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한계

이재명을 점점 더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전형적인 포퓰리스트의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틀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고 타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전체중에서 아주 일부를 꼭집어서 이야기한다. 문제는 세상 일이라는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어서 어느 하나를 주장한다고 해서 다른 모든 것이 잘되어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기본소득에 찬성한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기본소득이 지속가능해야 한다. 기본소득이 지속가능하려면 세금이 지속적으로 들어와야 한다. 한두달 혹은 일이년 하다가 국가재정이 파탄나서 중지하면 안된다.

지금 우리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앞에 두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국가들이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고 있다.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다. 언제 터지느냐가 문제이지 터지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경제는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생태계의 위기가 오게 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를 넘어 인간과 동물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더 이상 생존하기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배고프다고 자기의 팔다리를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넘머 그 어떤 방식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이 기본소득만 주장한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번에는 기본대출을 주장했다. 기본대출과 같은 이야기는 거의 200년 전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이 주장한 바 있다. 프루동은 은행대출이 특권층을 위한 특혜이기 때문에 누구나 금리없이 국민은행이 제공하는 신용대부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부받은 돈으로 인민들이 직접 생산수단을 보유한 생산자가 되어 착취의 연결고리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의 기본대출은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르겠다. 시민중에서 일부가 고리의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국가가 신용을 담보해서 금리를 낮춰준다는 것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이재명의 기본대출 주장은 프루동보다 훨씬 더 조악하다. 공부도 안하나 ?

200년전에 탁상공론과 비슷하게 내놓은 주장을 오늘날 이재명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웃음이 나온다. 어찌 이렇게 하나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기본소득이나 기본금리나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재원은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재원은 기업과 가계가 생산활동을 하면서 획득한 이익에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문제는 앞으로 기업과 가계의 생산활동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전제조건을 쏙 빼놓고 혹세무민하여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주장만 하는 것은, 그가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추진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좋은 자질이다. 그러나 추진력이 있다는 것이 책임감이 있고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정말 이땅의 인민대중이 처한 현실을 해결하려면, 기본소득이나 기본대출과 같이 급성 당뇨병을 초래하는 고농도 설탕 대신에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분명하게 말하건데 우리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을 정도로 심각한 빈부의 격차다.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를 조금이라도 더 존속가능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급성 당뇨병을 초래할 기본소득이나 기본대출에 앞서, 부의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 재정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정부재정이 고갈되면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 앞으로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무기력하게 당하게 된다. 그러면 울며 겨자먹기로 우리의 모든국부를 말도 안되는 헐값에 팔아 넘겨야 한다. 남미처럼 되는 것이다. 남미가 지금과 같은 상항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거듭되는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부가 모두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국부가 유출되더라도 자본가들은 또 이익을 챙긴다. 결국 당하는 것은 중하층민들이다.

국가재정이 붕괴되면 앞으로 다가오는 위기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게 될 것이다. 아직 위기는 오지도 않았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우리도 중남미처럼 되는 것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계속 마구 퍼줘봐라. 어떻게 되는지 한번보자. 중남미는 시민대중이 데모를 해서도 아니라 국가의 책임자들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못해 지금같은 처지에 빠져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자본가들과 부자들이 부당하게 거두어가는 수입을 밑으로 내려보내야 한다. 국가가 돈을 발행해서 할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가들과 부자들의 소득을 분배하는 것은 혁명적 의지가 필요하다. 촛불혁명은 그런 것을 하라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촛불혁명 당시 재벌개혁의 의지가 높았던 것도 왜곡된 경제질서를 바로 잡으라는 국민적 요구였다.

문재인 정권을 재벌개혁은 커녕 재벌의 앞잡이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을 교묘하게 피해가기 위한 말장난이 기본소득이고 기본대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도 재벌과 자본가의 압잡이에 불과하다.

180석이라는 의석으로 재벌개혁 손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분명히 말하건데 그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재벌에 포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개혁? 무엇이 검찰개혁인가? 검찰을 없애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 재벌을 수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재벌의 앞잡이인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 민주주의 선거과정을 왜곡한 중범죄인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민주주의 선거과정을 왜곡한 것은 군인들이 구데타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재벌개혁과 소득분배구조의 개혁은 검찰개혁보다 100배 더 중요하다. 검찰도 재벌과 권력 그리고 가진자의 앞잡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 검찰개혁보다 더 중요한 핵심이 재벌개혁이다. 재벌개혁없이 검찰개혁 없다. 180석의 압도적인 의석으로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국력을 축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재난지원금 나눠주기 위해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담론이 모두 이상하게 왜곡되는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기본대출 주장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담론을 어떻게 왜곡시키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전략적 상상력의 빈곤

미국이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단순하게 명칭만 바꾼것만 아니다. 이번에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명칭을 바꾼 것은 본격화된 미중패권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을 미국-일본-호주-인도가 같이 힘을 합해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은 현실적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하려고 하는 전략은 미소냉전기의 봉쇄전략을 그대로 적용한 것 같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미소냉전기의 상황과 미중패권경쟁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냉전당시 자유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은 서로 경제적인 교역을 하지 않았다. 자유진영은 자유진영끼리 사회주의 진영을 사회주의 진영끼리만 교역을 했다. 미소 냉전기의 봉쇄전략은 군사적인 봉쇄이전에 경제적으로 서로 완벽하게 유리되어 있었다.

현재 중국은 경제적으로 전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점에서 미소냉전 당시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나토를 중심으로 소련을 군사적으로 봉쇄해서 냉전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직 소련의 붕괴에 대한 성과는 제대로 확인하지못했지만, 소련은 미국의 군사적 봉쇄가 아닌 내부 모순의 누적으로 붕괴했다는 주장이 훨씬 일리있다. 소련의 누적된 관료제가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봉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유감스럽게 중국에 대한 경제적 봉쇄는 거의 성공하기 어렵다. 유럽은 중국과 경제관계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독일이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실제 독일이나 유럽이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에 참가한다하더라도 실제적인 행동은 내용이 없다. 유럽은 립서비스 차원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 군사대응에 긍적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제와 군사는 다른 것이니, 경제는 그대로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유럽에게 중국과 경제관계를 단절하라고 한다면 그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이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하는 것이다.

유럽이 미국과 한몸이 된다면 미중 패권경쟁은 황인종 대 백인종이라는 인종대결로 비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유럽이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미국과 같이움직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 지 모르겠다. 그러다가는 유럽도 내부에서 부터 붕괴되는 수가 있다. 인민은 배고프면 살지 못한다. 역사는 지그재그를 그리면서 나아간다. 만일 전세계가 황인종과 백인종의 경쟁과 갈등에 함몰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베퇴진이후 일본도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베 후임인 스가는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닥치고 미국을 주장하던 아베와 달리 중국과 일방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다. 결국 일본도 15억의 중국시장을 그냥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이 이런 변화를 보이는 것은 미국이 추진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가정은 인도가 미국의 전략구상에 공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정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같다. 인도는 냉전당시에도 미국과 소련이 아닌 비동맹운동을 주도한 국가였다. 냉전시대에도 어느 한편을 들기를 거부했는데 지금의 미중패권 경쟁에서 어느 한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인도의 역사와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이 인도가 자신들의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도와 중국의 갈등관계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도는 저력이 있는 국가다. 미국이 생각하는 것 처럼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러시아 혁명이후 레닌은 소련-중국-인도가 연합해서 서구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에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어야 한다.

최근 인도와 중국이 국경문제로 충돌을 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인도와 중국의 충돌이 자신들이 추구하던 인도-태평양 전략의 조건이 충족되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언컨데 인도는 미국이 생각하는 것 처럼 미중 패권경쟁에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9월 11일 인도와 중국 외무장관이 모스크바에 서로 만나 최근의 충돌과 관련한 상황을 서둘러 봉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미중패권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잘못 구상한 것이다. 경제적 봉쇄는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다. 중국을 세계경제체제에서 제외한다면 전세계가 경제공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없는 자리를 미국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사령부 창설도 상징되는 군사적 봉쇄도 효과적이지 않다.

결국 지금 미국은 전략적 상상력의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미국의 전략을 좌지우지 하던 사람들은 유럽의 지적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네오콘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전략그룹들은 전략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지적 능력의 부족은 근육의 힘으로 대체하는 수 밖에 없다. 지금 미국이 우격다짐으로 중국을 내려누르려고 하는 것은 미국이 시대를 앞서가는 철학과 사상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은 현재 미국의 상황으로 보건데 지극히 당연하다. 모든 사고의 가능성이 자본의 힘에 압도당해 있는 미국에서 어떻게 시대를 앞서서 이끄는 철학이 발현될 수 있겠는가?

거악과 작은 악은 상호 공존한다.

베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란 책을 사놓고 그냥 책장에 꽂아둔 지 30년이 지났다. 갑자기 그 책을 머리속에 떠올린 것은 순전히 나폴레옹 때문이다. 나폴레옹에 관한 자료를 보다 독재라는 문제가 왜 발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왕정에서는 독재란 말이 있을 수 없다. 왕이 전권을 갖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전제라는 용어는 독재라는 말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전제정이란 용어는 가치 중립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역사의 아버지 헤르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가 전제정을 채택한 것은 그리스 민주정의 혼란을 보고 그 대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한다. 아마 왕정이 실제 정치에 구현되는 방식을 전제정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정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것에 불과하다.

독재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독재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이단일 뿐이다. 독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도입했다면 독재는 어떤 경우도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질서를 중단시킨 구데타도 당연히 어떤 경우에도 정당하지 않다.

과거에 대법원에서 성공한 구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그때 대법원판사들은 왕정과 민주정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왕정이라면 성공한 구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한 어떤 구데타도 처벌받아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구데타 자체가 범죄이기때문이다.

만일 구데타를 성공하고나서 앞으로 민주주의 하지 않고 왕정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쩔지 모르겠다. 시대정신이 바뀌어서 모든 국민들이 ‘그래 앞으로 민주주의 그만하고 전제정으로 돌아가자’하고 동의한다면, 성공한 구데타를 처벌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독재도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내용적인 독재와 형식적인 독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실제 독재는 헌정을 중단시키는 구데타보다는 정상적인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경우다. 프랑스의 제2제정도 정상적인 과정으로 민주주의에서 황제정으로 넘어갔다. 박정희의 5.16 같은 것은 어찌보면 독재의 예외적 형식 아닌가 한다.

독재에도 계보가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적 과정을 통해 독재가 되는 경우, 그리고 헌정질서를 중지하고 독재가 되는 경우다.

독재중에서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은 형식적인 것보다 내용적인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질서를 준수하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서서히 내용적 독재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래통합당에 있다고 본다. 국민들로 하여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개천절 집회를 두고 김종인이 앞으로는 집회를 말리는 척하고 뒤로는 3.1운동운운하면서 오히려 부추기는 것을 보면서 종자는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국민의 힘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 기껏 잘 해보아야 더불어민주당이 내용적인 독재로 가도록 지원하는 후원세력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가고 있는 독재의 길을 막을 것은 시대의지 밖에 없다. 개천절 집회 ? 3.1 운동? 모두 더불어민주당 도와주기위한 이적행위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고한 독재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일먼저 국민의 당부터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악을 제거하기위해 더 큰 악과 손을 잡으면 안된다. 악을 제거하려면 악 뒤에 있는 더 큰 악부터 제거해야 한다. 거악을 제기하기 위해 작은 악과 손을 잡는 것도 틀렸다. 어차피 악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김정은에게 아부하다.

세상을 살다보면 코미디같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희극을 보면서 비극인줄 아는 경우가 많다. 희극을 희극으로, 비극을 비극으로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미 몇달전부터 그럴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쥐를 몰 때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둔다고 한다. 잘못하면 덤빌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로가 없다고 생각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비장해 질 수 밖에 없다. 결단은 더 이상 퇴로가 없다고 생각할 때 내려진다.

북한이 미국 국민을 상대로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에게 다른 퇴로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외교적 대화와 국가 원수들간의 대화도 무의미하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리저리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은 실무협상에서 아무런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은 협상할 생각이 없이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석했고, 북한도 미국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갔다는 이야기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 트럼프가 실무협상없이 정상회담에 임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정은에게 면박을 주면서 미국내 네오콘 골수세력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

북한은 왜 실무협상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먼길을 철도길도 하노이까지 갔을까? 당시 분위기로 보아 북한은 하노이 협상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신변위협을 무릅쓰고 하노이까지 간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북한이 다음에 태평양에 수소폭탄폭발 실험과 같은 결정적 행동을 위한 명분쌓기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 임할때, 이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분명하게 가이드 라인을 설정한 것이다. 하노이 회담이후 북한은 연말까지 미국에게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회담이 실패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사전에 미리 다 계획을 해두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에 대해 강온 양면의 모습을 보였다. 미니트맨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 명백하게 북한 위협용이다. 한동안 김정은과 김여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과 김여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한다. 언론에서는 김정은이 김여정에게 권한을 위임했다고 소설을 썼다. 그러다가 김여정이 모습을 감추니 아무말도 없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들 생각에 맞추려고 해서 발생한 현상이다. 자신들이 잘못본 것 같다는 해명을 하는 언론은 아무데도 없다.

본인의 생각에는 북한이 대선전후에 결정적 행동을 하지 전 그리고 그 이후 미국이 김정은과 김여정을 제거하지 못하도록 사전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트럼프는 얼마전 김정은과 그동안 친밀하게 지낸 것 처럼 트위트를 했다. 트럼프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트럼프는 아무런 이유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유추해보면, 한마디로 북한에게 아양을 떠는 것이다. 이런 저런 방법을 해보아도 먹히지 않으니 이제는 공개적으로 꼬리를 흔드는 전술로 나온 것이다.

트럼프는 장사꾼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왔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다르다. 기업은 이익을 위해서는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돈만 많이 번다면 신의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국가는 신의를 잃으면 이익도 잃어 버린다. 전세계가 트럼프 등장이후 미국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앞으로 신뢰 상실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운영은 무사의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이유다. 눈앞의 이해관계에 쉽게 흔들리면 안된다. 이익이 된다고 아무 행동이나 마음대로 하면 안된다.

그렇게 보면 미국은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것이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치 코미디보는 것 같지 않을까? 제국의 대통령이 조그만 나라 북한에게 아부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답답하고 한심해서 하는 소린데

역사는 반복한다고 했다.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

박근혜 탄핵때 새누리당 의원들은 모두 입다물고 있었다. 심지어 친박이라고 하던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수그리고 있었다. 아마도 문재인 정권의 사람들은 박근혜 당시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더불어민주당 중진정치인들이 모두 추미애 아들의 휴가문제를 막기 위해 총출동했다. 그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추미애 아들문제를 그냥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큰일이라는 것은 당연히 문재인 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이다.

추미애 아들의 휴가문제가 그리 심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애시당초 그냥 잘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일을 긁어 부스럼 만들었던 것은 추미애 자신이었다. 추미애가 아들의 휴가문제에 그렇게 나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자식에게 피해가 갈 수 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조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아무리 강골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추미애 아들 휴가문제가 이렇게 까지 확대되는 것은 그리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상일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칼로 두부짜르듯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정이나 법이 너무 지나치게 삶의 영역에 개입하면 좋은 세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상했기 때문이 무엇이 옳고 그르고 바람직하고 말고를 따질 수 있는 선을 넘어 버렸다. 그렇게 만든 것은 추미애 자신이었다. 감성은 항상 이성을 앞선다. 이성적 사고와 판단은 대중의 감정앞에 무릎을 꿇는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겠다.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은 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의식을 느끼면 터널현상이 발생한다.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희극이 비극이 되고 비극이 희극이 되는 것도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집단적인 터널현상에 빠져버렸다. 박근혜 탄핵도 무력했던 새누리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더불어민주당이 총력전에 나선 모양이다.

역사는 웃긴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조용할 수도 있는 문제를 더불어민주당 중진 정치인들이 나서면서 오히려 일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반면교사를 삼는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일을 더 악화시킬지도 모르게 되었다.

추미애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말인가? 적당하게 정리하고 조용히 물러나면 될 일이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 된다. 그런데 임은정을 검찰을 감찰하는 자리에 앉히면서 총력대응으로 나왔다. 드디어 임은정도 정권과 권력의 결사옹위부대로 전면에 나섰다. 임은정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포장과 화장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위기는 위기라고 느낄 때 발생한다. 자꾸 구석으로 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주눅이 들면 위기는 그틈을 놓치지 않는다. 마치 겨울에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황을 반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론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끌면 끌수록 상황은 나빠진다. 어차피 정리할 것이라면 미리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은 법이다. 손절도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손절하지 못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면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된다.

지금껏 문재인 정권을 위험하게 만든 것들을 꼬리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꼬리들 관리를 잘못하는 모양이다. 조국이 그랬고 윤미향이 그랬다. 이제 밀물이 천천이 밀고 들어온다. 유선주 전 공정위 국장이 조국과 김상조를 정식으로 고발했다. 이스타항공의 민주당 출신 전무가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과정에 불법으로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몰려드니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구석에 몰려 터널현상에 빠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벗어나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올해 후반기 내년 전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각종 의혹의 중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정리할 것은 빨리정리해야 다음에 뭐가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당상 눈앞에 일어나는 일 처리하기도 급급한 실정이다. 대통령이 여유가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릇도 비어야 물을 담을 수 있는 법이다. 문재인 정권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빠져 있으면 비극이 다음에는 희극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전번에 비극이었지만 다음에도 비극이 될지 모른다.

정권의 안위만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생각하자. 그래야 정권도 살아 남는다.

어떤 제안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 수많은 사회과학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도데체 어떻게 굴러가고 있으며 어디를 향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그런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잘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의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기 위해 이름도 알쏭 달쏭한 외국학자들의 권위를 빌어올 필요는 없다. 외국학자들의 이론을 턱 들이대고 너희들 이런 것 들어나 봤어 ? 하는 것을 보면 정말 토악질이 나온다.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외국학자들의 권위를 빌어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가 기껏해야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자신의 말을 할 줄 모르고 남의 이야기를 통해서야 겨우 내 이야기를 엮어갈 수 있는 지식인들, 이런 사람들이 사대주의 근성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새로운 지식과 통찰력에 대한 연구와 공부는 필요하다.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아무리 새롭고 뛰어난 지식과 학문이라고 그것을 뛰어넘 통찰력으로 우리의 실정에 맞는 해결책을 강구해 내야 한다.

최근 재난지원금 문제 그리고 추아들 문제로 시끄럽다. 정말 그런 문제들이 우리는 고민하고 시끄러워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으로 인한 국제안보상황의 변화, 북한이 핵보유국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을때 변화하는 상황, 역사상 대재앙으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경기후퇴에 대한 대응방법 등이 아닌가?

특히 앞으로 다가오는 것으로 믿어지는 R로 인해 우리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되지 못할 수 도 있는 세상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보수나 진보나 그동안 19세기 이후의 모든 사회적 경제적 담론들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심각한 내적 모순에 빠졌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너무나 광범위한 자유를 제한없이 누리다가 자본주의 자체를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앞으로 다가 올것으로 예상되는 경기후퇴는 중국이 갑자기 부상해서도 아니고 미국의 힘이 약해져서도 아니며, 자본주의적 활동이 제한을 받아서도 아니다. 자본가들의 욕심과 횡포가 너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위시한 인류의 절반이상은 더 이상 소비지출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전체 자산의 1.7% 정도를 보유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가 굴러가겠는가? 1930년 미국에서 공황이 발생하자 역사상 가장 사악한 자본가라던 포드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올렸다. 노동자들이 가난하면 차를 살 수 없고 그러면 우리가 망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돈 많이 받는 사람들은 수입을 줄였다.

수년전부터 미국에서부터 부자들이 더 이상 돈을 많이 벌면 미국의 시스템이 위험해진다고 이야기 했다. 부유세를 걷으라고 한 부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부자 한두사람이 그런이야기 해서 바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몇몇이서 그런 말이라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말조차 없다. 천박하게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개같이 돈을 벌으면 개같이 쓴다. 개같이 벌으면 개가 된다. 돈도 정승같이 벌어야 정승같이 쓰는 법이다.

한국사회는 부의 불평등이 너무 심각해져서 국가와 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기업에게 40조가 넘는 지원을 했다. 기업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고 있었다. 그런 기업들에게 국민들에게 주는 재난지원금의 몇배를 넘는 돈을 제공한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이 무엇을 했는지 잘 보라. 기업들에게는 무한정의 예산지원을 했다. 그리고 중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는 가장 잔혹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만 해도 그렇다. 사회적 통제의 수준을 높이면서 상당수의 자영업자들이 한계에 내몰렸다. 제대로 된 장사를 하지도 못하고 한달에 수백만원씩 하는 임대료는 고스란히 내야한다. 그들은 모두 망하게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그들에게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기업에게는 얼씨구나 하면서 천문학적 예산을 지원하더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는 너희들이 알아서 살으라고 외면한다. 정권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느냐는 그들이 어떤 행동과 정책을 하는가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예산이 모자라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고통을 분담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이후 3년 반동안 국민들을 이리갈라치고 저리갈라치고 하는 바람에 서로 반목이 극심해져, 어떤 고통분담도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공무원, 군인, 교사, 대기업 임직원, 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봉급중 일정부분을 떼어내서 이번 코로나로 집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기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할 수 없도록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가지치기한 것은 모두 현재 대통령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위기가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지도자의 몫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전념하면서 그동안 못읽었던 책이나 읽으라는 한심한 대통령은 카페와 음식점 주인의 눈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피눈물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는 그의 세계에 살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을 보면 우리사회에는 더 이상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가장 전형적인 보수적 인물이며, 더불어 민주당은 가장 보수적인 정당이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정권은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더 이상 진보적인 언론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친정부적인 언론과 반정부적인 언론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도 무의미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노선도 우리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든 개선하거나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이 주장하는 진보와 보수는 현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어떤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달에 통신비 2만원 나눠주느라고 1조원 가까운 예산을 낭비하는것이 현정부다. 그 1조원과 무기구입시 9조원을 모아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해보는 자영업자와 한계생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를 만들어라. 기업들에게 지원해준 40조원을 모아서 펀드를 만들었으면 많은 사람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난리통에 멀쩡하게 봉급 잘 받는 사람들은 십시일반으로 그런 펀드에 참가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런 것 하는 사람이다.

나라가 망해가고 있는데 지지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통신료 2만원 나눠주겠다는 한심한 발상으로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는가? IMF 당시 김대중 대통령 발바닥 만큼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다.

답답해서 횡설수설했다.

우리가 해야할 것들

밖에서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내부정리중이다. 정작 시급한 것은 지붕에 물이새고 벽에 금간것을 보수해서 태풍의 비와 바람에 대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엌과 거실에 책상과 의자배치 그릇 놓는 위치로 온 식구가 서로 싸우고 있다. 아무리 태풍이 심하게 오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책상과 가구를 내방에 두어야 하겠다며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식구들의 이견을 조정하고 정리해야 할 아버지가 이편 들었다 저편들었다 하면서 서로 싸우게 만들고 있다.

아무래도 최근 돌아가는 국제적인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많은 전설적 투자자들이 자산을 매각하고 현금확보에 들어갔다고 하는 뉴스가 들린다. 팔아서 현금확보도 할 것이 없는 우리같은 서민들은 그런 뉴스를 들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앞일이 막막할 뿐이다.

외부에서 위협이 다가오면 안에서는 통합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통합해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누구도 국민을 통합해서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를 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는 목적은 그것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입신양명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책임의 정점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조국사건이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 간신같은 놈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만 사라지면 상황이 나아지리가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라쳐서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며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매수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거의 모든 정치적 행위의 최정점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보수야당에게 바라는 것은 그래도 뭔가 원칙이 있고 능력이 있고 믿음직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국민의 힘은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재인 정권과 여당을 헐뜯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위기가 오더라도 문재인 정권이 국민을 통합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삼년 반이 넘도록 국민들을 양쪽으로 분열시켰는데 이것을 어떻게 통합한다는 말인가?

위기는 다가오고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아직도 내방에 좋은 물건 놓겠다고 서로 싸우로 있는 어린아이같다. 그 책임은 물론 투표를 잘못한 국민들에게 있다. 그러나 쓸만한 물건도 없이 썩은 것들만 놓고 고르라고 한 정치권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추미애 아들을 둘러싸고 별의 별 소리가 다 나온다. 가만히 보면 추미애 아들문제가 뭐 그리 대수인지 모르겠다. 추미애만 그랬나? 다른 놈들은 더한일도 많이했다. 육해공군은 예산을 확보하느라고 각군본부차원에서 국회의원이나 정부요원들의 자재들 군대 보직을 거의 공식적으로 이리저리 챙겨주었다.

추미애는 왜 나만 가지고 이래 그럴 지모르겠다. 추미애는 자신이 지나치게 겸손하지 못하과 함부로 행동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기 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게 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당대표하고 국회의원하면 당연히 보좌진이 자기아들 문제 해결하는데 도와주는 것 아닌가? 안그랬던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추미애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을 했기에 주변의 분노가 그리 심한가에 대한 자책을 먼저해야 할 것이다.

추미애는 국민밉상이 되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아무리 윤석렬을 죽이더라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 외교관들은 전쟁이 나서 선전포고를 하더라도 서로 웃으면서 하는 법이다. 전쟁이 끝나서 교섭을 하면 다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이성적이지 않다. 그래서 항상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주의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것과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아무리 공식적인 곳에서는 강력하게 말을 하더라도 뒤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추미애는 권력에 취해 가장 기본적인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같다.

겸양은 만고의 진리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정운영에 최고 책임이 있는 만큼 이제는 추미애를 물러나게 하고 청와대와 각료들 인선도 새로해서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하나씩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그만 싸우고 지붕을 손보고 금간벽을 보수하자. 태풍소리가 들린다.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조건들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우리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다. 오로지 북한에 대한 비난만이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말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거의 모든 시도는 친북좌파라의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한국전쟁으로 대표되는 극우보수적 시각만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대학의 운동권을 장악한 주사파 운동도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주사파 계열의 사고방식과 극우세력의 사고방식은 서로 닮은 꼴이다. 그들이 서로 견제를 하면서 변증법적 통일과 객관성을 담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서로 같은 것들끼리 무슨 정반합이 가능하겠는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의주장이 아니라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 주사파나 극우세력이나 공부하지 않고 주의주장만으로 선입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로 동태눈을 하고 중간지점에 가 있다고 해서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동태눈을 제거하는 노력이 먼저인 것이다. 그 동태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 머리위에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들이 우리말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생각하는 이해관계를 냉철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북한이 처한 국제정치질서와 남한이 처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내 문제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우리의 관점에서 지극히 한국적 사고방식에 입각해 바라볼 경우, 실패는 불가피하다.

이제까지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예측한 적이 있었던가?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북한이 이룩한 성취는 대단하다. 남한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 이상으로 북한도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핵보유국가가 된 것이다. 핵보유국가는 기술이 있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다. 전국가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남한은 할 수 없는 것을 북한은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북한핵문제를 바라보려면 왜 북한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처한 국제정세와 우리가 처한 국제정세는 다르다. 주변정세만 다른 것이 아니라 북한은 주변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도 우리와 달랐다.

북한이 주체라고 내세우는 말은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삶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주체라는 말이다. 연구자나 관찰자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이미 소련과 중국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했다.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때 허가이를 위시한 소련파를 숙청했다. 그 당시는 스탈린도 건재하고 있던 때였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마자 바로 중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리고 친중파도 모두 숙청해서 제거했다.

어떤 것에 촛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김일성의 권력강화로 볼 것인가 아닌면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결단인지는 보고 싶은대로다. 1960년대 이후 중국과 소련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할 때,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했다.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내부에 친소파도 친중파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자고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그럴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상황이나 1960년대 북한이 처한 상황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은 해 낼 수 있었지만 한국은 할 수 없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북한이 핵 개발을 결심한 것도 냉전의 붕괴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중국과 소련의 핵우산으로 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망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중국은 북한을 냉정하게 내쳤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사람의 미친 권력자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결과다. 국가의 존속을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이다. 결단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마치 중국이 북한을 좌지 우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소련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을 향하고 있지만 방향만 틀면 바로 중국이다. 북한은 단 한번도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라.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친중파인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한 일이다. 이복형제로 중국이 뒤를 봐주고 있던 김정남을 보란 듯이 제거한 것은 중국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연줄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도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나 아니니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국제정치학자중에서 중국이 북한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것 같다. 마치 미국이 한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이 북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존도 오래되면 습관이되고 성격이 되는 법이다. 항상 의존적인 삶을 살았으니 남도 다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부역해서 잘먹고 잘산 사람도 있지만, 만주에가서 풍찬노숙하며 일본과 싸우다고 굶어죽거나 맞아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장 잘못된 이유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본다. 당연히 정책목표가 잘못설정되고 구체적인 정책도 엉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먼저 버리는 일이다.

북한핵문제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전략핵미사일 실험의 의미

그동안 여러번 북한이 미국대선을 앞두고 핵미사일 실험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제 오늘 사이에 북한이 SLBM 발사시험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목적이란 친절한 해석도 붙이고 있다. 북한이 무엇을 하려고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북한이 하려고 하는 것은 미사일 실험이 아니라 수소폭탄 폭발시험이다. 그것도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태평양에서 전세계가 보란듯이 핵실험을 할 것이다. 북한은 수소폭탄 폭발때 올라오는 거대한 버섯 구름을 전세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SLBM에 움직임이 있는 것은 미국이 만일 북한의 태평양상 수소폭탄 실험에 위협을 가하거나 공격을 할 경우, 미국 본토나 미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보복능력 즉 제2격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SLBM만을 발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정도로는 강고한 미국의 생각을 뒤집기 어렵다는 것을 북한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북한은 더 이상 대화로는 미국의 태도를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미국의 대선이다. 미국의 대선바로 직전에 미국민들을 혼란의 도가니에 몰아넣을 수 있는 순간을 택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민들이 대선보다 북한에 수소폭탄폭발에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은 더 이상 미국과 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북한은 자기네 식으로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고 합의를 강요하는 것이다. 결단의 의지와 한방을 가진 작은 나라도 큰나라를 강요하거나 곤경에 몰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내년도 1월에 제8차 당대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제8차 당대회에서 무엇을 논의하고 발표할 것인가? 언론에서는 경제계획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하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생각에는 모두 헛 짚었다. 10월이나 11월에 핵실험을 하고 나서 그 이후 북한의 총체적인 국가운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제까지 우리는 북한을 너무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데로만 보았다. 있는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일반적인 습성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당시 열린 각종 회의에서도 그런 경향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냉전을 서구와 동구의 자폐적인 대화라는 프레임으로 설명한 학자도 있었다. 우리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만일 이번에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그 영향은 단순하게 미국과 북한사이의 관계 변화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균열이 가고 있는 현재의 국제체제를 즉각적으로 붕괴시킬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중패권경쟁에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소집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더 이상의 어떠한 제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제재의 해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제2차세계대전이후 형성되어온 국제사회 질서 전반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미국내의 정치적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민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정치지도자들을 믿지 못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압도할 것이며, 이런 상황까지 오도록 방치한 미국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도달할 것이다. 당연히 북한을 적으돌리기 보다는 화해하고 타협하는 것이 옳았었다.

만일 미국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적대적으로 돌린다면 오히려 미국이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렵다. 유럽은 전통적인 외교의 논리로 돌아가 힘을 가진자와 타협을 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을 다루지 못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쇠퇴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으로 선정할 수 밖에 없다. 국교도 없이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이성적인 국가를 이웃에 두고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북한 접근을 막기위한 시도를 하려고 하겠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 않다.

북한은 식민지시대 보상으로 막대한 지원과 배상을 요구할 것이고, 일본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에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기도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유엔안보리 제재도 무의미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좋은 기회를 맞이 했었다. 북한을 달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면 미중패권경쟁에서도 우위에 설수 있었다. 남북한과 일본을 한데 묶어서 중국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형성할 수도 있었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은 합리적일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을 채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이 왜 거래와 흥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나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압도적인 의지와 능력으로 상대방의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과거의 생활습관이 변화한 오늘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

그나 저나 우리도 매우 어렵게 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진정성있는 북한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우리는 곤경에 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기회를 놓친 것이다. 국내정치에 남북문제를 이용하고자 하는 얄팍한 이해타산을 마치 커다란 정치적 역량이라고 되는 것 처럼 착각한 결과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상황은 그 이전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307660

전술적 미국, 전략적 중국

코로나 사태, 검찰사태, 윤미향 사태, 조국 사태, 공공의대 사태 등으로 내분에 내분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엄혹한 국제정치질서의 시계는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다.

최근들어 미중간 갈등의 폭도 넓어지고 있으며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협상을 하던 때가 오히려 서로 관계가 좋았을 때 였다. 미국은 화훼이의 차단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성과는 뚜렷하지 않다. 최근들어 뭔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8월 중순 폼페오 미국무장관이 유럽을 순회하면서 화훼이를 배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한 거의 전 유럽국가들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그동안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던 유럽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것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유럽국가들이 이런 태도는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코로나 사태이후 미국의 국력이 급속도로 가라앉고 있는 반면, 중국은 오히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은 더 이상 미국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이 세계 경영에 참가한다는 천하 3분지계를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유럽은 20세기 내내 자존심을 굽히고 살아야 했다. 이제 중국의 등장과 미국의 쇠퇴라는 상황을 이용해서 유럽도 자신들의 위상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은 일본과 호주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상황에서 봉쇄전략은 이제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군사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냉전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외곽을 때리는 제한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핵을 가진 국가끼리는 서로 전쟁을 할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제한전쟁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게 어떤 군사적 행동도 하기 어렵다. 그냥 집적거리는 정도는 몰라도 전면전을 각오한 전쟁을 할 수 없다.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동안 매년 1000조 이상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군사력도 실제 미중패권경쟁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분쟁과 갈등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까지 20세기의 세계전략 구상에 함몰되어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제기한 테제의 의미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인 것이다.

중국은 승기를 자신한 듯 하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9년이래 중국경제는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각국의 연구소는 앞다투어 2030년대에 들어서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기존의 전망보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시진핑이 공산당 비방을 용납하기 않겠다고 한 것은 미국에 대한 경고이자 앞으로 미중갈등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와함께 9월 초에는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1조달러 규모의 미국채규모를 줄일 것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과 같은 경우에 따라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국채를 다 팔아치울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중국에게 군사적인 압력을 가할 경우를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군사적인 수단과 방법을 중심으로 중국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고, 중국은 경제적, 외교적인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에 뒤지지 않는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전술적이라면 중국은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것도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미국과 중국간 힘의 역전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는 안으로 함몰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마치 전세계가 끓는 물처럼 요동치고 있을때 당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던 조선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다. 정권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이런 외부적인 변화를 직시하고 국민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아예막아버려서 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예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최악의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