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안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 수많은 사회과학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도데체 어떻게 굴러가고 있으며 어디를 향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그런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잘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의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기 위해 이름도 알쏭 달쏭한 외국학자들의 권위를 빌어올 필요는 없다. 외국학자들의 이론을 턱 들이대고 너희들 이런 것 들어나 봤어 ? 하는 것을 보면 정말 토악질이 나온다.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외국학자들의 권위를 빌어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가 기껏해야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자신의 말을 할 줄 모르고 남의 이야기를 통해서야 겨우 내 이야기를 엮어갈 수 있는 지식인들, 이런 사람들이 사대주의 근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새로운 지식과 통찰력에 대한 연구와 공부는 필요하다.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아무리 새롭고 뛰어난 지식과 학문이라고 그것을 뛰어넘 통찰력으로 우리의 실정에 맞는 해결책을 강구해 내야 한다.

최근 재난지원금 문제 그리고 추아들 문제로 시끄럽다. 정말 그런 문제들이 우리는 고민하고 시끄러워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으로 인한 국제안보상황의 변화, 북한이 핵보유국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을때 변화하는 상황, 역사상 대재앙으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경기후퇴에 대한 대응방법 등이 아닌가?

특히 앞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믿어지는 R로 인해 우리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되지 못할 수 도 있는 세상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보수나 진보나 그동안 19세기 이후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담론들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심각한 내적 모순에 빠졌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너무나 광범위한 자유를 제한없이 누리다가 자본주의 자체를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앞으로 다가 올것으로 예상되는 경기후퇴는 중국이 갑자기 부상해서도 아니고 미국의 힘이 약해져서도 아니며, 자본주의적 활동이 제한을 받아서도 아니다. 자본가들의 욕심과 횡포가 너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위시한 인류의 절반이상은 더 이상 소비지출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전체 자산의 1.7% 정도를 보유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가 굴러가겠는가? 1930년 미국에서 공황이 발생하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자본가라던 포드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올렸다. 노동자들이 가난하면 차를 살 수 없고 그러면 우리가 망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돈 많이 받는 사람들은 수입을 줄였다.

수년전부터 미국에서부터 부자들이 더 이상 돈을 많이 벌면 미국의 시스템이 위험해진다고 이야기 했다. 부유세를 걷으라고 한 부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부자 한두사람이 그런이야기 해서 바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몇몇이서 그런 말이라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말조차 없다. 천박하게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개같이 돈을 벌으면 개같이 쓴다. 개같이 벌으면 개가 된다. 돈도 정승같이 벌어야 정승같이 쓰는 법이다.

한국사회는 부의 불평등이 너무 심각해져서 국가와 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기업에게 40조가 넘는 지원을 했다. 기업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고 있었다. 그런 기업들에게 국민들에게 주는 재난지원금의 몇배를 넘는 돈을 제공한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이 무엇을 했는지 잘 보라. 기업들에게는 무한정의 예산지원을 했다. 그리고 중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는 가장 잔혹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만 해도 그렇다. 사회적 통제의 수준을 높이면서 상당수의 자영업자들이 한계에 내몰렸다. 제대로 된 장사를 하지도 못하고 한달에 수백만원씩 하는 임대료는 고스란히 내야한다. 그들은 모두 망하게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그들에게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기업에게는 얼씨구나 하면서 천문학적 예산을 지원하더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는 너희들이 알아서 살으라고 외면한다. 정권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느냐는 그들이 어떤 행동과 정책을 하는가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예산이 모자라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고통을 분담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이후 3년 반동안 국민들을 이리갈라치고 저리갈라치고 하는 바람에 서로 반목이 극심해져, 어떤 고통분담도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공무원, 군인, 교사, 대기업 임직원, 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봉급중 일정부분을 떼어내서 이번 코로나로 집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기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할 수 없도록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가지치기한 것은 모두 현재 대통령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위기가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지도자의 몫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전념하면서 그동안 못읽었던 책이나 읽으라는 한심한 대통령은 카페와 음식점 주인의 눈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피눈물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는 그의 세계에 살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 우리사회에는 더 이상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가장 전형적인 보수적 인물이며, 더불어 민주당은 가장 보수적인 정당이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정권은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더 이상 진보적인 언론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친정부적인 언론과 반정부적인 언론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도 무의미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노선도 우리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든 개선하거나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이 주장하는 진보와 보수는 현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달에 통신비 2만원 나눠주느라고 1조원 가까운 예산을 낭비하는것이 현정부다. 그 1조원과 무기구입시 9조원을 모아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해보는 자영업자와 한계생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를 만들어라. 기업들에게 지원해준 40조원을 모아서 펀드를 만들었으면 많은 사람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난리통에 멀쩡하게 봉급 잘 받는 사람들은 십시일반으로 그런 펀드에 참가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런 것 하는 사람이다.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지지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통신료 2만원 나눠주겠다는 한심한 발상으로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는가? IMF 당시 김대중 대통령 발바닥 만큼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다.

답답해서 횡설수설했다.

우리가 해야할 것들

밖에서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내부정리중이다. 정작 시급한 것은 지붕에 물이새고 벽에 금간것을 보수해서 태풍의 비와 바람에 대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엌과 거실에 책상과 의자배치 그릇 놓는 위치로 온 식구가 서로 싸우고 있다. 아무리 태풍이 심하게 오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책상과 가구를 내방에 두어야 하겠다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식구들의 이견을 조정하고 정리해야 할 아버지가 이편 들었다 저편들었다 하면서 서로 싸우게 만들고 있다.

아무래도 최근 돌아가는 국제적인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많은 전설적 투자자들이 자산을 매각하고 현금확보에 들어갔다고 하는 뉴스가 들린다. 팔아서 현금확보도 할 것이 없는 우리같은 서민들은 그런 뉴스를 들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앞일이 막막할 뿐이다.

외부에서 위협이 다가오면 안에서는 통합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통합해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누구도 국민을 통합해서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를 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는 목적은 그것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입신양명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책임의 정점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조국사건이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 간신같은 놈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만 사라지면 상황이 나아지리가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라쳐서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며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매수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거의 모든 정치적 행위의 최정점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보수야당에게 바라는 것은 그래도 뭔가 원칙이 있고 능력이 있고 믿음직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국민의 힘은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재인 정권과 여당을 헐뜯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위기가 오더라도 문재인 정권이 국민을 통합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삼년 반이 넘도록 국민들을 양쪽으로 분열시켰는데 이것을 어떻게 통합한다는 말인가?

위기는 다가오고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아직도 내방에 좋은 물건 놓겠다고 서로 싸우로 있는 어린아이같다. 그 책임은 물론 투표를 잘못한 국민들에게 있다. 그러나 쓸만한 물건도 없이 썩은 것들만 놓고 고르라고 한 정치권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추미애 아들을 둘러싸고 별의 별 소리가 다 나온다. 가만히 보면 추미애 아들문제가 뭐 그리 대수인지 모르겠다. 추미애만 그랬나? 다른 놈들은 더한일도 많이했다. 육해공군은 예산을 확보하느라고 각군본부차원에서 국회의원이나 정부요원들의 자재들 군대 보직을 거의 공식적으로 이리저리 챙겨주었다.

추미애는 왜 나만 가지고 이래 그럴 지모르겠다. 추미애는 자신이 지나치게 겸손하지 못하과 함부로 행동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기 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게 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대표하고 국회의원하면 당연히 보좌진이 자기아들 문제 해결하는데 도와주는 것 아닌가? 안그랬던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추미애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을 했기에 주변의 분노가 그리 심한가에 대한 자책을 먼저해야 할 것이다.

추미애는 국민밉상이 되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아무리 윤석렬을 죽이더라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 외교관들은 전쟁이 나서 선전포고를 하더라도 서로 웃으면서 하는 법이다. 전쟁이 끝나서 교섭을 하면 다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이성적이지 않다. 그래서 항상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주의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것과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아무리 공식적인 곳에서는 강력하게 말을 하더라도 뒤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추미애는 권력에 취해 가장 기본적인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같다.

겸양은 만고의 진리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정운영에 최고 책임이 있는 만큼 이제는 추미애를 물러나게 하고 청와대와 각료들 인선도 새로해서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하나씩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그만 싸우고 지붕을 손보고 금간벽을 보수하자. 태풍소리가 들린다.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조건들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우리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다. 오로지 북한에 대한 비난만이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말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거의 모든 시도는 친북좌파라의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한국전쟁으로 대표되는 극우보수적 시각만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대학의 운동권을 장악한 주사파 운동도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주사파 계열의 사고방식과 극우세력의 사고방식은 서로 닮은 꼴이다. 그들이 서로 견제를 하면서 변증법적 통일과 객관성을 담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서로 같은 것들끼리 무슨 정반합이 가능하겠는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의주장이 아니라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 주사파나 극우세력이나 공부하지 않고 주의주장만으로 선입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로 동태눈을 하고 중간지점에 가 있다고 해서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동태눈을 제거하는 노력이 먼저인 것이다. 그 동태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 머리위에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들이 우리말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생각하는 이해관계를 냉철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북한이 처한 국제정치질서와 남한이 처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내 문제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우리의 관점에서 지극히 한국적 사고방식에 입각해 바라볼 경우, 실패는 불가피하다.

이제까지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예측한 적이 있었던가?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북한이 이룩한 성취는 대단하다. 남한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 이상으로 북한도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핵보유국가가 된 것이다. 핵보유국가는 기술이 있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다. 전국가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남한은 할 수 없는 것을 북한은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북한핵문제를 바라보려면 왜 북한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처한 국제정세와 우리가 처한 국제정세는 다르다. 주변정세만 다른 것이 아니라 북한은 주변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도 우리와 달랐다.

북한이 주체라고 내세우는 말은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삶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주체라는 말이다. 연구자나 관찰자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이미 소련과 중국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했다.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때 허가이를 위시한 소련파를 숙청했다. 그 당시는 스탈린도 건재하고 있던 때였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마자 바로 중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리고 친중파도 모두 숙청해서 제거했다.

어떤 것에 촛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김일성의 권력강화로 볼 것인가 아닌면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결단인지는 보고 싶은대로다. 1960년대 이후 중국과 소련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할 때,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했다.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내부에 친소파도 친중파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자고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그럴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상황이나 1960년대 북한이 처한 상황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은 해 낼 수 있었지만 한국은 할 수 없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북한이 핵 개발을 결심한 것도 냉전의 붕괴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중국과 소련의 핵우산으로 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망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중국은 북한을 냉정하게 내쳤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사람의 미친 권력자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결과다. 국가의 존속을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이다. 결단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마치 중국이 북한을 좌지 우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소련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을 향하고 있지만 방향만 틀면 바로 중국이다. 북한은 단 한번도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라.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친중파인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한 일이다. 이복형제로 중국이 뒤를 봐주고 있던 김정남을 보란 듯이 제거한 것은 중국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연줄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도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나 아니니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국제정치학자중에서 중국이 북한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것 같다. 마치 미국이 한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이 북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존도 오래되면 습관이되고 성격이 되는 법이다. 항상 의존적인 삶을 살았으니 남도 다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부역해서 잘먹고 잘산 사람도 있지만, 만주에가서 풍찬노숙하며 일본과 싸우다고 굶어죽거나 맞아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장 잘못된 이유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본다. 당연히 정책목표가 잘못설정되고 구체적인 정책도 엉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먼저 버리는 일이다.

북한핵문제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전략핵미사일 실험의 의미

그동안 여러번 북한이 미국대선을 앞두고 핵미사일 실험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 오늘 사이에 북한이 SLBM 발사시험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목적이란 친절한 해석도 붙이고 있다. 북한이 무엇을 하려고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북한이 하려고 하는 것은 미사일 실험이 아니라 수소폭탄 폭발시험이다. 그것도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태평양에서 전세계가 보란듯이 핵실험을 할 것이다. 북한은 수소폭탄 폭발때 올라오는 거대한 버섯 구름을 전세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SLBM에 움직임이 있는 것은 미국이 만일 북한의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에 위협을 가하거나 공격을 할 경우, 미국 본토나 미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보복능력 즉 제2격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SLBM만을 발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정도로는 강고한 미국의 생각을 뒤집기 어렵다는 것을 북한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북한은 더 이상 대화로는 미국의 태도를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미국의 대선이다. 미국의 대선바로 직전에 미국민들을 혼란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수 있는 순간을 택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민들이 대선보다 북한에 수소폭탄폭발에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은 더 이상 미국과 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북한은 자기네 식으로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고 합의를 강요하는 것이다. 결단의 의지와 한방을 가진 작은 나라도 큰나라를 강요하거나 곤경에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내년도 1월에 제8차 당대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제8차 당대회에서 무엇을 논의하고 발표할 것인가? 언론에서는 경제계획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생각에는 모두 헛 짚었다. 10월이나 11월에 핵실험을 하고 나서 그 이후 북한의 총체적인 국가운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제까지 우리는 북한을 너무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데로만 보았다. 있는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일반적인 습성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당시 열린 각종 회의에서도 그런 경향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냉전을 서구와 동구의 자폐적인 대화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한 학자도 있었다. 우리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만일 이번에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그 영향은 단순하게 미국과 북한사이의 관계 변화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균열이 가고 있는 현재의 국제체제를 즉각적으로 붕괴시킬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중패권경쟁에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소집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더 이상의 어떠한 제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제재의 해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제2차세계대전이후 형성되어온 국제사회 질서 전반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미국내의 정치적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민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정치지도자들을 믿지 못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압도할 것이며, 이런 상황까지 오도록 방치한 미국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도달할 것이다. 당연히 북한을 적으돌리기 보다는 화해하고 타협하는 것이 옳았었다.

만일 미국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적대적으로 돌린다면 오히려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렵다. 유럽은 전통적인 외교의 논리로 돌아가 힘을 가진자와 타협을 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을 다루지 못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쇠퇴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으로 선정할 수 밖에 없다. 국교도 없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이성적인 국가를 이웃에 두고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북한 접근을 막기위한 시도를 하려고 하겠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 않다.

북한은 식민지시대 보상으로 막대한 지원과 배상을 요구할 것이고, 일본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기도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유엔안보리 제재도 무의미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좋은 기회를 맞이 했었다. 북한을 달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면 미중패권경쟁에서도 우위에 설수 있었다. 남북한과 일본을 한데 묶어서 중국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형성할 수도 있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은 합리적일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을 채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이 왜 거래와 흥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나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압도적인 의지와 능력으로 상대방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과거의 생활습관이 변화한 오늘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

그나 저나 우리도 매우 어렵게 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진정성있는 북한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기회를 놓친 것이다. 국내정치에 남북문제를 이용하고자 하는 얄팍한 이해타산을 마치 커다란 정치적 역량이라고 되는 것 처럼 착각한 결과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상황은 그 이전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307660

전술적 미국, 전략적 중국

코로나 사태, 검찰사태, 윤미향 사태, 조국 사태, 공공의대 사태 등으로 내분에 내분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엄혹한 국제정치질서의 시계는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다.

최근들어 미중간 갈등의 폭도 넓어지고 있으며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협상을 하던 때가 오히려 서로 관계가 좋았을 때 였다. 미국은 화훼이의 차단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성과는 뚜렷하지 않다. 최근들어 뭔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8월 중순 폼페오 미국무장관이 유럽을 순회하면서 화훼이를 배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거의 전 유럽국가들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그동안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던 유럽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유럽국가들이 이런 태도는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코로나 사태이후 미국의 국력이 급속도로 가라앉고 있는 반면, 중국은 오히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은 더 이상 미국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이 세계 경영에 참가한다는 천하 3분지계를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유럽은 20세기 내내 자존심을 굽히고 살아야 했다. 이제 중국의 등장과 미국의 쇠퇴라는 상황을 이용해서 유럽도 자신들의 위상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은 일본과 호주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상황에서 봉쇄전략은 이제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군사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냉전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외곽을 때리는 제한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핵을 가진 국가끼리는 서로 전쟁을 할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제한전쟁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게 어떤 군사적 행동도 하기 어렵다. 그냥 집적거리는 정도는 몰라도 전면전을 각오한 전쟁을 할 수 없다.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동안 매년 1000조 이상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군사력도 실제 미중패권경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분쟁과 갈등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까지 20세기의 세계전략 구상에 함몰되어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제기한 테제의 의미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인 것이다.

중국은 승기를 자신한 듯 하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9년이래 중국경제는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각국의 연구소는 앞다투어 2030년대에 들어서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기존의 전망보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시진핑이 공산당 비방을 용납하기 않겠다고 한 것은 미국에 대한 경고이자 앞으로 미중갈등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와함께 9월 초에는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1조달러 규모의 미국채규모를 줄일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과 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국채를 다 팔아치울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중국에게 군사적인 압력을 가할 경우를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군사적인 수단과 방법을 중심으로 중국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고, 중국은 경제적, 외교적인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에 뒤지지 않는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전술적이라면 중국은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것도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미국과 중국간 힘의 역전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는 안으로 함몰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마치 전세계가 끓는 물처럼 요동치고 있을때 당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던 조선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다. 정권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이런 외부적인 변화를 직시하고 국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아예막아버려서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예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최악의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가

당장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느라고 먼 곳을 바라보기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강타했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그저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고 기억하고 있던 일상은 다시는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삶은 사실 그 밑에 수없이 많은 구조와 각종 힘이 작용한 결과이다. 일상을 지탱해온 가장 중요한 기둥들이 흔들리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과거에 누렸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던 것 중에서 몇가지 커다란 대들보와 기둥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만일 코로나 19만의 문제라면 백신과 치료제가 만들어지고 나서 우리의 삶은 다시 평온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겪고 있는 많은 변화들은 단순하게 코로나 19의 범주를 넘어서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나쁜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도록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는 이제까지 세계를 관통해오던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이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의 삶은 지속될 수 없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 내리고 한반도는 두달넘게 우기를 겪고 있다. 경제를 잘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북극의 얼음이 녹아 내리니 새로운 항로가 뚫리는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경제적 기회앞에 인류 전체의 삶이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 19 이전부터 이미 자본주의는 전세계적인 규모의 확산을 포기한 상태였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직면하여 퇴행적 중상주의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일대타격을 가했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한계에 봉착하는 경우는 더 이상 확산하고 확대될 수 없을 때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확산하고 확대되지 못하면 붕괴된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로 작동하기 어려운 것은 크게 두가지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확대되면 환경이 무너진다. 동물도 살수 없고 인간도 살수 없다. 돈을 아무리 벌면 뭐하나? 코로나가 차라리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한동안 그 지긋지긋한 미세먼지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냥 이렇게 청정한 공기속에서 살고 싶다. 아무리 돈을 벌면 뭐하나 숨 쉬기도 어려운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더 이상 자본주의가 확대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국은 자본이 정치권력을 통제하는 체제다. 중국은 정치권력이 자본을 통제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정리해보면 자본과 정치권력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인민대중의 행복이 어떤 경우에 더 많이 확보되고 담보될 수 있는지는 시간이 가면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이제까지 역사적 경험으로 보건데 자본이 통제하는 권력은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자본보다 훨씬 가혹하고 무서웠다. 특히 권력이 자본보다 더 강력했던 동북아시아는 위기의 극복에 훨씬 효율적이다. 15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에 코로나 신규환자가 전무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은 정치권력의 강력함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경우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력한 정치권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인민의 의지와 유리되어 있거나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가 하는 경우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자본의 무한정한 팽창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미다. 만일 자본이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스스로 붕괴할 가능성이 많다. 자본주의는 타도의 대상이 되어 붕괴하기보다는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찾지 못해 해체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처럼 정치권력이 통제하는 자본이 대안이 되기도 어렵다. 중국과 같은 방식도 결국은 자본주의적 삶의 연장에 불과하다. 결국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중국과 같은 방식에서 환경문제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미국적 방식이나 중국적 방식이 앞으로 우리 삶의 대안이 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두가지 모두 우리의 일상적 삶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각각의 다른 예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사회주의가 아니었던 것처럼, 국가자본주의가 신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앞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환경을 최우선적 가치로 놓은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코로나 19 2단계와 2.5단계가 연장된다고 한다. 이번에 조금만 참고 견디면 우리의 삶이 나아질까? 우울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조국과 문재인 대통령, 무엇이 닮았나?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군대, 먹을 것, 도덕 중에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제일 먼저 버릴수 있는 것은 군대다. 두번째는 식량이다.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윤리 도덕이다.”

대한민국은 정확하게 거꾸로 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나라 경제가 절단나고 있다. 중소상인들은 아우성이다. 조금만 더 가면 모두 망한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딱히 대책도 없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갈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방예산으로 50조 이상을 편성하고 있다. 무기구입비 대부분은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다. 주로 미국이다. 이런 기회를 틈타 해군은 쓸모도 없는 경항모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앞장서고 있다. 무기도입은 도입절차 결정과정이 복잡하다. 그런 과정이 무의미하게 되어 버렸다. 대통령이 먼저 결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국방부 합참은 먼산만 보고 있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번에 경항모와 F-35B 도입이 결정되면 다음정권에서 정부수립이후 가장 큰 방산비리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그정도도 예측하지 못하다니 어리석은 것 아닌가 ? 불을 보고 뛰어드는 나방같다.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 당장 불요불급한 사업은 모두 중지하고 민생을 돌봐야 한다. 현재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집단은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다. 특히 이번 2.5단계 조치로 자영업자들은 거의 부도 상태다. 이들을 어떻게 지원해줄 것인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재난지원금인지 기본소득인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을 보면 한심하다. 정치인들의 삶이 인민의 삶과 접촉하는 지점이 그만큼 없다는 의미다.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삶이 어떤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현상황에서 경제는 얼마나 빨리 좋아질 것인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덜 나빠질 것인가를 걱정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세계가 아직 코로나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한국만 무슨 용빼는 재주로 홀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부동산 투기해서 강남에 빌딩사려는 청와대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이 있었던 나라에서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애초에 싹수가 노란색이었느데 그냥 애써 모른척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굶어죽어도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들 등 따시고 배부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작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님이 군대가 없어서 외침을 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도 마지막까지 지켜야 한다고 했던 것은 도덕과 윤리였다. 아마도 도덕과 윤리가 없으면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구성되려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도덕과 윤리의 출발점은 위정자다. 위정자가 중심을 잡고 있어야 국민들도 믿고 따른다. 위정자가 불리하다고 거짓말하면 국민들이 위정자를 믿지 않는 법이다.

조국과 문재인 대통령은 거의 한날 한시에 같이 거짓말을 했다. 조국은 재판정에서 진술하겠다는 말을 지키지 않았다.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사법체계를 우롱했다.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간호사와 의사들을 갈라치기 하려다 비난에 봉착하자 자기가 쓴 글이 아니라고 책임을 면하고자 했다. 분명한 거짓말이다. 고민정이 증언하고 있다. 대통령은 페북에 올라가는 글을 직접 쓴다고 했다. 몇시간 지나지 않아 청와대 참모진이 썼다고 했다. 적어도 대통령이 검토를 했을 것이며 그것은 대통령이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와대 참모진은 대통령의 지침과 승인하에 메세지를 작성하고 대통령의 승인이 있어야 게재할 수 있다. 그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을 그렇게 애지중지 지키려고 했던 이유을 알 것같다. 두 사람은 같은 철학과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그의 얼굴이 선하며 말하는 태도가 유하기 때문이었다. 조금 어눌하지만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착각한 것이다. 그는 선하지도 착하지도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껏 조국과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를 보건데 양아치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면 양아치도 함부로 말을 하면 손발이 잘리는 법이다.

태도가 모든 것이라고 한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 인생을 살아가는 철학이 빈곤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소동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선한 얼굴과 어눌한 말투를 정직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국민들의 잘못이다. 인간은 얼굴모습과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과 태도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그의 행동과 삶을 살아온 태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주변이 문제였지 본인이 문제였던 적은 별로 없다. 전두환도 아무리 못난 인물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하루종일 나라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마치 양아치같은 삶을 살고 있는 대통령을 두고 있는 국민이 불쌍하다.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은 의병의 나라인 모양이다.

공공의대, 원칙이 아니라 디테일의 문제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주의주장이 옳고 좋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면 세밀하고 치밀한 일처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대 문제도 그런 종류에 속하는 것 같다.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에는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니 공공의대를 만들어서 지방에만 근무하는 의사들을 충원하자는 주장은 얼핏들어보면 그럴듯 하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 문외한의 눈에도 쉽게 드러난다.

첫번째, 공공의대를 만들어 10년동안 매년 400명씩 4000명의 의사를 양성하겠다고 한다. 그럼 의과대학도 10년이후에 모두 없애버릴 것인가? 의사들을 교육시키려면 병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의사이기전에 제대로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많은 교육들이 필요하다. 한사람의 과학자로서 필요한 교육도 있다. 그런 교육 인프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강사들 10년 정도 불러서 쓰다가 없애 버릴 것인가? 아니면 10년 정도 기간제 교수 채용하고 10년 이후가 되면 모두 해고할 것인가? 공공의대를 지원하는 수많은 행정직원들도 10년후에 모두 해고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계속해서 지방의사들을 매년 400명씩 계속 양성해야 하는가 ?

공공의대를 10년만 운영하겠다는 생각은 신중하지 못하다. 대학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 이유다. 공공의대로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가지려면 지속가능해야 한다. 연구기능이 만들어져야 교육도 이어질 수 있다. 10년만 운영하는 교육기관에서 무슨 연구를 할 수 있겠는가? 10년만 운영한다면 공공의대가 아니라 그냥 의료학원이다.

둘째,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었지만, 공공의대를 졸업하고 이들이 서울로 올라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공공의대를 졸업하고 나면 10년동안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한다고 한다. 의과대학 졸업후 10년이라는 것은 독립적인 의사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기간이다.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서 군대까지 가야 한다. 군의관은 의무복무기간이 3년이다. 인턴 레지던트, 군대 갔다오면 거의 10년에 가깝다. 실제 지방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기간은 몇년 되지도 않는다. 그 기간동안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의료원에 취직하거나 개원을 할 것이다.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모두 지방에 올라오지 않고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그렇게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공공의대 졸업생들의 지방의무복무기간을 20년이나 30년으로 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개원을 했는데 병원운영이 안되어서 서울로 올라오겠다면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 공익과 개인의 이익간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 행복추구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의사들이 서울에 많이 몰린다고 한다. 지방에 내려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그 원인과 이유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먼저다. 의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보수가 적어서도 아닌듯하다. 어마어마하게 비용을 지불한다고 해도 지방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의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하게 서울이 좋고 지방이 싫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 서울의 의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수 있는 토대와 특전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의대는 그런 중간과정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이 곧바로 우리나라 의사들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타 다른다라들과 의사 숫자를 비교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지방에 있다고 하더라도 의료혜택을 받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 나라가 크지 않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의사숫자가 적을지 몰라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라인 것은 틀림없다.

설사 의사 숫자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현존하는 지방 의과대학 병상과 정원을 늘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가장 쉬울 것이라고 본다. 정부재정도 가장 적게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간과정없이 곧장 기승전공공의대로 뛰어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은 듯 하다.

결국 문재인 정권에서 추진하는 공공의대라는 것은 순수한 의료적 측면보다는 자파세력의 확대를 염두에둔 정책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시도지사 및 시민단체의 추천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현재의 기득권 세력인 586들이 자신들의 자식을 위한 음서제를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을 전혀 근거없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지금 의사들의 행태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료보험은 한정되어 있다. 통상적인 서민가정에서 가장 많은 지출항목이 의료보험비다. 그들은 의료수가를 올리라고만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더 이상 의료수가를 올릴 수 있는가? 먹고 살 것도 부족한 상황이다.

의료수가 인상을 주장하기전에 현재의 의료수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감기와 같은 작은 병은 의료수가를 대폭 낮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큰 병은 의료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큰 병에 대한 의료수가만 높이자고 하면 그 돈은 누가 감당하겠는가?

서울지역 의사들의 진료행태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 1번 오면 될 것을 2번 3번 병원에 오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의료보험이 부실해진 것이다. 의료수가의 문제는 의사들 스스로 조정해서 정리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공공의대를 주장하기 전에 의료정책을 좀 더 세밀하게 단계적으로 잘 정리해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과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의대를 추진할 수 밖에 없다고 하면, 의사들도 무작정 반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공공의대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의사집단의 지나친 집단 이기주의도 적지 아니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공공의대를 반대하면, 정부가 공공의대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작금의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동시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지금같은 상황에 오게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력 때문이다. 원칙적인 측면만 생각하고 디테일이 부족한 현상은 관료들이 잠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국정을 운영하려면 관료들이 필요없다. 관료들은 그런 디테일을 정리하는 기술자다. 기술자가 필요한 문제에 관리자가 뛰어다니고 있다.

결국 국정운영의 미숙함과 무능력 그리고 정치적 복선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것이 공공의대 문제인 것이다.

문재인 정권들어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기반이 흔들린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무엇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면 그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데 기초가 흔들린다면 불안한 생각이 든다.

기초가 흔들리면 불안한 이유는 그동안 구축되어온 기초라는 것이 비교적 오랜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축적되어온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변화시키려면 그에 타당한 합리적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합리적인 이유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서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냥 갑자기 내가 생각해보니 이것이 옳은 것 같다. 그러니 이것을 하도록 해랴하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왕조국가에서 할 일이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로 우리의 삶의 범주를 나눌 수 있다. 각 범주의 삶에사 가장 중요한 것들이 있다. 개인의 삶에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사회적 삶에는 정의가 중요하다. 사회정의가 무너지면 사회가 존속할 수 없다. 만인대 만인의 투쟁이 될 것이다. 국가의 범주에서는 안보가 제일 우선이다. 안보중에서도 국방이 가장 중요하다. 군사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국가가 존속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권들어 상기 세가지 범주의 기본을 흔들고 있다. 공공의대의 설치로 의료인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의료인들의 파업을 비난하는가? 아니면 이렇게 의료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정부를 비난하는가? 의사들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IMF이전만해도 의과대학이 지금처럼 전국대학입시에서 최상위를 점하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물리학과 등등의 순수학문분야가 이과 최고였다. 왜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의사들이 제일 좋은 직업군으로 등장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의사들 진료받기 어렵다고 한다. 서울 경기에 전국인구의 절반이 몰려있다. 당연히 의사들도 서울에 몰리게 되어 있다. 지방에가니 안경점이 제대로 없었다. 인구가 적어지니 안경점도 없어지는 것이다.

단순하게 지방에 의사들이 안오려고 하니 공공의대 만들겠다는 발상은 군사적 발상이다. 군대에서는 당장 부족하고 문제가 있는 것 부터 해결한다. 원인 장기적 영향 그런 것 따지지 않는다. 그러다가는 전쟁에서 지기 때문이다. 지금 의료서비스 문제를 대증적인 처방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의사들 이야기처럼 사람의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흉부외과 등과 같은 분야의 수가를 올리고 그리 급하지 않은 감기와 같은 부분의 수가를 낮추는 것을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왜 여러가지 많은 해결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기승전공공의대일까? 그것도 음서제라는 비난까지 무릅쓰면서.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검찰과 경찰의 몫이다. 이제까지 검찰과 경찰은 어느정도 역할 분담이 있었다. 검찰은 거악을 경찰은 민생안전을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수사권 조정에 관한 것은 형사소송법의 영역으로 알고 있다. 그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경찰에서 저질저진 수없이 많은 인권유린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종철이 어디서 죽었으며 성고문은 어디서 당했는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유린 집단은 경찰과 군대였다. 군대는 군대니까 그렇다고 치자. 경찰은 한국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잊어 버렸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경찰국가다. 제대로 통제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통제받지 않고 견제 받지 않은채 정보와 수사까지 장악한 경찰이 무슨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두렵지 않은가?

왜 문재인 정권은 그런 모험을 하려고 할까?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아무리 겁이 난다고 해도 사회 정의의 기본틀을 훼손하는 행위는 현명하지 못하다고 본다.

국가의 안보는 국방비를 어떻게 쓰는가로 정해진다. 경항모를 추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안보환경에서는 어떤 경우도 경항모가 필요없다. 어떤 무기체계를 갖추려면 국방전략에 입각해야 한다. 어떤 국방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경항모를 갖추려고 하는가? 우리나라 해군은 북한해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북한은 동서해로 나뉘어져 해군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반면 남한은 삼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해군력은 북한에 대해 전략적으로 우위에 있다.

해군력으로 주변국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데 어떤 위협에 대처한다는 말인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만들어 세계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하기 위해? 도데체 어떤 이유인가 ? 해군출신 제독들이 해군의 사주를 받아 써내는 주장에 조금도 납득할 수 없다.

현대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육군 뿐만 아니라 해군도 그 중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신 공군과 미사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공군도 이제 유인에서 무인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조종사 없는 전투기가 등장하고 있다. 미사일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상대방을 억제하고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상황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9세기 마한적 해앙사고에서 머물고 있는 한국의 지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은 경항모 한척이라고 하지만 조금 지나면 두척이 되고 조금 있으면 3척이 된다. 해군의 특성상 한적으로는 제대로 작전을 할 수 없다. 최소한 2척은 되어야 한척은 수리 및 정비를 하고 한척은 작전운용을 할 수 있다. 제대로 돌아가려면 최소한 3척은 되어야 한척이 상시 작전운용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

당연히 지금은 F-35B 20대를 요구하지만 조금 있으면 40대로 늘고 조금 있으면 60대로 늘 것이다. 공군은 F-35B 를 운용한다고 생각할 지모른다. 그러나 경항모가 2척이 되고 F-35B 40척이 되면 해군은 해군항공대를 운영하려 할 것이다. 뻔한 이야기다. 경항모에 탑재되는 F-35B는 F-35A보다 가격은 30%이상 비싸고 성능은 절반 밖에 안된다. 비행거리가 절반이고 무장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왜 쓸모도 없는 경항모를 만드려고 국방비를 이렇게 낭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은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기본적인 안전을 모두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만일 그것이 정말로 좋은 의도라면 그런 불안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시도하고 있는 그 모든 변화가 매우 좋지 못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가 ?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보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과연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을까 ? 과거보다 진보하고 있는가 아니면 후퇴해 있는가? 일시적으로 진보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 오히려 퇴보의 초입에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퇴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전진의 초입이 아닐까? 현재 상태에 대한 답변은 상이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현재를 평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은 이상이었다. 그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정치권력이다. 그런데 그 정치권력이 인민의 이상을 구현하기 보다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진정한 이유는 부정부패나 권력형 비리가 아니었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이유는 국민과의 소통단절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대통령이 아니라 왕노릇을 한 것이었다. 그녀는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았지 왕을 선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을 과연 어떤가? 이제까지 제기되는 여러가지의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의 내용과 종류 그리고 그 정도는 박근혜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도 많은 것 같다.

검찰개혁이라는 미명하게 검찰의 손발을 완전하게 잘라 버린 것은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리가 문재인 정권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지극히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 권력남용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시작한 것이니 앞으로 검찰은 완벽하게 통제가능한 인사들로 장악될 것이다.

이렇게 된 마당이니 공수처니 뭐니 할 이유도 별로 없을 것 아닌지 모르겠다. 검찰을 완전하게 장악한 상태라면 괜시리 공수처를 만들어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뽑아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 공수처장이 되어 권력형 비리를 수사하면 골치아파질 것이다. 아마 현정권은 당분간 공수처장은 뽑지 않으려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보다 더 추악한 권력형 부정부패-거기에는 숱한 인민대중의 코뭍은 퇴직금도 싹슬이 해버린 각종 사모펀드 비리도 포함되어 있다-의 증좌가 산더미 같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문재인 정권이 아무일없이 버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친문극단세력이라고 하는 대깨문들이 문재인 정권을 사생결단으로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친문극단 세력들은 촛불혁명의 이상이나 민주주의 이념을 고양하기 위한 정치권력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이념을 발전시키고 현실에 제대로 적용시키기 위해선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지지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 정말 촛불정신을 현실에 적용시키려고 한다면 문재인 정권을 끊임없이 건설적으로 비판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친문세력들은 문재인 정권을 끊임없이 무비판적으로 옹호했다. 그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이해공동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으로 양으로 모두 문재인 정권과 이해관계로 결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타락의 공동정범이라고 할까.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시대보다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단언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야 태생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노무현과 문재인의 대한민국은 김대중의 대한민국보다 발전하고 성숙된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있나? 있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대답해주기 바란다.

민주주의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야 민주주의의 이상이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란 절차와 과정을 의미하는 민주주의는 어느정도 정착되었다고 하겠다. 요즘은 표를 사는 사람도 표를 파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부정선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정착이 되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표율을 높이는 일이다. 그래야 국민들의 의사가 가장 많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투표율이 높아서 선거에서 패배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미래통합당은 아예 정계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 옳다. 지금은 김종인이 어떻게 해서 조금 지지도가 올라가는 것 같지만 태생이 아예 글러먹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옳다.

투표참가율이 높고 선거과정이 투명하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이상이 제대로 구현된다고는 볼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수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제도나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이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보는 이유다.

사람의 마음을 사야하는 것이 선거니 어느정도 포퓰리즘이 불가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포퓰리즘이 국민국가의 통합을 저해하다 못해 분열시키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그렇게 하느니 나라를 두개도 만느는 것이 훨신 낫다. 대한민국 연방을 만들고 친문재인 공화국과 반문재인 공화국을 만들어 운영해 보아라. 지금보다는 백배 나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갈라치고 저주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적 지지도를 올리려는 것은 언젠가 부도수표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런 행동은 목적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키는 나쁜 행위이다. 이제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단계는 지나지 않았나?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보하고 있다.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