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의 구속, 미국 대외정책에 도전한 대가

23일자 조선일보 신문에 “다나카 前일본총리, 美키신저 때문에 몰락”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의 언론인인 하루나 미키오가 쓴 책의 내용을 마이니찌가 22일 소개를 했고 이를 조선일보에서 다시 소개한 것이다.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은 2차대전이후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76년 록히드 사건으로 검찰에 구속되었는데 그 배경에 키신저가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를 하기도 전에 다나카가 먼저 중국과 수교를 했다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전후 최고의 정치인이었던 다나카가 헨리 키신저의 괘심죄에 걸려 구속되고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것이다.

하루나 미키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미루어 짐작해야 할 것은 미국이 자신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동맹국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이 일본의 전직 수상을 감옥에 보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내정간섭이라고 하면서 비분 강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였으면 아마도 반미자주의 목소리가 높았을 것이다.

비분강개하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것이 바로 국제정치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와 도덕 윤리는 국가의 범위안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상식같은 것은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의 행동이 일반적인 패권국가의 행동방식이라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국가간의 관계에서 도덕과 윤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물론 도덕이니 인권이니 하는 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아무리 고상한 이념과 당연한 도덕도 자신의 이익을 손상시키면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최강의 패권국가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무조건 한미동맹 최고라는 주장도, 반미자주만 소리 높이 외치는 것도 다 옳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런 양극단의 주장으로 갈려있다. 국민들이 그 정도 수준이면 우리는 미국과 제대로 상대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정세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 범위를 계속 넓혀 나가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나 미키오의 책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자신의 대외정책에 혼선을 가져오는 정권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그런점은 여러번 언급한 적이 있다. 막연하게 짐작했지만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충격이다.

우리가 어떤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지, 이는 순전히 국민들의 수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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