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존재, 대깨문

스스로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똑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야 할때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대깨문을 비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비판을 받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똑 같은 짓을 반복한다. 문재인과 대깨문을 보면서 좌절과 절망을 느끼는 이유다.

아무리 벽창호라도 이정도로 비난하고 비판을 하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비난과 비판을 이리저리 회피한다. 차라리 비난과 비판을 정면으로 맞서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비판을 교묘하게 왜곡시킨다.

첫번째,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대중의 증오를 이용하여 희석하거나 무력화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토착왜구>주장이다. <토착왜구>기 때문에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힘>은 당연히 가장 대표적인 토착왜구가 된다. 그런데 분명하게 할 것은 원래 <민주당>이 <토착왜구>의 본산이라는 점이다. 아닌가?

해방이후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이후 한국정치를 주름잡았던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토착왜구 출신들이다. 그렇게 본다면 <민주당>도 예외없이 모두 토착왜구 출신이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도 다를 것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중진의 면모를 보면 상당수가 <토착왜구>의 후예이다.

자극적인 토착왜구라는 말을 사용해서 비판의 도덕적 근거를 훼손하려고 한다. 아주 악랄한 짓이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모든 사람을 <토착왜구>라고 뒤집어 씌워 버린다. <빨갱이>라고 무고한 사람들 집단학살하는 것이나 <토착왜구>로 몰아서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 사이에는 그어떤 차이도 없다.

<빨갱이>와 <토착왜구>는 논리가 딸리는 경우에 주로 동원하는 방법이다.

두번째, 검찰개혁은 공평무사해야할 정당성을 자기의 편익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개혁이다. 문재인과 대깨문은 검찰이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자 곧바로 검찰개혁을 들고 나왔다. 정말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에 관심이 있었다면 정권을 잡자마자 검찰개혁을 주장했어야 했다.

문재인이 검찰개혁을 주장한 것은 <울산시장 부정선거>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을 주장하고 나온 시기는 그들이 주장한 검찰개혁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윤석열을 제거하려는 시도도 이와 연관해 해석할 수 있다. 한때 문재인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윤석열을 역적으로 몰아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문재인과 그 주변인물들의 권력형 비리를 들춰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윤석열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처음에 그는 그저 충실한 검사였을 뿐이다.

정상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드루킹사건과 문재인이 연루되어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는 문재인이 노골적으로 개입했고 경찰을 이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두가지 사안은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완전하게 위협한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질서는 문재인보다 훨씬 중요하다. 민주주의 질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바로세우기가 어렵다. 당연히 이런 일은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만일 문재인이 여기에 관여되어 있다면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 할아버지라도 처벌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은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개인보다 훨씬 소중하고 중요하다. 문재인을 위해서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지도록 놔둘수는 없다.

논리와 증거가 아니라 증오와 미움을 동원해서 상대방의 논지를 무력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문재인과 대깨문을 파시스트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대깨문이 문재인의 편에 서서 이익을 받아 먹는데 급급한 종자들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정도의 사안에 대해서는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소위 대깨문들은 한때 운동권이라고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을지 모르나, 이런 저런 이익에 눈이 멀어 이제는 분노할 것을 보고 분노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분노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 운동권이란 거세한 종마와 마찬가지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식인은 불의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불의든지 상관없이 분노해야 한다. 상대편과 내편을 따져서 분노를 조절하는 것은 사이비 기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행태다. 대깨문들에게서 그런 사이비 기회주의자들의 모습을 본다. 그런 자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을 느낀다.

그들의 존재자체가 좌절하게 만든다. 수천년간 인간이 정성들여 만들어온 윤리학적 명제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게 만든 독사의 족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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