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를 외치던자가 타도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

역사는 변한다.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이. 그런데 변화하는 과정은 일정한 양상을 띠고 있다. 타도를 외치던 자들이 다시 타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역사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진행하는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역사를 자유의 확대과정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가 살았던 시기에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살았던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자유로워진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던 만큼의 속도는 아닌 것 같다.

역사의 진전 속도가 늦은 것은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세력을 수구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신들은 기어코 보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혁보수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말만 그렇지 본질은 수구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더 교활하다. 역사의 진보를 끝까지 막아서기 때문이다.

한때 진보는 보수로 변화한다. 보수는 수구로 바뀐다. 수구는 보수라고 주장하고 보수가 진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과거의 정체성과 현재의 정체성 사이에 발생한 혼란 때문이다. 진보가 보수가 되고 보수가 진보가 되는 과정은 당연히 기득권세력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등따습고 배부르면 보수가 되는 법이다.

윤미향과 조국 사건으로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 민주당 세력이 당당히 보수의 반열이 올랐음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항상 다양한 타도를 외쳤던 자들이다. 미제타도, 일본타도, 기득권 타도 등등.

그러나 그들이 이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항상 타도를 가장 목소리 높여 외쳤던 자들이 가장 극적으로 타도의 대상으로 자리를 바꾸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비난하고 타도하고자 하던 대상과 마찬가지로 부패했기 때문이다. 부패하지 않으면 언제고 타도를 외칠수 있다. 그러나 부패하면 타도의 대상이 된다. 그런 간단한 원리를 모르는 헛똑똑이가 조국과 윤미향 그리고 현재의 친문집권세력이다.

아마 그들은 불과 얼마전 미래통합당이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심정을 이제부터 느끼게 될 것이다. 돌이킬 방법? 없다. 스스로 변하기 전까지는.

조국 타도, 윤미향 타도, 친문보수세력 타도 !!!

사드 덕분에 한국의 안보가 안전해졌는가?

안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평화를 원하거는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말이다. 비잔틴제국의 베제티우스가 쓴 ‘군사학 논고’에서 나오는 말이다. 비잔틴 제국은 15세기에 오스만투르크 무하메드2세에 의해 멸망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까지 스파르타에 군사학의 전통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베제티우스의 군사학 논고도 스파르타의 산물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정치인들에게는 서로 동맹을 견고하게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가급적 적을 만들지 않도록 선린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 등으로 해석되었다. 군인들은 좋은 무기의 확보와 훈련이 잘된 군대의 유지를 의미했다.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은 좋은 무기의 확보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었다. 내가 어마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이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고 그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내가 좋은 무기를 가지면 상대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도 더 좋은 무기를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군비경쟁은 숙명과 같이 이루어졌다.

무기와 군대가 많이 밀집한 곳은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진정 평화를 원하거든 장비와 군대를 줄여 나가야 하는 법이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한국과 월남 그리고 아프간에서 제한전을 벌였지만 유럽대륙에서 전면전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군비감축을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도 가급적 군대와 무기의 배치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은 무기와 군대를 쌓아놓는다고 안전해지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사드 장비를 개선한다고 해서 소동이 일어났다. 일부에서는 개량된 요격 미사일을 배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앞으로도 한국이 군비경쟁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사드지만 내일은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가 논의될 것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양진영간 첨예한 논쟁이 있었다. 사드로 인해 한국이 안전해질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었고 사드로 인해 오히려 한국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모르겠다. 사드로 인해 한국의 안보가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

홍콩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나

미중간 다툼이 홍콩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당장 홍콩내부에서 반발이 벌어지고 있고 미국도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정치적 격동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홍콩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상황평가라는 것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시위가 발생하면 모두들 인권문제를 제기한다. 국제정치세계에서 인권이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인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평가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인권을 매우 뭉뚱그려서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다양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냉전시기에 인권이란 자본주의 진영이 사회주의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때 인권은 정치적 자유를 주로 의미하고 있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라고 한다. 그러나 인권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편적이 될 수도 있고 특수할 수 도 있다. 세상 어떤 가치도 보편적인 것은 별로 없다. 인간과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인권이란 개념은 매우 광범위해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평가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가만 따져보면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실제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상황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인권을 정치적 자유가 아닌 인종과 빈부문제로 보면 전세계에서 인권이 가장 낙후된 국가는 미국일 수도 있다. 당장 미국에서 별 잘못한 것도 없는 흑인을 눌러 죽인 것이 미국 경찰 아닌가 ? 미국에서 흑인과 유색인종들이 받는 차별은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한다. 인종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 위협이다. 정치적 자유보다 인종적 차별은 더 심각하다고 할 것이다. 미국의 흑인들에게 미국에서 살래 아니면 중국가서 살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다. 예컨데 인권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차별이다. 정치적 자유에 앞서 각종의 차별이 가장 크게 인권을 위협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국가인 미국이 정치적 자유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라고 비난하는 것은 진의를 의심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미국에 있어서 인권이란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국제정치문제에서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일부는 옳고 일부는 틀릴 수 밖에 없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인권외교를 주장한 것도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공격이었을 뿐이다.

홍콩의 사태를 보는 관점도 다양할 수 있다.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두개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중국민의 입장에서 홍콩은 1839년 아편전쟁으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이자 서구열강들의 침략의 상징일 뿐이다. 게다가 호시탐탐 다시 중국을 노리는 서구의 트로이 목마일 뿐이다. 중국민들이 홍콩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만일 우리가 홍콩의 시위를 지지한다면 홍콩을 자신들의 상처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어떤 답변을 해야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중국사람들의 눈에 홍콩인들의 행동은 마치 우리가 친일파를 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이미 홍콩의 시위가 미국 정보기관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서 다 밝혀진바 있다. 중국도 그런 홍콩의 시위주동자들을 미국의 끄나풀이라고 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170년 넘게 영국적 제도하에서 살아온 홍콩사람들에게 중국의 강압적인 태도는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홍콩 민주화 운동의 지도부들이 미국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중국도 이처럼 과격하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콩과 달리 마카오는 별 잡음이 없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뺏긴것과 달리 마카오는 중국이 필요해서 포르투갈에게 조차를 주었기 때문이다. 같은 조차지였으나 전혀 다른 상황인 것은 역사적인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홍콩의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런 문제를 더 이상 끌지 않고 마무리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서서 이것이 옳으네 아니네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윤미향 사건과 시민단체 과두정

윤미향 사건으로 한국이 또 다시 분열되었다. 조국 때문에 분열되고 다시 윤미향 때문에 분열되고 있다. 조국의 사건과 윤미향 사건은 내용이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또 비슷한 것 같다. 조국 사건은 본질적으로 권력형 부정부패다. 윤미향은 시민단체의 부정부패다. 부정부패는 그것이 진보건 보수건 권력의 핵심부건 시민단체건 할 것 없이 모두 척결되어야 한다.

두사건 모두 감시 감독의 눈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졌다. 청와대에는 박근혜 정권 이후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에서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야당이 왜 이문제를 집중거론하지 않는지도 알 수 없다. 결국 조국 같은 일탈적 사건이 발생한 것은 감시감독하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견제와 감시를 하지 않으면 어떤 조직이든 반드시 부패한다. 지금 청와대는 아무런 감시감독 없이 3년이 지났다. 그 속이 얼마나 어떻게 썩었는지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다. 노무현 대통령 같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윤미향은 시민단체를 통한 부정부패 사건으로 보인다. 아마 시민단체에 대한 감시감독의 눈이 철저하지 않았나 보다. 만일 다른 시민단체도 정의연과 비슷하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이 운동권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모두 다 안다. 대전의 김소현이라고 하는 변호사가 지역에서 각종 이권들이 소위 운동권 세력에 의해서 나뉘어진다는 것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으로 출마해서 떨어졌다.

왜 더불어 민주당의 이해찬은 윤미향을 지지 옹호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 처럼 정의연으로 부터 돈을 받아 먹어서? 글쎄 그 돈이 얼마나 된다고 받아 먹었을까? 그것보다는 그런 시민단체들이 모두 지금 친문세력과 더불어 민주당의 사실상 외곽조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민단체들이 권력의 기반인데 그것을 허물어 뜨리면 스스로 자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문재인이나 이해찬이 극구 윤미향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 사건에 대해 그 어떤 시민단체도 정부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어떻게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 많은 여성단체들도 아예 나 모른체 하고 있다. 그런 침묵은 음모의 표식이다. 지금 침묵하는 자들은 음모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정권의 시녀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부산시장 오거돈의 성추행 사건으로 드러난바 있다. 이제 그들의 침묵은 그것을 확인해 주고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운동권과 시민단체 과두정치체제가 아닌가 한다. 운동권 출신들이 시민단체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세력을 키워 정계로 진출하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유례없는 시민단체 과두정치체제가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나마 양심있던 일부 운동권 출신들은 이런 현상을 비난하고 걱정하지만, 이미 생계가 달린 몰양심한 운동권 출신들은 그런 충정따위는 간단하게 친일부역으로 몰아버리는 몰염치까지 생기고 말았다.

악은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세력을 상실한다. 우리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양지로 소환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시민단체들도 어둠에 숨어있지 말고 밝은 양지로 나와라. 그래야 너희들도 살고 나라도 산다.

인간은 스스로 규정하는대로 산다. 이용수 할머니의 경우

이용수 할머니는 자신을 <여성인권운동가> 라고 규정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라 여성인권운동가인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에서 벗어나 여성인권운동가로 자신을 자리매김 했기 때문에 매우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한다. 미국 의회에서 증언도 하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일제의 위안부 만행을 알린 것도 자신 스스로가 <여성인원운동가>로 규정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여성인권운동가>로 규정한 다음 이용수 할머니는 매우 다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후 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두번의 입장문 혹은 언론 보도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첫번째 문안은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고한다. 두번째 입장문은 여러 사람이 초안을 잡고 할머니가 최종 승인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입장문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도 이용수 할머니가 그런 지적 능력을 가졌을리 없다는 비아냥에 다름 아니다.

윤미향과 정의연(혹은 정대협)이 잘못한 것은 이용수 할머니를 그저 위안부 피해자로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미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과 대응 혹은 더 이상의 지적 능력의 보유자였다. 윤미향은 그런 이용수할머니와 몇몇 할머니의 각성이 달갑지 않았을 뿐이다. 이용수 할머니와 일부 할머니들은 단순한 위안부 피해자를 넘어서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했던 분들이다.

주체적인 삶은 저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윤미향과 정의연이 일본에 저항한 것과 이용수 할머니와 다른 분들이 윤미향에게 저항한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권위와 불의에 저항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 그 누구든지 주체적인 삶의 주인공이 되는 법이다. 아무리 높은 직책에서 좋은 보수를 받아도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지니지 않으면 그는 노예적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에게 저항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저항은 윤미향을 국회로 끌어드린 기성권력체계에 대한 저항이나 마찬가지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친문세력 일파의 대응은 일본이 위안부에게 대한 대응과 전혀 다르지 않다. 친문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용수 할머니를 <매춘부>라고 부르고 있다. 한번 매춘부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발언을 한다.

우리가 이용수 할머니 사건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친문세력의 실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이 파시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을 많은 사람들이 했다. 바로 그런 주장을 실증하는 것이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인 것이다.

인간은 악마와 천사 사이를 오가는 존재다.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이용수 할머니를 <매춘부>였으니까 이런 짓을 한다고 하는 그 순간 그들은 이미 악마의 품에 안겼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방치 조장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집권세력이 이상한 짓을 하는 이유

더불이 민주당이 하는 행동이 이상하다. 노무현 재단에 무슨 비리가 있는 것 같은 이야기를 스스로 흘리고 있다. 설훈 의원은 갑자기 KAL기 폭파 재조사를 하자고 한다. 김태년 의원은 때지난 한명숙 뇌물사건 재조사를 하자고 한다.

왜 이런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문제는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싼 국제정지적 상황변화나 경제환경으로 보아할때, 이렇게 정쟁과 같은 일로 시간을 보낼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것이다.

통상 집권여당이 과거사건 재조사 문제를 꺼낼때는 자신들이 열세에 몰려 있을때다.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적 변화가 극심하게 일어나고 있고 교역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정권의 정당성은 내용적으로 형식적으로 모두 다 확보해야 통치가 가능하다.

통상적으로 보면 경제가 잘돌아가고 주변국과 원만한 관계를 잘 유지하면 정권을 가장 강력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정권의 가장 중요한 정당성은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권세력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경제문제와 대외안보환경의 변화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별로 없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다가오는 경제위기나 국제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다른 이유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이상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

과거사문제나 윤미향으로 대표되는 반일 프레임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다가오는 안보 및 경제위기에 문재인 정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위기에 빠지면 그때 과거사 문제나 반일 프레임을 이용해서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사전 여건 조성작업을 하는 것으로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미 현정권은 위기가 다가오기도 전에 이미 패배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집권세력이 커다란 부정부패와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노무현 재단에 검은 구름이 뒤덮고 있다는 알쏭 달쏭한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큰 범주속에 윤미향 사건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윤미향을 파기 시작하면 시민단체 대부분의 문제를 다시 건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시민단체에 국고 보조금 주는 문제가 도마위에 올라오게 될 것이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친문세력의 숙주노릇을 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패배의식이거나 친문세력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 전체의 윤리적 법적 일탈이거나 간에,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과거사 재조명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준 낮은 정치 공작에 다름 아닌 듯하다.

그것말고 다른 무엇으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조국, 윤미향, 한명숙의 공통점 , 염치가 없다.

세상은 무엇으로 사는가 ?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가지 문제로 고민을 해야 한다. 이상과 원칙이다. 이상이란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유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이상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개선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는 사회같은 것이 이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경제적 풍요가 뒷받침되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떤 삶도 먹고사는 문제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존엄할 수 없다. 물론 너무 지나치게 가지고 있어도 존엄성을 지키기 어렵다. 인간의 존엄성도 극단의 결핍과 극단의 부의 편집 그 사이에 있는 것이리라.

원칙이라는 것도 그러하다. 어떨 때는 이상을 위해서 원칙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아마 불가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하는 이야기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한다.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원칙에 지나치게 얽매이다가는 일을 그르치는 법이 많다. 그래서 항상 근본주의자는 위험하다. 원칙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원칙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원칙도 무질서와 근본주의 그 적절한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여권을 이해해주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 살다보면 그 누가 완벽하게 깨끗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때가 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원칙이라는 측면도 어느정도 살펴보아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과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의 여권은 끝이 없이 원칙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윤미향은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해주려고 했다. 물론 그녀가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일단의 횡령혐의는 법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법적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그때 그 상황에서 그럴수도 있었겠지 정도의 심정적 아쉬움을 지니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녀의 행태를 보면서 심정적 아쉬움을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이상을 추구할 만한 인성과 인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내가 제일 분노했던 것은 이용수 할머니가 ‘내친구가 위안부였다는데…’하고 전화를 해왔다는 것을 언론에 이야기한 것이다. 그 때 그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내가 위안부였소하고 나서서 이야기를 했겠는가? 당연한 것이다. 윤미향은 이용수 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들어서 이용수 할머니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 것 같다. 사건의 과정을 제대로 밝혀서 의혹을 헤소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신뢰를 떨어뜨리고자 한 비열한 짓을 한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윤미향은 인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과 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돈을 해먹는 것은 이해를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성이 못된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윤미향은 그렇다고 치자. 전직 총리를 지냈던 한명숙의 태도를 보면서 저런 사람을 어떻게 총리를 시켰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 법의 판단을 받았다.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받아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들이 돈문제에 약할 수 밖에 없다. 정치자금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나라다. 헌금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정치자금으로 몰고가는 경우도 많았다.

돈을 받을 수는 있다고 본다. 물론 실정법이 있는 상황에서 걸리면 감방갈 생각을 하고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것이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명숙은 민주당에서 재조사를 해야 한다고 하니 마치 자신이 무죄인 것처럼 말을 했다고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돈을 받은 것이 입증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표 영수증이 모두 다 나왔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그녀는 사건의 추이를 보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 태도를 정한다고 한다. 이런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평생을 정치인으로 살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것인지를 분위기보고 정하나?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일국의 총리를 했다는 말인가?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냥 그때는 이미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만 하면된다. 그러면 한명숙도 가오가 산다.

요즘 조국, 윤미향, 한명숙까지 보면서 현재 여당의 문제는 이상과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성의 부족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염치의 부족이 문제였던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 우리가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이유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되돌리기 어렵다.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세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동맹국을 규합해서 중국을 포위 봉쇄하여 말려 죽이겠다는 것 같다.

미국이 그런 구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이 돈은 벌어서 몸집이 커졌을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다듬어 지지 않아 주변국으로부터 우호적인 반응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단한 나라라는 것은 모두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중국이 정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한 미국의 의도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만일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속된말로 미국하고 중국이 싸우다 죽던 말던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다. 우리에게 피해만 없다면 말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싸우면 우리에게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싸움은 매우 오래갈 확률이 많다. 전쟁과 같은 극적인 계기가 없다면 패권의 전이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미국의 최대 위기는 중국의 반발이나 역습이 아니라 미국의 자체 모순이 아닌가 한다. 그냥 있으면 중국이 공격하기 전에 미국 스스로 무너질 상황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미국의 상태가 어떤지는 학자들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발생한 사건에 대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이번 싸움이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첫째, 전세계의 교역이 줄어든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은 자신들끼리만 교역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과는 교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역을 하지 안한다는 것은 시장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미국이 요구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에 가입을 하면 당장 중국시장은 포기해야 한다. 문제는 중국시장을 포기하는 만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에서 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시장은 포화상태다.

미국은 자신들이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들을 식민지 국가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생산력을 파괴하거나 감소시켜야 한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문제는 생산력 과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제국주의 체제가 수립이 될 것이다.

분업체제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체제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은 첨단기술과 같은 분야는 자신들이 직접 독점하려 할 것이고 한국을 위시한 다른 나라는 생필품 공급기지화 하려 할 것이다. 즉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미국이 생산 판매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것은 소위 동맹국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은 비교적 긴시간을 두고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장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나라다. 국내에서의 문제와 국제적 관계에서의 신자유주의는 이중적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제시하는 자유번영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은 자살적 행동이나 진배없다.

중국은 지금의 상태에서 미국처럼 동맹국을 규합해서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겨우 해봐야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중립국을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같이한다고 해도 그것도 말에 불과할 뿐이다. 러시아, 인도, 유럽의 일부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할 가능성이 많다.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국가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협박하는 것 밖에는 없다. 문제는 그것만으로도 심각하다는 점이다. 당장 호주는 소고기를 중국에 수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제일 먼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나라가 호주가 될 것이다. 중국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디 하나 걸려봐라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심정일 것이다.

그렇게 시범케이스로 확실하게 미국에게 동조하는 국가를 처벌하지 않으면 중국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 중국과 동조국, 그리고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국가로 나뉘어 질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당연히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는 것이 몸보신에 유리하다. 누가 이길지는 현시점에서 알 수없다. 이 시점에서는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 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미국을 지지해야 인권이 보장되고 첨단과학도 도입하고 경제적으로 변영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하에 있는 그 어떤 국가도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왜 미국이 좌지우지 하고 있는 남미에는 민주주의가 자리잡지 못했을까? 당연히 군부독재국가를 만들어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유와 인권의 문제는 미국이 있어야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국내의 문제이다. 근대국민국가 자체가 그런 가치의 담지자이다. 자유와 인권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보장되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없는 정치적 자유는 없다. 경제적 자유없는 인권도 없다. 노동문제의 최종핵심은 결국 노동자들이 합리적인 임금을 받는 것과 사회보장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것도 결국은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은 그런 모든 거품을 걷고 진짜 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나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국은 왜 이시점에 중국과 대결을 하려할까?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 상태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1990년 냉전종식이후 가장 거대한 국제정치적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심하다. 지금 윤미향 사건을 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사기꾼과 협잡꾼 때문에 격랑의 국제정치적 변화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니 한심할 따름이다.

지금 미국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사생결단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미국이 중국과 냉전구도를 만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먼저 코로나19가 아직 잡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거의 최악의 상황에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나선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코로나19나 경제위기보다 오히려 중국과의 패권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건강이나 경제위기는 극복하면 되는 문제다. 그러나 패권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 아마 미국 주류세력들은 바로 그런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같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시점에 신냉전구도를 만들어 가려는 이유인 것이다.

그에 앞서 이번 미중 신냉전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향이 작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이 중국에게 냉전적 대결을 하려고 하는 것은 미국 주류세력 전체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은 이미 오바마 정권 때부터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공을 들여왔다. 그때도 미국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언젠가 결정적인 시점이 오면 중국을 봉쇄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한일간 지소미아도 바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군사적 동맹체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본다.

미국의 주류들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냉전을 결심했을까? 우리가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미국의 절박함이다.

무엇이 미국을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첫째는 시기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중국을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본 것이다. 이미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했다고 하고 앞으로 10년 정도면 미국은 화폐 패권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좀 더 있으면 견제고 뭐고 할 수도 없이 두 눈 뜨고 어어 하다가 당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미국이 앞으로 상황이 매우 나빠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미국의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 중국의 부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중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신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맹국과 연대를 강화해서 중국에 대항하고자 한다. 동맹국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몇 수 위다. 이미 그런점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미국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사건에 미국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홍콩시위사건을 통해 미국이 노린 것은 홍콩을 독립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도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코로나19도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중국은 그런 미국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며 읽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보편적 가치 부족과 결여를 계속 공격하고 있는데 중국은 미련하게 오히려 자신들이 보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게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원래 수천년동안 세력정치를 해온 나라라서 그런 대응은 잘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국보다 미흡한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의 공세에 호전적인 반응을 하는 것은 이미 한번 혼난 사람이 다시 혼날까봐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열등감이 폐쇄적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바고 그런 점을 미국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장할 논리는 무엇인가?

정경분리다.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라는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공산당 독재나 미국의 월스트리트 과두정이나 크게 보면 그게 그거다. 모두 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뿐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우리의 홀로서기

미국의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을 구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느낌으로는 경제적 성격의 NATO와 비슷하다. 전통적인 방식인 군사적인 봉쇄가 아니라 경제적인 봉쇄를 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을 위시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들로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한국에게는 이런 경제번영네트워크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미국의 의도처럼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의 구매력이 미국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아무리 미국 우방국을 중심으로 단합한다고 해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중국 시장을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의 시장은 포화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만일 우리에게 기회가 된다면 과거 1970년대 처럼 중국대신 우리가 미국의 생필품과 같은 소비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되는 것이다. 지금 가발만들고 신발 oem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소냉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본 것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서방세계의 진열장이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서방세계의 show window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이 격심해지면서 새로운 전선으로 등장하고 있는 곳은 대만이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미국은 대만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대만에게 지원을 하는 만큼 한국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끼여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는 대만처럼 미국과 중국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게 한국은 전선이 아니라 후방이나 마찬가지다. 결력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후방보다 전선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을 후방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 서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일국 양제를 거부하는 것으로 경계선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경계선에 설 수 없다.

우리나름대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상에 서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함으로써 전략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해야 전략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이 안보적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지닌다면 미국도 한국에게 함부로 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방위비 더 내놓으라고 말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나라는 필리핀이다.

최근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으로 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위상을 확보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며 중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으며 미국도 무시하지 못한다.

각국은 각자의 전략적 상황이 다르다. 각자의 전략적 이점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최상의 방법은 지금은 최악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에 함께하게 되면 전작권은 즉각 반환하고 연합사도 해체해야 한다. 자국의 방어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미중패권경쟁에서 전략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안보적 홀로서기가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