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둘 다 거기서 거기다.

일본은 쌀미자를 미국의 미자로 쓴다. 우리는 아름다울 미자를 쓴다. 한국은 미국을 좋아해서 아름다울 미자를 쓰고, 일본은 미국을 얕잡아 봐서 쌀미자를 쓴다고 하는 말이 있었다.

미국은 우리의 이상향이었다. 요즘들어 미국을 보면서 지금의 미국이 과연 내가 생각했던 나라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첫번째는 트럼프가 막무가내식으로 전세계를 윽박지르는 것을 보고 그들이 주장하던 이상과 가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실망을 하게 되었다. 무례하게 방위비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저런 국가와 어떻게 동맹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힘이 아니라 존경을 받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맹주가 이상과 가치가 아니라 힘과 협박으로 동맹국을 억압한다면, 그런 동맹은 오래가기 어렵다.

두번째는 코로나19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 저렇게 대응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사전에 충분하게 경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거의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미국이 당한 피해는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서 피해가 커진 것이다. 미국의 관련 관청과 전문가들은 이미 위험성을 사전에 예고했다고 한다. 그것을 트럼프가 무시한 것이다.

세번째는 미국 경찰이 별 잘못도 없는 흑인을 죽인 사건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미국의 흑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인종차별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차원이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안의 중대성을 보았을 때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이렇게 폭동의 수준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시위대에 사살 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다. 마치 1980년 광주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이란 사회가 언제 어떻게 찢어지고 분열될 지 알 수 없는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찰이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통상 건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국도 공안의 힘이 세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이란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도 경찰의 힘이 세다. 그것도 미국이란 체제가 겨우겨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상태가 크게 다르지 않다. 둘다 불안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군부독재 시대에 경찰의 힘이 대단했었다.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둘 다 저런 모양이니 앞으로 누가 패권을 확보하던지 세상은 편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G7 회의에 우리나라를 옵저버로 초대한다고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분명하다. 중국에 대한 봉쇄라인을 구축하는데 한국이 앞장서라는 이야기다. G7이 중국을 봉쇄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지는 미지수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 모두가 다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이미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정점을 지났다. 정점에 올라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내려오는 시간은 예상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미국은 중국봉쇄를 통해 흔들리는 패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국은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으로 무너지고 있는 양상이다. 코로나19사태와 인종차별문제는 미국이 심각한 내부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의 번영은 전세계의 희생을 대가였다. 미국 내부에서는 흑인과 소수인종들의 희생,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남아메리카 각국의 희생을 대가로 미국의 풍요는 유지될 수 있었다. 전세계가 미국의 시장이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체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그런 체제는 가치와 이상이 아니라 강압과 강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전세계 군사비의 절반을 미국이 쓴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이 누리는 헤게모니의 정체가 바로 군사력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경쟁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다.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간혹 당신의 미국관, 당신의 중국관이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을 만날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관과 중국관이 아니라 당신의 한국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떨어져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지 않으면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들어가기 십상이다. 중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미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드 덕분에 한국의 안보가 안전해졌는가?

안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평화를 원하거는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말이다. 비잔틴제국의 베제티우스가 쓴 ‘군사학 논고’에서 나오는 말이다. 비잔틴 제국은 15세기에 오스만투르크 무하메드2세에 의해 멸망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때까지 스파르타에 군사학의 전통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베제티우스의 군사학 논고도 스파르타의 산물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정치인들에게는 서로 동맹을 견고하게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가급적 적을 만들지 않도록 선린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 등으로 해석되었다. 군인들은 좋은 무기의 확보와 훈련이 잘된 군대의 유지를 의미했다.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은 좋은 무기의 확보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었다. 내가 어마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상대방이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고 그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내가 좋은 무기를 가지면 상대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도 더 좋은 무기를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군비경쟁은 숙명과 같이 이루어졌다.

무기와 군대가 많이 밀집한 곳은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진정 평화를 원하거든 장비와 군대를 줄여 나가야 하는 법이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한국과 월남 그리고 아프간에서 제한전을 벌였지만 유럽대륙에서 전면전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군비감축을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도 가급적 군대와 무기의 배치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은 무기와 군대를 쌓아놓는다고 안전해지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사드 장비를 개선한다고 해서 소동이 일어났다. 일부에서는 개량된 요격 미사일을 배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앞으로도 한국이 군비경쟁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사드지만 내일은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가 논의될 것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양진영간 첨예한 논쟁이 있었다. 사드로 인해 한국이 안전해질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었고 사드로 인해 오히려 한국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모르겠다. 사드로 인해 한국의 안보가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

홍콩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나

미중간 다툼이 홍콩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당장 홍콩내부에서 반발이 벌어지고 있고 미국도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정치적 격동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홍콩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상황평가라는 것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시위가 발생하면 모두들 인권문제를 제기한다. 국제정치세계에서 인권이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인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평가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인권을 매우 뭉뚱그려서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다양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냉전시기에 인권이란 자본주의 진영이 사회주의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때 인권은 정치적 자유를 주로 의미하고 있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라고 한다. 그러나 인권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보편적이 될 수도 있고 특수할 수 도 있다. 세상 어떤 가치도 보편적인 것은 별로 없다. 인간과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인권이란 개념은 매우 광범위해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평가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가만 따져보면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실제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상황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인권을 정치적 자유가 아닌 인종과 빈부문제로 보면 전세계에서 인권이 가장 낙후된 국가는 미국일 수도 있다. 당장 미국에서 별 잘못한 것도 없는 흑인을 눌러 죽인 것이 미국 경찰 아닌가 ? 미국에서 흑인과 유색인종들이 받는 차별은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한다. 인종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 위협이다. 정치적 자유보다 인종적 차별은 더 심각하다고 할 것이다. 미국의 흑인들에게 미국에서 살래 아니면 중국가서 살래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다. 예컨데 인권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차별이다. 정치적 자유에 앞서 각종의 차별이 가장 크게 인권을 위협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국가인 미국이 정치적 자유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인권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라고 비난하는 것은 진의를 의심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미국에 있어서 인권이란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국제정치문제에서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일부는 옳고 일부는 틀릴 수 밖에 없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인권외교를 주장한 것도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공격이었을 뿐이다.

홍콩의 사태를 보는 관점도 다양할 수 있다.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두개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중국민의 입장에서 홍콩은 1839년 아편전쟁으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이자 서구열강들의 침략의 상징일 뿐이다. 게다가 호시탐탐 다시 중국을 노리는 서구의 트로이 목마일 뿐이다. 중국민들이 홍콩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만일 우리가 홍콩의 시위를 지지한다면 홍콩을 자신들의 상처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어떤 답변을 해야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중국사람들의 눈에 홍콩인들의 행동은 마치 우리가 친일파를 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이미 홍콩의 시위가 미국 정보기관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서 다 밝혀진바 있다. 중국도 그런 홍콩의 시위주동자들을 미국의 끄나풀이라고 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170년 넘게 영국적 제도하에서 살아온 홍콩사람들에게 중국의 강압적인 태도는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홍콩 민주화 운동의 지도부들이 미국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중국도 이처럼 과격하게 대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콩과 달리 마카오는 별 잡음이 없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뺏긴것과 달리 마카오는 중국이 필요해서 포르투갈에게 조차를 주었기 때문이다. 같은 조차지였으나 전혀 다른 상황인 것은 역사적인 과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홍콩의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런 문제를 더 이상 끌지 않고 마무리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서서 이것이 옳으네 아니네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 우리가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이유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되돌리기 어렵다.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국의 중국에 대한 공세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동맹국을 규합해서 중국을 포위 봉쇄하여 말려 죽이겠다는 것 같다.

미국이 그런 구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이 돈은 벌어서 몸집이 커졌을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다듬어 지지 않아 주변국으로부터 우호적인 반응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단한 나라라는 것은 모두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중국이 정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한 미국의 의도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만일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속된말로 미국하고 중국이 싸우다 죽던 말던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다. 우리에게 피해만 없다면 말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싸우면 우리에게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싸움은 매우 오래갈 확률이 많다. 전쟁과 같은 극적인 계기가 없다면 패권의 전이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미국의 최대 위기는 중국의 반발이나 역습이 아니라 미국의 자체 모순이 아닌가 한다. 그냥 있으면 중국이 공격하기 전에 미국 스스로 무너질 상황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미국의 상태가 어떤지는 학자들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발생한 사건에 대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이번 싸움이 장기화되면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첫째, 전세계의 교역이 줄어든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은 자신들끼리만 교역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과는 교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역을 하지 안한다는 것은 시장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미국이 요구하는 경제번영네트워크에 가입을 하면 당장 중국시장은 포기해야 한다. 문제는 중국시장을 포기하는 만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에서 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시장은 포화상태다.

미국은 자신들이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들을 식민지 국가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생산력을 파괴하거나 감소시켜야 한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문제는 생산력 과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제국주의 체제가 수립이 될 것이다.

분업체제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체제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은 첨단기술과 같은 분야는 자신들이 직접 독점하려 할 것이고 한국을 위시한 다른 나라는 생필품 공급기지화 하려 할 것이다. 즉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미국이 생산 판매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것은 소위 동맹국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은 비교적 긴시간을 두고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장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나라다. 국내에서의 문제와 국제적 관계에서의 신자유주의는 이중적인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제시하는 자유번영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은 자살적 행동이나 진배없다.

중국은 지금의 상태에서 미국처럼 동맹국을 규합해서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겨우 해봐야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중립국을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러시아가 중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같이한다고 해도 그것도 말에 불과할 뿐이다. 러시아, 인도, 유럽의 일부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할 가능성이 많다.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국가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협박하는 것 밖에는 없다. 문제는 그것만으로도 심각하다는 점이다. 당장 호주는 소고기를 중국에 수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제일 먼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나라가 호주가 될 것이다. 중국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디 하나 걸려봐라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심정일 것이다.

그렇게 시범케이스로 확실하게 미국에게 동조하는 국가를 처벌하지 않으면 중국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 중국과 동조국, 그리고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국가로 나뉘어 질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당연히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는 것이 몸보신에 유리하다. 누가 이길지는 현시점에서 알 수없다. 이 시점에서는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 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미국을 지지해야 인권이 보장되고 첨단과학도 도입하고 경제적으로 변영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접어두는 것이 좋다.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하에 있는 그 어떤 국가도 제대로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왜 미국이 좌지우지 하고 있는 남미에는 민주주의가 자리잡지 못했을까? 당연히 군부독재국가를 만들어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유와 인권의 문제는 미국이 있어야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국내의 문제이다. 근대국민국가 자체가 그런 가치의 담지자이다. 자유와 인권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보장되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없는 정치적 자유는 없다. 경제적 자유없는 인권도 없다. 노동문제의 최종핵심은 결국 노동자들이 합리적인 임금을 받는 것과 사회보장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이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것도 결국은 헤게모니 유지를 위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은 그런 모든 거품을 걷고 진짜 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나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미국은 왜 이시점에 중국과 대결을 하려할까?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 상태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1990년 냉전종식이후 가장 거대한 국제정치적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심하다. 지금 윤미향 사건을 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사기꾼과 협잡꾼 때문에 격랑의 국제정치적 변화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니 한심할 따름이다.

지금 미국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사생결단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미국이 중국과 냉전구도를 만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먼저 코로나19가 아직 잡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거의 최악의 상황에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나선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코로나19나 경제위기보다 오히려 중국과의 패권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건강이나 경제위기는 극복하면 되는 문제다. 그러나 패권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 아마 미국 주류세력들은 바로 그런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같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시점에 신냉전구도를 만들어 가려는 이유인 것이다.

그에 앞서 이번 미중 신냉전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향이 작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이 중국에게 냉전적 대결을 하려고 하는 것은 미국 주류세력 전체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은 이미 오바마 정권 때부터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공을 들여왔다. 그때도 미국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언젠가 결정적인 시점이 오면 중국을 봉쇄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한일간 지소미아도 바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군사적 동맹체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본다.

미국의 주류들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냉전을 결심했을까? 우리가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미국의 절박함이다.

무엇이 미국을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첫째는 시기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중국을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본 것이다. 이미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했다고 하고 앞으로 10년 정도면 미국은 화폐 패권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좀 더 있으면 견제고 뭐고 할 수도 없이 두 눈 뜨고 어어 하다가 당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미국이 앞으로 상황이 매우 나빠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미국의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 중국의 부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중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신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맹국과 연대를 강화해서 중국에 대항하고자 한다. 동맹국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몇 수 위다. 이미 그런점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미국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사건에 미국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홍콩시위사건을 통해 미국이 노린 것은 홍콩을 독립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도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코로나19도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중국은 그런 미국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며 읽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보편적 가치 부족과 결여를 계속 공격하고 있는데 중국은 미련하게 오히려 자신들이 보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게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원래 수천년동안 세력정치를 해온 나라라서 그런 대응은 잘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국보다 미흡한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의 공세에 호전적인 반응을 하는 것은 이미 한번 혼난 사람이 다시 혼날까봐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열등감이 폐쇄적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바고 그런 점을 미국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장할 논리는 무엇인가?

정경분리다.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라는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공산당 독재나 미국의 월스트리트 과두정이나 크게 보면 그게 그거다. 모두 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뿐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우리의 홀로서기

미국의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을 구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느낌으로는 경제적 성격의 NATO와 비슷하다. 전통적인 방식인 군사적인 봉쇄가 아니라 경제적인 봉쇄를 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을 위시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들로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한국에게는 이런 경제번영네트워크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미국의 의도처럼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의 구매력이 미국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아무리 미국 우방국을 중심으로 단합한다고 해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중국 시장을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의 시장은 포화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만일 우리에게 기회가 된다면 과거 1970년대 처럼 중국대신 우리가 미국의 생필품과 같은 소비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되는 것이다. 지금 가발만들고 신발 oem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소냉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본 것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서방세계의 진열장이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서방세계의 show window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이 격심해지면서 새로운 전선으로 등장하고 있는 곳은 대만이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미국은 대만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대만에게 지원을 하는 만큼 한국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끼여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는 대만처럼 미국과 중국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게 한국은 전선이 아니라 후방이나 마찬가지다. 결력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후방보다 전선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을 후방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 서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일국 양제를 거부하는 것으로 경계선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경계선에 설 수 없다.

우리나름대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상에 서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함으로써 전략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해야 전략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이 안보적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지닌다면 미국도 한국에게 함부로 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방위비 더 내놓으라고 말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나라는 필리핀이다.

최근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으로 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위상을 확보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며 중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으며 미국도 무시하지 못한다.

각국은 각자의 전략적 상황이 다르다. 각자의 전략적 이점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최상의 방법은 지금은 최악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에 함께하게 되면 전작권은 즉각 반환하고 연합사도 해체해야 한다. 자국의 방어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미중패권경쟁에서 전략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안보적 홀로서기가 가장 중요하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가는 우리의 미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느냐고 하면 통상 미국이 더 중요하다 미국과 더 친하게 지내야 하고 중국을 멀리해야 한다. 혹은 중국이 앞으로 더 강력한 국가가 될 터이니 중국과 잘 지내야 우리가 먹고 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뉜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미국편이고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중국편이다.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고 평가할 것인가는 우리가 미국편을 들것이냐 중국편을 들것이냐 하는 이야기기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상관없이 앞으로 세계질서를 움직여나갈 국가다. 이들 양국이 만들어 가는 국제질서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를 미리 예측해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미국과 중국은 더이상 상대방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이 아니다. 미국은 이기회에 중국의 도전을 따돌리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고, 중국은 미국에게 그렇게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윤리적 평가의 대상이거나 감정적 선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이 이익이냐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전에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확고하게 구축한다.

둘째, 중국이 미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패권을 차지한다.

셋째, 미국과 중국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서로 비슷비슷한 상황을 유지한다.

네번째, 미국과 중국의 힘이 쇠퇴하고 유럽과 인도와 같은 지역이 부상한다.

첫번째 상황은 가능성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자신이 있다면 지금처럼 보호무역주의적 경향으로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력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완전하게 우위에 설 수 있는 기간이 10년 정도라고 한다.

나는 미국이 이번에 보여주고 있는 경제위기가 미국 쇠퇴 시기를 더 앞당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주기적 경제위기다. 문제는 미국이 경제위기에 빠져서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상대적으로 중국은 타격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1930년 대공황 때에도 소련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은 동안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이번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른다. 일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930년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방식의 경제위기는 없었다. 대응도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간도 훨씬 많이 소요될 것이다.

두번째, 중국이 미국을 무너뜨리는 상황도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묘하게 서양과 동양의 경쟁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채 질질 끌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으로 반반 나뉘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베트남전을 종료하고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당시의 경제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이어서 중국을 세계시장에 편입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지금같은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한 시장을 포기할 경우 지금과 같은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아무리 큰 나라라고 해도 미국과 유럽시장의 상당부분을 상실한 상황에서 경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국과 미국은 어느정도에서 서로의 영향력을 인정해주는 상황으로 타협할 수도 있다. 그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영향권,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영향권으로 공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입장에서는 가장 걱정되는 경우다. 미국이 이기거나 중국이 이겨버리면 그쪽하고 잘 지내면 된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어정쩡하게 세력을 유지하는 경우 우리의 입장이 어려워진다. 우리는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를 해소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경제적이익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보를 독자적으로 지켜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의 안보상황에서 핵무기 정도라도 보유하지 않으면 어떤 국가도 독자적인 안보를 자신하기 어렵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소위 남북동맹이라도 구상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통일이라는 감성적 접근보다 이익과 공동번영이라는 실질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네번째의 경우는 미국과 중국이 싸우다 제풀에 지친 사이에 세계가 다극화된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남북 아메리카, 서유럽, 동유럽, 중국, 인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력으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우리입장에서는 세번째 어정쩡한 관계보다 네번째 다극화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평상시 생각하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본격적인 미중패권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여러가지다. 제일 먼저 제기하는 것이 이번 COVID-19사태이후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다.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속성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물론 초기 중국의 조치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보다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이 조치를 더 못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자신들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두번째는 트럼프가 재선을 위해 중국 때리기를 한다는 것이다. 미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의 재선을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때리는 본질적인 이유는 지금 중국을 억제하지 않으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미국은 전방위적인 중국견제를 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서 미국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역사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꼭 그렇게 볼 것은 아니다. 서구가 지리상의 발견과 산업혁명을 통해 동양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이 서구에게 침략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1839년 아편전쟁 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약 2000년 동안 중국은 세계의 압도적인 강대국이었다.

중국이 서양의 자본주의에 침탈을 당한 것은 1839년부터 1949년 지금의 중국이 건국하기까지 약 110년이다. 지금 중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올라온 것은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원래의 자기자리로 돌아 온 것에 불과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과거부터 패권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넓은 영토와 물산 그리고 어마어마한 인구였다. 그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국의 정치적 이념적 개방성이었다. 지금 중국은 이념적 개방성과 포용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거꾸로 보면 그런 이념적 보편성을 결여하고도 자신들이 가진 자체 능력으로만으로도 미국을 추월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어떤 시각을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을 서구 자본주의의 동양 침탈 종식이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서구의 이념적 보편성에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가 도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주안을 어디에 놓는가에 따라 평가의 기준은 달라질 것이다.

지금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경향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편전쟁이후 상해버릴대로 상한 중국의 국민적 자존심이 공격적 성향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은 이런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순치시키지 않고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홍콩과 대만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하는 중국이 어떻게 미국과 경쟁을 해서 이길 수 있겠는가 ?

그런 측면에서 중국이 세계적 패권국가로 등장한 것은 거의 모두 이민족들이 중국을 지배했을 때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각설하고 지금 미국이 중국을 때리는 이유는 패권경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미국은 지금의 상황을 중국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해야 할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일본과 다르다. 중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중국은 세력정치를 수천년동안 해온 나라다. 미국과 대외정책을 하는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걱정된다.

코로나19이후 경제위기의 해법으로 남북협력 강화를 주장하는 이유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세가지 서로 다른 성격의 위기가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첫번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으로 인한 안보불확실성이다.

두번째는 2008년 이래 누적되어온 금융의 한계와 생산력 과잉이 누적된 것이다.

세번째는 코로나19로 인한 유효소비의 급격한 감소다.

하나 더 보태자면 석유가격하락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본질적으로 첫번째 안보불확실성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셰일가스 믿고 있다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역공을 받아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가중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미국의 셰일가스를 죽이기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본다. 거기에 대한 증거는 없다. 그냥 그런 심증이 갈 뿐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해외 언론에서도 어느정도 동의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기업에게 돈을 대주어서 연명하게 해주면 해결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지금 겪고 있는 생산력 과잉의 문제는 해결되기가 매우 어렵다. 통상 이런 경우는 전쟁으로 해결했다. 전쟁으로 그동안 지어놓은 공장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문제는 핵무기의 시대에서 제1,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은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생산력을 붕괴시켜야 하는데 전쟁을 동원할 수 없으니 리쇼어링이란 방법을 고안한 것 같다. 문제는 그렇게 리쇼어링하면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으로 공장이 돌아가서 물건을 만들면 뭐하나 ? 팔아먹을 곳이 없는데.

중국도 바보가 아닌다음에야 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 모두 차단할 것이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는 붕괴된 상황이다. 그럼 세계각국은 모두 중상주의 정책으로 돌아가서 보호무역을 할 수도 있다.

이럴때는 내수시장이 큰 나라가 제일 유리하다. 중국은 인구가 15억이다. 미국이 중국의 생산력을 붕괴시키면 생산력 과잉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중국은 스스로 독자적인 경제권을 운영할 수 있는 국가다. 만일 보호무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 내수시장의 크기가 국력의 기준이 되는 수도 있다.

당연히 인구가 제일많은 중국이 경제력이 제일 커질 수도 있다. 전세계 질서가 국가의 사이즈 크기로 재편될 수도 있다. 미국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설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화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구매력도 없는 북한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보호무역의 경향이 커지게 되면 내수시장의 크기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중국의 영향력에서 조금이라도 자유스러워지려면 북한과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해야한다.

남북한과 일본을 합쳐서 최소한 2억정도는 되어야 중국에게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미국으로부터 좌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생산력 과잉문제의 해결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의 감소도 오래갈 것이다.

경제위기를 해결하기위해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물론 미중패권과 보호무역의 경향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상황의 변화 가능성도 고려해서 하는 이야기다. 그 문제는 다음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무차별적으로 기업에 돈 뿌리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차라리 앞으로 전세계가 보호무역으로 회귀할 것을 고려한 기업의 업종별 구조조정을 하고 기본소득을 보장해서 국민들이 당분간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예산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은 부의 재분배가 불가피하다. 재산이 많은 사람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 자기것을 나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기본소득도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지금같은 위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1930년 대공황이야기를 하지만 잘못하면 그때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와 유럽역사의 한계

헤겔은 동양을 정체된 사회라고 규정했다. 동양의 전제주의가 역사적 발전을 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미성숙했다는 것이다. 헤겔이 동양을 보는 시각은 19세기적 유럽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유럽은 봉건제와 절대주의 시대를 넘어 부르주아지 국가를 수립했던 때이다.

역사적 경로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유럽과 동양의 역사적 경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동양의 역사는 오래전에 완성되었다. 특히 유교적 영향을 많이 받은 국가일수록 중앙집권적 통치제제를 형성했다. 헤겔은 이것을 보고 동양의 역사가 완성되었으며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아마 헤겔은 동양의 정치체제를 절대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와 비슷하게 보았거나 페르시아적 전제체제와 비슷하게 보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유교권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는 페르시아의 전제정치나 유럽의 절대주의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 중국 베트남 처럼 유교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일찍부터 중앙집권화를 달성했으며 그 기반은 전문적인 관료체제였다. 물론 혈통과 가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없었겠으나 관리의 등용문은 과거였다. 능력을 보고 관리를 선발했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서양은 동양과 유사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수립해 본적이 없다.

로마이후 유럽의 역사는 국가가 수립되어 가는 과정이다. 봉건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워낙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로마 말기에 중앙권력이 약해지면서 지방총독에게 통치권한을 위임한 것이라고 평가가 있다.

그 이후 1000년의 중세를 지나 근대로 지나면서 서구는 국민국가의 형성을 역사의 목표라고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의 국가라면 동양은 애시당초 2000년도 훌쩍 넘게 이미 달성한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피해가 많이 난 국가들의 공통적 특징은 한국, 중국, 베트남과 달리 충분할 정도로 정부가 중앙집권화된 통제체제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도 피해의 정도가 각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미권은 전통적으로 정부의 중앙집권화가 약하다. 일본의 피해가 많은 점을 그런 점에서 고려해 볼 필요도 있다. 라틴 계열 국가의 피해가 많다. 그리고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륙국가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유럽의 다른지역보다 비교적 피해가 적다. 이런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뭔가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제까지 우리는 중앙집권화된 통치문화를 마치 후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동양의 중앙집권화는 유럽이 근대이후 지금까지 달성하기 위해 싸워온 역사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즉 앞으로 세계에서 미국과 유럽적 정치체제보다 동양적 통치체제가 훨씬 유용한지도 모른다. 문제는 중앙집권화의 경우, 필연적으로 따라 다니는 부정부패의 문제다. 그런 부정부패는 철저한 민주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언론이 견제하고 국민들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권력이 긴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런점에서 청와대의 대변인을 신문기자나 방송국 출신들이 담당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지 않다.

동양의 정치제도와 문화가 완전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와 같은 위기상황에 대응하는데는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는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의 정치체제는 문제가 많으며 여전히 진보의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 같다.

코로나19를 통해 영미와 유럽이 지닌 한계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대안은 오히려 동양적 정치체제가 아닌가 모르겠다. 물론 동양적 효율성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가장 문제는 보편적 가치다. 동양적 체제가 효율성이라는 점에서는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보편적 가치를 얼마나 보장하고 추구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지금 중국이 경제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보편성의 결여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런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