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막판에 이란을 공격하려고 한 이유는 ?

서서히 미국 대선도 정리되어 가는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오래전부터 미국이 중국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중동에서의 분쟁이라고 생각했다. 왜 트럼프가 행동을 하지 않고 미적거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큰 변화라면 중국과 이란에 대한 접근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태평양 중시 즉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는 초기에는 중국과 원만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듯 하다가, 후반기에 강력한 입장을 취했다. 오바마는 이란문제를 협상을 통해 정리하려고 했고 트럼프는 초기부터 이란과의 협상을 무시했다.

미국의 정책변화는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당연히 기업가들, 즉 자본가들의 입장이다. 근대국가 형성이후 모든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서는 자본의 축적이다. 국가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자본축적 수단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로 넘어오면서 대외정책이 바뀐 부분의 이유를 자본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란에 대한 태도이다. 처음에는 이란과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이란의 정보책임자가 살해되고 이란이 이라크의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전쟁이 바로 목전에 왔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자본가들이 셰일석유를 살리고 중국에 대한 이란의 원유공급을 차단함으로써 미중패권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을 멈추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임기 말을 앞두고 갑자기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검토하라고 했다. 원래 임기말에는 군사행동을 하는 법이 아니다. 왜 그랬을까? 다음에 들어오는 바이든 행정부 엿먹이려고 한 짓일까?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선거에서 진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대외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트럼프는 미국의 부활을 위해서는 국내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트럼프와 같은 정책은 과거에도 있었다. 트럼프의 정책은 29대 대통령 하딩과 매우 흡사하다. 하딩은 제1차 세계대전이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대신 미국내로 시각을 돌렸던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문제를 인식한 방식과 하딩의 문제인식과 유사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가 과거와 달리 대외정책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려고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가 마지막에 이란 공격을 검토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의 금융자본은 끊임없이 대외정책에 관여하기를 요구한다. 금융자본의 속성상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팽창하지 않으면 금융자본은 자본을 축적하기 어렵다. 그런점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하는 트럼프와 금융자본은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딩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월스트리트는 지금처럼 막강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한다.

트럼프가 마지막에 이란 공격을 검토한 것은 자신의 임기내내 억제해왔던 대외정책을 바꿀수도 있다는 월스트리트에 보여주고자 하는 제스츄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바이든이 들어오더라도 세상은 조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바이든의 대외전략방향 전망, 이란문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대외정책을 구상할까? 이제까지 언론에 나오는 것을 보면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첫째 트럼프보다 동맹을 강화할 것이다, 둘째, 중국에 대한 압박은 계속 유지할 것이다. 셋째,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요구는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외정책을 채택할 것인가를 전망하고 시나리오별로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적어도 수개월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대외정책방향을 리뷰하고 수정해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재임기간중 중국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미세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전반기에는 중국문제를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패권경쟁의 양상으로 접어 든다. 트럼프 중반이후에 태평양전략의 대강이 중국 견제로 바뀐 것이다.

트럼프의 중국 견제는 직접적인 양상을 띠었다. 홍콩문제에 직접 개입했다. 그리고 대만문제도 과거와 다른 방식을 보였다. 그동안 금기시하던 무기를 대만에 판매했다. 지금 중국과 대만은 거의 전쟁까지도 불사할 상황이 아닌가 한다.

바이든이 등장했을때 우리가 제일 먼저 눈여겨 보아야 하는 점이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다. 트럼프 처럼 직접적인 접근을 할 것인가 아니면 간접적인 접근을 할 것인가?

중국의 반발이 심한 직접적인 접근보다는 우회적으로 간접적인 접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간접적인 접근을 한다면 그 무대는 어디가 될까? 떠올릴 수 있는 곳은 중동과 아시아다. 중동에서는 이란이다. 트럼프 등장이후 이란문제가 심각해졌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합의를 무시하고 이란과 관계를 악화시켰다.

당시 트럼프가 이란과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을 보고 조만간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세일가스를 살리기 위해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려고 할 것이라고 보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트럼프는 물러서고 말았다. 트럼프의 가장 큰 실책은 이란을 섣부르게 건드려서 중동의 맹주와 비슷한 지위로 올려준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이란 문제를 제일 먼저 고려할 것이다.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가지다.

첫번째는 전쟁을 해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미국의 세일가스 가격을 올리는 일이다. 미국 경제를 띄우기 위해서 충분하게 고려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전쟁의 양상은 전면전보다는 소규모 군사적 충돌이 될 가능성이 많다. 전면전과 같은 양상을 띠면 중국과 러시아가 개입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런 여지를 주지않으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이란의 석유수출을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방식을 사용하면 사우디아라비아도 피해를 본다. 그러면 유럽이 미국에 반기를 들고 나올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강경책을 채용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이 채택할 수 있는 두번째 방법은 과거 이란과 맺은 핵합의를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란이 과거와 같이 고분고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미국은 이란이 중국에 석유수출을 하지 않는 조건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럽이 이란의 석유를 수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가들은 먼저 첫번째 공격적인 방안을 현실화시키려고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다시 중동에는 전운이 감돌지도 모른다.

보편적 가치의 붕괴, 트럼프와 문재인의 공통점

몇년전 잘 알고 지내던 미국인 노교수와 이야기 하다가 트럼프가 남북관계에 전향적으로 나오고 있으므로 한국의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더 좋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그 교수가 뭐라고 말은 하지 못하고 그냥 그 큰 눈으로 놀란 듯이 날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 말하지 않고 나를 바라만 보는 얼굴에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읽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는가? 하는 것 같았다. 나와 개인적인 관계를 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화가 나서 실신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얼마전 선배님 한분과 그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무리 한반도의 남북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세계사적 보편적 가치에 정면도전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선되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 아마도 제대로 된 지식인으로 받아 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이비란 지적이다.

우리는 다양한 차원의 삶을 살고 있다. 가정과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다양한 차원의 삶이 일관되기란 매우 어렵다. 사회적 가치가 가정의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면 사회적 가치가 붕괴될 수 있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국가와 세계도 그렇다. 한마디로 우리는 서로 모순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살고 있다.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가는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가장은 가정을, 사회지도자는 사회를, 국가 지도자는 정치를, 세계의 지도자는 세계의 미래를 우선시 해야 한다. 만일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가 가정을 우선시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런 것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이 지식인이다. 현재 한국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아야 할 지식인이 문제를 일으키고 더 나아가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조국과 윤미향을 질타하는 것은 그들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국가와 사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조국을 백번을 털던 천번을 털던 비오는날 먼지나게 털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로서 의당 지녀야할 <보편적 가치>를 지니기는 커녕 훼손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라는 자리에 않자 의당 지켜야할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고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당적 이익을 위해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라는 것도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충돌할 수 있다고 본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보편적 가치란 남북관계의 발전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의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란 남북관계와 같은 지엽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그 노교수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 이유일 것이다. 그녀에게 난 세계사적 보편적 가치를 한반도의 협량한 이해관계로 훼손하려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치 내가 조국이나 윤미향 그리고 문재인을 지지 옹호하는 사람을 바라 보는 시각과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트럼프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거짓말장이고 사기꾼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사회를 통합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를 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미국의 불행이 되고 그것은 세계의 불행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와 문재인의 케미가 너무 잘 맞았는지 모르겠다. 한참전 남북관계에 관여한 분에게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케미가 잘 맞아서 남북관계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트럼프와 김정은의 케미보다 트럼프와 문재인의 케미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트럼프와 문재인의 케미가 잘 맞는 것 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 둘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보다는 증오와 혐오 같은 부정적인 기재를 즐겨 이용하고 끊임없이 원인과 결과를 왜곡시켜 나가는 점에서 너무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미국인 노교수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고 나는 겨우 한반도에 머물고 있었다. 어떤 세상에서 사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 같다.

각설하고 트럼프와 문재인은 둘 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닮은 꼴인 것 같다.

바이든이 트럼프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될 것 같다. 미국은 혼란을 겪었다. 그래도 잘못갔던 길을 돌아오는 복원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미국은 어떻게 될까?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오늘 저녁 정도면 어느 정도 선거 결과의 윤곽이 잡힌다고 한다. 트럼프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파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트럼프 당선이후 극심한 분열을 보였다. 남북전쟁이후 미국이 지금처럼 분열한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분열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겪는 분열은 다름아닌 경제적 한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고 했다. 미국 경제가 괜찮을 때는 인권과 자유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그들이 주장하던 인권과 자유 같은 이상을 더 이상 추구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이 인종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경우는 백인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유색인종들을 여유있게 바라 볼때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면 인구면에서 다수인 백인들 중심의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다.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나선 것도 미국의 경제가 갈수록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때문일 것이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중국에게 추월당하면 미국은 이등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만일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냥 경제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더 이상 미국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미국은 거대한 인종적 문화적 통합을 바탕으로 구성된 나라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런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시기에 드러난 인종주의적인 경향은 미국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통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통합은 점차 불가능해진다.

미국은 연방국가를 유지해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각 주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가 남부 시실시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으려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는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처럼 언어외에 다른 접착제가 없는 국가의 경우 분열을 통한 각자 도생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

트럼프가 되느냐 바이든이 되느냐에 전세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누가 되는지 간에 현재 미국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그는 전통적인 미국의 태도로 돌아갈 것이다. 전세계적인 동맹정책을 통해 중국을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하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은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역할을 손절하려 했다. 어느 정도 미국의 역할을 줄여나가면서 미국 내부의 발전을 통해서 급격한 위상추락을 방지하고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바이든은 아마도 미국의 지도적 지위를 과거처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런 방식은 미국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전세계적 리더십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의 미국은 그런 대가를 지불하기 어렵다. 결국 바이든이 생각하는 미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더 빨리 무너지게 되는 현상을 초래할지 모른다.

트럼프는 미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처방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세계패권국가에서 패권국가중 하나로 위상을 떨어뜨려가는 과정을 연착륙으로 해결하려 한것이다. 현재 미국이 처한 실력으로 볼때 바이든 보다 트럼프의 정책이 훨씬 합리적일 수도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합리적인 정책을 비합리적인 행동과 태도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되든 바이든이 되든 미국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트럼프가 되면 미국의 분열을 통합해나가기 어려울 것이고, 바이든이 되면 오히려 극격하게 미국의 패권을 상실하는 경착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안보도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결국 한국도 각자도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시기가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미중 패권경쟁과 동맹의 대가

어제의 중국 공산장 19기 5중전회의 미중관계와 우리의 입장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은 어제의 내용을 이어간다.

우리가 처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상황은 남한은 미국에 붙고 북한은 중국에 붙어서 서로 갈라져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쟁을 하는 경우다. 중국과 미국은 가급적 북한과 남한을 각각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동맹정책이다.

동맹은 경우에 따라 안전할 수도 있지만 위험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제1,2차 세계대전은 동맹정책으로 전쟁을 억제하지 못해 발생한 경우다. 멀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부터 시작되었지만 동맹정책은 19세기 유럽 세력균형정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방지하고 현상유지를 목표로한 동맹정책이 가장 최악의 전쟁을 초래한 것은 역사적 경험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동맹정책을 강대국이 약소국의 분쟁에 말려드는 경우를 연루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에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강대국의 투쟁에 약소국이 말려드는 것이다. 소위 제한 전쟁가 대리전쟁이라는 것이 그런 현상을 초래하지 않았나 한다. 핵무기로 인해 강대국이 전쟁을 하지 못하니 약소국을 앞세워 전쟁을 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그렇고 베트남전쟁이 그랬다. 그렇고 보면 강대국들이 말하는 동맹이란 결국 약소국을 강대국간의 갈등에 연루시키는 역개념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중패권투쟁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욱 두르러지게 될 것이다. 만일 남한이 미국과 북한이 중국과 동맹관계를 공고하게 하면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남한과 북한사이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미국과 중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전쟁은 할 수 없다. 당연히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이용해서 서로의 힘을 겨루려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구도에서 대리전쟁으로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적으로 낮추어 놓았다. 만일 북한이 중국과 동맹관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일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미국은 직접적인 참전을 유보할 가능성이 높다. 핵을 가진 북한과 직접적인 충돌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와중에서 대만에서 전쟁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 김일성이 남침전쟁을 한 것은 그가 국제주의를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북한의 행적을 살펴보면 김일성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국제주의에서 민족주의로 전환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주체사상이란 사회주의의 국제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김정은의 북한도 당연히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중국의 사주를 받아 전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벌려 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미중패권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아마도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세력, 즉 군산복합체들이 북한까지 적으로 돌리게 만든지도 모른다. 남한과 대만 그리고 일본에 무기를 더 팔아먹기 위해서 미중패권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장기적 전략의 유리함을 포기한 것이다.

만일 대만과 중국간 전쟁이 벌어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중국과 대만은 서로를 치고 받는 전투를 벌일 것이다. 대만과 중국이 서로 치고 받게 되면 중국은 당연히 국제교역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대만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겠지만 중국도 그에 못지 않는 피해를 입게 된다. 아마도 서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나면 그때 미국이 개입해서 차단할 것이다. 결국 중국은 대만을 점령하려는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나 중국과 동맹을 맺으면 안전보장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전쟁에 연루될 위험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시진핑 제19기 5중전회에서 자립경제를 주장한 의미

시진핑이 19기 5중전회에서 자립경제와 기술발전을 주장했다. 이번 시진핑의 연설은 미중패권의 진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자립경제를 방법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중국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예측한 바 있다. 결국 중국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미중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중국과는 장사하는 사이다. 무릇 동맹이란 경제관계와 안보관계가 서로 상응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동맹관계는 매우 어긋나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교의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적 관계가 깊은 중국과 동맹을 맺은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이후의 적대관계에 대한 공식적인 정리를 하지 못했다. 법적으로 적대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동맹에 버금가는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의 교역규모가 중국과의 그것보다 적다고는 하지만 미국과의 경제관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과학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거의 모든 혁신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확산된다. 미국이 과학과 기술 그리고 학문의 원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교역규모만 가지고 미국과 중국 중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최상층부에 앉아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중국은 코로나 19로 미국의 경제규모를 추월하는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의 압박을 회피하기 위해 자립경제를 확대하고 기술을 개발한다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중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투자를 한다고 해도 미국을 능가할 첨단과학기술을 창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첨단과학기술의 창조는 개인의 개성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선두에 나서기 어렵다. 그저 매우 빨리 선두와의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겉과 속이 다른 국가다. 겉으로는 인권과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한다. 물론 그런 점에서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강대국들은 모두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 하는 말과 속의 꿍꿍이는 다르다는 말이다. 당연히 겉으로 하는 말이 속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가치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이 아무리 사악한 자본주의 국가의 전형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중국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이 아무리 제국주의적인 세계질서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중화주의적 세계질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다.

국제관계는 매우 간사하다. 조금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즉각적으로 국가관계도 바꾼다. 중국의 경제력이 강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동맹에 즈음하는 관계를 새로이 맺으면서 기존의 안보구조를 바꾸어 가는 국가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강력해진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과거 비단길을 재건하겠다는 회고적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중국은 세계를 앞서는 첨단국가였다.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은 유럽이 생산하지 못했다. 상품들은 필요에 따라 유럽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와중에 비단길이 생겼을 뿐이다. 비단길이 있어서 중국과 유럽이 교역을 한 것이 아니라, 상품이 있어서 교역로가 생겼던 것이다.

중국은 지금 교역로를 만들어 상품을 교역하려는 것 같다. 일대일로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중국이 앞으로 어떤 국가를 지향하고 주변국과 어떤 관계를 지향하는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중국이 지니고 있는 불확실성이 중국과의 관계강화를 저어하게 만든다. 강력한 중국이 세계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미국의 힘이 빠지면 유럽과 미국이 합쳐서 중국을 견제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에 중국을 견제할 수 있도록 NATO의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유럽국가들도 이에 동조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유럽국가들 중 독일과 프랑스도 중국에 대항하는 NATO에 동의하는 것 같다. 화웨이와 관계를 차단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거부하는 독일과 프랑스가 중국에 대응하는 NATO라는 개념에는 반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은 중국과 경제관계는 유지하되 NATO를 통해 미국과 힘을 합쳐서 중국의 세력확산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시진핑이 자립경제발전과 과학기술발전을 주장했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과의 경쟁단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미국은 중국없는 세계가 오더라도 이를 감내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지도부는 최악의 경제공황이 오더라도 이를 감내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미국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패권을 중국에 넘겨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힌 모양이다.

세계경제가 앞으로 매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만일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면 우리도 별 방법이 없다.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국과 같이 하는 수 밖에 없다. 다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만일 그런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 낙선 유감

WTO사무총장 후보로 지원했던 유명희 외교산업통상부 교섭본부장의 당선이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미국만 한국을 지원하고 유럽, 일본 그리고 중국이 나이지리아를 지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WTO 사무총장에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한국과 일본은 무역분쟁으로 WTO 에 제소를 했다. 유명희 교섭본부장이 WTO 에 가서 당찬 모습을 보여준 것은 매우 훌륭했다. 그런데 재판 당사자인 원고 한국의 유명희가 재판장이 되겠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이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 입후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게임의 룰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만 그랬을까? 아마 다른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으리고 추측 해본다.

언론들은 왜 정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이익만 떨어지면 아무런 상관도 없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일본의 식민통치도 비난할 바가 못된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조선을 제물로 삼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익이 눈앞에 보여도 지켜야할 선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지키고 감수해야할 기준과 규범이 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엄격한 도덕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지켜야 할 것은 이미 초등학교때 다 배웠다. 몰라서가 아니라 정의와 도덕을 이익을 위해 저버리거나 팔아버리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런 행동을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하고 보고 있는 것일까? 남이 하면 불률이고 내가하면 로맨스라는 행태를 우리가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유명희는 WTO에 입후보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유명희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정도 나이면 정부와 국가가 밀어준다고 해도 해서 안될일과 아닌일을 구분할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유명희가 그정도로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WTO 사무총장에서 떨어진 것이 세계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똑똑한 것과 분별력은 상당히 다른 정신적 영역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국내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가 대외관계에서도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규범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입장에 서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최근 들어서 그런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다. 촛불혁명이후 문재인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을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더 혐오한다. 권력형부정부패보다 더 혐오하는 것은 바로 세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을 미국이 끝까지 지지했다고한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는데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사회에는 공짜가 없다. 내가 지지를 받았으면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명시적으로 대가를 약속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청구서는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한 것을 보면 문재인 정권과 트럼프 정권이 어떤 관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문재인 정권은 미국에게 뭔가 단단하게 약속을 해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해준 대가로 날아들 청구서가 걱정된다.

한국전쟁 논란 유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올해 국내에서는 아무런 행사도 없었다.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하는 반성적 행사가 있었음직한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하는 정부위원회에 참가하라는 권유가 있었으나 거절했다. 애시당초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 명함만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에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 해석은 당파적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은 한국입장에서, 미국은 미국입장에서, 중국은 중국입장에서 그리고 북한은 북한입장에서 해석하고 평가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전쟁의 의미를 중국이나 북한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이고 아니고 분명히해야 한다.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왜곡되어 있으면 당파적 역사해석과 평가도 오류에 머물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전쟁의 오래된 쟁점은 남침이냐 북침이냐 하는 것이었다. 남한 내에서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이 문제는 소위 진보적 성향을 지닌 학자들이 한국전쟁을 남한이 먼저 북침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일어났다. 이런 주장은 러시아 문서고가 개방되면서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사실보다는 이념을 앞세우면서 일어난 학문적 참사였다.

스탈린과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이 공모해서 남침한 것이다. 한국내의 소위 진보적인 학자들 상당수가 북침설을 지지했는데, 러시아 문서고 개방이후 자신들이 잘못된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소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학계나 정치계나 한번 싸질러 놓고 아니면 말고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정치계는 원래 그런 곳이지만 학계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학문적 엄밀성보다는 이념적 편향성에 한국 학계가 좌우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면 솔직하게 틀렸다고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문이 발전한다. 학계가 엄밀해야 아무리 정치계가 혼탁해도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 학계는 정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마치 시민단체가 정치화된 것처럼 학계도 정치화 된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스탈린의 꾀임과 강요에 의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중국이 한국전쟁 참가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것이으므로 책임이 없다는 의미다.

중국의 한국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중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도 한국전쟁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면서 한국과의 관계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어느 수상식에서 말한 것 때문에 중국의 네티즌이 반발하면서 갑자기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변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전쟁을 이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사일이 아니다. 뭔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을 이슈화하는 것은 목하 진행중인 미중패권경쟁의 일환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이하여 그들이 미국을 이겼다는 자신감을 중국국민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보다 미국과의 갈등과 충돌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변화를 통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중국이 침략했느냐 아니냐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두고 각각의 국가가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도 중국은 한국전쟁을 역사가 아니라 현실로 보고 있다.

역사를 단순한 과거로 보면 무엇이 사실인가 주장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 있다. 중국 정부가 어떤 역사적 해석을 택하는가를 보면 그들이 어떤 정치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앞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일정하게 선으로 그으려는 것 아닌가 한다. 아마도 한국이 미중패권경쟁에서 어차피 미국의 편을 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대한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거의없다. 중국은 한국전쟁만 연구하는 학자들이 부지기수다. 솔직하게 말해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쟁점에 대해 토론하면 한국학자들이 백전백패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학자란 전통적 해석에 선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이 각각 존재하고 있는한 어쩔 수 없이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한국가의 기반은 역사학과 철학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전쟁 논란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정치군인과 정치검사

나라가 복잡하다. 다양한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정권이 그냥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남미처럼 되는 것 같다. 일부 수구꼴통들이 그대로 가면 우리도 남미가 된다는 말을 듣고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남미처럼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구꼴통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리라. 있는 놈에게 잔뜩 특혜를 주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기름 한방울까지 짜내는 것이다.

있는 사람들에게 끝없는 특혜와 혜택을 주고 없는 사람들을 짜내는 것이 수구꼴통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금만 더 가면 한국은 자연스럽게 남미가 된다. 남미가 이렇게 된 것은 강력한 노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인민들의 조직적 힘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남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과관계를 비틀어 보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수구꼴통들 때문에 우리나라도 남미처럼 될 것이라고 생가했는데 요즘 들어 남미처럼 될 수 있는 길이 하나 더 열린 것 같다. 남미의 특징은 지도층이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가진자들이 없는자들의 마지막 고혈까지 뽑아내려면 지도자들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우리가 남미로 가는 마지막 경로를 완성하고 있다. 그 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 검찰이다. 원래 검찰은 권력자와 가진자들의 저승사자여야 한다. 그런데 점차 권력자들과 가진자들의 수호천사가 되어가고 있다. 윤석열이 저항을 하고 있지만 이성윤처럼 영혼을 팔아버린 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 되어 버렸다. 역대 정권중에서 검찰이 이렇게 정치권력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후원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검찰은 심지어 전두환 정권때보다 훨씬 더 정치권력을 위해 봉사한다. 정권은 정치검사를 만든다. 그래야 검찰을 다루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눈치빠른 검사들은 잽싸게 정치검사의 길을 선택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 과정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군사정권때의 군대와 너무나 비슷하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나서 유능하고 능력있는 군인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똑똑한 군인들은 자신처럼 쿠데타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박정희 시대에 등용된 군인들은 하나같이 능력과 실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정권을 지키고 대통령만 바라보면 되는 사람들이 발탁되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 연대장을 하면서 상황이 위험하니까 자기 엉덩이를 권총을 자해해서 후송간 사람을 나중에 육군참모총장까지 시켰다. 그는 자신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거리를 활보하고 야구협회장까지 하면서 잘먹고 잘살았다.

이성윤과 일부 정치검사는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요즘 법관들 중에서 대세가 되어 있는 우리법연구회를 가만 보면 마치 전두환 정권 당시의 하나회같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모두 다 가진 것 같았다. 권력을 가지면 후안무치해지는 법이다.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의 행태가 어쩌면 그렇게 하나회하고 비슷한지 웃음이 나온다.

강력한 뒷받침만 있으면 정치권력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던 정치군인들도 한방에 날라갔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권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느꼈다. 김종필이 왜 정치를 허업이라고 했는지 알것도 같았다.

정치검사들도 당장은 자신들이 승진하니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좋은 기분 별로 오래가지 못한다. 나중에 모두 팽당하고 쓸쓸하게 잊혀진다. 원래 인간이란 모두 잊혀지는 존재다. 권력이라는 호롱불에 불나비처럼 날아들면 스스로를 태워버리게 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들이 정치군인과 정치검사다. 왜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흠짓내기 위해 안달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정치검사와 정치군인앞에 붙어 있는 정치라는 말은 그냥 너희들은 사이비란 뜻이다.

북한 핵무장과 중국의 함수관계

북한 핵무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중국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의 상황은 중국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고려해 볼 때, 현재 남북모두 힘에 의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현명하지 않다. 남한은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달성하고 그로 인한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십년동안 막대한 국방예산을 투입했으나 이제까지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달성하지 못했다.

힘으로 상대방을 압도해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합리적인 정책방향이라고 하기 어렵다. 어떤 국가도 상대방의 군사력에 압도당한채 수동적인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국민국가와 국민국가간의 전쟁에서는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핀란드와 소련이 그런 관계였을것이다. 내전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수용하는 것은 곧바로 흡수통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상대도 흡수통일 당하려고 하지 않는다.

북한도 힘에 의한 평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도 군비경쟁으로 남한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없다. 북한은 미군이 철수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일 미군이 철수하면 남한내에서도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남한을 의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으면, 남한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주권국가의 권리이다. 마치 북한이 냉전종식이후 핵무장을 결심한 것과 동일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이후 70여년이 넘도록 남북이 군비경쟁을 계속해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장도 그런 범주에서 이루어졌다.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고 중국은 북한을 버렸다. 만일 중국이 북한을 절대로 버리지 않고 끌어 안고 있었다면, 북한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핵무장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북한과 관계를 모두 차단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은 것도 소련과 동구권 몰락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중국이 지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북한은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핵무장을 한것이다. 중국은 수백만의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도 제대로된 지원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그런 중국을 잊을 수 없을 것이며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그렇게 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중국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미국의 요구도 상당부분 작용을 했을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핵을 가진 북한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직접 나서서 북한핵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나서니 미국의 협상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북한과의 관계를 차단해 나갔던 것이다. 그 결과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북한내부의 시스템이 붕괴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 조금만 지원했으면 충분히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었다. 왜 중국은 그런 절대절명의 순간에 북한을 지원하지 않았을까?

중국은 이미 북한을 다루는데 실패했다. 북한핵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중요한 것은 북한이 미국편에 붙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에 대해 압력만 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의 어정쩡한 태도는 그들이 처한 전략적인 딜레마에 기인한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북한이 핵을 가지도록 지원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북한의 핵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것은 미국보다 오히려 중국이었다. 당연하지 않는가? 그들은 북한을 몰아부쳐 고난의 행군까지 하게 했다. 중국이 북한에게 더 이상의 압력을 가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과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경제재제를 가하더라도 북한이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일 중국이 지나치게 나오면 북한이 중국으로 총부리를 돌릴지 모른다. 모택동이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고 했다. 국제관계도 <숫가락이 아닌 총부리에 의해 결정된다>.

북한핵문제를 언급하면 항상 중국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핵문제에 있어 중국의 책임을 언급하는 것은 한쪽 면은 옳고 한쪽 면은 틀리다.

만일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할때, 중국이 북한을 확실하게 지원하고 잡아주었다면 북한도 그렇게 급격하게 핵무장을 하려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북한을 내버렸고, 그로 인해 북한은 핵무장을 확고하게 결심했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은 북한이 핵무장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지원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북한이 확고하게 핵무장을 하겠다고 결정을 한 이후,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지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거의 모든 유엔의 대북재제에 동의했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은 북한의 핵무장에 책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