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 뭔지 알고나 말하나?

유승준, 아니 스티브 유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것이 지나친 것이 아니냐하는 문제로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중인 모양이다. 최종 판결을 대법원에 가서 내려진다고 한다. 그것이 법원까지 가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이라는 매우 버거운 짐이다. 징병이라는 이유로 약 2년 정도 소중한 젊은시절을 희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경제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본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은 시간과 돈을 모두 다 국가에 바쳐야 하는 일이다.

며칠전 민주연구원의 양정철이 모병제를 들고 나왔다. 총선에서 젊은 사람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없어졌다. 이런 현상을 보고 여당의 문화가 걱정이 된다. 여당은 책임을 지는 쪽이다. 야당은 책임을 묻는 쪽이다. 여당의 책임자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여당은 다음 선거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양정철의 책임이 상당할 것이다.

그는 왜 모병제를 주장했을까? 모병제를 주장하기 전에 국민개병제의 차이와 의미를 알아야 한다. 국민개병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다. 부르봉 왕가를 타도한 프랑스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군이 처들어 왔다. 이들을 막아낼 프랑스 군은 모두 없어졌다. 당시 프랑스 군은 왕의 군대이지 국가의 군대가 아니었다. 프랑스 인민들은 스스로 군대를 만들어 혁명을 진압하러 처들어온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군에게 맞섰다. 당시 프로인센과 오스트리아군은 아주 잘 훈련된 용병이었다. 유럽은 당시 용병의 시대였다.

연전연패하던 프랑스 인민의 군대가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발미라는 조그마한 지역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 승리가 혁명 프랑스를 지켰다. 이후 프랑스는 인민의 군대를 만들었고 국민개병제가 등장했다. 국민국가에서 국방은 시민적 권리가 된 것이다. 이후 유럽은 모두 국민개병제를 도입했고 징병제를 유지했다.

미국도 징병제를 유지했다. 제2차대전과 베트남전도 징병제로 치루었다. 미국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꾼 것은 월남전의 경험때문이었다. 월남전은 미군의 패배로 끝났다. 그 이유는 군대가 국가 정치의 도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징병되어온 병사들은 의미없는 전쟁에서 전투할 의욕을 잃어 버렸다.

베트남 전이후 징병제 대신 모병제로 전환한 것은 미국시민의 요구가 아니라 미군의 요구 때문이었다. 미국은 세계제국이다. 세계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업다. 과거 영국이나 네델란드는 자신들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나 서인도 회사에서 군대를 운영했다.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회사의 군대를 보유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후 국민국가의 군대는 모두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한다. 미국은 세계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의미없는 전쟁이 될 수 있는 곳에 보통의 미국민들을 끌어 넣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미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라도 전투를 할 수 있는 군대가 필요했다. 미국은 세계정치의 도구로 군대를 활용하기 위해서 징병제를 버리고 모병제를 도입한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아주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나 스웨덴같이 잘사는 나라에서도 굳이 모병제를 하지 않고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은 국민국가의 기본이 국방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모병제를 도입한 것은 이제 전쟁의 위협이 없어져서 과거와 같은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코 사람들이 징병제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병역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다르다. 우리의 존경하는 정치지도자들 중에서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안보를 주장하면서 보수를 자임하는 정치인들에서 군대에서 정상적으로 복무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것은 한국의 보수정당이 기회주의자들의 피신처이기 때문이다.

모병제는 군대가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도입하는 제도가 아니다. 차라리 징병제로 군대에 가는 젊은이들에게 봉급을 제대로 지불하는 것이 훨씬 좋은 제도다.

군대에 가서 2년가까이 시간을 국가에 바치는데 거기다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시간과 돈 모두 이중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병장이 약 4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누가 한달에 40만원받고 근무하겠는가?2년간 마치고 나오더라도 퇴직금도 없다. 당연히 최소한 150만원에서 200만원은 주어야 한다. 2년간 병역을 마치고 오면 그 돈으로 대학은 마칠 수 있어야 하고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은 그 돈으로 사회출발을 하도록 국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

우리에게 징병제는 마치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의 병역과 비슷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도입하고 있는 징병제는 국민국가의 징병제이지 조선시대의 노예병이 아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인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2년간 의무를 다하면 그에 해당하는 정당한 보상은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 하루 8시간씩 근무한다고 치고 최소한 최저임금은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인기를 끌기위해서 도입하고 있는 청년수당이니 뭐니 하는 것 보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국처럼 정예군대를 만들어서 아무데나 가서 전쟁을 벌일 것도 아니니 모병제가 그리 필요하지도 않다.

스티브 유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사회의 통합을 방해하는 가장 최악의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행동은 보수정당의 정치지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청와대 이상하다 했더니, 이름이 문제였다.

‘사찰의 상징세계’라는 책이 있다. 자현스님이 쓴 책이다. 2012년에 초판이 발간되어 2019년 5쇄를 찍었으니 매우 인기있는 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해야하겠다. 불교에 대한 소개가 쉽게 되어있다. 사진찍은 솜씨가 수준급이다. 하나하나 그냥 대충 만든책이 아니다. 조계사에서 열린 강연회에 갔다가 구입을 했다. 시간나면 조금씩 보고 있다. 절 구경을 많이 다니지만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책을 보면서 내가 절구경 다닐때 생각했던 것들이 책의 내용과 비슷하게 맞아 들어갈 때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다가 또 터무니 없는 해석을 했을 때는 혼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책을 읽어 나가다가 자현스님이 청와대에 대해서 쓴 글이 나왔다. 요약을 하자면 청와대의 청와라는 말은 독립국인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황제의 집은 황색 지붕을 했다고 한다. 자금성의 지붕이 황색인 이유다.

이말을 유추해보면 청와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를 독립의 자격이 없는 국가라고 낮추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이전의 이름은 경무대였다. 조선 총독의 관저를 독립하고 나서 이승만 대통령이 들어와서 살았다고 한다. 조선 총독의 관저 지붕 색깔이 푸른 색이 었나 보다. 아마도 총독의 관저를 푸른 기와로 쓴 것은 일본의 천왕궁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호사가들은 한국이 일본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도 한국 청와대가 천황의 제후국에 불과한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청와대의 ‘대’라는 말도 문제가 있단다. 대라는 말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란다. “의상대나 낙산대 또는 태종대 등에서 처럼 높은 지대에서 멀리를 조망할 수 있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정자형의 건축물”이 대라고 한다.

자현스님은 청와대라는 작명이 우리가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과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제대로 편안한 여생을 마치지 못한 것도 이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청와라는 이름에는 제후국이라는 좁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게다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 이름까지 더해져 있으니, 거기에 사는 사람이 편안할 리가 있겠나?

청와대 터가 풍수지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많았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름이 이렇게 문제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내 자신 우리의 전퉁문화에 대해 무지했다는 자책을 한다.

아주 오래전에 청와대 본관에 가본적이 있었다. 높지 않은 언덕위에 이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별로 크지도 않았는데 1층은 집무실로 2층은 주거지로 쓰인다고 했다. 그 때도 오래된 건물이 고색창연했다.

몰랐을 때는 그냥 아무 생각없었는데, 자현스님 글을 보고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적폐청산의 제1번은 청와대 이름부터 바꾸는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청와대 이름 바꾸겠다는 후보에게 무조건 찍겠다.

미국 대외정책의 전도, 국방과 외교

국가간의 관계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외교이다. 특히 19세기 이래 유럽에서는 외상이 가장 중요한 각료였다. 19세기 유럽사는 외상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다. 국방은 외교를 뒷받침했다. 그런 현상을 보고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책의 연장이다”라고 갈파했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 이후 유럽의 정치사를 보면서 각국이 전쟁을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그 현상을 분명하게 글로 옮겨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클라우제비츠는 매우 훌륭한 관찰자였던 것 같다.

클라우제비츠 등장 이전에 사람들은 전쟁이 대외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외교적 교섭이 중지되고 더 이상 대화로 해결되지않으면 그땐 전쟁을 한다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마치 유럽에 존재하던 결투와 같은 것이 전쟁이었다. 전쟁이 정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두번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에서는 다시 클라우제비츠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전쟁이 너무나 큰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에 전쟁을 정책의 연속으로 정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주로 영미권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은 전쟁이란 정책의 수단이라는 개념을 다시 도입했다. 그래서 전쟁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최근들어 미국의 대외정책을 보면 군사와 정책의 관계가 전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국무부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도하고 국방부가 국무부가 결정한 대외정책을 수행하고 지원하는 전통적 개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당시 소련에 봉쇄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은 조지 케넌이었다. 그는 국무부 외교관이었다. 오랜기간동안 외교업무를 하면서 소련 봉쇄정책의 기초를 제시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최근들어 미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이 국방부 쪽으로 많이 옮겨간 것 같다.

특히 미중패권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은 국방부가 주도한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얼마전 발간된 인도태평양 전략서는 국방부에서 발간했다. 그에 따라 태평양사령부가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무부가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트럼프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트럼프 등장이후 국무부의 브레인들이 많이 나가버렸다고 한다. 결국 국무부에서 인재들이 빠져나가버리고 나니 미중패권경쟁을 위한 전략을 국방부가 주도해서 수립하는 결과가 되지 않았나 한다.

이번에 방한해 지소미아 연장을 강요하고 있는 스틸웰 차관보도 태평양사령부에 근무한 적 있는 공군준장 출신이다.

국방이 외교부서보다 앞서가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해결 과정이 매우 과격해 진다. 그러면서 충돌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대화로 할 수 있는 것도 군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지소미아와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한 듯한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대상으로 다영역 작전(MDO Multi Domain Operation)개념을 수립하고 있다. 지소미아와 핵미사일 배치는 그런 작전개념을 수행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유감인 것은 핵무기 등장이후 강대국간 전쟁은 불가능한 상황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것은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으로는 매우 제한된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계속 군사적 방법을 앞세우면 그 무대가 되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 진다. 압력이 강화되면 될 수록 미국의 지배권과 영향력은 비례해서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어도 미국의 영향력은 군사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민에게 미국은 이상적 민주주의의 담지자로서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라는 이미지가 가득하다. 바로 그런 인식때문에 미국은 한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지소미아 같이 일본에 경사된 접근을 한다거나 방위비 인상과 같은 조치로 인해 미국에 대한 한국민들의 인식이 바뀌게 되면, 미국의 대한 영향력도 급속하게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과격한 대응과 조치는 주변관계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접근했던 과거 국무부의 접근방식과 너무 차이가 난다.

만일 이런 변화를 미국무부가 주도하고 있다면 미국은 패권유지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다.

지소미아 연장, 일에도 순서가 있다.

미국이 우리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방부 차관보는 거의 협박 비슷한 말을 한다. 국무부의 스틸웰 차관보와 미합참의장이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모두 한일군사정보호보호협정의 파기를 막기위해서다.

정작 일본은 한일군사정보보호 협정을 다시 살리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것같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은 우리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한 이유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닥치고 지소미아를 복원하라고만 요구하라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소미아를 파기하게된 것은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전쟁을 선포하고 실행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에도 밝혔다시피 문재인 정부가 일본문제를 이용해서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문제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아무리 옳다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김대중 전대통령 말씀에 동의한다.

한국과 일본은 문화가 다르다. 한국은 명분이 목숨보다 소중하다. 일본은 명분보다 능력과 힘에 의해 정의가 좌우된다. 한국은 문의 나라라면 일본은 무의 나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 일본을 이기려면 논리적으로 따지고 근거를 쌓아가는 것에서 머물지 말고 힘으로 압도해서 일본을 넘어 서야 한다. 일본은 논리와 명분에 굴복하기 보다 자신보다 힘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머리를 숙인다. 반면 우리는 웬만해서는 힘의 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정부는 지소미아 파기를 선언하면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전쟁을 중지하면 지소미아 파기를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이 우리에게 경제전쟁을 침략한 이유로 안보문제를 제기했다. 우리에게 안보문제를 제기하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도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국가와 어떻게 군사비밀을 서로 교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미국은 우리정부에게 지소미아 파기 선언 취소를 강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에도 순서가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지소미아 파기를 강권하기 전에 먼저 일본이 조치한 경제전쟁을 중단시켜야 한다.

미국이 한미간 군사비밀보호협정의 유지에 이렇게 나서는 것을 보면 그 지소미아라는 것이 단순하게 한일간의 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지소미아 유지를 이야기 했지만 왜 그렇게 미국에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미국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면 단순하게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정보교환의 정도를 넘는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는 것 처럼 한미일을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동맹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미동맹의 범주를 넘는다.

일본이 미적지근하게 나오는 이유도 알 것같다. 일본은 굳이 군사동맹의 성격까지 더해서 중국에게 대응하고 싶어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소미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지소미아 파기를 하지 않기로 정리한 것 같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없이 지소미아를 연장하면 ,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위안부 협상을 강행한 것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미국의 압력에 의해 지소미아 폐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게 되면, 문재인 정부는 그들이 그동안 그렇게 비난하던 친일정부나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이 일본의 경제침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국정부만 일방적으로 닥달하게 되면 한국국민들이 미국을 보는 눈들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은 이점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일단의 대학생들이 방위비 문제로 대사관저를 침입했다. 그런 행동을 일부 과격분자들의 극단적 행동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저변의 바닥, 감정의 바다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다들 조심 좀하고 살자. 미국이나 일본이나 우리 정부나 그런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나저나 지소미아 연장을 하고말고를 결정하기 전에 우리가 사실상의 한미일 군사동맹을 맺어 중국에 대항하는 것에 국민들의 입장부터 정리해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

이리저리 잡생각

며칠전 뉴스에 호남을 대표한다는 동교동계의 권노갑과 정대철, 민평당 그리고 대안신당의 유성엽등이 홍석현을 만나서 자신들의 대표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홍석현은 그 요청을 거절하고 다른 사람을 추천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우습지도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다. 홍석현이 누구인가? 그는 현재 문재인 정권의 창출과정에 깊숙하게 개입한 사람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왜 권노갑과 정대철, 민평당 그리고 유성엽등이 홍석현을 찾아갔을까? 그들이 정말 호남 사람들을 대표할까? 호남 사람들은 그들이 이끄는대로 따라갈까? 이제까지 호남은 개혁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선택을 해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그런 선택은 소위 호남의 명망가들이 아니라 민초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민평당과 유성엽등이 남아 있는 것은 호남 민초들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그들이 정말로 호남민초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지도적 역할을 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묵은 때를 벗겨내는 역할을 한다. 스스로 묵을 때를 벗겨내지 못하면 민초들이 묵을 때를 벗겨낸다.

민주당에서도 쇄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유감스럽게 기대가 난망이다. 민주당에서 벗겨내야할 묵은 때는 무엇일까?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이끌어갈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과거의 유산으로 미래를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일부의 국회의원들이 출마포기를 선언하면서 한목소리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정성 있는 목소리인지는 의문스럽다.

그들은 수도권 지역에 지역구를 둔사람들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두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민주당 지도부를 바꾸고 쇄신을 하는 것이다. 소위 친문 친노 세력, 586 세력들을 싸그리 걷어내고 진정한 개혁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박용진, 금태섭 등이 그런 생각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지 못하면 민주당 간판달고 나서면 무조건 진다. 지는 것 뻔히 알고 출마하는 것은 바보다. 두번째는 어차피 질 선거에 나가지 않고 출마포기하는 것이다. 출마한다고 돈만 잔뜩쓰고 집안 망하는 것보다 출마포기하고 좀 그럴 듯한 이야기 하는 것이 훨씬 가오가 산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마 최근에 출마포기한 사람들은 두번째일 것이다. 그들이 대단한 정치적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맞서서 싸우려는 사람들보다 비겁하다고 평가한다면 지나칠까?

지금은 미래를 준비할 때다. 과거의 유산으로 보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알은 껍질을 깨고 나온다. 그 껍질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호남은 지금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있다. 어미새는 껍질을 쪼아서 아기새가 안에서 나오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호남은 밖에서 껍질을 쪼아줄 어미새가 없다. 물러가야 할뿐만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할 구시대이며 반개혁적 인물인 홍석현에게 호남을 맡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찌 호남의 아기새를 위해 껍질을 깨어주겠는가 ?

그들이 홍석현에게 부탁을 한 이유는 분명하다. 어찌해서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저 생계형 정치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을 변혁시키고 희망을 주는 정치를 기대하기란 난망하다.

혼란은 사람들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샤워기 역할을 한다. 평상시에는 가식과 허위로 가려져 있던 사람들이 혼란한 상태에서는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드러내게 된다. 민주당의 친문세력들, 정의당의 심상정과 그 일당들, 호남의 자칭 대표세력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을 쓸어내지 않으면 우리 미래는 암담해질 것이다.

미국의 지소미아 파기 번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그러나 내부가 혼란스러우니 심각한 대외정책의 문제도 그리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저 마저도 자꾸 눈이 국내문제로 좁아든다. 내부가 정리되지 않으면 외부문제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탓이다. 미리 조국을 정리했으면 문재인 정권이 이런 어려움에 처하지 않아도 되었다.

진보와 보수, 가치와 상식사이에서

조국 사태에 대한 소위 진보진영의 입장을 보면서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하면서 소위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제대로된 진보가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의심이 깔려 있다는 것은 아마 다 느낄 것이다.

지금 조국 사태와 관련하여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기 보다는 집단적 피해의식 또는 망상으로 똘똘 뭉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과연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현재 그들이 말하는 사법개혁이라는 것들이 진보적 가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가? 쉽게 말해서 사법개혁 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진보할 수 있는가? 조국 문제를 둘러싸고 진영논리가 판친다고 하는데 그것은 진영논리라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진영논리라면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가 충돌해야 한다. 그런데 조국 문제에서는 어떤 가치의 충돌도 보이지 않는다.

사법개혁은 가치의 영역이 아닌 듯 하다. 사법개혁은 조화와 균형이라는 상식의 문제인 듯 하다. 정치가 검찰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고 검찰이 주인을 무는 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정치가 검찰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고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서로 상반된 방향이다. 완벽하게 정치가 검찰에 개입하지 않을수도 없고 완벽하게 검찰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조화와 균형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그 조화를 어떻게 잘 만들어 가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 문제를 보면서 상식과 가치 그리고 원칙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국 문제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가 충돌하는 것 같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가치의 충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치가 배제된 집단적 히스테리의 충돌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집단적 히스테리라고 하는 것은 조국 사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현상을 무엇이라고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는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끊임없이 충돌한다면 사회는 망해버릴 것이다. 그래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소위 상식과 균형이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제는 조국 사태에서 이런 상식과 균형의 기준이 붕괴된 듯하다는 것이다. 조국의 딸이 대학과 의전원에 입학하는데 부정한 방법을 동원했다고 하니 그럼 나경원의 아들은 어떠냐고 검증하자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동일한 기준인 듯 하지만 전혀 맥락이 다르다. 그럼 나경원을 검증해서 그녀를 법무부 장관을 시킬 것인가?

조국이 이런 저런 의혹이 있다하니 그보다 사법개혁의 적격자는 없다고 한다. 그럼 사법개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정성과 윤리성과 같은 가치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중하지 않은지 헷갈리게 하는 일들이 그간에 벌어졌다. 소위 진보정당의 정치인들도 그런 행진에 같이 했다. 심지어 정의당도 기회주의적 성향을 명백하게 보였다.

진보진영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결격 사유의 하나는 기회주의다. 진보진영의 중요한 가치는 선명성이다. 노선이 선명해야 세력을 결집할 수 있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역사를 통해서 진보정당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가 기회주의였다는 것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심상정이 조국을 만나서 여차하면 사퇴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보면서 정의당이 기회주의의 극치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정의당에 대해 어느정도 심정적인 동질감을 느꼈으나 최근 조국 사태를 보면서 완전하게 마음을 돌렸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조국 임명을 반대했어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할 것 같으면 지나가는 초등학생이 해도 된다.

기회주의를 현실감각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이익(반사이익을 포함해서)을 바라고 타협하는 것을 기회주의라고 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혹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공동체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타협하는 것을 현실감각이라고 한다. 정의당은 전자에 속한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 조국을 지지했던 거의 모든 정치인들도 전자에 속한다.

무엇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이념적 지향이 분명하지 않은 진보는 죽은 진보다. 국민들의 가치관에 혼란을 초래한 진보는 진보의 적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스스로 자해하고 있는 것 같다. 유감스럽게 대한민국의 진보는 죽었다.

다시 살리려면 상식과 도덕성 그리고 윤리라는 거름과 물을 주어야 한다. 진보에 있어서 현실적 능력은 그런 가치와 도덕적 기준이 바로서고 나서이다. 물론 보수는 현실적 능력이 도덕적 가치와 기준보다 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보수가 조금 썩어도 다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진보가 썩으면 드러내야 한다. 진보가 현실문제에 조금 서툴러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 것이 상식 아닌가?

스팀 가족 여러분 추석 잘 보내세요

추석입니다. 스팀가족 여러분들 추석 잘 보내시기바랍니다. 한가위 모든 것이 풍요로운 날입니다만 스팀은 아직 긴 잠의 터널에서 빠져 나올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관적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팀 생태계는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팀엔진이 돌아가고 있고 하드포크 21도했습니다. 광고도 도입했습니다. 얼마지 않아 SMT도 발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동안 스팀잇 본사의 경영능력이 부족해서 기대만큼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팀의 능력자들께서 개발을 멈추지 않고 활동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스팀 가족들의 능력자들이 결국 스팀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블록체인 SNS라는 것이 분산화를 추구했다면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참여자의 노력에 의해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스팀잇은 상당히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격은 바닥을 치고 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스팀 가족 여러분들은 모두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다 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을 잘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위해 각자 노력을 하고 있고 사업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프로그램 능력도 없고 프로젝트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은 그냥 글을 쓰고 있습니다. 모두 다 같이 스팀의 발전을 위해서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이제 스팀본사에서 스팀을 팔지 않는다고 하니 물량의 압박도 조금 덜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더 떨어지고 있지만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는 격언을 생각하면서 묵묵하게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달만에 언론에서도 스팀에 대한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니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조금 좋아 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백트 거래소가 얼마 있지 않아 거래를 시작하게 되면 뭔가 방향이 정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통상 선물거래가 이루어지면 가격이 안정화된다고 합니다. 이미 비트코인 도미넌스가 매우 높아서 언제 알트의 레이스가 시작되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스팀의 가격도 스팀의 실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전망과 평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미 3년 넘게 스팀 가족여러분들이 보여준 그 충성심은 스팀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팀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도 복잡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일본의 경제침략과 조국사태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조용하게 지나간적이 없었습니다. 한가위를 지나면 조금씩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가 엉망이어도 우리나라가 그럭저럭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들의 저력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가 잘되어야 우리 아래 세대가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싸우고 있지만 다들 각자의 생각에서 나라가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싸우더라도 극단적으로 나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많은 말을 쏟아 내었습니다. 부족하고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가 할 줄아는 것이 이렇게 글을 쓰고 공부하는 것 밖에 없어서, 그것이나마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누가 누구랑 싸우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을 임명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걱정된다. 이번 조국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의 본질을 진영과 진영의 갈등이 아니라 진영 내부의 갈등과 분열이었다

아마 조국을 반대하는 측이 소위 말하는 토착왜구나 수구꼴통들 뿐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고 그정도라면 충분히 극복가능하다. 문제는 조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토착왜구와 수구꼴통이 아니라 현정권을 지지했던 개혁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조국사태의 문제는 개혁세력의 분열이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개혁과 진보를 명분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분열과 갈등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기존의 진보대 보수의 구도가 아니다. 정당성을 상실한 진보와 정의를 주장하는 진보 그리고 보수의 갈등이다. 조국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이상황을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로 이끌어 가고 싶어하겠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최소한의 정의와 정당성을 상실한 진보는 오히려 보수보다 더 타락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선은 두개로 나뉘어 지리라 본다.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자한당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추구하겠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왜 조국을 임명했는지 생각해보야 할 것이다. 그는 왜 조국을 버리지 못했을까?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면 짐이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너무나 무겁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버릴 것이라면 가격을 올려서 버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보았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국의 임명으로 정국은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경제문제와 일본과 미국문제 북핵문제까지 산적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제일 우려된다.

조국 사태,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

상식적이지 않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현직에 있을 때 죽창가를 올리는 등 선전선동에 앞장 서는 것을 보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국민들이 스스로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상품 불매운동도 하고 일본안가기운동도 가열차게 하고 있는데 왜 민정수석이 난데 없이 여기에 끼어들어서 분위기 흐리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순수한 반일 운동에 청와대가 끼어들면 문제가 생긴다. 첫째, 일본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반일 운동을 관제라고 폄하할 수 있다. 둘째, 자한당일파들도 국민들의 반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시킨다. 셋째, 정부가 일본과 협상을 할 때, 협상력을 떨어 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은 갑자기 반일운동 전선에 뛰어 들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뛰어든 것도 아니다. 국민들의 반일 운동이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가고 나서 뛰어 들었다.

지금보니 왜 조국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아마도 조국은 자신이 법무장관이 되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이리다. 그래서 스스로 반일운동의 아이콘으로 나서고 싶어했던 것 같다.

지금 소위 친문이라는 사람, 문대통령을 문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조국을 크게 두가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첫째는 사법개혁이요 두번째는 토착왜구 격멸이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가지 모두 조국을 상징화시키는데 부적절함을 알 수 있다. 사법개혁이나 선거법 개혁 혹은 개헌은 현정부가 들어서자 마자 바로 밀어부쳤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자한당이 반대를 하면 국민투표에 붙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당시의 정치지형이 유리했기 때문에 현상변경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토착왜구 격멸의 아이콘으로서 조국의 이미지는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페이스북에 몇번 포스팅했다고 해서 갑자기 토착왜구의 격멸의 아이콘이 될 수는 없다.

조국이 자기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지금 당장 지소미아 파기부터 주장해야 한다. 그가 분위기에 편승할 뿐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인간은 말만으로 평가받어서는 안된다. 말을 했으면 어떻게 실천하고 행동하는가로 평가받는 법이다.

조국과 소위 친문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국민들을 우습게 알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이끌어가는데로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무나 뻔히 눈에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유명인사들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서 국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일제시대때 이광수 등 친일 지식인들이 했던 행위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것을 매 한가지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맞는 것은 맞는 것이다. 내가 누구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가 틀린 것을 맞는 것으로 둔갑시켜서는 안된다. 아무리 정치적인 지지라고 하더라도 도덕률을 초월해서는 안된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쓰여 있는 것만이라도 잘 지키면 세상은 살기 좋아질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지 아닌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