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고용인 해고, 그 치졸함, 우리정부가 실무협의 파기의 빌미를 제공하다.

주한미군 주둔비비 협상과정에서 미국은 주한미군 고용인 해고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주한미군사령관 명의겠지만 아마도 미국국방부나 백악관까지 검토를 마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매우 치졸하다. 국가간 협상과정에서 주한미군 고용인들의 생계를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넘어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주한미군이 그런 조치를 한지 수일이 지났으나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소위 진보언론이나 보수언론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독자적인 전략적 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스스로의 굴종 때문이 아닌가?

미국이 아무리 힘이 세고 강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자국민의 생계가 위협을 받는데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어찌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응당 언론은 치졸하고 유치하며 저열한 미국의 행위를 규탄해야 마땅하다.

국가도 그에 따른 조치를 해야한다. 방위비협상까지 해고조치된 군무원들의 생계를 지원해주어야 한다. 그런 조치를 해야 협상력도 올라간다. 이제까지 정부차원의 조치가 발표되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정부도 미국눈치를 보는 것 같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봉급이 끊기면 어떻게 하나?

4000여명이 해고당한 문제는 심각하다. 언론이나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방위비 협상도 불리하게 흘러갈 확률이 높다.

정부는 며칠전에 주둔비 협상이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타결되었다고 발표를 했다. 그러자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우리하게 유리하게 협상이 이루어졌더라도 미국이 먼저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정치란 대의명분이 중요하다. 미국이 왜 양보를 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체면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우리 정부는 총선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를 바라고 성급하게 실무협의 내용을 발표했을 것이다. 실무협의결과는 무위로 돌아가게 만든 것은 문재인 정권인 셈이다.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생각이라도 해보고 있을까?

친미, 친중, 친북 사이에서

우리나라 정치를 주도하는 가장 잘못된 가장 강력한 프레임은 친미, 친중, 친북이라는 것이다. 친미는 좋은 것이고 친북이나 친중은 나쁘다는 가치관에 입각한 것이다.

간단한 언명이 힘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런 간단한 언명이 사람들의 사고능력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복잡한 것 보다 간단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따져보지 않으려는 지적 게으름이 간단한 언명의 힘을 배가한다.

간단한 언명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옳지는 않다. 오히려 간단한 언명으로 옳은 주장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옳으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언명으로 기억나는 것은 클린턴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것 정도다.

우리 정치권에서 주로 쓰이는 친미, 친북, 친중은 간단하며 강력하지만 옳지 않은 언명이다.

어떤 친미는 옳고 어떤 친미는 틀리다. 어떤 친중은 옳고 어떤 친중은 틀리다. 어떤 친북은 옳고 어떤 친북은 틀리다.

국제정치적인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기준은 국익이다. 친미만해도 우리에게 이익이 되면 그것은 옳다. 반중만 주장해도 우리에게 이익이면 그것은 옳다. 반북만 주장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면 그것은 옳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친미와 친중 그리고 친북이라는 언명은 현재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난에 주로 동원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문재인정권은 절대로 친중이며 친북정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실질적으로 가장 친미적인 정권이며 반중적인 정권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친북이라고 하기 어렵다. 북한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뿐이다. 중국과 북한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대우는 문재인 정권이 어떤 성격의 정권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중국으로 부터 가장 홀대를 받았던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북한도 최근들어 문재인 정권을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비난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그런 비난을 받는 친중 친북 정권이 있었던가?

문재인 정권을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얼마나 정의웠는가 얼마나 상식적이었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친중 친북이라는 비난으로 그들의 무능력 불의 비상식이 감춰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보수권 지지자들이 문재인 정권을 친중이나 친북으로 재단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을 도와주는 이적행위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우리에게 6조원의 방위비를 내라고 한다. 그런 미국이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지금은 친미를 주장하는 것이 반한국적이다.

생각과 가치평가의 기준을 친미냐 친중이냐 친북이냐로 정하지 말고 무엇이 친한국적이며 무엇이 반한국적이냐로 삼아야 한다. 생각과 가치평가의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가져오는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대를 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사대, 일본에 대한 사대, 미국에 대한 사대만 하다보니 국제관계의 모든 기준의 중심을 상실한 것이다.

친미만 하면 우리나라가 잘 살것이라 주장하는 미래통합당은 틀렸다. 정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중요시 한다면 정치는 경제에 봉사해야 한다. 우리와 가장 많은 교역을 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당연히 정치적 관계도 미국보다 중국과 가까워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중요시하는 미래통합당이 중국보다 미국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 아닌가.

세상일은 간단한 몇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친미, 친중, 친북이라는 몇마디 단어로 스스로의 사고체계를 마비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정치적 성숙을 가져온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교육정도와 정치적 성숙이 비례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한국국민들이 증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가오는 경제위기 해결책이 난망이다.

트럼프가 국민들에게 1000달러씩 준다고한다. 전국민기본소득이다. 트럼프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권시장은 급락했다. 무엇때문일까? 미국은 이번 상황을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 문제가 누적되어 있었다. 미국의 문제는 금융자본주의의 한계 때문이 아닌가 한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부터 미국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논의하고 있었다. 미국 경제가 한창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던 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난데 없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논의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밖으로는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 내부에서는 이미 미국 경제체제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적된 문제가 터질 때가 되었는데 마침 코로나 19가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19 치료제가 개발되거나 백신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시장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고 본다.

코로나19는 원래있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지적했는데 이번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미국의 세일가스 문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이었다. 그런데 이번 원유가격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척을 지는 태도를 취했다. 원유가격의 하락을 부추진 것이 러시아와 사우디였다.

산유국들은 미국의 세일가스로 인해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으니 아예 세일가스 업체를 모두 붕괴시키는 전략을 채택한 것 같다. 원유가격이 30달러 밑으로면 미국 세일가스 업체는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고 도산하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세일업체들이 도산하면 은행도 줄도산들 한다. 그럼 미국의 금융체제가 붕괴된다.

당연히 이번 사건은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의 상실을 초래할 수 있는 위기다.

이상하게 나쁜 일은 동시에 일어나고 좋은 일은 찔끔 찔끔 일어난다. 이번에는 미국 금융자본의 한계, 코로나19, 원유가격 하락은 동시에 일어났다. 이런 상황은 백약이 무효다.

아무리 금리를 인하하고 돈을 풀어도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전국민들에게 돈을 푼다고 해도 증권시장은 급락했다. 앞으로 상당기간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결국 무너질 것은 다 무너지고 나서야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경고했다. 그의 경고 이후 경제의 경기순환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순환주기마다 인민대중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일이다. 트럼프가 1000달러씩 나누어주는 것이 일회성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어쩌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이라도 돈을 이렇게 나누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미국의 사회구조적 변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그런데 미국이 지금 다시 루즈벨트와 같은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본다. 설사 다시 루즈벨트가 다시 살아온다고 해도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위기원인은 현재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 세일가스로 드러난 미국 패권의 위기, 코로나 19로 드러난 미국의 내적 모순 등이 중첩적이기 때문에 당분간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살아야 할 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재산기본소득을 나누어준다고 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잘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의 경제상황이 시급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가 현상황의 엄중함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여러가지 경우를 보면서 말과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처리하는 솜씨를 보면 이번 경제위기도 제대로 극복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트럼프가 1000불씩 나누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문재인정권은 여유가 많다. 현실감각마저도 부족하다는 의미다. 정치적 술수에는 능할지 모르나 문제해결 능력은 전무하다는 의미다.

정부 여당이 부족하면 야당이라고 똑똑해야 하는데 그것도 시원치 않다. 지금의 야당은 여당보다 더 무능력한 것 같다.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대한 어떤 책임있는 생각도 읽을 수 없다. 왜 우리나라 정치는 이모양일까? 왜 시정잡배같은 사람들이 정치인이되어 대중을 지배할까? 우리나라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없다. 그런데 항상 수준이하의 인간들에게 지배를 받는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시정잡배에게 통치를 받는다는 플라톤의 이야기도 옳지 않은듯 하다. 우리는 관심을 가져도 이 모양이다.

저기서 허리케인이 천둥번개와 함께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무밑에 앉아서 반대방향을 보고 희희락락하고 있다. 허리케인을 보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격이다.

결국 이번에도 국민의 저력에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늘 그랬던 것 처럼.

COVID-19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하기 시작한 것은 1347년 부터 였다. 1353년까지 러시아를 포함한 전유럽을 공포에 몰아 넣었다. 인구의 약 1/3이 사망했다. 페스트는 서양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인구의 감소는 장원경제의 붕괴를 초래하거나 더 강화시켰다.

서양의 중세사에서 근대사로 넘어가는 와중에 생긴 가장 심각한 사건이 페스트였다. 서구인들의 무의식에까지 새겨졌다. 역사의 진행에서 인구의 증감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갑자기 인구가 이렇게 줄어 버렸으니 어떤 일이 생겼겠는가? 페스트 이후 유럽은 다시는 과거와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COVID-19는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학과 의술이 발달했으니 페스트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COVID-19가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은 페스트 보다 더 강력할 것 같다.

코로나 19는 우리가 살아 온 삶의 방식을 모두 바꾸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야구를 보고 농구를 보는 것, 교회나 성당에서 예배와 미사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학교 교실에서 모여 앉아 도란도란 공부하는 모습은 먼 과거의 기억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영화관에 가거나 벅적벅적한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은 꿈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코로나 19는 개인의 삶만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다. 경제생활도 바꾸어 놓는다. 개인 사업자들은 거의 한계상황에 내몰렸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한계상황을 이미 넘었다. 이미 생존자체가 문제가 되어 버렸다.

총선이 며칠 앞인데 선거운동한다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보지를 못했다. 선거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국가간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릴지 모른다. 역사상 패권국가들은 혁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등장했다. 국내에서 혁신을 달성하고 그 다음에 힘을 밖으로 펼쳤다. 앞으로 패권국가의 지위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잘 다스리는 나라가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볼 것 같은 나라는 미국과 유럽 같다. 특히 미국은 거의 속수무책인 상황인 듯 하다. 국방비로 무려 1000조나 쓰면서 국민들의 건강문제 하나 해결할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앞으로 코로나 19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미국은 더 이상 외부문제에 간섭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가 안보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다들 생존하기 바쁘니 전쟁도 할 생각을 못할 것 같다.

이미 코로나 19을 겪은 중국이 미국보다 나은 것도 아니다. 중국이 확진자가 줄었다고 하지만 그 발표를 믿기도 어렵다. 설사 코로나 19의 확산을 억제했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다시 감염이 시작되면 중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국이 강력한 국가의 통제력을 가동할 수 있어서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았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다시 봉쇄를 풀고 다시 과거와 같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같은 나라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영종도 국제공항에는 비행기가 뜨지않고 앉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중국이나 일본을 봉쇄하고 말것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코로나 19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인구의 1/3이 사망한 14세기의 페스트보다 오히려 우리의 삶의 방식에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초래할 지 모른다.

비상한 시국이니 비상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미 이런 상황이 노멀이 되어 버린지도 모른다. 미리 미리 예측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치에 빠져 현실인식능력을 상실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다.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경제위기의 더블 쓰나미를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경제위기는 앞으로 미국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이제 처음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공공의료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다. 한국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파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감염병이 미국의 취약점을 파고 들 것이다. 미국은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벌써 CNN에서는 신속한 검사를 둘러싸고 트럼프의 책임여부에 대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아마 미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생기기 시작하면 미국의 의료체계는 붕괴될 것이다. 어제 CNN에서 미국 병원에서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중환자 중에서 선택적 치료를 할 준비를 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의료진이 보기에 치료가능성이 낮은 환자는 치료를 하지 않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다르지 않다.

환자가 많이 생기면 미국은 그 환자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갈수도 없는 곳이 미국이다. 정부가 환자들을 모두 다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게 하려면 미국의 재정은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감염 검사하는 것만도 의료보험없으면 400여만원 의료보험 있으면 100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어떻게 일반시민들이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웬만하면 검사도 받지 않고 병원도 가지 않고 그냥 바이러스의 처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미국의 모순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국가가 투자은행과 금융재벌을 위해서는 양적완화라는 희얀한 이름으로 무제한 무상 지원을 감행했지만 시민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시민들은 그런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면 정치적인 책임을 묻게 되어 있다. 정치의 본질은 책임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농사가 잘못되면 왕을 죽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어디 중국 뿐이겠는가? 시대가 변해서 직접 왕을 죽이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정치지도자는 제사의 예비 희생물이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조기 진압하지 못하면 그 비난은 모두 트럼프에게 향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매우 불리해진다. 트럼프로서는 뭔가 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싶겠지만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백년동안 굳어져 온 사회작동의 원리를 어찌 단기간에 바꿀 수 있겠는가.

미국의 대통령 후보중에서 공공의료를 주장하고 있는 후보는 샌더스 단 한사람이다. 민주당 주류들은 아예 작정을 하고 바이든을 밀고 있지만 바이든의 정책과 색깔로는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사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문제도 트럼프와 바이든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매우 극적인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변화의 핵심은 부의 재분배다. 미국이 가장 강력할 때는 중산층이 강할 때였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중산층이 약화되었다. 현재 미국의 중산층은 사회 주도계층이라고 하기어렵다. 미국은 부자와 가난한자의 나라일 뿐이다.

만일 미국 시민들이 깨어 있다면 지금이라도 샌더스에 주목해야 한다. 비록 기존 정치권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정치인만이 미국의 한계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기득권이 둘러싸고 있는 갑옷은 두껍다.

심지어 길가의 노숙자들도 사회주의라면 적개심을 보이는 것이 미국이다. 그런 경향은 발생학적 특성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원래 자본가들의 과두체제로 만들어진 나라인 것이다.

지금 엉뚱한 길로 가면 미국의 미래는 어둡다. 물론 샌더스를 선택하더라도 어려워질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찌어찌해 볼 도리는 있을 것이다. 만일 바이든을 선택하면 미국의 빈부격차는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근본적인 개혁보다는 돈을 풀어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면서 더 큰 위기를 잉태시킬 것이다.

트럼프가 그대로 권좌에 남아 있으면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경제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의 쓰나미를 그대로 맞아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과 경제문제가 조금 더 일찍 터졌더라면 샌더스에게 매우 유리했을 것이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미국인들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란다.

지금 남의 걱정할 때가 아니지만 큰집이 망하면 작은 집은 쫄딱 망하는 수가 있어서 걱정된다.

미국 주가폭락과 나락을 알 수 없는 위기의 도래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이후 최악이라고 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으로는 2008년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이런 상황에 대한 원인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미국 증시 폭락의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들고 있다. 첫번째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고 두번째는 원유가격하락이다.

세상을 읽기가 매우 어렵다. 미국 증시가 이렇게 엉망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론보도를 읽으면서 몇가지 의문을 떠올랐다. 첫번째 이번 주가폭락은 2008년의 금융위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하는 점이다. 두번째는 미국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이번 주식폭락의 두가지 이유가 과연 합당한 이유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떠올린 의문 두가지는 사실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것은 현재 미국의 주가폭락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일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주가폭락이 어떤 상황을 향해 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번 주가폭락이 2008년과 매우 다른 원인에서 출발했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의 탐욕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러나 이번 주가폭락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것 같다.

진짜 문제는 이번 주가폭락의 진짜 이유를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야 말로 진짜 위기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가폭락은 주가폭락을 설명하기 위해 갖다붙인 현상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이번 주가폭락 위기의 진정한 구조적 요인은 따로 숨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친 것 같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도 실패했고 미국우선주의도 실패했다.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방법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8년처럼 마구 돈을 뿌리는 방법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투자은행이 망하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구제해줘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돈을 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는 유가폭락의 의미이다. 1970년대 중반이후 세계자본주의는 미국과 사우디가 손을 잡고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가 달러를 원유결재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달러가 기축통화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최근들어 미국이 세일석유를 생산하면서 그 협조관계가 붕괴되어가는 것 같다. 미국이 세일가스를 생산하게 되면 단기적으로 이익인듯 하지만 국제자본주의 분업체제는 붕괴될지도 모른다. 그런 구조적인 붕괴는 미국의 세계패권적 지위를 더욱 약화시키게 된다.

산유국들이 모두 감산에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국가는 누구일까? 역설적으로 미국의 세일석유다. 일정정도 가격 밑으로 떨어져 버리면 세일가스의 채산성이 떨어진다. 그럼 미국의 경제적 동력도 힘을 잃게 된다. 산유국들은 미국의 세일가스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여긴다. 산유국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전통적 보호자였던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우디의 증산조치는 앞으로 미국과의 협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인지 모른다. 앞으로 사우디가 원유를 달러로 받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만일 미국이 2008년처럼 달러를 풀어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면, 사우디는 위안화나 유로와 아니면 비트코인으로 원유가격 결재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의 경제질서는 완전히 붕괴되는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의 위기는 중국의 도전보다 중국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지속적인 혁신을 창출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어떤 나라도 무한대의 혁신을 하기는 어렵다. 기술과 과학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한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가장 직접적인 도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미국은 중국과 같은 패권도전국가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에서 회피하려면 미국의 경제 사회적 구조가 모두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같은 사회에서 극단적인 부의 재분배는 쉽지 않다. 체질을 바꾸는 것은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다.

최근 몇년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은 패권국가 붕괴과정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방국에게 방위비를 요구한 것은 미국이 패권체제를 스스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체제보호비용을 국민경제에 녹여내지 못하면 더 이상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면 그 보호비용을 통상 약탈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보호비용의 약탈은 쉽지 않은 법이다. 누가 당하겠는가? 북한도 중국과 러시아의 보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을 만든 것이다. 최근들어 터키가 핵무장을 시사한 발언을 그냥 지나쳐 보면 안되는 이유다.

이번 주식가격의 폭락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다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주식가격의 폭락의 이면에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이 켜켜이 쌓여 있으나 이를 극복할 방법이 별로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루즈벨트는 대공황이후 등장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했다. 그래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황에서 벗어났다. 미국이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철저한 몰락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아무리 공황에 빠져도 과거의 방법을 채택해서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공황탈출의 최고방법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핵무기 때문에 전쟁도 못한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위기라고 생각을 하기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선거 때문에…

샌더스의 네바다 예비선거 승리와 워렌 버핏의 위선적 태도

2월 24일 민주당 네바다주 대선 예비선거에서 샌더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초반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부티지지는 뒤로 가라 앉았다. 백인 오바마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바이든이 2등으로 올라왔으나 샌더스와는 너무 격차가 많이 떨어졌다.

워렌버핏은 자신은 골수 자본주의자라고 하면서 블룸버그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폴 그루그만은 뉴욕타임즈에 자신의 샌더스를 지지한다는 기고를 발표했다. 미국의 일부언론에서는 러시아가 트럼프를 도와주기 위해 제일 손쉬운 상대인 샌더스를 지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선거판이 진흙탕인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느니 아니니 하는 것은 미국판 북풍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미국민주당 대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민주당 내부에서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 주장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자본가들을 위한 정당이다. 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조금 넓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이 봉사하는 경제적 계층은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이다. 월스트리트가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샌더스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하는 민주당 주류의 비난과 우려는 대부분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네바다 예비선거의 의미는 이번 민주당 대선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주류의 입김이 예비선거에 그리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미국 보통 및 하층 시민의 삶이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샌더스의 공약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의료보험과 학자금 지원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가히 살인적이다. 코로나-19 검사 한번 받으려면 400만원 가까이 내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파도 웬만하면 병원에 갈 수 없다.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으로 확산되면 미국은 재앙이다. 공공 의료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트럼프의 지지층과 겹치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계층은 소위 러스트 벨트의 하층 백인들이다. 가난한 백인들이 국수적 경향을 띠는 것은 충분히 설명가능하다. 문제는 그동안 트럼프의 정책이 실질적으로 러스트 벨트의 백인하층민들의 삶을 별로 개선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러스트 벨트의 백인들도 점차 샌더스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번지면 미국판 ‘이게 나라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우리나라가 어떤 의료보장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볼 것이다.

이 와중에 워렌버핏이 블룸버그를 지원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그는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블룸버그의 지지는 그가 그동안 보였던 태도가 얼마나 위선적인 가를 보여주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금융자본가로서 어떠한 이익의 침해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와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워렌 버핏의 위선적 태도는 지금 미국이 처한 분열적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자본이익을 위해 미국이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도 없는 욕심많은 늙은 베니스의 상인에 불과한 것이다.

샌더스는 우리식 개념으로 하면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자에 불과하다. 미국적 이념 지형속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불렸지만 그는 일은 미국이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막아보겠다는 지극히 개혁보수주의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서 생산수단의 사적보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정책도 추구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는 유럽적 개념에서 보면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다.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만일 그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민주당을 지지하던 월 스트리트는 모두 트럼프 쪽으로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번에 샌더스의 개혁을 하지 못하면, 미국은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다. 로마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졌다.

미국 대선과 거대재벌(소로스와 코크)의 의중

많은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소로스가 1월 31일 페이스 북의 저커버그를 비난하는 기고를 했다.

소로스가 비난하는 것은 첫째,트럼프와 저커버거가 서로 야합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2016년에 저커버거는 트럼프와 손잡고 맞춤광고를 하도록 했으며,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페이스북이 대선후보들의 팩트 체크를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과 조작 극단적인 주장이 판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선전 선동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무료앱을 선보이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소로스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미 이전부터 미국이 대선과정에서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리하여 자신과 정치적 이념에서 정 반대에 있는 찰스 코크라는 부호와 손을 잡고 <책임있는 국정 운영을 위한 퀸시 연구소>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자유주의적인 소로스와 공화주의적인 코크가 손을 잡고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고 손을 잡은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문제는 소로스와 코크가 지향하는 중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중도는 소로스로 대표되는 금융과 코그로 대표되는 석유의 중도라고 보는 것이 옳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의 중도가 아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중도는 경제 정치 엘리뜨 중에서 각각의 입장을 중간 정도로 조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상층계층과 하층계층의 중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소로스와 코크가 설립한 퀸시 연구소는 대외정책에 있어서 지금과는 달리 대화와 외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군사적인 압박 일변도인 지금의 정책보다는 진일보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입장의 변화도 결국은 중국에 금융자본이 진출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중국도 그런 것을 모를리가 없으니 소로스와 코크의 생각처럼 되어갈지는 의문이다.

만일 소로스와 코그가 생각하는 중도가 상층 엘리뜨간의 입장 조정정도라면, 그들은 미국이 처한 어려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이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국과의 패권경쟁도 아니고 방위비도 아니다. 미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심각한 빈부격차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회주의자임을 자임하는 샌더스는 소로스와 코크 공동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갑자기 블룸버그가 대선에 뛰어든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마도 미국 상층계급이 샌더스를 막기 위한 카드인지도 모른다.

최근 샌더스의 상승세가 높아지는 것은 미국이 처한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근본적인 혁신을 하지 못하면 저무는 해가 되기 십상이다. 거기에 소로스와 코크로 대표되는 거대 자본들이 샌더스가 일으키는 움직임을 어떻게 막아낼지는 알 수 없다. 대부분 세상일은 돈으로 다 무마된다. 그러나 간혹 어쩌다 돈으로 안되는 때도 있다.

샌더스의 약진을 돈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만일 돈으로 안되면…

[‘이념상극’ 소로스-코크, 미외교혁신싱크탱크공동설립](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0925873)

프랑스의 핵과 북한의 핵

유럽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은 2월 1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유럽대륙이 프랑스의 핵우산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나토가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며 프랑스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문제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문제가 아닌 듯하다.

프랑스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와 미국간 무역협상에서 프랑스의 농업부문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지나치게 미시적이다. 마크롱 이전의 올랑드 때부터 프랑스는 현 유럽 안보체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 유럽의 균열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 유럽은 냉전종식이후 상황에 부합하는 변화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NATO의 틀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상황의 변화는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분열과 경쟁속에서 발전해온 지역이다. 분열과 경쟁은 유럽의 역동성을 낳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전개된 냉전은 유럽을 단일 사회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물론 그런 움직임의 핵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이제 미국이 과거에 자신들이 해왔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변화는 불가피하다.

지금 유럽은 마치 제1차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듯하다.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를 적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러시아는 비스마르크 시대처럼 고립될 것을 두려워하여 프랑스나 독일과 손을 잡으려고 하는 유럽의 변방이 아니라는 점이다. 루드비히 데히오가 말했던 ‘측익강국’의 가장 강력한 전형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냉전당시에 소련은 유럽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러시아는 냉전당시보다 훨씬 강력하게 유럽내부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장 고민스러운 나라는 독일일 것이다. 경제력으로 보면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다. EU는 독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적으로 강력하다고 해도 핵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군사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지금처럼 미국제일주의를 주장하게 되면 독일은 진퇴양난에 빠질 것이다. 독일이 미국에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냥 조용하게 프랑스의 핵우산을 받아 들일까? 아니면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할까? 영국은 독일의 옵션이 되기 어렵다. 독일이 러시아와 가까이 하는 순간 유럽의 국제정치는 소용돌이 치는 용광로로 변할 수도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유럽에서 떨어져 나와 버렸다. 영국은 핵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처럼 세력균형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명예로운 고립을 향유하던 Britain은 앞으로 외로운 유럽의 변방 England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미국이 과거 영국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미국이 유럽의 맹주역할을 어느 정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패권의 약화는 내부문제에서 비롯된다. 패권국가의 사회구조가 취약해지면서 붕괴의 징후는 변방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로마가 내부에서 무너지고 게르만으로 부터 침략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도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프랑스가 핵국가로서의 역할을 천명하고 나섰다는 것은 앞으로의 미국이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얼마전에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핵무장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한번 둑이 터지면 다시 원상 회복시키기 어렵다.

프랑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핵무기라는 것이 이렇게 강력한 국제정치적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이상, 국제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 유럽과 동북아는 다르고 프랑스와 북한은 다르다. 그러나 핵무기가 어떤 국제정치적 상황을 초래할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하는데는 큰 차이가 없다.

미국 민주당 대선동향,샌더스에 대한 공격을 보며

샌더스는 79세의 고령이다. 게다가 작년에는 심장수술도 했다. 그는 평생 사회주의적 신념을 유지했다. 미국적 풍토에서 사회주의라고 하기 어려우니 이런 저런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적 기저에 사회주의적 영향이 흐른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정치생활 내내 무소속으로 일관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샌더스가 버몬트 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것도 미국적 상황에서 일반적인 것인 것은 아니다.

아이오와 주에서 부티지지에 0.1% 차이로 2등을 차지한 샌더스는 뉴햄프셔에서 1등을 차지했다. 샌더스가 1등 그 뒤를 이어 부티지지가 2등 그리고 3등은 의외로 에이미 글로부처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이 차지했다. 4등은 워런 상원의원 5등은 바이든이다.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특징적인 것은 샌더스가 1등을 했다는 것, 부티지지가 2등을 차지하면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 3등인 에이미 글로부처 상원의원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주자로 알려졌던 바이든이 5등으로 처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바이든이 줄곳 1등을 했던 여론조사 결과도 샌더스가 1등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2월 11일 몬머스 대학의 여론소사에 따르면 샌더스가 26%로 1등, 바이든은 16%로 2위, 워런과 부티지지가 각각 13%로 3위, 블룸버그가 11%로 5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직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블룸버그가 11%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샌더스가 여론조사에서 1등을 차지하고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1등을 차지하자 미국 월가에서는 즉각 경계심을 드러냈다. 골드만 삭스 회장과 CEO를 지낸 로이드 플랭크 파인은 샌더스가 후보가 되면 미국사회가 극단적으로 나뉘며, 경제를 망치고 군도 망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샌더스 같은 사람이 미국 민주당 대선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미국사회가 내부로 부터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자본의 탐욕에 의한 빈부격차다. 2008년 위기때 이 문제를 정리할 기회가 있었으나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는 커녕, 가장 월가에 유리한 정책으로 문제를 덮어 버리고 회피했다.

미국의 금융자본들은 흑인대통령을 내세우면서 미국의 구조적 문제를 감추는데 급급했다.

오바마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공약이 놀랍도록 샌더스와 비슷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다 모두 빈자를 위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전세계의 부를 끌어 들여서 ‘가난한 자’들을 부양하려 한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런 이야기다.

샌더스는 부와 직접적인 분배를 주요 정책으로 제시한다. 부유세율을 올리고 법인세를 올려서 거둔 세금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식 문제해결 방법은 거의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벌써 트럼프와 파월 연방준비제도(FED)는 양적완화를 한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다 만다 하고 설전을 벌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미국 경제가 잘 굴러간다고 하는데, 정작 트럼프와 FED는 마이너스 금리냐 양적완화냐로 논쟁을 하고 있다.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잘은 모르겠으나 언론보도와 달리 미국경제가 매우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월이 미국의 채무가 너무 많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미국은 아직 2008년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적완화를 통해 전세계 다른 나라들의 부를 빼앗아서 억지로 틀어 막았는데 성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비상조치들이 언제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슈퍼 화요일이 지나면 미국 민주당의 월가주의자들은 바이든을 버리고 블룸버그로 갈아탈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샌더스의 개혁을 막아보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번 기회가 미국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이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결국은 미국도 스스로 체질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자체내의 경쟁력 강화에 실패하면 아무리 강력한 미국도 뒤로 나가 떨어진다. 그것이 역사의 운명이다.

미국 주류사회의 동맹은 강고하다. 그들이 샌더스와 같은 개혁을 허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 제도는 복잡해서 민중의 뜻이 선거에 직접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진정한 개혁에 실패하면 세계패권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패권상실과정은 비교적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일어난다. 항상 그렇듯이 이미 미국 패권을 이어가기 위한 잠재적인 후보군들이 대기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력을 강화하면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번지수를 잘못찾았다.

핵시대 이후 패권경쟁의 최전선은 군대와 전쟁이 아니다. 내부적 경쟁력이 패권경쟁의 최선선이다. 과거 시대의 관념에 머물면 아무리 강국이라도 쇠퇴할 수 밖에 없다. 내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빈부격차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능력을 총동원할 수 없다. 국민 대부분이 하루 하루 먹고 살기위해 전전긍긍한다면 어떻게 국민들의 정신적 지적 능력을 총동원하여 국가 경쟁력을 향상 시킬 수 있겠는가?

미국뿐만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도 분배의 문제다. 분배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서서히 침몰하거나 급격하게 가라 앉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외면하면 후과가 따를 뿐이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에나 들어맞는 이야기다. 지금은 열심히 일해도 극빈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보화사회에는 정보화 사회에 부합하는 제도가 갖추어져야 한다. 정보화 사회의 과실을 다 따먹으면서 산업사회의 규범을 강요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