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입장, 전략의 변화인가 전술적 모색인가?

트럼프가 볼턴을 해임하고 리비아식 모델이 틀렸으며 새로운 방법으로 북핵문제에 임하겠다고 트위트에 밝혔다. 트럼프의 이런 입장표명은 최선희가 새로운 타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북한은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는 최후 통첩성 선언을 한 이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 북한에게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북한에 굴복한 것 같은 모습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는 강대국 미국이 북한을 겁박하고 있으며 전략적 우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전략적 우위는 국가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북한처럼 자신의 위치를 잘 활용하면 작은 국가도 언제든지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점에서 북한은 세계외교사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다.

역사상 북한과 같은 국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아마도 중러간 경쟁, 미중간 경쟁 그리고 핵무기라는 여건이 없었다면 북한은 이런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거의 붕괴직전이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통제를 유지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점에서 정치학적으로도 매우 유례가 없는 케이스인 듯하다. 정치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새로운 방법을 언급했지만 그것이 전략적인 노선의 변경을 의미하는지 전술적인 모색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전략의 변경보다는 오히려 전술적 모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실무회담을 한다고 하지만 그 성과여부는 좀 더 두고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당장 이란문제가 있어서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북한은 달래야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내년도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면 트럼프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상황관리 차원에서 새로운 접근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지금현재 북핵문제에 대한 전략적 노선변경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볼턴이해임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폼페오가 남아 있다. 북한은 그간 협상과정을 통해 폼페오를 독초같은 인물이라고 평한 바 있다. 사실상 폼페오가 미국의 안보전략을 좌지우지하게 된 상황에서 북한문제에 대한 전략적 노선변경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우선 순위는 북한보다는 중동이다. 그는 석유자본과 상당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트럼프의 입장변화를 환영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실제 실무협상에 들어가면 그리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번에는 실무급회담에서 북미회담이 결렬될지도 모른다.

북한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영변핵시설로 대표되는 미래핵의 중지
또는 속도조절을 조건으로 내세울 것이다. 그리고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다. 미국에게는 유엔안보리 재제를 풀어달라고 할 것이다. 미국은 현시점에서 북한의 미래핵 중지 또는 속도조절이라는 조건으로 안보리 재제를 풀어주기 어렵다.

아마도 미국은 한국의 금강산 혹은 개성관광과 같은 카드를 제시할 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UN을 갑자기 방문하게 된 이유도 이번 북미협상과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미국이 북한에게 금강산과 개성관광을 조건으로 제시하면 어떻게 할까? 아마도 북한은 그정도 조건은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들어 남북미 3자간의 대화가 있었다. 북한이 북미간 대화에 남한을 끼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한으로서는 일종의 노선변경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을 대화에 포함시키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판단할 확률이 많다.

북한은 이번에는 북미간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남북경협과 같은 안을 제의하더라도 별로 반응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트럼프가 재선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활용해 최대한 이익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그게 어디까지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만일 전면적으로 남북경협을 허용하는 극적인 변화정도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조치는 지금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북핵문제 해결의 길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나 한다.

만일 이번에 미국이 북한을 달래기 위한 전술적인 접근을 한다면 절대로 북미실무회담은 성공할 수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북미실무회담에서 전략적인 노선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다시 열리는 북미회담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 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참석한다고 하는데…

현정부들어 가장 큰 성과는 남북관계 발전이 아니었나 한다. 냉정하게 보자면 현정부는 기대만큼 별로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국내정치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권력구조도 바꾸지 못했고 선거제도 바꾸지 못했다. 개헌도 못했다. 재벌에 대해서는 기존의 박근혜 이명박 정부와 어떤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재용에게 가서 일자리 늘리는데 기여해 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일자리는 중소기업이 더 중요한데 말이다. 국내 경제도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는 선제적인 대응이 중요한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응해서 뭔가 한다고 하는것들이 현정부가 경제에 관심을 돌리게 만든 것 처럼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권익이 늘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법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이제 그 동기가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대외정책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일본의 경제침략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우리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이 나왔고 일본 정부가 문제를 제기하면 사태가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을 했어야 했다. 일본에게 경제침략의 빌미를 준 것은 정부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후 오락가락하다가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것은 훌륭했다. 세상일은 알 수 없다. 일본의 경제침략이 없었더라면 우리 정부가 소재부품 산업에 관심을 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게 세상 이치인 듯 하다.

북핵문제는 현정부가 그나마 자랑할 수 있는 분야였는데, 앞으로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중재역할을 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중재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과 북한이 우리를 이용해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역량과 실력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의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년여동안 우리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과정에 과거보다 역할을 크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과 미국 덕분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통한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중재역할을 하는데 있어서 양자 모두의 신뢰는 그 전제조건이다. 서로 상반된 양자의 신뢰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로는 양자모두로 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양자모두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양자모두의 비난을 받는 것이 어느 한쪽의 칭찬만을 듣는 것 보다 중재자 역할을 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앞으로 북한은 우리 정부를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원래 대화는 양자가 직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려고 하면 우리는 의례 통미봉남이니 하는 용어를 들이대면서 스스로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통미봉남과 같은 용어는 현실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각성과 통찰 결여의 결과다.

북한이 한국을 대화 중재자의 역할에서 내치다시피한 것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하노히 북미정상회담이후 문대통령은 해외방문에서 북한비핵화를 이야기 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발언을 했다. 북미간 대화가 파탄이 난 상황에서 북한이 어떤 입장인가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결과였다. 미국의 눈치를 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중재를 하려면 어떤 일방이 좋다 나쁘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 아파트 사는데 매도자 입장만 드는 부동산 중계사를 통해 거래를 하는 사람은 없다. 국가나 개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북미간 중재를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사이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상식을 지키지 않았다. 아파트를 매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부동산 중계인을 믿을 수 없다고 하기에 딱 맞는 일을 해버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가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최근 북미간 실무회담이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가 아닌가 한다. 아마도 유엔총회에 가서 북미간 회담에 무엇인가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관광 또는 개성공단 등을 북미회담의 윤활유로 제시하려 할 것이다. 아마 그 댓가로 주한미군 부담금을 올려줄지 모른다. 국제정치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우리 정부와 거래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정부는 북한의 신뢰를 상실했고 시기도 상실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만 하려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 그것이 북한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북미간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미국과도 거리를 두고 북한과도 거리를 두면서 한국 나름의 고유한 안보적 역할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 어떤 국가와 지나치게 가깝던지 지나치게 먼 것은 좋지 않다.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멀어야 한다.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북한은 적어도 현정부와는 특별한 접촉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유엔총회에서너무 무리하게 트럼프에게 부탁하다가 옴팡 손해만 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