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

어떤 시대건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있다. 그 세력들은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왕의 시대에는 왕을 뒷받침하는 귀족들이 그 시대의 주도세력이었다. 그들은 토지를 바탕으로 경제를 운영했다. 토지귀족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인인 세계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서 싸웠다.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이었다. 서양의 귀족들이 모두 군대에 가서 복무한 것은 그런 이유다. 그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하면서 매우 고상한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것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각각의 시대에는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있는 법이다. 귀족의 시대에는 귀족들이 부르주아의 시대는 부르주아지들이 주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부르주아지들의 전쟁이었다. 제1차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고 제국주의를 만들어 나간 세력들은 부르주아지가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독일과 이탈리아에 파시즘이 등장했다. 파시즘의 핵심세력은 중산층이었다. 중간과 약간 아래의 계층이었다. 그들이 파시즘에 열광한 것은 조금만 잘못하면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파시즘의 선동과 광기는 바로 중산층들이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이끌어가는 세력, 주도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의 시대는 자본가들이었다. 3공화국과 5공화국의 자본가들이 서양의 부르주아지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서양의 자본가들은 적어도 자기것을 자기가 지키겠다는 책임감이라도 있었다는 것이고, 당시 한국의 자본가들은 내것을 다른 놈들에게 지키게 했다는 것 차이다.

한국사회에서 열심히 돈벌어 국가에 세금내고 국민들 먹여살린다고 주장하는 기업가들을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큰 이유는, 그들이 해야할 의무를 제대로 행하지 않고 권리와 특권만 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돈있고 권세있는 집안의 자식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당시 친일파들의 자식들 중에서 군대에가서 전사했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보라.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 문재인 정권으로 대표되는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어떤 이들일까? 소위 586운동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조금 들여다 보면 계급적으로 중산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산층중에서 상층부와 중간 그리고 하층부를 포함해 매우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을 보면서 중산층들이 권력을 주도하면서 파시즘이 휩쓸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무슨 이유때문일까? 아마도 한국의 중산층들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중산층도 다양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현재 문재인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한정한다.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중산층, 소위 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어찌 어찌 집한두채 장만하고 자식들 공부시켰다. 그들은 여기서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와 위기의식들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독일의 파시즘을 주도했고 지지했던 계급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국과 정경심이 강남에 빌딩하나 사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것은 중산층을 넘어 상류층으로 진입해서 내 자식들이 잘못해서 하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소시민적 열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미향은 조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서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열망 말이다.

조국과 윤미향이 보여준 것은 그들이 소시민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어디 조국과 윤미향 뿐인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자들, 지방의원들 모두 자신들의 소시민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에 최우선의 관심을 지니고 있다. 만일 그들이 세상을 바꾸어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게 하고자 했다면,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문재인 정권들어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전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이 평생 일구어 온 소시민으로서의 계급적 기반을 지켜보고자 하는 눈물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모순을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고 지키는데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과 그 정권을 구성하고 또 지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계급적으로 소시민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에 혁명가들은 보이지 않고 파렴치한들만 우글거리고 있다. 대통령이 젊은이들을 앞에 두고 수십차례 공정을 이야기 했지만, 그가 말한 공정에서 그 어떤 감흥과 흥분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가 말하는 공정과 내가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내용이 다르다.

이런 시대가 쉽게 끝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상적인 선거로는 해소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야당이라고 하는 ‘국민의힘’은 정당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아무리 실정을 하더라도 국민의 당이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혹여 국민의 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우리나라는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소시민이 주도세력이 된 현재의 권력은 웬만한 충격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아니었다면 파시즘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 처럼,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도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암울한 것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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