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 자다가 봉창 두들기기

문재인 정권 최대의 실패는 부동산 정책이다. 남북관계도 문제지만 정치의 본질은 기본적인 삶의 보장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부장관을 불러서 부동산 대책을 강구하라고 했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꼭 남의 일하는 것 같다. 크게 두가지를 재탕했다. 첫째, 집을 많이 지어라. 둘째, 집을 가진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해라. 대책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지금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는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세금이 적어서가 아니다. 세금 올려봐라. 그것 전부 전세나 월세로 넘어가서 살기만 더 어려워진다. 머리가 나쁜건지 아니면 일부러 사람들 괴롭히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바보 아닌가?

마치 남의 다리 긁는 정책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부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문제는 주택임대사업자 특례조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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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는 주택임대사업자 특례조항을 암덩어리라고 했다. 암덩어리를 그대로 놔둔채 다른데를 건드리면 뭐하나? 문재인 대통령이나 정권이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고 있으면서 안하는 것이다. 현정부 들어와서 이상하게도 주택임대사업자에게 매우 유리한 정책을 만들었다.

그정책은 미통당도 적극 찬성했을 것인데 그들도 부동산 투기꾼이기 때문이다. 김종인이 대통령에게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라고 했다. 그러나 미통당도 그런 소리 할 자격이 없다.

현재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집을 가지고 임대소득을 올리지만 양도세도 내지 않아도 되는 주택임대사업자 특례조항 때문이다. 김종인이 정말 부동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주택임대사업자 특례조항 폐지하라고 하면된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문제해결보다는 정치적 반대급부만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도 진정성이 없다는 말이다.

이준구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집을 짓지 않고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당장 집 값을 잡을 수 있고 내릴 수 있다. 주택임대사업자 특례조항을 없애면 된다. 그들도 안다. 그런데 이제까지 수십차례의 대책에서 주택임대사업자특례조항은 건드리지 않았다. 왜 그럴까? 어제 언론보도에 나온 서울시 의원 주택보유실태를 보고 알았다.

서울시 의원중 집을 많이 보유한 자들의 90%가 더불어민주당 출신이었다. 현정부가 주택임대사업자 특례조항을 없애지 않는 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핵심을 구성하는 작자들이 모두 부동산 투기꾼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핵심층들이 모두 부동산 투기꾼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훼손시킬 수 있는 주택임대사업자 특례조항은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된 부동산 정책이 나오기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상황은 문재인 정권의 파렴치한 성격을 보여준다 하겠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유의 9할은 부동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부동산 가격으로 가처분소득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으니 어떻게 소비를 하고 생활을 하겠나?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부동산 가격이 지금처럼 높으면 안된다.

얼마전에 부동산 관련한 글을 올리면서 두 채 이상 집을 가진 청와대 참모들은 모두 축출하고 정부 고위공무원 중에서 두 채이상 가진 자는 면직해야 한다고 했다. 그거 전혀 어려운 것 아니다.

공무원이 집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절대적으로 집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들을 위한 정책을 하게 되어 있다.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집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집을 많이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하게 되어 있다.

엉뚱한 정책으로 시간을 보내고 서민들을 고통에 빠지지 말게 하라. 당장 비서실장 노영민을 필두로 한 다주택보유자부터 파면해야 한다. 지금보면 전청와대 대변인 김의겸이 부동산 투기로 물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부가 제대로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이해당자사기 때문이다.

법사위원장, 절충안으로 해결하자

성질나는대로 해서 한번도 성공한적이 없었다. 세상일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화가난다고 해서 기분대로 했다가는 패가망신하거나 쪽박차기마련이다. 유독 우리나라 정치권은 이성과 차분한 계산이 아니라 성질대로 해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든다. 그것이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마찬가지다. 마치 7살짜리 아이들처럼 우리는 행동하고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연령이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 지능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성질대로 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이해득실을 따져가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당과 야당이 법사위원장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충분하게 이해가 간다. 이전의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을 했던 여상규를 보면서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는 법률가 출신이라고 하지만 정말 본바탕이 좋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적어도 공인이라면 지켜야할 도리가 있는 법이다. 그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정파만 보고 생각하고 판단했던 사람이었다. 솔직히 나도 다시 여상규 같은 사람이 다시 법사위원장하면서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고 가는 것 보기도 싫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수십년간 야당이 맡아오는 것이 관행이었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가져가겠다는 것도 옳지는 않다고 본다. 아무리 야당이 쪼그라들었더라도 야당은 야당이다. 결국 야당은 국정의 파트너이지 죽여야할 적이 아니다. 서로 타협하고 견제하는 것이 대의정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만일 법사위원장을 주지 않으면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보이코트 하겠다고 한다. 이미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오랫만에 예상이 맞았다. 이유만 달랐다. 제가 그렇게 예상했던 것은 금년도 후반기 이후 국가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그 모든 책임을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지도록 하겠다는 김종인의 생각이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미래통합당도 생각이 있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서 여당은 제대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경제위기의 모든 책임을 여당에게 떠넘기기 위해서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국회의장이 15일까지 상임위구성을 늦춘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래통합당이 자신들의 결정을 거둘 것 같지는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15일까지 양보하는 모양새를 만든다음에 표결로 법사위원장을 가져올 것이다.

기분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더불어민주당이 망하는 수가 있다. 기분상해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 지금처럼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면 그것이 더불어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민주독재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며 더불이민주당이 하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원칙을 정해놓고 지켜나가지 않으면 독재로 흐르기 쉽다. 만일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겠다면 먼저 야당과 원칙에 대한 합의를 해야한다. 앞으로 다수당이 법사위원장을 한다든지 아니면 모든 상임위원장은 선거로 한다는지 해야한다. 그러지 않고 사안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하면 자기들이 옴팡 뒤집어쓰는수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절충안이다.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주되, 야당에서 두세명의 후보를 정하게 하고 그 사람을 국회의원 투표로 정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 어쩔수 없이 야당에 법사위원장을 주더라도 여상규 같은 되지도 않는 인물이 맡는 꼴은 보기 싫다. 법사위원장이 상원의 역할을 한다고 하니 야당마음대로 임명하게 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원희룡의 김종인 비판, 자살골이다.

요즘 김종인의 행보에 관심이 많이 간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고 이끌어 가는 능력과 실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멧세지가 힘이 있으려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이것 저것 보이는 것마다 다 한마디씩 하면 말의 힘이 떨어진다. 최근 김종인이 보여주는 힘의 배경에는 절제와 집중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종인이 미래통합당의 기본 방향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당연히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부 미래통합당 중진들은 그런 김종인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김종인에 대항하는 세력들이 형성되는 것 같다. 정치라는 것이 워낙에 그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일견 당연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현재 미통당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최근 원희룡, 장제원 등을 중심으로 드러나고 있는 김종인에 대한 반발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들은 마치 보수라는 것이 대단한 이념적 기반과 가치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수의 의미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보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미 국민들에게 수차례 심판을 받고 고꾸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이 말하는 보수는 없어져야 하는데 아직 그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슨 정치를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 장제원이나 원희룡 모두 실력으로 따지면 김종인 발바닥도 따라가기 어렵다.

원희룡의 경우 김종인을 용병이라고 운운하면서 비판을 했다. 원희룡은 기본이 틀렸다. 아무리 정치적인 입장에서 김종인을 비판하고 싶다고 해도 자기 아버지 뻘인 김종인을 용병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김종인은 절대로 원희룡만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당장 자신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가볍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국가를 이끌만한 재목이라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원희룡이 그런 이야기를 할만한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원희룡이야 말로 새누리당을 떠났다가 바른미래당으로 갔다고 다시 탈당하고 한참을 무소속으로 있다가 얼마전에야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돌아 온 사람이다. 원희룡 자체가 김종인을 용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희룡이 김종인을 비난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김종인이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대선후보를 찾겠다고 했는데 당내가 아니라 당외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래통합당 내부에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찾지 못했다고 밝힌바 있고 40대 경제전문가도 찾기 어렵다고 표명했다.

김종인이 유일하게 가타부타하지 않으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사람은 윤석렬이다. 아마 원희룡과 장제원등은 윤석렬을 견제하기 위해 김종인을 비판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윤석렬이 미래통합당으로 들어올 수 있는 끈을 원천 차단해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미래통합당이 다음 대선에서 뭔가를 해보려면 윤석렬 처럼 상징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의 미래통합당 내부 사람으로는 차기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원희룡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박근혜의 뒤를 이어 3위를 했다. 원희룡은 과거의 경험때문에 자신이 아직도 개혁과 변화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이후 십수년이 지났다. 지금의 원희룡은 그저 그렇고 그런 정치인에 지나지 않는다. 인물과 사람은 시대가 만들어 내는것이기 때문이다.

새는 양쪽 날개로 날아간다고 했다. 요즘 김종인에게 눈이 가는 이유는 한쪽 날개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종인의 역할에 기대를 건다.

흑인 플로이드의 죽음과 미술

미국에서 혼란을 초래한 흑인 플로이드의 사망사건을 보면서 예술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예술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그중에서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회화에 관한 것들이다. 예술은 여러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음악과 같은 예술은 매우 권력지향적이며 체제지향적이다. 음악가와 작곡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국뽕과 비슷하다. 모두들 자기 나라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양에서 음악이라는 것이 원래 권력자들의 후원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물론 한국의 민속음악은 그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서민의 애환을 다루거나 삶의 고통을 토로하는 부분도 많다. 그렇게 본다면 서양음악보다 한국의 전통음악이 훨씬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깝게 접근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19세기이후 미술은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안니었다.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는 작업이 미술 작업이었다. 각종 수없이 많은 유파들도 기존의 체제를 부정하고 넘어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기존의 사고방식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이 그림의 방식이라는 틀을 깨고 사회적 문제에 도전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꽤 오래전부터 페미니즘 미술을 통해 우리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틀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다.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회적 문제에서 거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동성애 문제였다. 동성애자들이 당하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미술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전시되었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동성애의 문제를 회화분야에 끌어들인 사람이 아닌가 한다. 미술이 금기를 깨는 역할을 한다면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은 분야가 있다. 바로 인종문제다. 이제까지 미술에서 인종문제의 금기를 깬 작가나 작품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서양사회에서 인종문제가 동성애보다 더 금기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흑인 플로이드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 금기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리쇼어링하게 법인세 낮추고 노동유연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손경식 경영자 총협회 회장이 5월 15일 경제위기를 맞이 하여 우리기업이 리쇼어링을 하기 전에 법인세를 낮추고 노동유연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m.wowtv.co.kr/NewsCenter/News/Read?articleId=A202005130106

며칠동안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없을까 해서 기다렸으나 별 반응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왜 리쇼어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외국으로 나간 기업들 국내도 들어오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쉬운데 왜 저런 용어를 사용하는지 알 수 없다.

손경식 회장이 이야기 한 것은 미국이 사용하던 방법이다. 재미있다. 미국은 그러다고 지금 이런 위기에 빠졌다. 세금낮춰주고 노동자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COVID-19가 발생하니까 미국은 헬미국이 되었다.

그동안 미국은 오로리 기업을 위해 그리고 금융을 위해 모두 양보했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면 나중에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주장이었다. 유감스럽게 미국의 노동자들 그리고 보통가정의 삶은 레이건 이래 지금까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법인세를 낮추고 노동유연화란 명목으로 아무렇게나 해고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에 나간 공장들 돌아온다고 법인세 낮추고 노동자들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아마도 정부는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경제위기는 생산력과잉과 유효수요의 부족이라는 두가지 현상이 동시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력과잉인데 현재 세계는 무한정 상품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그런 생산력 과잉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질적으로 한단계 높게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길 밖에 없다. 결국 고급인력의 육성와 양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국민들을 노동유연화로 아무렇게나 해고할 수 있는 단순노동자로 만들어서는 앞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기업을 지원해주자는 말이 많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성격상 얼마 있다가 다시 상승할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생산력 과잉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나라들이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퇴행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차원이 다른 국가를 만들어가려면 국민들 교육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우선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정말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기업들만 지원하고 예산은 국민들 교육에 집중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결국 우리가 믿을 것 사람밖에 더 있을까?

그렇게 볼 때 외국에 나간 기업 돌아오게 특혜를 달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 같다. 특히 노동유연화를 요구하는 것에서 이들이 지금 처한 문제의 핵심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정부패척결이 시대정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

한시대는 그 무엇인가 흔적을 남긴다. 대부분 공과 과를 동시에 남긴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시대도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자 마자 그들을 잘 알고 있던 선배 한분이 친문세력은 부정부패로 무너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벌써 3년전이다. 문재인 정권은 수구반동세력을 청산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정권도 하지 못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도 심판을 받을 시간이 다가오지 않나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의 부정부패는 오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국과 그 일가의 행동에서 드러난 온갖 잡스러운 짓들은 제정신이라면 하기 어려운 짓이다. 세상과 사람들을 어렵게 여기면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다. 범죄에도 격이 있다. 국가를 운영하다 보면 정해진 선을 넘을 수도 있다. 이른바 대북송금같은 것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통수권적 차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범죄라면 당당하게 역사앞에서 자랑스럽게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런 일은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와서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을 보고 뭔가 크게 잘못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친노세력들이 동교동계열을 제거하기 위한 정략이었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와서 권력형 비리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수면하에 숨어 있다. 신라젠 문제, 조국일가의 행위로 드러난 사모펀드 문제, 라임문제, 울산시장 선거개입 문제 등등이다. 미래통합당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이런 많은 사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그들이 수구반동이어서라기 보다는 어떤 정당도 가질 수 없었던 좋은 재료를 가지고도 정권을 심판하지 못했다는 무능력 때문이다. 보수정당은 도덕성이 부족해도 사람들이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그들은 총체적인 무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싸워야할 시대의 정신은 개인적 착복을 위한 권력형 부정부패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제까지의 어떤 정권보다 부정부패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많다. 그런 것들이 깨끗하게 해소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적 사명이 아닌가 한다. 문재인 정권은 도덕성이 부족한 점에서는 보수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하게 갖추었다. 그들이 어떤 능력을 보여줄 것인지는 모르겠다. 삼성과 기민하게 손을 잡는 모습을 보니 보수정당으로서의 능력은 미래통합당보다 나은 것 같다.

자본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거기가 지옥이 된다. 동양의 자본주의와 서양의 자본주의가 다른 이유다. 동양에서는 권력이 자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서양은 자본이 권력을 만들었다. 권력은 자본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 미국의 정책이 인민대중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거기에 있다. 같은 민주주의를 하더라도 결과와 과정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부정부패는 권력이 자본에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자본이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본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는 권력을 통제하기 어렵다. 한국의 민중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자본과 권력의 결탁을 막아내야 하는 이유다. 과거 우리 정권들은 권력이 자본을 통제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자본과 결탁을 했다. 당연히 부정부패의 음습한 냄새가 나지 않을 수없다.

어떤 정권 어떤 정치인에게도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잘못했으면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 부정부패로 처벌을 받은 범죄인이 다시 국회로 들어오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다. 법을 어기는 일도 격이 다르다. 개인의 착복을 위해 범법을 저지른 자는 어떤 경우라도 용납되면 안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기생충을 보고, 관계의 측면에서…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기생충을 보았다. 재미있었다. 한국사회의 모습들이 여러가지 메타포와 구조로 표현되어 있었다. 많은 평론가들이 기생충을 해석했다. 평론가들은 주로 ‘선’과 ‘냄새’같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를 구분하는 메타포에 관심을 가지는 듯 하다.

영화는 가진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냄새는 인내하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과 자신들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을 침범당하는 것에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워낙 많은 평론가들의 각자 생각들을 쏟아 내었기 때문에 그들이 주목하지 않은 부분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사회적 존재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진자들은 가지지 않은 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가진 자들은 ‘선’을 그려 놓고 가지지 않은자들이 그 ‘선’을 넘지 않으면 용납한다. 비록 냄새가 나더라도 그 정도는 용납한다.

기생충에서 그리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취와 피착취와는 다르다. 기생충의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든 서로 어떤 관계도 없다. 착취와 피착취도 아니다. 그저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자의 배려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이중적인 계급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관계, 그리고 가지지 못한자들 상호간의 관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영악하며 악랄하다. 생존을 위해 도덕과 윤리는 아무런 장애로 작용하지 않는다. 기생충에서 정말 주목해야 할 부문은 이집의 집사로 나오는 ‘문광’의 가족과 ‘기택’의 가족이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관계는 매우 치열하다. 기택의 가족은 문광을 결핵이라는 누명을 씌여 쫓아 낸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갈등이 치열한 것은 그것이 생존과 직접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우아한 집사로 살아가던 ‘문광’은 쫓겨나면서 자신이 부리던 ‘우아함’이 자신이 아니라 가진자들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을 때나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진자와 관계가 끊어진 ‘문광’은 처절한 생존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영화를 어떻게 읽고 감상하는가는 각자의 해석과 기호에 따라 다르다. 가장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가지지 못한 두 가족의 모순이다. 결국 가장 치열한 투쟁이 일어나는 곳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세계다. 투쟁은 가진자들의 제공하는 떡고물을 차지하려는 못가진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서로 같은 처지지만 죽고 죽이는 처지로 몰려간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투쟁이 더 치열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자들의 착취를 알아챌 수 없다. 요즘의 착취는 아주 정교해져서 가진자가 못가진자를 착취한다는 식의 단순한 공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사장’ 그리고 ‘문광’과 ‘기택’의 가족 사이에는 그 어떤 긴장과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모순과 갈등은 ‘문광’과 ‘기택’의 가족간에만 존재한다. 왜곡된 계급적 갈등이 왜곡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자들간의 투쟁은 치열하지만 아무런 생산적 결과도 없다. 그렇게 운명지워진 자들의 한계이다. 관계의 파탄은 ‘박사장’의 죽음이다. ‘박사장’의 죽음은 모든 문제를 종식시켰다. ‘기택’이 ‘박사장’을 살해하는 것은 박사장의 눈앞에 벌어진 사건보다 정작 냄새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사장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냄새를 참지 못하는 순간 죽임을 당한다. 가지지 못한자와 가진자의 관계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자의 냄새를 참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선’은 상호 존재한다. 가진자는 가지지 못한자의 순종적인 행동양식을 ‘선’으로 생각한다면, 가지지 못한자들은 가진자의 ‘최소한의 인내’를 ‘선’으로 생각할 뿐이다.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냥 끝날 뿐이다. ‘박사장’의 죽음은 가진 자가 베풀던 온정과 배려의 종식을 의미하는 동시에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모순과 갈등도 동시에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지지 못한자들의 갈등도 가진 자들의 세계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은연 중 보여주는 것이리라.

계급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계급적 영화가 아니다. 계급 갈등이 아니라 계급내 갈등에 관한 영화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했다. ‘기택’과 ‘문광’ 가족의 싸움을 통해 마치 노동자와 노동자의 갈등,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갈등과 모순을 떠올렸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아쉬운 점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와 세상의 모습은 분명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만일 ‘문광’과 ‘기택’ 두 가족이 싸우지 않았더라면 그 기묘한 생존은 더 연장될 수 있었을 뿐이다.

매우 잘 만들었다. 시나리오도 탄탄하다. 그러나 그 결말이 우울했다.

혼돈의 정치, 정책과 사람 사이

정치가 혼란스럽다. 무엇이 정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원칙과 가치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원칙과 가치가 무너지면 안과 밖도 바뀐다. 사과나 수박이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에 수박은 없다. 사과나 바나나만 있을 뿐이다. 진보를 주장하면서 극우보수 파시즘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진정한 진보를 주장하는 정의당도 하는 행태는 실망스럽기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 층이 되어 버렸다. 우리사회에서 대기업 노조는 최상의 기득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정의당은 말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나라 최상위 기득권 층의 보호자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민중당이라고하는 곳도 문제가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북한과 같이 자유롭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자야’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서정의 ‘백석’이 딱딱하게 말라붙어 버린 곳이 북한이다. 그런 북한의 이념을 추종한 사람들은 싫다. 난 방탄소년단이 마음껏 노래부르고 차별과 탄압이 없는 곳이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정당마다 인물들 영입한다고 바쁘다. 그런데 그 면목을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결국 그렇게 정계에 진출하려고 당신들이 그런 행동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일, 올바른 일을 해도 그 동기가 불순하면 그 결과마져도 비난을 받게 된다. 최근 더민당에서 영입한 사람들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그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하게 하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정당은 인물을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이 분명해야 한다. 자기네 정당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분명하게 정책을 밝혀야 한다. 최근 정당들이 인물영입을 하는 것을 보고 실망스런 것은 선거가 정책의 대결이 아니라 마치 누가누가 잘났나 하는 인기투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영입도 순서가 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정책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남북한간의 문제에 대한 목표와 방향은 어떤지, 미중패권경쟁에서 우리의 외교정책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부의 편재현상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 청년실업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급격한 인구감소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심각한 환경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문제에 대한 정책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야 한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실패한 것은 정책도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고 그런 정책을 수행할 사람도 제대로 발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번 실패한 사람이나 집단을 다시 믿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한심한 것은 대가리가 깨지더라도 문재인을 밀었고, 대가리가 깨지더라도 박근혜를 밀었기 때문이다.

인물영입은 자신의 정당이 지향하는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사람을 발탁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그런 과정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 조국수호를 외치는 서초동 사람들이나, 안철수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아직도 문재인이 최고라고 하는 소위 대깨문이라는 사람들이, 옛날 고리적에 ‘리프 거렛’이라는 가수가 방한공연을 했을 때, 너무 좋아서 실신하고 공연장에 속옷을 벗어서 던졌던 젊은 여자 아이들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스스로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켰다는 점에서 너무나 같다.

요는 새로운 인물영입이라고 하는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슨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말 실현할 능력과 의지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잘 찾아 보면 좋은 사람 많다. 물론 내가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번드르르한 학벌과 직업, 그리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의지와 능력을 모두 가진 사람들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판사 검사 출신 많이 공천하는 정당부터 심판했으면 좋겠다.

불임정당, 더불어민주당, 대안은 무엇인가

정당은 권력을 장악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구현하고자 한다.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이유가 없다. 정당들이 정권을 장악하기위한 경쟁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정당의 크기와 세력에 관계없다. 규모가 큰 정당은 직접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정당은 연정에 참여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구현하고자 한다.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과 인물이다. 추구하는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제든 내각책임제든 대표적인 인물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보적 성향을 지닌 정당과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비판한 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제대로된 진보가 아니라 겉은 진보를 표방하지만 속은 수구보수 세력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수구보수세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지는 열거하지 않겠다. 현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은 수구보수적 정책이었다. 그나마 평화에 관한 정책도 진정성이 없었다. 그저 국내정치에 이용함으로써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남북화해협력의 기반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의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진정한 진보적 정당과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 문제는 더민당이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게 보인다는 것이다. 정책도 정책이거니와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더민당이 대충은 현상유지를 해주어야 다음에 진보적인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은 오만과 교만으로 지지기반을 급속하게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문재인 정권이 겉만 진보이고 속은 수구보수적이라고 하더라도 다음이라도 진정한 진보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대책없이 무너지는 것은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없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조건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지지할 수는 없고 지지해서도 안된다.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직면한 가장 큰문제의 하나는 급속하게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것과 함께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의 부재다. 지금 더민당에는 다음 대통령 후보로 나설만한 사람이 없다. 지금 당장 이낙연 총리를 꼽기도 하지만, 그는 수없이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조국사태, 지소미아 사태, 검찰문제 등을 다루는데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 지도자는 결정을 하는 것이 주요 책무다. 그는 거의 모든 중요한 이슈에 대해 정확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 방향이 틀렸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대통령 뒤에 숨어서 본모습을 숨길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더민당에서 다음 정권을 창출하려면 이번 총선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손발을 맞추어 정국을 운영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선출될 수 있도록 영향력도 행사해야 한다. 그런 영향력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이낙연은 더민당의 이번 공천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이낙연을 친문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이유이기도 하다.

친문세력들은 이번 선거를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위한 기회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급적 많은 친문세력들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지금의 문재인과 친문세력들의 안위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한 장기적 플랜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다.

비록 자한당은 지금은 지리멸렬하고 있지만 다음 정권 창출이라는 점에서는 더민당보다 훨씬 여건이 좋다. 대선에 나설 인물도 훨씬 많다. 오세훈, 유승민, 안철수 등등이 보수정당의 대선후보 예비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더민당과 비교해 보면 훨씬 여건이 좋다.

결국 정당지지도가 어쩌지 저쩌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더민당은 불임정당인 것이다. 불임정당의 한계는 명확하다. 더민당이 정당지지율이 높다고 자만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보이면 뭔가 변화를 해야 한다. 절망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민당은 친문의 포로가 되어 아무런 변화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정치인은 생활정치인이다. 개혁과 발전 그리고 이상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그저 봉급받고 주어지는 권력을 향유하기 위한 회사원 국회의원일 뿐이다. 그런 국회의원은 아무 필요없다.

정치인은 부단히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해야한다. 저항하고 항의하지 않고 반대하지 않는 정치인은 죽은 정치인이다. 더민당은 앞으로 문재인과 친문의 안위를 위해 이미 정신이 죽어버린 국회의원들을 공천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 그럴수록 다음 정권 창출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지금 이상황에서도 다음 정권 창출을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점점 더워지는 대야속에서 눈을 감고 기분좋게 않아있는 개구리같은 더민당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

김형오, 자한당 공천개혁을 기대하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 실망했다. 박근혜 정권때는 절망했다. 문재인 정권때는 기절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었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지 문재인 정권도 처음출발 때부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권이니 비판보다는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이 비난을 해도 그러면 안된다고 설득을 하기도 했다. 

세상돌아가는 일에 눈이 밝은 선배 한사람이 문재인 정권은 2년만 지나면 끝이 날것이라는 말을 알듯 모를 듯 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그 선배 말이 맞아가는 것을 보고 아쉬워했다. 

그 선배 말인 즉, 문재인 정권은 안팎으로 부패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한당이 너무 무능하고 무력하기 때문이란다.  정권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으니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권도 부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촛불혁명의 기대 속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시민혁명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아쉬울 뿐이다. 

아무리 야당의 견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한당에 눈길을 돌리기 싫었다. 보수적 가치를 어디가서 찜쪄먹은 황교안과 탁핵에 책임을 지지않은 세력들의 몰염치 때문이다. 제정신이라면 군대도 빼먹은 사람이 안보를 제1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정당의 대표가 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한당의 동향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야당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내가 지지해온 진보정권이 건전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때늦은 각성 때문이다.

그동안 처다 보기도 싫었던 자한당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공천관리위원장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김형호 전 국회의장은 ‘황제와 술탄’이라는 책을 썼다. 오래전에 그 책을 읽어 보았다. 전문적인 저술은 아니었지만, 국회의원이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썼다는 점은 매우 신선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을 그만두고 나서 살아온 행적이 그래도 깔끔했던 것 같다. 보수적인 정치인이지만 괜찮은 사람이다. 보수적인 사람은 나쁘고 진보적인 사람은 좋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데 문재인 정권은 아주 훌륭한 역할을 했다. 보수적인 정치인 중에서도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이 있고, 진보적인 정치인중에서도 최악의 인간들이 많다. 요즘 진보정당의 정치인들 중에서 제대로 안된 인간이 더 많은 것 같은 것은 그동안 내가 스스로 내눈에 뭔가를 씌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오 전의장이 공천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우선 황교안과 나경원 같은 막장 정치인들 부터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구와 경북, 부산, 경남 지역에 기생하면서 우리 정치 문화를 좀먹은 기생충 같은 정치인들을 모두 제거해주었으면 좋겠다. 

탄핵정국이후 보수정당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문재인 정권의 적폐는 보수적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보수정당은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이번기회를 놓치면 정말 더민당이 20년 집권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공천혁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한당에게 이런 기대를 하게 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