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새해가 왔다.

새로운 한해가 밝아 왔다. 새해가 되면 희망을 이야기 한다. 올해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걱정이 앞선다. 백신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한해동안 코로나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소상공인과 개인사업자들은 절단이 난 상태다.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는 우리 앞에 펼쳐진 삶이 너무 힘들다.

어려울 때면 정치권을 바라본다. 어려운 우리의 삶을 어떻게라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유감스럽게 정치권은 우리 삶을 낫게 해주기는 커녕 훨씬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다.

현재가 아무리 어려워도 가는 방향이 올바르다면 참을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어렵지만 견디다 보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절망하는 것은 아무것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현실의 자각때문이다. 노동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다. 김용균의 어머니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국회에서 단식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만드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처벌면제법으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노동환경은 미국의 1920년대 초 환경보다 더 열악한 실정이다.

노동운동의 손발을 묶어 놓았으나 <정의당>은 먼산처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정권으로부터 협박을 받았거나 매수를 당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노회찬의 죽음을 여사롭게 보지 않는 이유다. 노회찬 죽음이후 <정의당>은 <정의없는 당>으로 바뀌었다.

돈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사람을 죽이면서 벌어먹어야 한다면 차라리 굶는 것이 낫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번의 고려도 없이 자본의 편에 섰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을 진보라고 하는 것은 웃긴일이다. 그들이 <국민의 힘>과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다. 훨씬 교활할 뿐이다.

공수처장으로 판사 3년하다가 12년간 김앤장에서 근무하고 돈 많이 벌은 다음에 다시 헌법재판소에 들어간 변호사를 지명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살아온 역사를 보면 안다. 그는 판사라는 헌신 대신 김앤장에가서 돈을 택했다. 돈을 벌만큼 벌고 나니 이제 명예를 추구한다. 그래서 관직에 다시 들어간다. 법무부 인권국장자리에 공모했다가 떨어진 사람이다.

돈도 벌만큼 벌었으니 이제는 고위관직으로 진출하겠다는 야망을 달성했다. 묵묵하게 판검사로 일해온 사람들을 모두 바보 머저리로 만들었다.

그런 자가 공수처장 후보로 대한변협의 지명을 받았다. 도대체 공수처장을 지명하는데 왜 대한변협이 후보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변호사들은 공수처장과 이해관계가 밀접하다. 이해관계가 밀접하면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이 법률의 기본원칙 아닌가? 새로운 공수처장 지명자가 대한변협회장과 어떤 관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는 무슨 기준으로 대한변협의 지명을 받았는가 ? 앞으로 그가 공수처장이 되면 대한변협 회장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것이다.

공수처장을 대한변협에서 추천하고 심의하는 것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를 전경련이 추천하고 심의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법률을 잘 알지 못하지만 공수처장 후보를 대한변협회장이 추천한다는 것은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이 문제가 있고 그들의 권한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개혁이라면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마구 저지르면서 그것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과거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을 해놓고 그것을 개혁이라고 하니 기가 찰 뿐이다.

검찰을 공소처로 바꾼다고 한다. 경찰에 수사권을 주고 검찰은 기소만 하고 공수처는 수사와 기소를 다한다. 차라리 검찰을 공수처로 만드는 것이 낫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그것은 별문제가 안된다. 제도적으로 검찰을 바람직하게 개혁하겠다는 것이 아니니 문제다. 문재인과 그 주변인물의 범죄의혹에 대한 수사를 막기위해 검찰의 손발을 묶으려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범죄의혹에 대한 수사를 막기위해 검찰을 없애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

올한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새해가 되면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올해는 희망을 이야기 하기 어렵다. 희망대신 대중의 각성이 필요한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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