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부의 정책은 개혁적인가?

과거 우리가 개혁이라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개악이었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조국의 딸 입시부정이나 특혜보다 노무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시행했던 개혁이 왜 이런 결과를 초래했나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노무현 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추진한 몇가지 개혁이 생각난다. 첫번째가 입시개혁, 두번째가 법관교육 개혁, 세번째가 의사교육개혁이었다. 다른 것도 있다. 공무원 임용개혁도 있었다.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다른 방법으로 공무원을 임용한다고 했다. 여러 개혁중에서 행정고시를 폐지하겠다는 개혁은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하고 그냥 유야무야 되었다.

첫번째 입시개혁은 공부말고 다른 것을 잘해도 대학을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수시와 정시로 나뉘어 입시가 이루어졌다. 수시는 거의 복마전처럼 되어 버렸다. 대학이 어떻게 학생을 선발하는지 알기도 어려웠다. 학부모들은 매일 입시설명회를 쫓아 다녔다. 대학교수를 부모로 둔 아이들이 대학에 쉽게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수시는 특권과 특혜를 제도권내로 수요한 제도였다. 조국의 딸은 그런 예중의 하나이다. 아마 전수조사를 해보면 별의별 경우가 많을 것이다. 조국의 딸은 그런 경우중 하나에 불과하다. 일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수시가 특혜와 특권의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비판은 자신에게 해야 한다. 그런 특권과 특혜가 일상화되도록 만들었던 것은 참여정부때였기 때문이다. 이해찬이 당시에 하나만 잘해도 대학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두번째는 의전원이다. 의과대학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학부과정을 마치고 의전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지금 의전원은 실패한 제도처럼 된 것 같다. 다시 의과대학제도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의전원 입학도 특혜와 특권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들 자식들이 다른 아이들 보다 훨씬 의전원에 들어가기 쉽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의사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끌땅을 한 적이 적지 않았다. 생명을 다루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좋은 친구들을 둔 것 같다.

세번째는 소위 로스쿨-사법시험이다. 로스쿨은 유일하게 미꾸라지가 용이 될 수 있는 통로였다. 그런데 고시낭인을 배출하며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사법고시에 뛰어 들었다가 인생을 망친다면 로스쿨을 만들고 법관 배출통로를 일원화 했다.

로스쿨도 특혜와 특권이 상당히 심각하게 작용하는 분야라고 한다. 우선 등록금이 비싸서 보통사람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데다가 입학과정에서 아무래도 법관의 자식들이 훨씬 유리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법관도 세습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고시낭인 문제가 로스쿨 만들었던 매우 큰 이유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로스쿨도 낭인만드는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로스쿨 졸업생중에서 일정한 비율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머지는 낭인이 된다. 결국 매년 로스쿨 입학생의 절반정도는 다시 고시낭인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로스쿨까지 했으니 변호사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변호사 시험을 5번만 볼 수 있어서 그 이후에는 아예 추방되어 버린다고 한다.

결국 참여정부가 개혁이라고 시도한 중요한 개혁 모두 결국 특권과 특혜를 제도화시키는 개악이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잘 모르겠다는 답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의 참여정부 대표적 개혁 세가지가 모두 실패한 것 같다는 것이다.

제도나 개혁이 실패하면 그런 개혁과 제도를 만든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세가지 개혁 모두 진보정부가 아니라 기득권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이었다. 결국 개혁정부가 한다고 해서 모두 찬성하고 보수 정부가 한다고 해서 모두 반대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똑똑해지는 수 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안을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언론도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파시즘적 경향이 판치는 것 같다. 문제는 보수뿐만 아니라 자칭 진보라고 하는 세력들 중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는 것이다. 선전선동으로 국민을 우민화시키고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거기에 소위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앞장선다. 나찌도 그렇게 했다. 히틀러도 처음에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그래서 국가사회주의라고 한다. 좀 한다고 했던 지식인들 모두 나찌를 지지했다. 지금 이땅의 지식인들이 보이는 행태도 나찌 당시의 지식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당시 독일 아니 세계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던 사람들도 그리했다.

한국의 진보정부를 나찌즘적 형태와 비교하다니 하면서 분개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세하게 들여다 보라. 지도자를 신격화시키는 행태나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키려고 하는 행태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을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진보나 보수 모두 기득권화 되어 버렸다.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운동권에게 더 이상 기대와 희망을 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더 빠르게 혹은 더 나쁘게 기득권화되어 버린 듯하다.

결국 거기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민의 수준이다. 진영과 이념에 매몰되지 말고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국민의 수준이 지금 우리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지금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