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이는 사회

우연히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사람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기자는 김완이라는 사람을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제목으로 인터뷰해서 기사를 실었다. 죽기전 밥상에 구직기사를 펴놓고 케이크 한쪽으로 마지막 식사를 한 사진을 올려 놓았다.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자살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사회적 타살이다. 이리 저리하다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강요당한 선택이 자살이기 때문이다. 한때 자살을 아노미적 현상 때문이라고 한 에밀 뒤르깽의 분석도 있었지만 지금 보면 그것은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이 꽉막혀 있는데 다른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기사를 읽어가는 중에 전기와 수도를 끊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리저리 끝까지 견디다가 전기와 수도가 끊어지면 극단적인 행동을 결행한다는 것이다. 전기료와 수도료를 몇달동안 채납을 하면 전기와 수도를 끊는다. 오죽하면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지 못할까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지 못하면 전기도 쓰지말고 수도도 쓰지말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전기세와 수도세를 몇달째 내지 못하는 집이 있으면 사회복지시설에 연락해서 관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는 사람을 죽이는 곳이다. 매일 몇명의 노동자들이 고층건물에서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불에 타서 죽는다. 지하의 맨홀에서 질식되어 죽고 맨홀 갇혀 물에 빠져 죽는다. 지하철에 끼여죽고 석탄 벨트에 끼여죽는다. 그렇게 죽어도 우리사회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김훈 선생이 혼자 슬퍼하며 글을 쓸 뿐이다. 우리는 잠시 그의 슬픔과 분노를 같이 하지만 잠시 미안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공분만 함께 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대부분의 고독사가 경제적인 이유라고 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절망적이라는 뜻이다. 우리사회는 술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사회다.

많은 경우 그렇게 극단에 내몰리는 사람은 요령도 없고 약삭 빠르지도 못한 것 같다. 요령있고 약삭빠르면 그런 상황까지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아이들에게 약삭빠르고 교활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해법. 너무나 많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고 조금만 관대한 시선을 가지면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 다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해결을 거부하는 자들은 더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절망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인간인줄 알았는데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 아니었던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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