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 이수혁을 소환하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머어마한 사건들이 쓰나미 처럼 몰려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이수혁 주미대사의 실언이 아닌가 한다. 그는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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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주미대사가 했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했다. 미국무부는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매우 격앙한 태도로 이수혁의 발언을 비판했다.

학자나 재야인사라면 이수혁 대사가 했던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미대사가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 대사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은 함부로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이수혁이 우리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을 여과없이 쏟아낸 것이리라.

앞으로 이수혁은 주미대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은 이수혁의 실언을 빌미로 한국에게 강력하게 나올 것이다. 안그래도 미중 패권경쟁의 와중에서 우리가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는데 앞으로 더 어려워지게 생겼다.

이수혁이 미국과 중국중에서 우리가 선택한다는 말도 틀렸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선택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안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미국에 어떤 경우에는 중국과 입장을 같이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겠다는 것과 둘중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겠다고 하는 것은 차이가 많다. 먼저 앞으로의 국제관계에서 우리는 누구를 선택하고 말고해서는 안된다.

어느한쪽을 선택한다고 하는 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느한쪽을 배제할 수 있는 입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이수혁 대사는 당연히 미국과 의 관계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는 정도의 말만 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의 와중에 불이익이나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항상 조심에 조심을 더해야 한다. 최근에 문정인 연대 교수가 미국과의 관계에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가 정말 미국과 관계를 정리하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우리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미국에 자극적인 소리를 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문정인이 미국을 위해 우리의 입장을 더 곤란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외교에 대한 공부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공식적인 직함을 가진 사람이 해서 되는 이야기와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좀 더 독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안보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좀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남북관계도 미국의 입장에 따라가기 보다는 남북의 화해를 통한 평화분위기 조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우리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미국과 관계를 멀리하고 중국과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는 교역의 측면을 고려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해서 중국과 교역에 손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수혁의 실수는 외교관으로서는 치명적이다.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이번 사건은 시간이 지나가면 파장이 줄어들 성격이 아니다. 정부가 즉각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미국의 압력으로 인해 우리의 손실이 더 커질 것이다. 미국은 사사건건 이수혁의 발언을 이용해서 각종 협상에서 유리하게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수혁처럼 분별력없는 대사는 소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려면 먼저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과 싸워왔다. 2000년 넘는 역사를 살펴보면 결국 중국은 계속 커지고 우리는 점점 작아졌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런 역사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중국과 같은 강자들에게 기대려는 습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조선조 당시 노론의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이 그저 성리학 때문일까? 압도적인 힘을 벗어나기 어려우니 거기에 적응하기 위한 논리체계를 만들고 거기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였는지도 모른다.

조선을 망하게한 그 습성이 그대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고 지금은 미국과 관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습성이 나라를 망하게하거나 어찌어지 하더라도 겨우 유지하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미국도 지금의 중국도 우리가 따라가야할 길을 가고 있는 나라는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냉전이후 거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음대로 행동했다. 소련의 붕괴로 인해 미국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데로 마음껏 했다. 대안으로서의 현실사회주의 붕괴는 결국 미국의 자본주의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형식만 갖추어졌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민주주의도 형식과 내용이 모두 서로 갖추어져야 하는 법이다. 그런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도 불완전하다. 형식은 갖추어졌는지 모르겠으나 내용은 부실하기 여지없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월스트리트 과두정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의 미국민주주의는 영국 전성기의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질적인 면에서 후퇴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이 이렇게 퇴행해버린 것은 소련의 붕괴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소련대신 중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으나 소련과 중국은 차이가 많다. 지금의 중국은 사실상 사회주의라고 하기 어렵다. 자신들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이야기 하지만 역사적 연속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중국은 청나라를 이은 또 다른 왕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소련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당시 세계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중국이 뭔가 애매모호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등장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인류의 역사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그저 힘세고 강력한 국가의 등장일 뿐이다. 힘의 역학관계만 작동하고 있을 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미국과 중국은 다르다. 미국이 교활한 착취구조를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나 그저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가치가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은 세계사적 의미를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은 세계사에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패권경쟁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하는 역사발전의 의미를 구현해 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저 강대국으로서 중화사상의 연속이라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이어 받더라도 새로운 역사적 진보를 이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중국이 역사발전에 기여하기 보다는 자국의 힘만 강화하고 약소국을 억압하는 구조를 공식적으로 공고화 할 수 있다는 일반의 우려 때문이다. 미국은 적어도 억압구조를 만들더라도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노골적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헤게모니는 서서히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기대와 현실은 다른 법이다. 기대에 머물러 현실을 무시하면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주변국의 눈치를 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국에 의지하거나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과 삶의 방식을 우리가 스스로 창출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미국과 중국을 통해서 우리가 잘 살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굽히지 않고 미국을 믿고 중국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 둘 다 거기서 거기다.

일본은 쌀미자를 미국의 미자로 쓴다. 우리는 아름다울 미자를 쓴다. 한국은 미국을 좋아해서 아름다울 미자를 쓰고, 일본은 미국을 얕잡아 봐서 쌀미자를 쓴다고 하는 말이 있었다.

미국은 우리의 이상향이었다. 요즘들어 미국을 보면서 지금의 미국이 과연 내가 생각했던 나라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첫번째는 트럼프가 막무가내식으로 전세계를 윽박지르는 것을 보고 그들이 주장하던 이상과 가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실망을 하게 되었다. 무례하게 방위비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저런 국가와 어떻게 동맹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제1의 조건은 힘이 아니라 존경을 받는 것이다. 미국과 같은 맹주가 이상과 가치가 아니라 힘과 협박으로 동맹국을 억압한다면, 그런 동맹은 오래가기 어렵다.

두번째는 코로나19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 저렇게 대응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사전에 충분하게 경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거의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 미국이 당한 피해는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서 피해가 커진 것이다. 미국의 관련 관청과 전문가들은 이미 위험성을 사전에 예고했다고 한다. 그것을 트럼프가 무시한 것이다.

세번째는 미국 경찰이 별 잘못도 없는 흑인을 죽인 사건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미국의 흑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인종차별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차원이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안의 중대성을 보았을 때 미리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이렇게 폭동의 수준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시위대에 사살 운운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다. 마치 1980년 광주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이란 사회가 언제 어떻게 찢어지고 분열될 지 알 수 없는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경찰이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는 통상 건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중국도 공안의 힘이 세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이란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도 경찰의 힘이 세다. 그것도 미국이란 체제가 겨우겨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상태가 크게 다르지 않다. 둘다 불안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군부독재 시대에 경찰의 힘이 대단했었다.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둘 다 저런 모양이니 앞으로 누가 패권을 확보하던지 세상은 편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G7 회의에 우리나라를 옵저버로 초대한다고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이지 분명하다. 중국에 대한 봉쇄라인을 구축하는데 한국이 앞장서라는 이야기다. G7이 중국을 봉쇄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지는 미지수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면 모두가 다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이미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정점을 지났다. 정점에 올라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내려오는 시간은 예상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미국은 중국봉쇄를 통해 흔들리는 패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국은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내부의 모순으로 무너지고 있는 양상이다. 코로나19사태와 인종차별문제는 미국이 심각한 내부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의 번영은 전세계의 희생을 대가였다. 미국 내부에서는 흑인과 소수인종들의 희생,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남아메리카 각국의 희생을 대가로 미국의 풍요는 유지될 수 있었다. 전세계가 미국의 시장이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체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그런 체제는 가치와 이상이 아니라 강압과 강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전세계 군사비의 절반을 미국이 쓴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이 누리는 헤게모니의 정체가 바로 군사력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경쟁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다. 우리의 이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간혹 당신의 미국관, 당신의 중국관이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을 만날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관과 중국관이 아니라 당신의 한국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조금 더 떨어져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지 않으면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들어가기 십상이다. 중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미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미국은 왜 이시점에 중국과 대결을 하려할까?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 상태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1990년 냉전종식이후 가장 거대한 국제정치적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심하다. 지금 윤미향 사건을 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사기꾼과 협잡꾼 때문에 격랑의 국제정치적 변화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니 한심할 따름이다.

지금 미국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사생결단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미국이 중국과 냉전구도를 만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먼저 코로나19가 아직 잡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거의 최악의 상황에서 중국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나선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코로나19나 경제위기보다 오히려 중국과의 패권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건강이나 경제위기는 극복하면 되는 문제다. 그러나 패권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 아마 미국 주류세력들은 바로 그런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같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시점에 신냉전구도를 만들어 가려는 이유인 것이다.

그에 앞서 이번 미중 신냉전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향이 작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이 중국에게 냉전적 대결을 하려고 하는 것은 미국 주류세력 전체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은 이미 오바마 정권 때부터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공을 들여왔다. 그때도 미국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언젠가 결정적인 시점이 오면 중국을 봉쇄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한일간 지소미아도 바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군사적 동맹체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본다.

미국의 주류들은 왜 이시점에서 중국과 냉전을 결심했을까? 우리가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미국의 절박함이다.

무엇이 미국을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첫째는 시기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중국을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본 것이다. 이미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했다고 하고 앞으로 10년 정도면 미국은 화폐 패권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좀 더 있으면 견제고 뭐고 할 수도 없이 두 눈 뜨고 어어 하다가 당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미국이 앞으로 상황이 매우 나빠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미국의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면 중국의 부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중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신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맹국과 연대를 강화해서 중국에 대항하고자 한다. 동맹국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몇 수 위다. 이미 그런점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미국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사건에 미국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홍콩시위사건을 통해 미국이 노린 것은 홍콩을 독립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도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코로나19도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중국은 그런 미국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며 읽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보편적 가치 부족과 결여를 계속 공격하고 있는데 중국은 미련하게 오히려 자신들이 보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게 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원래 수천년동안 세력정치를 해온 나라라서 그런 대응은 잘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국보다 미흡한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의 공세에 호전적인 반응을 하는 것은 이미 한번 혼난 사람이 다시 혼날까봐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열등감이 폐쇄적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바고 그런 점을 미국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장할 논리는 무엇인가?

정경분리다.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라는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의 공산당 독재나 미국의 월스트리트 과두정이나 크게 보면 그게 그거다. 모두 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뿐이다.

미중 패권경쟁과 우리의 홀로서기

미국의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을 구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느낌으로는 경제적 성격의 NATO와 비슷하다. 전통적인 방식인 군사적인 봉쇄가 아니라 경제적인 봉쇄를 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을 위시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들로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한국에게는 이런 경제번영네트워크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미국의 의도처럼 중국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의 구매력이 미국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국을 봉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아무리 미국 우방국을 중심으로 단합한다고 해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중국 시장을 포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의 시장은 포화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만일 우리에게 기회가 된다면 과거 1970년대 처럼 중국대신 우리가 미국의 생필품과 같은 소비재를 공급하는 공장이 되는 것이다. 지금 가발만들고 신발 oem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소냉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본 것은 한국이었다. 한국은 서방세계의 진열장이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서방세계의 show window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이 격심해지면서 새로운 전선으로 등장하고 있는 곳은 대만이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확보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미국은 대만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대만에게 지원을 하는 만큼 한국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끼여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는 대만처럼 미국과 중국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게 한국은 전선이 아니라 후방이나 마찬가지다. 결력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후방보다 전선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이 한국을 후방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 서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만은 일국 양제를 거부하는 것으로 경계선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경계선에 설 수 없다.

우리나름대로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상에 서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함으로써 전략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해야 전략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만일 한국이 안보적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지닌다면 미국도 한국에게 함부로 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방위비 더 내놓으라고 말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나라는 필리핀이다.

최근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으로 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위상을 확보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며 중국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받으며 미국도 무시하지 못한다.

각국은 각자의 전략적 상황이 다르다. 각자의 전략적 이점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최상의 방법은 지금은 최악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의 경제번영네트워크에 함께하게 되면 전작권은 즉각 반환하고 연합사도 해체해야 한다. 자국의 방어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미중패권경쟁에서 전략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안보적 홀로서기가 가장 중요하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가는 우리의 미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느냐고 하면 통상 미국이 더 중요하다 미국과 더 친하게 지내야 하고 중국을 멀리해야 한다. 혹은 중국이 앞으로 더 강력한 국가가 될 터이니 중국과 잘 지내야 우리가 먹고 사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뉜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미국편이고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중국편이다.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고 평가할 것인가는 우리가 미국편을 들것이냐 중국편을 들것이냐 하는 이야기기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상관없이 앞으로 세계질서를 움직여나갈 국가다. 이들 양국이 만들어 가는 국제질서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를 미리 예측해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미국과 중국은 더이상 상대방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이 아니다. 미국은 이기회에 중국의 도전을 따돌리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고, 중국은 미국에게 그렇게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윤리적 평가의 대상이거나 감정적 선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이 이익이냐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전에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확고하게 구축한다.

둘째, 중국이 미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패권을 차지한다.

셋째, 미국과 중국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서로 비슷비슷한 상황을 유지한다.

네번째, 미국과 중국의 힘이 쇠퇴하고 유럽과 인도와 같은 지역이 부상한다.

첫번째 상황은 가능성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자신이 있다면 지금처럼 보호무역주의적 경향으로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력 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완전하게 우위에 설 수 있는 기간이 10년 정도라고 한다.

나는 미국이 이번에 보여주고 있는 경제위기가 미국 쇠퇴 시기를 더 앞당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주기적 경제위기다. 문제는 미국이 경제위기에 빠져서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상대적으로 중국은 타격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1930년 대공황 때에도 소련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은 동안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이번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른다. 일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930년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방식의 경제위기는 없었다. 대응도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간도 훨씬 많이 소요될 것이다.

두번째, 중국이 미국을 무너뜨리는 상황도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묘하게 서양과 동양의 경쟁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채 질질 끌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으로 반반 나뉘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베트남전을 종료하고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은 당시의 경제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는 상황이어서 중국을 세계시장에 편입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지금같은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한 시장을 포기할 경우 지금과 같은 패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아무리 큰 나라라고 해도 미국과 유럽시장의 상당부분을 상실한 상황에서 경제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국과 미국은 어느정도에서 서로의 영향력을 인정해주는 상황으로 타협할 수도 있다. 그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영향권,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영향권으로 공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입장에서는 가장 걱정되는 경우다. 미국이 이기거나 중국이 이겨버리면 그쪽하고 잘 지내면 된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어정쩡하게 세력을 유지하는 경우 우리의 입장이 어려워진다. 우리는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를 해소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 양쪽으로부터 경제적이익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보를 독자적으로 지켜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의 안보상황에서 핵무기 정도라도 보유하지 않으면 어떤 국가도 독자적인 안보를 자신하기 어렵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소위 남북동맹이라도 구상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통일이라는 감성적 접근보다 이익과 공동번영이라는 실질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네번째의 경우는 미국과 중국이 싸우다 제풀에 지친 사이에 세계가 다극화된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남북 아메리카, 서유럽, 동유럽, 중국, 인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력으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우리입장에서는 세번째 어정쩡한 관계보다 네번째 다극화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평상시 생각하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김정은 사망소동에 대해

한동안 김정은 사망설로 전세계가 휘청거렸다. 그 소동을 보면서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소동의 출발점은 CNN의 보도 때문이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CNN의 보고는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뭔가를 얻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정보기관이 그런 첩보를 흘린 것은 북한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것일 것이다. 만일 미국정보기관이 그런 첩보를 흘렸다면 그것은 그들이 김정은을 추적하다가 놓쳤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CNN을 통해 정보를 흘리고 북한이 어떤 반응을 하는가에 따라 추가적인 정보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트럼프가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계속 곤경에 몰리니 시선을 돌리기 위한 방편으로 김정은 유고 가능성 카드를 활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상태를 알지만 말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김정은 이상설에 대해 우리 국내는 양분된 해석을 내 놓았다. 정부는 처음부터 김정은이 이상없다는 보도를 했다. 그런 보도를 듣고 당시 우리 정부가 북한과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김정은 상태에 대한 정보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뭔가 확실한 첩보가 없으면 정부가 그런 발표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김정은의 사망설을 확실하다고 주장하면서 더욱 불거졌다. 탈북자 출신들이 김정은의 상황에 대해 특별한 정보망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그들도 북한권부의 핵심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나도 김정은 이상설 발생하기 1주일 이전에 김정은이 식물인간이라는 첩보를 들었다. 그러나 그런 류의 첩보는 첩보일 뿐이다. 확인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 신뢰성과 중첩성이다. 내가 얻은 정보가 신뢰성있는 출처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신뢰성 있는 출처에서 나온 정보라고 하더라도 다른 출처에서 같이 나왔는가 하는 것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번 김정은 사망설은 그 어떤 신뢰성 있는 출처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CNN 보도와 탈북자 출신 당선자들을 신뢰성있는 정보출처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여러가지로 김정은이 이상이 있을 수 있는 정황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실제 정보의 진위여부를 파악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없었다.

정부는 시종일관 김정은이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정보상황에 대해 이런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냥 알고 있으면 된다. 만일 정부가 북한과 직접 접촉해서 확실한 언급을 받았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고 우리의 자체적인 정보능력으로 확인했다면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

북한은 우리정부가 김정은이 이상없다는 정보를 어떻게 확인했는지 찾아내려고 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정부의 정보능력 약화로 직결된다. 결국 그런 이적행위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우리정부가 보다 확실하게 김정은이 이상없다는 것을 확인해주지 않아서 탈북자 당선자들이 틀린주장을 하게 되었다는 말같지 않은 말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사리분별력이라고는 찾아 볼래야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면 어떻게 될까?

정치적 견해로 다툴 문제가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문제가 있다. 그런 분별력은 좀 지녔으면 좋겠다.

시진핑 방한, 굳이 추진할 필요가 있는가 ?

강경화 외무장관이 국회에서 시진핑의 방한에 관한 답변을 하는 것을 보았다. 코로나19로 당장은 오기 어렵지만 올해안에는 꼭 방한하는 것을 합의했다는 것이다.

왜 굳이 시진핑의 방한을 추진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 시진핑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떤 일을 기대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 일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안생긴다.

현정부는 시진핑 방한의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드 배치이후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풀어보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한국의 경제적 관계는 중국과 불가분이다.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하면 결국 세계는 좋던 싫던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나누어질 수 밖에 없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우리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핵심은 중국이 차지할 수 밖에 없다.

현정권을 두고 지나치게 중국경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10년 후면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더욱 긴밀해질 수 밖에 없다.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교역의 다변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재벌들도 자신들의 2세를 미국보다 중국으로 유학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앞으로의 상황을 생각한 포석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시진핑의 방한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 편으로 생각해보자. 시진핑이 한국에 오는 목적은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한국에 시혜를 베풀기 위해서 일까? 아마도 안보적인 측면이 훨씬 클 것이다. 사드의 개량이나 추가배치를 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고 중거리핵미사일의 한국 배치를 반대할 것이다. 당연히 우리 정부의 약속을 요구할 것이다. 중국은 미중패권 경쟁의 한 방법으로 한국을 집중 타격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약한 고리를 외곽에서 부터 잘라내는 것은 당연한 중국의 전략이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이 구축한 패권적 세계질서의 취약한 모서리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만일 중국이 의도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교역을 들면서 한국에게 미국과 관계를 정리하라고 하면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거부하면 교역에 문제가 생기고 중국과 같은 방향으로 가면 미국과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딜레마적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어느 한쪽에 경사되면 당장 문제가 생긴다.

앞으로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만일 중국이 요구를 들어주면 미국으로 부터 팽 당할 확률이 많다. 앞으로 10년후에 경제적으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다고 해도 지금 우리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시대에 살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이래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에게 특별 대우를 했다. 한국이 냉전시대 자유진영의 진열장같은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미중패권경쟁이 마무리되고 국제질서가 어느정도 정리되면 우리가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지금처럼 과도기적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상실하기 전까지 쉽사리 함부로 움직이다가는 무슨일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매우 조심해야 한다.

현정부는 시진핑의 방한을 계기로 사드개량과 추가배치를 하지 않으며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미국에게 애시당초 우리 정부에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남의 힘을 빌릴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 나중에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하면 미국의 힘을 빌릴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스스로 거부할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미중경쟁이 진행되고 있을때는 줏대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양쪽 모두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 그래야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한참 진행중인 미중패권경쟁의 무대에 우리가 스스로 올라갈 필요는 전혀 없다.

시진핑의 방한을 굳이 추진할 이유가 별로 없다고 보는 이유다.

‘아리기’의 예언과 미국의 방위비 요구

요즘 ‘아리기’라는 이탈리아 학자가 쓴 ‘장기 20세기’라는 책을 보고 있다. 그 책의 한국어 서문이 매우 인상적이다. 트럼프가 유럽과 아시아로부터 방위비를 뽑아내기 위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미 그런 것을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한국어 번역판으로 발간된 것이 2008년이니 약 10년전에 앞으로의 세상을 꿰뚫어 본 모양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서구의 전통적 권력 중심지들의 국가형성-전쟁형성 역량이 너무 확대되어 이제는 진정으로 전지구적 세계제국을 형성해야만 그 역량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런 제국을 “실현하려면 세계 잉여자본의 가장 비옥한 원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원천은 현재 바로 동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다”(p.9)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군사적 우월성을 활용하여 동아시아의 떠오르는 자본주의 중심지들로 부터 ‘보호에 대한 보상금’을 뽑아 내려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도가 성공한다면, 세계역사상 처음으로 진정 전지구적인 제국이 존재하게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도를 아예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런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동아시아는 세계시장 사회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으며, 과거처럼 우월한 군사력이 이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문화와 문명들의 상호 존중이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9-10)

결국 미국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싱가포르 대만 등으로부터 세계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군사비를 뽑아내려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서서히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미국은 새로 등장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국부를 지속적으로 빼내지 않으면 세계제국의 입지를 굳히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방위비 인상요구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결국 미국은 자신의 보호국을 착취해서 부를 유지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봉건시대의 영주나 마찬가지다. 아마 한국과 같은 나라는 기껏해야 차지농과 같은 정도에 머물게 해야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 같다.

아마 미국도 ‘아리기’와 같은 학자들의 분석과 비평을 충분히 고려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미국 어떤 해군의 연구소에서는 중국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 ‘사략선’을 운용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 놓기도 했다. 사략선이란 바로 해적이다. 개명한 21세기에 중세와 근대초기의 해적을 언급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국이 그만큼 조급하다는 것 같다.

문제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면 망하는 법이다. 사실 미국의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 같다.

아리기의 예언과 분석이 타당한지 여부와는 별도로 만일 우리가 미국이 요구하는 10억달러를 방위비로 낸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국가와 사회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여력을 그만큼 상실하게 된다.

아리기의 예언이 여사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 주가폭락과 나락을 알 수 없는 위기의 도래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2008년 금융위기이후 최악이라고 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앞으로는 2008년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이런 상황에 대한 원인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미국 증시 폭락의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들고 있다. 첫번째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고 두번째는 원유가격하락이다.

세상을 읽기가 매우 어렵다. 미국 증시가 이렇게 엉망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론보도를 읽으면서 몇가지 의문을 떠올랐다. 첫번째 이번 주가폭락은 2008년의 금융위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하는 점이다. 두번째는 미국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이번 주식폭락의 두가지 이유가 과연 합당한 이유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떠올린 의문 두가지는 사실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것은 현재 미국의 주가폭락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일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주가폭락이 어떤 상황을 향해 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번 주가폭락이 2008년과 매우 다른 원인에서 출발했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의 탐욕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러나 이번 주가폭락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것 같다.

진짜 문제는 이번 주가폭락의 진짜 이유를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야 말로 진짜 위기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가폭락은 주가폭락을 설명하기 위해 갖다붙인 현상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이번 주가폭락 위기의 진정한 구조적 요인은 따로 숨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친 것 같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도 실패했고 미국우선주의도 실패했다.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마땅한 방법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8년처럼 마구 돈을 뿌리는 방법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투자은행이 망하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구제해줘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돈을 뿌린다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는 유가폭락의 의미이다. 1970년대 중반이후 세계자본주의는 미국과 사우디가 손을 잡고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가 달러를 원유결재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달러가 기축통화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최근들어 미국이 세일석유를 생산하면서 그 협조관계가 붕괴되어가는 것 같다. 미국이 세일가스를 생산하게 되면 단기적으로 이익인듯 하지만 국제자본주의 분업체제는 붕괴될지도 모른다. 그런 구조적인 붕괴는 미국의 세계패권적 지위를 더욱 약화시키게 된다.

산유국들이 모두 감산에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국가는 누구일까? 역설적으로 미국의 세일석유다. 일정정도 가격 밑으로 떨어져 버리면 세일가스의 채산성이 떨어진다. 그럼 미국의 경제적 동력도 힘을 잃게 된다. 산유국들은 미국의 세일가스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여긴다. 산유국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전통적 보호자였던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우디의 증산조치는 앞으로 미국과의 협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신호인지 모른다. 앞으로 사우디가 원유를 달러로 받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만일 미국이 2008년처럼 달러를 풀어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면, 사우디는 위안화나 유로와 아니면 비트코인으로 원유가격 결재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전세계의 경제질서는 완전히 붕괴되는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의 위기는 중국의 도전보다 중국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지속적인 혁신을 창출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어떤 나라도 무한대의 혁신을 하기는 어렵다. 기술과 과학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생태적 한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가장 직접적인 도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미국은 중국과 같은 패권도전국가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에서 회피하려면 미국의 경제 사회적 구조가 모두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같은 사회에서 극단적인 부의 재분배는 쉽지 않다. 체질을 바꾸는 것은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다.

최근 몇년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은 패권국가 붕괴과정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방국에게 방위비를 요구한 것은 미국이 패권체제를 스스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체제보호비용을 국민경제에 녹여내지 못하면 더 이상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면 그 보호비용을 통상 약탈한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보호비용의 약탈은 쉽지 않은 법이다. 누가 당하겠는가? 북한도 중국과 러시아의 보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을 만든 것이다. 최근들어 터키가 핵무장을 시사한 발언을 그냥 지나쳐 보면 안되는 이유다.

이번 주식가격의 폭락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다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주식가격의 폭락의 이면에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이 켜켜이 쌓여 있으나 이를 극복할 방법이 별로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루즈벨트는 대공황이후 등장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했다. 그래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황에서 벗어났다. 미국이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철저한 몰락이었다. 문제는 미국이 아무리 공황에 빠져도 과거의 방법을 채택해서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공황탈출의 최고방법은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핵무기 때문에 전쟁도 못한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위기라고 생각을 하기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선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