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돼서 생각해볼 문제

오늘날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권력이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절망은 그들이 우리의 삶에 그 어떤 유익함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대통령 선거, 울산시장 선거 등의 과정이 그것이다.

그들은 역대 어떤 정권보다 더 심각하게 노동조건을 악화시켰다.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재벌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명박근혜 때도 하지 못했던 짓을 진보 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서슴치 않고 저질렀다.

그들은 그 어떤 정권보다 더 지저분하게 권력형 부정부패의 썩은 냄세를 여기저기 피우고 있다. 라임과 옵티머스로 수조원 시민들의 돈을 모두 도둑질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그들은 채동욱을 쳐내던 박근혜 정권보다 더 악랄하게 윤석열을 쳐내고자 했다. 아예 자신들에 대한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근본부터 막아버리기 위해 공수처를 만들어 야당의 비토권을 아예 없애 버렸다. 공수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괴물이 될 것이다.

그들은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켜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잘한 것은 별로 없다. K 방역이니 어쩌니 했지만 그것도 모두 사기에 불과한 소리가 되었다.

그들을 한마디도 평가하자면 내용보다 포장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나쁜 장사치정도가 되겠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권력을 잡고 바로 <국민의 힘>처럼 되어 버렸다. 후안무치하고 악랄하다는 점에서 <국민의 힘>은 비교도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그들을 대신할 방법이 마땅치않다는 것이다. 대안의 부재는 우리의 좌절을 절망으로 이끌게 한다.

야당이라고 있는 <국민의 힘>은 탄핵당한 세력이다. 탄핵당한지 얼마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탄핵당시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없어져야 할 정당이 마치 좀비처럼 살아있다. 진작에 죽었어야 할 것이 아직 저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새로 생겨나야 할 것들을 위한 공간은 없는 것이다.

윤석열이 갑자기 부각한 것도 대안이 되지 못하고 되어서도 안되는 <국민의 힘>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이 유망대선후보로 갑자기 부각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이유는 현정권의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한 수사의지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권력형 부정부패와 비리를 결단코 수사하고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윤석열을 방해하려고 하는 문재인과 추미애는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윤석열에 대한 지지율이 과연 대선으로 이어질 것인가는 불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을 지지하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윤석열이 시원한 사이다 같은 존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를 항상 사이다 처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문재인이 처한 상황은 사이다만 찾다가 당뇨병에 걸린 것과 같다. 국가를 위해 때로는 답답한 길도 걸어야 하는 것이 통치자의 운명이자 역할이다. 지도자가 그런 운명과 역할을 거부하면 나라가 망하고 국민이 도탄에 빠진다.

윤석열이 비록 유능한 특수통 검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훌륭한 통치자가 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대통령은 정치력이 필요한 자리다. 타협과 협상이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칼잡이처럼 일도 양단하는 자리가 아니다. 칼을 쓰던 사람이 타협과 협상을 얼마나 잘 해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제까지 실패한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타협과 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타협과 협상을 통치기술로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노무현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를 배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가 탄핵을 당한 것도 결국 여당 야당할 것 없이 배제하고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철저하게 야당을 배제했다. 박근혜는 야당은 당연히 배제하고 여당도 친박과 비박으로 구분했다. 문재인은 철저하게 진영으로 나누어 진영이외의 정치진영과는 어떠한 타협과 협상도 거부했다.

타협과 협상은 공화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훌륭한 칼잡이인 윤석열이 타협가 협상을 주무기로 하는 공화주의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서구에서 검사나 판사같은 법조인이 대통령이나 수상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재임기간동안 물태우라고 비아냥 거림을 받던 노태우가 사실은 가장 바람직한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통치는 법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가 된다. 그러나 법을 유일한 통치의 근거로 삼으면 그것도 독재가 된다. 그점에 대해서는 윤석열이 분명하게 언급했다. <법의 지배 rule of the law>와 <법에 의한 지배, rule by the law>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윤석열은 분명하게 <법의 지배>를 언급했다.

그가 스스로 말한 법의 지배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다. 말로는 <법의 지배>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법에 의한 지배>가 되기 일수 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검사의 생각을 가지고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의 아가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다시 그곳을 썩은 붕대로 다시 감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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