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식 패권경쟁, 무엇이 잘못인가 ?

미국과 나토정상회담에서 중국을 적대적인 관계로 규정했다. 공동선언문에는 미국과 나토대 중국의 관계를 민주주의와 독재로 규정했다. 마치 냉전당시 동구권을 전체주의로 규정했던 것과 비슷하다.

지금의 중국은 소련이 아니며, 지금은 냉전과 매우 다르다.
냉전은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관계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진영의 투쟁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를 전체주의라고 규정한 것은 상당부분 타당했다.
현실 사회주의라는 것이 국가의 강력한 힘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냉전의 핵심은 군사적 위협이었다. 동구는 사회주의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서구의 경제체제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서구는 자본주의 체제가 동구의 군사적 도발로 무너지는 것만 걱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동구자체가 제2차세계대전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서구와 동구의 대결은 본질적으로 군사적이었다.
전쟁위협이 상존하지만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냉전의 본질이다.

중국의 위협은 냉전시대와 다르다.
중국은 경제적인 성장을 통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한다.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체제 안에 들어와 있다. 미국이 느끼는 중국의 위협은 군사적인 위협이 아니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팽창으로 미국의 패권이 상실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의 성장에 대항하기 위해서 군사적인 위협으로 포장하는 것이 옳은 방식일까?

미국은 자신이 처한 위협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냉전적 방식의 해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미국은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지적위기에 빠져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때문에 발생했으며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혹은 알고 있어도 해결할 능력이 없다. 대부분 그런 해결은 내부의 모순을 해결해야 하는데 미국의 정치인들은 내부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있는 것이다.

미국이 나토를 동원에 중국을 안보적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미국이 당분간 중국의 경제적 성장을 감당해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서서히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악마화하는 냉전적 방식으로는 미국이 중국을 극복하기 어렵다. 미국이 중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망하게 하겠다는 것보다 내부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는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경제적 활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내부 기득권의 반발로 쉽지 않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중국의 힘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내부의 개혁에 달려있는 것이다.

중국의 행태가 문제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를 안보적 위협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해결하기는 어렵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안보적 위협으로 규정한 것은 중국의 성장과 팽창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지 못하니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안보적 위협을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중국과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법이다.
유럽도 미국의 안보위협규정에 앞에서는 동의했지만 뒤에서는 딴청을 피우고 있다.
바이든이 돌아가자 마자 유럽은 자신들이 반중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도발하여 국지적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중국을 압박하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그런 도발에 말려들어갈 가능성이 별로 없다.

지금의 중국은 1840년대 아편전쟁의 청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내 일부 강경파가 있어서 미국에 맞서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중국이 그렇게 미국이 바라는 대로 군사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경거망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바라는 방식과 장소에서 싸우는 것이 하수라는 것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미국과 중국간 본격적인 쟁패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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