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발언을 지지한다

진중권이 동양대학교 교수에서 사직서를 내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있다. 일전에 진중권은 정의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찬성문제로 탈당계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동양대학교 교수에서 물러나고 곧바로 유시민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교수가 대학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봉급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풍찬노숙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웬만해서는 교수중에서 사퇴서 내는 사람 별로 없는 이유 다.

진중권은 본인이 동양대에 적을 두고서는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퇴했다고 했다. 진중권은 그런 태도만으로도 타의 귀감이 된다고 하겠다.

진중권은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까지 싸잡아서 비난했다. 문대통령이 간신에게 둘러쌓여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는 친문의 부패를 감싸주는 어용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전적으로 진중권의 발언에 동의한다. 유시민과 김어준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아주 비열한 방식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공정함과 정의로움 보다는 편파적인 진영논리를 우선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은 바로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같은 파쇼적 언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점에서 진중권이 용기있는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은 그야 말로 스스로 경계에 선 사람이다. 유시민과 김어준 그리고 한겨레 같은 언론은 스스로 진영내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은 경계에 선 사람들이다. 진영내로 들어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속한 진영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어디에 서느냐가 중요하다. 스스로 경계에 서서 양쪽을 모두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진영에 속한 지식인은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자기것을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에 불과하다.

진중권에 대한 비난이 매우 거센듯 하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잘못하면 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에 선 사람들은 그런 비난마저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진중권 같은 지식인이 더 많이 나와와 우리나라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해 그동안 진중권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그의 행동을 보면서 그에 대한 내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진중권 같은 용기있는 지식인들이 우리사회에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에 유시민과 김어준 같은 사람들도 진영의 기득권을 옹호하는데 진력하기 보다는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했으면 좋겠다.

비록 별 힘은 되지 않겠지만 진중권을 지지한다. 힘을 내기 바란다. 진중권 같은 행동하는 양심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정말 중요한 것은 기후문제다.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은 생존에 관한 것이다. 생존할 수 있는가 아닌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나는 주저없이 기후문제를 꼽고 싶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문제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초래한 결과다. 즉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기후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은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겠다는 인간의 이기심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만 잘한다고 그리고 우리마를 우리나라만 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가 다 같이 동참해서 참가해야 한다. 그런 연대를 거부하는 것도 자본주의적 방식의 삶 때문이다. 진정 우리가 지속적으로 살아가려면 결국 이윤이 최대의 목적이라는 자본주의 정신의 수정이 필요하다.

예전에 어느 경제학 개론 교과서 서문에 산신령이라고 불리던 분이 앞으로 기업은 이윤의 창출이 아니라 고용의 창출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이 정말 훌륭한 생각을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구에서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면서 서로 패권경쟁을 하면 뭐하고 돈을 벌면 뭐하나? 지구을 버리고 화성으로 갈 것인가? 억만장자들이 화성가서 잘 살아가시길 바란다.

이미 지구 스스로 되돌릴 수 없는 정도로 기후는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눈이 멀어 여기저기서 전쟁하고 땅을 파헤치는 것을 보면서 절망감을 느낀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인간이란 종은 멸망할 것이다. 조국이니 공수처니 선거법이니 하고 한참 싸우고 있지만 도데체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앞으로 얼마후면 더 이상 숨쉬기도 어려워질 것인데. 이런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놓고 가다니 할말이 없다.

인간이 스스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다 멸망한다.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을 고민했으면 한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기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세상에 모든 일이 그렇듯이 칼로 무우자르듯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칼로 물자르기라는 말을 즐겨쓴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경우와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울산시장 선거과정을 두고 시끄럽다. 청와대가 울산시장의 더민당 내부 경선과 본 선거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것 때문이다.

울산시정 선거개입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당내 경선과정과 시장선거과정이 그것이다. 시장선거의 본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해서 야당에게 불리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매우 큰 잘 못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다.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런 일이 없도록 일벌백계해야 한다.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의 행태가 의혹의 핵심이다. 황운하 청장이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보면 선거과정에 개입하고자 했던 것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다. 황운하와 경찰청 그리고 청와대 정무수석의 의혹은 당연히 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당내 경선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대통령이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을 밀어주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대통령은 고도의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한다. 당연히 자신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또 당연히 가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검찰에서는 당내 후보선출과정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규정때문이란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그가 어공이건 늘공이건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권력을 장악하고 청와대나 정무직으로 들어간 사람이 자신이 속한 정당내의 활동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관여할 수 밖에 없다. 관여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이 아닌가 한다.

송철호 시장의 경쟁자들에게 민주당과 청와대에서 이런 저런 회유를 했다고 한다. 오사카 영사로 보내주네 아니면 공사 사장을 시켜주네 마네 했던 모양이다. 검찰이 그것을 문제라고 보고 수사를 한다고 한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의중을 받드는 사람들이 그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여당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 말이다. 권한을 주는 것은 책임도 같이 가져가는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이 무한하다는 것은 그만큼 권한도 커지는 것 아닐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만일 대통령과 정무수석 그리고 민정수석 같은 사람이 모두 공무원으로써 엄격하게 글자그대로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며 또 합당할까?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적폐청산 차원으로 박근혜 전대통령을 공천과정에 개입했다고 사법조치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과문하고 무식한지 모르겠으나 정치란 science가 아닌 art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역역에 법적개입이 지나치면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대통령을 처벌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의중을 떠 받든 청와대 인사들 그리고 더민당 내부도 모두 자동적으로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크게 잘못한 것같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다시 잡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검찰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각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칼을 쓰면 그 부작용이 어떻게 될지도 생각하는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그것이 부족했다. 결국 자기가 쓴 칼에 자기가 당하게 생겼다.

문제는 앞으로 이를 그대로 둘것인가 하는 것이다. 최소한 정치권내부에서라도 어느정도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 한게도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조건 기계적 중립에는 반대한다.

일치가 아니라 분열이 필요한 세상

성탄절 아침이다. 어릴때 성당에 다닐때 들었던 말 중에서 유독 ‘일치’라는 말이 생각난다.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너와 내가 하나되고 적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 참 좋다고 느꼈다. 일치라는 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오늘날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인 듯하다. 

인간이란 원래 분열하려는 속성을 가지려고 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단 한번도 인간은 일치한 적이 없다. 인간은 하느님을 본따서 만든 불안전한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선과 악의 교배로 만들어진 존재인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조로아스터적 관점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유용한 것 같다. 수천년동안 정의로운 세계를 원했지만 결코 그러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인간의 절반을 구성하는 것이 악이기 때문이다. 

선은 분명하다. 그러나 악은 분명하지 않고 교묘하다. 중국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그 귀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정체가 드러난 귀신은 더 이상 사람을 괴롭히지 못한다. 이름을 부르면 귀신이 도망간다는 설정은 천주교의 퇴마의식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간혹 엑소시스트 계열의 영화를 보면 퇴마신부가 마귀에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묻는 장면을 간혹 볼때가 있다. 

악과 마귀는 경계선이 분명한 세상에는 존재하지 어렵다. 복잡하고 분명하지 않은 혼돈 속에서 악은 존재한다. 악을 몰아내는 방법은 악이 무엇인가를 밝혀 내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을 분명하게 밝혀내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밝혀내야할 인간 그 자체가 선과 악의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선이 도처에 존재하듯 악도 도처에 존재한다. 무엇인가 분명하지 않고 혼돈스러운 곳에는 악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그리하여 과감하게 그 경계에 서고자 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경계에 서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지금 지구인 중에서 어린 소녀인 툰베리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경계에 서려 하지 않는 것같다. 경계에 서려 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것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런 유보적인 태도로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말이다.  

지리하게 선악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를 혼돈스럽게 만드는 것 때문이다. 현정부 들어 특히 진영논리가 도덕적 가치를 전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도덕적 가치를 논하면서 진영논리의 영향을 받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문제는 도덕적 가치의 기준이 문제였다.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말고 훔치는 것은 진영과 상관없이 지켜야 할 기준이었다. 진영적 논리란 진영의 이익이란 말과 동일하게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지 말고 속이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하는 도덕적 원칙과 기준을 마음대로 옮기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닐까? 

인간이란 속성상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일치를 추구하려면 그 기준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기준이 흐릿해지면 선과 악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그 희미함을 노리는 것이 바로 악이다. 도덕적 기준과 가치를 진영적 이익으로 무너뜨리려고 시도한 것은 소위 지금의 문빠로 불리는 세력들이었다. 소위 86세력으로 불리는 기득권자들이었다. 둑이 무너지면 물이 들어온다. 한번 기준이 무너지니 86세대 뿐만 아니라 그 반대세력들도 마구 난동을 부린다. 정치와 종교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그 모호함에서 너나 할 것없이 포만감을 만끽하고 있다. 

일치는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니 일치를 추구해야한다는 교시가 애시당초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일치를 이루자는 이야기는 선이 아니라 악의 주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감하게 일치가 아니라 분열을 화합이 아니라 불화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안다. 선과 악은 일치하기 어렵다. 선과 악이 일치하려는 노력은 모호함의 영역만 더 확대시킬 뿐이다. 

그런 모호함 속에서는 선보다 악이 더 판친다.

서울 시민청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삶이란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지상에 잠시 들른 소풍이다. 소풍을 왔으면 잘 즐기고 재미있게 보내다 가면 될 일이다. 소풍이 즐거운 것은 그때는 모든 것이 풍요롭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계절도 풍요롭다. 따스한 햇빛 그리고 부드럽고 온화한 바람이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든다. 많은 것이 풍요로우니 주변사람들과 즐겨 내것을 나눈다.

인생이란 소풍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가진 것이 부족해 나눌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가진 것이 부족하기 보다는 가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가진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주변의 사람에서 얻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매일 만나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서 살아간다.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양식이지만 내 주변사람들과의 만남은 영혼의 에너지다.

어느 신문에서 노숙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주변과의 단절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노숙인들끼리도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단절은 아마도 영혼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어제 서울 시민청에 갔다. 도서관에 책을 찾아 볼까 해서 갔는데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일이었다. 월요일에는 휴관을 하는데 깜박 잊어버렸다.

시민청 지하 무대에 들어가보니 나이든 어르신들이 여기저기 많이 앉아 계셨다. 거기에는 노숙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모두들 혼자 앉아 있었다. 누구와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이나 노숙인들이나 모두 혼자 앉아 있었다. 말없이.

넓은 공연장 끝에는 경비원이 한사람 앉아 있었다. 책상이에는 흰종이에 검을 글씨로 큼지막하게 ‘근무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치 누가 큰 소리를 치거나 소란을 일으키면 곧바로 즉각 밖으로 쫓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넓은 지하광장이 조용한 긴장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쩐지 낯선 광장을 가로 지르면서 사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을까?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그냥 내 몸 하나 편하고 내자식 잘되면 그저 그만인가?

회사나 조직체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은 은퇴하고 나서 한동안 심한 홍역을 앓는다고 한다. 그동안 만나든 사람들과 단절되는 아픔을 겪기 때문이다. 회사와 조직은 내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돈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영혼의 에너지를 함께 제공한다. 그런데 은퇴를 하면 영혼의 에너지가 고갈된다.

돈과 달리 마음은 내가 스스로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마음부자가 되기도 하고 가난뱅이가 되기도 한다. 그저 부드러운 웃음과 따스한 말한마디로 마음부자가 될 수 있다. 그 간단한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온화하지 않고 빡빡한 사람은 마음 부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을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라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저녁이 되면 시민청을 닫는다. 그러면 잠시 따스하게 쉬던 노숙인들은 다시 길가로 몰려갈 것이다. 그들은 어디서 겨울추위를 피할까? 사업실패로 노숙자가 된 사람이 암으로 사망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기사가 생각났다. 죽으면서까지 가족을 지키려고 했단다.

인간은 참으로 못된 종자인 듯 하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되어야 한다면, 바로 그 이유는 바로 남의 불행과 불운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시민청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민주당의 선거전략, 천정배 제거시도의 의미

천정배에 대한 민주당의 비난이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평생을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살았다. 전쟁에 대비하는 것의 핵심은 상대를 읽는 것이기 땜문이다.

갑자기 민주당이 어떻게 생각하면서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림이 천정배에 대한 비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민주당의 천정배에 대한 비난의 양상을 보자. 전방위로 천정배를 비난한다. 나꼼수 일원들이 운영하는 방송, 김용민, 김어준은 천정배를 마치 검찰의 청탁을 받아 공수처를 반대하는 사람, 즉 반개혁적 인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대변인 그리고 우상호 의원 공수처 법안에 대해 검찰이 장인찬스를 이용하여 천정배를 이용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앞으로 호남 출신중에서 천정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민주당은 이이제이의 전략을 사용해서 호남 대중의 눈을 속이려고 할 것이다. 박시영이란 사람이 김용민의 방송에 나와서 천정배를 비난한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민주당의 이런 행동들은 하루 이틀 만에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잘 조직된 행동은 이들의 움직임이 하루이틀만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냥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를 통해 천정배를 제거하겠다는 의도이다.

천정배를 이렇게 제거하겠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지난 총선에서 천정배가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 당을 창당하면서 호남의 표를 가져갔고 그 결과 민주당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아직 천정배의원의 영향력이 있다고 보고 그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을 총선전략의 제1단계로 생각한 것이다. 민주당이 누구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은 매우 지저분했다.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는다.

천정배를 제거하고 나면 민주당은 대안신당과 평민당을 민주당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즉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을 민주당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제2단계 전략일 것이다. 사실 그 정도가 되면 내년도 총선은 거의 민주당이 승리한다.

민주당의 내년 총선 전략은 한국당과 정책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당은 무의미한 지역 정치세력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금같은 양상이면 한국당은 대구경북 자민련과 같은 정도가 되고 말것이다.

그렇게 보면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제1의 과제는 천정배를 위시한 호남 정치세력의 분리와 제거가 될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미 민주당은 평화당이나 대안신당의 의원들을 포섭하기 위한 작전을 구사할 것이다.

천정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것을 보니 어느정도 포섭활동이 진척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동안 진보정치의 미래는 호남의 손에 달려있다는 주장을 여러번 한 적이 있다. 호남의 대중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의 향방이 바뀐다는 것이다.

만일 호남대중들이 민주당의 마타도어에 속아서 천정배를 외면하면 호남은 친문세력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될것이다. 가만 보면 지금 호남의 여론주도층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비슷한 행동양상을 보이고 있다.

천정배에 대한 비난은 날이갈수록 강력해질 것이다. 앞으로 천정배의원이 그런 비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물론 그가 극복하느냐 못하느냐는 호남 대중들의 손에 달려있다.

천정배 의원에 대한 기사의 댓글에 마치 공작을 연상케 하는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격은 가장 비열하고 저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비열한 댓글을 본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천정배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하던 방법이고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방법이다.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자고 제일먼저 주장한 사람중의 하나가 천정배라는 이야기를 아는 검사로부터 들었다. 현재 여야를 떠나서 천정배 보다 공수처문제에 더 전문가가 있는가?

파시즘은 네편이나 아니냐를 분명히 가르는데서 부터 비롯된다. 사안에 따라 의견은 바뀐다. 모든 사안에 대한 평가를 네편이나 아니냐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개별적인 사안은 얼마나 합리적이냐 아니냐, 예상되는 문제가 있는냐 아니냐로 평가되어야 한다.

호남은 민주화의 선봉에 서 있다. 지금 민주당의 행태는 전형적인 반민주적 파쇼의 행태이다. 아마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계신다면 땅을 치고 통곡을 했을 것이다. 호남은 그런 파쇼적 민주당 정권의 출현에 일정정도, 아니 상당한 정도의 책임이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발탁한 두사람이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추미애는 그런 퍄쇼적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감추기 위해 검찰의 수사를 옭아매기 위해, 그리고 천정배는 그런 파쇼에 저항하는 길을 가고 있다.

만일 호남이 민주당의 술책에 놀아난다면, 김대중의 정치적 의미도 사라진다. 현재 정치인중에서 유일한 김대중의 사람이 천정배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이미 광주는 피를 흘려서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살렸다. 그러나 지금 민주주의는 파쇼적 현상으로 말라가고 있다. 호남이 민주당의 술책에 넘어가게 되면 이땅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게될 것이다.

현재 민주당 정권의 행태에서 자꾸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집권과정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연유때문인지 모르겠다. 호남이 역사의 죄를 짓지 않기 바랄 뿐이다. 민주주의는 한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관심을가지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취약한 존재다.

공수처법 ? 무엇이 중한데 …

벌써부터 내년 총선에 대비한 준비들이 한창인 모양이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총선 D-1xx 일이라고 써 붙여놓고 방송을 하고 있었다. 정당의 지지자들이 운영하는 방송이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총선준비는 일단 진영논리로 무장하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진영논리로 몰아가는 것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이 진영논리이다. 가장 높은 가치판단 기준인 것이다.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 것은 참이자 정의이다. 그리고 자신의 진영에 유리하지 않은 것은 거짓이며 불의이다. 조국 사태는 진영논리의 대표적이었다. 조국 일가가 저지른 부정과 불법은 진영논리앞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수처법도 그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앞으로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공수처법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면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 갔다.

유튜브 방송에서 천정배의원이 공수처 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해서 천의원을 비난하는 것을 보았다. 그중에 한명은 나꼼수의 멤버인 것같았다. 구체적으로 천의원이 어떤 문제로 공수처법의 문제를 지적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사위가 검사이고 대검찰청에 있으니 검찰의 앞잡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천정배 의원은 노무현 정권당시 법무부 장관 출신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 검찰총장을 물러나게 했던 사람이다. 정상적으로 법에 정해진 검찰지휘권을 이용한 것이었다. 어떤 검사출신으로 부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검찰들을 압도하는 도덕적 우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이를 지금에 비추어 말하면, 지금의 청와대와 권부에서는 천정배 의원처럼 검찰을 압도하는 도덕적 우월성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아닌가?

그런데 더민당 계열의 유튜브 방송에서 천정배 의원이 공수처법에 반대하니 제거해야 한다는 식으로 은글슬쩍 이야기를 한다. 비열한 짓이다. 아마 천정배의원처럼 검찰의 문제점을 잘 아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말을 들으면서 왜 친문세력들이 비난을 받는지 알 것 같았다. 정치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예의가 있다. 6선의원이자 노무현 정권 탄생의 1등공신이었으며 법무장관이었던 사람에게 하는 말의 품격을 보면서 왜 지금 우리나라 정치가 이런 상황인지 느낄 것 같았다. 친문들의 비열한 언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떠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나꼼수와 같은 방송들을 통해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큰 도움을 받았다. 지금 그 방송의 멤버들이 득세를 해서 어마어마한 방송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더민당의 나팔수이자 전위대가 되어 조금이라도 더민당에게 부담이 가는 사람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가차없이 비난하고 마타도어를 행한다.

바로 그런 행태들이 문재인 정권을 혐오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한다. 대중의 저주와 증오를 유발해서 권력을 잡는 것은 파시즘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정권의 행태를 파시즘적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진영논리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있다. 정직함과 고매한 인격, 윤리의식, 도덕성 같은 것이다. 진영논리는 우리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마비시킨다. 지금 더민당 쪽에서 하고 있는 방송들은 대중들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마비시키고자 한다. 그 수단은 일방적인 비난과 증오, 왜곡이다.

천정배 의원을 한번 만난적이 있다. 그동안 줄기차게 지소미아 종료를 주장했다. 국회에서 천정배 의원쪽에서 섭외가 들어와 지소미아 종료를 해야하는 이유를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소신있게 지소미아 종료를 주장했다.

모든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눈치를 보면서 방향을 못잡고 있을 때, 용기있게 지소미아 종료를 주장한 사람이 천정배의원이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서 천정배 만큼 분명한 소신있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라.

그런데 더민당 계열의 방송이 천정배의원이 공수처법 반대한다고 마타도어를 했다. 더민당에서 천정배 의원을 마타도어 하는 이유 충분히 잘 짐작을 하고 있다. 호남에서 대중들에게 영향력이 있을만한 정치인들을 완전하게 무력화시켜야 호남을 더민당의 깔판으로 이용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정도는 어린아이들도 다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천정배 의원 편을 드는 것은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소신있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정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사람있으면 손들어 보라.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호남의 대중들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국론이 분열된 진영논리로 세월을 지세느냐 ? 아니면 통합을 하면서 앞으로 한발자욱 더 나아가는가 ? 그것은 호남 대중들의 결정에 달려있다.

천정배 의원을 두둔하는 글을 쓰는 것은 지소미아 문제로 뜻을 같이 해준데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는 점을 굳이 감추고싶지는 않다. 그러나 천정배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올바른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면 지지한다.

지금과 같은 공수처법 나도 반대한다. 지금의 공수처법은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방해하기위한 목적아닌가? 일전에 저는 공수처법을 만들되 적용은 다음 정권부터 하자고 하는 안을 제안한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향하는 검찰 수사를 회피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피하려면 공수처법의 실행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것이 옳다.

검찰총장 윤석렬이 난데 없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충정을 운운하는 뉴스를 듣고 실망을 했다. 그도 그정도 밖에 안되는가 보다. 문재인, 추미애이 작당을 해서 수사를 흐지부지하려고 하는 데 윤석렬이 손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언젠가 다시 다 사실이 규명된다. 정권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만일 이번 수사가 미흡하면 다음에 특검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윤석열 특검은 빨리 패스트트랙 수사해서 위반범들 잡아 넣고 처벌해야 한다. 건전한 야당을 만드려먼 패스트트랙에 참가한 작자들 모두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이 살고 건전한 보수가 산다. 법을 만들었으면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들이 만들고 자신들이 지키기 않으면 누가 지키나.

청와대 핵심인사들과 패스트트랙 사범들에 대한 즉각적이며 분명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불용예산은 복지와 미래세대를 위해

일전에 뉴스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불용예산이 6-70조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현정부에서 내년도 총선을 의식해 선심성으로 빨리 쓰려고 했다는 뉴스다. 매년 연말이 되면 멀쩡한 보도블럭 부시고 다시 깐다는 이야기가 나오곤한다. 국내 문제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냥지나갔는데 우연히 TV에서 외국의 국부펀드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자원이 많은 나라에서는 국부펀드를 만들어 복지와 교육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다.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국가중의 하나다. 그래서 사회의 긴장도도 심하다. 자살율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청년실업도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일전에 어느 아주머니들이 교육과 의료 문제로 살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미래에 대한 대비라고 해봐야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정도다.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에 배정된 예산중에서 불용액을 국부펀드 방식으로 적립을 해서 복지자금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들도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에게 연금내주고 자신들은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 연금받고 있으면 마음이 편할리가 없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예산을 아껴서 쓰면 그 아낀 돈으로 미래세대의 복지에 사용할 수 있으니 좋은 방도가 아니겠는가? 저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복지문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총선용 선심성 예산으로 불용예산을 탕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도 생각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일년에 6-70조원 정도라면 적은 돈이 아니다. 지금은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르겠다. 미래세대를 위한 펀드를 만들어 대학학자금이나 병원비 또는 긴급 구호비 등으로 사용하면 좋을 듯 하다.

사회적 복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출생률도 점점 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심한 국가에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너무 힘들다. 이제는 개인간의 경쟁은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지 경쟁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자기자신과 하는 것이다. 타인과 하는 경쟁은 결국 살기 어려운 곳을 만들고 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올때 빈부격차를 줄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많이 했다. 오히려 보수정권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값은 계속 올라가서 이제는 부모의 도움없이는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야 한다.

집값이 이렇게 올라가도록 정부는 도데체 무엇을 했나. 다주택자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집을 한채 지니고 있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은 남의 행복을 뺏아서 자신의 행복을 구하겠다는 나쁜 심뽀를 지닌 사람들이다. 당연히 세금으로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3채이상 지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징벌적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택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숙부께서 건축업을 하셨다. 평생 건물을 짓고 건축을 했다. 지금은 부산에 집한채 있다. 아마 젊을 때 집을 좀 더 사두었으면 지금 쯤 갑부소리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사촌이 숙부에게 집을 좀 더 사두자로 말씀 드렸더니 숙부께서 “사람 사는 집가지고 돈 버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일축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멋있는 인생인가? 지금 80이 훌쩍 지나셨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신다.

말로만 하는 정책은 아무런 결과를 거둘 수 없다. 개인의 선의에만 기댈 수도 없다. 정권을 잡았으면 실질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은 정부가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분야가 아닌 곳에 어설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상식의 수준에서 한마디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