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악과 작은 악은 상호 공존한다.

베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란 책을 사놓고 그냥 책장에 꽂아둔 지 30년이 지났다. 갑자기 그 책을 머리속에 떠올린 것은 순전히 나폴레옹 때문이다. 나폴레옹에 관한 자료를 보다 독재라는 문제가 왜 발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왕정에서는 독재란 말이 있을 수 없다. 왕이 전권을 갖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전제라는 용어는 독재라는 말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전제정이란 용어는 가치 중립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역사의 아버지 헤르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가 전제정을 채택한 것은 그리스 민주정의 혼란을 보고 그 대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한다. 아마 왕정이 실제 정치에 구현되는 방식을 전제정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정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것에 불과하다.

독재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독재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단일 뿐이다. 독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도입했다면 독재는 어떤 경우도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질서를 중단시킨 구데타도 당연히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지 않다.

과거에 대법원에서 성공한 구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그때 대법원판사들은 왕정과 민주정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왕정이라면 성공한 구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한 어떤 구데타도 처벌받아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구데타 자체가 범죄이기때문이다.

만일 구데타를 성공하고나서 앞으로 민주주의 하지 않고 왕정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쩔지 모르겠다. 시대정신이 바뀌어서 모든 국민들이 ‘그래 앞으로 민주주의 그만하고 전제정으로 돌아가자’하고 동의한다면, 성공한 구데타를 처벌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독재도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내용적인 독재와 형식적인 독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실제 독재는 헌정을 중단시키는 구데타보다는 정상적인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경우다. 프랑스의 제2제정도 정상적인 과정으로 민주주의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갔다. 박정희의 5.16 같은 것은 어찌보면 독재의 예외적 형식 아닌가 한다.

독재에도 계보가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적 과정을 통해 독재가 되는 경우, 그리고 헌정질서를 중지하고 독재가 되는 경우다.

독재중에서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은 형식적인 것보다 내용적인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질서를 준수하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서서히 내용적 독재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래통합당에 있다고 본다. 국민들로 하여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개천절 집회를 두고 김종인이 앞으로는 집회를 말리는 척하고 뒤로는 3.1운동운운하면서 오히려 부추기는 것을 보면서 종자는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국민의 힘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 기껏 잘 해보아야 더불어민주당이 내용적인 독재로 가도록 지원하는 후원세력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가고 있는 독재의 길을 막을 것은 시대의지 밖에 없다. 개천절 집회 ? 3.1 운동? 모두 더불어민주당 도와주기위한 이적행위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고한 독재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일먼저 국민의 당부터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악을 제거하기위해 더 큰 악과 손을 잡으면 안된다. 악을 제거하려면 악 뒤에 있는 더 큰 악부터 제거해야 한다. 거악을 제기하기 위해 작은 악과 손을 잡는 것도 틀렸다. 어차피 악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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