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어떻게 정치권력을 포획하는가? 서양, 동양, 한국의 경우 그리고 김건희와 윤석열의 의미

자본주의라고 다 같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서양의 자본주의는 동양, 특히 유교문화권의 자본주의와 차이가 있다. 여기서 차이라고 하는 것은 자본과 정치권력의 관계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본류인 서양과 이를 도입한 동양은 토대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서양의 자본주의는 자본이 정치권력을 함께 가진다. 즉 자본=정치권력인 것이다. 서양의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란 자본이 정치권력을 합법적으로 장악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자본을 대표하며 자본을 위해 봉사한다. 서양의 자유민주주의주의에서 경쟁이란 자본간의 경쟁을 의미한다. 금융자본간의 경쟁, 금융자본과 사업자본간의 경쟁 등등이다. 

영국, 프랑스 혁명의 경우 소부르주아지와 대부르주아지간의 경쟁이 있기는 했으나 곧바로 대부르주아지가 승리를  거두었다. 노동자들과 무산자들의 정치적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이 있다. 이들이 정권을 잡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들과 무산자들의 정치적 이익을 대표한다고 말만 한다. 위장인 것이다. 실제로는 자본을 위해 봉사할 뿐이다. 

자본주의 정치체제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15세기부터 나폴레옹에 의해 무너질때까지 약 400 년간을 안정적으로 번영했던 베네치아라고 하겠다. 베네치아는 정해진 자본가들만 정치권력에 참여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자본가들의 과두정을 수백년동안 안정적으로 유지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인민대중에 대한 폭넓고 충분한 복지정책 덕분이었다. 현명한 베네치아의 자본가들은 관대한 복지정책을 제시하고 정치권력을 독점했던 것이다. 

베네치아를 제외한 서양의 자본가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내용을 잘 들여다 보면 서양의 자유민주주의란 자본가들의 과두정을 듣기 좋게 표현한 위장에 불과한 것이다.  

동양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의 경우 처럼 유교문화가 지배해온 곳에서는 정치권력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경향을 가진다. 정치권력은 자본도 통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중국이 개방되면 서양처럼 자본가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2천년에 걸쳐 형성된 정치권력의 강력한 힘은 자본의 자유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일본도 정도는 다르지만 동양적 정치권력이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다.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서구화의 길을 걸었지만 샤스마 조슈의 정치권력은 단 한번도 자본에게 무조건 굴복하지 않았다. 자본은 정치권력의 지원을 얻고 지원을 했을지언정 정치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못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추어 매우 다른 양상을 띤다. 한국은 정부수립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에 이를때까지 항상 정치권력이 자본을 압도했다. 정치권력이 자본의 형성과정을 지원했다. 정치권력은 마음만 먹으면 자본을 해체시킬 수도 있었다. 전두환이 국제그룹을 해체한 것이 그 예다. 정치권력이 압도했기 때문에 정부주도 개발도 할 수 있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김영삼 김대중은 자본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한국에 자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때이다. 이건희가 정치가 3류라고 이야기했던 이유는 무엇때문일까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치가 3류라는 말은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연히 정치과정이 후진적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본의 생각대로 정치권력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노무현 정권을 삼성공화국이라고 부른다. 노무현 정권에 와서 자본은 정치권력을 비로소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거대한 비자금이 노무현과 그 주변의 인물로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떠 다녔다. 노무현 정권의 실세인 이광재는 삼성을 위해 청와대의 집사 노릇을 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 전체가 삼성을 위해 봉사했다. 

노무현 정권때부터 관료들도 삼성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소위 진보를 표방한 정권이 삼성이라는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때는 오히려 삼성의 영향력이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물밑에서는 또 달랐을 것이다. 박근혜 몰락의 단초가 된 것도 삼성이 아니었던가? 박근혜 들어와서 정치권력을 둘러싼 자본의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삼성의 이씨일가와 중앙의 홍씨 일가간의 경쟁이었다. 박근혜 탄핵과정에 홍석현의 JTBC 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재용은 자신의 어머니 홍라희를 리움 이사장을 그만두게 했다. 

문재인 정권은 홍씨와 이씨 자본의 싸움 무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뺏으려는 홍씨와 방어하려는 이씨간의 투쟁의 무대인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싸움의 반대급부를 챙기고자 했던 것 같다. 문재인이 시간만 나면 삼성의 행사에 참가했던 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력이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되면서 관료들도 자본에 줄을 선다. 삼성장학생이란 말이 나오는 것은 관료를 자본이 완전하게 장악했다는 말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전직 장관 몇분과 식사를 한적이 있다. 사무관으로 갓 임용된 공무원들도 자본에 의해 장악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신들은 박정희와 전두환이후 김영삼 김대중 시대까지 공직에 있었지만 자본을 통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요즘의 엘리뜨 공무원들을 스스로 자본에 줄을 선다고 하면서 걱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진정한 복지는 정치권력이 자본을 압도할 때 나왔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가장 대표적인 복지제도는 모두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산물이다.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훨씬 복지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박근혜를 지나 문재인에 들어와서 이제 자본은 정치권력을 직접 만들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석열 뒤에 홍석현있다 혹은 삼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자본이 관료들을 포획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검찰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조직을 장악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무슨 방법으로 정치권력과 검찰같은 힘있는 관료조직을 매수할까? 매수의 기본은 돈과 성이다. 뇌물과 성상납은 정치인들과 검찰같은 중요한 사람들을 매수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김학의가 성상납을 받은 것은 이미 밝혀진바 있다. 

김건희가 살아온 행로를 보면서 그녀가 삼성의 색계로 활용되었다고 추론하지 못한다면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김건희의 삶을 여성의 문제로 보면서 옹호하는 것은 삼성과 자본의 추악함을 위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적한 것이다. 김건희가 삼성의 색계라면 윤석열은 무엇이냐고. 김명신이 이건희를 존경해서 자신의 이름을 김건희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다. 그냥 들리는 말이다. 김명신은 직접 이건희가 관리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하게 당연한 추론의 과정이 아닌가 ?

한국에서 자본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최소한 인민대중의 눈치라도 보았던 서양과 달리 한국의 자본, 특히 홍씨와 이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작을 하는 것 같다. 

문재인이 잘못해서 정권을 교체한다고 하면서 또 다른 자본의 하수인을 뽑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저질스런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