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반동, 호남반동, 시민단체 반동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낸 세대가 군부독재보다 저열한 독재의 압잡이가 되어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같은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리게 만든 제1의 책임은 황교안과 나경원에게 있다. 학교다닐때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자한당은 오로지 투쟁 일변도로 일관하다가 더민당에게 말려들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도록 만들었다. 만일 당시에 다른 야당과 긴밀한 협의를 하면서 더민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전략에서 실패했다. 전략의 실패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능력한 자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을 사춘기 청소년 처럼 폭발하도록 만든 것은 광화문의 열기와 영남의 반동적 지지 때문이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박근혜를 탄핵했으면서 탄핵에 머물러 있던 영남의 반동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려주는데 일조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의 무능력을 발휘하고도 저렇게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하게 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호남의 반동성에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조국과 유재수, 그리고 송철호의 행위는 올바른 시민적 삶을 왜곡하고, 국민의 삶을 유린했을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행위를 영웅담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조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국의 행위는 영웅담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기타잡범’의 행태와 견주어도 매우 비열하고 악랄한 수준의 범죄다.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해도 ‘기타잡범’의 수준밖에 안되는 조국을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만들어 가는데 가장 기여한 것은 호남이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이 내준 압잡이 자리에 취해 김대중이래 정신적으로 우월감을 지니고 있던 진보적 가치를 서슴없이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영남보다 더한층 반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남이야 원래 보수적인 동네니 조금만 움직이면 반동화된다.

호남은 원래 진보였다. 이상한 것은 호남이 이번 정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반대에 있는 반동의 영역에 서슴없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호남이 영남보다 더 반동화되었다. 영남이 저러고 있는 것은 그래도 박정희와 박근혜의 향수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해 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전에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반동적 상황에 머물고 있다.

호남의 반동적 상황은 영남의 반동적 상황보다 한층 더 저열하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를 하면서 주어지는 조그만 떡 고물에 취해서 반동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동안 지향했던 진보적 가치를 헌신짝 처럼 내 던져버리고 시궁창에 떨어진 엿조각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제정신을 차렸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시궁창의 떡고물을 찾아 헤매기 보다는 김대중의 정신과 5.18의 정신을 고양시켰어야 했다. 지금은 지하의 김대중과 5.18 영령들이 땅을치고 통곡할 상황이다.

영남은 자기연민에 빠져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 호남은 떡고물을 찾아 스스로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점에서 영남보다 더 저열한 반동의 길을 가고 있다.

진보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한다. 보수는 가치보다 이익을 더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호남은 완전하게 반동화되고 말았다. 반동화된 것은 호남뿐이 아니다. 참여연대와 민변, 우리법연구회 같은 과거 진보적 시민단체와 직능단체들도 예외없이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가 되면서 반동화되었다.

김경률 같은 사람이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그들이 얼마나 반동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양승태를 적폐라고 고발하던 양심적 판사들이 대거 더민당의 품에 안겨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아무때나 유리할 때 엿바꿔먹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일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의 본성은 변한다. 개혁도 그렇다. 이승만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대구였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광주였다. 문재인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서울이 될 것같다. 기득권에 포섭되면 바로 반동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경계선은 수도권이다. 영남과 호남은 기득권 반동일 뿐이다.

진중권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를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더민주만 안찍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있는 한 자한당도 찍으면 안된다. 실패한 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민주도 안찍고 자한당도 안찍으면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 정의당 ? 그들은 더민당보다 더 나쁘다.

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

성경에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라’고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필요한 이유는 어둠과 세균 그리고 곰팡이 때문일 것이다. 빛은 강해질수록 어둠은 더 짙어진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세균과 곰팡이들이 판을 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누가 빛인지 어둠인지, 누가 소금이고 누가 곰팡이 덩어리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누가 빛이며 누가어둠인지, 누가 소금인지 누가 세균 곰팡이 덩어리인지 알 수 있다.

검찰은 소금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검찰이 그동안 비판을 받은 것은 소금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금의 짠맛은 한결같아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어떤 때는 짜다가 어떤 때는 맹물이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왜 소금이 한결같이 맹물같지않고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서초동이나 광화문 모두 비슷하다. 소금이 왜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항상 소금의 짠맛을 지켰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집권 초중반까지는 항상 정권을 위한 맹물역할을 하다가 정권이 힘을 잃을 때가 되면 짠맛을 냈다. 검찰개혁은 소금이 항상 짠맛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짠맛 싱거운맛을 조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소금의 짠 맛을 없애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 버리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이 판을 친다.

윤석렬의 검찰이 문재인 집권초기부터 권부에 대해 짠맛을 뿌렸으면 조국도 사모펀드가지고 장난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재수와 송철호 같은 사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이 일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소금이 짠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소금을 상처에 뿌리면 쓰리다. 아프고 쓰리면 비명을 지른다. 지금 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가 ?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지금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일까 ? 윤석력의 검찰이 빛인가 어둠인가 ? 조국일가, 송병기, 송철호, 백원우가 빛인가 어둠인가 ? 소금이 뿌려졌을 때 비명을 지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세균 곰팡이 덩어리다.

빛이 그 밝음을 잃어 버리면 어둠과 빛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지금 빛에게서 그 밝음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 빛을 흐리게 하는 자들은 절대로 빛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의 자식일 뿐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을 찬양해야한다. 어둠과 세균 곰팡이 덩어리를 찬미할 수는 없다. 물론 때에 따라 밝음을 잃어 버리는 빛과 짠 맛을 잃어 버리는 소금을 찬미해서도 안된다.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곳에서 더 창궐하는 법이다.

대통령 인사권 ? 공화주의의 붕괴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 다르다. 다양한 시각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다. 이번 청와대와 추미애의 검찰인사를 어떻게 보는지 모두들 평가와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인사권을 행사했다는 주장부터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각각의 주장들은 모두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완전한 악과 완전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자한당을 참아야 하는 것은 민주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공화적 가치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자주 전제주의적 경향을 띤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제주의적 발상이다. 대통령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이 독재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에 의해서 견제될 수 있다. 검사 인사를 법무부 장관이 인사안을 만들어 검찰총장과 협의를 하고 이를 청와대에 제청하고 여기서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전제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인사는 그런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법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행사했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 아니고 헌법에 정해진 우리의 공화적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로마시대에 시저는 인민의 지지를 받아 황제가 되고자 했다. 그의 양아들(실제는 사생아 친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부르투스는 공화정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 나란히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비교적 그 배경이 분명한 것 같다. 당연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울산시장 선거의 개입과 유재수 문제 때문일 것이다. 조국 수사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조국 때문에 문재인과 추미애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추미애는 5선의 국회의원이다. 자신의 조치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분명하게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사법방해를 한 것은 당연히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송철호를 울산시장 민주당 후보로 단독공천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유재수 건과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스스로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위는 그 자체로서 탄핵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대통령이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대통령을 뽑았지 법위에서 군림하는 왕을 선출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상당기간 검찰을 수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수사검사 모두가 교체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새로 교체된 검사들이 와서 자료 살펴보고 하다 보면 수사는 동력을 상실하고 총선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유야무야 이번 사건은 묻혀질 것이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바로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문재인과 추미애에게는 다행스럽게 자한당을 위시한 야당은 아무런 조치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문재인과 추미애 그리고 친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시간의 문제이지 이번 사건은 반드시 다시 수면위로 올라 올 것이다.

다음 대선에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꿈깨시라. 지금처럼 정치하면 민주당에서 대통령 나오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오더라도 지금의 쿠데타적 행동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수사는 다시 진행될 것이고 문재인과 추미애는 그때 처벌을 받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후 들어선 노무현 정권이 대북송금문제로 동교동계를 모두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한 불쏘시개가 호남이라는 점이다. 이번 정권을 호남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남사람들은 자신들이 문재인 정권에게 이용당하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권은 일부 몇명의 호남 부역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호남의 지지를 호소한다. 정신없는 호남사람들은 그런 부역자들의 선동에 즐겨 따라간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생전 외치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붕괴시키는 일등공신이 호남인 셈이다.

이제 호남은 민주주의의 성지가 아니라 전제주의의 조력자가 되었다. 호남은 그 입으로 더 이상 진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제거가 실책인 이유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어제 올린 글에서 이라크를 공식방문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미국이 살해했다는 것은 이라크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의 행동은 이란이 앞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미국의 주요인사를 살해할 수 있도록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도 언급했다.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내가 했노라고 알리는 것이 아니고 비밀공작의 형식을 빌려야 했다. 솔레이마니는 후세인이나 빈 라덴과 같은 경우가 아니다. 후세인과 빈 라덴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제거했다고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솔레이마니의 경우는 미국이 자신이 살해했다고 밝힐 경우 뒤따르는 문제가 더 많다. 그래서 통상 이런 경우는 비밀공작을 한다. 순니계열의 IS를 사주한다거나 또 다른 정적을 내세우는 것이다. 아니면 이들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해서 미국이 직접 살해했다는 것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경우는 미국이 제거했다고 공개해서 이익을 볼 것이 별로 없다. 아마 앞으로 당분간 미국의 주요인사들은 미국 땅을 떠나 마음대로 다니기가 어려워질 지 모른다. 미국은 왜 비밀공작의 영역을 공개하는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을까? 아마도 올해 미국 대선을 의식해서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와 대이란정책은 트럼프의 중동정책이 매우 비상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세계문제보다 미국의 문제 해결을 우선시 해야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해외주둔 미군의 비용을 절감하고 전비를 줄이고자했다. 그래서 아프간에서의 철군도 추진하고 중동에서도 군대를 줄이고자 했다.

그러자면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해 이란과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란은 시아파로 순니의 극단세력인 IS와 대척점에 있다. 중동에서 미군의 부담을 줄이려면 이란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집권하자 마자 이란과의 핵합의를 깼다. 유엔안보리5개국+독일과 이란의 핵합의는 핵없는 세계를 추구해오던 오바마 행정부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런 것은 트럼프는 단번에 파기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이란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방위비를 아낀다고 중동지역 미군을 감축했다. 중동지역에서 군대를 줄이는 문제로 매티스 전국방장관과 갈등을 빚고 결국 사임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것이다.

지금 미국의 중동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트럼프는 이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러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석유자본의 요구이다. 미국 석유자본의 중동시장 장악이라든지, 혹은 중동의 석유 수송에 혼선을 초래하도록 하여 세계를 궁지에 몰아 넣되, 자신들은 세일석유로 문제없이 번영을 구가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중국이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서 고의로 혼란을 유도할 수도 있다.

세번째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유일한 국가인 이란을 제거하기 위한 유대자본의 흉계를 들 수 있다.

넷째, 10여년 마다 주기적으로 전쟁을 해야 돌아가는 미국 군산복합체가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부추긴 것과 같이 여러가지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이유든 간에 현재 미국의 행동은 미국자신의 국제정치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현재 행동은 미국 일반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패권유지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경로를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상일은 원래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번 솔레이마니 제거로 그동안 앙숙이던 시아파와 순니파가 손을 잡게 만들지도 모른다. 벌써 이라크 의회는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의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천년 넘도록 앙숙이던 시아와 순니가 서로 손을 잡는 계기를 미국이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이라크전과 같이 이란을 공격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란은 이라크와 지리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보낼 수 있는 기지확보자체가 어렵다. 지상군이 투입되지 않으면 공중타격과 같은 방식이 될 것인데 그것만으로 이란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일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은 고립무원의 이라크와 같이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란은 이런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이 중국 러시아와 연합훈련까지 실시했다.

실제 미국이 군사공격을 언급하지만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설사 실행한다하더라도 요망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이란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 방식의 대응보다는 좀 더 은밀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의 이슬람 세력과 연계해서 미국을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미국이 직접 대응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혼란이 야기되는 이유는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정책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행동은 이란의 핵무장 속도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책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니 제대로된 전략이 수립될리 없다. 내가 왜 미국 걱정을 해주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살해를 보면서 이라크를 생각하다.

새해 벽두부터 독감으로 고생을 했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아서다. 독감예방주사 맞는 시기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독감에 걸렸다. 이제야 겨우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아파도 세상은 돌아간다. 비몽사몽간에도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북한은 예상한대로 미국과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은 이라크에 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드론 폭격으로 살해했다. 한반도와 중동지역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령관을 이라크에서 살해한 것은 국가의 주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공식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이라크 땅에서 살해한 것에 대한 책임문제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라크 정부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게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 이라크에는 그런 합리적인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자체가 사분오열되어 있어서 말로만 국가지 정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란 중요인사를 제거했으니, 이란도 이라크에서 미국의 주요인사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결국은 최소한 지켜야 할 룰을 어겼으며 이는 미국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

이라크 전쟁이후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져 버렸다. 이라크를 통합했던 후세인은 팔레비축출이후 신정체제로 돌아선 이란의 확산을 저지했던 방패막이었다. 이라크 후세인이 독재자로 낙인이 찍힌 것은 쿠웨이트 침공문제였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유전문제 때문이었다. 쿠웨이트에서 채굴하는 유전의 상당부분이 이라크 지하에 있었다. 이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있어났다. 당시 후세인은 주이라크 미국대사에게 쿠웨이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의 동의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불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으며, 후세인은 이를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쿠웨이트를 공격했다. 그 이후 미국주도로 사막의 폭풍작전이 전개되었다.

사막의 폭풍작전(91년 1월)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미국은 쿠웨이트를 해방시키고 이라크 남부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보했다. 아직까지 당시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다고 동의를 구했을때 왜 미국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당시까지 이라크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친미국가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 아들 부시가 들어서면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국에서는 석유에너지 장악이 중요한 아젠다중의 하나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 자체내에서도 텍사스에 기반을 둔 석유자본들이 중동의 석유를 장악하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했다는 분석이 꽤 많았다. 물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표면적인 이유는 대량살상무기 보유혐의였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미국 CIA의 정보분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IA와 국방부 정보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어차피 CIA와 국방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명분을 위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려고 한다고 꾸며댔을 뿐이다.

제1차 및 제2차 이라크 전쟁이 텍사스에 기반을 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는 어렵다. 두번의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라크는 시아와 순니가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 정점에 후세인이 있었다.

91년 걸프전의 여파로 알 카에다가 창궐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후과로 ISIS가 창궐했다. 지금 중동은 누가 들어가더라도 질서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사우디아아비아와 특수관계이다. 달러는 오일가격에 페깅이 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일을 달러로 결제하는 댓가로 사우디왕가는 미국의 보호를 받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에 적대적인 알카에다와 ISIS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순니계열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을 위해 미국은 어마어마한 전비를 투하했다. 조사를 해보아야 겠지만 지금 미국의 재정적자는 대부분 이때에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은 적어도 미국이 다시 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균형은 맞추어 놓았다. 끊임없는 이라크 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의 재정적자는 눈덩이 처럼 늘어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전에 투입된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미국이 냉전 종식이후 유일한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지속하기 어렵게 된 것은 바로 두번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때문일 지도 모른다. 국력을 전쟁에 투입하다보니 미국내 사회문제는 뒷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미국의 힘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것은 중국의 상승때문이라기 보다 미국 스스로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 미국이 이라크와 쿠웨이트간 유전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면, 지금 쯤 미국은 중동의 완벽한 균형자라는 위치를 장악했을 것이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용하여 이란을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시리아도 점차 미국의 영향력에 조금씩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평화롭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국이 대외정책을 수행하면서 외교보다는 군사력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정책의 또다른 수단이라고 통찰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전쟁을 정책의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클라우제비츠적 전쟁관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와 타협보다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문제를 대화와 타엽이 아닌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부른다. 미국이 솔레이마니 이라크 군사령관을 살해한 것은 반작용을 부를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승인한 것은 그가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또한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이라크 전에서 대량살상무기 문제처럼 이란에서 전쟁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도 조작될 수 있다.

한때 중동 국가중 가장 친미국가였던 이라크가 걸프전과 이라크 전을 통해 완전하게 붕괴된 것을 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동맹관계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국제사회에서 동맹과 우호관계라는 것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다. 국제사회는 항상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그래서 동맹이나 우호관계도 자신의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 미국의 힘이 강력한 힘이 지닌 이중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는 국민국가내에서의 가치이지 국제사회에서의 가치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정의는 힘의 정의일 뿐이다. 즉 미국의 힘이 강한 만큼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면 이라크처럼 한방에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원하는 것으로 따라가면 천천히 쫄딱 망하기 십상이다. 그 기묘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는 말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의 지향방향 모두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얼마나 지혜롭게 주변 정세와 여건을 활용하느냐갸 중요하다.

중동에 전운이 감도는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중동은 제국주의 시대부터 열강의 이해가 충돌했던 지역이다. 100년이 넘었지만 중동은 제국주의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동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때까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중동문제는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부분이 많다.

독감으로 정신이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이란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 사건을 보면서 미국이 전쟁보다 외교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힘을 사용하면 할 수록 세계적 패권유지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공수처법 통과를 보면서, 국회와 국민의 거리 그리고 공론의 장

그 말많던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더민당이 이번 회기에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꼼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조국 수사와 유재수 그리고 울산시장 송철호의 선거부정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는 술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수처 법은 이번에 통과시키되 그 시행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방안을 나름대로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사실은 사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더라도 공수처장을 선출하고 검사를 선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정작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을 하게 되면 검찰에서 이미 이번 문재인 정권에 관한 수사는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조치는 매우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하고 있다. 야당이 반대를 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임명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또 청와대와 공수처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법을 명문화시켰다. 청와대에서 공수처에 전화하는 것도 불법이 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정도라면 어느정도 정치적 중립에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야당의 비토권이다. 공수처 법에 반대해서 자한당이 의원 총사퇴한다고 한다. 그럼 공수처장 선발과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된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자한당을 완전무시하고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끝없은 정치적 중립시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아마 공수처장으로 추천된 사람도 야당의 지지없이는 수락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검찰의 태도다. 검찰이 이번에 권력의 핵심을 수사하는 것은 정말로 찬성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검찰이 해온 행태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검찰도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를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검사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만 생각하겠다는 윤석렬 같았으면 검찰이 국민들에게 지금처럼 불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는 물론이고 정치에 직접 개입해왔다. 정권초중반에는 정권의 개가 되고 정권후반부에는 주인을 물면서 검찰의 이익을 확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점에서 검찰도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검찰의 칼은 정권의 부침과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의롭게 사용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조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다.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공수처법 통과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공수처법 뿐만 아니라 선거법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법이지만 국민들은 그 논의의 과정에 철저하게 국외자였을 뿐이다. 도대체 TV와 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쟁점이 되는 조항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도하고 분석 평가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번에 공수처법과 선거법 처리 과정이 이렇게 난항을 겪게 된 것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처리되려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이해보다는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종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공수처법과 선거법에 대한 토론을 했으니 서로 싸우기 바빴지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대로된 전문가들이 나와서 시간을 두고 여야가 주장하는 문제를 분석 평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아마 TV와 신문에서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왜 국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무엇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번 공수처법이나 선거법 처리과정에서 국민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외면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들에게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관한 국회의 논의가 제대로 보도되었으면 어떤 국회의원들이 실력과 능력이 있고 없는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을 도외시한 이런 의사결정과정은 국회의원들의 피해로 되돌아간다. 우리 사회에는 마타도어를 이용해서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사회가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타도어식의 선전선동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공수처법의 조항에 대한 건전한 문제제기도 공수처 법을 반대하는 반민주적이고 반개혁적인 정치인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세력들이다. 이런 세력들이 힘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공론의 장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공수처법의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대부분 공론의 장이 건전하게 열렸으면 국민들이 충분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공수처법은 통과되었다. 제대로 운영이 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부정부패를 하는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깨끗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법과 제도보다는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서울 시민청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삶이란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지상에 잠시 들른 소풍이다. 소풍을 왔으면 잘 즐기고 재미있게 보내다 가면 될 일이다. 소풍이 즐거운 것은 그때는 모든 것이 풍요롭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계절도 풍요롭다. 따스한 햇빛 그리고 부드럽고 온화한 바람이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든다. 많은 것이 풍요로우니 주변사람들과 즐겨 내것을 나눈다.

인생이란 소풍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가진 것이 부족해 나눌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가진 것이 부족하기 보다는 가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가진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주변의 사람에서 얻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매일 만나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서 살아간다.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양식이지만 내 주변사람들과의 만남은 영혼의 에너지다.

어느 신문에서 노숙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주변과의 단절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노숙인들끼리도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단절은 아마도 영혼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어제 서울 시민청에 갔다. 도서관에 책을 찾아 볼까 해서 갔는데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일이었다. 월요일에는 휴관을 하는데 깜박 잊어버렸다.

시민청 지하 무대에 들어가보니 나이든 어르신들이 여기저기 많이 앉아 계셨다. 거기에는 노숙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모두들 혼자 앉아 있었다. 누구와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이나 노숙인들이나 모두 혼자 앉아 있었다. 말없이.

넓은 공연장 끝에는 경비원이 한사람 앉아 있었다. 책상이에는 흰종이에 검을 글씨로 큼지막하게 ‘근무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치 누가 큰 소리를 치거나 소란을 일으키면 곧바로 즉각 밖으로 쫓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넓은 지하광장이 조용한 긴장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쩐지 낯선 광장을 가로 지르면서 사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는 제대로 살고 있을까?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그냥 내 몸 하나 편하고 내자식 잘되면 그저 그만인가?

회사나 조직체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은 은퇴하고 나서 한동안 심한 홍역을 앓는다고 한다. 그동안 만나든 사람들과 단절되는 아픔을 겪기 때문이다. 회사와 조직은 내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돈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영혼의 에너지를 함께 제공한다. 그런데 은퇴를 하면 영혼의 에너지가 고갈된다.

돈과 달리 마음은 내가 스스로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마음부자가 되기도 하고 가난뱅이가 되기도 한다. 그저 부드러운 웃음과 따스한 말한마디로 마음부자가 될 수 있다. 그 간단한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온화하지 않고 빡빡한 사람은 마음 부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을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라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저녁이 되면 시민청을 닫는다. 그러면 잠시 따스하게 쉬던 노숙인들은 다시 길가로 몰려갈 것이다. 그들은 어디서 겨울추위를 피할까? 사업실패로 노숙자가 된 사람이 암으로 사망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기사가 생각났다. 죽으면서까지 가족을 지키려고 했단다.

인간은 참으로 못된 종자인 듯 하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되어야 한다면, 바로 그 이유는 바로 남의 불행과 불운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울 시민청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김현종과 최종건의 갈등, 그리고 책임

국가 안보실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김현종과 최종건의 갈등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각 김현종과 최종건 모두 해임시켜야 한다. 그리고 두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안보실장도 책임을 져야 한다.

청와대 안보실에서 상하간 갈등이 공개적으로 문제가 되고 내부적인 갈등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닐 뿐더러 절대 있어서 안되는 일이다.

김현종이 제2차장으로 들어오면서 리더십에 대한 문제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심지어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해외출장간에 영어로 싸우기까지 했다는 말이 국회에서 들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아무리 마네킹이니 뭐니 하면서 비난을 받고 있어도 명색이 외교부의 수장이다. 그런데 청와대 참모가 외교부장관과 설전을 벌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정상적이라면 바로 그 순간에 김현종은 직위해임시켰어야 했다. 그때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평생 조직에 몸담고 있므면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가 리더십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처음에는 그 중요성을 잘 몰랐다. 어릴때는 리더십을 카리스마적 특성이라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개인적인 매력이 중요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직위가 올라가다 보니 리더십이란 끝임없는 자기 수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영학자들이 리더십에 대해 많은 정의를 했다. 그리고 리더십 함양에 대한 방법들도 많이 연구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연구를 했어도 수기치인이라는 말에 모두 귀결되는 것 같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끝임없이 자기를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경계하고 남의 마음을 헤아려 살피는 것이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내가 조직을 이끌고 부여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현대 경영학에서 주목하는 리더십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단계를 지나 부여된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데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 조직생활을 하면서 높은 계급과 직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의외로 자기수양이 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욕과 공익을 구분하지 못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 못하는 도덕적 용기가 부족한 경우를 많이 보았다. 겸손하게 처신하면서 도덕적 용기를 발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대통령을 모신다는 청와대 참모들의 갈등이 언론에 나오는 정도가 되면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도록 안보실장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안보실장이다. 김현종이나 최종건 모두 안보실장의 부하아닌가? 안보정책의 수립과 집행과정은 매우 잘 관리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잡음이 발생하면 오해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보정책이란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한 분야다.

김현종의 리더십 문제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았지만 최종건도 그런 행태를 보여서는 안된다. 비록 김현종의 행동이 기분나쁘더라도 최종건은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내막은 정확하게 잘 알 수 없으나 청와대 비서관이 상급자가 마음에 안든다고 출근을 안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건 항명이다. 최종건은 내가 그렇게 하면 내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교수라고 돌아갈 곳 있다고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정도 정신상태라면 아예 청와대에서 일할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김현종과 최종건은 같이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하다. 그리고 안보실장도 이들에 대한 통제능력을 상실했다. 집권후반기를 이들에게 안보정책을 맡기는 것은 국민에게 할 도리가 아니다. 대통령께서는 즉각 세사람을 경질하고 청와대의 위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세사람 모두 기본적인 자기 수양이 부족한 듯 하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그 이면

12월 16일자 연합뉴스에 지난 3년간 상장사가 자사주를 20조 8천억을 소각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중에 삼성전자는 2017-18년 2년간 무려 18조 6천 770억원어치의 자사주 소각을 했다. 한국 전체기업 자사주 소각의 90%가까운 금액이다.

삼성전자의 현재 시가총액이 338조 4,867억원이다. 약 2년만에 전체 시가총액의 5.5%가량을 소각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원래 자사주 소각은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격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주주들을 위해 자사주를 소각해서 주식가격을 올려줄 필요가 있을까? 주식전문가가 아니니 삼성전자가 2년동안 자사주 5.5%를 소각했으니 아마도 주식가격은 적어도 5.5%정도 이상은 올라갔을 것이다.

문제는 삼성전자 정도되는 기업이라면 자사주 소각을 하지 않아도 주식가격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벌었으니 당연히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배당을 하고 있다. 배당수익률이 3.66% 정도니 매우 높은 편이다.

삼성전자가 2017-18년에 그렇게 많은 자사주 소각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만일 내가 삼성전자의 경영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18조 7천억 정도라면 어마어마하다. 삼성전자가 삼성전자 기술개발에 투자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그돈으로 하청업체들의 기술개발을 지원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그 돈으로 불화수소가스처럼 삼성전자에 필수적인 업체들의 주식을 사서 안정적인 수입처를 확보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할일이 참 많았을 것 같다.

17-18년이라면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과 연관되어서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다. 천문학적 금액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수감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이런 이상한 자사주 매입과 이재용의 당시 상황과 모종의 연관성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을 할만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삼성이 이재용의 지배권을 위해서 외국인 주주들에게 유리한 자사주 소각을 했다고 하는 것 같다. 당시 외국인들이 비싼 값에 주식을 팔고 나중에 값이 떨어졌을 때 주식을 샀다면, 결국 자사주 소각은 외국인들을 위한 이벤트였다는 추측이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삼성은 국내 개인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보게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삼성의 자사주 소각은 아주 나쁜 행동이라고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주식시장을 잘 아는 사람은 그 내용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하준 켐브리지대 교수가 한 말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크기 때문에 국민연금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사서 국민기업화해야 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삼성전자의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문제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삼성전자가 18조 7천억이란 돈을 자사주 소각이 아니라 하청업체들에게 제대로 가격을 지불하고 임금을 제대로 주었으면 그야 말로 경제의 낙수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이란 방법은 낙수효과가 거의 없는 조치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그냥 기업이 아니다. 당연히 국가경제와 국민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삼성전자같은 기업이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가지지 않으면 기업을 만들고 발전시켜서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겠다는 우리나라 보수적 가치는 그 취지를 상실한다. 보수적 가치는 이기심을 마음껏 향유하는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국민경제에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왜 끊임없는 비난을 받는지 스스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기업이 되면 생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정치가 후진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진표에 이어 정세균을 총리후보로 고려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심사가 복잡하다. 김진표는 민주당 정권이 아니라 자한당 정권에서 총리를 해도 무난한 사람이었다. 현정권이 김진표를 총리후보로 내세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를 잘 한 사람도 있고 못한 사람도 있다. 모두 공통점이 있다. 정치를 잘 한 사람의 특징은 명확하다. 국가와 국민의 행복에 고민하면서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기득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반대로 정치를 잘 못한 사람들은 예외없이 패거리를 짓기위해 부정과 부패를 은연중 만연시키고 자신도 부정을 한다. 그리고 기득권과 손을 잡는다. 그런측면에서 현재 우리의 정치인들 중에서 훌륭한 정치인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훌륭한 정치인들은 대중들이 뽑아야 하는데 대중들도 매스 미디어와 포퓰리즘에 후달린다. 결국 대중들이 사람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의 수준은 대중의 수준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는가 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수적 세력은 영남을 중심으로 진보적 세력은 호남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보수적 정치세력이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것은 영남사람들이 제대로된 사람들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호남사람들이 똑 같이 영남사람들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소위 진보정권이다. 물론 겉은 진보라고 하지만 속은 이제까지 정권 중 가장 기득권 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권의 전략은 아주 단순하다. 호남을 정권장악의 바탕으로 삼고 부산 경남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호남은 그런 전략에 놀아나고 있다.

현재의 이낙연 총리와 후보자로 검토되고 있는 정세균 모두 호남사람들이다. 문재인 정권이 총리후보자로 호남출신을 생각하는 것은 호남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이다. 호남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알면서도 즐겨 동참한다.

문제는 호남쪽 정치인들이 호남의 대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호남 대중들은 호남 정치인들에게 이용을 당할 뿐이다. 호남사람들은 과거의 한을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풀려고 하는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호남 정치인들은 호남사람들을 이용할 뿐이다. 상당수의 호남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호남 대중들의 기대를 이용하기를 저어하지 않는다. 결국 현재 문재인 정권의 무능력과 부정부패 그리고 권력농단에 호남 대중들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김진표를 총리후보로 고려하다가 반발이 생기니 다시 정세균을 고려한다고 한다. 정세균은 국회의장을 한 사람이다. 이제까지 국회의장을 하고 나면 정계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입법부의 수장이 다시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니 이게 웬일이냐 하고 반색을 하는 것 같다.

원칙과 규범이 무너지면 세상은 혼돈에 빠진다. 정세균은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호남 대중들의 정서와 수준이다.

호남 대중들은 그 알량한 대리만족을 위해 자신들이 이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원칙과 규범의 붕괴를 좌시하고 있다. 결국 호남 대중들의 수준도 영남 대중들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있어도 발탁이 되지 않고 구조적 장애물에 가로막히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박항서 감독을 보라. 그는 한국에서 감독을 하면서 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적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가서 성공한 것은 그가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치를 욕하지만 사실 욕먹어야할 대상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 박항서를 얽어맨 구조적 장애물인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바뀌지 않고 정치인들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가 아닌가 한다.

호남에서 그리고 영남에서 청렴하고 올바른 사람들이 그렇게 없을까? 인생을 올바르게 산 사람들이 그렇게 없을까? 왜 우리는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휘둘리는 도구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