느낀다. 혐오는 피하면 된다. 그러나 안에서 우러나오는 좌절은 피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불합리와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당원들 선거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 그럼 국민들 개돼지로 안다는 것 안닌가? 왜 우리는 그런 개돼지 취급을 받는 것일까?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개돼지와 같은 취급을 받아도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오히려 즐겨 수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놓인 것은 팬덤정치 때문이다. 이성과 사고를 마비시켜버린 팬덤정치는 플라톤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내린 그리스의 중우정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심할지 모른다.

학교에서 플라톤을 가르치는 선생들도 팬덤정치에 뛰어드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민주주의가 발전해 가는 과정으로 보기에는 너무 한심하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2500년전의 그리스보다 더 수준이 낮다. 과학과 기술은 진보해도 인간의 정치적 삶의 방식은 전혀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정치적 삶의 불일치는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위기가 아닌가 한다. 정치적 삶과 내용을 퇴행시키는 가장 핵심은 팬덤정치다. 그리고 그런 선동에 놀아 나는 대중들, 그런 대중을 선동하는 자신의 이익앞에 이상과 이념을 헌신짝 처럼 내던지는 어용지식인들이다. 그들은 팬덤정치를 조장했다. 그들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만일 대중들이 제대로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위성정당이 어디 가당키나 했을까? 결국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은 대중의 무지와 타락이 초래한 결과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가 피는 것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던 70년전 어느 미국정치학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 우리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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