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세,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

세상은 항상 복잡하고 무질서한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무질서와 혼돈이 세상의 본질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혼란과 혼돈 그리고 무질서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는 그런 것들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원칙을 정의하고 이를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역사를 이루는 문화적 삶의 출발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들이 만들고자 한 원칙은 투쟁의 산물이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하고 보호해야할 원칙이라는 것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그가 이런 입장에 서든지 저런 입장에 서든지 상관없이 존중받아온 원칙도 있었다.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원칙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둑질과 거짓말도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쁘게도 그리고 좋은 것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의적 홍길동과 로빈 훋의 도적질은 무조건 나쁘다고 하기 어렵다. 거짓말에도 white lie 라는 것이 있다. 더큰 선을 위한 거짓말도 있는 법이다. 

그럼 도대체 인간의 삶에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을 비난하면서 거짓말하면서 선동을 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정말 중요한 지적이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진중권이 그렇게 이야기 해도 소위 말하는 대깨문들은 진중권보다 유시민 그리고 김어준의 말을 여전히 신뢰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유시민과 김어준이 선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즐겨 선동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거짓과 선동이 판치는 이유는 유시민과 김어준과 같은 사람들이 선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선동과 거짓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대깨문이니 하는 말로 그들의 행동과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상은 매우 특이하다.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수천년간 내려온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과 사고 그리고 가치체계가 유시민과 김어준 식의 선동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사상을 넘어선 삶의 태도에 대한 기준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확립한 원칙은 우리의 감정적인 부분에 남아 있다. 즉 비열하고 얍삽하고 저열하며 야비한 인간은 나쁜 인간이라는 인식이다. 전쟁과 혁명으로 수없이 많은 인간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그 어떤 도덕도 무의미해 질 때 조차도 비열하고 야비하며 얍삽한 인간은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렀어도 그가 비열하지 않고 야비하지 않으면 그럭 저럭 용서를 받기도 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그가 근본적으로 비열하거나 야비하면 가중 처벌을 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범죄나 잘못보다는 야비하고 비열하고 비겁한 삶의 자세와 태도가 더 큰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조국과 문재인이 가장 심각하게 질타받아야 하는 것은 잘못한 사실보다, 잘못에 대한 태도다. 조국이 저지른 일는 매우 야비하고 비열했다. 법의 지배가 지금처럼 철저한 사회가 아니었다면 그는 저잣거리에서 린치를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문재인은 조국이 저지른 잘못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조국이 보여준 비열한 삶의 태도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진영논리에 갖혀 비열하고 야비한 삶의 자세를 질타하지도 못하는 처지다. 지식인들이 그토록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본연의 일인 공부하고 가르키는 것보다 어떻게 줄을 대서 정치권에 진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시대의 우병우가 비난을 받고 질타를 받은 것은 그가 저지른 범죄보다는 그가 보여준 얄미운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조국의 경우는 우병우보다 훨씬 더 얄밉고 야비하고 저열하다. 조국의 어떤 잘못도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은 국민들이 조국을 우병우보다 더 야비하고 얄미운 법꾸라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그가 한 일이나 그가 저지른 잘못보다 그가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진보나 보수를 초월해서 사람의 가치는 그가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처럼 남앞에 나서고 싶은 사람은 항상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최근에 자한당과 더민당에서 인재라고 등용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삶의 자세와 태도가 평균적 수준에서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특히 외국에서 30대에 여성총리가 나오고 40대에 대통령이 나오니 우리나라도 그런 트랜드에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내세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이보다 그가 어떤 삶의 자세와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정한 원칙을 준수하고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되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앞으로 책임있는 정당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정치인으로 영입해야 한다.

국민들도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울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한때 지나가는 유행열병처럼 들떠서 부족한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우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적어도 김영삼과 김대중 이후 우리는 지도자를 무슨 인기투표 하듯이 뽑았다. 인기도 중요하지만 인기를 지도자의 자질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가 얼마나 원칙을 잘 지키는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고 지키기위해서 노력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 국민의 역할이다. 바람부는 대로 선동에 휩싸여 아무나 뽑아 놓고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국민의 역할이 아니다. 

영남반동, 호남반동, 시민단체 반동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낸 세대가 군부독재보다 저열한 독재의 압잡이가 되어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같은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리게 만든 제1의 책임은 황교안과 나경원에게 있다. 학교다닐때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자한당은 오로지 투쟁 일변도로 일관하다가 더민당에게 말려들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도록 만들었다. 만일 당시에 다른 야당과 긴밀한 협의를 하면서 더민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전략에서 실패했다. 전략의 실패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능력한 자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을 사춘기 청소년 처럼 폭발하도록 만든 것은 광화문의 열기와 영남의 반동적 지지 때문이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박근혜를 탄핵했으면서 탄핵에 머물러 있던 영남의 반동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려주는데 일조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의 무능력을 발휘하고도 저렇게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하게 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호남의 반동성에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조국과 유재수, 그리고 송철호의 행위는 올바른 시민적 삶을 왜곡하고, 국민의 삶을 유린했을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행위를 영웅담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조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국의 행위는 영웅담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기타잡범’의 행태와 견주어도 매우 비열하고 악랄한 수준의 범죄다.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해도 ‘기타잡범’의 수준밖에 안되는 조국을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만들어 가는데 가장 기여한 것은 호남이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이 내준 압잡이 자리에 취해 김대중이래 정신적으로 우월감을 지니고 있던 진보적 가치를 서슴없이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영남보다 더한층 반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남이야 원래 보수적인 동네니 조금만 움직이면 반동화된다.

호남은 원래 진보였다. 이상한 것은 호남이 이번 정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반대에 있는 반동의 영역에 서슴없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호남이 영남보다 더 반동화되었다. 영남이 저러고 있는 것은 그래도 박정희와 박근혜의 향수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해 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전에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반동적 상황에 머물고 있다.

호남의 반동적 상황은 영남의 반동적 상황보다 한층 더 저열하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를 하면서 주어지는 조그만 떡 고물에 취해서 반동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동안 지향했던 진보적 가치를 헌신짝 처럼 내 던져버리고 시궁창에 떨어진 엿조각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제정신을 차렸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시궁창의 떡고물을 찾아 헤매기 보다는 김대중의 정신과 5.18의 정신을 고양시켰어야 했다. 지금은 지하의 김대중과 5.18 영령들이 땅을치고 통곡할 상황이다.

영남은 자기연민에 빠져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 호남은 떡고물을 찾아 스스로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점에서 영남보다 더 저열한 반동의 길을 가고 있다.

진보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한다. 보수는 가치보다 이익을 더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호남은 완전하게 반동화되고 말았다. 반동화된 것은 호남뿐이 아니다. 참여연대와 민변, 우리법연구회 같은 과거 진보적 시민단체와 직능단체들도 예외없이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가 되면서 반동화되었다.

김경률 같은 사람이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그들이 얼마나 반동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양승태를 적폐라고 고발하던 양심적 판사들이 대거 더민당의 품에 안겨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아무때나 유리할 때 엿바꿔먹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일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의 본성은 변한다. 개혁도 그렇다. 이승만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대구였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광주였다. 문재인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서울이 될 것같다. 기득권에 포섭되면 바로 반동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경계선은 수도권이다. 영남과 호남은 기득권 반동일 뿐이다.

진중권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를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더민주만 안찍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있는 한 자한당도 찍으면 안된다. 실패한 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민주도 안찍고 자한당도 안찍으면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 정의당 ? 그들은 더민당보다 더 나쁘다.

왜 비정상적인 권력을 참고 있는가?

아무리 보아도 지금 정권은 정상적이지 않다. 서슬퍼런 3공화국부터 군부독재의 전두환, 노태우를 지나 지금까지 살았다. IMF 사태로 살기 어려워진 김영삼 정권이나 전라도 정권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김대중 정권때에도 국민들이 이렇게 분열되지는 않았다.

국론이 분열되고 오로지 진영논리가 모든 도덕적 가치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때 부터였다. 지금은 노무현이 마치 대단하게 위대한 인물인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태평양에 손목아지가 둥둥 떠다닌다고 했다. 노무현의 무능력과 쌍소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노무현을 찍은 자신의 손목을 짤라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노무현이 뿌려놓은 분열의 씨앗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많다. 그러나 정말로 그 두사람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국민의 분열을 치유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문재인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노무현이 만들어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증폭시킨 결과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을 문재인은 극대화 시켰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가치와 도덕의 분열이다. 혹자들은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우리나라에 진보와 보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정당도 제대로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칭 진보이자 참칭 보수일 뿐이다.

지금 국민들이 분열된 것은 가치가 아니라 태도문제다. 어떤 가치가 옳으냐 하는 것으로 싸우면 그것은 건전한 진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치로 인해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 붕괴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저질적인 분열적 현상을 우리는 겪고 있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수사가 예외없이 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수사가 아무리 길고 오래되더라도 그의 범죄를 무위로 돌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수사가 지연되더라도 범죄는 여전히 범죄다. 수사가 지연되면 범죄가 범죄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가 저지른 짓거리는 길거리의 양아치들도 비열하다고 할 정도의 수준이다.

범죄와 잘못도 수준이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그 잘못이 크더라도 그냥 보아넘겨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작더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조국이 저지른 범죄는 죄질이 나쁘다. 특히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용납받기 어려운 일들이다. 비열하며, 야비하고, 저열하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런 조국의 범죄를 옹호했다. 그리고 그런 수사를 하는 검찰을 공중분해시켰다. 대통령과 직접 관계된 수사를 하는 부서를 거의 예외없이 제거했다. 신라젠은 희대의 사기사건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많았다. 이번 검찰의 조직개편에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금융관련 수사를 할 수 있는 남부지검이 초토화되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정치와 경제의 거악을 징벌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제거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결국 문재인 권력은 그들이 거악을 저질러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렇게 해놓고 문재인이 검찰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 문재인 정권은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을 동원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 경찰은 유일하게 국내정보를 다루는 경찰, 수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찰이 되었다. 경찰은 거의 견제받지 않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보던지 문재인 정권은 이번의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찰조직의 공중분해를 통해 이정도에서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총선에서 승리해서 수사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독재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전두환도 장인을 사법처리했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아들이 사법처리 당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그들이 문재인보다 권력의 힘이나 정치적 정당성이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악이 평범의 얼굴을 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궤변이 합리성과 보편타당함을 억누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나찌 당시 그 수준높은 독일의 지식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한 것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진단했다. 독일 시민들이 자유를 누릴 능력이 되지 않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금 조국의 비열함을 옹호하고 유재수의 부패를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받아 들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부정을 감추기에 급급한 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일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부패에 눈을 감고 있는가 ?

그들 586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전두환의 군부독재에서도 하지 않았던 작태를 옹호하고 있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는 가장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에 서 있다.

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

성경에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라’고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필요한 이유는 어둠과 세균 그리고 곰팡이 때문일 것이다. 빛은 강해질수록 어둠은 더 짙어진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세균과 곰팡이들이 판을 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누가 빛인지 어둠인지, 누가 소금이고 누가 곰팡이 덩어리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누가 빛이며 누가어둠인지, 누가 소금인지 누가 세균 곰팡이 덩어리인지 알 수 있다.

검찰은 소금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검찰이 그동안 비판을 받은 것은 소금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금의 짠맛은 한결같아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어떤 때는 짜다가 어떤 때는 맹물이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왜 소금이 한결같이 맹물같지않고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서초동이나 광화문 모두 비슷하다. 소금이 왜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항상 소금의 짠맛을 지켰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집권 초중반까지는 항상 정권을 위한 맹물역할을 하다가 정권이 힘을 잃을 때가 되면 짠맛을 냈다. 검찰개혁은 소금이 항상 짠맛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짠맛 싱거운맛을 조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소금의 짠 맛을 없애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 버리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이 판을 친다.

윤석렬의 검찰이 문재인 집권초기부터 권부에 대해 짠맛을 뿌렸으면 조국도 사모펀드가지고 장난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재수와 송철호 같은 사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이 일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소금이 짠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소금을 상처에 뿌리면 쓰리다. 아프고 쓰리면 비명을 지른다. 지금 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가 ?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지금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일까 ? 윤석력의 검찰이 빛인가 어둠인가 ? 조국일가, 송병기, 송철호, 백원우가 빛인가 어둠인가 ? 소금이 뿌려졌을 때 비명을 지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세균 곰팡이 덩어리다.

빛이 그 밝음을 잃어 버리면 어둠과 빛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지금 빛에게서 그 밝음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 빛을 흐리게 하는 자들은 절대로 빛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의 자식일 뿐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을 찬양해야한다. 어둠과 세균 곰팡이 덩어리를 찬미할 수는 없다. 물론 때에 따라 밝음을 잃어 버리는 빛과 짠 맛을 잃어 버리는 소금을 찬미해서도 안된다.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곳에서 더 창궐하는 법이다.

트럼프 친서, 누가 누구를 속인 것인가?

정의용 안보실장이 트럼프의 김정은 생일(1월 8일) 축하 서신 전달을 부탁받아 북한에 서신을 전달했다고 1월 10일 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랬더니 11일 북한의 김계관이 자신들은 이미 트럼프로부터 직접 생일축하 서신을 받았는데 남한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북한은 남한이 북미간에 괜스리 끼어들어서 장난을 치지말하는 취지로 이야기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

이번에는 북한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일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러나 경우의 수를 살펴보면 간단하다.

첫번째는 정의용 말처럼 트럼프가 그런 말을 했을 경우다. 미국이 직접 트럼프 친서를 김정은에게 보내놓고, 한부를 더 정의용에게 주면서 김정은에게 전달했을 경우다. 만일 미국이 그랬다면 어떤 상황일까? 김정은이 트럼프의 서신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답해서 다시 한국을 통해서 친서를 한번 더 보내려고 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체신을 보아서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미국은 그냥 한국을 가지고 놀려고 장난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가지고 장난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

두번째는 정의용이 트럼프가 하지도 않은 말을 거짓으로 옮기 것이다. 정의용이 트럼프의 친서가지고 장난친 경우가 있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19년 6월 14일 제1차 북미정상회담 기념으로 트럼프가 북한에 보낸 서신의 사본을 한국에 통보했다. 그런데 마치 문재인과 정의용이 트럼프의 친서를 본 것 처럼 언론 플레이했다. 문재인과 정의용이 친서를 보았다고 한 것은 사본이 아니라 직접 친서를 보았다는 뉘앙스였다. 그러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니 사본을 받아 보았다는 식으로 정리를 했다. 그 당시는 큰 문제를 삼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이번에도 두가지 중의 하나다. 확률은 50%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미국이 거짓말을 했다면, 미국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상대다. 미국이 하는 말과 행동은 앞으로 모두 확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과의 모든 회의와 대화는 반드시 노트로 작성해서 상호 서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만일 정의용이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번 트럼프 친서를 계기로 뭔가 한국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리를 한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고 그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주요 언론에서 이문제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외교안보 최고 책임자가 그런 거짓말을 했다면, 이것은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최근의 국내정세가 어려워지니 북미회담이나 남북관계로 출구를 찾아보려고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정부는 거의 마지막 막다른 골목길에 몰려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와 정의용을 어떻게 볼까? 대화를 하려면 상대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국제관계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속일 수도 있다. 또 그렇게 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것은, 그가 진정으로 남북간 긴장완화나 평화구축을 위해서라기보다 국내정치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정략적인 대북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정의용이 거짓말을 했다면 이것은 창피한 수준을 넘어선다. 정권이 거짓말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린것이다.

정의용은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밝혀라. 누구 말이 맞나 ?

이회창과 이낙연의 차이

이낙연이 추미애에게 윤석렬의 항명을 처벌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회창을 떠올렸다. 이제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유는 국무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대통령제하에서 국무총리란 책임있는 자리라기보다는 명망가가 내각의 얼굴마담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무총리가 대통령후보로서 경쟁력이 있으려면 자신의 독자적인 입지를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이회창이다. 이회창은 김영삼에게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을 요구했다가 짤렸다. 그러나 이회창은 그의 결기를 보여줌으로써 당을 장악하고 김영삼 다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이낙연이 대선후보라고 하면서 매번 높은 지지율을 받지만 그것은 허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선 현재의 체제에세 이낙연이 무엇이라도 독자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한 적이 없다. 그가 잘 한 것이라고는 국회에서 요령있게 야당의 질문을 받아 낸 것 뿐이다. 그러나 그정도는 요령있는 배우정도라면 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민들이 자한당에 대한 불만이 워낙 많다 보니 자한당을 까는 답변하는 이낙연이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낙연이 윤석렬을 처벌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처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은 현재 문재인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 크게 두가지 정도의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PK 친문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것, 두번째, 검찰이 계속 수사하면 자신도 뭔가 찝찝한 부분이 있을 경우다. 그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둘다 일수도 있다.

이낙연은 윤석렬을 처벌하라고 하는 지시하나만으로 그가 어떤 경우에도 문재인을 넘어 서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영삼 때의 상도동 계는 PK 친문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결집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회창이 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당을 장악할 수 있었고 대통령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

이번에 이낙연은 어떤 경우에 있어도 더민당을 장악하지 못한다. 그렇고 그런 문재인의 평범한 심부름꾼이나 마름에 불과한 이낙연이 어떻게 강고한 이해찬의 벽을 뚫고 당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 혹여 이번 검찰수사로 문재인의 PK 친문과 더민당이 곤경에 처하더라고 이낙연은 구원투수가 되기 어렵다. 그도 청산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낙연은 잘 해봐야 문재인과 PK친문들의 마름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낙연은 용도가 다하면 조용이 사라질 것이다. 문재인과 PK 친문은 이낙연과 호남의 몇몇 인사들을 자신들이 이용하기 위한 대상으로 활용할 뿐이지 호남과 연합 정권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에 빠지니 호남인사들을 전면에 대거 등장시켰다. 국무총리 그리고 검찰의 빅4가 모두 호남사람들이다. 이렇게 문재인과 PK 친문들이 앞으로 내세운 호남출신들은 호남의 배신자다.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김대중 이래 호남이 지켜온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깡그리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은 사태가 진정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토사구팽 신세가 될 것이다

그들은 호남을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비난해오던 TK보다 더 퇴행하게 만들었다. 정의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에 의해서 구현된다. 말로만 정의를 말하고 실제로는 서슴치 않고 부정과 불의를 행하는 지금의 문재인과 PK 친문 그리고 호남의 부역자들은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모두 역사적 유례없는 부정과 부패의 방패막이이자 부역자들 뿐이다. 그 부역자들의 대표가 이낙연 아닌가 ?

이회창이 비록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적어도 이낙연보다는 격이 높았다.

미국과 이란, 미국패권 종말의 서막

세계패권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패권을 확보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많다. 그러나 그런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패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패권은 세계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금융시스템은 패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적 규모의 금융시스템도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폴 케네디 교수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군사비를 많이 쓰기 때문에 강대국이 무너진다는 주장을 했다. 폴 케네디 교수가 생각한 강대국은 패권국가였다. 폴 케네디교수는 주로 군사비를 생각했지만, 오늘날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은 기축통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군사력도 결국은 기축통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이 기축통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달러를 받고 원유를 수출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댓가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안위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홍콩에서 학생 시민들이 중국에 반대해 민주화 시위가 한참 일어나고 있을 때, 민주화란 국민국가의 틀안에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국제사회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취지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상의 가치로 생각했다면 우선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제적 왕정을 민주정으로 바꾸라고 요구했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미국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수단이지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라크를 민주화시킨다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서로 전쟁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한다. 전쟁은 체제를 막론하고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전쟁은 당사국들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전체주의국가인지를 막론하고 이익이 결정적으로 충돌하고 이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그래서 전쟁은 항상 외교의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란은 신정체제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매우 민주주의적인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대통령과 내각은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다. 물론 신정체제로서의 구조도 있다. 신정과 민주주의의 기묘한 동거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은 중동지역에서 대표적으로 가장 민주주의적인 국가중 하나다.

미국의 패권유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동의 석유수송을 보장하는 것이다. 석유수송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호르무즈해협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익을 보장해줄 수 없다. 결국 그것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셰일가스의 채산성이 높아지면서 중동을 버려도 미국은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피터 자이한 이라는 사람이 <셰일혁명과 미국없는 세계>라는 책을 썼다. 미국은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우스운 이야기다. 어떻게 미국인이 자신들이 어떤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을까 ? 이 책이 미국 지식인들에게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줄여나가면 그 공백은 중국과 러시아, 유럽, 한국과 일본이 메운다.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달러로 원유를 받을 수 없다. 아마도 위안화나 유로화가 결재통화가 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전세계에서 달러는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럼 미국은 세계패권을 상실한다. 만일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만족하게 살겠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리고 미국의 세계금융자본의 통제력을 내려 놓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올 때 피터 자이한과 같은 생각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은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패권유지를 위해 들어가고 있는 비용을 줄이고자 한다. 미중패권경쟁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막대한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어마어마한 비용의 군사비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서는 미국의 내적 발전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트럼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와 같은 대응이 현명할 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자본들은 그런 영향력의 축소로 인한 세계적 영향력의 상실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 트럼프가 북핵문제와 이란 문제로 혼란을 겪는 것을 설명할 이유는 이것 빼고 달리 없을 것 같다. 결국 미국내 정책적 혼선이 국제정치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군사적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중동지역에서 어마어마한 권위의 손상을 초래할 것이다. 아마 가장 쇼크를 받은 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일 것이다. 앞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이란과 유화적인 관계를 맺고자 할 지도 모른다. 중동지역에 광범위하게 펼쳐저 있는 반미세력들은 이번 사태로 힘을 얻을 것이다.

미국이 이란에 경제제재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제 유엔차원의 제재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이미 북핵문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게다가 이란과 중국은 서로 특수관계이다. 중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참가할 수 없다.

게다가 이란의 대응수단도 강력하다. 만일 미국이 독자적인 제재를 한다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버릴 수도 있다. 상호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가면 누가 더 피해를 볼까?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다. 말이 경제제재이지 실제적인 제재는 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하면 당분간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이 틈을 타서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당연히 북한은 마음대로 핵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그들이 언급한것 처럼 태평양에 수소폭탄 실험을 할 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을 지원할 것이고 미국은 또 전쟁의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미국은 이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두가지 옵션을 앞에 놓고 있다. 급격한 헤게모니의 상실과 천천히 완만한 헤게모니의 상실이다. 급격한 헤게모니의 상실보다 완만한 상실이 훨씬 용이하다. 운이 좋으면 그런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완만한 헤게모니의 약화를 견디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간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좋은 것은 서로 감정을 내려놓고 타협을 하는 것이다. 열받는다고 송사로 가면 둘 다 망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외교적으로 적당하게 타협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지 못하고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강요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이후 수없이 많은 전쟁을 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군사적으로 정리한 경우는 한번도 없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의 소규모 작전은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분단으로 끝났다. 월남에서는 패망했고, 아프간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라크도 오히려 문제만 더 크게 만들었다. 세계최고 최대의 군사력으로 중동의 한나라도 제대로 완벽하게 제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중동과 아랍권은 미국의 권위가 손상된 지금의 상황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서서히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지도 모른다.

대통령 인사권 ? 공화주의의 붕괴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 다르다. 다양한 시각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다. 이번 청와대와 추미애의 검찰인사를 어떻게 보는지 모두들 평가와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인사권을 행사했다는 주장부터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각각의 주장들은 모두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완전한 악과 완전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자한당을 참아야 하는 것은 민주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공화적 가치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자주 전제주의적 경향을 띤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제주의적 발상이다. 대통령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이 독재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에 의해서 견제될 수 있다. 검사 인사를 법무부 장관이 인사안을 만들어 검찰총장과 협의를 하고 이를 청와대에 제청하고 여기서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전제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인사는 그런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법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행사했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 아니고 헌법에 정해진 우리의 공화적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로마시대에 시저는 인민의 지지를 받아 황제가 되고자 했다. 그의 양아들(실제는 사생아 친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부르투스는 공화정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 나란히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비교적 그 배경이 분명한 것 같다. 당연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울산시장 선거의 개입과 유재수 문제 때문일 것이다. 조국 수사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조국 때문에 문재인과 추미애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추미애는 5선의 국회의원이다. 자신의 조치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분명하게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사법방해를 한 것은 당연히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송철호를 울산시장 민주당 후보로 단독공천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유재수 건과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스스로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위는 그 자체로서 탄핵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대통령이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대통령을 뽑았지 법위에서 군림하는 왕을 선출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상당기간 검찰을 수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수사검사 모두가 교체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새로 교체된 검사들이 와서 자료 살펴보고 하다 보면 수사는 동력을 상실하고 총선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유야무야 이번 사건은 묻혀질 것이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바로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문재인과 추미애에게는 다행스럽게 자한당을 위시한 야당은 아무런 조치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문재인과 추미애 그리고 친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시간의 문제이지 이번 사건은 반드시 다시 수면위로 올라 올 것이다.

다음 대선에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꿈깨시라. 지금처럼 정치하면 민주당에서 대통령 나오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오더라도 지금의 쿠데타적 행동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수사는 다시 진행될 것이고 문재인과 추미애는 그때 처벌을 받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후 들어선 노무현 정권이 대북송금문제로 동교동계를 모두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한 불쏘시개가 호남이라는 점이다. 이번 정권을 호남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남사람들은 자신들이 문재인 정권에게 이용당하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권은 일부 몇명의 호남 부역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호남의 지지를 호소한다. 정신없는 호남사람들은 그런 부역자들의 선동에 즐겨 따라간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생전 외치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붕괴시키는 일등공신이 호남인 셈이다.

이제 호남은 민주주의의 성지가 아니라 전제주의의 조력자가 되었다. 호남은 그 입으로 더 이상 진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대통령 신년사에 실망하다.

마치 뒷북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남북협력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말을 듣고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여건이 좋을 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다시 남북협력 카드를 빼들었다. 대통령의 남북협력 멧세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가장 진정성 있는 마스크를 가진 대통령이 가장 진정성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무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정책을 주장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정책을 주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을 추진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만일 그것이 무능의 소치가 아니라면 교활함의 결과다.

애시당초 북미회담이 시작된 것은 한국의 중재역할 때문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고서라도 북핵문제를 당시 수준에서 동결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북미회담이 가능했을 뿐이다. 북한이 남한과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던 것도 북미회담을 추진하면서 최소한으로 남북문제를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이 열세인 재래식 군비통제문제도 추진하고 남한으로 부터 경제적 지원도 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과 우호적인 관계는 북미회담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2018년도 남북간 밀월관계는 북한과 미국의 상황변화의 산물일 뿐이었다.

남북관계를 추진해나가려면 많은 반대를 무릅써야 한다. 우선 국내 수구세력들의 무조건적 반대를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와의 협조도 해야한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견디고 나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지난 2년동안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낮뜨거운 욕설을 하는 것도 이유없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남북협력을 고민하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들러리라고 느꼈고 문재인 정권이 실제로 현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남한과 거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구상을 밝히자 마자 해리스 한미대사는 남북관계 추진은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문재인 정권이 해리스 미국대사가 이야기한 협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두고보면 현정권을 절대로 미국의 주장을 넘어설 수 없다. 넘어설 의지와 능력 모두 없다.

한미동맹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주권국가인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사사건건 승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을 보면 마치 일제강점기의 일본 총독같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이다. 얼마나 정권이 우습게 보였으면 일개 미국대사가 대통령 신년사 그 다음날 저런 이야기를 하겠나?

해리스 대사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현정권이 미국에게 뭔가 크게 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소미아 연장문제, 방위비 분담금 문제, 중동에 파병문제등 현정권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수용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언급은 국내 지지자들을 위한 국내 정치용 프로파간다에 불과할 뿐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말은 북한의 조소만 살 뿐이다.정말 걱정되는 것은 이렇게 뻔한 결말과 반응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성서적 계시를 기대하기 때문인가 ? 그것은 조물주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변여건과 상관없이 내생각만을 내뱉는 자폐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무능함인가? 교활함인가 ? 아니면 자포자기인가 ?

호르무즈 파병문제, 접근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호르무즈에 파병키로 한 정부의 입장이 곤란해진모양이다. 청와대에서 NSC를 긴급하게 개최했다는데 별 내용이 없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은 안보실의 책임자들의 무능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우리 정부는 미국에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겠다고 이미 사전에 동의를 한 것 같다. 그 결정은 이미 오래전 일본의 경제침략 문제로 한일관계가 복잡해질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의 안보라인들은 한일문제에 미국이 지원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약속했을 것이다. 기억해보면 미국이 그런 말도 끄내지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그런 약속을 한 것 같다.

그 당시 호르무즈로 해군함정을 보내는 것은 새로운 의미의 파병이므로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의 국회 파병동의안을 확대해석해서 국회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호르무즈로 해군함정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해군함정을 호르무즈로 보내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중동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며 우리가 어떤 피해를 당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 하원에서도 트럼프가 이란과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항상 미국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일본도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파병하겠다고 했던 때와 상황이 완전하게 달라졌다. 상황이 바뀌면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는 문제를 정부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것은 외교적 카드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및 정부 안보부처는 그런 판단이 부족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 초래하게된 담당 책임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호르무즈 파병은 전쟁 혹은 준전쟁지역에 보내는 행위다. 따라서 정부가 기존의 국회동의안 해석을 확대한 것도 원천무효다. 당연히 전쟁 혹은 준전쟁 상황에 군함을 보낼 때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가 이번 파병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정부는 그런 능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다시 번복하기도 매우 어려운 상태일 것이다.

파병해서 작전을 하는 방법과 형식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연합함대의 일원으로 우리 군함을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미국과 이란이 전쟁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이란과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리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이란과 교전당사국이 된다.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일본의 입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군함을 파견하되 독자적인 작전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마도 일본은 이미 지금과 같은 상황을 충분하게 예측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일본과 해상수송로의 안전에 관해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동에서 동북아까지 연결되는 해상 수송로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과 같은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한일 연합함대를 편성해서 독자적으로 작전하되 미군과 협조관계를 유지하면 될 것이다. 이번기회에 해상수송로 보호와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해군이 보다 긴밀하게 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역내에서는 서로 반목하기도 하지만 눈을 넓게 뜨면 서로 협조할 부분은 많다. 반목할 부분은 줄여 나가고 협조할 부분은 넓혀 나가는 것이 양자에게 훨씬 유리하다. 비슷한 지정학적 여건에 처해 있으면서 서로 갈등만 할 경우 서로 손해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질것은 따지되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일이 호르무즈 지역에서 공동입장을 취하면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정부 당국자도 잘 생각하길 바란다. 다툴 때 다투더라도 힘을 합할 때는 힘을 합해야 한다.

안보정책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국회의 개입을 피곤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회를 개입시켜야 우리에게 손해가 없다. 국회가 제동을 거는 것을 대외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도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정부 안보팀들의 무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