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

어릴때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일화를 읽었다. 아버지가 애지 중지하는 사과나무를 도끼로 찍었다. 화가 난 아버지에게 조지 워싱턴은 처벌을 감수하고 자신이 했느라고 자백을 한다. 조지 워싱턴의 아버지는 화를 멈추고 정직하게 행동했으므로 용서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비난이자 욕은 ‘당신은 거짓말쟁이요’라고 한다. 정치지도자 뿐만 아니라 일반의 장삼이사에게도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어머어마한 모욕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위증죄에 대한 처벌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무겁다고 한다. 미국이 다민족 국가로 이루어져 있고 계약에 의한 사회이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것을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다룰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직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미국은 정의보다 정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은 가장 오래된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다 보니 민주공화국을 지속하기 위한 가치를 정립했고 그 핵심이 정직이었던 모양이다. 트럼프 치하의 미국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그가 거짓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최근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전같았으면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을 미국시민들이 그냥 지나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적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다. 민주주의가 부패하고 한계에 직면하면 스스로 파시즘적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항상 파시즘적 현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보면 민주주의 국가가 파시즘적 현상을 보일때 그 해악은 전제정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파시즘적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추미애는 아들 문제로 국회에서 위증을 했다.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은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도 용납되지 않는다. 차라리 위증을 하느니 말을 하지 않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낫다.

추미애 아들의 휴가문제는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픈 사람에게 그 정도의 편의는 누구나 봐 줄 수 있다. 추미애 아들보다 더 한경우도 많다. 지휘관의 재량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군대는 원래 규정과 규칙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군대의 임무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나 위험 그리고 분쟁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휘관의 역량과 능력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안에 군대 있어도 군대안에 민주주의 없다는 말은 지휘관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지휘관에게 재량권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군대는 정말 해야할 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물론 그런 재량권에는 책임도 따른다.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도 지휘관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왕조시대에는 목을 내 놓았다. 재량권을 행사할 때는 내 목숨을 내놓는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

추미애의 잘못은 아들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자신이 직접 보좌관에게 이야기해서 부대에 휴가문제를 조치하게 했다. 보좌관에게 사적인 일을 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하는가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의원 또 그 당시 원내대표라는 공인으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대에 전화를 걸어서 아들 휴가 문제 좀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꼴 사나운가? 그정도는 아들 본인이 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보좌관이 충분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보좌관이 의원의 개인적인 일을 해주지 않으면 의원은 자신의 일을 하느라고 나라일을 하지 못한다. 비서는 개인적인 일도 하는 것이다.

정말 문제는 추미애가 국회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 거짓말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당연히 국회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다. 현 정권은 즉각 추미애를 사퇴시키고 사법적인 조치를 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현 정권도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적이 되기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추미애는 자신의 아들이 동부지검에서 무혐의 처분되자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하면서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얼굴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해 놓은 자가 검찰개혁을 들먹이다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감옥에 가있어야 할 사람이 검찰개혁이라니 말이 될법한 소리도 아니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무혐의 처분하려고 검찰개혁하고 검찰인사를 했나보다.

세상에는 물러설 수 없는 선과 가치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정권이 중요해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다. 추미애는 그 선을 넘었다.

현정권도 방조자다.

북한이 어떤 대상인지 잊어 버렸나 보다.

여야 할 것없이 이번 어업지도원 사건이후 북한이 어떤 존재이며 북한과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를 잊어 버린 모양이다.

북한은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다. 정전협정이 그대로 유효하며 한국전쟁은 법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평화조약은 고사하고 아직 종전선언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북한을 이웃의 보통 국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상대다. 불과 얼마전까지 서로 총을 쏘았다. 서로 죽이고 죽였다.

우리측 어업지도원이 그냥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총맞고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적대국가의 영역에 들어가서 사살당한 것이다. 여당과 야당 가리지 않고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이들이 북한을 어떤 사대인지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우리가 호통을 치고 야단을 치면 북한이 하자는대로 다 해줄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TV와 방송에서 나온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도 어이가 없다. 북한은 우리를 전략적으로 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북한을 상대하고 있다. 이런 경우 백이면 백 모두 진다. 어업지도원 사건으로 국민들의 감정이 고조되었다. 주로 보수적 경향의 정치인들과 방송들이 어업지도원 사건의 파장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도 거기에 어기적거리며 따라가고 있는 양상이다. 적어도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국민들의 감정이 고조되었다고 해서 정치권이 그렇게 따라가서는 안되는 법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인 충돌을 방지하고 예방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평화가 아니라도 소극적인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도발해올 때도 그냥 조용이 있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방이 도발해오면 우리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어떤 이유든 우리 국민이 적대국가인 북한의 영역에 들어갔다. 그럴 경우 어업지도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북한의 결정사항이다. 북한은 그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 결정한다. 우리는 북한의 결정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우리라면 귀순한 사람을 살려서 인도적으로 대할 것이다.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북한에게 우리와 같은 인도적 규범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해 비난은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번에 어업지도원을 사살한 것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분명히 남한의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분명한 신호를 주고자 한것이다. 파르르해서 북한을 비난하느라고 정신을 잃어 버리기보다는 북한이 우리에게 보내고자 하는 신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옳다.

남한과 북한중 어느 측이 더 강력한 국가일까? 우리는 경제력이 강하니 당연히 우리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국가가 더 강력한지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견고하고 강력하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는 국가다. 지구상에서 핵을 가진 국가가 몇나라나 되지 않는다. 핵은 그냥 통상의 무기가 아니다. 핵보유국과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아마 북한은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경제재제만 풀리면 북한이 남한을 뛰어넘는 경제적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경제재제가 풀리면 북한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룰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만일 북한이 경제발전에 따른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소한다면 남한보다 비교우위에 설 가능성도 높다.

국민의 절반이 기본소득 수준에서 허덕거리는 남한과 빈부격차가 거의 없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남한은 절대로 유리하지 않다. 지금처럼 있는자들이 횡포를 부리면 결과는 뻔하다. 우리 국민의 절반이 남한이 아니라 북한을 선택할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시는가?

북한과 우리는 적대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어업지도원 사건으로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냈다. 말로만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이야기 했지 사실 속으로는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정의당의 심상정은 목불인견의 수준이다. 심상정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다. 가장 이성적으로 무엇이 합리적이고 우리에게 유리한가를 따져야 한다. 휘발성이 강한 감정적 요인에 좌우되어서는 남북간 화해와 발전은 없으며 우리에게 이익은 없다.

북한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 보다 우리가 북한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남한이 북한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면 우리는 경제영토를 확대해야 한다. 비록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통일은 하지 못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북한은 우리가 경제영토를 확대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인 대상이다.

북한은 경제재제가 풀리면 남한을 쳐다볼 이유가 없다. 북한은 일본과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마음대로 교류를 할 수 있다. 정작 시간이 없는 것은 우리다. 북한에 대한 경제재제가 풀리기 전에 남북한의 긴밀한 경제관계가 구축되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누가 착각을 하고 있는것 같은가? 북한인가? 아니면 남한인가?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어업지도원 사건에서 여야 신문방송을 막론하고 남북관계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정치지도자는 국민의 감정에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된다. 경우에 따라 국민들의 감정도 잘 다스리고 이끌고 가는 역할도 해야 한다.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여론에 따라가기만하면 어떤 결과가 되겠는가? 여야 모두 북한을 무슨 이웃집 하인인줄 아는것 같다.

정신차리시길. 상대는 만만치 않다. 경적필패.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진다.

헛 힘쓰는 국민의 힘

<국민의 힘>에 애시당초부터 아무런 기대도 없다. 원래 없어져야 할 것이 저렇게 남아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제대로된 견제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의 당>이 지니고 있는 태생적 한계는 김종인이 들어가서 마사지하고 화장을 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한계가 뚜렷해 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한심하고 답답해서 <국민의 힘>에게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정권중에서 문재인 정권보다 더 잘못하는 정권은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탄핵을 당했던 박근혜 정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이 건재한 것은 순전히 <국민의 힘>이 무력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정권은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파시즘적 현상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연성 파시즘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최근의 현상을 연성파시즘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당시에는 시대적 상황이 파스즘의 탄생에 작동을 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시대적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문재인 정권스스로 자가 발전하여 파시즘적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파시즘보다 질적으로 더 나쁘다.

최근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파시즘적 현상은 권력 중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연성 파시즘>이라기 보다는 <쿠데타적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최근 문재인 정권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정책과 행동들이 철저하게 문재인 권력의 안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력의 안전을 위한 각종의 조치들이 실제로는 파시즘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어준과 유시민에게 괴벨스의 그림자를 진하게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힘>은 엉뚱한데 힘을 빼고 있다. 국민의 힘은 문재인 정권이 지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공격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이벤트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추미애의 아들 병역문제나 어업지도원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솔직하게 말해서 추미애의 아들 휴가 하루 이틀 늦게 들어간 것이 무슨 큰 일인지 모르겠다. 그것보다 더 한 일도 무지하게 많이 보았다.

군대에는 지휘관 재량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재량은 큰 문제가 없으면 보장되어야 한다. 유사시 거의 모든 것이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참 작전하다가 지휘관 재량을 인정할 수 없어서 규정을 만들려고 작전 중지할 것인가?

어업지도원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을 잠시 끌기는 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초기 정보출처를 노출한 것 이외에 크게 잘못한 점이 없다. 군의 정보판단에 따르면 어업지도원은 월북을 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북한군이 사살을 한 것이다. 북한의 영토내에서 이루어진 사건을 우리 정부와 군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냥 두고 볼 뿐이다.

설사 월북이 아니라 뭔가 잘못되어서 떠내려갔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 경우 처분권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있다. 북한은 어업지도원을 남한의 침투간첩이라고 생각하고 사살할 수도 있다. 앞으로 북한에게 북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절대로 사살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인가? 어업지도원 사건은 우리 정부와 군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다.

그런 것을 자꾸 건드리다 보니 문재인 정권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를 따지고 공격하는데 아무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지지도가 올라가도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아주 쉽게 승리할 수 있는 편한 야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나 울산시장 선거부정문제, 권력형 비리 냄세가 나는 투자범죄, 재벌과의 유착의혹과 같은 것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건건이 모두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것들이다. 아마도 국민의 힘도 그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닌지 모르겠다.

김종인이 들어와서 <국민의 힘>의 정책 상당부분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같은 정책을 분명하게 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같은 정책도 이제는 더 이상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넘어설 수 있는 비책이 아니다.

북한과 무슨 일만 있으면 무작정 얼굴을 붉히면서 미국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조무래기들이 경제민주화를 해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국민의 힘>이 문재인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태우 정권의 대북정책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더욱이 지금의 문재인 정권은 북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권력의 지지를 올리기 위한 국내정치적 목적으로만 사용했을 뿐이다. 북한 정책기조를 바꾸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기회가 주어져 있는데 그것을 못잡으면 권력도 잡을 수 없다.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국민의 힘은 희망이 없다. 모든 일이 헛 힘쓰는 것에 불과하다.

본질과 핵심을 항상 회피하는 정당에게 무슨 존재이유가 있겠는가?

만년 2등을 하면서 따뜻한 국회의석에서 낮잠 자면서 주무시는 수 밖에…

어업지도원 사건 조금 깊게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다. 어업지도원 문제를 보면서 우리가 말하고 주장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조금만 따져보자

어업지도원이 북한수역에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군과 정부는 어업지도원이 북한수역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군과 정부가 북한에게 우리의 정보망에 의하면 우리의 어업지도원이 너네들에게 월북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월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배에서 부지불식간에 떨어져서 살기위해 너네들에게 월북한다고 이야기 한 것이니 그들 다시 돌려달라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전투기로 타격을 해야 한다고 ? 장난치나? 그런 소리를 하는 전직국회의원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전쟁은 아이들 소꼽놀이하다고 서로 다투는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월북하겠다고 한 어업지도원이 사실 그게 아니니 그냥 돌려달라고 했다고 하자 그럼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우리 정보망이 북한을 감청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노출하게 된다. 물론 북한도 우리가 자기들을 감청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북한도 우리를 감청하고 있다. 북한의 감청실력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을 감청한다고 해서 그 사실을 그대로 알려서는 안된다.

감청도 다양한 방법과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감청부대가 어업지도원이 월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을 어떤 수준에서 파악했는가에 따라 우리의 정보능력이 그대로 노출된다. 만일 북한이 약호나 암호로 통신을 했는데 그것을 듣고 우리가 어업지도원이 월북했다는 것을 알아 냈다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북한은 우리가 자신들의 약호나 암호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군이 최초단계에서 어업지도원이 월북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면 안되는 것이다. 평문으로 통신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무선인지 유선인지 아니면 최초단계인지 중간단계인지에 따라 북한은 우리가 어떤 수준까지 감청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게 된다.

영화라도 보았으면 우리의 정보능력을 노출하는 것이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군의 정보능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생명도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아마 앞으로 당분간 우리는 북한의 통화를 감청할 수 없을 것이고 상당기간 동안 북한에 대해 깜깜이로 살아야 할 것이다. 북한도 바보가 아닌다음에야 감청당하지 않기위해 많은 보완을 할 것이다. 북한이 그러지 않으면 북한군대도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북한군이 그 정도면 한국의 안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제대로 했으면 군의 정보판단을 청와대에서 논의할때 월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언론에 공개하면 안되는 법이다.

군과 청와대는 “실종된 어업지도원이 북한수역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직 어업지도원이 왜 어떻게 북한수역으로 갔는지 알 수는 없다. 무슨 이유로 우리 어업지도원이 북한에 가 있는지 북한에게 확인을 하겠다. 그러기 위해 우리군과 정부는 북한측에게 어업지도원 면담을 요청한다”라고 했으면 되는 문제였다.

군과 청와대는 북한에게 우리가 감청해서 어업지도원이 월북했다는 것을 알리는 대신 그냥 우리 국민이 북한측으로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해 달라라고 했으면 되는 것이다.

이틀전에 청와대가 정보의 출처보호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군과 정부는 내가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모두 다 공개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군의 작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만 공개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미연합작계도 그냥 인터넷에 올려 놓고 공개해야 할 정도다. 정보의 출처보호는 한미연합작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민감한 사항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세월호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월호와 어업지도원 사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월호는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책임을 전가하는데 급급했고 사실을 숨겼다.

어업지도원 사건은 우리의 능력범위 밖에 있는 사건이었다. 사고로 숨진 세월호 사건과 달리 북한의 정치적 고려에 의해 사살되었다. 우리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고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군과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어업지도원이 북한쪽에 가 있는데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할 수는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것은 아쉽다.

당시 군은 아마도 조치를 하기 보다는 정보를 추적하는 단계였을 것이다. 조금 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단계지 무슨 조치를 할 단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일종의 불가항력적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당시 군과 정부가 이렇게 까지 될지 알았겠는가? 월북한다고 했으니 그냥 두고 보았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어업지도원 돌려달라고 하면 우리도 탈북귀순자 북한에게 모두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 어업지도원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 없이 많은 말과 말들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북한의 어업지도원 사살에 대한 사과와 김정은 친서의 의미

북한이 어업지도원 사살에 사과하는 전통문과 김정은의 친서를 보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평가했던 내용의 기본적인 틀에 대한 수정의 이유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북한의 사과와 친서로 하루만에 남한내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없다. 유시민과 같은 사람들은 북한의 사과와 친서가 담고 있는 전략적인 의미를 해석하기보다는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정신이 없다.

문재인 정권의 비극은 국내정치적 요소와 대외정치적 문제의 경중과 균형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시민 같은 사람이 정권의 옹호자로 나섰다는 것이다. 본질은 어디로 가버리고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유시민은 국민들에게 왜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바라보지 않고 달을 보느냐고 호통을 치는 사람인 것이다.

어업지도원의 사살과 북한의 반응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보자

첫째, 월북인가 아닌가?

이번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결론은 월북으로 보아야한다. 군이 월북이라고 한 것은 당시 북한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휘계통으로 어업지도원이 월북을 하려한다는 것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직접 확인되지 않았으면 군이 그런 평가를 할 수 없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우리국민을 북한이 사살하고 불태우다니 하는 분노는 어업지도원이 월북했다면 이유없는 주장이 된다. 북한은 어업지도원이 월북했다고 하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월북한 사람을 사살했다면 그것은 심각한 인권범죄문제다. 전쟁에서 포로를 살해해도 재판을 받는다. 월북하겠다는 민간인을 사살했다면 당연히 북한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어야 한다. 당연히 검문에 거부했기 때문에 사살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 월북하지 않았다고 하는 정치세력은 오로지 현재 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목표때문이다.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정부만 비판할 수 있다면 군의 정보판단도 믿지 않고 부정한다. 군이 월북이라고 할때는 그냥 그럴 것 같아서 하지 않는다. 정보의 충첩성과 신뢰성을 평가해서 나온 결과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도 월북이란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접근했다면 곤경에 처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러지 않고 분위기와 여론에 휩싸이다 보니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황에 처해 버린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고려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군의 정보판단은 그 어떤 추측보다 사실에 근접한다.

둘째, 북한이 사과하고 김정은 친서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사과하고 김정은 친서를 보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북한이 사과하고 친서를 보낸 것은 문재인 정권과 집권 더불어민주당을 존중해서가 아니다. 유시민은 북한의 사과와 친서를 보낸 것을 문재인 대통령을 생각해서라고 하면서 북한의 전략적 의도를 파악하는 기회를 제거하고 말았다.

북한의 의도를 살펴보기 전에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사과를 하고 친서를 보내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남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여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여유는 핵무기에서 나온다. 자신들이 핵보유국가이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여유를 북한이 전정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최근들어 블러핑도 하고 있다. 과거 북한은 자신들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북한의 전략적 이점은 자신들이 한 말을 지키는 것에서 찾았다. 핵무기를 보유한 지금 북한은 그런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북한의 사과와 김정은 친서를 보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북한이 이번 사과와 친서를 통해 노린 것은 남한내 정치세력들의 분열이다. 문재인 정권이 북한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국민의 힘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북한의 사과와 김정은 친서는 전형적인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다. 남한내 정치세력의 단결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문재인정권이 국민의힘과 같이 북한을 비판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사과하고 친서까지 보낸 것이다. 물론 남한내 북한과 화해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곤란한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고려도 작동했을 것이다.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이 유효하게 작동했다는 것은 유시민이 즉각 증명해 주었을 뿐이다.

북한이 이렇게 나왔으니 문재인 정권도 고민이 될 것이다. 이미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의 손바닥안에 있다. 처음에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의 북한을 너무 우습게 알았다. 지금 김정은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사과와 친서로 지금까지의 강경한 태도를 접고 다시 북한에 유화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을런지 잘 모르겠다. 문재인 정권은 이번 사건으로 방향타를 바꾸어 잡았다. 원래의 모습, 원래의 생각으로 돌아간 것이다. 모처럼의 기회를 버리고 다시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려 할 지 모르겠다.

북한도 이번 사과와 친서로 문재인 정권과 대화를 할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이미 사과와 친서로 거둘수 있는 목표를 달성했다.

셋째, 북한 전통문의 내용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는 구태여 나열해서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번 처형건은 북한 최고 권력의 지시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정은이 직접 처형을 승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은 전통문에서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 아무것도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사과와 친서를 이유로 그냥 지나가려고 한다면 잘못된 일이다.

남한이 지금처럼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은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때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대응하는 방향을 수립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군의 정보판단대로 월북자로 규정했다면 일이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월북자를 북한이 처형했는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번 사건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닥치고 북한규탄은 쉽지만 우리는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북한의 연평도 어업지도원 사살과 정부의 대응문제

연평도 어업지도원이 북한수역에서 사살당했다. 먼저 이번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어업지도원의 명복을 빈다. 세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죽는 것은 세상이 죽는 것이요, 우주가 소멸하는 일이다.

북한이 민간인을 사살한 것은 문제가 많다. 무슨 이유든지 민간인은 구조해야 한다. 당시 어업지도원은 항거불능의 상태였고 월북의사까지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경우 당연히 구조한 다음 보호조치를 취해야 했다. 북한이 어업지도원을 구조하지 않고 사살한 것은 여러가지 정치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방식은 과연 우리가 상황을 합리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북한이 우리 국민을 사살했다며, 제2의 박왕자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왕자 사건과 어업지도원 사살 사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람이 죽었다고 모두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국민들을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과 정부및 정치권의 사건처리 과정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첫번째, 월북인가 아닌가의 문제

군은 각종 정보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어업지도원이 월북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의 판단을 신뢰한다. 군이 그렇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를 고려한다. 군의 검토결과는 당연히 신뢰할 수 밖에 없다.

만일 월북이라면 현재 정치권과 언론이 다루고 있는 문제접근 방식은 뭔가 크게 방향이 틀렸다. 어업지도원이 월북을 했다면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보호를 스스로 거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어업지도원이 부모형제 자식까지 놔두고 월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 볼 때 그가 월북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만일 월북이라고 한다면 정부와 정치권 언론은 무작정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월북이라고 판단한 군의 입장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을 위시하여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사건에 대한 접근 방식도 이해하기 어렵다. 자초지종을 따지지 않고 바로 우리 국민을 북한이 사살하다니..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월북하다가 사살당한 것까지 국가가 보호할 수 없다. 우리도 철책선으로 귀순하는 북한병사들을 사살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없지 않았다. 철책을 어떻게 넘었는지에 따라 전방 지휘관의 책임문제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냥 사살해버리면 깨끗하게 지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은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이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 국민”운운하다 보니 국가의 보호를 거부한 사람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 개념과 방침도 정리하지 못한채 정치적 부담을 덜어내는데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 여당은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기 보다는 야당의 정치적 공세와 국민들의 감정만을 고려하여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월북이냐 아니냐가 문제의 쟁점이 되고 있다. 월북이 아니라고 해야 북한의 만행을 속시원하게 규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월북이 아닐까?

문재인 정권은 이번 북한의 행위를 우리 국민을 극악무도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아마도 북한과 관계를 정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재인 집권후반기의 대북정책은 적대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아니라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데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두번째, 북한의 의도

북한은 4시정도에 어업지도원을 발견하고 월북의사를 확인했다. 그리고 약 5시간 후인 9시경에 사살을 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약 5시간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안의 성격과 처리과정의 중대성을 볼때, 이 결정은 현지가 아니라 평양의 대남부서가 직접 결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방부장관이 코로나 운운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북한은 어업지도원 사살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게 분명하게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는 어떤 경우에도 대화와 화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통해 북한의 의지를 확실하게 읽었기 때문에 ‘국민의 힘’에 보조를 맞추어 북한을 비판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종전선언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북한의 이런 강경한 행동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뭔가 결정적인 행동을 결행하기 위한 사전 전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셋째,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서 정보를 다루는 군과 청와대의 아마츄어리즘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정보는 출처보호가 생명이다.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서 정보의 출처를 알 수 있는 내용이 마구 노출되어 버렸다. 전시같으면 군사재판에 회부될 일이다. 청와대안보실장은 서훈이다. 서훈은 국정원장 출신이다. 국정원장 출신이 정보의 기본을 모두 무너뜨렸다. 군의 정보계통도 자신이 생산한 정보를 이렇게 노출해서는 안된다.

군은 정보의 출처와 내용을 밝히면 안된다. 오로지 판단만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의 출처를 알 수 있는 정보의 내용은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되지 않는다. 정보의 출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적행위이다.

정상적이라면 청와대안보실장, 국방부 정보본부장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이다. 물론 이렇게 된것은 모든 것을 소상히 밝히라는 대통령의 지시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지시라고 하더라고 안되는 것은 안되는 법이다. 대통령이 이적행위하라고 해서 이적행위 할 것인가? 대통령의 지시라하더라고 반역행위는 반역행위일 뿐이다.

정상적인 국가의 군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점까지 지적해야 나라가 바로간다. 언론도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아무생각없이 살면 안된다.

주객전도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본원리를 실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세계다. 특히 국제관계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최상인가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최상의 방법은 미국과 중국의 싸움을 이용해서 양쪽으로 모두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이나 중국 중 어느 한쪽과 너무 가까워지면 안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안별로 최상의 조건을 따져서 거래를 하면된다.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에 너무 가까이 가면 반드시 그에 따르는 반대급부의 손해를 당하게 된다.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과 떨어뜨려 놓으려 하고 미국은 한국을 계속 자기편에 두려고 한다.

최근들어 미국이 한국을 붙들어 매어 놓기 위해 총력적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언론보도에 미중패권경쟁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보도가 자주 눈에 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어보는 학자들이 대부분 미국사람들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수립하는데 상당히 깊숙하게 관여한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본다. 답은 들어보나 마나다. 미국의 관변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중국에만 관변학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관변학자가 많다. 우리나라 언론에 소개되는 미국 국제정치 학자들의 대부분이 관변학자다.

대부분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와중에 독자적인 노선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을 저울질하기 보다는 어느 한편에 확실하게 붙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어느한편에 붙어야 한다는 대상은 미국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단계 더 나아가 미국은 동맹국에 관심이 없으므로 한국이 미국을 동맹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을 정도다. 미국이 동맹을 필요로 하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가 동맹하자고 해서 유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이가 없는 주장이 이렇게 판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신문의 상당수는 한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한 지면을 내놓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진보나 보수 언론의 문제가 아니다. 총체적인 현상이다.

한반도는 미중패권경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대다. 한반도를 장악하는 측이 패권을 장악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을 놓쳤고 중국은 한국을 얻으려 한다.

한반도처럼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도 이렇게 스스로 불리한 위치로 내려가는 경우도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일이다.

중국이 최근들어 한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난번 사드배치이후 한국에 대한 보복적 대응이 초래한 부작용 때문이다. 한국내에서도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가 심각하게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사드배치를 이유로 경제적으로 보복하면서 한국사람들은 오히려 반중감정이 더 커졌다.

중국이 사드배치 보복을 하기 전에는 한국인들이 모두 중국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한번에 바꾼것이 중국의 보복이었다. 한국인들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환상을 깨어 놓았던 것이다. 한국사람들의 환상을 깨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 대한 환상을 깨고 나니 문제는 미국이 되어 버렸다. 수백년을 여기 아니면 저기에 빌붙어 살아오던 습관 때문인지 이제는 미국과 잘지내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또다른 환상이고 또다른 우상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나에게 최상의 이익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청소년 아이들이 좋다고 선택하는 것을 보면 간혹 그게 아닌데 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대부분 무엇이 자신의 삶에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를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국인의 선택이 종종 청소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특수한 관계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무리 특수한 관계라도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하면 조금씩 그에 따라가야 하는 법이다. 변화에 따라가지 않고 저항하면 한꺼번에 폭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을 찾으려면 미국의 관변학자에데 물어볼 것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모색하고 있는 국가들의 예를 찾아 보는 것이 옳다.

그러기 어려우면 미국학자들의 입장만큼 중국학자들의 입장을 소개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일방적인 보도를 하면 국민들이 세뇌를 당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매사 손해만 보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의 대부분이 무엇이 국익인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남들생각을 들어서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지를 정하지 말고 내가 처한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해서 스스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라는 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이 서글프다.

우리나라에는 왜 무엇이 최상의 방안인지를 스스로 생각하는 학자나 정치인이 없을까?

미중패권 시기과 일본과 독일의 차이

아베가 물러나고 스가가 수상이 되었다. 일본이 달라져야 동아시아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변화는 미중 패권경쟁을 맞이하여 시대적 역사적 요청이다. 어차피 미국은 지는해다.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떨어지는 것은 가속도가 붙는다.

떠오르는 해는 누르기 어렵다. 그러다가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지금의 중국을 힘과 강압으로 내리 누르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세상 모든 것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앞으로 처하게될 위기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상의 변화는 다양한 위기를 초래한다. 때로 이런 위기들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한다.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 하기 보다. 위기가 심각한 위협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중패권경쟁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과는 간단하다. 첫째, 미국이 이긴다. 둘째, 중국이 이긴다. 셋째, 서로 경쟁하면서 같이 존속한다. 세번째 미국과 중국이 지금과 같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을 지속하는 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언젠가 미국이 이기든 중국이 이기든 결정이 될 것이다. 시간이 가면 중국이 우위에 서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과 같이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하는 시기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국가와 지역으로는 매우 소중한 기회다. 지금과 같은 기간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현재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해지겠지만 그것은 극복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 어느정도 대처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나마 우리가 향유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상당히 변화할 것이다.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민족문화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독립국으로 사느냐 위성국, 조공국으로 사느냐의 문제가 닥친다.

미국이 빠져나간 곳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관계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원래 중국이 생각하는 국가들의 관계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는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도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이란 힘이 빠져나가게 되면 일본도 중국으로부터 저항하기 어려운 구심력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 미국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제관계에서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는 없다. 이익이 되는 나라와 손해가 되는 나라만 있을 뿐이다.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더라도 유일하게 독자적인 지위와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는 북한이다. 핵과 미사일 때문이다.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 특히 북한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핵능력을 가지고 중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북한과 힘을 합쳐야 중국의 압력과 영향력을 완화할 수 있다.

미국이 실패한 것은 북한이 지니고 있는 전략적 지정학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대화는 북한이 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했어야 했다. 미국이 패권경쟁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그 이유중 가장 큰 것은 북한을 회유하고 설득해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기록될 것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팽창하게 되면 한국이나 북한이 혼자서 막아내기 어렵다. 최상의 방향은 남북한 일본이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현재가 아니라 아직 메이지 유신과 중일전쟁의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를 위시한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의 세계는 메이지 유신과 태평양 전쟁 사이로 고정되어 버렸다. 일본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과거의 경험과 영광을 잊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텐진조약으로 서구제국주의자들의 먹이감이 되었던 중국은 다시 과거의 힘을 회복했다. 별것도 아닌 줄로 알았던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서 무장했다.

중국의 패권적 영향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물러나갈 미국에게 몰빵하는 것 보다 남북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커지는 중국의 힘을 혼자서 다 막아 보겠다고 덤비는 것보다 남북일 협조체제를 강화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쉽고 지속적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협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미국이 마음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북아지역에서 남북과 일본이 서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일본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메이지 유신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일본 정치인들과 주류세력들의 세계관과 인식의 변화없이는 진정 중국의 세력팽창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갈라치기를 할 것이다. 북한과 남한을 갈라치고 남북한과 일본을 갈라칠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동북아지역 국가 분열구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21세기 중국이 부상하는 시대의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일본수상이 아베에서 스가로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스가가 대화를 하자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은가?

동북아지역의 진정한 변화는 일본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동북아 지역이 유럽과 같이 단결하지 못한 것도 일본의 책임이다. 그점이 독일과 일본의 차이다.

독일은 과거에서 벗어나 있고 일본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망상적 기대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는 머지 않아 세계경제가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동안 경제위기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기도 했다. 실물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을 위시한 국가들은 천문학적 수준의 돈을 푼다. 금리는 이제 더 이상 내릴 수도 없다. 실업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며칠전 미국에서는 주택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며칠간 미국 주식시장이 급락한 것은 앞으로 오게될 경제위기의 서곡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들게 한다. 세계적인 학자들 중 일부는 앞으로 오게될 경제위기는 1930년의 공황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아마도 1920년대 같았으면 이미 경제위기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경제공황에 빠질 거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위태위태하게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설픈 분석이 될 수 있으나 그래도 서양 현대사를 조금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최근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1930년 공황이 발생할때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없었다. 중앙은행이 없었으니 월스트리트는 하고싶은 대로 했고, 이를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미연준이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공황의 산물이다. 결국 1930년대에 발생한 공황은 국가가 경제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에도 여러차례 경제위기가 찾아왔지만 1930년대와 같은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점에서 작은 정부와 큰 정부 중 어느것이 효율적인가를 논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의미하지 않나 한다.

한참 경제가 잘돌아갈 때는 국가가 개입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럴때면 모두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다가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적극개입해서 구제금융을 하고 세금도 감면해서 기업을 살려달라고 한다. 경제가 좋을 때는 자유방임을 주장하다가 경제가 나빠지면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국가가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때문이다. 지금 보면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거의 다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보를 할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의 끝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문이될 수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돈도 풀만큼 풀었다. 아마도 미국은 더 이상 찍어내면 상황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찍어내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협을 받는다. 이미 달러보다 유로가 더 신뢰성이 있다는 소리도 있다.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이자를 실제적으로 마이너스로 만드는 수 밖에 없다. 은행에 저금을 하면 이자를 받는 것이다. 국채를 사면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고 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첫번째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자산을 구입하는 것이다. 토지와 금 그리고 주식을 구입하는 것이다. 아마도 주택가격과 금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토지의 구입은 정부가 제동을 걸 것이다. 보유세를 높여서 매입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돈을 쓰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노릴 수 있는 요인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게 하는 것이다. 은행에 넣어 놓거나 국채를 사는대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많이 주고 돈을 더 쓰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경기가 어려운 것은 돈을 써야 할 보통사람들의 가처분소득이 너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처럼 아파트 사느라고 수입의 거의 전부를 저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슨 내수시장이 돌아가겠는가?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은 코로나 19도 문제지만 집사느라고 영끌해서 더 이상 쓸돈이 없는 이유도 있다.

만일 기업이 현금을 지나치게 보유하지 않고 나눠주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돈이 은행에 머물지 못하고 시장을 떠돌게 되면 경제는 그래도 돌아가지 않을까? 빈부격차도 어느정도 해소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망상인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서 돈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가치가 떨어지게 해서 경제가 잘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예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강력한 능력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경제위기가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처럼 전쟁을 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럼 뭔가 다른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 믿는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던 부의 재분배와 빈부격차 해소없이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상일지라도 기대와 희망은 놓고 싶지 않다.

암울한 시대

어떤 시대건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있다. 그 세력들은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왕의 시대에는 왕을 뒷받침하는 귀족들이 그 시대의 주도세력이었다. 그들은 토지를 바탕으로 경제를 운영했다. 토지귀족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인인 세계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서 싸웠다.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이었다. 서양의 귀족들이 모두 군대에 가서 복무한 것은 그런 이유다. 그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하면서 매우 고상한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것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각각의 시대에는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있는 법이다. 귀족의 시대에는 귀족들이 부르주아의 시대는 부르주아지들이 주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부르주아지들의 전쟁이었다. 제1차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고 제국주의를 만들어 나간 세력들은 부르주아지가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독일과 이탈리아에 파시즘이 등장했다. 파시즘의 핵심세력은 중산층이었다. 중간과 약간 아래의 계층이었다. 그들이 파시즘에 열광한 것은 조금만 잘못하면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파시즘의 선동과 광기는 바로 중산층들이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이끌어가는 세력, 주도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의 시대는 자본가들이었다. 3공화국과 5공화국의 자본가들이 서양의 부르주아지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서양의 자본가들은 적어도 자기것을 자기가 지키겠다는 책임감이라도 있었다는 것이고, 당시 한국의 자본가들은 내것을 다른 놈들에게 지키게 했다는 것 차이다.

한국사회에서 열심히 돈벌어 국가에 세금내고 국민들 먹여살린다고 주장하는 기업가들을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큰 이유는, 그들이 해야할 의무를 제대로 행하지 않고 권리와 특권만 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돈있고 권세있는 집안의 자식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당시 친일파들의 자식들 중에서 군대에가서 전사했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보라.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 문재인 정권으로 대표되는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어떤 이들일까? 소위 586운동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조금 들여다 보면 계급적으로 중산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산층중에서 상층부와 중간 그리고 하층부를 포함해 매우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을 보면서 중산층들이 권력을 주도하면서 파시즘이 휩쓸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무슨 이유때문일까? 아마도 한국의 중산층들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중산층도 다양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현재 문재인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한정한다.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중산층, 소위 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어찌 어찌 집한두채 장만하고 자식들 공부시켰다. 그들은 여기서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와 위기의식들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독일의 파시즘을 주도했고 지지했던 계급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국과 정경심이 강남에 빌딩하나 사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것은 중산층을 넘어 상류층으로 진입해서 내 자식들이 잘못해서 하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소시민적 열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미향은 조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서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열망 말이다.

조국과 윤미향이 보여준 것은 그들이 소시민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어디 조국과 윤미향 뿐인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자들, 지방의원들 모두 자신들의 소시민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에 최우선의 관심을 지니고 있다. 만일 그들이 세상을 바꾸어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게 하고자 했다면,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문재인 정권들어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전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이 평생 일구어 온 소시민으로서의 계급적 기반을 지켜보고자 하는 눈물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모순을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고 지키는데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과 그 정권을 구성하고 또 지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계급적으로 소시민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에 혁명가들은 보이지 않고 파렴치한들만 우글거리고 있다. 대통령이 젊은이들을 앞에 두고 수십차례 공정을 이야기 했지만, 그가 말한 공정에서 그 어떤 감흥과 흥분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가 말하는 공정과 내가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내용이 다르다.

이런 시대가 쉽게 끝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상적인 선거로는 해소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야당이라고 하는 ‘국민의힘’은 정당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아무리 실정을 하더라도 국민의 당이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혹여 국민의 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우리나라는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소시민이 주도세력이 된 현재의 권력은 웬만한 충격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아니었다면 파시즘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 처럼,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도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암울한 것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