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윤석열 비난 유감

10월 30일 북한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남한내 친북매체인 ‘자주시보’의 만화를 인용하면서 윤석열을 비난했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북한이 남한내부 정치에 간섭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못하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남한을 아직 통일전선전술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남북한 관계가 발전하는 것은 남한만의 노력으로는 안된다. 북한도 그에 상응한 행동을하고 태도를 지녀야 한다. 손뼉도 두손으로 쳐야 한다.

지금껏 남북관계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미국의 간섭이다. 둘째는 남한내 보수층의 완고한 반대, 셋째는 북한의 태도다.

미국의 간섭과 개입은 남한과 북한이 손잡고 노력하면 충분하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한과 북한의 의지에 따라 미국의 태도도 어느정도 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둘째와 셋째 요인이다. 남북한 관계가 발전하려면 남한내 보수층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진정한 남북관계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진보층이 아니라 보수층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남한 사회는 점차 보수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보수계층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어차피 남한내 소위 진보세력들은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이번 문재인 정권의 실정은 앞으로 남한내에서 진보세력의 집권을 영영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미 문재인 정권은 신형 보수정치세력이되어 버렸다. 남한 국민들은 앞으로진보라면 치를 떨게 될지도 모른다. 문재인 최대의 잘못이다.

윤석열과 같은 사람들은 앞으로 등장하게될 새로운 정치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윤석열같은 사람은 지금의 <국민의 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정치세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잠재적인 대화의 상대가 될 지도 모르는 윤석열을 직접 비난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진행된 남북관계 발전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남한이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은 남한의 노력뿐만 아니라 북한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실질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막무가내로 남한을 윽박지르고 거친 언사로 남한 주민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수층들은 그런 행동을 보면서 과연 북한이 남북관계 발전에 진정성이 있는가를 의심해 왔다.

북한이 남한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남한내 보수층들은 북한의 적화통일을 두려워한다. 북한은 거친 언사와 행동으로 남한의 보수층들을 더욱 움추리게 만들어 왔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바라는 남북관계 발전이 어떤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남북관계 발전은 남한과 북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싸움이라고 생각해서는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북한이 진정 관계발전을 위한다면 남한 국민들이 선택한 어떤 정권과도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남한의 정권은 남한주민들의 정치적 의지의 표상이다. 이제까지 북한은 잠재적으로 권력을 장악할수 있는 남한의 정치인과 정파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행태를 보였다.

북한의 그런 행태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미리 비난을 퍼붓고 북한을 상종 못할 족속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대화에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협상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둘째는 북한권력이 공고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한과 적절한 수준의 적대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한다는 인식이다. 마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서로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구조와 같다. <북한>은 <남한>과 적절한 수준에서의 적대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행태를 경험하고 그 실망감에 미리 새로운 집권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는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질렀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남북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 북한도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북한도 미래를 보고 남한내 정치에 간섭하면 안된다.

당장 윤석열은 북한의 비난을 보고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이 나를 보고 검찰독재 운운할 처지가 되나? 고 반문할 것이다. 정치도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제아무리 이성도 감정적 앙금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남한내부 정치에 간섭하게 되면 남한도 북한의 내부정치에 간섭하게 된다. 그럼 남북한관계는 발전하기 어렵다.

권력이 끝나는 지점, 일선검사들의 반발

세상 모든 일에는 탄성한계 혹은 임계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동안 세상 모든 악의 원천으로 비난받던 검찰의 집단반발이 시작된 느낌이다. 추미애는 항명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항명을 가장 엄격하게 처벌하는 곳이 군대이다. 그런데 군대의 항명도 자세하게 보면 부하보다 상관이 잘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상관의 리더십이 부족해서 부하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부하들이 일부러 상관을 능멸하기 위해 반항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검사들 몇몇이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항명에 해당하는 글을 올렸다. 이렇게 되면 추미애는 법무부를 운영하는데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하기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권위를 지녀야 한다. 법에 보장된 지위와 감독권만으로는 조직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그래서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리더십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에서 시작된다. 법에 보장된 권한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에는 자신이 이끄는 조직에 대한 배려심이 기본이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지 무엇이 애로사항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해주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야 한다.

일선검사들의 반발은 검찰조직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선검사들이 저렇게 나서는 것은 지휘하는 간부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검찰총장과 지검장들만 바꾸면 자신들 마음대로 검찰을 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추미애가 임명한 정치검사들은 일선검사들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아마 그런 정치검사들은 스스로 위축될 것이다. 일선검사들은 그런 간부급 검사들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잘모르겠다. 검찰이 너무 지나친 힘을 지니고 있다면 분산하거나 상호견제하게 만들면된다. 만일 검찰이 필요없는 조직이라면 해산하면 된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쓸모없는 부패한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을 부패한 정권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고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부패한 집단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누가 옳은지는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것 같다. 권력은 5년에 불과하지만 검찰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계속된다.

일선검사들의 반발은 그래도 우리나라 검사들이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사들의 반발은 문재인 정권스스로 자초했다. 야당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상태에서 문재인정권의 부정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검찰 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의 부정부패를 감추기 위해 검찰개혁을 주장했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을 주장한 배경에는 노무현 전대통령 사건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때 정말 괴로웠다. 대통령이 저렇게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은 검찰때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집안에서 뭔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못견딘 것은 검찰의 수사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집안에서 그런 뇌물을 받았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논두렁에 던졌는지 밭두렁에 던졌는지 창문밖으로 던졌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받은 것이 문제지.

윤석열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조국을 그렇게 많이 여러번 압수수색한 것을 문제삼는 것 같다. 여러번 압수수색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탈탈 털든, 털털 털든 안나오면 되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증거를 은닉하는데 어떻게 여러번 압수수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나 털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죄를 지었느냐 아니냐가 문제일 뿐이다.

조국 정도되는 인물이라면 열번을 털든 백 번을 털든 안나와야 정상이다. 검찰은 권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백 번이 아니고 천 번 만 번이라도 뒤집어 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문제는 권력 층이 부패해서 문제가 많았다.

조국을 탈탈턴 것이 문제라면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모두 적당하게 털고 적당하게 해먹자는 이야기인가? 그럴 것 같으면 왜 이명박을 탈탈 털어서 잡어넣었는가? 그럴 것 같으면 돈도 받은 적 없는 박근혜를 왜 잡아 넣었는가?

일선검사들이 반발하는 것을 보면 이제 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 검찰을 통제하지 못하는 수준에 와버렸다. 적당하게 했어야 했다. 너무 지나치게 나가다 보니 이런 상황에 직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왜 추미애를 기용했을까? 이해하기어렵다. 다만 추미애가 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제일먼저 해체한 것을 보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라임과 옵티머스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문민화이후 한국정치권력의 레임덕은 대부분 내부에서 비롯되었다. 측근의 국정농단과 권력혁부정부패가 정권의 종말을 장식했다. 문재인 정권도 다르지 않은 길을 갈 것 같다.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 낙선 유감

WTO사무총장 후보로 지원했던 유명희 외교산업통상부 교섭본부장의 당선이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미국만 한국을 지원하고 유럽, 일본 그리고 중국이 나이지리아를 지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WTO 사무총장에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한국과 일본은 무역분쟁으로 WTO 에 제소를 했다. 유명희 교섭본부장이 WTO 에 가서 당찬 모습을 보여준 것은 매우 훌륭했다. 그런데 재판 당사자인 원고 한국의 유명희가 재판장이 되겠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이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 입후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게임의 룰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만 그랬을까? 아마 다른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으리고 추측 해본다.

언론들은 왜 정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이익만 떨어지면 아무런 상관도 없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일본의 식민통치도 비난할 바가 못된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조선을 제물로 삼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익이 눈앞에 보여도 지켜야할 선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지키고 감수해야할 기준과 규범이 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엄격한 도덕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지켜야 할 것은 이미 초등학교때 다 배웠다. 몰라서가 아니라 정의와 도덕을 이익을 위해 저버리거나 팔아버리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런 행동을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하고 보고 있는 것일까? 남이 하면 불률이고 내가하면 로맨스라는 행태를 우리가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유명희는 WTO에 입후보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유명희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정도 나이면 정부와 국가가 밀어준다고 해도 해서 안될일과 아닌일을 구분할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유명희가 그정도로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WTO 사무총장에서 떨어진 것이 세계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똑똑한 것과 분별력은 상당히 다른 정신적 영역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국내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가 대외관계에서도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규범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입장에 서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최근 들어서 그런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다. 촛불혁명이후 문재인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을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더 혐오한다. 권력형부정부패보다 더 혐오하는 것은 바로 세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을 미국이 끝까지 지지했다고한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는데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사회에는 공짜가 없다. 내가 지지를 받았으면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명시적으로 대가를 약속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청구서는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한 것을 보면 문재인 정권과 트럼프 정권이 어떤 관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문재인 정권은 미국에게 뭔가 단단하게 약속을 해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해준 대가로 날아들 청구서가 걱정된다.

한국전쟁 논란 유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올해 국내에서는 아무런 행사도 없었다.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하는 반성적 행사가 있었음직한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하는 정부위원회에 참가하라는 권유가 있었으나 거절했다. 애시당초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 명함만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에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 해석은 당파적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은 한국입장에서, 미국은 미국입장에서, 중국은 중국입장에서 그리고 북한은 북한입장에서 해석하고 평가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전쟁의 의미를 중국이나 북한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이고 아니고 분명히해야 한다.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왜곡되어 있으면 당파적 역사해석과 평가도 오류에 머물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전쟁의 오래된 쟁점은 남침이냐 북침이냐 하는 것이었다. 남한 내에서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이 문제는 소위 진보적 성향을 지닌 학자들이 한국전쟁을 남한이 먼저 북침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일어났다. 이런 주장은 러시아 문서고가 개방되면서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사실보다는 이념을 앞세우면서 일어난 학문적 참사였다.

스탈린과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이 공모해서 남침한 것이다. 한국내의 소위 진보적인 학자들 상당수가 북침설을 지지했는데, 러시아 문서고 개방이후 자신들이 잘못된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소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학계나 정치계나 한번 싸질러 놓고 아니면 말고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정치계는 원래 그런 곳이지만 학계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학문적 엄밀성보다는 이념적 편향성에 한국 학계가 좌우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면 솔직하게 틀렸다고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문이 발전한다. 학계가 엄밀해야 아무리 정치계가 혼탁해도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 학계는 정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마치 시민단체가 정치화된 것처럼 학계도 정치화 된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스탈린의 꾀임과 강요에 의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중국이 한국전쟁 참가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것이으므로 책임이 없다는 의미다.

중국의 한국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중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도 한국전쟁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면서 한국과의 관계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어느 수상식에서 말한 것 때문에 중국의 네티즌이 반발하면서 갑자기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변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전쟁을 이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사일이 아니다. 뭔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을 이슈화하는 것은 목하 진행중인 미중패권경쟁의 일환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이하여 그들이 미국을 이겼다는 자신감을 중국국민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보다 미국과의 갈등과 충돌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변화를 통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중국이 침략했느냐 아니냐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두고 각각의 국가가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도 중국은 한국전쟁을 역사가 아니라 현실로 보고 있다.

역사를 단순한 과거로 보면 무엇이 사실인가 주장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 있다. 중국 정부가 어떤 역사적 해석을 택하는가를 보면 그들이 어떤 정치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앞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일정하게 선으로 그으려는 것 아닌가 한다. 아마도 한국이 미중패권경쟁에서 어차피 미국의 편을 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대한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거의없다. 중국은 한국전쟁만 연구하는 학자들이 부지기수다. 솔직하게 말해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쟁점에 대해 토론하면 한국학자들이 백전백패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학자란 전통적 해석에 선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이 각각 존재하고 있는한 어쩔 수 없이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한국가의 기반은 역사학과 철학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전쟁 논란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추미애와 윤석열, 둘 중하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봉연의 편지로 세상이 시끄러운 것을 보면서 사기꾼과 정치인의 수준이 거기에서 거기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검찰이고 경찰이고 사법경찰들은 수사를 철저하게 해서 그런 사기꾼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기범죄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상태가 건강하지 않은 이유를 한마디로 하라면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을 별로 보지 못했다. 추미애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인 듯하다.

추미애는 대한민국 역사상 희대의 사기꾼인 김봉현을 공익제보자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말이 말같아야 뭐라고 할 것아닌가? 김봉현이 공익제보자와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그가 편지를 방송으로 보내 언론플레이를 할 것이 아니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면 될 일이다. 김봉현이 재판에서 증언을 하지 않고 언론에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의 행동이 정치공작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판에서 위증을 하면 엄하게 처벌한다. 김봉현이 방송에 편지를 보낸 것은 재판에서 위증한 죄로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추미애는 김봉현이 편지에서 주장한 검사들에게 룸살롱 접대를 했다는 이야기를 조사하기 위한 감찰을 한다고 했다. 당시 검사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추미애가 감찰을 한다고 했으니 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김봉현이 지목한 변호사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펄쩍 뛴다.

추미애는 검사를 접대하기 위해 김봉현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법무부와 대검 감찰을 실시하고 있다. 이것은 감찰이 아니라 수사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범죄용의자에게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누구든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만일 추미애가 말한 것 처럼 윤석열이 그런 사실을 보고받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면 윤석열은 당장 검찰총장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더욱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만일 검사들을 접대했다는 김봉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윤석열이 보고를 받고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추미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그에 대한 처벌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김봉현의 편지를 받고 특종인양 보도를 했던 JTBC도 만일 김봉현이 검사를 접대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김봉연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이것은 정치공작으로 간주하고 그 배경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와 수사를 실시해야 한다.

추미애는 이미 국회에서 자신의 아들과 관련한 내용으로 위증한 전력이 있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것은 직책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배운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한번 거짓말쟁이는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추미애- 김봉현 게이트가 터질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사하면 무엇이 진실인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도 어떻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를 막으면 두개가 터지고 두개를 막으면 세개가 터지는 법이다.

결국 이번 추미애-김봉현 게이트는 문재인 정권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안보와 외교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의 거짓말은 어떤 경우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김봉현의 주장이 사실이면 검사접대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고 한 윤석열은 즉각 사퇴하고 국정감사 위증죄로 즉각 처벌받아야 한다.

추미애의 주장대로 윤석열이 사건을 무마하고 뭉개려고 했다면 윤석열은 희대의 사기꾼이다. 그는 국민을 속인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추미애는 희대의 악녀다.

만일 김봉현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왜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추미애가 김봉연의 거짓말을 이용해 윤석열을 쫓아내려고 했다면, 법에서 정한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심판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둘중하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반드시 죽어야 한다. 만일 이도 저도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

문재인은 뒤에서 웃고 있을지 모른다. 사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웃고 있을 상황은 아닌듯하다.

대한민국 정치 바꾸자.

어떤 정권도 공과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느냐 아니면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긍정과 부정의 양극단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모택동에 대해 공7과3이라고 했던 등소평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안목이 돋보인다.

해방이후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앞잡이로 친일파를 척결하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하도록 만든 독재자라는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그는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대 출신으로 군사쿠데타로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했지만, 경제개발로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지도자다. 전두환은 광주학살의 원흉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전두환은 한국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노태우는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이어지는 가교역할을 했다. 김영삼은 최초의 문민정권을 가능케함으로써 해방이후 계속되던 군부통치를 마무리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여 한국 정치문화를 도약시켰다. 김대중은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고 IMF위기를 극복했다. 노무현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지역에 기반한 정치를 극복하려고 시도했다.

노무현 이후의 대통령들이 무엇을 어떻게 잘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모두 별로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아마도 정치철학이 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이명박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고 자신의 성공 방식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에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했다. 이명박은 어마어마한 비리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과거로 현재를 이기려고 했던 사람이다.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문재인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란 대의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다. 그는 국가보다 진영이익의 대표자일 뿐이다. 직함은 대통령이나 하는 짓은 파당의 수장 범위를 넘지 못한다.

대통령 감이 없다는 응답비율이 28%에 달한다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대통령감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가를 안전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노무현 이후 대통령이 모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국민을 통합하려는 생각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무현 이전과 노무현 이후의 한국정치는 완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노무현부터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진영의 대통령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 경쟁하면서 오랬동안 싸웠지만 서로 일정한 선은 넘지 않았다. 그들은 민주화 투쟁의 동지였다.

노무현 이후의 대통령들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진영의 대통령에 불과했다. 보수정당의 대통령이었던 이명박과 박근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내 생각하고 다르면 그냥 귀를 막았다.

문재인 정권은 그런 점에서 진영정치의 끝판왕이다. 한국정치는 더 이상 이렇게 진영의 전리품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치는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한 것보다 우리 후손들이 얼마나 잘 살 수있도록 하는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정치풍토를 그대로 후대에 물려주는 것은 역사적 죄악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세번의 정권은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해도 그러기가 어렵다. 문제는 기존의 정치권으로는 한국정치를 퇴행시키고 있는 진영논리를 깨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의 힘>과 <더불어 민주당>은 모두 데칼코마니다.

여러번 언급했지만 <더불어 민주당>이 지금같은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것은 <국민의 힘> 때문이다. 이미 없어져도 몇번은 없어져야 할 정당이 버젓이 살아 있으니 어찌 정치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 행패는 <더불어민주당>이 부리지만, 그 실질적인 책임은 <국민의 힘>에 있다.

<국민의 힘>이 없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힘을 비판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지지기반을 유지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같은 놈들끼리 서로 비판하면 뭐하나?

과거 군사정권은 경제개발 때문에 정치발전은 도외시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핑게라도 할 수 있다. 지금 정권의 파시즘적 행태는 무슨 이유를 대서 정당화시킬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이 불가피하다. 기존의 정치세력으로는 다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뿐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은 상식에 바탕해야한다.

이제까지 우리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위해 참신한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참신한 사람 때문에 우리 정치는 멍들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슈퍼맨이 떨어져서 세상을 구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상식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서 상식적이고 바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잘했던 사람보다 인생을 제대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엉터리같은 지도자를 선출하는지는 미국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서 훌륭한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문재인을 선거로 뽑았다. 미국은 트럼프를 선거로 뽑았다.

모택동 이후 중국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지 않았다. 공산당내부에서 결정했다. 최근 중국의 비약적인 성공에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선출한 지도자들의 역량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당정치를 하면서 제대로된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에 중국은 꽤 괜찮은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출했다.

대한민국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하려면 바뀌어야한다. 가장 먼저 바뀌어야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바뀌려면 지금처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서로 서로 해먹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점이다. 매일 똑같이 먹으면서 살빠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매번 똑같이 정치인들에게 놀아나면서 한국정치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더 어리석은 일이다.

이제 제대로 된 사람 좀 뽑자

금태섭, 박형철, 박순철, 윤석열, 새로운 기대

요며칠 사이 앞으로 국내정치의 방향을 바꿀수 있는 몇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첫째는 금태섭 전의원 더불어민주당 탈당, 둘째는 박형철 전청와대반부패비서관이 조국이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중단시켰다는 증언, 셋째는 박순철 남부지검장이 정권에 대한 반발과 사퇴, 넷째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정감사다.

금태섭 전의원의 탈당은 앞으로 한국정치가 <국민의 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앞으로 금태섭 전의원이 어떤 행보를 할 지 모르겠다. 언론에서는 서울시장 출마를 점치기도 한다. 모지리들만 모인 <국민의 힘>은 금태섭 전의원이 자신의 당에 들어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악랄한 자들의 집합체인 <더불어 민주당>은 금태섭이 안철수쪽으로 갈 것이라고 악담을 하고 있다. 금태섭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미 한번 떠났던 안철수에게 다시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둘다 정치적 지능지수가 낮은 듯 하다.

금태섭은 안철수가 민주당을 떠날때 이미 그와 이별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금태섭은 이미 그때 안철수의 그릇과 사람됨됨이를 알아 보았을 것이다. 그가 안철수를 따라 나서지 않는 것은 그에게서 미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상황을 보면 금태섭의 안목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금태섭은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힘>이나 <국민의 당>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로 가면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태섭은 앞으로 한국정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부패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이라는 기존 정당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정치 지평을 열수 있느냐 아니냐는 금태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무론 금태섭이 정신이 팔려 국민의 힘이나 국민의 당과 같은 기존 정당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되면 정치발전의 속도는 잠시 늦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방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 의지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이성>은 어느 한 두 사람의 의지로 그리고 대깨문과 같은 악랄한 이기적 부패세력의 의지로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박형철의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조국 재판에서 조국이 유재수 감찰을 중지시켰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언했다. 검찰은 즉각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서 조국에게 직무유기의 죄를 추가했다. 고위급 공직자의 잘못중에서 가장 크게 죄를 물고 벌을 주어야 하는 것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그럴 것 같으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소소한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이 감찰을 중단시킨 행위는 국가와 민주주의의 존립기반을 위태롭게 했다는 가장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

법조계 인사들로 부터 법꾸라지인 조국이 무죄를 받고 나올 확률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명수의 사법구가 조국가 짜고치는 고스톱을 할 확률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했다. 그러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증언으로 조국은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조국이 어디 유재수 한사람만 그렇게 봐주었을까? 대깨문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박형철 전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증언을 보면서 그는 옳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형철은 그런 증언을 함으로써 자신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가 개인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정의를 위해 옳은 말을 하는 것은 높게 평가 받아야 한다. 앞으로 박형철 같은 검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순철 남부지검장의 사직은 검찰이 정치의 하수인이 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박순철은 그동안 추미애의 사람이라고 불렸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추미애가 하는 짓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남부지검장에서 물러났다.

검사는 우리사회의 정의를 지키고 구현하는 마지막 보루다. 검찰이 무너지면 사회정의가 무너진다. 박형철과 박순철 두사람을 보면서 아직 우리나라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고위직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머리와 재주보다 심지가 굳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박형철과 박순철 두 검사는 우리나라 검사들이 그런 철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윤석열의 국정감사는 새로운 대선주자급 정치인이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 무대였다. 이틀전 문재인이 윤석열을 대선주자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포스팅을 했다. 그것은 문재인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이 문재인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문재인이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어해도 윤석열이 문재인의 뜻을 그대로 받아 들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윤석열이 혹시 문재인의 꼬임에 빠져 <더불어민주당>으로 들어간다면 그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모두 상실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은 <국민의 힘>의 숨통을 끊어 놓은 사람이다. 앞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숨통을 끊어 놓게 될지도 모른다.

금태섭의 탈당, 그리고 박형철과 박순철의 기개를 보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윤석열이 역사의 물꼬를 바꾸는데 앞장을 서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은 서서히 흐르다가 갑자기 급류가되고 폭포가 되기도 한다. 정치가 그런 것 같다. 지금까지는 서서히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저런 암초가 나오면서 물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얼마 있지 않아 급류가 나타나거나 폭포가 나타날 것이다.

미국 대선토론과 북핵문제 그리고 우리 입장

미국 대선토론의 거의 마지막 주제가 북한핵문제였다. 트럼프는 자신이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성과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와 달리 북한이 핵능력을 축소시킬 경우에만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 이제 미국 대통령이 누구가 되던 핵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몸값이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북한의 발언권이 강해졌으며 일방적인 압박만으로는 북한을 상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바이든이 김정은과 회담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북한의 핵능력을 축소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종국에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회담의 조건으로 북한의 핵능력 축소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북한의 핵능력 축소는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다. 당장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 사거리의 축소문제일수도 있고 다탄두를 단탄두로 바꾸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북한의 제2격능력인 SLBM을 제한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의 실질적인 핵능력을 축소시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떤 조건에서든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그런 성과가 핵능력 확대의 결과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앞으로 북미간 핵문제를 둘러싼 회담의 양상은 비교적 분명해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세계정책의 하나인 핵확산금지라는 대의를 훼손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능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에게 남은 선택지는 외교적인 화장을 잘해서 확산금지라는 명분을 잃어 버리지 않고 북한의 핵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바이든의 핵능력 축소라는 것은 명분확보를 위한 수사일 뿐일 가능성이 높다. 마치 북한이 이제 아무런 소용도 없는 핵실험장을 폐쇄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미국 대선이 끝나고 나면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한 북미간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가 너무 혼란스러워 북미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 핵능력 축소의 대가로 한반도의 기본 안보체계를 변화시켜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동안 언급되어 오던 종전선언에서 주한미군 감축까지 다양하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정권말기의 혼돈이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걱정된다.

남북관계가 어떤식으로든 발전하면 좋을 것 같겠지만 북한이 미국과 나란히 서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안보이익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높아진 북한의 위상에 남한은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은 자신의 안위 걱정에 국가안보는 안중에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윤석열을 보면서 이회창이 떠올랐다.

올해의 국정감사는 윤석열을 위한 무대인 것 같다.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윤석열은 정치인으로 등장한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을 공격하면서 그의 정치적 주가를 높였다. 이회창은 김영삼에게 대항해서 주가를 올렸고 그 이후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다. 대통령이 될 수 있었으나 그의 고집과 독선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윤석열을 보면서 이회창을 떠올린 것은 그가 퇴임이후 국민을 위한 봉사를 고민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봉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윤석열을 이번 기회를 이용해 자신을 대선후보급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문제는 그가 정치를 한다면 어느 정당에서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국민의 힘은 윤석열을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일 윤석열이 국민의 당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자기파괴적 행동이 될 것이다. 대선 후보는 고사하고 국회의원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척을 세우고 결국 박근혜의 탄핵에 이르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 윤석열이 국민의 힘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 힘이 윤석열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을 보고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국민의 힘 당 국회의원들은 수준이 떨어져도 한참은 떨어진다.

윤석열은 감사중에 문재인이 끝까지 임기를 지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문재인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민주당도 대선급 후보의 수준이 고만고만하다. 잘못하다가는 국민의 힘에게 밀릴 수도 있다. 이재명은 예측불가한 포퓰리스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문재인도 뒷일을 보장받기 어렵다. 게다가 이재명은 안티가 너무 많다. 극렬 지지자도 있지만 극렬 반대자도 많다. 요즘 보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그 지지자들은 대깨문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낙연은 할 말이 없다. 여당 대표까지 하고 있지만 이재명보다 지지도가 떨어진다. 이미 이낙연은 대선후보로서의 상품성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드루킹의 선거부정 혐의를 받고 있는 김경수를 내보낸다는 것은 자살고를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당과 야당 내부사정을 보면 대선 후보가 분명하지 않은 것은 모두 똑 같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정치를 한다고 하면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떠나서 제3의 정치세력을 스스로 만들 것인가? 시간이 없을 뿐더러 그럴 기반도 없다. 결국은 기존 정당에 뿌리를 박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재인의 앞으로 최대 관심사는 자신의 안위문제일 것이다. 정권이 다른 정당으로 넘어가면 문재인도 양산에서 편하게 농사짓기는 애초에 다 틀린 일이다. 편하게 살려면 자신이 대선 후보를 만들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검 국정감사는 윤석열의 정치인 등용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윤석열이 점차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림은 좋다. 문재인은 윤석열을 극렬 반대하던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을 이용해서 적절하게 견제도 할 수 있다. 윤석열을 받아 들임으로써 더불어민주당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도있다.

만일 그렇게 되면 국민의 힘은 닭쫓던 개 지붕처다 보는 신세가 된다. 청와대가 추미애의 지검찰 지휘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언급한 것도 여사일은 아니다. 추미애를 엮어 넣는 재물로 삼으면서 윤석열을 띄우는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 철없는 추미애는 자신이 당하면서 당하는지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윤석열은 원래 문재인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사람들이 자꾸 그런 사실을 잃어 버리는 것 같다.

윤석열 뒤에는 문재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아닐까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상호모순

자유민주주의라고 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구가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당연히 민주주의도 같이 발전하겠거니 했는데 요즘 미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의 경우를 보면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미국과 한국의 경우, 현재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있다. 트럼프 등장이후 미국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150년 이전 남북전쟁이전의 상황까지 후퇴한 것 같다. 미국은 거의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채택했다. 트럼프는 백인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치적 지지기반을 강화해왔다. 인권과 자유라는 가치와 이상은 더 이상 미국이 지향하지 않으며 지향할 수도 없는 허깨비가 되고 말았다.

소위 미국의 레드넥이라는 중하층 백인들은 트럼프를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사실상 친위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극단주의적 인물들은 트럼프에게 반대하는 주지사를 살해할 음모를 꾸미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전쟁이후 미국의 연방제도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촛불혁명 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민주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후 민주주의를 지탱해오던 기반체제들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일국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삼권분립과 같은 공화적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을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이후 급격하게 친정권화되어 버렸다. 문재인 정권은 검찰도 완전하게 장악해서 사실상 사법과 행정은 더 이상 서로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거기에다 정권과 이익을 같이 하는 대깨문이라는 집단 팬덤이 친위대처럼 활동하면서 홍위병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세계 자본주의의 대표주자인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한편,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지만 더 이상 사회주의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중국은 분명하게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고 있다. 다만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과두적인 체제다.

요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된다. 원래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의 과두정으로 운영되었다.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베네치아는 완전한 과두정이었다. 돈이 많은 사람만 정권운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나폴레옹에 의해 오스트리아로 넘어지기전까지 역사상 가장 번영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했다. 그 비결은 과두정이었다.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생하고 번영할 때도 사실상 과두정이었다. 일정한 재산이 있는 사람만이 투표에 참가할 수 있었다. 오늘날과 같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투표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조건을 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투쟁의 결과였다.

그러고 보면 시장경제체제와 민주주의를 연결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리 자연스러운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장경제체제 즉 자본주의체제는 자본가들의 과두정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과두정에 참가하는 자본가들이 베네치아의 예에서 보듯이 일반 국민들의 복지를 최우선의 과제로 생각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요즘 미국이나 한국의 경우를 보면 민주주의라고 해서 보통사람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지만 사실상 과두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씌웠으니 베네치아의 경우처럼 위정자들이 일반 시민들의 복지에 많은 관심을 쏟지 않아도 된다. 민주주의라고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것 같지만 거꾸로 복지는 점차 악화되고 빈부격차는 심해진다. 자본가들은 국민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구조가 고착되어 가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 공산당 과두정하의 자본주의는 오히려 효율적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중국이 오히려 베네치아의 자본주의 모델에 더 근접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 민주주의도 발전한다는 미국이 주장한 공식은 틀린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않더라도 시장경제는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어느정도 경제발전을 하게 되면 민주주의로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중국을 사회주의국가라고 비난하기 보다 과두정하의 자본주의체제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지 않을까?

지상의 가치처럼 생각했던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결국은 서로 상반된 가치를 지향하는 것들의 부자연스런 조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결국 자유주의는 자본가의 이익을 민주주의는 인민의 이익을 대표할 뿐 아닐까? 19세기 전반에 걸친 서구의 혁명은 자본가들의 민주주의는 허용했지만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는 허용하지 않았다. 보통선거권을 획득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본가들은 오늘날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었던 보통선거를 끝까지 반대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자유당이 붕괴되고 노동당이 들어선 것도 결국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였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것도 결국 자본가들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이익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그런 측면에서 위기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제한적인 민주주의 즉 자본가들의 자유주의는 효과적이지만 지금과 같은 보통민주주의는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다.

결론은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도 지고의 이상이 아니라 모순의 결합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