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의 네바다 예비선거 승리와 워렌 버핏의 위선적 태도

2월 24일 민주당 네바다주 대선 예비선거에서 샌더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초반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부티지지는 뒤로 가라 앉았다. 백인 오바마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바이든이 2등으로 올라왔으나 샌더스와는 너무 격차가 많이 떨어졌다.

워렌버핏은 자신은 골수 자본주의자라고 하면서 블룸버그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폴 그루그만은 뉴욕타임즈에 자신의 샌더스를 지지한다는 기고를 발표했다. 미국의 일부언론에서는 러시아가 트럼프를 도와주기 위해 제일 손쉬운 상대인 샌더스를 지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선거판이 진흙탕인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느니 아니니 하는 것은 미국판 북풍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미국민주당 대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민주당 내부에서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 주장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자본가들을 위한 정당이다. 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조금 넓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이 봉사하는 경제적 계층은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이다. 월스트리트가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샌더스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하는 민주당 주류의 비난과 우려는 대부분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네바다 예비선거의 의미는 이번 민주당 대선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주류의 입김이 예비선거에 그리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미국 보통 및 하층 시민의 삶이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샌더스의 공약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의료보험과 학자금 지원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가히 살인적이다. 코로나-19 검사 한번 받으려면 400만원 가까이 내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파도 웬만하면 병원에 갈 수 없다.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으로 확산되면 미국은 재앙이다. 공공 의료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트럼프의 지지층과 겹치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계층은 소위 러스트 벨트의 하층 백인들이다. 가난한 백인들이 국수적 경향을 띠는 것은 충분히 설명가능하다. 문제는 그동안 트럼프의 정책이 실질적으로 러스트 벨트의 백인하층민들의 삶을 별로 개선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러스트 벨트의 백인들도 점차 샌더스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번지면 미국판 ‘이게 나라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우리나라가 어떤 의료보장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볼 것이다.

이 와중에 워렌버핏이 블룸버그를 지원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그는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블룸버그의 지지는 그가 그동안 보였던 태도가 얼마나 위선적인 가를 보여주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금융자본가로서 어떠한 이익의 침해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와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워렌 버핏의 위선적 태도는 지금 미국이 처한 분열적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자본이익을 위해 미국이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도 없는 욕심많은 늙은 베니스의 상인에 불과한 것이다.

샌더스는 우리식 개념으로 하면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자에 불과하다. 미국적 이념 지형속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불렸지만 그는 일은 미국이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막아보겠다는 지극히 개혁보수주의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서 생산수단의 사적보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정책도 추구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는 유럽적 개념에서 보면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다.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만일 그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민주당을 지지하던 월 스트리트는 모두 트럼프 쪽으로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번에 샌더스의 개혁을 하지 못하면, 미국은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다. 로마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졌다.

기생충의 모르스 부호와 가난한 사람들

영화 기생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모르스 부호’였다. 이젠 군대에서도 모르스 부호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아한 가정부 ‘문광’의 남편 ‘근세’는 지하에 숨어 살면서 모르스 부호를 보낸다. 모르스 부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박사장도 ‘근세’가 보내는 모르스 부호를 그냥 전기불이 고장나서 깜박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근세는 열심히 모르스 부호를 보낸다. 그것은 신호다. 아무리 열심히 신호를 보내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

가난한 두 가족간의 혈투가 벌어졌고 ‘근세’는 필사적으로 모르스 부로를 보낸다. 마침 스카우트 교육을 받은 박사장네 막내 아들 ‘다송’이 모르스 부호를 풀어보려고 시도를 하지만, 시도에 그치고 만다.

모르스 부호는 빈자들이 세상에 보내는 신호다. 삶의 극단에 몰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르스 부호를 내 보낸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빈자들이 보내는 신호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관심을 가지더라고 읽지 못한다. 어린 ‘다송’은 모르스 부호라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 내용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아버지 박사장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절박한 구조 신호는 무시되었다. 만일 박사장이 그 모르스 부호를 알아 차렸다면,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다. 극단에 몰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는 주로 자살이다. 생활이 어려워지니 가족 단위로 자살을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어제는 80노인이 종이박스를 수집하다고 그 안에 있던 감자 5알을 훔쳤다는 이유로 지명수배를 당하고 50만원 벌금 추징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난에 지친 중년부인이 길에서 주은 체크카드로 약 5만원어치 라면과 참치캔을 사서 아들과 함께 먹으려다 체포당하고 백 수십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자들이 보내는 신호가 도처에 널리고 널렸다.

우리사회는 고장이 났다. 빈자들이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무슨일이 생길까? 영화 기생충에서는 다소 비뚤어진 빈자들의 모반을 보여준다.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 가진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수동적인 신호는 적극적인 신호로 바뀐다. 신호가 행동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중국혐오증 그리고 공론의 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중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고 있다. 어느 사회건 외국인과 외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중국에 대한 혐오증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다 알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중국 굴종이나 예종(심한 말이다)으로 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초기대처에 대한 비판과 중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비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중국 정부의 초기대응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의 초기 대응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최근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 책임론은 시진핑 개인을 넘어 중국의 국가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 살펴볼 것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간단한 기준을 선호한다. 아마도 구석기시대에 형성되었다는 우리 내부에 탑재된 소프트웨어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적과 아군, 흑과 백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원시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다르다.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조금 복잡해질 필요가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정부와 보건 당국의 대처가 철저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특히 비판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정부와 보건당국의 대처는 솔직히 말해 썩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선 행정력들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정보가 통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벌써 담당자들은 지쳐있는 것 같다. 현정부 제일의 우선순위는 방역일텐데, 대통령은 공수처 운운했다. 정치는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부분을 비난한다면 옳다.

그러나 정부가 중국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출입제한을 하지 않은다고 해서 중국에 예종적이라는 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중국인들의 출입에 관한 문제로 정치인들이 나서는 것 자체도 옳지 않다. 그동안 자한당은 현정부를 중국에 굴종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한당의 이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

의사협회가 제안했다는 중국인들의 입국금지 조치도 매우 정치적으로 읽혀진다. 의사협회장이라는 사람이 수구보수적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안이 과연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정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간혹 뉴스시간에 의사들이 찔끔 찔끔 하는 이야기로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정부가 시진핑 6월 방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정부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이유가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시진핑 6월 방한을 위한 것 때문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시진핑 방한때문에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면, 이것은 대통령이 탄핵받아야 할 사안이다.

WHO의 조치에 대한 비판도 언론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중국에 불리한 발표는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중국정부의 자료만 가지고 입장발표를 한다는 말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WHO는 심각한 신뢰성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신뢰의 붕괴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자초한 측면도 많다. 감염병은 방역하고 치료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모두 문제가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 협오증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중국에 대한 혐오증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순수 의료적인 관점인지 아니면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보다도 의료적 관점보다 정치외교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담론을 전개하는 시기과 장소가 틀렸다. 그런 문제는 순수하게 대외전략적 측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가가 왜곡된다. 왜곡된 평가와 기준은 결국 국민들의 손해로 되돌아 온다.

국민들도 속지 않고 살려면 적지 아니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걱정되는 것은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허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공론의 장이다. KBS는 그런 것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왜 그런 공론의 장이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공론의 장을 막아 놓은 것인가? 왜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저희들끼리 저러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렇듯이 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가라 앉을 것이다. 백신도 나오고 치료법도 나올 것이다. 마치 세상 끝인 것처럼 하지않아도 된다. 지금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뒤에 숨어 있는 사악한 음모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뱉어 놓은 말들에 책임을 지지 않으니 아무말이나 다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북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 협력 절실하다.

북한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와의 관계를 모두 차단했다. 육로는 물론이고 선박 항공기의 출입도 차단했다. 북한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전염이 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전염되면 오랜기간 동안의 경제재제로 인해 치료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정부는 지금 당장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전면적인 지원을 북한에 제안해야 한다. 북한이 외부와의 접촉을 전면적으로 차단했다고 하나 바이러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이 곤궁해지면 북한 주민들이 중국과 밀무역에 나서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염의 위험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북한은 지역과 지역의 이동도 차단했다고 한다. 호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배고픔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축한 식량과 생필품이 바닥나면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동할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북한 주민들은 과거처럼 앉아서 굶는 것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북한이 차단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북한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청정지역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북한으로 침입하면 대규모 감염사태를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의료수준으로 볼 때 한번 감염되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확산될 수도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어느 정도의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외부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정부는 북한의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제의해야 한다. 북한도 우리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하면 정치적 인고려를 하지 말고 바로 수용해야 한다. 남측 정부로부터 물자를 받았다고 자존심 상해할 문제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르면 적어도 초여름까지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지속될수도 있다고 한다. 북한이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완전차단하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몇개월을 지금과 같은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이 싸우고 반목할 시간은 많다. 그러나 서로 협조하여 인민의 삶을 지켜나갈 시간은 별로 없다. 북측 당국이 남측의 도움을 거부하여 전염병이 확산되거나, 우리 정부가 북한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

정치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남북 양측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협력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

영남반동, 호남반동, 시민단체 반동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낸 세대가 군부독재보다 저열한 독재의 압잡이가 되어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같은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리게 만든 제1의 책임은 황교안과 나경원에게 있다. 학교다닐때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자한당은 오로지 투쟁 일변도로 일관하다가 더민당에게 말려들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도록 만들었다. 만일 당시에 다른 야당과 긴밀한 협의를 하면서 더민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전략에서 실패했다. 전략의 실패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능력한 자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을 사춘기 청소년 처럼 폭발하도록 만든 것은 광화문의 열기와 영남의 반동적 지지 때문이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박근혜를 탄핵했으면서 탄핵에 머물러 있던 영남의 반동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려주는데 일조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의 무능력을 발휘하고도 저렇게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하게 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호남의 반동성에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조국과 유재수, 그리고 송철호의 행위는 올바른 시민적 삶을 왜곡하고, 국민의 삶을 유린했을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행위를 영웅담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조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국의 행위는 영웅담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기타잡범’의 행태와 견주어도 매우 비열하고 악랄한 수준의 범죄다.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해도 ‘기타잡범’의 수준밖에 안되는 조국을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만들어 가는데 가장 기여한 것은 호남이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이 내준 압잡이 자리에 취해 김대중이래 정신적으로 우월감을 지니고 있던 진보적 가치를 서슴없이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영남보다 더한층 반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남이야 원래 보수적인 동네니 조금만 움직이면 반동화된다.

호남은 원래 진보였다. 이상한 것은 호남이 이번 정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반대에 있는 반동의 영역에 서슴없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호남이 영남보다 더 반동화되었다. 영남이 저러고 있는 것은 그래도 박정희와 박근혜의 향수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해 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전에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반동적 상황에 머물고 있다.

호남의 반동적 상황은 영남의 반동적 상황보다 한층 더 저열하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를 하면서 주어지는 조그만 떡 고물에 취해서 반동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동안 지향했던 진보적 가치를 헌신짝 처럼 내 던져버리고 시궁창에 떨어진 엿조각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제정신을 차렸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시궁창의 떡고물을 찾아 헤매기 보다는 김대중의 정신과 5.18의 정신을 고양시켰어야 했다. 지금은 지하의 김대중과 5.18 영령들이 땅을치고 통곡할 상황이다.

영남은 자기연민에 빠져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 호남은 떡고물을 찾아 스스로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점에서 영남보다 더 저열한 반동의 길을 가고 있다.

진보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한다. 보수는 가치보다 이익을 더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호남은 완전하게 반동화되고 말았다. 반동화된 것은 호남뿐이 아니다. 참여연대와 민변, 우리법연구회 같은 과거 진보적 시민단체와 직능단체들도 예외없이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가 되면서 반동화되었다.

김경률 같은 사람이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그들이 얼마나 반동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양승태를 적폐라고 고발하던 양심적 판사들이 대거 더민당의 품에 안겨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아무때나 유리할 때 엿바꿔먹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일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의 본성은 변한다. 개혁도 그렇다. 이승만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대구였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광주였다. 문재인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서울이 될 것같다. 기득권에 포섭되면 바로 반동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경계선은 수도권이다. 영남과 호남은 기득권 반동일 뿐이다.

진중권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를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더민주만 안찍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있는 한 자한당도 찍으면 안된다. 실패한 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민주도 안찍고 자한당도 안찍으면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 정의당 ? 그들은 더민당보다 더 나쁘다.

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

성경에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라’고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필요한 이유는 어둠과 세균 그리고 곰팡이 때문일 것이다. 빛은 강해질수록 어둠은 더 짙어진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세균과 곰팡이들이 판을 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누가 빛인지 어둠인지, 누가 소금이고 누가 곰팡이 덩어리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누가 빛이며 누가어둠인지, 누가 소금인지 누가 세균 곰팡이 덩어리인지 알 수 있다.

검찰은 소금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검찰이 그동안 비판을 받은 것은 소금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금의 짠맛은 한결같아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어떤 때는 짜다가 어떤 때는 맹물이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왜 소금이 한결같이 맹물같지않고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서초동이나 광화문 모두 비슷하다. 소금이 왜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항상 소금의 짠맛을 지켰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집권 초중반까지는 항상 정권을 위한 맹물역할을 하다가 정권이 힘을 잃을 때가 되면 짠맛을 냈다. 검찰개혁은 소금이 항상 짠맛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짠맛 싱거운맛을 조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소금의 짠 맛을 없애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 버리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이 판을 친다.

윤석렬의 검찰이 문재인 집권초기부터 권부에 대해 짠맛을 뿌렸으면 조국도 사모펀드가지고 장난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재수와 송철호 같은 사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이 일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소금이 짠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소금을 상처에 뿌리면 쓰리다. 아프고 쓰리면 비명을 지른다. 지금 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가 ?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지금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일까 ? 윤석력의 검찰이 빛인가 어둠인가 ? 조국일가, 송병기, 송철호, 백원우가 빛인가 어둠인가 ? 소금이 뿌려졌을 때 비명을 지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세균 곰팡이 덩어리다.

빛이 그 밝음을 잃어 버리면 어둠과 빛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지금 빛에게서 그 밝음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 빛을 흐리게 하는 자들은 절대로 빛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의 자식일 뿐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을 찬양해야한다. 어둠과 세균 곰팡이 덩어리를 찬미할 수는 없다. 물론 때에 따라 밝음을 잃어 버리는 빛과 짠 맛을 잃어 버리는 소금을 찬미해서도 안된다.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곳에서 더 창궐하는 법이다.

대통령 인사권 ? 공화주의의 붕괴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 다르다. 다양한 시각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다. 이번 청와대와 추미애의 검찰인사를 어떻게 보는지 모두들 평가와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인사권을 행사했다는 주장부터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각각의 주장들은 모두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완전한 악과 완전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자한당을 참아야 하는 것은 민주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공화적 가치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자주 전제주의적 경향을 띤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제주의적 발상이다. 대통령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이 독재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에 의해서 견제될 수 있다. 검사 인사를 법무부 장관이 인사안을 만들어 검찰총장과 협의를 하고 이를 청와대에 제청하고 여기서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전제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인사는 그런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법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행사했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 아니고 헌법에 정해진 우리의 공화적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로마시대에 시저는 인민의 지지를 받아 황제가 되고자 했다. 그의 양아들(실제는 사생아 친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부르투스는 공화정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 나란히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비교적 그 배경이 분명한 것 같다. 당연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울산시장 선거의 개입과 유재수 문제 때문일 것이다. 조국 수사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조국 때문에 문재인과 추미애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추미애는 5선의 국회의원이다. 자신의 조치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분명하게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사법방해를 한 것은 당연히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송철호를 울산시장 민주당 후보로 단독공천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유재수 건과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스스로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위는 그 자체로서 탄핵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대통령이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대통령을 뽑았지 법위에서 군림하는 왕을 선출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상당기간 검찰을 수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수사검사 모두가 교체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새로 교체된 검사들이 와서 자료 살펴보고 하다 보면 수사는 동력을 상실하고 총선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유야무야 이번 사건은 묻혀질 것이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바로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문재인과 추미애에게는 다행스럽게 자한당을 위시한 야당은 아무런 조치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문재인과 추미애 그리고 친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시간의 문제이지 이번 사건은 반드시 다시 수면위로 올라 올 것이다.

다음 대선에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꿈깨시라. 지금처럼 정치하면 민주당에서 대통령 나오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오더라도 지금의 쿠데타적 행동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수사는 다시 진행될 것이고 문재인과 추미애는 그때 처벌을 받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후 들어선 노무현 정권이 대북송금문제로 동교동계를 모두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한 불쏘시개가 호남이라는 점이다. 이번 정권을 호남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남사람들은 자신들이 문재인 정권에게 이용당하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권은 일부 몇명의 호남 부역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호남의 지지를 호소한다. 정신없는 호남사람들은 그런 부역자들의 선동에 즐겨 따라간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생전 외치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붕괴시키는 일등공신이 호남인 셈이다.

이제 호남은 민주주의의 성지가 아니라 전제주의의 조력자가 되었다. 호남은 그 입으로 더 이상 진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제거가 실책인 이유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어제 올린 글에서 이라크를 공식방문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미국이 살해했다는 것은 이라크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의 행동은 이란이 앞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미국의 주요인사를 살해할 수 있도록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도 언급했다.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내가 했노라고 알리는 것이 아니고 비밀공작의 형식을 빌려야 했다. 솔레이마니는 후세인이나 빈 라덴과 같은 경우가 아니다. 후세인과 빈 라덴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제거했다고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솔레이마니의 경우는 미국이 자신이 살해했다고 밝힐 경우 뒤따르는 문제가 더 많다. 그래서 통상 이런 경우는 비밀공작을 한다. 순니계열의 IS를 사주한다거나 또 다른 정적을 내세우는 것이다. 아니면 이들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해서 미국이 직접 살해했다는 것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경우는 미국이 제거했다고 공개해서 이익을 볼 것이 별로 없다. 아마 앞으로 당분간 미국의 주요인사들은 미국 땅을 떠나 마음대로 다니기가 어려워질 지 모른다. 미국은 왜 비밀공작의 영역을 공개하는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을까? 아마도 올해 미국 대선을 의식해서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와 대이란정책은 트럼프의 중동정책이 매우 비상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세계문제보다 미국의 문제 해결을 우선시 해야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해외주둔 미군의 비용을 절감하고 전비를 줄이고자했다. 그래서 아프간에서의 철군도 추진하고 중동에서도 군대를 줄이고자 했다.

그러자면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해 이란과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란은 시아파로 순니의 극단세력인 IS와 대척점에 있다. 중동에서 미군의 부담을 줄이려면 이란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집권하자 마자 이란과의 핵합의를 깼다. 유엔안보리5개국+독일과 이란의 핵합의는 핵없는 세계를 추구해오던 오바마 행정부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런 것은 트럼프는 단번에 파기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이란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방위비를 아낀다고 중동지역 미군을 감축했다. 중동지역에서 군대를 줄이는 문제로 매티스 전국방장관과 갈등을 빚고 결국 사임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것이다.

지금 미국의 중동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트럼프는 이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러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석유자본의 요구이다. 미국 석유자본의 중동시장 장악이라든지, 혹은 중동의 석유 수송에 혼선을 초래하도록 하여 세계를 궁지에 몰아 넣되, 자신들은 세일석유로 문제없이 번영을 구가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중국이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서 고의로 혼란을 유도할 수도 있다.

세번째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유일한 국가인 이란을 제거하기 위한 유대자본의 흉계를 들 수 있다.

넷째, 10여년 마다 주기적으로 전쟁을 해야 돌아가는 미국 군산복합체가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부추긴 것과 같이 여러가지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이유든 간에 현재 미국의 행동은 미국자신의 국제정치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현재 행동은 미국 일반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패권유지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경로를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상일은 원래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번 솔레이마니 제거로 그동안 앙숙이던 시아파와 순니파가 손을 잡게 만들지도 모른다. 벌써 이라크 의회는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의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천년 넘도록 앙숙이던 시아와 순니가 서로 손을 잡는 계기를 미국이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이라크전과 같이 이란을 공격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란은 이라크와 지리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보낼 수 있는 기지확보자체가 어렵다. 지상군이 투입되지 않으면 공중타격과 같은 방식이 될 것인데 그것만으로 이란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일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은 고립무원의 이라크와 같이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란은 이런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이 중국 러시아와 연합훈련까지 실시했다.

실제 미국이 군사공격을 언급하지만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설사 실행한다하더라도 요망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이란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 방식의 대응보다는 좀 더 은밀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의 이슬람 세력과 연계해서 미국을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미국이 직접 대응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혼란이 야기되는 이유는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정책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행동은 이란의 핵무장 속도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책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니 제대로된 전략이 수립될리 없다. 내가 왜 미국 걱정을 해주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살해를 보면서 이라크를 생각하다.

새해 벽두부터 독감으로 고생을 했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아서다. 독감예방주사 맞는 시기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독감에 걸렸다. 이제야 겨우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아파도 세상은 돌아간다. 비몽사몽간에도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북한은 예상한대로 미국과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은 이라크에 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드론 폭격으로 살해했다. 한반도와 중동지역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령관을 이라크에서 살해한 것은 국가의 주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공식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이라크 땅에서 살해한 것에 대한 책임문제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라크 정부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게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 이라크에는 그런 합리적인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자체가 사분오열되어 있어서 말로만 국가지 정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란 중요인사를 제거했으니, 이란도 이라크에서 미국의 주요인사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결국은 최소한 지켜야 할 룰을 어겼으며 이는 미국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

이라크 전쟁이후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져 버렸다. 이라크를 통합했던 후세인은 팔레비축출이후 신정체제로 돌아선 이란의 확산을 저지했던 방패막이었다. 이라크 후세인이 독재자로 낙인이 찍힌 것은 쿠웨이트 침공문제였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유전문제 때문이었다. 쿠웨이트에서 채굴하는 유전의 상당부분이 이라크 지하에 있었다. 이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있어났다. 당시 후세인은 주이라크 미국대사에게 쿠웨이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의 동의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불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으며, 후세인은 이를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쿠웨이트를 공격했다. 그 이후 미국주도로 사막의 폭풍작전이 전개되었다.

사막의 폭풍작전(91년 1월)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미국은 쿠웨이트를 해방시키고 이라크 남부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보했다. 아직까지 당시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다고 동의를 구했을때 왜 미국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당시까지 이라크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친미국가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 아들 부시가 들어서면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국에서는 석유에너지 장악이 중요한 아젠다중의 하나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 자체내에서도 텍사스에 기반을 둔 석유자본들이 중동의 석유를 장악하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했다는 분석이 꽤 많았다. 물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표면적인 이유는 대량살상무기 보유혐의였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미국 CIA의 정보분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IA와 국방부 정보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어차피 CIA와 국방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명분을 위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려고 한다고 꾸며댔을 뿐이다.

제1차 및 제2차 이라크 전쟁이 텍사스에 기반을 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는 어렵다. 두번의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라크는 시아와 순니가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 정점에 후세인이 있었다.

91년 걸프전의 여파로 알 카에다가 창궐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후과로 ISIS가 창궐했다. 지금 중동은 누가 들어가더라도 질서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사우디아아비아와 특수관계이다. 달러는 오일가격에 페깅이 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일을 달러로 결제하는 댓가로 사우디왕가는 미국의 보호를 받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에 적대적인 알카에다와 ISIS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순니계열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을 위해 미국은 어마어마한 전비를 투하했다. 조사를 해보아야 겠지만 지금 미국의 재정적자는 대부분 이때에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은 적어도 미국이 다시 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균형은 맞추어 놓았다. 끊임없는 이라크 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의 재정적자는 눈덩이 처럼 늘어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전에 투입된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미국이 냉전 종식이후 유일한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지속하기 어렵게 된 것은 바로 두번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때문일 지도 모른다. 국력을 전쟁에 투입하다보니 미국내 사회문제는 뒷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미국의 힘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것은 중국의 상승때문이라기 보다 미국 스스로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 미국이 이라크와 쿠웨이트간 유전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면, 지금 쯤 미국은 중동의 완벽한 균형자라는 위치를 장악했을 것이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용하여 이란을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시리아도 점차 미국의 영향력에 조금씩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평화롭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국이 대외정책을 수행하면서 외교보다는 군사력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정책의 또다른 수단이라고 통찰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전쟁을 정책의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클라우제비츠적 전쟁관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와 타협보다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문제를 대화와 타엽이 아닌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부른다. 미국이 솔레이마니 이라크 군사령관을 살해한 것은 반작용을 부를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승인한 것은 그가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또한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이라크 전에서 대량살상무기 문제처럼 이란에서 전쟁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도 조작될 수 있다.

한때 중동 국가중 가장 친미국가였던 이라크가 걸프전과 이라크 전을 통해 완전하게 붕괴된 것을 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동맹관계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국제사회에서 동맹과 우호관계라는 것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다. 국제사회는 항상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그래서 동맹이나 우호관계도 자신의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 미국의 힘이 강력한 힘이 지닌 이중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는 국민국가내에서의 가치이지 국제사회에서의 가치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정의는 힘의 정의일 뿐이다. 즉 미국의 힘이 강한 만큼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면 이라크처럼 한방에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원하는 것으로 따라가면 천천히 쫄딱 망하기 십상이다. 그 기묘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는 말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의 지향방향 모두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얼마나 지혜롭게 주변 정세와 여건을 활용하느냐갸 중요하다.

중동에 전운이 감도는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중동은 제국주의 시대부터 열강의 이해가 충돌했던 지역이다. 100년이 넘었지만 중동은 제국주의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동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때까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중동문제는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부분이 많다.

독감으로 정신이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이란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 사건을 보면서 미국이 전쟁보다 외교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힘을 사용하면 할 수록 세계적 패권유지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공수처법 통과를 보면서, 국회와 국민의 거리 그리고 공론의 장

그 말많던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더민당이 이번 회기에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꼼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조국 수사와 유재수 그리고 울산시장 송철호의 선거부정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는 술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수처 법은 이번에 통과시키되 그 시행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방안을 나름대로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사실은 사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더라도 공수처장을 선출하고 검사를 선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정작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을 하게 되면 검찰에서 이미 이번 문재인 정권에 관한 수사는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조치는 매우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하고 있다. 야당이 반대를 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임명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또 청와대와 공수처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법을 명문화시켰다. 청와대에서 공수처에 전화하는 것도 불법이 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정도라면 어느정도 정치적 중립에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야당의 비토권이다. 공수처 법에 반대해서 자한당이 의원 총사퇴한다고 한다. 그럼 공수처장 선발과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된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자한당을 완전무시하고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끝없은 정치적 중립시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아마 공수처장으로 추천된 사람도 야당의 지지없이는 수락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검찰의 태도다. 검찰이 이번에 권력의 핵심을 수사하는 것은 정말로 찬성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검찰이 해온 행태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검찰도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를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검사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만 생각하겠다는 윤석렬 같았으면 검찰이 국민들에게 지금처럼 불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는 물론이고 정치에 직접 개입해왔다. 정권초중반에는 정권의 개가 되고 정권후반부에는 주인을 물면서 검찰의 이익을 확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점에서 검찰도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검찰의 칼은 정권의 부침과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의롭게 사용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조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다.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공수처법 통과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공수처법 뿐만 아니라 선거법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법이지만 국민들은 그 논의의 과정에 철저하게 국외자였을 뿐이다. 도대체 TV와 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쟁점이 되는 조항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도하고 분석 평가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번에 공수처법과 선거법 처리 과정이 이렇게 난항을 겪게 된 것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처리되려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이해보다는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종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공수처법과 선거법에 대한 토론을 했으니 서로 싸우기 바빴지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대로된 전문가들이 나와서 시간을 두고 여야가 주장하는 문제를 분석 평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아마 TV와 신문에서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왜 국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무엇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번 공수처법이나 선거법 처리과정에서 국민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외면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들에게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관한 국회의 논의가 제대로 보도되었으면 어떤 국회의원들이 실력과 능력이 있고 없는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을 도외시한 이런 의사결정과정은 국회의원들의 피해로 되돌아간다. 우리 사회에는 마타도어를 이용해서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사회가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타도어식의 선전선동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공수처법의 조항에 대한 건전한 문제제기도 공수처 법을 반대하는 반민주적이고 반개혁적인 정치인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세력들이다. 이런 세력들이 힘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공론의 장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공수처법의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대부분 공론의 장이 건전하게 열렸으면 국민들이 충분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공수처법은 통과되었다. 제대로 운영이 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부정부패를 하는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깨끗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법과 제도보다는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