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봉쇄, 유럽의 선택은 ?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 자본주의체제에서 축출하려고 하면 중국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 봉쇄이고 축출이지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완전하게 축출하고 봉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축출과 봉쇄도 냉전시대와는 양상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중국이 너무 많이 자본주의세계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봉쇄에 맞서기 위해 크게 두가지 정도의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미국의 봉쇄시도를 무력화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중국과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중국이 이제까지 구사해온 일대일로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이 자신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대일로를 구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은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럽은 중국으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을 하며 미국에게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아래는 2018년의 통계표다.

이미 프랑스는 화웨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독일도 화웨이 수입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하는 것도 미국과 유럽의 교역상황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최근들어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미국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유럽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며 무역흑자도 미국을 통해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은 우리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유럽은 중국과는 무역적자다. 미국은 유럽과 중국과 경제관계를 차단하거나 줄여나가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할 지도 모른다. 미국이 중국과 갈등을 냉전당시와 비슷하게 이념전쟁으로 몰아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한편, 유럽도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은 교역규모의 축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미국이 유럽에게 중국과 관계차단을 지나치게 강요하면 유럽도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금까지 유럽은 존재감이 떨어졌다. 미국과 소련의 압도적인 힘에 눌려있었다. 유럽이 통합되면서 지금은 세계 제1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에 비해 영향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갈등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유럽도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유럽은 화웨이를 위시한 몇몇 사안에 대해서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되,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과 극단적인 교역축소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중국과 교역규모를 축소하면 그 자리를 노릴지도 모른다.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을 냉전시대와 같이 봉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미 중국은 너무 많이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미국이 유럽을 중국봉쇄에 참가하도록 강요하는데 성공했다면 중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미국이 중국을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몰아내려 한다면, 중국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의 최근 행동을 보면 이미 미국이 자신들을 세계경제체제에서 몰아내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전에 먼저 중국이 어떤 성격의 국가인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해 볼 필요가 있다.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의 행동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그 정체를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점부터 정리해보고자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상당부분 자본주의체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자유화되지 않았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화되면 정치적으로 자유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서구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같이 발전한 과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자본주의발전은 부르주아지들이 이끌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자유주의가 필요했다. 만일 자본주의적 발전에 전체주의가 더 유용했다면 전체주의적 경로를 택했을 것이다. 그런 점은 나찌독일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발전이 정치적 자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틀린 공식이다. 경제적 발전이 정치적 자유를 이끌어내는 것은 경제적 발전의 주체가 부르주아지일때만 가능하다.

국가주도로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정치적 자유가 같이 발전하기 어렵다. 한국은 국가주도로 경제발전을 했지만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경로를 거쳤다. 경제발전의 수혜자들인 한국자본가들은 정치적 자유보다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독재권력의 편에 섰다. 한국 자본가들은 경제적 이익은 국가권력을 통해 확보하고 정치적 자유는 시민들을 통해 얻었다. 한국자본가들이 서구자본가들보다 훨씬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자본가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어떤 국가적 사회적 희생도 치르지 않고도 이익만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가들의 행태도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한국의 재벌가에서 군대에 간 남성이 희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도 한국과 비슷하다. 중국의 경제발전도 국가주도로 이루어졌다. 중국의 자본가들도 국가정책의 일방적 수혜자일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번영을 가능케한 현재의 정치체제를 지키려하지 정치적 민주화를 추구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경제적 발전을 통해 중국의 정치적 변화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계산이 틀어지게 된 이유이다. 역사발전을 추동하고 있는 주도세력의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동양에서 특히 중국과 한국의 경우, 경제가 아닌 정치권력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중국은 2천년전부터 지금까지 자본이 역사를 움직인 경우가 별로 없다. 정치권력이 역사를 지배했다. 그리고 정치권력의 주체는 왕조였다. 그런점에서 현재 중국 공산당은 왕조나 마찬가지다. 청왕조에 이은 공산당왕조이다. 현재 중국에 있어 사회주의란 공산당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라 할 수 없다. 중국에 있어서 사회주의 이념이란 정치권력의 유지와 장악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청왕조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전체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은 전체주의 국가라고만 규정하기 어렵다. 중국국민들은 과거 유럽의 전체주의 국가들과 매우 다르다. 소련이나 나찌독일 치하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중국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만 자제하면 거의 무한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치적 참여를 제외하면 국민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상황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양상을 보인다. 과거의 용어로는 현재 중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미국이 중국을 전체주의 국가라고 몰아가는 것도 또다른 실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전체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지도층과 인민대중을 분리시키기 위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중국을 전체주의라고 규정하고 공격할 경우, 중국에서 오히려 역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인민대중과 공산당권력의 결속을 훨씬 더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미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문제는 영토적 분열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나뉘어지고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중국의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려면 전체주의라는 공격으로 정치권력과 인민대중을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지방과 중앙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써야 했다. 중국이 기를 쓰고 홍콩을 장악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중국은 홍콩을 완전하게 장악 함으로써 미국이 중국의 지방을 분열시킬 수 있는 근거지를 완전하게 봉쇄하려 한 것이다.

원래 중국의 대응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삼천포로 빠졌다. 삼천포 갔다 온지 며칠되지 않아서 그런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이유, 패권경쟁을 넘어

미국이 중국과 교역을 상당부분 차단하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이 월남전 이후 중국을 개방으로 유도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지금 미국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주기적인 경기 순환사이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인구도 늘어야 하고 시장도 커져야 한다. 소위 말해서 유효수요가 창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1920년대 인구가 20억이었는데 2020년대 인구는 70억이 넘는다.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문제는 인구가 증가해도 생산능력 확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초중반 전세계 경기가 하락하기시작했다. 미국이 중국의 개방을 결정한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로 추정가능할 것이다. 첫번째는 공산권의 분열이다. 미국은 중국을 개방시켜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을 노렸을 것이다. 두번째는 중국을 개방시켜 세계경제체제에 포함시켜 자본주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라도 이미 세계경제는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코로나19는 그런 경향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미국은 경기하강 국면에서 중국과 교역을 줄여나가려고 하고 있다. 현재는 화웨이를 노리고 있지만 앞으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과 교역규모를 줄여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은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다. 미국이 중국과 관계를 단절하면 미국의 소비자들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값싸게 공급해오던 생필품 가격이 상승하고 미국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빈부격차가 격심했던 미국의 중하류층은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국내안정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일부 미국의 언론과 경제학자들도 그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과 경제관계를 줄여나가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앞으로 다가오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경기불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 두번째는 생산력과잉을 해소하는 것. 통상 두번째 생산능력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전쟁을 하곤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 모두 불황과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인정하는 바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셈이다. 유효수요의 확대로 해결할 수 없다. 사회주의에 필적하는 분배가 아니고는 수요를 창출할 수 없다. 가진자들은 아무리 망해도 자신들이 가진 것은 내놓지 않는다. 게다가 생산력 과잉도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을 할 수 없다. 핵무기의 시대에 전쟁이란 자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생산력 과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을 퇴출시키는 것이다. 물론 한꺼번에 퇴출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서서히 중국의 비중을 줄여나가면 충분히 생산력 과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즉 미국이 중국과 교역규모를 줄여나가는 것은 생산력과잉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중국의 거대한 생산능력을 배제함으로써 생산력 과잉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30년간 중국과 여타 국가들의 수출과 수입규모를 보면 미국이 어떤 길을 택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중국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수입의 비중과 비교해 보면 중국이 매년 어마어마한 흑자를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중국을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분리시키면, 결국 상당한 정도로 생산능력 과잉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미국은 공화 민주 모두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입장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패권경쟁차원을 넘어, 아예 자본주의 무대에서 밀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지금 미국의 행동은 패권경쟁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런 경향은 지속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앞으로 상당부분 지속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냉전처럼 완전한 차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과 교역규모를 상당부분 줄여나갈 것이다. 결국 유럽 국가들도 상당부분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럼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

미국과 중국이 심상치 않다.

미국이 중국과 전면적인 관계단절을 결정한 것 같다.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요구했고 앞으로도 추가적인 중국 총영사관 폐쇄도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요구했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외교갈등은 단순한 마찰을 넘어 미중관계 전반의 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에게 심각한 위기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단절하는 상황이 되면 한국도 미국과 중국중 어느 한쪽을 택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그런 요구를 받아 오고 있다. 최근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던 ‘경제번영네트워크'(EPN)이라는 것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봉쇄하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유럽과도 중국봉쇄를 위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려 하는 모양이다. 영국은 오래전에 미국편에 섰고 프랑스도 미국쪽으로 돌아설 모양이다. 아직 독일은 버티고 있는 모양이지만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고민과 대응방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자하는 이유를 추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의 조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그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외교전략이란 그런 다양한 상황의 전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국내문제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빠져있지만 국제정치적 분야에서도 지나치게 한쪽편만 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국내문제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무엇을 선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윤리적 도덕적 판단은 별로 쓸모가 없다. 오히려 윤리적 도덕덕 기준은 자국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지키는 수호자는 국가이며, 그 국가내에서만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의미있을 뿐이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도덕과 윤리란 상대방을 견제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그냥 이익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해지면 질수록 앞으로 우리사회는 친미냐 친중이냐로 갈등을 겪고 분열하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경향을 보면 앞으로의 국론분열도 냉정한 상황판단의 결과라기 보다는 기분과 분위기에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냉정하게 결정해야할 문제를 대중들의 기분과 분위기에 휩싸여서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 유불리를 따지는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닥치고 친미라든가 닥치고 친중이라든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익보다는 손실을 초래한다.

현재 정부는 국내정치의 실정으로 인해 쓰나마처럼 다가오는 당면한 국제정치의 격랑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

그동안 국내정치분야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중 패권경쟁이 향방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씩 정리해 보고자 한다.

미국과 북한이 충돌하면, 우리는 ?

북한이 11월 대선전에 태평양에서 강력한 핵실험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한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 예측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북한의 행동이 보도되었다.

북한이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와 비공개회의를 열고 군수 생산계획과 전쟁억제력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비공개회의에서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정세와 잠재적인 군사적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 부대들의 전략적 임무와 작전동원태세를 점검하고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기 위한 핵심 문제들을 토의”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지금 이 시점에 전젱억제력을 강화하고 군수생산계획을 논의했다는 것은 그냥 그렇게 지나갈 여사일이 아니다. 미국의 B-1B 랜서 폭격기가 17일 미국 사우스다코다지역에서 동해를 거처 동중국해로 출격했다는 사실과 북한의 전쟁대비 움직임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북한의 행동이 미국 B-1B 랜서의 출동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라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 이후 미국의 군사적 대응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나서 어떤 식으로 군사적 대응을 할 지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행동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예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기는 어렵다. 어떤 경우든 핵보유국가를 공격한다는 것은 그에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우리가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나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할때 여기에 동의할 것이나 아니면 반대해야 할 것 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만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할때, 우리도 미국과 같이 행동을 해야하나 아니면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반대해야 하나? 이런 일은 분위기 보아가면서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분명하게 입장을 미리 정해 놓지 않으면 막상 닥쳤을 때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에 끌려다니게 된다.

북한이 미국대선에 앞서 핵실험을 감행하면

원래 이글은 7월 13일 경향신문에 칼럼으로 쓰려고 했던 글이다. 그러다가 백선엽 문제를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백선엽에 관한 글을 밤에 썼고 그 문제로 경향신문에 글을 그만 쓰기로 결정했다.

신문에 칼럼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글자 수가 한정이 되어 있어서 어려움이 많다. 어차피 신문에 올라갈 것이 아니니 글자수에 구애받지 않고 조금 다시 정리했다. 지금 우리는 국내문제로 시끄럽고 정신이 팔려있지만 지금부터 11월 대선까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북한은 11월 대선을 자신들이 핵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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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1월 미국 대선은 북핵문제 진행과정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북미협상 주도권을 완전하게 장악했다.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것은 상대에게 구애되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대화를 택할 수도 있고 태평양의 핵실험과 같은 강경한 행동도 할 수 있다. 핵실험으로 미국 대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선 전에 핵실험을 감행하면 트럼프를 곤경에 빠지게 만들 것이다. 반면 바이든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 같으면 가급적 대선 이전에 감행할 것을 바랄지도 모른다. 트럼프를 꺽는데 유리할 뿐만 아니라 정권을 장악하고 나서도 골치아픈 고민거리 하나가 줄어든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지적 게으름과 전략적 사고의 결여가 스스로 곤경에 빠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처지에 몰리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노이 협상 결렬이다. 회담 결렬 책임을 물어 볼턴을 해임했지만, 결국은 모든 결정과 책임은 대통령의 몫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노이 회담 결렬로 자신의 재선뿐만 아니라 미중패권 경쟁의 중요한 카드도 상실했다. 미국은 당면한 미중패권 경쟁과 북핵문제 해결의 우선순서를 정리하는데 실패했다. 미중패권 경쟁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면 북핵문제는 유연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북한이 중국의 인후부에 박힌 비수와 같은 지정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막기 어려운 핵무기라면 그 방향을 미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현명할 수 있었다. 미국은 목표의 우선순서로 제대로 설정하지도 못했고 노력도 집중하지 못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선 것은 미중패권 경쟁 상황에서 나름의 거래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의 편을 드는 것이었다. 북한이 중국을 버리고 미국 편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많다. 북한은 중국을 신뢰할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해 왔다. 오바마 행정부 중반기까지 미국은 김정일 사후 북한불안정 사태가 발생하면 중국군을 북한에 진입시켜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은 중국에게 넘겨준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북한진입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고 침묵했다. 트럼프를 만나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는 시진핑을 바라 보고 있는 북한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100년의 원수이고 중국은 1000년의 원수라는 김정은의 말은 북한이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전쟁 부터 시작되어 장성택까지 이어진 북한의 숙청사는 중국의 영향력에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이해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만 달성하려고 했기 때문에 20년동안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와 달라진 것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을 통해 미국의 대중 정치인들과의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북한이 11월 대선에 즈음하여 핵실험을 감행하고 그로 인한 미국민의  공포를 이용하여 미국 정치인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핵을 인정하게 하려는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11월 대선 즈음에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미중패권 경쟁과 동북아 안보정세에 격변을 초래할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가도에는 악몽이지만 미국의 대중 군사전략에는 호기일 수 있다. 트럼프의 정치적 이해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사이에 불일치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국과 일본에 미국의 핵무기 배치하자는 여론을 조성할 것이다. 미국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동북아 지역에 핵무기를 배치하여 중국을 봉쇄할 수 있다. 미국의 INF(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폐기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북아 지역에 핵무기를 배치하기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점에서 이런 상황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패권경쟁은 항상 군사적인 양상을 띤다. 이는 국민국가 형성과정의 필연적 현상이다. 서양의 역사진행과정에서 국민국가란 곧 전쟁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중국과 패권경쟁에 군사적인 봉쇄를 제일먼저 구상하고 있는 것도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의 소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중국을 목표로 한 핵무기를 배치하기 용이한 조건이 형성되도록 북한의 핵실험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다.

북한의 핵실험은 관련국에게 각각 다른 전략적 유불리를 조성할 수 있다. 북한에게는 무조건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 핵실험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한국과 중국에게는 거의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미국은 대중 핵미사일 봉쇄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된다.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 배치하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봉쇄의 최전선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중국의 전면적 보복으로 대체불가한 손실을 당할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심추도 북한으로 이동할 지 모른다. 미국은 핵무기 배치 후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여유를 가지고 북한과 협상을 시도할 것이며 북한을 대중국 봉쇄전선에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몸값이 올라간 북한은 한반도 대표선수 자리를 요구할 것이며, 미국은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더라도 핵실험 이후의 북한은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훨씬 많은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노이 협상결렬은 미국의 전략적 실패가 아닐 수 없다. 강경대책이 기분은 시원할 지 모르나, 감내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루게 되는 까닭이다. 

북한이 미국의 11월 대선즈음에 핵실험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녹록치 않다. 잘못하면 공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6.25 기념사, 김대중 대북정책의 조종

문재인 대통령의 6.25 전쟁 기념사를 놓고 이런 저런 말이 많다.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기념사를 보면서 느낀 것은 너무 상반된 내용들이 들어가 있어서 화해를 하자는 것인지 한판 해보자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종전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이야기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체제경쟁이 끝났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도발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을 우습게 보고 있으니 더 이상 까불지 말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어떻게 받아 들일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보면서 북한과 화해를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더 치열한 경쟁과 투쟁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더욱더 강력한 대결을 하겠다는 것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일전에 김여정의 도발에 청와대와 여권이 발끈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대북화해협력이 아닌 대결구도로 갈 확률이 높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는 그런 저의 우려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번 6.25 기념 행사는 마치 나찌의 행사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탁현민이라는 기술자의 솜씨겠지만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정권은 그런 행사를 통해 정통성 확보를 시도한다. 6.25 기념행사는 전형적인 나찌 스타일이었다. 행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파시즘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에 놀랐다.

정권이 파시즘적 경향을 띠게 되면 항상 적을 찾는다. 상대방을 적대시 혹은 악마화하면서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일본이 그런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북한이 그런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려가 우려로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정권을 이끌어 가는 인물들 면면을 보면서 그런 우려가 우려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우울한 전망을 거두기 어렵다.

북한도 고민이 클 것이다. 이제 남한을 조금 달래 놓고 미국과 한판을 벌여야 하는데 남한이 이렇게 올라오니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일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남한정부가 북한에게 도발하라고 대들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한다. 북한으로는 도발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두고 볼일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대통령의 기념사가 마치 종전선언으로 북한에 뭔가 큰 선심 쓰는 것 같이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대통령과 집권세력에게 아부하기 바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6.25 기념사는 김대중의 대북화해협력 정책의 조종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아메리카 제일주의와 프랑스 제일주의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통해 영국을 견제하고자 했다. 1806년 11월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과 일체의 교역, 상거래를 금지했다. 대륙에 거주하는 영국인을 포로로 하고 이들의 제산을 몰수했다.

이탈리아가 영국에 견사수출을 단속하는 조치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나폴레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탈리아왕국의 원견사는 모두 영국으로 간다. …. 내가 프랑스의 제조업자에게 유리하도록 이 원견사를 영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다. 그렇지 않다면 프랑스 상업의 주요한 지주의 하나인 프랑스의 견사공장은 지대한 손실을 받게 될 것이다.

… 나의 원칙은 이것이다. 즉 프랑스제일주의다 …”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일주의를 만들려는 계획은 전적으로 실패했다. 극소수의 프랑스 산업만이 대륙봉쇄의 혜택을 입었다. 서인도제도에서의 설탕수입이 끊어짐으로서 국내산 사탕무우 재배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해외무역의 쇠퇴로 보르도와 여타 프랑스 대서양 항구는 대불황기에 빠졌다. 면과 같은 원료의 입수가 점차 어려워지고 가격도 오르게 됨에 따라 실업이 늘게 되었다. 파산자도 속출했다.

대륙에서 프랑스의 새로운 시장은 해외 구도시의 손실을 메우지 못했다. 프랑스 수출가격은 1805 – 1813년 사이에 1/3 이상이 떨어졌다.

영국은 상당한 곤란을 겪었지만 파멸시키지 못했다. 영국 수출업자들은 남북아메리카 대륙,오스만 제국 및 아시아에서 수지가 맞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계속하여 대륙의 구고객의 일부에게 상품을 공급했다.

심지어 프랑스 육군은 영국 공장에서만 생산되는 소량의 품목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복에 필요한 영국의 가죽과 천을 비밀리에 구매하는 권한을 부여받는 모순에 직면했다.

볼턴 자서전, 아베의 종전선언 반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볼턴 자서전중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 일본의 아베 총리가 트럼프에게 종전선언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을 하고 말고가 아베의 권유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상회담의 중요 안건에 대해서는 수없이 치밀한 검토가 진행된다. 대통령의 말한마디는 그런 검토의 결과인 것이다. 물론 통치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는 하지만 외국의 수상 권유에 의해 이리저리 방향이 바뀌진 않는다. 물론 정치적 흥정에 의해 바뀔 수도 있다. 일본이 미국물건을 엄청 많이 사줄테니까 제발 그것만은 말아 달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전문을 읽어 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종전선언을 막은 것은 볼턴이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아베가 종전선언을 하지 말라고 권유했다는 것을 보고 격분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격분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현 집권세력들이 동북아 안보정세를 어떻게 보는가하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수차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으로 인해 우리 입장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질 확률이 높다는 언급도 했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한반도는 불편해진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남한과 북한이 힘을 합쳐야 하고 일본도 같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일 3국연합 같은 구상도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다.

아베의 종전선언 반대는 그가 앞으로 다가올 폭풍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베는 남한과 북한이 분리된 상태에 있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다가오는 중국의 압력이 어떨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오로지 남한과 북한이 힘을 합했을 때, 일본을 능가할 수 있다는 근시안적 우려만 하고 있는 것이다.

현 일본의 집권세력은 한반도에서 분열이 지속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이니 하는 말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모든 역량을 우선 남과 북의 적대적 관계 청산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이유다.

북한의 비핵화가 되지 않으면 남한의 안보가 위태롭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만일 북한에 핵이 없었으면 이미 전쟁이 났어도 몇 번은 났을 것이다. 전쟁후 북한 땅은 중국에 넘어 갔을 것이다. 미국이 들어와서 전쟁을 하면 북한 땅이 남한으로 넘어와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생각이 없다고 밖에 하기 어렵다. 미국이 중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북한 땅으로 들어가면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 중국과 6.25 전쟁의 교훈이 있으니 아마 북한 땅에 들어가자 마자 제일 먼저 김정은 정권부터 제거할 것이다.

미중패권 경쟁의 무대 그리고 일본의 근시안적 안목으로 볼 때, 남한과 북한은 운명공동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남한 북한 모두 서로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장군들을 몇분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일본군인의 군화발이 남한에 들어오는 것을 택하느니 북한에 적화통일 되는 길을 택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분 들 중에는 한일 군사교류를 극력 반대한 분도 있었다.

볼턴의 자서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군대의 한국진입에 대해서 발언내용이 분명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군대의 한국진입에 관해서는 분명하게 ‘노’라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정쩡한 태도는 미국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아베의 종전발언에서 우리가 파악해야 하는 것은 남북한 문제는 주변국보다는 당사자기 직접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일본 위정자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일본은 남북관계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같은 상황을 보면 일본은, 미중패권경쟁 이후 중국이 동북아에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면,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어서 남북한을 분열된 상태로 그대로 두고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고 나설 지도 모른다.

한편, 여권 일각에서 아베의 종전선언 반대 주장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아베 종전선언 반대를 주장한 것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추진한 것이다. 그것은 현실주의 정치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뛰어 넘느냐 못넘느냐는 남한과 북한의 능력과 실력이다.

집중적으로 아베의 종전선언 반대를 다루면서 국민감정을 반일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어도 한참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문재인 정권이 파시즘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아베의 종전선언 반대를 빌미로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력과 실책을 덮으려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일감정을 동원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볼턴, 무도한 인간의 전형

트럼프의 안보보좌관 볼턴이 회고록을 출판한다고 한다. 볼턴이 누구인가? 신자유주의의 심볼이기도 했다. 볼턴의 행태를 보면서 그 사람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과정이 어떻든 그는 세계 패권국가 미국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사람이다. 트럼프의 행태가 워낙 이상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염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 안보보좌관이라는 직책을 맡았으면 퇴임하자마자 곧바로 대통령을 비난하는 책을 쓴 것을 보고 실망했다.

큰 나라건 작은 나라건 한나라의 책임있는 자리를 맡게 되면 지켜야할 것이 있는 법이다. 적어도 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고 하면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에 대한 의리는 지켜야 한다.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한 사람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안보보좌관 까지 지낸 사람이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는 일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의 자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볼턴이 과연 자신의 의지만으로 그런 일을 벌렸을까 하는 것이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볼턴이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트럼프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스퍼 국방장관이 국민방위군이 시위진압간 부적절한 행동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했다. 일전에 트럼프가 군대를 동원하라는 지시에 대해서 처음에는 별 반발을 하지 않더니 어느 순간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었다. 합참의장 밀리도 마찬가지다. 애스퍼 국방장관과 밀리 합참의장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은 여사일이 아니다. 미국 내부적으로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볼턴이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될 때,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했다. 볼턴과 트럼프는 공화당이긴 하지만 서로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볼턴은 신자유주의자이며 트럼프는 뭐라고 딱히 명명하기 어렵지만 반 신자유주의자 혹은 신중상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처음 볼턴을 임명할 때, 누군가 혹은 어떤 세력인가가 트럼프에게 강력한 압력을 가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 볼턴이 대놓고 트럼프에게 대드는 것을 보고 미국의 권력 내부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여사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흑인 플로이드 사건이후 트럼프의 언행에 대해 매티스 전국방장관, 파월 전국무장관까지 나서서 비난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은 좀처럼 있기 어렵다. 이런 움직임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이 자본가들의 과두정치로 이루어지는 국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미국 정치를 주물러 오던 자본가들의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든 바뀌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볼턴처럼 직접 자기가 모시던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으로 밖에 이야기 할 수 없다. 애시당초 들어가지를 말던가, 들어갔으면 최소한의 신뢰와 의리는 지켜야 하는 법이다. 도둑질에도 법도가 있다고 했다. 볼턴은 철학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남의 압잡이 노릇정도나 하는 무도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