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의 구속, 미국 대외정책에 도전한 대가

23일자 조선일보 신문에 “다나카 前일본총리, 美키신저 때문에 몰락”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의 언론인인 하루나 미키오가 쓴 책의 내용을 마이니찌가 22일 소개를 했고 이를 조선일보에서 다시 소개한 것이다.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은 2차대전이후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76년 록히드 사건으로 검찰에 구속되었는데 그 배경에 키신저가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이 중국과 수교를 하기도 전에 다나카가 먼저 중국과 수교를 했다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전후 최고의 정치인이었던 다나카가 헨리 키신저의 괘심죄에 걸려 구속되고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것이다.

하루나 미키오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미루어 짐작해야 할 것은 미국이 자신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동맹국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이 일본의 전직 수상을 감옥에 보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내정간섭이라고 하면서 비분 강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였으면 아마도 반미자주의 목소리가 높았을 것이다.

비분강개하기 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것이 바로 국제정치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정의와 도덕 윤리는 국가의 범위안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는 윤리와 도덕 그리고 상식같은 것은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의 행동이 일반적인 패권국가의 행동방식이라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국가간의 관계에서 도덕과 윤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물론 도덕이니 인권이니 하는 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아무리 고상한 이념과 당연한 도덕도 자신의 이익을 손상시키면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최강의 패권국가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무조건 한미동맹 최고라는 주장도, 반미자주만 소리 높이 외치는 것도 다 옳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런 양극단의 주장으로 갈려있다. 국민들이 그 정도 수준이면 우리는 미국과 제대로 상대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정세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그 범위를 계속 넓혀 나가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나 미키오의 책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자신의 대외정책에 혼선을 가져오는 정권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그런점은 여러번 언급한 적이 있다. 막연하게 짐작했지만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충격이다.

우리가 어떤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지, 이는 순전히 국민들의 수준에 달려있다

문정인과 바이든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

문정인이 한계레에 북핵문제에 대한 칼럼을 썼다. 칼럼의 개략적인 내용은 북한의 비핵화를 가능한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정부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북한을 봉쇄와 압박일변도로 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래서 칼럼의 제목도 <바이든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와 우려>다.

한국과 미국간에 커다란 괴리를 찾아 볼 수 있는 칼럼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하고 한국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느냐 아니냐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생각이란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의지가 있느냐 혹은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북한이 온갓희생을 다해서 이룩한 핵무력을 그냥 포기할 이유는 없다.

특히 북한의 핵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향해서도 중요한 전략적 강압의 수단이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핵을 없앨 수 없다. 중국 때문이다. 심지어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조차도 북중관계를 한미관계와 등치하는 우를 범한다. 북중관계는 결코 한미관계와 같지 않다. 북한은 중국이 북중관계를 순망치한이라고 하면 모욕감을 느낀다. 북한은 중국을 가장 위협적인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의지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문정인은 북한의 비핵화의지가 없다고 하면 외교의 영역이 사라진다고 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외교의 영역은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을 무시하고 부정할 때 외교는 코미디가 될 뿐이다.

미국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된 정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죽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두가지다. 첫째는 핵을 포기하도록 지속적으로 강압해서 굴복시키는 것이다. 중국과 손을 잡아서 북한의 목을 졸라 매서 항복을 받아 내는 일이다. 두번째는 북한의 핵이 미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의 핵이 미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 바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턱밑에 핵무기가 있지만 이것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이 미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핵문제에 대해 한 정책을 구상하면서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목표다.

북한문제를 다룰 때 미국이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핵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과 패권경쟁에서 결정적인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북한과 중국을 분리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실패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 1나라만 중국과 분리시키면 다른 그 어떤 동맹국과의 관계강화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은 점차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더 이상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때 중국과 소원한 관계였던 북한이 중국과 관계를 가깝게 가져가는 것도 결국은 미국의 비현실적 정책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이 미국에게 북한이 비핵화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는것은 미국이 정상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친일의 길에 들어선 문재인

정의용이 미국에 한일관계 걔선을 지원하는 발언을 했다. 문재인은 여당에게 한미일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자신의 정체성과 역행하는 이런 행보를 하는 것은 순전히 미국 때문이다. 여러번에 걸쳐 바이든 행정부는 자신의 정책과 역행하는 문재인 정권의 연장을 바라지 않을 것이란 언급을 했다.

미국부부 동아태부차관보 박정현은 문재인 정권을 독재라고 비판했다. 상원외교위원장 예정자는 문재인을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문재인 정권은 아마도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분위기에 맞서기 위해서 중국을 이용하고 한 것 같다. 바이든과 통화를 하기도 전에 시진핑과 통화를 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어리석은 문재인은 한국이 마치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는 것 처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마치 북한이 중국과 소련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했던 것을 떠올린지 모른다.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소련사이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북한내부의 권력을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적 정치환경보다 국내 정치에 대한 통제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은 북한의 등거리 외교를 흉내내고자 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문재인이 권력을 잡고 나서 적폐청산한다고 칼춤을 추지 말고 국내정치세력을 통합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모아갔으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국민을 좌우 상하로 나누면서 절반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그 결과 국민들의 의지를 결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대깨문이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아무리 뛰어다녀도 국민의 절반은 철저하게 문재인을 저주하고 비난한다.

국내에서의 통합된 지지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에 맞선다는 것은 우스운 일일 뿐이다.

결국 문재인은 한미일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에 항복한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미국이 문재인의 항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중국은 문재인의 변심을 즉각 알아챘다. 2월 17일 중앙일보에서 보도한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 국제문제연구원이 지난달 내놓은 ‘2021년 국제 전략 보고서: 위기 국면과 새로운 국면(危局與新局)’에 담긴 한국 외교에 대한 혹독한 평가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중국은 문재인을 더 이상 가능성 없는 정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은 중국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미국에게 대항하기 위한 버팀목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세상은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계 패권국가도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집요하게 일을 꾸며나간다. 우리같은 나라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문재인은 일본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다 스텝이 꼬였다. 일본 문제만 그런가, 북한문제도 그렇다.

남북화해협력과 일본에 대한 강력한 태도를 기조로 했던 문재인은 이제 다시 없는 반북정권이자 친일정권으로 변모하고 있다.

문재인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없는 친일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권력을 내놓고 그냥 물러나서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안이다.

조선일보와 양상훈 비판

아침에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을 읽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란 사람이 겨우 이정도 시대인식과 문제의식 밖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서글펐다. 국가의 운명은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에 의해서 좌우된다.

양상훈의 이야기는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경사되어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과 같은 입장인 일본에 대드는 것은 미국에 저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중국중에서 어디를 선택해야하는가 할때, 중국을 선택하겠다고 할 수 있는 정권은 없다. 미국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상수이다.

문재인 정권을 미워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친중 정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떤 정권보다 친미적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의 조야에서 비난을 받는 것은 그들이 트럼프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강대국 국내정치의 변화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이 한참 진행될 때, 김어준은 방송에서 대놓고 바이든을 비난하고 트럼프를 지지했다.

지금 문재인이 미국의 조야에서 위기에 처한 것은 중국 편을 들고 북한 편을 들어서가 아니다. 문재인이 곤란한 처지에 처한 것은 주재넘게 미국의 국내정치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트럼프 정권의 충실한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만일 문재인이 확실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곤란한 처지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조선일보가 문재인을 비난하는 방식은 옳지 못하다. 아무리 미국이 절대적인 상수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가기 위해서는 냉철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것 처럼 한국의 정치가 중국을 완전하게 배제하고 미국 일변도로 가면 한국의 이익에 부합할 것 같은가? 우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라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영향을 받는다. 두 강대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조선일보는 한국이 중국의 경제보복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일변도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심지어 미국도 중국과 경제관계를 완전하게 배제하지 못한다. 한국은 더말할 나위가 없다. 박근혜 정권이후 문재인 정권들어서도 사드배치가 계속되는 것을 양상훈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문재인 정권의 대일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를 국내정치적 지지 확대의 수단으로 삼은 것은 문재인 최대의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베가 보여준 일본의 수구적 입장에 머리를 수그리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본과는 철저하게 비지니스적 실용적 관계를 맺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일본과는 그 어떠한 동맹조약도 맺지 않았다. 미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다고 해서 한국이 일본과 자동적으로 동맹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한국을 일본의 하위 동맹체제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동맹이란 동등한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의 하위동맹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런 미국의 요구에 동의하는가 ? 그렇다면 양상훈과 조선일보는 을사오적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

한미일 3각동맹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최소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한국이 식민지국가 같은 위치를 해서 일본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나는 단연코 그런 한미일 3각관계에 반대한다.

남북관계의 해결이 한미일 3각관계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남북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서는 한국이 일본과 대응한 관계를 맺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한미일 3각 관계는 물론 미국의 대중국 패권경쟁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양상훈처럼 세상을 보는 것은 또다른 대깨문적 시각의 연장일 뿐이다. 아무리 정권타도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무너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조선일보가 친일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적의 적은 동지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을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정권을 적으로 삼고 있는 조선일보가 내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밉다고 나라를 팔면 안된다. 조선일보와 양상훈은 그 경계선을 넘었다.

조선일보를 탄핵한다.

토착왜구가 되어가는 문재인 정권, 문제는 북미관계다.

2월 15일자 동아일보에 주목할만한 기사가 실렸다. 문재인 정권의 고위 관계자가 남북관계보다 한일관계를 우선시 한다고 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한일관계를 남북관계보다 우선시한다는 것은 정체성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문재인 정권이 뭔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우리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고조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그런 태도를 180도로 바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태도변화를 지적하기 전에 김종인이 한일 해저터널 이야기를 한 것도 여사롭지 않다는 점을 이미 지적한 것을 상기했으면 한다.

문재인과 김종인이 갑자기 일본과의 관계를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냥 우연이라고만 하기에는 이상하다.

문재인과 김종인 양자가 한일관계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되는 계기가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과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이든 정권은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여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이 한국에게 일본말을 잘 들으라고 강요를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의용과 블링컨이 12일 통화에서 한미일 관계 강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그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문재인은 그동안 토착왜구니 뭐니 하면서 일본에 머리털을 거꾸로 세우다가 지금와서 꼬리를 내리고 순한 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정체성을 포기하고 갑자기 꼬리를 내린 것은 여사일이 아니다.

그동안 바이든이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위해 문재인 정권을 퇴출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특히 바이든과 통화하기전에 시진핑과 통화를 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라고 생각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봉쇄망을 구축하는데 문재인 정권을 장애물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은 시덥지 않게 바이든을 견제한다고 중국카드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나마 중국카드를 쓴 것이 아니라 중국에 이용당하고 말았을 뿐이지만 말이다.

문재인이 한일관계가 남북관계보다 중요하다고 한 이상,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문재인은 일본의 마음에 들기위해 별의별 아양을 다 떨것이고 그동안 최악의 친일세력들도 하지 못했던 양보를 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이 이제 토착왜구가 되는 것이다.

두고보면 서서히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생존본능밖에 없는 것들이라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원래 한일관계는 미묘하다. 일본은 우리가 주장하는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힘에 의해서만 굴복하는 나라다. 우리가 일본에게 당당하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힘을 키워서 대등한 위치에 서지 않으면 일본은 우리를 자신들의 영원한 속국으로 생각할 따름이다. 일본의 주류 정치인에게 한번 식민지는 영원한 식민지일 뿐이다.

한일관계의 이런 비대칭성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게도 좋지 않다. 거인이 되어 성큼 다가오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 한일은 대등하게 협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힘이 커야 한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어떤 경우도 일본을 넘어 설 수 없다.

결국 남북의 화해협력은 한민족의 생존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안정에도 너무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런 메카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을 적으로만 돌리려 하는 것이다. 일본은 동북아지역에서의 알량한 지배적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엄청 커진 중국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도 눈을 감고 있다.

결국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발전은 남북관계의 발전과 화해협력이 이루어져야 가능할 뿐이다. 남과 북이 서로 어르렁대고 있으면 둘다 망한다. 결국 미국이 북한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미중 패권경쟁에도 먹구름이 낄 뿐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이유

우리처럼 주변의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나라는 국제정치의 변화를 관심있게 바라 보아야 한다. 특히 세계정치를 좌우하는 미국의 움직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와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대외정책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 전반적인 방향을 언급하면서도 북한문제는 쏙 빼 놓았다.

이를 두고 소위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미국이 북한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진단을 내 놓기도 했다. 북한을 무시했던 오바마 행정부 처럼 바이든 행정부도 그런 정책의 연속선상에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한편, 미국의 조야에서는 동맹국과 협조해서 북한을 계속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이 북한과 적극적인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은 정의용의 외교부장관 청문회 발언에 대한 반박으로 더욱 굳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미국이 12일 국무부 대변인이 북한 문제를 시급한 우선순위라고 언급했다. 북한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표명은 앞으로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미국무부 대변인이 북한 문제를 시급한 우선순위라고 한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지금 미국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정하는 분수령에 있는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이제까지 미국이 주도했던 북핵정책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94년 AF에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국은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가 핵무기의 재료가 될 수 있다며 KEDO를 파기했다. 아마도 미국이 경수로는 문제가 되니 다른 방식으로 북한에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부시행정부 들어서는 대북정책재검토라고 하면서 지금처럼 북한에 강압 일변도의 정책을 구사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저항한 것도 그때부터이다. 오바마행정부는 가장 무력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북한은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거리로 하는 ICBM를 개발하고 무장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부시행정부의 강압정책과 오바마 행정부의 북한 너 마음대로 해봐 정책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면, 북한문제를 발전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기대는 불가능하다. 실패했던 행동을 계속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북핵문제는 단순하게 비확산정책의 범주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미중 패권 경쟁에서 북한이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의미를 재검토해야 한다.

만일 오바마 행정부때 미국이 북한을 끌어 들였다면 미중패권 경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지금, 북한은 미국의 원군이 될 수도 있었다.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한 지금, 미국은 북한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우군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북한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특별하게 얻을 것도 없는데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중국을 견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중국일변도도 가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성과라도 얻으려면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그런 정도까지는 생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대화를 주장하는 문재인 정권과 일정한 선을 긋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새로운 대북정책을 적어도 문재인 정권과 같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다소 왔다 갔다하는 대북정책방향은, 문재인 정권과 대북정책을 손잡고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작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다고 한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와 손을 잡았던 문재인 정권과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한일 정책이 걱정된다.

향후 미국의 대한일 문제에 대한 향방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중국에 대응하려고 하고 있다.

한미일 3각체제를 구축하고 강화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한일관계다. 11일자 미국의 소리 방송에 나온 미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의 이야기는 한일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한국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식의 분위기인 것 같다.

앞으로 한일관계가 우려된다. 한일관계는 1960년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할 때와 2020년대 지금의 상황이 같은 수 없다. 당시 한국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최약소국이었고 지금의 한국은 10대 경제대국에 속한다.

외교관계는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움직인다. 미국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한국의 국력성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주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한국에게 일본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하는 이유다.

국내의 소위 일본전문가들도 미국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일관계가 중요하니 우리가 기분나쁘고 손해보더라도 일본의 입장을 더 고려해야한다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권이 주장하는 토착왜구 주장이 먹히는 이유도 기존의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찾지 않았던 박근혜 정권을 위시한 <국민의 힘>세력이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무감각과 무관심 때문이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 없다. 오히려 문화적인 우월감을 지니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일본이 우리를 앞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이들은 거기에 위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적 변화를 무시하고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한국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몰아가면 다시 한번 국민들의 저항과 반발심에 부딪칠 것이다.

한일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동북아지역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긴밀한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거대한 중국에 대항하고 민족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국만 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본도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문제는 일본이 한국과 대응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과 발전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일본이 한국을 상호 대응한 관계로 받아 들여야 한다.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후 수출금지 보복을 했을 때, 즉각 지소미아 파기를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걱정하면서 지소미아를 파기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소미아 파기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이번이 한일관계를 대응하게 가져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당시에 우리가 지소미아를 파기한다고 결정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 일본의 경제적 보복은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이후 일본이 추가제제를 하지 않은 것은 미국이 강력하게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앞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키려 한다면 한국보다 일본의 입장과 태도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이 한일관계를 정권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다. 반일을 통해서 정권의 반대급부를 노리는 것은 저열하다. 그래서 토착왜구니 뭐니 하는 말도 비열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국민들 상당수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비대칭적 한일 관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진정 한일관계의 발전을 바란다면 한국에다 그런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일본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법이다.

강대국 정치의 입장에서 우리문제 바라보기, 원전제공 문제를 계기로

우리가 많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정치과정이 모두 우리 국민들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열강의 입장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지역은 강대국들의 숨은 입김이 어마어마하게 작용을 한다.

강대국들이 주로 노리는 것은 국민들의 여론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해방이후 일본은 한국에 영향력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문정인이 담당하고 있었던 사사까와 재단은 대표적인 일본의 한국 경영을 위한 전진기지로 보아야 한다.

한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한원전제공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북한에 원전제공과 관련한 내용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은 그런 해명이 명쾌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와 협의하고 북한 비핵화이후 제공가능한 옵션으로 제시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북한 원전제공 검토 문제를 국내정치적으로만 보고 그것이 이적행위니 사실무근이니 하고 다툴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미얀마의 쿠데타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미얀마군부의 단순한 쿠데타로 본다면 별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전통적으로 모택동주의자들이다. 중국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게다가 미얀마는 오바마가 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으로 공을 들였던 지역이다. 오바마는 중국 포위를 위해 베트남 미얀마와 관계를 개선했다. 그 과정에서 미얀마 군부를 약화시키기 위해 아웅산 수치를 이용했다.

필자는 현재의 미얀마 사태를 미중간 패권경쟁의 파열음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사주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런 내밀한 내용은 기록으로 남지도 않으며 문서로 남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남겨진 기록과 문서만이 역사적 사실을 증거한다는 역사실증주의도 헛점이 많다. 역사는 여전히 해석과 추측 그리고 통찰력의 영역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인 양제츠가 미얀마 쿠데타가 벌어지고 나서 중국은 미국의 지위를 침범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양제츠의 발언은 꼬리내리기가 아니다. 중국이 자신감을 보여주는 증거다.

북한핵문제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강대국 정치의 관점이 아니라 비확산적 관점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에게 중국이나 미국은 똑 같은 적대국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전쟁과정과 그 이후 중국의 북한 주둔군 철수과정을 보면 북한이 중국을 어떻게 보는가하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북한핵문제를 대중국 포위의 관점으로 보았다면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달랐을 것이다. 트럼프는 무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이었지만 그런 점에서 북한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에 원전제공의사가 제시되었다면 그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와 얼마나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북핵에 대한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선택지는 그리 넓지 않다. 가장 현실적인 목표는 북한핵이 미국에 위협이 안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군사적인 방법이든 비군사적인 방법이든 잘못하면 미국도 치명적인 위협을 입게 될 뿐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대선은 미국이 한국에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정책을 추진할 정치세력을 지원할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국내정치과정에 개입하는게 말이 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벌어지는 서울 부산시장 선거, 그리고 이어지는 대선은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패권경쟁을 위해 체스판의 말을 정렬하는 것과 같다.

우리 국내정치는 국민들의 투표로 결정될 뿐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그만하기로 하자. 그런 점에서 김종인이 한일 해저터널 구상을 발표했다. 과거에도 그런 구상은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김종인이 한일 해저터널 구상을 언급한 것이 여사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는 상당부분 추측과 해석을 통해 문제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 당대를 사는 사람이 당대사를 가장 알기 어렵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만일 김종인의 구상이 강대국 정치적 의도와 연관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입장인지를 알아야 우리도 우리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

파렴치한 지배계층의 등장

문재인 정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파렴치함이다. 지배계층은 항상 탐욕스러웠다. 역사가 증명한다. 더 많은 권력과 돈을 가지려고 했다. 권력을 잡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알았다. 권력 때문에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돈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삶의 수단인 돈이 삶의 목적이 되면서 탐욕은 끝이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삶의 목적인 세상이다. 돈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권력과 돈을 차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세상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규범을 만들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이 주인인 세상을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다.

한국의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은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니지 않고 있다. 그런점에서 한국의 지배계층과 서양의 지배계층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의 지배계층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국가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이 만들어준 국가이니 이 국가가 제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기 어렵다.

한국 자본가들을 대표하는 재벌은 국가권력이 키워준 것이다. 서양의 역사처럼 스스로 투쟁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특혜를 주어서 만들었다. 박정희 시대에 재벌은 집중적으로 양성되었다.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재벌을 만들었으니 그들은 자신을 가능케 한 체제의 유지에 별 관심과 책임감이 없다.

한국의 권력은 억압적 성격을 지니고 재벌은 기생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는 발생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지배계층은 나름의 사명감은 있었다. 국난을 극복하고 국가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다. 권력을 돈을 받아도 서민의 삶은 건드리지 않았다. 재벌들에게서 수금을 했지 코묻은 국민의 돈을 뺏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전 과거의 지배계층은 뒤로는 별의 별 추잡한 짓을 다 했지만 앞으로는 그래도 젊잖게 행동하는 척은 했다.

문재인 정권들어 등장한 새로운 지배계층은 과거 우리가 보아왔던 이들과 매우 상이했다. 그들이 과거의 권력처럼 재벌에게서 수금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하는 것을 보면 떡고물을 받아 먹었으리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나 특징적인 것은 그들은 과거의 권력자들이 하지 않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코묻은 서민의 돈, 약자의 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몫을 뺏기 시작한 것이다.

업주에게서 보호비를 받아가는 건달과 달리 뒷골목에서 아이들 돈을 뺏아가는 양아치와 비슷한 짓을 한 것이다. 라임과 옵티머스 같은 사모펀드는 서민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돈을 노렸다.

최근에 시끄러운 사람들은 모두 파렴치하다는 측면에서 특징적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변창흠같은 사람이 품성이 저열하다. 구의역 사고를 보고는 몇날 며칠 괴로웠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설사 자신의 실수로 명을 달리했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둔 부모로서 할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그는 책임있는 자리는 커녕 제대로된 부모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어찌 자식을 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

법무차관 이용구 같은 자는 기본적인 자기 수양이 되지 않은 사람이다. 파렴치하다. 사회적 약자에게 마구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자리에 올라간다는 말인가 ?

윤미향은 또 어떤가 ? 전형적인 잡도둑이 아닌가? 어디 해먹을 것이 없어서 위안부 할머니들 돈을 가로챈단 말인가 ?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자들을 옹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의원들 상당수도 파렴치하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지배계층으로 등장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파렴치한 지배계층이 등장했다.

파렴치한 사람들을 지배계층으로 밀어올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문재인 아닌가 ?

문재인 정권은 정상적인 사람은 같이 일을 할 수 없는 체제인 것이다.

트럼프가 막판에 이란을 공격하려고 한 이유는 ?

서서히 미국 대선도 정리되어 가는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오래전부터 미국이 중국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중동에서의 분쟁이라고 생각했다. 왜 트럼프가 행동을 하지 않고 미적거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큰 변화라면 중국과 이란에 대한 접근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태평양 중시 즉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는 초기에는 중국과 원만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듯 하다가, 후반기에 강력한 입장을 취했다. 오바마는 이란문제를 협상을 통해 정리하려고 했고 트럼프는 초기부터 이란과의 협상을 무시했다.

미국의 정책변화는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요인은 당연히 기업가들, 즉 자본가들의 입장이다. 근대국가 형성이후 모든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서는 자본의 축적이다. 국가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자본축적 수단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로 넘어오면서 대외정책이 바뀐 부분의 이유를 자본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란에 대한 태도이다. 처음에는 이란과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이란의 정보책임자가 살해되고 이란이 이라크의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전쟁이 바로 목전에 왔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자본가들이 셰일석유를 살리고 중국에 대한 이란의 원유공급을 차단함으로써 미중패권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을 멈추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임기 말을 앞두고 갑자기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검토하라고 했다. 원래 임기말에는 군사행동을 하는 법이 아니다. 왜 그랬을까? 다음에 들어오는 바이든 행정부 엿먹이려고 한 짓일까?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선거에서 진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대외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트럼프는 미국의 부활을 위해서는 국내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트럼프와 같은 정책은 과거에도 있었다. 트럼프의 정책은 29대 대통령 하딩과 매우 흡사하다. 하딩은 제1차 세계대전이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대신 미국내로 시각을 돌렸던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문제를 인식한 방식과 하딩의 문제인식과 유사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가 과거와 달리 대외정책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려고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가 마지막에 이란 공격을 검토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의 금융자본은 끊임없이 대외정책에 관여하기를 요구한다. 금융자본의 속성상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팽창하지 않으면 금융자본은 자본을 축적하기 어렵다. 그런점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하는 트럼프와 금융자본은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딩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월스트리트는 지금처럼 막강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한다.

트럼프가 마지막에 이란 공격을 검토한 것은 자신의 임기내내 억제해왔던 대외정책을 바꿀수도 있다는 월스트리트에 보여주고자 하는 제스츄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바이든이 들어오더라도 세상은 조용하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