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과 전쟁영웅에 관한 횡설수설

정치는 가치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권위를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정치는 스스로 가치와 권위를 붕괴시켜나가고 말았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판단해야 할 대통령과 참모들은 아무런 의식없이 백선엽을 조문하고 조화를 보냈다. 문재인 정권이 백선엽을 조문하고 조화를 한다면, 응당 이승만과 박정희에게는 매년 기일에 화한을 보내고 조문을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전두환에게는 매년 생일마다 선물을 보내고 축하방문을 해야할 일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은 공과를 따졌을 때 백선엽과 비교할 수 없는 공을 세웠다.

한겨레신문에서 백선엽의 치부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정작 논쟁이 뜨거울때는 입다물고 있다가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이 다 끝나고 나니 지금 나서서 백선엽을 비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늦게나마 백선엽에 대한 비판에 숟가락을 얹어 놓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싶다. 하기야 그것마저도 하지 않은 진보언론도 부지기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 듯하다.

백선엽의 경우는 여야 가릴 것없이 무엇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인지를 혼동스럽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백선엽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양한 성격을 지닌다. 온전히 선한사람이나 온전히 악한사람은 별로 없다.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간은 선과 악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겻은 당연히 공과 과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기준의 문제다. 백선엽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국전쟁에서의 공로를 언급한다. 백선엽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가 일제강점기에 간도특설대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친일파이자, 한국전쟁에서 알려진 공적도 상당부분 미화과장되었으며, 1970년대 부정부패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는 주장을 한다.

이렇게 평가가 갈리면 그런 평가에 대한 점검과 검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우리사회는 그런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백선엽이 위대한 영웅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미국이 그를 훌륭하다고 한 측면이 적지 않다. 스스로의 평가를 내리지 않은채 남의 평가를 우선시 한 것이다.

미국은 백선엽을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내세웠다. 그런데 그가 무슨 이유로 한미동맹의 상징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미국이 어떤 사람 하나를 내세워서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면 그냥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인가? 백선엽은 영어를 잘했고 미군들을 잘모셨을 뿐이다. 미국을 무조건 칭송하고 미국이 입장을 무조건 최우선적이라고 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칭송이 아니라 모욕이다. 한국의 국익보다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했다는 의미 아닌가?

백선엽의 1사단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져서 사단 전체가 뿔뿔이 흩어졌다. 아마 왕조시대였으면 백선엽은 참수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사단 전체의 전투력을 완전하게 상실한 지휘관이 무슨 얼굴로 살아 남아 마치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1사단이 흩어지고 7사단이 의정부에서 무너졌을 때, 홀홀단신으로 나서서 패잔병을 규합하여 한강방어선을 구축한 사람이 바로 김홍일이었다. 후퇴하는 와중에 군인들과 학도병들이 모여든 사람은 김석원이었다. 북한군 정예5사단의 포항 방면 진출을 막아낸 것도 김석원이었다. 춘천에서 3일은 버텨서 북한군 2군단이 수원으로 진출하여 한국군을 포위 섬멸하려 했던 계획을 좌초시킨 것은 6사단이었다. 최초로 동락리 전투에서 북한군을 패배시킨 것도 6사단이었다. 전사를 제대로 살펴보면 백선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릐 공로를 세운 사람은 많다.

한국전쟁은 어느 한사람의 공로로 치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군인들의 희생으로 지켜진 것이다. 전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 한국전쟁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사람들은 중대장과 대대장 그리고 연대장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들은 대대장들이었다. 한국의 지형자체가 대대급 전투가 주로 치뤄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춘천 방어전투를 김종오 덕분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옳지 않은 평가다. 당시 6사단이 춘천을 3일동안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제7연대장 임부택과 제1대대장 김용배 그리고 16포병대대 덕분이었다. 춘천전투에서 김종오가 한 것은 별로 없다. 예비이던 제19연대를 원주에서 춘천으로 투입했지만 제대로 전투도 지루지 못하고 다시 홍천 방변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춘천전투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것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제16포병대대라고 하겠다.

당시 제16포병대대의 대대장은 전장에 제대로 위치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춘천에서 가장 중요한 3일간 그는 제16포병대대를 지휘하지 않았다. 제16포병대대는 지휘관없이 각자 평소 훈련한대로 포사격을 했고 북한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춘천전투에서 제16포병대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기록은 소련군과 미군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첨언하자면 춘천전투보다 한국전 향방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홍천전투가 아니었나 한다. 제2연대는 함병선이 지휘했다. 홍천전투에서 승리의 견인차는 연대장이었다. 제2연대는 무지원상태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막아냈다. 홍천전투가 아니었다면 춘천은 완전하게 포위되었을 것이다. 북한군의 최정예 사단인 중공군 출신 12사단이 지향한 곳이 홍천전투였다. 작전전 수준에서 춘천전투보다 홍천전투가 더 의미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아직 그런 평가는 내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6사단이 잘한 것은 모두 김종오 덕분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하고 말았다. 제대로된 논공행상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사단장급의 장군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전쟁의 거의 전과정에서 사단장급들이 어떤 전술적 작전적 결정을 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 공로인지를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전 초기전투는 김홍일과 김석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책만 거듭했고 제대로 부대를 장악하지도 못했다.

유엔군이 참전하고 나서는 사단장급의 결심은 거의 미군군사고문단이 보좌했다. 실제는 한국군 장성들이 단독적으로 작전적 결심을 하거나 전투를 한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백선엽이 다부동전투에서 수행했다느 무용은 사단장이 아닌 중대장이나 대대장으로서의 조치일 뿐이다. 백선엽의 지휘과정에 장성급 지휘관으로서 어떤 전술적 작전적 결심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지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다.

평양에 먼저 들어갔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실제 평양에 먼저 진입한 것은 6사단이라는 증언도 많다. 평양 동쪽으로 진출해서 평양 북쪽에서 평양으로 진입했으나 국군이 평양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김종오가 바로 부대의 방향을 돌려서 국경선쪽으로 진출시켰다는 것이다. 평양진출할 당시 백선엽은 제대로된 전투를 치르지 않았다. 북진과정에서 주요 전투는 주로 중동부 전선에서 치뤄졌다. 북한군 제2군단은 중동부 지역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북한군 철수루트를 확보했다. 낙동강지역의 북한군은 서부지역이 아닌 중동부 지역을 통해 철수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실시한 것이 9월 15일이고 서울을 장악한 것은 9월 28일이다. 인천 상륙작전이후 2주간 치열한 전투를 치른 다음에야 겨우 서울에 입성했다. 그사이 북한군 주력을들 모두 경기동부 및 강원도지역을오 빠져나갔다.

한국군 당시 장군들은 김석원과 김홍일의 경우를 제외하고 제대로된 중대급 전술훈련도 소화하지 못했다. 말만 장군이었지 중대급 대대급 전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이 전술적 작전적 수준에서 제대로된 결심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종오가 전쟁영웅이라고 하는 것도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다. 김종오가 백선엽과 달리 부하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았던 것은 그의 인격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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