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조건들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우리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다. 오로지 북한에 대한 비난만이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말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거의 모든 시도는 친북좌파라의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한국전쟁으로 대표되는 극우보수적 시각만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대학의 운동권을 장악한 주사파 운동도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주사파 계열의 사고방식과 극우세력의 사고방식은 서로 닮은 꼴이다. 그들이 서로 견제를 하면서 변증법적 통일과 객관성을 담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서로 같은 것들끼리 무슨 정반합이 가능하겠는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의주장이 아니라 연구와 공부가 필요하다. 주사파나 극우세력이나 공부하지 않고 주의주장만으로 선입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북한을 바라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로 동태눈을 하고 중간지점에 가 있다고 해서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동태눈을 제거하는 노력이 먼저인 것이다. 그 동태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고민을 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 머리위에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들이 우리말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생각하는 이해관계를 냉철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북한이 처한 국제정치질서와 남한이 처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내 문제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우리의 관점에서 지극히 한국적 사고방식에 입각해 바라볼 경우, 실패는 불가피하다.

이제까지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예측한 적이 있었던가?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북한이 이룩한 성취는 대단하다. 남한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 이상으로 북한도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 핵보유국가가 된 것이다. 핵보유국가는 기술이 있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다. 전국가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남한은 할 수 없는 것을 북한은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북한핵문제를 바라보려면 왜 북한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처한 국제정세와 우리가 처한 국제정세는 다르다. 주변정세만 다른 것이 아니라 북한은 주변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도 우리와 달랐다.

북한이 주체라고 내세우는 말은 단순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삶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주체라는 말이다. 연구자나 관찰자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이미 소련과 중국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했다.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때 허가이를 위시한 소련파를 숙청했다. 그 당시는 스탈린도 건재하고 있던 때였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마자 바로 중국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리고 친중파도 모두 숙청해서 제거했다.

어떤 것에 촛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김일성의 권력강화로 볼 것인가 아닌면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결단인지는 보고 싶은대로다. 1960년대 이후 중국과 소련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할 때, 북한은 등거리 외교를 했다. 북한이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내부에 친소파도 친중파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자고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그럴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이 직면한 상황이나 1960년대 북한이 처한 상황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은 해 낼 수 있었지만 한국은 할 수 없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북한이 핵 개발을 결심한 것도 냉전의 붕괴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중국과 소련의 핵우산으로 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망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중국은 북한을 냉정하게 내쳤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사람의 미친 권력자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결과다. 국가의 존속을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이다. 결단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마치 중국이 북한을 좌지 우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소련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을 향하고 있지만 방향만 틀면 바로 중국이다. 북한은 단 한번도 중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라.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친중파인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한 일이다. 이복형제로 중국이 뒤를 봐주고 있던 김정남을 보란 듯이 제거한 것은 중국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연줄을 잘라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도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나 아니니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국제정치학자중에서 중국이 북한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것 같다. 마치 미국이 한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이 북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존도 오래되면 습관이되고 성격이 되는 법이다. 항상 의존적인 삶을 살았으니 남도 다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부역해서 잘먹고 잘산 사람도 있지만, 만주에가서 풍찬노숙하며 일본과 싸우다고 굶어죽거나 맞아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장 잘못된 이유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본다. 당연히 정책목표가 잘못설정되고 구체적인 정책도 엉망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출발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먼저 버리는 일이다.

미중패권경쟁 시대에 남북 평화협정이 필요한 이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우리가 살아 남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면 한미군사동맹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면 중국과의 교역규모를 줄여야 한다. 둘다 어렵다. 딜레마다.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경우, 우리는 곧장 중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 확대에 직면한다.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를 언급하면서 주한미군 감축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은 상황이 불리하거나 어려워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고도 남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라 민주당이 들어서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일 우리가 미국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다가, 미국이 싹 빠지면 우리는 혼자 남아서 중국과 대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변국과 과거 왕조시대의 주종관계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주종관계의 정도와 성격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중국은 한반도를 상호호혜적인 관계로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지역에서 중국의 위협과 강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다. 핵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를 가장 반대했던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언론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중국의 안보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장에 격렬하게 반대해 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에 틈이 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북한 핵무기 제거시도를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중국을 이용한다고 하고 있지만 실은 중국에 이용당한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대신했을 뿐이다.

중국과 교역규모를 줄여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시장을 개척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시장은 없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인도 등의 시장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지만 중국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시장은 북한이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쉽지 않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전국민적 지지가 절대적인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과거 역사의 족쇄가 미래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은 바뀌었으나 우리의 주도세력들은 여전히 과거의 환영속에 살고 있다.

일본과 교역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일본이 한국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한국이 일본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될 경우다. 지금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일본보다 더 잘 살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일본의 주류들은 한반도가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때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일본이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일관계는 지금보다 더 나아가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로지 힘의 역학관계로만 일본 주류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일본과 관계를 잘 가져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일본과 미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서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상황을 넘어 섰다. 일본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지 일본의 눈치를 보면서 기술과 자본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한번 구걸하면 계속 구걸하게 된다. 언젠가 그 고리를 끊지 않으면 넘어설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일본과 맺어오던 관계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것이다. 일본과 과거의 관계에 머물러 있으면 도약할 수 없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가장 좋은 방안은 남한과 북한이 관계를 정상화하여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고 공동경제발전을 도모하여 일본을 뛰어 넘는 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통일은 당분간 어렵지만 경제적으로는 얼마든지 남북한이 서로 협력할 수 있다.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면 일본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력을 형성할 수 있다. 그때가 되어야 일본도 한국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 일본은 남북한의 접근을 최대한 방해하고 저지하려 할 것이다.

남북한이 군사적인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경제적인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해적인 대외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미국은 그런 북한을 자꾸 중국쪽으로 밀어 넣고 있다. 미국 외교정책의 한계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전문가들이 일본의 영향하게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북아정책 전문가 그룹들은 일본의 지원하에 연구를 했다. 돈주는 사람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과거 일본통이던 아미티지 국무부부장관이 한국은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게 붙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버젓이 내기도 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일본의 영향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계속되면 우리는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북한이 힘을 합하는 일이다. 평화협정은 미국과 북한이 맺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평화협정이 필요한 것은 남한과 북한이다. 남한과 북한이 먼저 평화협정을 맺고 그 이후에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다. 남한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서는 한미군사동맹관계의 성격이 변해야 한다. 전작권전환은 그 출발점이다.

남한은 북한과 힘을 합해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상호 호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남북한은 절대적으로 서로 필요하다.

냉전시대에는 한미일 3각 동맹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중패권경쟁의 시대에서 한미일 3각구도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한미일 모두 중국과 경제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중국을 봉쇄하는 방식으로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아내기 어렵다. 기존의 판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그 출발점이 남북평화협정이다.

축출인가 영전인가 ? 최종건의 경우

우리는 네개의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첫번째는 코로나 문제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다. 둘째는 경제문제다. 경제상황이 갈수록 나빠진다. 셋째는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문제다.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진다. 넷째는 한미관계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이번정권에서도 전작권전환도 물건너 간 것 같다.

코로나, 경제, 정권의 정당성 문제는 진행되는 과정을 알아채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미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통상의 국제정치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 그리고 대중들이 생각하고 아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매우 많은 요소들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각종의 암수들도 횡횡하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사기 그리고 속임수가 횡횡하는 것이 국제사회다.

상대국가가 하는 말을 믿는 것은 바보다. 우리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어떤 거짓말도 훌륭한 외교적 자질이라고 평가받는다. 트럼프가 우리나라에게 방위비 올리는 것이 맨하탄 빌딩 월세 받는 것보다 쉬웠다고 했던 말은 단적인 예이다.

국제사회에서 믿고 의지할 상대는 아무도 없다. 그것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일본이든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다. 미국, 중국, 일본, 북한 모두 자국에게 이익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말이든 다 한다.

미국은 현재의 한미관계를 공고하게 유지하여 중국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는 교두보로 만들고자 한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분리시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한다. 일본은 동북아의 지역강국으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미국이 한국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게 하려한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이용해서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려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이 동북아지역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각국의 입장이 이처럼 각각 다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최대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힘의 균형이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무조건 친미, 무조건 친중이라는 식으로는 우리의 이익을 확보하기는 커녕, 현재의 상황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이 한미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려고 하는지 의문스럽다. 위태위태한 것 같다. 최종건 청와대 군비통제비서관이 외교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그동안 김종현 안보실 2차장과 최종건 비서관 사이에 서로 의견충돌이 심하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최종건이 외교부 차관으로 간 것은 외형적으로는 승진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를 포함한 정부부처에서 차관이란 실무적인 행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최종건은 남북의 문제를 담당하다가 일개부처의 실무책임자로 간것이다. 정통관료라면 당연히 승진이겠지만 교수인 최종건에게 외교부 차관은 역할의 축소에 불과하다. 차라리 외교부 차관을 하느니보다 그냥 대학에 돌아가서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하겠다. 다음에 장관을 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할지 모르나 그러려면 대학교수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옳지 않다.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

최종건의 외교부 차관으로 방출과 함께 코로나로 인한 한미연합연습도 제대로 치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작권전환을 위한 최종점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론에서는 전작권전환을 위한 최종점검을 하지 못했으니 전작권 전환도 문재인 정권 임기내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청와대내에서 김현종과 최종건의 갈등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남북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종건과 한미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현종 사이에서 저울추가 한미관계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한미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은 중의적이다. 한미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는 말에는 그야말로 한미간 상호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미와 한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더 우선시함으로써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다는 식민지적 근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미관계를 중요하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의 눈에 들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지극히 사적 인간들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사이에서 서슴지않고 한미관계를 선택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한미관계란 앞에서 언급한 식민지적 근성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최종건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그나마 청와대 안보실에서 정책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축출(?)된 것 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문재인 정권은 주변정세의 변화나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과 같은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미국의 마음에 들기 위한 폭주기관차를 달릴지도 모른다. 특히 권력의 정당성이 위협을 받을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전작권전환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면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전작권전환 방식은 문제가 많다.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완전하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군 장교들이 작전지휘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그냥 그대로 현재의 상황에 머무는 것보다는 낫다. 갈지자를 그리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방위비문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트럼프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수도 있다. 현재 청와대의 분위기라면 그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아닌 방위비 언급을 하는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노파심 때문이다.

한미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권이 백선엽을 조문한 배경과 미국이 한국을 다루는 법

나는 친미주의자다.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미국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반도에 몰려올 각종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긴밀한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한반도라 함은 남한과 북한을 모두 다 포함한다. 북한도 앞으로 다가오는 위협에서 혼자 감당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미국과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이 한국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백선엽이다. 미국 NSC가 예외적으로 백선엽이 한국이 민주공화국이 되는데 기여했다고 하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말을 하려면 바로해야 한다. 한국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미국이다. 백선엽은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 군사독재의 초석역할을 한 사람이다. 가장 심각한 그의 문제는 한시대를 대표하는 부정축재자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백선엽 같이 축재를 했으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을 것이다. 미국은 자국내에서는 적용하는 기준과 다른 나라에 적용하는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분명하게 하자 한국의 민주화는 시민들이 만들어 냈다. 4.19, 5.18, 6.29, 촛불혁명까지 미국은 독재정권을 지지했고 시민들은 민주화를 만들어냈다.

비건이 한국을 방문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그의 본색을 알게 되었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거부한 상황에서 체면이 깍일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그는 반중전선에 한국이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본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 NSC가 전례없이 백선엽의 죽음을 극진하게 다루는 것은 비건이 한국에게 반중연합전선에 가담하라고 요구한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미국은 백선엽의 죽음을 한국 친미세력의 결집 기회로 활용하려 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지배계층이 백선엽과 같이 반민중 친미전선에 나설 것을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백선엽을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한국의 지배계층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의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문재인 정권이 정세균, 이해찬, 서훈, 노영민 등 정권 핵심실세를 보내 백선엽을 조문한 것은 앞으로 미국의 요구에 따라가겠다는 것을 미리 밝혀준 것인지도 모른다.

죽창가를 부르던 문재인 정권이 갑자기 친일의 영수라고 할 수 있는 백선엽을 조문한 것은 여사일이 아니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표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른 무엇으로 문재인 정권의 백선엽 조문을 해석할 수 있겠는가? 정치는 상징이다.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밝히기 전에 미리 그런 전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을 하는 법이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것임을 백선엽 조문으로 보여준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갑자기 이렇게 행동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에게 약점이 잡힌 것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들어 미국이 한국을 다루는 방식이 마치 중남미 국가와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인민대중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권력층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다. 미국이 남미 권력층과 지배층을 장악할 때 사용한 예외없는 방법이 바로 부정부패였다. 남미의 권력층은 우르과이 정도를 제외하고 하나같이 부패했기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권의 상층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부정부패의 의혹은 그래서 걱정스럽다. 문재인과 조국 만세를 부르는 대깨문들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평생 비판해 왔던 미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다루는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한국에서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친일 친미 세력을 이용해서 한국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한국에 유독 정치적 격변이 많은 것은 한국의 민중들이 정치적으로 매우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벌어진다.

한국은 오랫동안 성리학의 영향아래 대의명분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나라다. 미국이 친일 친미세력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을 받게 되면, 민중들의 호감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호감이 계속 하락해왔던 것이 무슨 이유인지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선엽 조문을 하지 않은 정치인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백선엽 만세를 불렀다.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을 보면 그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 만하다. 이낙연이 조문했다는 보도는 듣지 못했다.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이낙연이 앞으로 상당한 고전을 겪을 지도 모르겠다. 잘못하면 대선까지 가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잘 두고 볼 일이다.

주미대사 이수혁을 소환하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머어마한 사건들이 쓰나미 처럼 몰려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이수혁 주미대사의 실언이 아닌가 한다. 그는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81536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주미대사가 했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했다. 미국무부는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매우 격앙한 태도로 이수혁의 발언을 비판했다.

학자나 재야인사라면 이수혁 대사가 했던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미대사가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 대사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은 함부로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이수혁이 우리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을 여과없이 쏟아낸 것이리라.

앞으로 이수혁은 주미대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은 이수혁의 실언을 빌미로 한국에게 강력하게 나올 것이다. 안그래도 미중 패권경쟁의 와중에서 우리가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는데 앞으로 더 어려워지게 생겼다.

이수혁이 미국과 중국중에서 우리가 선택한다는 말도 틀렸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선택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안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미국에 어떤 경우에는 중국과 입장을 같이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겠다는 것과 둘중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겠다고 하는 것은 차이가 많다. 먼저 앞으로의 국제관계에서 우리는 누구를 선택하고 말고해서는 안된다.

어느한쪽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느한쪽을 배제할 수 있는 입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이수혁 대사는 당연히 미국과 의 관계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는 정도의 말만 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와중에 불이익이나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항상 조심에 조심을 더해야 한다. 최근에 문정인 연대 교수가 미국과의 관계에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가 정말 미국과 관계를 정리하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우리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미국에 자극적인 소리를 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문정인이 미국을 위해 우리의 입장을 더 곤란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외교에 대한 공부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공식적인 직함을 가진 사람이 해서 되는 이야기와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좀 더 독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안보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좀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남북관계도 미국의 입장에 따라가기 보다는 남북의 화해를 통한 평화분위기 조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우리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과 관계를 멀리하고 중국과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는 교역의 측면을 고려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해서 중국과 교역에 손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수혁의 실수는 외교관으로서는 치명적이다.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이번 사건은 시간이 지나가면 파장이 줄어들 성격이 아니다. 정부가 즉각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우리의 손실이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은 사사건건 이수혁의 발언을 이용해서 각종 협상에서 유리하게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수혁처럼 분별력없는 대사는 소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려면 먼저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과 싸워왔다. 2000년 넘는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중국은 계속 커지고 우리는 점점 작아졌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런 역사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중국과 같은 강자들에게 기대려는 습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조선조 당시 노론의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이 그저 성리학 때문일까? 압도적인 힘을 벗어나기 어려우니 거기에 적응하기 위한 논리체계를 만들고 거기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였는지도 모른다.

조선을 망하게한 그 습성이 그대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고 지금은 미국과 관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습성이 나라를 망하게하거나 어찌어지 하더라도 겨우 유지하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미국도 지금의 중국도 우리가 따라가야할 길을 가고 있는 나라는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냉전이후 거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음대로 행동했다. 소련의 붕괴로 인해 미국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했다. 대안으로서의 현실사회주의 붕괴는 결국 미국의 자본주의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형식만 갖추어졌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민주주의도 형식과 내용이 모두 서로 갖추어져야 하는 법이다. 그런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도 불완전하다. 형식은 갖추어졌는지 모르겠으나 내용은 부실하기 여지없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월스트리트 과두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의 미국민주주의는 영국 전성기의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질적인 면에서 후퇴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이 이렇게 퇴행해버린 것은 소련의 붕괴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소련대신 중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으나 소련과 중국은 차이가 많다. 지금의 중국은 사실상 사회주의라고 하기 어렵다. 자신들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이야기 하지만 역사적 연속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중국은 청나라를 이은 또 다른 왕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소련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당시 세계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중국이 뭔가 애매모호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등장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인류의 역사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그저 힘세고 강력한 국가의 등장일 뿐이다. 힘의 역학관계만 작동하고 있을 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미국과 중국은 다르다. 미국이 교활한 착취구조를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나 그저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가치가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은 세계사적 의미를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사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패권경쟁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하는 역사발전의 의미를 구현해 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저 강대국으로서 중화사상의 연속이라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이어 받더라도 새로운 역사적 진보를 이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중국이 역사발전에 기여하기 보다는 자국의 힘만 강화하고 약소국을 억압하는 구조를 공식적으로 공고화 할 수 있다는 일반의 우려 때문이다. 미국은 적어도 억압구조를 만들더라도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노골적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헤게모니는 서서히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기대와 현실은 다른 법이다. 기대에 머물러 현실을 무시하면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주변국의 눈치를 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국에 의지하거나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과 삶의 방식을 우리가 스스로 창출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미국과 중국을 통해서 우리가 잘 살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굽히지 않고 미국을 믿고 중국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 둘 다 거기서 거기다.

일본은 쌀미자를 미국의 미자로 쓴다. 우리는 아름다울 미자를 쓴다. 한국은 미국을 좋아해서 아름다울 미자를 쓰고, 일본은 미국을 얕잡아 봐서 쌀미자를 쓴다고 하는 말이 있었다.

미국은 우리의 이상향이었다. 요즘들어 미국을 보면서 지금의 미국이 과연 내가 생각했던 나라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첫번째는 트럼프가 막무가내식으로 전세계를 윽박지르는 것을 보고 그들이 주장하던 이상과 가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실망을 하게 되었다. 무례하게 방위비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저런 국가와 어떻게 동맹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힘이 아니라 존경을 받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맹주가 이상과 가치가 아니라 힘과 협박으로 동맹국을 억압한다면, 그런 동맹은 오래가기 어렵다.

두번째는 코로나19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 저렇게 대응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사전에 충분하게 경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거의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미국이 당한 피해는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서 피해가 커진 것이다. 미국의 관련 관청과 전문가들은 이미 위험성을 사전에 예고했다고 한다. 그것을 트럼프가 무시한 것이다.

세번째는 미국 경찰이 별 잘못도 없는 흑인을 죽인 사건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미국의 흑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인종차별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차원이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안의 중대성을 보았을 때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이렇게 폭동의 수준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시위대에 사살 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다. 마치 1980년 광주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이란 사회가 언제 어떻게 찢어지고 분열될 지 알 수 없는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찰이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통상 건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국도 공안의 힘이 세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이란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도 경찰의 힘이 세다. 그것도 미국이란 체제가 겨우겨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상태가 크게 다르지 않다. 둘다 불안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군부독재 시대에 경찰의 힘이 대단했었다.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둘 다 저런 모양이니 앞으로 누가 패권을 확보하던지 세상은 편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G7 회의에 우리나라를 옵저버로 초대한다고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분명하다. 중국에 대한 봉쇄라인을 구축하는데 한국이 앞장서라는 이야기다. G7이 중국을 봉쇄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지는 미지수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 모두가 다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이미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정점을 지났다. 정점에 올라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내려오는 시간은 예상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미국은 중국봉쇄를 통해 흔들리는 패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국은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으로 무너지고 있는 양상이다. 코로나19사태와 인종차별문제는 미국이 심각한 내부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의 번영은 전세계의 희생을 대가였다. 미국 내부에서는 흑인과 소수인종들의 희생,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남아메리카 각국의 희생을 대가로 미국의 풍요는 유지될 수 있었다. 전세계가 미국의 시장이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체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그런 체제는 가치와 이상이 아니라 강압과 강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전세계 군사비의 절반을 미국이 쓴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이 누리는 헤게모니의 정체가 바로 군사력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경쟁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다.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간혹 당신의 미국관, 당신의 중국관이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을 만날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관과 중국관이 아니라 당신의 한국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떨어져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지 않으면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들어가기 십상이다. 중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미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미국은 왜 이시점에 중국과 대결을 하려할까?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 상태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1990년 냉전종식이후 가장 거대한 국제정치적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심하다. 지금 윤미향 사건을 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사기꾼과 협잡꾼 때문에 격랑의 국제정치적 변화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니 한심할 따름이다.

지금 미국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사생결단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미국이 중국과 냉전구도를 만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먼저 코로나19가 아직 잡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거의 최악의 상황에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나선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코로나19나 경제위기보다 오히려 중국과의 패권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건강이나 경제위기는 극복하면 되는 문제다. 그러나 패권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 아마 미국 주류세력들은 바로 그런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같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시점에 신냉전구도를 만들어 가려는 이유인 것이다.

그에 앞서 이번 미중 신냉전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향이 작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이 중국에게 냉전적 대결을 하려고 하는 것은 미국 주류세력 전체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은 이미 오바마 정권 때부터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공을 들여왔다. 그때도 미국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언젠가 결정적인 시점이 오면 중국을 봉쇄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한일간 지소미아도 바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군사적 동맹체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본다.

미국의 주류들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냉전을 결심했을까? 우리가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미국의 절박함이다.

무엇이 미국을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첫째는 시기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중국을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본 것이다. 이미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했다고 하고 앞으로 10년 정도면 미국은 화폐 패권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좀 더 있으면 견제고 뭐고 할 수도 없이 두 눈 뜨고 어어 하다가 당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미국이 앞으로 상황이 매우 나빠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미국의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 중국의 부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중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신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맹국과 연대를 강화해서 중국에 대항하고자 한다. 동맹국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몇 수 위다. 이미 그런점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미국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사건에 미국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홍콩시위사건을 통해 미국이 노린 것은 홍콩을 독립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도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코로나19도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중국은 그런 미국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며 읽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보편적 가치 부족과 결여를 계속 공격하고 있는데 중국은 미련하게 오히려 자신들이 보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게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원래 수천년동안 세력정치를 해온 나라라서 그런 대응은 잘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국보다 미흡한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의 공세에 호전적인 반응을 하는 것은 이미 한번 혼난 사람이 다시 혼날까봐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열등감이 폐쇄적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바고 그런 점을 미국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장할 논리는 무엇인가?

정경분리다.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라는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공산당 독재나 미국의 월스트리트 과두정이나 크게 보면 그게 그거다. 모두 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뿐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우리의 홀로서기

미국의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을 구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느낌으로는 경제적 성격의 NATO와 비슷하다. 전통적인 방식인 군사적인 봉쇄가 아니라 경제적인 봉쇄를 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을 위시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들로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한국에게는 이런 경제번영네트워크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미국의 의도처럼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의 구매력이 미국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아무리 미국 우방국을 중심으로 단합한다고 해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중국 시장을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의 시장은 포화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만일 우리에게 기회가 된다면 과거 1970년대 처럼 중국대신 우리가 미국의 생필품과 같은 소비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되는 것이다. 지금 가발만들고 신발 oem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소냉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본 것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서방세계의 진열장이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서방세계의 show window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이 격심해지면서 새로운 전선으로 등장하고 있는 곳은 대만이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미국은 대만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대만에게 지원을 하는 만큼 한국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끼여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는 대만처럼 미국과 중국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게 한국은 전선이 아니라 후방이나 마찬가지다. 결력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후방보다 전선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을 후방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 서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일국 양제를 거부하는 것으로 경계선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경계선에 설 수 없다.

우리나름대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상에 서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함으로써 전략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해야 전략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이 안보적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지닌다면 미국도 한국에게 함부로 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방위비 더 내놓으라고 말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나라는 필리핀이다.

최근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으로 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위상을 확보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며 중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으며 미국도 무시하지 못한다.

각국은 각자의 전략적 상황이 다르다. 각자의 전략적 이점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최상의 방법은 지금은 최악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에 함께하게 되면 전작권은 즉각 반환하고 연합사도 해체해야 한다. 자국의 방어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미중패권경쟁에서 전략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안보적 홀로서기가 가장 중요하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가는 우리의 미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느냐고 하면 통상 미국이 더 중요하다 미국과 더 친하게 지내야 하고 중국을 멀리해야 한다. 혹은 중국이 앞으로 더 강력한 국가가 될 터이니 중국과 잘 지내야 우리가 먹고 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뉜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미국편이고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중국편이다.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고 평가할 것인가는 우리가 미국편을 들것이냐 중국편을 들것이냐 하는 이야기기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상관없이 앞으로 세계질서를 움직여나갈 국가다. 이들 양국이 만들어 가는 국제질서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를 미리 예측해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미국과 중국은 더이상 상대방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이 아니다. 미국은 이기회에 중국의 도전을 따돌리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고, 중국은 미국에게 그렇게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윤리적 평가의 대상이거나 감정적 선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이 이익이냐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전에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확고하게 구축한다.

둘째, 중국이 미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패권을 차지한다.

셋째, 미국과 중국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서로 비슷비슷한 상황을 유지한다.

네번째, 미국과 중국의 힘이 쇠퇴하고 유럽과 인도와 같은 지역이 부상한다.

첫번째 상황은 가능성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자신이 있다면 지금처럼 보호무역주의적 경향으로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력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완전하게 우위에 설 수 있는 기간이 10년 정도라고 한다.

나는 미국이 이번에 보여주고 있는 경제위기가 미국 쇠퇴 시기를 더 앞당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주기적 경제위기다. 문제는 미국이 경제위기에 빠져서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상대적으로 중국은 타격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1930년 대공황 때에도 소련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은 동안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이번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른다. 일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930년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방식의 경제위기는 없었다. 대응도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간도 훨씬 많이 소요될 것이다.

두번째, 중국이 미국을 무너뜨리는 상황도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묘하게 서양과 동양의 경쟁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채 질질 끌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으로 반반 나뉘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베트남전을 종료하고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당시의 경제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이어서 중국을 세계시장에 편입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지금같은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한 시장을 포기할 경우 지금과 같은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아무리 큰 나라라고 해도 미국과 유럽시장의 상당부분을 상실한 상황에서 경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국과 미국은 어느정도에서 서로의 영향력을 인정해주는 상황으로 타협할 수도 있다. 그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영향권,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영향권으로 공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입장에서는 가장 걱정되는 경우다. 미국이 이기거나 중국이 이겨버리면 그쪽하고 잘 지내면 된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어정쩡하게 세력을 유지하는 경우 우리의 입장이 어려워진다. 우리는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를 해소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경제적이익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보를 독자적으로 지켜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의 안보상황에서 핵무기 정도라도 보유하지 않으면 어떤 국가도 독자적인 안보를 자신하기 어렵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소위 남북동맹이라도 구상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통일이라는 감성적 접근보다 이익과 공동번영이라는 실질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네번째의 경우는 미국과 중국이 싸우다 제풀에 지친 사이에 세계가 다극화된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남북 아메리카, 서유럽, 동유럽, 중국, 인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력으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우리입장에서는 세번째 어정쩡한 관계보다 네번째 다극화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평상시 생각하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