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제일주의와 프랑스 제일주의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통해 영국을 견제하고자 했다. 1806년 11월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과 일체의 교역, 상거래를 금지했다. 대륙에 거주하는 영국인을 포로로 하고 이들의 제산을 몰수했다.

이탈리아가 영국에 견사수출을 단속하는 조치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나폴레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탈리아왕국의 원견사는 모두 영국으로 간다. …. 내가 프랑스의 제조업자에게 유리하도록 이 원견사를 영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다. 그렇지 않다면 프랑스 상업의 주요한 지주의 하나인 프랑스의 견사공장은 지대한 손실을 받게 될 것이다.

… 나의 원칙은 이것이다. 즉 프랑스제일주의다 …”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일주의를 만들려는 계획은 전적으로 실패했다. 극소수의 프랑스 산업만이 대륙봉쇄의 혜택을 입었다. 서인도제도에서의 설탕수입이 끊어짐으로서 국내산 사탕무우 재배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해외무역의 쇠퇴로 보르도와 여타 프랑스 대서양 항구는 대불황기에 빠졌다. 면과 같은 원료의 입수가 점차 어려워지고 가격도 오르게 됨에 따라 실업이 늘게 되었다. 파산자도 속출했다.

대륙에서 프랑스의 새로운 시장은 해외 구도시의 손실을 메우지 못했다. 프랑스 수출가격은 1805 – 1813년 사이에 1/3 이상이 떨어졌다.

영국은 상당한 곤란을 겪었지만 파멸시키지 못했다. 영국 수출업자들은 남북아메리카 대륙,오스만 제국 및 아시아에서 수지가 맞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계속하여 대륙의 구고객의 일부에게 상품을 공급했다.

심지어 프랑스 육군은 영국 공장에서만 생산되는 소량의 품목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복에 필요한 영국의 가죽과 천을 비밀리에 구매하는 권한을 부여받는 모순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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