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

초등학생도 다 아는 기본원리를 실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세계다. 특히 국제관계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최상인가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최상의 방법은 미국과 중국의 싸움을 이용해서 양쪽으로 모두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미국이나 중국 중 어느 한쪽과 너무 가까워지면 안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안별로 최상의 조건을 따져서 거래를 하면된다.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에 너무 가까이 가면 반드시 그에 따르는 반대급부의 손해를 당하게 된다.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이나 중국이 한국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과 떨어뜨려 놓으려 하고 미국은 한국을 계속 자기편에 두려고 한다.

최근들어 미국이 한국을 붙들어 매어 놓기 위해 총력적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언론보도에 미중패권경쟁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보도가 자주 눈에 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어보는 학자들이 대부분 미국사람들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수립하는데 상당히 깊숙하게 관여한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본다. 답은 들어보나 마나다. 미국의 관변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중국에만 관변학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관변학자가 많다. 우리나라 언론에 소개되는 미국 국제정치 학자들의 대부분이 관변학자다.

대부분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와중에 독자적인 노선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을 저울질하기 보다는 어느 한편에 확실하게 붙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어느한편에 붙어야 한다는 대상은 미국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단계 더 나아가 미국은 동맹국에 관심이 없으므로 한국이 미국을 동맹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을 정도다. 미국이 동맹을 필요로 하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가 동맹하자고 해서 유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이가 없는 주장이 이렇게 판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신문의 상당수는 한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한 지면을 내놓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진보나 보수 언론의 문제가 아니다. 총체적인 현상이다.

한반도는 미중패권경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대다. 한반도를 장악하는 측이 패권을 장악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을 놓쳤고 중국은 한국을 얻으려 한다.

한반도처럼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도 이렇게 스스로 불리한 위치로 내려가는 경우도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일이다.

중국이 최근들어 한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난번 사드배치이후 한국에 대한 보복적 대응이 초래한 부작용 때문이다. 한국내에서도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가 심각하게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사드배치를 이유로 경제적으로 보복하면서 한국사람들은 오히려 반중감정이 더 커졌다.

중국이 사드배치 보복을 하기 전에는 한국인들이 모두 중국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한번에 바꾼것이 중국의 보복이었다. 한국인들이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환상을 깨어 놓았던 것이다. 한국사람들의 환상을 깨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 대한 환상을 깨고 나니 문제는 미국이 되어 버렸다. 수백년을 여기 아니면 저기에 빌붙어 살아오던 습관 때문인지 이제는 미국과 잘지내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또다른 환상이고 또다른 우상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나에게 최상의 이익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청소년 아이들이 좋다고 선택하는 것을 보면 간혹 그게 아닌데 할 때가 있다. 그럴 경우 대부분 무엇이 자신의 삶에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를 제대로 판별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한국인의 선택이 종종 청소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특수한 관계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무리 특수한 관계라도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하면 조금씩 그에 따라가야 하는 법이다. 변화에 따라가지 않고 저항하면 한꺼번에 폭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을 찾으려면 미국의 관변학자에데 물어볼 것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모색하고 있는 국가들의 예를 찾아 보는 것이 옳다.

그러기 어려우면 미국학자들의 입장만큼 중국학자들의 입장을 소개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일방적인 보도를 하면 국민들이 세뇌를 당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매사 손해만 보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의 대부분이 무엇이 국익인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남들생각을 들어서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지를 정하지 말고 내가 처한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해서 스스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라는 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이 서글프다.

우리나라에는 왜 무엇이 최상의 방안인지를 스스로 생각하는 학자나 정치인이 없을까?

미중패권 시기과 일본과 독일의 차이

아베가 물러나고 스가가 수상이 되었다. 일본이 달라져야 동아시아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변화는 미중 패권경쟁을 맞이하여 시대적 역사적 요청이다. 어차피 미국은 지는해다.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떨어지는 것은 가속도가 붙는다.

떠오르는 해는 누르기 어렵다. 그러다가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지금의 중국을 힘과 강압으로 내리 누르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세상 모든 것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앞으로 처하게될 위기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현상의 변화는 다양한 위기를 초래한다. 때로 이런 위기들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한다.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 하기 보다. 위기가 심각한 위협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중패권경쟁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과는 간단하다. 첫째, 미국이 이긴다. 둘째, 중국이 이긴다. 셋째, 서로 경쟁하면서 같이 존속한다. 세번째 미국과 중국이 지금과 같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을 지속하는 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언젠가 미국이 이기든 중국이 이기든 결정이 될 것이다. 시간이 가면 중국이 우위에 서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과 같이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하는 시기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 있는 국가와 지역으로는 매우 소중한 기회다. 지금과 같은 기간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현재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해지겠지만 그것은 극복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 어느정도 대처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나마 우리가 향유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상당히 변화할 것이다.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민족문화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독립국으로 사느냐 위성국, 조공국으로 사느냐의 문제가 닥친다.

미국이 빠져나간 곳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관계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원래 중국이 생각하는 국가들의 관계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는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도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국이란 힘이 빠져나가게 되면 일본도 중국으로부터 저항하기 어려운 구심력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 미국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제관계에서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는 없다. 이익이 되는 나라와 손해가 되는 나라만 있을 뿐이다.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더라도 유일하게 독자적인 지위와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는 북한이다. 핵과 미사일 때문이다.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 특히 북한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핵능력을 가지고 중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북한과 힘을 합쳐야 중국의 압력과 영향력을 완화할 수 있다.

미국이 실패한 것은 북한이 지니고 있는 전략적 지정학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대화는 북한이 하자고 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했어야 했다. 미국이 패권경쟁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그 이유중 가장 큰 것은 북한을 회유하고 설득해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기록될 것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팽창하게 되면 한국이나 북한이 혼자서 막아내기 어렵다. 최상의 방향은 남북한 일본이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일본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현재가 아니라 아직 메이지 유신과 중일전쟁의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를 위시한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의 세계는 메이지 유신과 태평양 전쟁 사이로 고정되어 버렸다. 일본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과거의 경험과 영광을 잊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텐진조약으로 서구제국주의자들의 먹이감이 되었던 중국은 다시 과거의 힘을 회복했다. 별것도 아닌 줄로 알았던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해서 무장했다.

중국의 패권적 영향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물러나갈 미국에게 몰빵하는 것 보다 남북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커지는 중국의 힘을 혼자서 다 막아 보겠다고 덤비는 것보다 남북일 협조체제를 강화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쉽고 지속적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협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미국이 마음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북아지역에서 남북과 일본이 서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일본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메이지 유신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일본 정치인들과 주류세력들의 세계관과 인식의 변화없이는 진정 중국의 세력팽창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갈라치기를 할 것이다. 북한과 남한을 갈라치고 남북한과 일본을 갈라칠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동북아지역 국가 분열구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21세기 중국이 부상하는 시대의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일본수상이 아베에서 스가로 바뀌었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스가가 대화를 하자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은가?

동북아지역의 진정한 변화는 일본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동북아 지역이 유럽과 같이 단결하지 못한 것도 일본의 책임이다. 그점이 독일과 일본의 차이다.

독일은 과거에서 벗어나 있고 일본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망상적 기대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는 머지 않아 세계경제가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동안 경제위기의 가능성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기도 했다. 실물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을 위시한 국가들은 천문학적 수준의 돈을 푼다. 금리는 이제 더 이상 내릴 수도 없다. 실업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며칠전 미국에서는 주택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며칠간 미국 주식시장이 급락한 것은 앞으로 오게될 경제위기의 서곡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들게 한다. 세계적인 학자들 중 일부는 앞으로 오게될 경제위기는 1930년의 공황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기도 했다.

아마도 1920년대 같았으면 이미 경제위기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경제공황에 빠질 거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위태위태하게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설픈 분석이 될 수 있으나 그래도 서양 현대사를 조금 들여다 보았기 때문에 최근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1930년 공황이 발생할때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없었다. 중앙은행이 없었으니 월스트리트는 하고싶은 대로 했고, 이를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미연준이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공황의 산물이다. 결국 1930년대에 발생한 공황은 국가가 경제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에도 여러차례 경제위기가 찾아왔지만 1930년대와 같은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점에서 작은 정부와 큰 정부 중 어느것이 효율적인가를 논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의미하지 않나 한다.

한참 경제가 잘돌아갈 때는 국가가 개입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럴때면 모두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다가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적극개입해서 구제금융을 하고 세금도 감면해서 기업을 살려달라고 한다. 경제가 좋을 때는 자유방임을 주장하다가 경제가 나빠지면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국가가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때문이다. 지금 보면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거의 다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이런 위기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보를 할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위기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의 끝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문이될 수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돈도 풀만큼 풀었다. 아마도 미국은 더 이상 찍어내면 상황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찍어내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위협을 받는다. 이미 달러보다 유로가 더 신뢰성이 있다는 소리도 있다.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이자를 실제적으로 마이너스로 만드는 수 밖에 없다. 은행에 저금을 하면 이자를 받는 것이다. 국채를 사면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고 받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첫번째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자산을 구입하는 것이다. 토지와 금 그리고 주식을 구입하는 것이다. 아마도 주택가격과 금가격이 올라갈 것이다. 토지의 구입은 정부가 제동을 걸 것이다. 보유세를 높여서 매입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두번째는 돈을 쓰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노릴 수 있는 요인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게 하는 것이다. 은행에 넣어 놓거나 국채를 사는대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많이 주고 돈을 더 쓰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경기가 어려운 것은 돈을 써야 할 보통사람들의 가처분소득이 너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처럼 아파트 사느라고 수입의 거의 전부를 저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슨 내수시장이 돌아가겠는가?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은 코로나 19도 문제지만 집사느라고 영끌해서 더 이상 쓸돈이 없는 이유도 있다.

만일 기업이 현금을 지나치게 보유하지 않고 나눠주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돈이 은행에 머물지 못하고 시장을 떠돌게 되면 경제는 그래도 돌아가지 않을까? 빈부격차도 어느정도 해소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망상인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서 돈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가치가 떨어지게 해서 경제가 잘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예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강력한 능력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경제위기가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처럼 전쟁을 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럼 뭔가 다른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 믿는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던 부의 재분배와 빈부격차 해소없이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상일지라도 기대와 희망은 놓고 싶지 않다.

암울한 시대

어떤 시대건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있다. 그 세력들은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왕의 시대에는 왕을 뒷받침하는 귀족들이 그 시대의 주도세력이었다. 그들은 토지를 바탕으로 경제를 운영했다. 토지귀족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인인 세계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서 싸웠다.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이었다. 서양의 귀족들이 모두 군대에 가서 복무한 것은 그런 이유다. 그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하면서 매우 고상한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것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각각의 시대에는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이 있는 법이다. 귀족의 시대에는 귀족들이 부르주아의 시대는 부르주아지들이 주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부르주아지들의 전쟁이었다. 제1차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고 제국주의를 만들어 나간 세력들은 부르주아지가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독일과 이탈리아에 파시즘이 등장했다. 파시즘의 핵심세력은 중산층이었다. 중간과 약간 아래의 계층이었다. 그들이 파시즘에 열광한 것은 조금만 잘못하면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파시즘의 선동과 광기는 바로 중산층들이 하층민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이끌어가는 세력, 주도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의 시대는 자본가들이었다. 3공화국과 5공화국의 자본가들이 서양의 부르주아지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서양의 자본가들은 적어도 자기것을 자기가 지키겠다는 책임감이라도 있었다는 것이고, 당시 한국의 자본가들은 내것을 다른 놈들에게 지키게 했다는 것 차이다.

한국사회에서 열심히 돈벌어 국가에 세금내고 국민들 먹여살린다고 주장하는 기업가들을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큰 이유는, 그들이 해야할 의무를 제대로 행하지 않고 권리와 특권만 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돈있고 권세있는 집안의 자식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당시 친일파들의 자식들 중에서 군대에가서 전사했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보라.

시대가 바뀌었다. 오늘날 문재인 정권으로 대표되는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어떤 이들일까? 소위 586운동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조금 들여다 보면 계급적으로 중산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산층중에서 상층부와 중간 그리고 하층부를 포함해 매우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을 보면서 중산층들이 권력을 주도하면서 파시즘이 휩쓸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무슨 이유때문일까? 아마도 한국의 중산층들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중산층도 다양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현재 문재인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한정한다.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중산층, 소위 86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어찌 어찌 집한두채 장만하고 자식들 공부시켰다. 그들은 여기서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와 위기의식들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독일의 파시즘을 주도했고 지지했던 계급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국과 정경심이 강남에 빌딩하나 사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것은 중산층을 넘어 상류층으로 진입해서 내 자식들이 잘못해서 하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소시민적 열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미향은 조국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서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열망 말이다.

조국과 윤미향이 보여준 것은 그들이 소시민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어디 조국과 윤미향 뿐인가?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자들, 지방의원들 모두 자신들의 소시민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에 최우선의 관심을 지니고 있다. 만일 그들이 세상을 바꾸어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게 하고자 했다면,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문재인 정권들어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전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이 평생 일구어 온 소시민으로서의 계급적 기반을 지켜보고자 하는 눈물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모순을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고 지키는데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과 그 정권을 구성하고 또 지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계급적으로 소시민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에 혁명가들은 보이지 않고 파렴치한들만 우글거리고 있다. 대통령이 젊은이들을 앞에 두고 수십차례 공정을 이야기 했지만, 그가 말한 공정에서 그 어떤 감흥과 흥분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가 말하는 공정과 내가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내용이 다르다.

이런 시대가 쉽게 끝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상적인 선거로는 해소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야당이라고 하는 ‘국민의힘’은 정당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아무리 실정을 하더라도 국민의 당이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혹여 국민의 당이 선거에서 이기면 우리나라는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소시민이 주도세력이 된 현재의 권력은 웬만한 충격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아니었다면 파시즘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 처럼,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도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암울한 것은,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 ?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 있는 국가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주변국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우리에게 불리한 정책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우리에게 무엇이 유리한지 불리한지도 모른채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상황에 직면하기 일쑤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진행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악마화 한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중국에 대한 비난은 일정한 패턴을 지닌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 독재국가이자 전체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20세기에 미국이 상대방과 싸울 때 항상 동원하던 수사였다. 일본이 그렇고 독일이 그랬고 소련이 그랬다. 월맹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다.

중국의 미국에 대한 비난은 그리 극렬한 형태를 띠지 못한다. 기껏해야 제국주의 국가인데, 이미 중국도 제국주의 국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제국주의국가라고 비난하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것 같다. 보수정권 당시에 연미연중이라고 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고려해서 미국과 중국을 같은 수준에서 고려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분위기는 과거와 매우 달라졌다.

중국이 커지면 한반도와 일본은 불안정해진다. 어쩔 수 없는 역사적 경험이다. 주변에 강한 나라가 있으면 편치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중국의 커지고 있는 영향력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고민을 해야 한다. 약해지고 있는 미국의 힘도 객관적 요인으로 고려해야 한다.

죽어도 한미동맹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울어가는 배를 붙잡고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살기 위해서는 기울어가는 배에서 탈출해야 한다. 국제정치세계에서 상황은 모든 것의 제왕이다. 상황이 바뀌면 대응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공산주의 독재국가라고 주장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과연 중국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현재의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현재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기 보다는 청나라의 연속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을 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과거 수천년동안 내려오던 중국의 과거 모습으로 그냥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중국은 그냥 왕조국가인 것이다. 황제의 자리를 공산당과 시진핑이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은 소련과 달리 사회주의 이념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중국의 공산주의는 중국내부를 통합하기 위한 내부적 이데올로기이지 세계적 규모의 제국주의를 분쇄하기 위한 혁명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지금 중국의 모습은 중세이후 근대까지 가장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었던 베네치아와 너무나도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과두정이다. 베네치아의 자본주의는 과두정이었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 베네치아는 황금의 책에 관직에 오를 수 있는 부자들의 이름을 적어놓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부부처를 만들어 운영했다. 베네치아 과두정은 시민들의 복지는 철저하게 보장했다. 그 대신 과두체제에 대한 도전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지금의 중국처럼.

현재 중국은 세계혁명을 위한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과두정이 지배를 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중국을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라고 규정하는 것은 현상을 파악하는데 지장을 초래한다.

미국도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철저하게 자본세력의 과두정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중국의 커진 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마냥 악마화해서는 곤란하다. 중국의 실태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방안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중국은 반민주적 세력이고 반인권국가라는 미국의 수사에 나의 판단을 맡겨버리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그냥 미국의 중국과 패권경쟁 수단으로 놀아나는 것 밖에 안된다.

생각을 하고 보아야 한다.

선과 악의 기준

선악은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다. 윤리적 판단의 근거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는 기준이 항상 정확하지는 않다.

한국전쟁의 기억은 공산당을 악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공산당이나 공산주의라는 말은 금기어였다. 자유주의는 선이고 사회주의는 악이 되었다. 냉전이후 자본주의 진영의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적개심은 상상을 절할 정도였다.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싸우다 인류가 망하는 일이 있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상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적대감은 냉전훨씬 이전 소련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발생하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하겠다.

역사 진행의 과정을 보면 봉건적 구체제를 자본주의체제가 밀어내는 것은 당연했다. 구시대의 모순을 제거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 절대왕정과 봉건제를 몰아내고 자본가들이 중심이 된 입헌국가를 만드는 것은 역사의 당연한 발전과정이다. 아무리 새로운 질서라도 시간이 지나면 모순이 누적된다. 자본주의도 시간이 지나면서 모순이 누적되어 이제는 더 이상 써먹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소련에서 발생한 볼세비키 혁명은 그런 자본주의세계의 모순을 타파하려는 인간들의 시도였다.

1990년 소련이 붕괴한 것은 사회주의로 자본주의의 모순과 갈등을 없애겠다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왜 사회주의는 실패했을까? 어려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소련과 사회주의진영의 붕괴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내 생각에는 볼세비키 혁명으로 수립된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쟁취한 성과들을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과거의 시대는 흔적을 남긴다. 공과 과가 있는 법이다. 부르주아 혁명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착취라는 모순이 있었지만 구체제에서 누리지못했던 자유와 개인의 삶과 같은 성과가 있었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착취라는 모순을 해소한다고 혁명의 전취물인 자유와 개성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해서 사회주의는 악이고 자본주의는 선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체제를 선과 악으로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 자본주의는 거의 붕괴하기 직전이다. 자본주의가 남긴 폐악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인간에 의한 인간착취, 둘째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생태계의 파괴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인간의 착취보다 지구생태계의 파괴가 더 심각한 문제다. 지금처럼 그냥 두면 인간을 착취하면서 살고 싶어도 살수 없는 세상이 온다.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시대의 산물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윤리적 기준은 아니다. 시대적 여건상 필요하니까 만들어졌을 뿐이다. 자유방임주의가 지고지선의 윤리기준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었다. 자유방임주의는 18세기 초중반 영국이 절대적으로 생산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주장할 수 있었던 자본가들의 논리일 뿐이다. 영국의 농업자본세력들이 식량수입을 반대하자 영국의 산업자본세력들이 식량수입을 늘여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내리고 그래서 생산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장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 이후 수많은 자유주의가 나타났다. 그때마다 그 자유라는 말에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최대한 확대하기위한 교묘한 매케니즘이 개입되어 있었다. 자유가 근대 혁명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자유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아니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자유에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자유라는 개념이 훨씬 더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민주주의가 선이 아니라고 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드는 사람들도 많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때 그 ‘자유’는 개인의 사적 삶을 보장하는 개인적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자유라는 개념의 대부분은 인간이 인간을 착취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자유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 자유가 선인가?

현실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유’라는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적 영역과 자본가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자본가들이 생각하는 자유를 꼭 집어서 마치 뼈와 살을 바르듯이 갈라내지 못한것이다.

사유재산이 지고의 가치이자 선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사유재산은 악일 수도 있고 선일수도 있다. 어떠한 재산도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면 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오로지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먹는 것이다. 먹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희망과 미래도 없다. 이런 세상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도 어느정도 갖출것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이런 세상에서 집을 몇채씩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야 말로 비극이 아닐 수없다.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당연히 토지공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LH공사가 개발하는 택지에는 모두 영구 임대주택을 지어서 젊은이들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간에게 택지를 불하해서 분양을 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후세대들의 삶을 희망없이 만드는 것이다. 육사와 태능골프장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한다. 그럴 것 같으면 민간주택회사에 택지를 분양하지 말고 아파트만 짓게 해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 건설비는 국가가 지불하고 그 아파트는 영구임대아파트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집때문에 살아갈 방도가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세상 모든 것은 상황의 산물일 뿐이다. 자본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나 자본가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혁명가들이 주장했던 사회주의나 모두 상황의 산물일 뿐이지 지고지순한 윤리의 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쓰나미같은 위기, 시간만 낭비하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로 이어지는 소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은 내부의 문제에 불과하다. 정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내부적인 문제보다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과 위험이다.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위험은 매우 심각할 뿐아니라 연속적이다. 쓰나미가 한번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에 걸쳐 때리고 또 때릴 것이라는 말이다. 하면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벌이고 있는 작태에 분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얼핏 생각해봐도 우리를 위협할 외부의 충격을 크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다.

첫번째, 미중패권경쟁에서 오는 안보환경의 변화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끝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큰 변화없이 시간이 흐르면 빠르면 10년 늦어도 20년이면 미중간 힘의 역학관계가 뒤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미국이 화웨이 금지나 동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시도를 하는 것은 중국의 역전을 막기위한 안간힘이나 마찬가지다. 화웨이에 반도체 수출을 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미국은 중국에 반도체와 반도체를 생산하는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할 지도 모른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이 일본에 원유수출을 막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하느냐 아니면 동양의 변방으로 찌그러드느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었을 뿐이다.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태평양전쟁이전의 일본이나 냉전당시의 소련과 다르다. 중국은 미국과 관계를 단절하고도 스스로 견디고 버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만일 중국이 스스로 문을 거두어 잠그면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며, 위기의 정도도 1930년대와는 비교 할 수 없이 심각할 것이다.

비록 지는해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저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미중패권경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것은 미국이 그냥 그대로 있지는 않을 것이며, 그 영향은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닥치고 한미동맹이나 중국우선주의는 우리가 직면할 문제를 해결 함에 있어서 아무런 실제적도움이 되지 못한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편승외교로 생존해왔다. 명나라가 강하면 명나라에 붙고, 일본이 강하면 일본에, 미국이 강하면 미국에 붙었다. 중국이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제까지 해왔던 기생적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친미나 친중이나 친일이나 모두 똑 같은 삶의 방식이다.

상황이 바뀌면 대책도 달라져야 한다. 과연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그런 고민을 해야한다. 조국이나 윤미향 그리고 추미애가지고 싸울것이아니라…

두번째 위기는 경제위기다. 경제위기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이후 누적된 모순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이 한계상황에 몰린 것이다. 두번째는 코로나 19다. 원래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던 세계적 자본주의에 결정타를 먹인것이 코로나19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첫번째 문제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19는 첫번째 자본주의의 한계를 덮어버리는 화장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등 전세계 국가들의 기업들일 코로나 19를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코로나 19가 아니었다면 수없이 많은 기업들이 이미 무너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19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손해를 보는 계층은 중하층이다. 코로나19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심각하게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지극하게 당연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기업에 40조원 정도를 퍼붙는 동안 재난지원금으로 14조가량이 쓰였다. 미국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코로나 19로 중하층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소패권경쟁으로 인해 어느 한쪽으로 붙어있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한계상황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경제위기를 벗어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미국이나 중국 가리지 않고 수출하고 장사를 해서 이문을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망하기 십상이다. 어제까지 싸우던 원수하고도 장사를 해야 하는 판에 우리가 장사해오던 시장의 절반을 그대로 포기 당하게 생긴 것이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는 그나마 유일한 방법은 북한과 교역을 확대하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과의 교역확대는 북한에 퍼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기위한 생존전략이다. 지금상황에서도 북한에 퍼주기 운운하는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북한과 같은 상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뭔가 운신할 수있는 여지가 있지 않은가 ?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살리느냐 못살리느냐는 각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북한에게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를 보면서, 이들이 과연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북한문제를 개인의 정치적 선전을 위한 무대로 밖에 인식하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의 한계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 자신이 김대중 정권의 대북송금 특검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

세번째 우리는 남북간 힘의 역전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경제력으로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면, 북한은 우리를 군사력으로 넘어 섰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작전배치했다는 것은 남북간 군사력 경쟁은 앞으로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은 절대무기다. 어떤 다른 무기로도 핵을 상쇄할 수 없다. 핵은 사용되면 끝난다. 상대방이 핵을 가지고 있을때 유일한 전략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그 억제는 오로지 핵으로만 가능하다.

남한이 아무리 F-35를 가져도 그리고 미국이 아무리 F-22를 가지고 위협을 해도 북한의 핵사용 의지를 꺽을 수 없다. 북한의 핵사용 의지를 꺽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핵을 보유하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가 핵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이 핵우산으로 보호해주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들어 핵우산이란 용어대신 확장억제니 뭐니 하지만 그 본질은 핵을 사용하면 핵으로 대응한다는 간단한 원칙이다. 그런 간단한 원칙이 무너지면 상대방의 핵사용 의지는 높아진다. 억제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권들어 국방비가 50조를 넘었다. 경항모 백척을 사고 F-35 천대를 사도 북한의 핵을 막을 수 없다. 최신형 기관총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아주 좋은 과도를 들고 덤비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을 가진 것은 단순하게 군사력 분야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경제력이 더 중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력의 최근 마지막 바탕은 군사력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에게 뒤지고 있다. 밥 우드워드가 소개한 내용처럼 김정은이 남한의 군대를 무시하는 발언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김정은은 힘의 우열, 역학관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것이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남북간 군사력의 역전현상이 앞으로 경제적으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가 풀리면 정상적인 국가경영을 할 것이다. 아마 중국보다 훨씬 엄격한 방식의 경제발전을 추진할 것이다. 북한이 어느정도 경제 성장을 하면 남한보다 앞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구의 절반이 자산의 1.7% 정도밖에 소유하지못하고 있는 남한과 사회주의적 분배를 기반으로하고 있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남한의 승리로 끝나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간 체제경쟁이 끝났으며 남한이 북한을 이겼다고 주장했다. 착각이다. 본격적인 체제경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중패권경쟁과 세계적 규모의 경제위기, 그리고 남북한 힘의 역전상황까지 고려하여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여유롭게 조딸 추아들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상황이 아니다. 답답하다.

화웨이 반도체 수입금지, 미국의 전략적 악수 ?

앞으로 화웨이는 5G를 위해 받도체를 수입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화웨이에 반도체를 수출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중국이 그동안 반도체를 얼마나 확보해 놓았는지 알 수 없다. 중국이 확보해 놓은 반도체가 다 소진되면 5G제품을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더 이상 5G를 위시한 첨단산업부분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주안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미중간 기술격차를 유지하고 중국과 패권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중국도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최근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예상하게 하는 몇가지 조치를 했다. 틱톡을 미국 기업에 판매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최악의 경우 미국에서 철수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중국이 선두에 있는 AI와 관련한 기술을 미국에 넘기지 않겠다고 한다. 틱톡을 미국에 넘기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앞으로 중국이 미국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고분고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사하게 만든다.

중국이 미국 하는대로 그냥 당하고만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중국도 미국이 아플 수 밖에 없는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것이 합리적이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보야야 한다.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할까? 만일 반도체를 수입할 수 없으면 그냥 조용히 손놓고 5G 포기할 것인가? 중국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속내를 알 수는 없겠으나, 그동안 이런 상황까지 고려한 대응방안을 마련했다고 보아야 한다. 과두정치 체제인 중국의 장점은 그런 중장기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사전 준비작업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중국이 독자적으로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미국은 그것이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자본주의 국가다. 화웨이라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반도체 부터 5G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체인을 구축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화웨이 5G에 제동을 걸기 어려워진다.

미국이 중국에게 반도체를 제공하지 않으면, 중국이 직접 생산하게 만들도록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중국에 5G 생산체인이 구축되면 그다음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중국의 5G가 멈칫할 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국가가 강력하게 지원해서 그런 장애물을 충분하게 극복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인구 15억의 국가다. 어마어마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 외부와 관계를 차단하더라도 독자적인 경제블록을 운영하고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이 그런 점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을 배제하는 것보다 중국을 미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도체와 기타분야에서 기술격차를 더 벌려서 중국이 절대로 독자적인 5G 생산 체인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전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미국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미중패권경쟁에서 자꾸 악수를 두는 것 같다.

어차피 미중패권 경쟁은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미국이 중국을 이기기 어려워진다. 각종 통계가 미중패권 경쟁이 중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것 보다 중국이 따라오는 속도를 최대한 지연시키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패권경쟁에서 연착륙하지 못하면 공중분해되는 수도 있다.

미중패권 경쟁이 진행되면 우리의 입장만 곤란해진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구장창 한미동맹만 외친다고 해서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을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 빌붙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을 보장 받을 수도 없다.

조국의 적이 조국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적은 우리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사고방식과 대외의존적 인식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앞의 장애물을 절대 넘을 수 없다.

차기경쟁과 메시아주의

차기 대권을 향한 레이스는 한참 진행중인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은 아직도 기간이 많이 남았는데 여당내에서 대권경쟁이 격화되는 것이 못마땅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고 현상이다. 문재인 정권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참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에 안들어도 막을 수 없다.

이재명에 대한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니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한 모양이다. 앞으로 민주당내에서 폭풍의 핵은 이재명이 될 것 같다. 이재명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재명을 해명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그가 새로운 메시아로 등장하고 있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보아하니 문재인 정권은 이재명을 그렇게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은 다음에 이재명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자신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의 성정을 보건데, 권력을 잡으면 제일 먼저 문재인 정권부터 손을 볼 것이라는 것은 크게 틀린 판단은 아닌 것 같다. 이재명이 지금이야 친문세력들 환심을 사기위해 별의 별 소리를 다 하지만, 정작 권력을 잡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그런 걱정은 하나마나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정치권력도 다음 권력에 의해 단죄받지 않은 적이 없다. 이미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자 관습처럼 되어 버렸다.이런 역사적 과정을 무겁게 생각한다면 권력을 장악한자는 다음 정권에 의해 구원받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그냥 자신의 통치기간동안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다 알 수 있는 간단한 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아마도 문재인 정권은 이낙연을 지지할 것이다. 호남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야 정치보복을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틀렸다. 이낙연이 권력을 잡아도 어쩔 수 없이 문재인 정권을 단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는 것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동교동계 숙청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 아닌가? 박근혜도 권력장악하고 나서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자기들끼기 정치보복을 했다. 한일이 있으니 무서울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올바르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권을 잡고 나서 자신의 안위만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 한국정치의 불행이다. 한국정치가 이런 불행을 반복하는 것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정치지도자의 정치적 이념이나 가치관 보다는 개인적 카리스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개인적 매력은 개인적일 뿐이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인기있는 연예인 투표하는 것과 다르다. 때로는 정말 인기없는 정책을 밀어부쳐야 하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겠다는 각오도 필요하다. 인기있는 정치인을 뽑아 놓았으나 이미 그는 부패했고 무능했다.

국민들은 자신의 선택을 반성하는 대신 자신들이 뽑은 정권을 단죄함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을 씻으려 하는것이다.

대중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포퓰리즘에 허덕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화주의다. 즉 민주주의를 견제하는 것이 공화주의라는 말이다. 권력은 상호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권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도 공화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으로 행세하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떤 정권보다 중앙집권적이다. 모든 것을 청와대가 다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책임장관제를 추구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권하에서 장관이란 거의 무의미한 존재다. 청와대의 결정을 단순 이행하는 역할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 장관을 장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장관에 대한 모욕이다.

이재명이 매우 상당한 수준에서 포퓰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는 당내 지지는 물론 문재인 정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적인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려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은 포퓰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는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이재명은 친문세력과 대척점에 서 있지만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과 성향은 문재인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의 핵심을 회피한다. 어제 이재명을 비판한 것은 단순하게 기본소득 기본대출이 타당하냐 아니냐가 아니다. 어제 지적한 것은 지금 코로나 19와 다가오는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정말 문제는 빈부격차라는 것이며, 이재명은 그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을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정치적 담론을 왜곡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빈부격차는 기본소득이나 기본대출과 같은 언발에 오줌누는 정책으로 해소할 수 없다. 언발에 오줌누면 동상걸린다. 적어도 더불어민주당의 대권주자로 나오겠다면 한국의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있는 많이 가진자들이 더 많이 가질수 밖에 없는 구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재명은 정말 당연한 이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다. 그것이 그가 권력을 잡으면 문재인 정권과 별반 다름없이 재벌의 앞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대권을 지향하겠다는 자가 핵심에 직진하지 못하고 주변만 빙빙도는 소리를 하는 것은 겁을 먹었다는 것이다. 겁쟁이가 권력을 장악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우리는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다음에 선출되는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그사람이 어떤 정치적 이념, 사상을 지니고 있는가 보다는 그 사람의 개인적 매력에 함몰된다. 대통령을 인기연예인 투표하는 것 처럼 뽑으면 그는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이재명은 정확하게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재명의 한계

이재명을 점점 더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전형적인 포퓰리스트의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틀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옳고 타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전체중에서 아주 일부를 꼭집어서 이야기한다. 문제는 세상 일이라는 것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어서 어느 하나를 주장한다고 해서 다른 모든 것이 잘되어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기본소득에 찬성한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기본소득이 지속가능해야 한다. 기본소득이 지속가능하려면 세금이 지속적으로 들어와야 한다. 한두달 혹은 일이년 하다가 국가재정이 파탄나서 중지하면 안된다.

지금 우리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앞에 두고 있다. 미국을 위시한 국가들이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고 있다.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다. 언제 터지느냐가 문제이지 터지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 경제는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집하다가는 생태계의 위기가 오게 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를 넘어 인간과 동물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더 이상 생존하기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배고프다고 자기의 팔다리를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넘머 그 어떤 방식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이 기본소득만 주장한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번에는 기본대출을 주장했다. 기본대출과 같은 이야기는 거의 200년 전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이 주장한 바 있다. 프루동은 은행대출이 특권층을 위한 특혜이기 때문에 누구나 금리없이 국민은행이 제공하는 신용대부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부받은 돈으로 인민들이 직접 생산수단을 보유한 생산자가 되어 착취의 연결고리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의 기본대출은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르겠다. 시민중에서 일부가 고리의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국가가 신용을 담보해서 금리를 낮춰준다는 것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이재명의 기본대출 주장은 프루동보다 훨씬 더 조악하다. 공부도 안하나 ?

200년전에 탁상공론과 비슷하게 내놓은 주장을 오늘날 이재명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웃음이 나온다. 어찌 이렇게 하나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기본소득이나 기본금리나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재원은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재원은 기업과 가계가 생산활동을 하면서 획득한 이익에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문제는 앞으로 기업과 가계의 생산활동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전제조건을 쏙 빼놓고 혹세무민하여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주장만 하는 것은, 그가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추진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좋은 자질이다. 그러나 추진력이 있다는 것이 책임감이 있고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정말 이땅의 인민대중이 처한 현실을 해결하려면, 기본소득이나 기본대출과 같이 급성 당뇨병을 초래하는 고농도 설탕 대신에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분명하게 말하건데 우리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을 정도로 심각한 빈부의 격차다.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를 조금이라도 더 존속가능하고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급성 당뇨병을 초래할 기본소득이나 기본대출에 앞서, 부의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부 재정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정부재정이 고갈되면 나라 살림이 거덜나서 앞으로 다가오는 경제위기에 무기력하게 당하게 된다. 그러면 울며 겨자먹기로 우리의 모든국부를 말도 안되는 헐값에 팔아 넘겨야 한다. 남미처럼 되는 것이다. 남미가 지금과 같은 상항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거듭되는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국부가 모두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국부가 유출되더라도 자본가들은 또 이익을 챙긴다. 결국 당하는 것은 중하층민들이다.

국가재정이 붕괴되면 앞으로 다가오는 위기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게 될 것이다. 아직 위기는 오지도 않았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우리도 중남미처럼 되는 것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계속 마구 퍼줘봐라. 어떻게 되는지 한번보자. 중남미는 시민대중이 데모를 해서도 아니라 국가의 책임자들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못해 지금같은 처지에 빠져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자본가들과 부자들이 부당하게 거두어가는 수입을 밑으로 내려보내야 한다. 국가가 돈을 발행해서 할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가들과 부자들의 소득을 분배하는 것은 혁명적 의지가 필요하다. 촛불혁명은 그런 것을 하라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촛불혁명 당시 재벌개혁의 의지가 높았던 것도 왜곡된 경제질서를 바로 잡으라는 국민적 요구였다.

문재인 정권을 재벌개혁은 커녕 재벌의 앞잡이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을 교묘하게 피해가기 위한 말장난이 기본소득이고 기본대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도 재벌과 자본가의 압잡이에 불과하다.

180석이라는 의석으로 재벌개혁 손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분명히 말하건데 그것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재벌에 포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개혁? 무엇이 검찰개혁인가? 검찰을 없애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 재벌을 수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재벌의 앞잡이인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 민주주의 선거과정을 왜곡한 중범죄인들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검찰개혁인가? 민주주의 선거과정을 왜곡한 것은 군인들이 구데타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재벌개혁과 소득분배구조의 개혁은 검찰개혁보다 100배 더 중요하다. 검찰도 재벌과 권력 그리고 가진자의 앞잡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 검찰개혁보다 더 중요한 핵심이 재벌개혁이다. 재벌개혁없이 검찰개혁 없다. 180석의 압도적인 의석으로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국력을 축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재난지원금 나눠주기 위해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담론이 모두 이상하게 왜곡되는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기본대출 주장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담론을 어떻게 왜곡시키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