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막바지에

일단 지소미아는 폐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일본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지소미아를 연장시키기 위해 미국은 무지 무지한 노력을 하고 있다.

누차 이야기 했지만 일본이 입장을 누그러 뜨리지 않는 것은 그들도 중국에 맞서서 한미일 군사동맹이 굳어져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나서서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이 그렇게 해주니 고맙다고 할지 모른다.

지소미아가 북한의 미사일을 막는 아주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지소미아 100번해도 실제 군사적 대응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기술적으로 일본전역을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소미아는 여당과 야당에 따라 상이한 입장이다. 주말에 kbs 심야토론에서 한미동맹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한미동맹에 관한 주제였으나 주로 지소미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바른미래의 이혜훈, 자한의 원유철, 민주의 이석현, 민평의 정동영이 참가했다. 정치인들의 논쟁은 논점이 왔다갔다해서 상황을 파악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바른미래당의 색깔을 확인하는데 의미가 있었다.

바른미래당은 제3당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자한과 차이가 없었다. 안보나 경제나 자한과 차이가 없다면 왜 별도로 당이 존재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자한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면 자한당을 바꾸면 될 일이다.

전반적으로 두개의 주제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지소미아 연장과 미국의 방위비 요구다. 지소미아연장에 관해서는 보수 진보진영의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나 미국의 방위비 요구에 대해서는 진보보수 모두 입장이 같았다. 의외였다. 당연히 보수정당은 미국의 방위비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 옳다.

정치인들의 말은 믿기 어렵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미당의 이혜훈은 미국의 방위비 요구를 비난했지만 국회에서 방위비 요구를 비난하는 결의안에는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바미당과 자한당 모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장은 국민들이 무섭지만 사실상은 국민들보다 미국의 눈치를 더 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한국정치에 미국의 영향력이 국민들의 여론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소위 보수정당이나 언론의 최근 입장도 매우 모순적이다. 조선일보는 그렇게 많은 방위비를 내느니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자주적인 언론이 일본과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선 불에 덴 아이처럼 결사 반대한다. 어마어마한 불일치다.

이혜훈은 냉전시대의 동북아 안보상황과 지금의 동북아 안보상황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지소미아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 것을 일부러 눈을 감고 모르는척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들은 대한민국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하는 입장을 지녔다면 방위비를 많이 요구한다고 해서 핵무장을 하자는 입장을 가져서는 안된다. 서로 양립 불가능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했으면 당연히 방위비를 조금 더 내야한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적인 논리적 귀결이다.

최근의 상황은 사이비 보수적 가치관이 한계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정치는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타협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철학과 가치관을 상실하면 정치의 의미를 상실한다.

오랫만에 정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국민들이 믿고 따른다.

주변에서 정부의 결정을 흔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것 같다. 정부는 굳건하게 스스로의 신념을 믿고 가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황 평가

바야흐로 미국은 우리정부에게 모든 압력을 가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위협과 압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단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지소미아를 종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대폭인상하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자 가장 심각한 반대는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미국은 지소미아의 연장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이고 미국과 일본이 동맹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한미일이 동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일본도 그런점에서는 마찬가지인듯 하다. 일본이 한국을 동맹으로 받아 들이는 조건은 지금의 한미동맹과 같이 강대국대 약소국의 동맹관계일 뿐이다.

군사비밀조약은 동맹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프랑스와 러시아의 군사동맹의 핵심중의 하나가 군사비밀의 교환과 보호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의 압력이 심각해지면서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서 소위 보수진영이라고 하는 자들이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보수진영 중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바른미래당 계열의 정치인들에게 주목한다. 유승민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지소미아 연장을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과의 관계강화가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마 그들을 미국이 요구하는 주둔비용도 모두 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들은 정부의 지소미아 연기결정이 우리의 국익에 매우 해를 끼쳤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만일 당시에 우리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일본은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바로 수출 금지품목의 범위를 확대하고 우리 산업 전반에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일본이 비록 몇가지 품목의 수출금지를 지속하고 있지만,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다 그 종류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왜 일본이 수출금지품목을 확대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은 미국의 중재를 거부한다고 했고 미국은 일본과 한국간 중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당연히 일본에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추가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완성 바로 직전에 이런 상황에 직면했으니 곤혹스럽기가 짝이 없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봉쇄를 위한 인도 태평양 전략의 가장 중요한 고리중의 하나가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미국은 한일 관계를 복원해야 하려할 것이고 이를 위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추가적인 경제 공격이 없는 것을 우연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처음에 경제침략을 할 때, 처음의 조치만 하고 추가적인 조치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면, 그것은 너무 낙관적이다. 당연히 일본은 후속조치를 준비했을 것이나,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아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일 일본이 행동의 자유가 있어서 무제한적으로 한국경제를 폭격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경제는 지금 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아마 일본은 단기간에 집중적인 경제공격을 해서 한국의 정부로부터 항복을 받아 내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으로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지소미아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이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입장이 미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냉전당시 소련 봉쇄에 참가한 것 처럼 중국봉쇄에 참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일본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한국정부를 윽박지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미국보다 국민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이런 굴욕적인 협정을 바라지 않고 있다.

만일 미국이 지소미아를 정말 연장해야 한다면 우리 정부는 이번 지소미아를 파기하고 다시 지소미아 협정을 맺어야 한다. 이때는 자동으로 연장하는 조항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1년이나 2년으로 협정의 종료기간을 명시하고 필요하면 추가적으로 서명해서 연장해야 한다.

미국도 지소미아를 연장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당연히 일본의 경제침략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그것은 한국민들의 자존심과 관련되는 일이다. 일본과 미국사람들은 명분보다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이익보다 명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익은 잃을 수 있다. 그러나 명분을 잃으면 안되는 것이 한국인들이다.

당연히 지소미아를 연장하려면 주한미군 주둔비의 인상과 같은 말도 안되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맺는 동맹이 무슨 동맹인가? 속국에 불과하다. 미국이 한미일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면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힘으로 윽박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과 같은 미국의 행동이 계속된다면 한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이제까지의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길것이다. 이미 지소미아 연장과 주한미군 주둔비용 인상으로 한국민들은 미국에 대한 인식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처럼 힘으로 윽박지르는 미국의 태도는 동맹관계를 약화시킬 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과 협상에서 중요한 협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협상수단으로 이용하느냐 아니면 압박을 당하는 수단으로 역이용당하는가는 정부 협상대표단의 능력에 달려있다.

미국의 지소미아에 대한 태도 유감, 그리고 지소미아 유효기간 설정하자

미국이 지소미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유례없이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지소미아의 종료와 관련해 한국, 미국, 일본이 태도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미국은 일본에게는 별 말이 없고 한국에게만 지소마아를 폐기하지 말라고 한다. 한국정부가 지소미아 폐기를 결정하게된 이유는 일본의 경제침략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게 지소미아 폐기를 요구하려면 당연히 그 원인인 일본의 경제침략 중지와 관련한 해결도 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일본에게는 아무말하지 못하고 한국에게만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라고 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한국정부의 입장이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와 문희상 국회의장은 거의 구걸하다시피 저자세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했다. 구걸하는 것 같다. 더 이상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아베 수상과 정상회담을 한 것이다. 정상적인 회담도 아니고 복도에서 억지로 아베를 만나 회담을 한 형국이다.

일본은 11월 중에 한국과 정상회담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이 한국과 공식적인 정상회담을 할 리가 없다. 그것은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이 창피를 무릅쓰고 정상회담을 요청한 것이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일본은 한국과의 군사비밀보호협정 유지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일본이 이렇게 뜨뜨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소미아가 일본의 안전보장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 있어도 지소미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으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까?

먼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지소미아가 한일 양자간 협정의 성격을 넘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이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앙일보 11월 4일자 신문을 보면 ‘조셉 영 주일미국임시대리대사도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미국의 국익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한국정부에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며 미국은 협정을 유지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국 정부내엔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해 동맹관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는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일정보호보협정의 파기를 한미동맹관계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미국이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을 넘는 이야기다. 한일간 다투는 문제가 왜 한미동맹을 훼손하는가 ? 그것은 거두절미하고 미국과 일본은 한편이자 한몸이나 마찬가지인데 한국이 그것도 모르고 일본에게 대들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결국 미국은 한국이 일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것은 미국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이 당사자인 일본보다 지소미아 폐기 유보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일본이 지소미아 유지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는 지소미아가 일본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침략 조치를 취소할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태도는 지소미아는 미국에게 중요한 것이지 일본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지소미아를 유지시키려면 미국이 알아서 해라 우리는 모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본의 입장에서지소미아는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같이 묶으려거 했던 것이니, 문제는 미국보고 해결하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미국이 일본대신 지소미아를 유지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기 어렵다.

미국무부 내퍼 부차관보는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이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이야기다.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한미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로 부터 겪고 있는 위협의 본질은 한미동맹이다.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방위에 대한 분명한 공약과 이행이 필요한 것이다.

내퍼 부차관보의 말을 정리해보면 일본으로 하여금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의 보호와 지원을 받아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 싶지 않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의 상황과 뭐가 다른가?

미국의 정책입안자들과 결정자들이 한반도 문제를 다루려면 기본적으로 역사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일본까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미일과 중러의 힘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국민들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인자나 강도에게 도움을 청하면 안된다.

이낙연 총리와 문희상 국회의장이 무슨 이유로 일본에 그렇게 저자세로 나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비정상적인 것은 다 이유와 배경이 존재한다. 미국으로 무슨 압력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수상에게 저자세를 하는 것도 미국으로부터 무슨 압력을 받은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미국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우리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무조건 모르는 척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정권 실세들이 무슨 약점이 잡히거나 협박을 당하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현상이 생길 수 없다.

우리정부가 안보정책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는 것은 스스로 자청한 측면이 없지 않다. 가장 큰 잘못은 일본과 북한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한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했다. 사드배치 이후 중국이 항의를 하니 우리 정부는 한미일이 군사동맹을 맺어서 중국에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적 결정에 속하는 문제다 그것을 중국과 덜컹 약속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면 어떻게 하나?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한미일 군사동맹 요구에 아무런 의견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미국과 중국사이에 스스로 만든 딜렘마에 빠진 것이다.

만일 우리정부가 지소미아 연장을 결정하면 당연히 중국이 한국정부는 자신들과 약속한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한다고 항의하고 보복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얻는 것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국면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에 봉착하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소미아 문제의 경우 종료결정의 이유였던 일본의 경제침략 취소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국제적으로 비웃음을 사게된다. 물론 국내정치적으로도 치명타를 받게 된다.

현정부가 경제침략취소를 얻어내지 못하고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취소하게 되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잘못을 하게 된다.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 법이다. 정부가 목숨을 걸고 원칙을 지키면 살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만일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번복해야 한다면,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지금의 지소미아를 폐기하고 다시 새로운 지소미아를 체결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지소미아는 기한설정이 없다. 일방의 종료통보가 없으면 그 효력이 계속된다. 급변하는 안보상황에서 효력기간이 무한정인 군사협정을 맺는 것은 생가해볼 여지가 많다.

지소미아 유효기간을 1년이나 2년으로 설정하고 매년 다시 체결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정부가 안보상황에 따라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리할 수 있다. 국제관계에서는 무엇이 유리한가를 끊임없이 따져야 한다. 비록 한미관계로 인해 쉽지 않다 하더라도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정부의 일본정책 방향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요 며칠새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 느껴진다. 최근 일본과 관련된 특이사항은 크게 세가지 정도다.

첫째는 이낙연 총리의 방일이다. 일본 천황의 즉위식에 참가해서 한일관계를 이야기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두번째는 정경두 국방장관이 국정감사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취소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세번째, 그동안 지속되어오던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동력이 떨어졌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유니클로는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유니클로 광고에서 ’80년도 더 된일을 어떻게 기억하니?”라는 광고 카피를 내보내면서 한국인들을 조롱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위의 세가지 일들이 각자 다른 것 같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제전쟁이후 그토록 견실하게 유지되어 오던 일본상품 불매 운동이 이렇게 붕괴되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국사태 때문이다. 온통 조국사태에 매몰되어 있는 바람에 일본에 대한 정책을 냉정하게 세워나가는 일을 하지 못했다. 조국이 법무장관으로 출사할때 죽창가를 부르면서 일본과의 싸움을 예고했지만 결국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조국사태가 진행되면서 일본과의 외교 경제전쟁은 친일파 척결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애시당초 조국을 위시한 정부여당은 일본과 제대로된 관계를 설정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조국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마치 북한 김정은과 대화나 회담을 국내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과 똑 같다.

북한은 무관중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일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때 꽉찬 스터디움에서 연설을 하게 하고 환영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무관중 축구대회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신과 관계는 끝났다’는 사인이나 마찬가지다.

국제관계나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게 되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정치가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면 국가가 위험해 진다. 우리는 그것을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표현하곤 한다.

일본 불매운동의 동력이 상실된 것은 현정부와 여당의 책임이 크다. 괜히 아무 결과도 없을 조국사태를 자초하여 국민들의 여론을 집결시키고 단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유니클로 매장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을 우리 국민의 냄비근성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정부 여당이 제대로 정책의 우선순서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에서 80년 이야기를 만든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통상 할머니와 손녀는 기껏해야 50년이나 60년 차이가 정상이다. 그 범위를 넘어가면 통상적이지 않다.

모든 이상한 것들에게는 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80년을 일본의 과거사와 연관시키는 것은 광고를 만들때 그런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론의 분열은 일본 유니클로라는 개인 기업으로부터 조롱을 받은 상황까지 초래한 것이다.

두번째 정경두 국방장관의 발언은 이미 우리정부가 일본과 지소미아를 지속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일본과 상당한 싸움을 하면서 지소미아 파기라는 강수를 두었다. 현정부와 여당이 처음부터 지소미아 파기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에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한 것은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였다.

정경두 국방장관이 이런 발언을 하게 된 것도 조국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아마 국방장관의 발언은 사전에 청와대와 교감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정부와 여당이 지소미아 파기를 취소하기로 결심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국내정치여건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정권이든 국내에서 지지도를 상실하면 외부의 지원을 기대한다. 국내정책을 잘못하면 대외정책에서 그것을 메꾸려고 하는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를 취소하면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혹시 일본과 사전 교섭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봐서는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댓가없는 우리의 일방적인 파기 취소가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정부에게 지소미아 파기 취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만일 이번에 아무 댓가없이 지소미아 파기를 취소하게 되면 한국은 일본에게 외교적으로 결례를 범했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즉 앞으로 한국은 일본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낙연 총리가 일본을 방문해서 아베총리를 만났을때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가 지소미아 파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낙연은 이 문제를 잘 풀어서 국내정치에 화려하게 등장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친문세력이 궤멸한 상황에서 자신이 김경수나 조국의 대타로 대선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이낙연 총리가 일본에 가서 우리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까지 일본내부의 여론과 분위기가 그리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아베 정부가 지금 한국과의 관계에 조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얼마전 태풍사건에 안이하게 대처해서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 아베수상은 이낙연 총리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지금보아서는 문재인 정권의 대일 정책은 총체적인 패배로 끝날 확률이 높다. 아쉽다. 조국사태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문재인 정권은 상종가를 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잘못하면 그 잘못이 연속해서 되돌리킬 수 없게 상황을 악화시킨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그런 경우에 처한 것 같다.

너무 성급하게 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망치는 수가 있다. 급할수록 천천히 해야 한다.

지소미아 종료했다고 우리 안보 걱정할 필요없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후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반발은 우리 국내 소위 보수적 지식인들을 움직인다. 누구말로 노련하게 한국사회의 외곽을 때려서 가운데를 균열시키는 효과를 노리는 듯하다. 우리네 소위 보수적인 지식인들은 우리가 스스로 제2의 에치슨 라인을 그엇다든가 아니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든가 하는 우려를 쏟아 낸다. 그런 우려는 뭔지 모를 엄청난 불안감을 조성한다.

미국 당국자들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한다. 그리고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정이라고 비난한다.

세상에 떠돌아 다니는 수 없이 많은 말들은 다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말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다. 우리가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결국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이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런 작업을 하지 못했다. 미국이 하는 말은 그냥 주눅이 들어서 논리로 따지고 말고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국내 주류들이 미국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득세했듯이, 지금은 미국에 유학을 갔다왔거나 미국과 직간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친일파와 친미파가 다 똑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미국의 당국자가 한마디 하면 우리 국가와 사회 전체를 강타하는 효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안에 스스로 구축한 강고한 친미주의자들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스스로의 권력을 강고하게 구축해왔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친미주의자들이 유용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있어서 이런 매판적 친미주의자들은 상당한 장애가 된다. 이런 장애는 종국에는 미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도 있다. 왜곡된 생각이나 판단 또는 물건은 원래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내 친미주의자들은 미국의 권위를 후광으로 삼아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고자 했다. 결국 미국은 한국의 친미주의자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한국의 친미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미국을 이용할 뿐이다.

한국과 미국이 정상적으로 발전해서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논리를 바탕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해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이번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불만을 분석해려고 한다. 미국이 이야기한 ‘실망’이란 이해관계의 분석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소미아 종료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은 옳지 않는 말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한국과 일본이 제대로 교환하지 않으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미사일은 탄도 미사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교환하는 정보는 사전정보가 아니라 사후정보가 주다. 사전정보는 미국이 일본과 충분하게 교환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교환하는 정보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정보도 아니다. 따라서 작전적으로 거의 가치가 없다.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가 서로 연결하는 접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책적이거나 전략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런 부분은 국가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한일관계가 나쁘면 실제 군사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그런 부분들은 정치적으로 없애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미국의 주장은 구체적인 실체를 담지 않고 있는 추상적인 레토릭에 불과하다. 만일 정말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위협이 증대하고 있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군사적으로 보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문제는 한국이 주일미군에 대한 문제는 일본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나가면 된다.

사실 미국의 반응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우리안의 친미세력들은 우리가 제2의 에치슨 라인을 스스로 그었다느니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이라느니 하면서 한국사회의 불안을 야기하기 위한 작업을 스스로 했다.

따져보자. 에치슨 라인이란 냉전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미국은 강력하게 확대하는 소련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당시의 국제관계를 관통하는 개념은 이익이 아니라 이념이었다. 지금처럼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에치슨 라인과 같은 말은 있을 수도 없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미국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한국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전쟁에서 전방은 후방보다 중요하다. 전쟁의 승패는 전선에서 결정난다. 전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미국이 한국에서 물러나면 그것은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을 지킨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라는 주장도 옳지 않다. 우리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무기만 제외하면 북한군은 한국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북한이 우리군의 전력증강에 대해 계속 문제를 삼는 것도 그런 이유다. 북한은 핵을 보유해서 전쟁을 억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군의 재래식 전력증강으로 핵보유 효과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의 핵을 억제할 수 있는 핵우산 제공이다. 그리고 핵을 보유하지 않은 동맹국에게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은 미국의 의무이기도 하다. 만일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 미국의핵우산 은 우리가 핵무장을 포기하는 댓가로 얻은 권리다.

핵을 제외한 재래식 전력에서는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상당수준 우위에 있다. 능력이 충분한데도 미국에 기대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유아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분리불안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지소미아 종료를 이유로 국민들에게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해서는 안된다. 지금 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 운운하며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정치적인 행위다. 안보는 당파적 정치의 대상이 되거나 어떤 일파들의 이익추구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지소미아 종료를 둘러싸고 미국과 보수세력들의 본격적인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지소미아의 종료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우리나라 보수세력들이 지소미아 종료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주장하는 것은 한미일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해서 중국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부담스럽고 그래서 미중 패권경쟁에 한국과 일본을 같이 끼어넣고자 하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한미일 동맹으로 점차 확대하려고 했다. 한미동맹이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서라면 한미일 동맹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관계는 근본적으로 그 내용이 매우 다르다.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한미일 관계는 그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한미동맹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동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지금의 한미일 관계는 그것을 규정하는 조약과 같은 문서가 없다. 쉽게 말하면 부모없이 자식이 태어난 것과 비슷하다.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관계를 정치적인 정리없이 사실상 한미일 3자동맹으로 만들어 가려고 했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관계를 군사동맹으로 이어가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군 출신들 중에서 한일간 상호군수지원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고 그런 군사관련 협정들은 점차적으로 한미일 관계를 동맹의 성격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군출신들은 북한의 남침을 고려해 볼때 전시상황을 고려한 한일군수지원협정을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군사적인 판단과 결정이 정치적인 판단과 결정을 앞서가서는 안된다.

사실 지소미아를 체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중국을 적으로 상정한 한미일 동맹에 가입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정치적으로 결정했어야 했다. 지금우리가 지소미아 종료를 통해 겪고 있는 이런 혼란은 사전에 정치적으로 정리했어야 할 부분을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중국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중국은 우리 교역의 50%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을 공식적인 적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심각한 문제에 빠진다. 우리 경제는 회복불능의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마 북한의 남침이 아니라 내부붕괴로 스스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중국을 적으로 상대하면 안된다고 하면 그럼 중국과 동맹이냐 혹은 미국을 버리고 중국으로 경사하자는 것이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보수층들의 상당수가 그런 질문을 한다. 한마디로 옳지못한 문제제기다. 우리가 독일하고 동맹을 맺지 않았다고 적대적인 관계인 것은 아니다.

국가와 국가간에는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 모든 관계를 적과 동맹의 이분법적 관계로 파악하는 냉전적 시각으로 지금의 국제관계를 보아서는 안된다. 미국도 중국을 적이라고 하면서 서로 장사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도 살아남지 못하고 중국도 살아남지 못한다.

한국이 중국에 경사될 것이라는 수없이 많은 예언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한중관계와 한일관계가 단순하게 힘의 과다에 의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정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사적 굴곡과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조선시대와 달리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문화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진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정치적인 민주화가 가장 앞선 나라가 한국이다. 이런 정치적 성취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단순히 경제적 군사적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중국은 한국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이지만, 한국보다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앞선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중국과 장사만 잘하면 된다. 지소미아 종료가 중국으로 한국이 기우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아둔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많은 한국인들은 거대한 중국이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입장은 못된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에 대해서도 문화적으로 열등감을 지니고 있지 않다. 당연히 민주주의라는 척도에서 보면 일본은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 일본은 단지 한국보다 경제력과 군사력만 강할 뿐이다. 그것도 개인구매력으로 따지면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별로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경제침략에 대해서 격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힘만 앞세우고 무식하게 나오는 것에 대비해서 한일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점에 대해서는 북한도 입장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지나친 태도에 대해 공동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일본의 부하가 되는 것을 감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한국사람들은 미국이 한국에게 일본의 부하가 되어서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는데 참가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국제관계의 전통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힘이 적은 한국이 힘이 강한 일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 관리들은 그런 관점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보는 것 같다. 미국 관리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간의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관계는 국제정치이론이 아니라 역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더구나 지금 미국이 강요하는 한미일 3각관계는 정치적으로 이상적으로 중국보다 우위에 있지도 않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청산하지 않았다. 한국은 중국과 한국전쟁을 치루었다.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했다. 한국전쟁도 정리되지 않았고 식민지배도 청산되지 않았다.

일본은 식민지배 청산은 커녕 오히려 태평양 전쟁이전의 국가주의로 회귀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이 변하지 않은 한미일 3각 체제는 어떤 성격을 지닐까? 우리가 미래를 같이 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은 보편가치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더 뒤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일본과 같이하는 한미일은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없다. 그런 한미일이라면 중국보다 어떤 점에서 더 가치있고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가치가 우위에 있지 않으면 그냥 힘겨루기 싸움하는 것인가? 단순 무식한 힘겨루기 싸움이라면 우리가 목숨걸고 가담할 이유가 뭐있나?

일본이 진정하게 새로 나지 않은 한미일 3각관계나 공조는 어떠한 역사적 의미도 없다.

우리는 무엇을 그리고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가? 적어도 한일의 지소미아종료가 한미관계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일과 한미간에는 어머어마한 공백이 존재한다. 그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한미동맹이 약화된다고 하면 그 누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한미동맹을 위해서라면 다시 일본의 꼬붕이 되는 길도 감수하겠다는 것인가?

그런 한일관계를 강요하는 한미동맹이라면 단호히 거부한다.

해리스 주한미대사 초치의 의미

하루가 역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어제가 그런 것 같았다. 두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첫번째는 우리 외교부가 주한미국대사를 초치해서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불평불만 그만하라고 한 것이다. 두번째는 검찰이 조국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한 것이다.

사건의 파장으로 보면 검찰의 조국에 대한 수사가 크게 느껴지지만 , 우리 외교부의 해리스 주미대사 초치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제는 단순한 어제가 아니었다.

우리 외교부가 해리스 미국대사를 초치한 것은 한마디로 말해 주의를 준것이다. 우리 외교부가 미국대사를 불러서 주의를 준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미국대사를 불러서 주의를 줄 수 있는 위치에 단 한번도 있어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주미대사 초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물론 원인은 미국이 제공했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조치에 대해서 지나친 행동을 했다.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이나 국방부 차관보의 발언은 정도가 지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한미대사의 초치는 한국에서 항상 주인 노릇을 하던 미국으로서 자손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미국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책임도 크다. 국내의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무엇이 국익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생각고 없이 오로지 정파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정부의 결정을 마구 흔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정부가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이르는 과정이 그리 매끄럽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우선 여당도 대통령의 결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대통령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청와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직전까지 여당은 지소미아 연기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여당 스스로 무엇이 바람직하고 옳은 것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지소미아 결정과정에서 그동안 여당의 나팔수라고 자임하던 유명인사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도 잘 새겨봐야 한다. 정파적인 공격에는 능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 들 중에서 국가의 경영을 위해 정파적 사심에서 벗어난 사람은 여야 통털어 한두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영웅을 만들지만 그 영웅을 영웅답게 만드는 것은 대중이다.

일본은 지소미아 종료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미국뒤에 숨어 가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이렇게 강력한 외교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일본은 마냥 미국뒤에 숨어 있기만 어렵게 되었다.

한번 결정하기가 어렵지 일단 한번 저지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세상이 달라진다. 정부수립이후 우리 외교부는 대외정책을 수립하는 부처라기 보다는 의전을 주로 하는 부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의 그늘안에 있으면서 스스로 생각할 필요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변화의 물꼬가 한번 터지면 연쇄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지소미아 종료결정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어제는 우리나라 외교부가 그 정의에 맞는 역할을 처음으로 했던 날이 아닌가 한다. 국민들 모두 외교부를 칭찬해주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 화이트국가배제 결정을 내렸다. 여기까지는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일본은 수출통제를 더욱 강하게 밀고갈지도 모른다. 전쟁은 지금부터다.

이번 전쟁은 단기간의 흥분과 반일 감정으로 치루어서 승리하기 어렵다. 국민들 모두 치밀하게 계산하고 행동해야 한다. 일본이 항복할때까지 일본여행은 자제해야 한다. 추석에 일본으로 여행을 많이 간다고 하는데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좋거나 싫거나 우리는 아베를 극복해야 한다.

일본상품불매운동이나 일본여행안가기 운동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우리는 불리한 처지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국민들이 힘과 마음을 합하는 수 밖에 없다.

조국문제로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조국은 국내문제다. 일본과의 전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조국문제가 빨리 정리되길 바란다.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대한 비판을 보면서

미국이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국무부 대변인이 나와서 지소미아 종료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발언을 했다. 우리 보수언론도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한다. 심지어 국제정치를 공부했다는 원로 학자들도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한다.

이들이 원하는대로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취소한다고 하자. 그럼 그것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우리는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잘못된 대외정책을 한 것이다. 만일 정부가 그들이 바라는대로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취소해버리면, 그 정부는 자신의 대외정책을 잘못결정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잘못을 하고도 아무런 일 없는 것 처럼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정한 것을 되돌리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소리다.

정부의 결정에 반대를 하더라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그냥 닥치고 되돌려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유아적 태도다. 책임있는 학자나 언론이라면 지소미아 종료결정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짚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다

최근 일부 언론과 원로학자들의 발언을 보면서 이것이 이적행위와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했다. 외부와 전쟁을 하면 내부적으로 조금 불만이 있더라도 다 같이 함께 힘을 합치는 법이다. 서울경제신문의 권홍우 기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분을 했던 우리 역사를 일컬어 ‘천형’이라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성숙하고 자존심이 있는 국가의 국민들은 지금 우리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예가 있다.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다. 러시아 군대가 제일 먼저 무너졌다. 병사소비에트가 수립되었고 장교들과 지휘관들은 모두 추방되었다. 당연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전투를 전혀 할 수 없었다. 레닌은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소련에 침공을 해서 군사적인 간섭을 했다. 일본도 시베리아에 진출했고, 영국 프랑스 등등 거의 모둔 국가들이 군대를 보내 볼세비키 공산정권을 붕괴시키려고 했다. 러시아 전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병사들로는 전쟁을 할 수 없었다. 레닌은 군사전문가들을 소환했다. 과거 귀족이며 부르주아출신의 장교들을 소환한 것이다. 많은 러시아 장교들은 자신을 숙청했던 소비에트 러시아 군을 지휘해서 반혁명군과 싸웠다.

러시아 제국의 장교들이 백군과 적군의 지휘관이 되어 서로 싸웠던 것이다. 러시아 제국군대의 장교들 중에서 열강의 지원을 받는 백군보다 적군에 참가하는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적군에 참가한 군지휘관이 언제 어떻게 반역을 할지 모른다고 해서 만든 것이 정치장교다.

적군에 참가한 장교들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주의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군에 참가한 것은 순전히 민족주의적인 가치 때문이었다. 결국 2년이 넘는 치열한 전투를 겪고 러시아 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적군에 참가한 장교들은 만일 백군이 이기면 러시아 영토가 열강에 의해 이리저리 찟겨 나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들은 반혁명이 성공해서 러시아 영토를 상실하는 것보다 소비에트 러시아 편에서 러시아 영토를 지키는 것이 더 국가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러시아 내전을 승리로 이끈 대부분의 제국군 출신 장교들은 이후 모두 사라져갔다. 소련이 이후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애국적 장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역사는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진다는 헤겔의 말이 옳은 것 같다.

우리가 지식인이나 언론으로부터 기대한 것은 합리적인 비판과 대안이지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다. 이미 정해진 것을 뒤집으려는 것은 자해적이다.

설사 지소미아 파기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냥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다. 그 결정을 되돌리려면 어머어마한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냥 지소미아 파기결정을 유지해 나가는것보다 훨씬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결정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녔다면 어떻게 일본과 교섭을 해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찾을 것인가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일부언론과 소위 원로 국제정치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를 보면 무엇이 국익인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적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뒤에는 당연히 무엇인가가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젓을 떼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젖을 떼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국제정치무대에서 젖을 떼는 과정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통해 우리는 겨우 젓을 떼고 비틀비틀거리면서 홀로 일어서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것을 서투르다고 비난하면 절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한일경제전쟁, 트럼프의 잇속, 우리의 태도

어떤 사고나 사건은 다양한 층위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 조금더 분석해 들어가보면 무엇이 그 사건의 원인인지를 분명하게 특정하기 어려울 경우가 많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그 분명한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도 역사학자들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교적 분명하다.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도 그렇다. 무엇때문에 일본이 경제전쟁을 도발했는지는 다양한 수준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다른 역사적 사건처럼 일본이 시작한 경제전쟁의 결과는 비교적 분명해진다. 특히 누가 제일 많이 이익을 보았는가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 더욱 그러하다.

제일 많이 이익을 본 국가는 미국이다. 한국정부는 모두가 꺼려해 마지 않는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함정을 미국의 동맹국중에서 가장 먼저 파견했다. 프랑스, 독일은 미국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고, 일본은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나중에 어정쩡하게 미국의 지휘를 받지 않는 조건을 고민중이다.

한국은 미국에 내년도 방위비의 인상도 약속한 듯 하다. 한국정부는 부인하지만 트럼프는 트위트에다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랑을 한 껏했다. 그것도 조롱과 함께.

일본은 미국의 옥수수를 수억달러어치 사주기로 했다. 중국이 미국의 곡물을 구매하지 않으니 일본이 사준것이다. 일본이 그런 결정을 하는 것 보면 수상의 권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그렇게 결정하면 국회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아마도 일본은 앞으로 옥수수를 많이 먹게 될 것 같다.

일본이 미국의 옥수수를 사주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돈이 남아 돌아서 혹은 일본국민들이 옥수수를 많이 먹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결국 곤경에 처한 트럼프를 도와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 행동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일본이 갑작스럽게 수억달러어치의 옥수수를 산 것은 미국의 지원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물론 그 지원이라는 것이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관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의 경제전쟁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하자, 미국에게 그런 사태까지 오게되어서 미안하게 되었다고 옥수수를 사준 것이 아닐까?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하자 당황했던 일본의 태도는 뭔가 이상했다. 아마도 일본은 미국에게 한국 정부가 절대로 지소미아를 파기 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것 빼고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 어렵다. 미국은 별로 한 것없이 한국과 일본 양쪽으로부터 상당한 이익을 거두었다.

단기간으로 보면 트럼프의 이익처럼 보인다.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과 같은 미국의 태도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동북아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고 세력균형자의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로부터 옥수수를 사주겠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G-7회의에서 한국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했다.

김정은이 문재인을 믿을 수 없다고 했고,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보자고 했다.

통상 두고보자는 놈 무섭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두고보자고 하면 그것은 전혀 다르다. 한국에 무슨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일종의 경고나 협박정도로 이해해도 된다. 트럼프도 일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그에 해당하는 뭔가를 해주려고 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그 이전의 미국과 많이 다르다. 동맹국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미국이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가 단결해야 한다. 그런데 우려스럽다. 지금 일본과 경제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미국도 거기에 가세하는 형세인데, 우리는 내부적으로 서로 싸우고 있다. 이겨놓고 전쟁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분열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내부 분열을 하고 있다. 내부분열을 하면 전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분열을 극복하고 다시 전열을 정비해서 싸워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역할이고 국민의 저력이다. 서로 서로 한발씩 물러서서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은 정치적 갈등을 할 시기가 아니다.

훌륭한 정치가가 되려면 싸워야 할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때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외부와의 전쟁을 내부의 정치적 갈등에 이용하는 정치가는 매국노다. 지금 현재 정부나 자한당이나 결코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이 우리를 경멸하는 이유

일본상품 불매운동과 일본안가기 운동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되돌아 보았다. 이번 일본의 경제침략이전까지 일본여행은 하나의 트랜드였다. 조금만 여유있으면 일본을 찾아갔다. 일본사람들을 어떻게 보는지는 전혀 게의치 않았다. 나만 재미있고 즐거우면 되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다. 일본을 갔다와서 서로 자랑을 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어떻게 평가받는가는 대부분 과거에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따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일본맥주를 즐겨 마시고 일본 여행을 가서 흥청망청할때, 일본인들 눈에 한국인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종살이 하던 놈의 자식이 돈을 조금 벌었다고 종살던 집의 고급레스토랑와서 흥청망청 돈쓰고 있는 격이나 무엇이 달랐을까?

 그때 종살이 하던 놈은 주인에게 등짝이 벗겨지도록 두들겨 맞기 일수였고 심지어는 맞아 죽기도 했다. 자신의 애비가 맞아 죽었는데도, 때려 죽인 놈의 가게에 와서 좋다고 웃으면서 스테이크 사먹는 놈을 무어라 평가할 것인가? 돈을 쓰니 고맙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 생각없는 놈이리고 경멸해야 할까? 우리가 한것과 전혀 다름없다. 일본인들이 우리를 보는 눈은 경멸에 다름 아니다. 일본인들의 혐한감정은 경멸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의 눈에 한국인들은 자존심이 없는 족속으로 보였을 것이다. 굳이 비유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는 기업들이 한국을 혐오하는 방송을 운용하거나 일본의 극우단체에 한국에서 번돈으로 기부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어떻게 보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경멸을 당하면 대드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이 건강한 정신상태다. 경멸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꼬리를 흔들며 좋다고 따라다니는 것은 애완견들이나 할 짓이다. 아마 일본인들의 눈에는 한국인들이 애완견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주전장이란 영화에서 한국인들을 ‘귀엽다’라고 한 것을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인들이 혐한방송을 하는 것이 과연 그들만의 잘못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보일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일까? 일본인들이 과거사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을 보고 일본인들이 과거사 반성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들 눈에 한국인들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조센징과 다름없었는지도 모른다. 

해방이후 힘이 약해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서는 철저하게 정신을 올바로 세우고 정리를 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친일파 논쟁은 과거에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결과다. 역사는 흔적없이 지나가지 않는다. 정리하거나 청산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다. 

안병직이 해방이후 70년이 지났는데 무슨 친일 친미를 따지느냐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조선일보의 기사다. 조선일보가 그런 기사를 올린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대충 지나가는 것이 국가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안병직은 자기 부모와 형제자매가 일제헌병이나 경찰에 맞아 죽었어도 그런 말을 했을까? 

진정한 발전과 진보는 과거의 어려움과 잘못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 그냥 두고 지나가면 다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발목을 잡힌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겪어야 하는 일을 겪어야 한다. 우리 사회나 국가가 진정한 발전과 진보를 달성하려면 과거의 질곡을 극복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아직 일제시대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수없이 잘못된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일제이후 형성된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 어떻게 발전이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을 고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내부에서는 스스로 각성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정상적인 국가대 국가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여전히 일본인들의 눈에는 한국인들이 식민지인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일본상품안사기 운동과 일본안가기운동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 국민들의 힘을 보여 주어야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 혐한방송을 하는데 쓰거나 일본우익단체에 성금을 내는 짓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자주 갔던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거의 예외없이 모두 우익인사들이었다. 그런 인사들을 국회의원으로 뽑는 지역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일본주민들이 자신들의 극우 국회의원들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일본제품 안사기 운동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일본안가기 운동을 안할 것이 아니라 일본우익소속이 아닌 국회의원을 뽑은 지역으로 여행을 해야 한다. 

명심하자 내가 현재 받는 대우는 내가 했던 행동의 결과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