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투표로 선출하자

미국의 2분기 GDP 성장률이 -32.9%라고 한다. 미국 뿐만 아니라 거의 전세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모른다. 3분기라고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오히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내 정치권의 관심은 세계적 경제위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번 7월은 유난히 시끄럽고 복잡한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대부분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오만과 실정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검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개탄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이 어떤 것이 문제인지에 대한 판단과 인식이 분명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 검찰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검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민군관계의 수립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보건데 군대는 헌정질서를 중단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서양에서도 군대가 직접 정권을 장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두번이나 군대가 직접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행사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민군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의 원칙이 정립되었다.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의 원칙은 군대를 정치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같은 정치적 중립이라도 검찰에 요구하는 것과 군대에 요구하는 것은 그 내용이 다르다. 군대에는 아예 정치근처에 오지말라는 것이다. 여당이나 야당 사이에서 저울질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예 정치에서 분리되어 있으라는 의미다. 군대의 속성상 일정정도 보수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군대는 지키는 것이 기본임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토건 국민이건 이념이건 가치이건 마찬가지다. 군대를 정치에서 완전히 분리시키고 국가의 정책적 도구로 만드는 것이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의미에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들어섰지만 군에 대한 올바른 문민통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들은 군대를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 만드려고 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군장성의 인사와 보직을 통해 자신들과 가까운 장교들을 진출시켰다. 소위 정치군인들을 양성한 것이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라고 하는 정권이 정치군인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은 올바른 의미에서 문민통제와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권은 군인들을 정치에 끌여들임으로써 문민통제원칙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와 조금 의미가 다른 것 같다. 검찰에 요구하는 민주적 통제는 검찰을 군대처럼 아예 정치와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여당이나 야당에 편향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과거에 보지 못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정립된 원칙인지 아니면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만들어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까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통제’로 바뀐 의미가 무엇일까?

보도를 보면 검찰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에 선출된 권력이 통제를 해야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것은 검찰이 여당에게 호의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라는 것을 좋은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군대를 정치에 아예 접근도 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면, 검찰은 여당과 야당사이에서 저울질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지 않으면 국가의 기본이 무너진다. 선거도 무의미하다. 일방적으로 여당에 유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하면 민주적 절차가 붕괴된다. 검찰은 여당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입으로는 원칙을 말하고 뒤로는 원칙을 어기고 검찰이 정권의 개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운운하는 것은 정권의 개가 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정권의 개였다. 이제까지 모든 개혁은 검찰을 정권의 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즘 다시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정권의 개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노골적이다.

만일 검찰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어서 문제라고 한다면 개혁의 방향은 검찰권력을 선출하게 만들면 된다. 그것을 민주적 통제라는 교묘한 말로 속여서 정권의 개로 다시 만들려고 하는 속셈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검찰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정권의 개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검사들과 정권의 개가 되어서라도 양명을 하고 싶어하는 검사들의 싸움이라 하겠다.

지금이 검찰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을 지키느냐 못지키느냐 하는 갈림길이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검찰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쉽지 않다. 윤석렬과 한동훈 같은 검사들은 그냥 돌연변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검사들 개인의 소신만으로 정치적 중립은 달성하기 어렵다.

만일 검찰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어서 문제라고 하면 검찰총장과 고검장들을 투표로 뽑으면 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감 선거도 하는 판인데, 국가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검찰권력을 투표로 뽑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검찰총장을 투표로 뽑자. 그래야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대로된 민주적 통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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