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막바지에

일단 지소미아는 폐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일본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지소미아를 연장시키기 위해 미국은 무지 무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

누차 이야기 했지만 일본이 입장을 누그러 뜨리지 않는 것은 그들도 중국에 맞서서 한미일 군사동맹이 굳어져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나서서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이 그렇게 해주니 고맙다고 할지 모른다.

지소미아가 북한의 미사일을 막는 아주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지소미아 100번해도 실제 군사적 대응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기술적으로 일본전역을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소미아는 여당과 야당에 따라 상이한 입장이다. 주말에 kbs 심야토론에서 한미동맹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한미동맹에 관한 주제였으나 주로 지소미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바른미래의 이혜훈, 자한의 원유철, 민주의 이석현, 민평의 정동영이 참가했다. 정치인들의 논쟁은 논점이 왔다갔다해서 상황을 파악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바른미래당의 색깔을 확인하는데 의미가 있었다.

바른미래당은 제3당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자한과 차이가 없었다. 안보나 경제나 자한과 차이가 없다면 왜 별도로 당이 존재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자한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면 자한당을 바꾸면 될 일이다.

전반적으로 두개의 주제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지소미아 연장과 미국의 방위비 요구다. 지소미아연장에 관해서는 보수 진보진영의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나 미국의 방위비 요구에 대해서는 진보보수 모두 입장이 같았다. 의외였다. 당연히 보수정당은 미국의 방위비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 옳다.

정치인들의 말은 믿기 어렵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미당의 이혜훈은 미국의 방위비 요구를 비난했지만 국회에서 방위비 요구를 비난하는 결의안에는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바미당과 자한당 모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은 국민들이 무섭지만 사실상은 국민들보다 미국의 눈치를 더 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한국정치에 미국의 영향력이 국민들의 여론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소위 보수정당이나 언론의 최근 입장도 매우 모순적이다. 조선일보는 그렇게 많은 방위비를 내느니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자주적인 언론이 일본과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선 불에 덴 아이처럼 결사 반대한다. 어마어마한 불일치다.

이혜훈은 냉전시대의 동북아 안보상황과 지금의 동북아 안보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지소미아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 것을 일부러 눈을 감고 모르는척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들은 대한민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하는 입장을 지녔다면 방위비를 많이 요구한다고 해서 핵무장을 하자는 입장을 가져서는 안된다. 서로 양립 불가능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했으면 당연히 방위비를 조금 더 내야한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인 논리적 귀결이다.

최근의 상황은 사이비 보수적 가치관이 한계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정치는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타협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철학과 가치관을 상실하면 정치의 의미를 상실한다.

오랫만에 정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국민들이 믿고 따른다.

주변에서 정부의 결정을 흔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것 같다. 정부는 굳건하게 스스로의 신념을 믿고 가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황 평가

바야흐로 미국은 우리정부에게 모든 압력을 가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위협과 압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단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지소미아를 종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대폭인상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자 가장 심각한 반대는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미국은 지소미아의 연장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이고 미국과 일본이 동맹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한미일이 동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일본도 그런점에서는 마찬가지인듯 하다. 일본이 한국을 동맹으로 받아 들이는 조건은 지금의 한미동맹과 같이 강대국대 약소국의 동맹관계일 뿐이다.

군사비밀조약은 동맹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프랑스와 러시아의 군사동맹의 핵심중의 하나가 군사비밀의 교환과 보호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의 압력이 심각해지면서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소위 보수진영이라고 하는 자들이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보수진영 중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바른미래당 계열의 정치인들에게 주목한다. 유승민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지소미아 연장을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과의 관계강화가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마 그들을 미국이 요구하는 주둔비용도 모두 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들은 정부의 지소미아 연기결정이 우리의 국익에 매우 해를 끼쳤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만일 당시에 우리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일본은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바로 수출 금지품목의 범위를 확대하고 우리 산업 전반에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일본이 비록 몇가지 품목의 수출금지를 지속하고 있지만,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다 그 종류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왜 일본이 수출금지품목을 확대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은 미국의 중재를 거부한다고 했고 미국은 일본과 한국간 중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당연히 일본에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추가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완성 바로 직전에 이런 상황에 직면했으니 곤혹스럽기가 짝이 없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봉쇄를 위한 인도 태평양 전략의 가장 중요한 고리중의 하나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미국은 한일 관계를 복원해야 하려할 것이고 이를 위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 공격이 없는 것을 우연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처음에 경제침략을 할 때, 처음의 조치만 하고 추가적인 조치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면, 그것은 너무 낙관적이다. 당연히 일본은 후속조치를 준비했을 것이나,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일 일본이 행동의 자유가 있어서 무제한적으로 한국경제를 폭격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경제는 지금 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아마 일본은 단기간에 집중적인 경제공격을 해서 한국의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 내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으로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소미아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이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입장이 미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냉전당시 소련 봉쇄에 참가한 것 처럼 중국봉쇄에 참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일본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한국정부를 윽박지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미국보다 국민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이런 굴욕적인 협정을 바라지 않고 있다.

만일 미국이 지소미아를 정말 연장해야 한다면 우리 정부는 이번 지소미아를 파기하고 다시 지소미아 협정을 맺어야 한다. 이때는 자동으로 연장하는 조항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1년이나 2년으로 협정의 종료기간을 명시하고 필요하면 추가적으로 서명해서 연장해야 한다.

미국도 지소미아를 연장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당연히 일본의 경제침략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그것은 한국민들의 자존심과 관련되는 일이다. 일본과 미국사람들은 명분보다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이익보다 명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익은 잃을 수 있다. 그러나 명분을 잃으면 안되는 것이 한국인들이다.

당연히 지소미아를 연장하려면 주한미군 주둔비의 인상과 같은 말도 안되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맺는 동맹이 무슨 동맹인가? 속국에 불과하다. 미국이 한미일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면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힘으로 윽박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과 같은 미국의 행동이 계속된다면 한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이제까지의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길것이다. 이미 지소미아 연장과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으로 한국민들은 미국에 대한 인식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처럼 힘으로 윽박지르는 미국의 태도는 동맹관계를 약화시킬 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과 협상에서 중요한 협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협상수단으로 이용하느냐 아니면 압박을 당하는 수단으로 역이용당하는가는 정부 협상대표단의 능력에 달려있다.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우리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우면 우리는 고래싸움에 끼인 새우가 된다.

그동안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로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다. 미국 중국과 동일하게 동맹관계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 경제보다 안보가 중요하니 미국과 가깝게 지내고 중국과는 거리를 두는것이 좋겠다는 주장, 이제 경제가 중요하니 중국과 관계를 더 가깝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등이 있었다.

일본은 오랫동안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이완시키려고 노력했다. 한국이 언젠가는 미국보다는 중국과 더 가깝게 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일본의 이런 노력은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미국 동북아 전략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일본중심의 안보정책을 주장했다.

지소미아와 관련해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의 역성을 드는 것도 그동안 일본이 지속적으로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 투자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에 경사될 것이라고 일본이 오도한 이유는 다 자신들의 국제정치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동북아 지역에서 오로지 일본이 미국의 진정한 동맹이라는 점을 부각해서 재무장을 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말그대로 미국과 중국사이에 끼여서 곤란한 상황이 되고 만다.

한동안 중국과 관계를 가까이 해야 한다는 주장들은 많이 들어갔다. 사드 배치이후 태도를 보건데, 앞으로 우리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중국에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한국내 분위기가 가라 앉으면서 그래도 미국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한국의 정치인, 지식인 중 많은 사람들이 미국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지소미아와 주한미군 주둔비용 요구를 보면서 미국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입장이 커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우리의 행보에 대해서 반성을 해보아야 한다. 안보와 경제를 어느 한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안보적으로 미국과 가까이 가면 갈수록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중국과의 경제적인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미국의 국제정치적 압력을 받게 된다. 정치권들은 이런 딜렘마를 어떻게 해결하고 빠져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해결책은 쉽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입장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미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를 좀더 벌릴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보는 우리스스로의 역할을 더 강화하고, 경제는 중국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번에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요구한 것은 단순한 일회성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전부터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제기했다. 이제 우리는 미국없는 안보를 준비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런 불안을 극복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남의 호의만 기대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사드배치 이후 중국의 태도를 보면서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사람들을 예전에 뗏놈이라고 불렀다. 중국에 사람이 많아서 떼로 몰려다녀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엉뚱한 어깃장을 많이 놓아서 뗏놈이라고 한단다.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떼를 쓰듯이 중국은 우리에게 떼를 많이 부렸다는 것이다. 뗏놈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녹아 있는 말이다.

해방이후 미국놈 믿지말고 소련놈에게 속지말라고 했다. 결국 믿었던 미국이 철수를 하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역량이다. 우리의 역량을 모아가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은 우리와 반대다. 그들은 안보적으로는 독립을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적이다. 한반도에서 남북으로 갈려져 있는 남북이 서로 정반대의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남북이 서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 위정자들이 이런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요즘 들어 미국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서 우리에게 과연 미국은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소미아와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는 상식의 정도를 벗어났다.

이미 여러번 지소미아 문제와 주둔비용 문제에 대해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을 구구절절 늘어 놓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미국과 미국이 바라보는 우리사이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국은 자유와 정의,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담지자였다.

요즘들어 미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동맹대 동맹의 관계가 아니다. 그저 대국 대 소국, 강대국 대 약소국의 차이다.

미국의 행동과 태도를 보면서 조선시대 중국이 우리에게 했던 행동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지 모르겠다.

지소미아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조약이다. 미국의 행동을 보면 우리는 자주적인 외교 교섭권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만일 미국에게 지소미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당연히 한국과 일본에게 모두 동등한 태도로 설득했어야 했다. 일본에게 가서는 아무말 하지 못하고 한국정부만 겁박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미국은 한국이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으면 퍼펙트 스톰을 맞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런 종류의 협박은 이미 동맹 대 동맹의 관계를 넘는 언사다. 이로써 한미동맹은 사실상 그 내용적으로 붕괴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굴복하면 주변국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 대한민국은 국가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자고 지소미아를 연장했다가 앞으로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한국은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실질적인 미국의 속국이라고 여길 것이다. 미국의 속국이라는 평판으로 세계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오히려 북한이 한반도의 주인이라는 정당성만 강화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지소미아를 연장하게 되면, 정부는 미국발 퍼펙트 스톰이 아니라 국민들의 분노에 찬 퍼펙트 스톰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의 합참의장이란 작자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올려주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 운운했다. 이것도 웃긴일이다. 주한미군이 한국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길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정상대로 하자면 우리가 미국으로 부터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받아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받아도 시원치 않은 판에 천문학적 비용을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미국이 지소미아 폐기 문제에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만일 그렇다면 미국은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했을때, 당시 장군들에게 한 말이 있다.

“임자들, 너무 붙잡지 말어. 가려면 가라 그래”

그동안 그렇게 비난했고 비판했던 박대통령의 의연한 자세와 태도가 갑자기 존경스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주한미군문제에 관한 한 적어도 박대통령 정도의 결단과 결기를 가졌기 바란다.

우리사회에는 미국에 대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냉전시대였다면 친미 혹은 종미적인 태도가 우리에게 얼마 정도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제는 무조건적인 미국 의존적 태도에서 벗어나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그런 외세 의존적인 사람들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 잘 보아 두시라. 어떤 정치인이 지소미아연장에 찬성하고 어떤 정치인들이 지소미아 연장에 반대하는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국민이 물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가치동맹이라고 해왔다. 유감스럽게도 한미는 가치동맹이라는 의미는 상실했다.

홍콩과 광주 그리고 불편함

홍콩문제를 보고 있으면 웬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홍콩에서 시위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다루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홍콩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열망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나서서 옳소하고 막상 공개적으로 지지하는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망설이게 만들었을까?

홍콩시민들의 투쟁을 보고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에서 독재와 압제에 대한 투쟁의 공감을 느끼는 것은 광주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서 홍콩시민들의 주장에 동조하기 어려운 것은 또 다른 뭔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사에 재단하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저를 그렇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는 아무래도 홍콩시민들의 운동이 과연 순수한가 하는점에서 뭔지 모르게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홍콩시민들이 범죄인 송환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을때는 저도 관심을 가지고 심정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가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대부분 참가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시위를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다. 시위가 본격적으로 벌어질때 미국의 대사관 직원과 시위지도부가 협의를 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때 미국 대사관 직원은 보통의 외교관이 아니라 정보요원이었을 것이다.

최근의 전쟁을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한다. 하이브리드란 혼합한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방법과 비군사적인 방법을 혼합해서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때 미국 정보요원이 개입한 것을 보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하이브리드 전을 수행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민들의 동기와 생각이 순수하더라도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면 그 방향은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기 마련이다.

홍콩의 시위가 순수하다고 보았다면 중국 당국의 대응도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보이고 있는 강경한 대응과 태도는 중국이 홍콩시위를 시민들의 순수한 민주적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심해지면 중국은 천안문 사태와 같은 방식의 해결을 시도할 것이다. 중국은 대륙이고 큰 나라다. 가장 큰 문제는 통합이다. 중국은 홍콩에서 양보하면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신강과 티베트 문제는 섶에 불을 붙이듯이 타오를 수 있다. 중국이 강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더구나 중국은 홍콩사태를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패권경쟁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광주의 경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홍콩문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 인권 등의 가치는 국민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확보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나의 자유와 인권은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한때 미국이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면서 세계정치를 좌지우지 한적이 있었다. 그때 미국이 보편적 가치를 주장한 것은 가치 그 자체보다도 그런 주장을 통해 다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가 중요했다면 냉전이후에도 인권과 자유는 계속 미국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이 인권과 자유를 내세우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우리가 누리는 인권과 자유는 부르주아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따라서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마련이다.

국가와 국가간에는 이해관계밖에 없다.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그에 따른 반사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본질이다.

제가 홍콩문제를 보면서 아쉬워하면서도 섯불리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홍콩문제는 홍콩시민들이 해결해야 한다. 외부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광주도 그랬다. 광주의 봉기과정에 그 어떤 외부세력도 지원을 하지 않았다.

홍콩시위를 보면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다. 섯부르게 나섰다가 중국에게 보복을 당하면 그건 또 무슨 꼴이 되겠는가?

그리스 독립전쟁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달려갔던 것은 순수함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시위는 여러가지면에서 광주와 다르다. 다름과 같음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콩시민들의 시위를 보면서 미국과 중국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런가?

서울대학생들이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과연 현명한 짓인지 잘 모르겠다. 홍콩시민들을 지지하는 것보다 우선 지금도 전혀 개선되지 않은 비정규직의 안전문제에 관심을 더 쏟아아 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한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가 왜 아직까지 정부가 약속을 안지키느냐고 오열하는 것을 보았다. 왜 사람들은 정장 우리 사회의 문제에는 그토록 무관심한지 모르겠다.

어떤 가치나 의미도 국민국가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미중 무역협상, 비정상적인 미국의 태도와 그 의미

미중무역협상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1단계 무역협상의 결과로 미중이 서로 무역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합의했다고 11월 2일 중국 상무국 대변인이 발표했다.

얼마 있다가 미국 백악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나왔다. 백악관에서 무역 제조업을 담당하는 나바로 국장이 단계적 관세철폐에 반대했고 외부자문위원들도 이에 동조하면서 미국내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뭐가 뭔지 이해하기 어려운 트윗을 날리고 있다. 관세철폐에 합의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닌것이라는 말이다.

지금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이제까지 미국이 대외정책을 수행하면서 백악관내 국장급이 반대해서 흔들거리는 모습을 본적은 없다. 제1단계 협상안은 트럼프가 승인을 했고, 서명직전에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제조업 국장이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 대통령의 참모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한 참모와 각료들은 거의 예외없이 바로 사표를 제출하거나 축출되었다. 물론 그렇게 반대한 참모와 각료들은 대부분 장관급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우리로 치면 청와대 수석 비서관 정도되는 참모가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트럼프가 피터 나바로를 제압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크게 금융자본, 산업자본, 석유자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농업자본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아들 부시는 석유자본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석유의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 금융자본은 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오바마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것이다.

트럼프는 산업자본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트럼프는 산업자본 이외에도 석유자본 그리고 농업자본등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 등장이후 국무장관들이 석유회사의 임원들로 채워진 것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한 가장 강력한 세력은 산업자본인데, 그것은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주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본들의 이익은 서로 대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금융자본은 세계화를 선호하고 산업자본들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요구한다. 이익을 얻는 분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백악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견 충돌은 바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들의 충돌이라고 보면,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블룸버그가 나섰다. 이제까지 금융자본들은 앞에 사람을 내세우고 그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블룸버그가 직접 앞에 나섰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미국 금융자본들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각 부문별로 이해관계가 상충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현상은 과거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 결국 중국의 패권추격을 받으면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들이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결국 패권국가들은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상황으로 간다. 그리고 서서히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패권을 내어주는 경향이 많았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한 것은 다시 국가의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면 불가피하게 세계의 패권적 지위를 어느정도 내어 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유일 패권체제에서 다극적 세계로 변화해야 가능한 이야기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고 산업경쟁력도 그대로 다 유지할 수는 없다. 아마도 그런 것은 전세계가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나 가능할 것이다.

미국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지금 바로 세계패권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내부 정리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패권국가는 항상 도전을 받는다.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다. 유럽도 재기를 노리고 있다. 중국과 유럽이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차기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는가에 따라서 전체적인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앞으로 미 대선까지 1년동안 세계 국제정치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는 미국은 북한핵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응조치도 내놓지 못할 것이다.

북한이 연말까지 시한을 거듭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그때까지 협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연말까지 시한을 준 것은 다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변화는 항상 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극대화시키는 계기를 북한과 이란이 제공할지도 모른다. 내년 1년은 북한과 이란의 해가 될 수도 있다. 만일 북한이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승인해 버리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유럽이 미국을 배제하고 직접 이란과 협상을 실시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아마도 중국과 러시아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나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국제체제를 붕괴시켜가 자신들의 입지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과 북한은 기존의 후원-피후원의 관계를 넘어 서로 대등한 전략적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이라고 하는 것이 북중간 대등한 전략적 동맹관계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침에 커피 한잔을 놓고 이렇게 횡설수설했다. 좀 더 상황을 두고 보아야 겠다.

강력한 한미동맹의 의미

한국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강력한 한미동맹을 주장한다. 특히 미국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는 것 같다. 물론,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한미관계 만큼이나 한일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한미동맹주의자들은 우리의 안보가 불안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미관계가 굳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중앙일보 11월 6일자에 고려대 국제관계대학원장으로 외교부 차관을 역임했던 김성한 교수가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다.

“미중무역분쟁이 전략경쟁의 형태로 비화한 가운데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잠재적 적대국’으로 간주한다. 한미일 안보협력태세가 견고하다면 중국이 한국을 회색지대 전략의 대상으로 올리지 못할 것이다”

김성한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한미일 안보협력태세가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의 글을 썼다. 과연 그럴까?

김성한 교수의 글을 좀 더 생각해보자. 먼저 지금의 미중패권 경쟁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중패권을 미중무역분쟁의 확대라고 볼 수 있을까? 미국이 중국과 본격적인 패권경쟁으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무역분쟁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는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의 본질을 분명하게 파악해야 우리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받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약하거나 한미일 관계가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옳은 말이다.

한미일이 군사적으로 아무리 긴밀하게 협력을 하더라도 미중 패권경쟁의 일환으로 시도하는 중국의 도전을 차단하기 어렵다. 중국은 경제력이 커지면서 군사력도 점차 강화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한미관계를 강화한다하더라도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 대신 응징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이 한국을 위협하더라도 함부로 나서기 어렵다. 한국을 보호하려다가 잘못해서 중국과 직접 싸울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미국이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 대응하더라도 중국의 한국에 대한 위협이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기도 하다.

냉전당시에 우리는 소련 봉쇄의 최첨단기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소련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아무런 경제관계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 대외교역의 약 60%이상이 중국 및 화교들이다. 한미일이 안보태세를 강화해서 중국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 한중간 경제관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1990년대 이전의 사고 방식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중국을 봉쇄하는데 참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와 지위 그리고 입장이 아니다. 미국과도 잘 지내고 중국과도 적이 되면 안된다. 한미동맹주의자들은 우리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미국의 첨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일본이 예상과 달리 지소미아 연장에 다소 유보적인 이유중의 하나도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인지 모른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일본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무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국과 적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때 김성한 교수의 주장처럼 한미일의 확고한 안보태세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차단하고 막아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아마도 1990년 전 냉전시대였으면 가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미동맹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강력한 한미관계 혹은 한미일 관계가 무엇을 의미할까 ?

통상 강력한 한미동맹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것이 강력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주장과 요구를 잘 들어준다고 강력한 동맹이 형성되지 않는다. 지금 미국은 우리정부에게 지소미아 폐기 결정을 번복하고 6조원의 주한미군 주둔비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이 요구하는 것처럼 지소미아 폐기결정을 번복하고 6조원의 주둔비를 지불하며, 추가적으로 사드를 배치하면 한미동맹관계가 강력해질까?

강력한 한미동맹관계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다들어 줄때인가? 아니면 전작권 전환을 포기하고 군사주권을 미군에게 맡기는 것을 의미하는가? 강력한 한미동맹관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가만히 들어보면 한국이 미국의 한개 주로 편입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동맹이라는 분명한 선이 있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보호해주면 한국은 미국의 입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소위 국제정치학자들이 말하는 후원과 피후원의 모델이다.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확고하게 지원해야 한다. 정상적인 후원-피후원의 관계라면 한국은 미국으로 부터 안보를 제공받고 일정부분 우리의 주권적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감수한다.

여기서 확고한 안보를 빌미로 주둔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후원자의 바람직한 행동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에게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면, 교과서적인 의미에서, 미국은 한국에 개입할 수 있는 후원자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 맞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안보위협은 한미동맹의 출발점이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의 수준을 넘고 있다. 지금의 안보위협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미중간 패권경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지금처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한미동맹관계를 유지하려면 한국의 기여보다 당연히 미국의 기여가 더 많아야 한다. 즉 미국은 미중패권경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많은 기여를 하고 한국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김성한 교수는 확고한 한미관계를 한국이 아닌 미국에 요구해야 옳은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더 이상 한국전쟁 당시의 헐벗고 못하는 국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 국가의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관계를 가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한국은 지금의 상황에 맞는 주장을 해야 한다. 서양은 계약의 사회 아닌가? 우리가 주장하는 바를 명확하게 주장하고 받아낼것은 받아내야 한다. 물론 공평한 협상을 했으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

강력한 한미관계는 그런 공평한 협상을 통해 상호 최대의 이해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자식이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 처럼 미국을 모시는 것이 강력한 한미동맹을 의미하지 않는다.

김성한 교수는 한미일을 이야기 했다. 한미는 상기한 관계지만 한미가 한미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또다른 요인들이 작동한다. 역사의 유산이다. 한미관계에서 한미일관계로 넓혀가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역사적 유산을 그냥 현재의 이해관계로 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일관계는 그리 단순하게 접근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주류 지식인들이나 외교관들이 생각하는 한미동맹이 우리 안보를 보장하는 지고의 가치라는 주장은, 지금의 안보상황에서 볼 때 허구나 마찬가지다.

뭔가 이상한 북한의 분석과 행동

최근들어 북한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이전에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최근들어 북한의 전략가들이 하는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

첫번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조의문과 초대형방사포 실험이다. 북한은 문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했던 북한이었다.

한국정부가 외세의존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월드컵 축구 예선대회도 유례없는 방식으로 치루었다. 북한이 한국 국민들에 대한 인식을 고려했으면 민간교류와 한국정부에 대한 비난은 구분했을 것이다. 북한의 그런 행동은 한국국민들에게 북한이 예측할 수 없으며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는 인식만 강화시킬 뿐이다.

조의문과 방사포 실험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에 대한 조문을 했으면 적어도 상중에는 초대형 방사포 실험같은 것은 하는 법이 아니다. 그런 실험을 할 것같으면 조문을 보낼 필요도 없는 법이다. 북한의 그런 행동은 한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내세우던 정의당도 북한의 이런 행동에 비난을 했다. 북한의 행동이 모친상을 당한 사람에게 할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결을 하더라도 지켜야할 선은 있는 법이다.

아마도 북한은 문대통령에 대한 조의문과 초대형방사포 실험은 각각 다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조문은 남한에 대한 것이고 초대형방사포 실험은 미국을 지향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한에 대한 예의는 갖추었으니 그것으로 됐고, 미국에 대해서는 압박을 계속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국민이 북한의 행동에 분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효과를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것은 북한의 전략가 그룹들의 판단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 할 말없다. 그럴 것 같으면 조의문도 보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서초동의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광화문에서 조국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집회는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한국사회의 분위기나 변화를 매우 면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을 간혹보면 그 분석내용에 혀를 내두를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들어 북한의 한국에 대한 분석에 뭔가 이상한 점이 보인다.

한국사회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기존의 진보 보수 정치구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국사건이후 민주당내에서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비록 총선을 앞두고 있지만 집권한지 절반도 안되어서 여당에 지금같은 동요가 생긴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조국사태에도 불구하고 자한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 않다. 과거에는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정상적인 분석가라면 무조건 서초동을 지지하고 광화문을 비난하는 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하지는 않는다. 그럼 왜 이런 합리적인 분석과정이 북한내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쉽게 생각하기에는 현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이용해서 자한당이 총선에서 세력을 확대해 나가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 정치의 변화과정을 조금만 면밀하게 보았다면 그런 판단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한당은 정상적인 정당으로서의 역량과 능력을 상실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그야말로 민주적인 정당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의 정도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오히려 자한당 보다 더 낮은 수준인 듯하다. 이름만 민주당이다. 게다가 지난 총선부터 국민들은 제3세력을 수면위에 떠 올렸다. 비록 이번 국회에서 제3세력으로 등장한 정당들이 강력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국회를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바꿔온 것은 사실이다.

총선이 앞으로 6개월 남은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정치의 역동성을 이렇게 단순하게 읽고 있다면 앞으로 북한의 대한국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 북한이 한국정치를 양당정치의 극단적인 싸움으로 몰아가고 싶어서 서초동과 광화문의 이분법적 접근을 한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 북한이 단 한번이라도 우리 국민들의 선택과 결정을 바꿔본적이 있는가?

가장 현명한 분석과 전략은 한국국민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것인가를 잘 전망하고 그에 맞추어가는 것이다. 최근의 몇몇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보면서 북한의 분석가와 전략가들의 날카로움이 과거 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중동문제와 미국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는 비용은 매우 비싸다. 그러나 그렇게 패권을 유지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거두어 들이는 댓가 또한 엄청나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포기하고 고립주의로 갈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패권을 유지하는 비용과 그로 인한 댓가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은 패권유지비용과 그로 인한 댓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 하다.

미국의 문제는 미국이 패권으로 거두어 들이는 이익을 미국내에서 제대로 나누어주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미국이 패권유지의 과실을 미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제대로 나누어 줄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패권유지를 위한 비용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결국 트럼트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고 있지만 그것은 국내에서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고 그것을 해외로 확대시킨 것에 불과하다. 외국으로 부터 더 많은 몫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정도가 지나치면 패권유지가 위협을 받는다. 지금 미국은 그런 상황이다.

미국의 패권은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통해 유지된다.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상적 모든 역량들이 패권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중가장 강력한 것은 경제적 군사적인 역량일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달러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달러의 패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매우 어렵다. 과거처럼 금본위제도라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 달러는 금본위제도가 아니다. 그런 달러가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축통화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사우디가 원유가격을 달러로 받기 때문이다.

원유를 사려면 모든 국가들은 달러를 보유해야 했고 그래서 달러가 지금과 같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중동정세는 미국이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사우디가 예멘 반군의 공격을 받는 것은 사우디 문제가 아니다. 곧바로 달러의 지위문제와 연결된다. 미국이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선언한 것은 그것이 미국의 패권적 지위유지에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미국의 에너지 수급때문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세일가스 개발로 원유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전략가들은 미국이 중동의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세일가스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일가스를 중심으로 미국은 자신들과 가까운 영국, 일본, 호주 등등과 폐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중동지역은 중국과 러시아가 장악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는 지금과 상당하게 달라지게 된다. 러시아가 미국이 시리아를 떠난다고 하고나서 조금씩 조금씩 그 빈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이유이다. 러시아는 기름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다. 기름이 부족해서 중동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더 이상 원유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세일가스 덕분이다. 그러나 만일 중동지역으로부터 원유수송로를 안전하게 확보하지 않으면 달러의 기축통화유지가 어렵게 된다.

미국이 이란 문제를 들어 연합함대를 편성하고자 하는 이유도 달러의 기축통화유지 비용을 원유수입국들에게 분산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투입하는 군사력 운용비용을 줄이는 대신 이를 동맹국의 군사력으로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게 이루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패권으로 댓가를 챙기는 국가가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면 더 이상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한국에서 주한비군 주둔비용을 6조원 가량 달라고 하는 요구는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 축소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탐대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사우디도 원유를 달러이외의 화폐로 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에게 미국은 과거에는 체제의 보호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에너지의 경쟁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일가스는 미국에게 축복일수 있다. 그러나 세계패권유지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은 힘의 공백은 곧바로 메꾸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리아에서 미국의 철군은 곧바로 러시아의 팽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사우디의 중요성을 조금 낮추는 그 사이로 이란이 치고 들어오고 있다. 예멘과 이란 그 뒤에는 누가 있을까 ?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소동을 겪는 것도 모두 이런 일련의 사건과 관계가 있지 않나 추측해본다.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것으로 미국이 잘 되는 방향으로 나가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적인 규모에서의 영향력 축소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쿠르드에서 한국을 보았다.

중동지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는 중동지역을 거대한 단일지역으로 본다. 중동지역을 하나로 보게 하는 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다.

그러나 중동지역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종교적으로도 이슬람은 수니와 시아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계속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인종적 언어적으로도 다르다. 이란은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란 문명은 그리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적어도 문명에 있어서 이란은 그리스보다 앞선다. 그런점에서 시리아와 이라크 그리고 이집트같은 국가들은 인류문명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사막한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슬람이라는 아주 얊은 덥개 하나로 중동을 모두 싸잡아 보지만, 조금만 들어가보면 각자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중동지역을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경험이다.

중동지역을 하나의 동일한 지역으로 규정하려 한다면 가장 공통적인 것이 종교가 아닌 과거의 경험, 즉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지금 중동이 겪고 있는 현상은 제국주의 지배의 후유증에 다름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때 인류문화에서 가장 앞섰던 지역들이 모두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한 것이다. 그런 피지배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중동을 동일한 하나의 집단으로 보게 만든 것이다. 터키는 그런 점에서 다른 중동지역과 차이가 있다. 터키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역사내내 유럽의 국제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의 외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세력균형을 이야기하면서 그 구성요소로 5개국가를 언급한다. 즉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 오스트리아다. 그러나 중세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터키는 유럽의 국제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력이었다.

유럽외교사의 기틀을 잡은 랑케는 유럽을 그리스 로마적 문명의 연속으로 파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터키는 유럽의 외교사에서 빠져버렸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를 빼고 어떻게 유럽의 외교사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력균형은 5개국가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평가도 지극히 유럽 일방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책을 읽어보면서 흔히들 너무나 당연한 상식처럼 이야기하는 세력균형과 5개국론이 어쩌면 편견의 산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르드 족은 영웅적인 역사를 지닌 비운의 민족이다. 십자군 전쟁때 유럽의 침입을 막아낸 것은 쿠르드의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떠돌고 있다. 유대민족보다 더 강인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쿠르드 족이다. 그들의 인내와 끈질김이 경의롭다.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 연민을 느낀다.

미국이 터키의 쿠르드 족 침공에 대해 오불관언하다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미국은 지금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군인들이 동맹인 쿠르드를 터키가 침공한 것을 허용했다고 해서 들고 일어난 모양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어가보면 그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터키야 말로 미국의 진짜 동맹이다. 터키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오는 것을 막아내는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말을 바로하자면 지금 터키와 쿠르드는 미국의 큰 동맹국과 작은 동맹국간의 싸움이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당연히 큰 동맹국의 편에 섰다. 그러나 비난이 거세지니까 쿠르드 편을 조금 드는 것 같을 뿐이다.

쿠르드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터키의 쿠르드 공격은 미국의 또 다른 동맹국이 공격해오면 미국도 꺼벙하게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쿠르드에서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면 국제정치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터키는 일본과 비슷하고 쿠르드는 한국과 비슷하다. 둘도 강한 동맹과 약한 동맹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터키의 쿠르드 공격에 대해 미국이 터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터키가 기존의 일방적인 미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러시아와 손을 잡을 것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서 미국은 터키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한국 경제침략을 손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 터키와 쿠르드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미국은 더 강한 일본에 의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작은 동맹의 이익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국가가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하나로 단합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둘다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국민들이 해야 한다. 정치에 그만 쓸려다니고 사실을 직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