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정당, 더불어민주당, 대안은 무엇인가

정당은 권력을 장악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구현하고자 한다.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이유가 없다. 정당들이 정권을 장악하기위한 경쟁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정당의 크기와 세력에 관계없다. 규모가 큰 정당은 직접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정당은 연정에 참여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구현하고자 한다.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과 인물이다. 추구하는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제든 내각책임제든 대표적인 인물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이상이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보적 성향을 지닌 정당과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비판한 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제대로된 진보가 아니라 겉은 진보를 표방하지만 속은 수구보수 세력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수구보수세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지는 열거하지 않겠다. 현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은 수구보수적 정책이었다. 그나마 평화에 관한 정책도 진정성이 없었다. 그저 국내정치에 이용함으로써 그나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남북화해협력의 기반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지금 우리의 시대적 상황을 볼 때, 진정한 진보적 정당과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 문제는 더민당이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게 보인다는 것이다. 정책도 정책이거니와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더민당이 대충은 현상유지를 해주어야 다음에 진보적인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은 오만과 교만으로 지지기반을 급속하게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문재인 정권이 겉만 진보이고 속은 수구보수적이라고 하더라도 다음이라도 진정한 진보정권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대책없이 무너지는 것은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없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조건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을 지지할 수는 없고 지지해서도 안된다.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직면한 가장 큰문제의 하나는 급속하게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것과 함께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의 부재다. 지금 더민당에는 다음 대통령 후보로 나설만한 사람이 없다. 지금 당장 이낙연 총리를 꼽기도 하지만, 그는 수없이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조국사태, 지소미아 사태, 검찰문제 등을 다루는데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 지도자는 결정을 하는 것이 주요 책무다. 그는 거의 모든 중요한 이슈에 대해 정확한 결정을 하지 못했다. 방향이 틀렸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대통령 뒤에 숨어서 본모습을 숨길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다.

더민당에서 다음 정권을 창출하려면 이번 총선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손발을 맞추어 정국을 운영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선출될 수 있도록 영향력도 행사해야 한다. 그런 영향력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이낙연은 더민당의 이번 공천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이낙연을 친문의 얼굴마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이유이기도 하다.

친문세력들은 이번 선거를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위한 기회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가급적 많은 친문세력들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지금의 문재인과 친문세력들의 안위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한 장기적 플랜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다.

비록 자한당은 지금은 지리멸렬하고 있지만 다음 정권 창출이라는 점에서는 더민당보다 훨씬 여건이 좋다. 대선에 나설 인물도 훨씬 많다. 오세훈, 유승민, 안철수 등등이 보수정당의 대선후보 예비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더민당과 비교해 보면 훨씬 여건이 좋다.

결국 정당지지도가 어쩌지 저쩌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더민당은 불임정당인 것이다. 불임정당의 한계는 명확하다. 더민당이 정당지지율이 높다고 자만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보이면 뭔가 변화를 해야 한다. 절망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민당은 친문의 포로가 되어 아무런 변화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권을 장악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정치인은 생활정치인이다. 개혁과 발전 그리고 이상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그저 봉급받고 주어지는 권력을 향유하기 위한 회사원 국회의원일 뿐이다. 그런 국회의원은 아무 필요없다.

정치인은 부단히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해야한다. 저항하고 항의하지 않고 반대하지 않는 정치인은 죽은 정치인이다. 더민당은 앞으로 문재인과 친문의 안위를 위해 이미 정신이 죽어버린 국회의원들을 공천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 그럴수록 다음 정권 창출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지금 이상황에서도 다음 정권 창출을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점점 더워지는 대야속에서 눈을 감고 기분좋게 않아있는 개구리같은 더민당을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

김형오, 자한당 공천개혁을 기대하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 실망했다. 박근혜 정권때는 절망했다. 문재인 정권때는 기절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었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지 문재인 정권도 처음출발 때부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권이니 비판보다는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이 비난을 해도 그러면 안된다고 설득을 하기도 했다. 

세상돌아가는 일에 눈이 밝은 선배 한사람이 문재인 정권은 2년만 지나면 끝이 날것이라는 말을 알듯 모를 듯 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그 선배 말이 맞아가는 것을 보고 아쉬워했다. 

그 선배 말인 즉, 문재인 정권은 안팎으로 부패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자한당이 너무 무능하고 무력하기 때문이란다.  정권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으니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권도 부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촛불혁명의 기대 속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과 더민당이 시민혁명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아쉬울 뿐이다. 

아무리 야당의 견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한당에 눈길을 돌리기 싫었다. 보수적 가치를 어디가서 찜쪄먹은 황교안과 탁핵에 책임을 지지않은 세력들의 몰염치 때문이다. 제정신이라면 군대도 빼먹은 사람이 안보를 제1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정당의 대표가 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한당의 동향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야당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내가 지지해온 진보정권이 건전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때늦은 각성 때문이다.

그동안 처다 보기도 싫었던 자한당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공천관리위원장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김형호 전 국회의장은 ‘황제와 술탄’이라는 책을 썼다. 오래전에 그 책을 읽어 보았다. 전문적인 저술은 아니었지만, 국회의원이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썼다는 점은 매우 신선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을 그만두고 나서 살아온 행적이 그래도 깔끔했던 것 같다. 보수적인 정치인이지만 괜찮은 사람이다. 보수적인 사람은 나쁘고 진보적인 사람은 좋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데 문재인 정권은 아주 훌륭한 역할을 했다. 보수적인 정치인 중에서도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이 있고, 진보적인 정치인중에서도 최악의 인간들이 많다. 요즘 진보정당의 정치인들 중에서 제대로 안된 인간이 더 많은 것 같은 것은 그동안 내가 스스로 내눈에 뭔가를 씌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오 전의장이 공천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우선 황교안과 나경원 같은 막장 정치인들 부터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구와 경북, 부산, 경남 지역에 기생하면서 우리 정치 문화를 좀먹은 기생충 같은 정치인들을 모두 제거해주었으면 좋겠다. 

탄핵정국이후 보수정당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문재인 정권의 적폐는 보수적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보수정당은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이번기회를 놓치면 정말 더민당이 20년 집권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공천혁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한당에게 이런 기대를 하게 될 줄 몰랐다. 

판사, 검사, 군인, 경찰의 정계진출 문제있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오니 사법농단을 질타했던 판사, 검경수사권조정을 주장했던 경찰들이 출마한다고 한다.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군인이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려면 전역한지 10년이 지나야 한다. 특별한 경우 전역하고 10년 이전에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트럼프의 초대 국방장관 매티스는 해병대사령관으로 전역하고 곧바로 미의회의 승인을 받아 국방장관이 되었다. 매티스는 현존하는 최고의 군사전략가라고 한다. 그는 전장을 지배하고 승리를 만들어 내는 진정한 군인이라는 평을 받은 사람이다. 걸프전의 영웅이었던 파월 합참의장은 이 조항 때문에 국방장관이 아니라 국무장관이 되었다.

미국이 이런 규정을 만든 것은 민주주의가 군대에 의해 유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후진국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군대다. 막강한 물리적 힘으로 정치과정을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쿠데타를 막아야 한다. 미국의 규정도 군사 쿠데타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조지 워싱턴이 진정 위대한 것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보다, 휘하의 군인들이 힘으로 정권을 장악해서 워싱턴을 추대하고자 했던 것을 막고 군에 대한 시민적 통제 체제를 수립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군대에 의해서 위협을 받지 않는다. 군대는 이미 소위 문민통제라고 하는 체제에 철저하게 복종하고 있다. 최근 일부 군출신 과격분자들이 군대의 반란을 부추기는 언행을 하기도 했지만, 군내부는 그런 언행에 꼼짝도 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했다. 실제 군의 반란을 부추기는 듯한 언행을 했던 군 장성출신들의 상당수는 이런 언행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정계에 진출하고자 했다.

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군대의 쿠데타보다 더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위 판사, 검사, 경찰 들이다. 사법농단을 비난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며, 검찰을 비난하던 경찰들이 정계로 진출하려고 한다.

이들은 군대의 반란을 부추기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자산을 쌓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군장성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사법제도와 절차 그리고 수사권과 경찰력을 정치적 입지와 자산을 형성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상화되면 사법제도와 치안이 고도로 정치화된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주민의 생활이 위협받게 된다.

일부 판사들과 경찰들이 정계에 진출하려는 것을 보면, 이들이 현역 당시 진정 제대로 정의의 심판을 내리고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로서 역할을 했었을까 의심스럽다. 정당의 간택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왜곡되게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군대가 정치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보다 판사, 검사, 경찰이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 상황이 바뀌면 규정도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정치개혁을 다룰때 판사, 검사, 경찰, 군인들이 정계에 진출하려면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사 검사는 퇴직해도 변호사를 할 수 있으니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 경찰과 군인도 퇴직하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이제까지 판사, 검사, 경찰, 군인 출신 정치인들이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기여했나 모르겠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나라의 정치를 퇴행시키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특히 판사 검사들이 자신의 경력을 정계 진출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법관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퇴직이후 일정기간 동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훌륭한 정치인은 얼마나 좋은 학력과 경력을 가졌는가 보다, 어떻게 세상을 살았고 어떤 가치를 지녔는가로 평가 받아아 한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야 한다.

요즘 정세,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

세상은 항상 복잡하고 무질서한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무질서와 혼돈이 세상의 본질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혼란과 혼돈 그리고 무질서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는 그런 것들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원칙을 정의하고 이를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역사를 이루는 문화적 삶의 출발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들이 만들고자 한 원칙은 투쟁의 산물이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하고 보호해야할 원칙이라는 것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그가 이런 입장에 서든지 저런 입장에 서든지 상관없이 존중받아온 원칙도 있었다.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원칙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둑질과 거짓말도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쁘게도 그리고 좋은 것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의적 홍길동과 로빈 훋의 도적질은 무조건 나쁘다고 하기 어렵다. 거짓말에도 white lie 라는 것이 있다. 더큰 선을 위한 거짓말도 있는 법이다. 

그럼 도대체 인간의 삶에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을 비난하면서 거짓말하면서 선동을 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정말 중요한 지적이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진중권이 그렇게 이야기 해도 소위 말하는 대깨문들은 진중권보다 유시민 그리고 김어준의 말을 여전히 신뢰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유시민과 김어준이 선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즐겨 선동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거짓과 선동이 판치는 이유는 유시민과 김어준과 같은 사람들이 선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선동과 거짓을 욕망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대깨문이니 하는 말로 그들의 행동과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상은 매우 특이하다.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수천년간 내려온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과 사고 그리고 가치체계가 유시민과 김어준 식의 선동 앞에서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사상을 넘어선 삶의 태도에 대한 기준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확립한 원칙은 우리의 감정적인 부분에 남아 있다. 즉 비열하고 얍삽하고 저열하며 야비한 인간은 나쁜 인간이라는 인식이다. 전쟁과 혁명으로 수없이 많은 인간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그 어떤 도덕도 무의미해 질 때 조차도 비열하고 야비하며 얍삽한 인간은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렀어도 그가 비열하지 않고 야비하지 않으면 그럭 저럭 용서를 받기도 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그가 근본적으로 비열하거나 야비하면 가중 처벌을 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범죄나 잘못보다는 야비하고 비열하고 비겁한 삶의 자세와 태도가 더 큰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조국과 문재인이 가장 심각하게 질타받아야 하는 것은 잘못한 사실보다, 잘못에 대한 태도다. 조국이 저지른 일는 매우 야비하고 비열했다. 법의 지배가 지금처럼 철저한 사회가 아니었다면 그는 저잣거리에서 린치를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문재인은 조국이 저지른 잘못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조국이 보여준 비열한 삶의 태도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진영논리에 갖혀 비열하고 야비한 삶의 자세를 질타하지도 못하는 처지다. 지식인들이 그토록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본연의 일인 공부하고 가르키는 것보다 어떻게 줄을 대서 정치권에 진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시대의 우병우가 비난을 받고 질타를 받은 것은 그가 저지른 범죄보다는 그가 보여준 얄미운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조국의 경우는 우병우보다 훨씬 더 얄밉고 야비하고 저열하다. 조국의 어떤 잘못도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은 국민들이 조국을 우병우보다 더 야비하고 얄미운 법꾸라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그가 한 일이나 그가 저지른 잘못보다 그가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진보나 보수를 초월해서 사람의 가치는 그가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처럼 남앞에 나서고 싶은 사람은 항상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최근에 자한당과 더민당에서 인재라고 등용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삶의 자세와 태도가 평균적 수준에서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특히 외국에서 30대에 여성총리가 나오고 40대에 대통령이 나오니 우리나라도 그런 트랜드에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내세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이보다 그가 어떤 삶의 자세와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정한 원칙을 준수하고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되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 앞으로 책임있는 정당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정치인으로 영입해야 한다.

국민들도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울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한때 지나가는 유행열병처럼 들떠서 부족한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우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적어도 김영삼과 김대중 이후 우리는 지도자를 무슨 인기투표 하듯이 뽑았다. 인기도 중요하지만 인기를 지도자의 자질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가 얼마나 원칙을 잘 지키는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고 지키기위해서 노력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 국민의 역할이다. 바람부는 대로 선동에 휩싸여 아무나 뽑아 놓고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국민의 역할이 아니다. 

영남반동, 호남반동, 시민단체 반동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낸 세대가 군부독재보다 저열한 독재의 압잡이가 되어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같은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리게 만든 제1의 책임은 황교안과 나경원에게 있다. 학교다닐때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자한당은 오로지 투쟁 일변도로 일관하다가 더민당에게 말려들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도록 만들었다. 만일 당시에 다른 야당과 긴밀한 협의를 하면서 더민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전략에서 실패했다. 전략의 실패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능력한 자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을 사춘기 청소년 처럼 폭발하도록 만든 것은 광화문의 열기와 영남의 반동적 지지 때문이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박근혜를 탄핵했으면서 탄핵에 머물러 있던 영남의 반동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려주는데 일조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의 무능력을 발휘하고도 저렇게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하게 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호남의 반동성에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조국과 유재수, 그리고 송철호의 행위는 올바른 시민적 삶을 왜곡하고, 국민의 삶을 유린했을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행위를 영웅담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조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국의 행위는 영웅담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기타잡범’의 행태와 견주어도 매우 비열하고 악랄한 수준의 범죄다.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해도 ‘기타잡범’의 수준밖에 안되는 조국을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만들어 가는데 가장 기여한 것은 호남이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이 내준 압잡이 자리에 취해 김대중이래 정신적으로 우월감을 지니고 있던 진보적 가치를 서슴없이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영남보다 더한층 반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남이야 원래 보수적인 동네니 조금만 움직이면 반동화된다.

호남은 원래 진보였다. 이상한 것은 호남이 이번 정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반대에 있는 반동의 영역에 서슴없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호남이 영남보다 더 반동화되었다. 영남이 저러고 있는 것은 그래도 박정희와 박근혜의 향수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해 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전에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반동적 상황에 머물고 있다.

호남의 반동적 상황은 영남의 반동적 상황보다 한층 더 저열하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를 하면서 주어지는 조그만 떡 고물에 취해서 반동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동안 지향했던 진보적 가치를 헌신짝 처럼 내 던져버리고 시궁창에 떨어진 엿조각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제정신을 차렸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시궁창의 떡고물을 찾아 헤매기 보다는 김대중의 정신과 5.18의 정신을 고양시켰어야 했다. 지금은 지하의 김대중과 5.18 영령들이 땅을치고 통곡할 상황이다.

영남은 자기연민에 빠져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 호남은 떡고물을 찾아 스스로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점에서 영남보다 더 저열한 반동의 길을 가고 있다.

진보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한다. 보수는 가치보다 이익을 더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호남은 완전하게 반동화되고 말았다. 반동화된 것은 호남뿐이 아니다. 참여연대와 민변, 우리법연구회 같은 과거 진보적 시민단체와 직능단체들도 예외없이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가 되면서 반동화되었다.

김경률 같은 사람이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그들이 얼마나 반동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양승태를 적폐라고 고발하던 양심적 판사들이 대거 더민당의 품에 안겨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아무때나 유리할 때 엿바꿔먹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일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의 본성은 변한다. 개혁도 그렇다. 이승만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대구였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광주였다. 문재인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서울이 될 것같다. 기득권에 포섭되면 바로 반동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경계선은 수도권이다. 영남과 호남은 기득권 반동일 뿐이다.

진중권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를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더민주만 안찍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있는 한 자한당도 찍으면 안된다. 실패한 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민주도 안찍고 자한당도 안찍으면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 정의당 ? 그들은 더민당보다 더 나쁘다.

왜 비정상적인 권력을 참고 있는가?

아무리 보아도 지금 정권은 정상적이지 않다. 서슬퍼런 3공화국부터 군부독재의 전두환, 노태우를 지나 지금까지 살았다. IMF 사태로 살기 어려워진 김영삼 정권이나 전라도 정권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김대중 정권때에도 국민들이 이렇게 분열되지는 않았다.

국론이 분열되고 오로지 진영논리가 모든 도덕적 가치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권때 부터였다. 지금은 노무현이 마치 대단하게 위대한 인물인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에는 태평양에 손목아지가 둥둥 떠다닌다고 했다. 노무현의 무능력과 쌍소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노무현을 찍은 자신의 손목을 짤라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노무현이 뿌려놓은 분열의 씨앗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많다. 그러나 정말로 그 두사람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국민의 분열을 치유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문재인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노무현이 만들어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증폭시킨 결과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을 문재인은 극대화 시켰다.

우리가 겪고 있는 분열은 가치와 도덕의 분열이다. 혹자들은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우리나라에 진보와 보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정당도 제대로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칭 진보이자 참칭 보수일 뿐이다.

지금 국민들이 분열된 것은 가치가 아니라 태도문제다. 어떤 가치가 옳으냐 하는 것으로 싸우면 그것은 건전한 진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치로 인해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 붕괴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저질적인 분열적 현상을 우리는 겪고 있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수사가 예외없이 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수사가 아무리 길고 오래되더라도 그의 범죄를 무위로 돌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수사가 지연되더라도 범죄는 여전히 범죄다. 수사가 지연되면 범죄가 범죄 아닌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가 저지른 짓거리는 길거리의 양아치들도 비열하다고 할 정도의 수준이다.

범죄와 잘못도 수준이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그 잘못이 크더라도 그냥 보아넘겨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잘못은 아무리 작더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조국이 저지른 범죄는 죄질이 나쁘다. 특히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용납받기 어려운 일들이다. 비열하며, 야비하고, 저열하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런 조국의 범죄를 옹호했다. 그리고 그런 수사를 하는 검찰을 공중분해시켰다. 대통령과 직접 관계된 수사를 하는 부서를 거의 예외없이 제거했다. 신라젠은 희대의 사기사건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많았다. 이번 검찰의 조직개편에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금융관련 수사를 할 수 있는 남부지검이 초토화되었다.

이번에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정치와 경제의 거악을 징벌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제거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결국 문재인 권력은 그들이 거악을 저질러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렇게 해놓고 문재인이 검찰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 문재인 정권은 이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을 동원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 경찰은 유일하게 국내정보를 다루는 경찰, 수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찰이 되었다. 경찰은 거의 견제받지 않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보던지 문재인 정권은 이번의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찰조직의 공중분해를 통해 이정도에서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총선에서 승리해서 수사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독재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에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전두환도 장인을 사법처리했다. 김영삼과 김대중도 아들이 사법처리 당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그들이 문재인보다 권력의 힘이나 정치적 정당성이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악이 평범의 얼굴을 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궤변이 합리성과 보편타당함을 억누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나찌 당시 그 수준높은 독일의 지식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한 것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진단했다. 독일 시민들이 자유를 누릴 능력이 되지 않아 자발적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지금 조국의 비열함을 옹호하고 유재수의 부패를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받아 들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부정을 감추기에 급급한 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일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부패에 눈을 감고 있는가 ?

그들 586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전두환의 군부독재에서도 하지 않았던 작태를 옹호하고 있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는 가장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에 서 있다.

이회창과 이낙연의 차이

이낙연이 추미애에게 윤석렬의 항명을 처벌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회창을 떠올렸다. 이제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유는 국무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대통령제하에서 국무총리란 책임있는 자리라기보다는 명망가가 내각의 얼굴마담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무총리가 대통령후보로서 경쟁력이 있으려면 자신의 독자적인 입지를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이회창이다. 이회창은 김영삼에게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을 요구했다가 짤렸다. 그러나 이회창은 그의 결기를 보여줌으로써 당을 장악하고 김영삼 다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이낙연이 대선후보라고 하면서 매번 높은 지지율을 받지만 그것은 허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선 현재의 체제에세 이낙연이 무엇이라도 독자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한 적이 없다. 그가 잘 한 것이라고는 국회에서 요령있게 야당의 질문을 받아 낸 것 뿐이다. 그러나 그정도는 요령있는 배우정도라면 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민들이 자한당에 대한 불만이 워낙 많다 보니 자한당을 까는 답변하는 이낙연이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낙연이 윤석렬을 처벌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처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은 현재 문재인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 크게 두가지 정도의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PK 친문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것, 두번째, 검찰이 계속 수사하면 자신도 뭔가 찝찝한 부분이 있을 경우다. 그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둘다 일수도 있다.

이낙연은 윤석렬을 처벌하라고 하는 지시하나만으로 그가 어떤 경우에도 문재인을 넘어 서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영삼 때의 상도동 계는 PK 친문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결집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회창이 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당을 장악할 수 있었고 대통령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

이번에 이낙연은 어떤 경우에 있어도 더민당을 장악하지 못한다. 그렇고 그런 문재인의 평범한 심부름꾼이나 마름에 불과한 이낙연이 어떻게 강고한 이해찬의 벽을 뚫고 당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 혹여 이번 검찰수사로 문재인의 PK 친문과 더민당이 곤경에 처하더라고 이낙연은 구원투수가 되기 어렵다. 그도 청산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낙연은 잘 해봐야 문재인과 PK친문들의 마름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낙연은 용도가 다하면 조용이 사라질 것이다. 문재인과 PK 친문은 이낙연과 호남의 몇몇 인사들을 자신들이 이용하기 위한 대상으로 활용할 뿐이지 호남과 연합 정권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에 빠지니 호남인사들을 전면에 대거 등장시켰다. 국무총리 그리고 검찰의 빅4가 모두 호남사람들이다. 이렇게 문재인과 PK 친문들이 앞으로 내세운 호남출신들은 호남의 배신자다.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김대중 이래 호남이 지켜온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깡그리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은 사태가 진정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토사구팽 신세가 될 것이다

그들은 호남을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비난해오던 TK보다 더 퇴행하게 만들었다. 정의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에 의해서 구현된다. 말로만 정의를 말하고 실제로는 서슴치 않고 부정과 불의를 행하는 지금의 문재인과 PK 친문 그리고 호남의 부역자들은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모두 역사적 유례없는 부정과 부패의 방패막이이자 부역자들 뿐이다. 그 부역자들의 대표가 이낙연 아닌가 ?

이회창이 비록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적어도 이낙연보다는 격이 높았다.

경자년 아침, 선택적 정의를 생각하다.

경자년 새해아침이 밝았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 새로운 출발이다. 새로운 출발에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아침에 여기저기서 카톡이 들어왔다. 울산시장 선거부정과 관련한 핵심 관계자 송병기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또 명재권 판사다. 그가 밝힌 기각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 지수가 OECD 국가중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그 부정부패라는 것이 재산이 많은자와 권력을 지니고 있는자들의 문제라는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권력과 재물을 많이 가진자들이 부패해 있는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부패한 권력으로 재물을 모으는 것이다. 부패한 권력은 부정한 재산보유자와 결탁하고 국민의 세금도 도둑질한다.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유감스럽게도 여러분야에서 부정과 부패의 흔적이 보인다.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와 유재수의 국정농단 혹은 개입, 울산시장 선거의 개입과 같은 것들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혁명을 해도 또 썩는다. 그러나 적어도 드러난 부정부패만이라도 제대로 척결하지 않으면 그 부정부패세력은 점점 그 세력권을 넓혀간다.

부정부패 척결은 좌우를 가려서는 안된다. 진보의 부패는 용인할 수 있고 보수의 부패는 용인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부정부패는 모두 척결의 대상이다. 선택적으로 처벌하고 말고의 대상이 아니다.

법원은 문재인 정부들어 정의의 선택적 실현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원래 정의가 제대로 살아있으려면 살아있는 권력에 더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법원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까지 조국의 개인핸드폰은 확보를 하지 못했고, 조국의 개인 계좌는 들여다 보지 못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재수의 개인계좌도 들여다 보지 못했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송병기의 구속영장도 발부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검찰이 조국을 기소하고 유재수를 기소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한다. 법원이 핵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 놓고 어떻게 증거를 재대로 확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청와대에서 조국의 기소를 두고 무리한 수사의 결과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적폐수사에서 법원은 양승태 전대법원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검찰이 요구하는 구속 및 수색영장을 발부해주었다. 조국과 유재수의 경우 경제사범의 혐의가 짙다. 당연히 핸드폰과 계좌는 압수수색을 해 주었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가장 강력한 대처와 처벌을 해야 한다. 정부 여당은 지금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회든 핵심질서와 가치가 무너지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정의는 선택적이어서는 안된다. 선택적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악이다.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선택적 정의가 악이기 때문이다. 정의 메타포는 칼과 저울과 눈을 가린 것 세가지다. 그 중에서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정의는 구현되지 않는다.

결국 선택적 정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한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든다. 안보와 국방에 아무리 많은 돈을 퍼부어도 내부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면, 그런나라의 군대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국정이 혼란해지면 군대가 구데타를 한다. 그것은 군인들이 그런 혼란을 틈타서 권력을 장악해서 잘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혼란한 국정이 국가안보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쿠데타가 국정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 것은 역사적인 경험이지만, 단순 무식한 군인들은 자신들이 뭔가 정리정돈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노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 선택적 정의가 마치 정의인양 호도되어서는 안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자칭 보수정당이라는 자한당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원래 부정하고 부패한 자들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인 듯 하다.

정치권에 희망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가장 큰 이유는 야당에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야당은 없다.

새해아침 희망에 찬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송병기 구속영장기각 소식을 보고 올해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공수처법이 통과되었으니 새해에는 법원개혁에 매진했으면 좋겠다. 제일먼저 영장전담판사제도를 없앴으면 좋겠다.

공수처법 통과를 보면서, 국회와 국민의 거리 그리고 공론의 장

그 말많던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더민당이 이번 회기에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꼼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조국 수사와 유재수 그리고 울산시장 송철호의 선거부정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는 술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수처 법은 이번에 통과시키되 그 시행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방안을 나름대로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사실은 사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더라도 공수처장을 선출하고 검사를 선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정작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을 하게 되면 검찰에서 이미 이번 문재인 정권에 관한 수사는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조치는 매우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하고 있다. 야당이 반대를 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임명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또 청와대와 공수처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법을 명문화시켰다. 청와대에서 공수처에 전화하는 것도 불법이 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정도라면 어느정도 정치적 중립에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야당의 비토권이다. 공수처 법에 반대해서 자한당이 의원 총사퇴한다고 한다. 그럼 공수처장 선발과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된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자한당을 완전무시하고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끝없은 정치적 중립시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아마 공수처장으로 추천된 사람도 야당의 지지없이는 수락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검찰의 태도다. 검찰이 이번에 권력의 핵심을 수사하는 것은 정말로 찬성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검찰이 해온 행태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검찰도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를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검사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만 생각하겠다는 윤석렬 같았으면 검찰이 국민들에게 지금처럼 불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는 물론이고 정치에 직접 개입해왔다. 정권초중반에는 정권의 개가 되고 정권후반부에는 주인을 물면서 검찰의 이익을 확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점에서 검찰도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검찰의 칼은 정권의 부침과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의롭게 사용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조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다.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공수처법 통과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공수처법 뿐만 아니라 선거법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법이지만 국민들은 그 논의의 과정에 철저하게 국외자였을 뿐이다. 도대체 TV와 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쟁점이 되는 조항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도하고 분석 평가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번에 공수처법과 선거법 처리 과정이 이렇게 난항을 겪게 된 것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처리되려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이해보다는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종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공수처법과 선거법에 대한 토론을 했으니 서로 싸우기 바빴지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대로된 전문가들이 나와서 시간을 두고 여야가 주장하는 문제를 분석 평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아마 TV와 신문에서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왜 국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무엇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번 공수처법이나 선거법 처리과정에서 국민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외면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들에게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관한 국회의 논의가 제대로 보도되었으면 어떤 국회의원들이 실력과 능력이 있고 없는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을 도외시한 이런 의사결정과정은 국회의원들의 피해로 되돌아간다. 우리 사회에는 마타도어를 이용해서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사회가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타도어식의 선전선동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공수처법의 조항에 대한 건전한 문제제기도 공수처 법을 반대하는 반민주적이고 반개혁적인 정치인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세력들이다. 이런 세력들이 힘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공론의 장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공수처법의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대부분 공론의 장이 건전하게 열렸으면 국민들이 충분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공수처법은 통과되었다. 제대로 운영이 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부정부패를 하는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깨끗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법과 제도보다는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비판과 비난사이, 진중권을 위한 변호

굳이 진중권의 경우는 아니다. 일전에 조국 딸의 표창장 문제가 되었을때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가짜 학위문제가 대두되었다. 엄격하게 보자면 총장상이 위조되었다는 최성해 총장의 주장의 진위는 그가 가짜 학위를 가졌다는 것과 별 관계가 없다. 물론 가짜학위는 최성해 총장의 말이 지니는 신빙성을 떨어 뜨릴 수는 있지만 가짜학위라는 것이 총장표창이 위조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싸잡아서 비판을 하자, 진중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진중권에 대한 비난의 대중은 그가 관종이라든가 그가 문정권에서 무슨 자리라도 차지하려고 한다는 식의 말들이었다. 그리고 진중권이 최성해 총장의 가짜학위에 왜 침묵하느냐는 이야기도 많았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신문을 비판하기 위해서 최성해의 가짜학위를 먼저 비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중권이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례를 비판하는 것은 최성해 개인의 비리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최성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개인적 일탈의 범위를 크게 넘지 않는다. 그러나 진중권이 비판한 것처럼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례가 친문세력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의 사고를 마비시키려고 한다는 비판은 사회적인 문제다.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 그리고 권력을 가진 어떤 개인이나 단체 그리고 조직에 대한 비판도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영향력이 큰 조직과 단체 그리고 개인에 대한 비판은 총체적으로 보다 해악보다는 건설적이라고 생각한다.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득권에 대한 비판은 항상 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 경종을 불러 일으킨 경우는 대부분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군부독재시절에는 개인적 양심선언이 그리고 그 이후에는 공익적 폭로가 대부분 개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어떤 개인이건 기득권과 조직에 맞서서 비판을 하는 경우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진중권이 관종일 수도 있고 차기 내각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할 수도 있다. 설사 그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가 한 말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그를 관종이라고 하고 문대통령에게 불러달라고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한 말이 타당하고 올바른가에 대한 평가는 전혀 별개이다.

진중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가 하는 말에 어떤 오류가 있고 잘못이 있는지를 비판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냥 싸잡아서 그놈 싸가지 없다는 식이다. 인간을 원래 완전하지 않다. 진중권이 싸가지 없고 관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되돌아 보아 완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공론의 장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악의적인 인격적 비난이 아니고 의견의 개진이라면 그것이 비록 따갑고 쓰리더라도 허용되어야 한다. 지금 진중권에 대한 비난은 공론의 장을 막는 독재적 경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파쇼적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전한 진보라면 싸가지나 관종이라는 말보다는 그가 하는 말의 타당성 논리적 결여를 지적해야 한다. 저놈 기분나뻐식의 접근은 수구보수세력들이 주로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자신이 타격한 거대한 기득권의 벽앞에 좌절할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할말을 다 했으면 좋겠다. 진중권이 친문세력을 비판하니 자유한국당에 눈길을 돌린다고 마타도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바로 군부독재시절의 그들과 같은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진중권을 다시 한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