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이익과 손해 사이, 삼성문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측이 악마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보통 나쁜 것들은 스스로 좋은 것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최악의 악마는 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선인줄 알고 따라갔는데 그것이 악마였던 경우가 적지않다.

스스로 지고지순한 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는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악일 경우를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가 옳은 길이라고 확신했던 많은 것들이 옳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리가 믿고 따랐던 지도자들이 우리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다. 우리가 정말 옳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옳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확신이란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의 전유물인지 모르겠다.

종교에서는 선과 악이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겠지만 현실에서는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지가 중요하다. 종교적 선과 악의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적 삶의 영역에서 이익과 손해의 기준을 따지는 것은 쉽지 않다.

종교와 달리 현실에서는 누구에게 이익이며 손해인가 하는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가진자의 이익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익은 서로 정반대의 입장이다. 가진자의 이익이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몫을 빼앗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평불만을 악으로 규정한다. 냉철한 이익과 손해의 영역이 되어야 할 정치에 동원되는 선과 악의 가치관은 대부분 가진자들이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도구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기를 쓰고 비난하는 많은 것들 속에는 우리가 확보해야할 이익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악마화하는 사이에 우리의 이익이 사라저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북한을 악마화하며서 북한과 함께 경제적 번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일본을 악마화하면서 일본과 함께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삼성을 악마화하면 우리의 경제적 성취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없으면 대한민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삼성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많이 나쁜짓을 했다. 이재용에게 9년 징역이 선고되는 것을 보면서 속이 시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재용에게서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혹시라도 삼성전자가 휘청하면 우리 경제는 타격을 입는다. 이재용을 감옥에 집어 넣은 것을 당연한 선의 구현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에 눈독드리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삼성이 그동안 해온 나쁜 짓을 그냥 방관하고 묵과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않된다. 삼성이 주인없는 회사가 되어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가차없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모두에 선과 악, 이익과 손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그러나 비난이 무섭다고 해서 닥쳐올 수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모른척 회피해서는 안된다. 비난이 두려워 리스크 관리를 회피하면 아무런 대책없이 태풍속으로 들어가는 일엽편주와 마찬가지가 된다. 나의 운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와 부동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휘청하면 코로나와 부동산 가격상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쓰나미가 몰려올 수도 있다.

켐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사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한 추가적인 논의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것은 다루는 사안의 우선순위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제일 마지막으로 우선순서가 밀린다. 가장 쓸데 없는 일들에 모두 목을 메고 있다. 경중완급에 대한 기준이 다른 것이다.

문재인은 자신의 이미지 관리가 국가 경영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다. 그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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