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기회, 재난기본소득

코로나19 사태가 오래가면서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기본소득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상한 시국은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다. 비상한 시국에 통상적 조치를 하면 망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당의 계급적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매우 헷갈린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재난기본소득을 미래통합당의 황교안이 그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심재철 원내대표가 재산기본소득은 말이 안되다고 정면비판했다. 하극상이다. 미래통합당에서 그중 합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김용태도 재산기본소득을 반대했다. 중소상공인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문재인정권에서도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3월 12일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재난기본소득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충분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이어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현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추경을 충분하게 편성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홍남기 부총리의 경질까지 언급했다. 추경의 확대에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은 들어가 있지 않았다.

홍남기는 이해찬의 요구를 일축하면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정건전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남기를 두둔하는 입장이었다. 문재인정권은 현상황에서 임대사업자에 대한 수익보전을 통한 중소상공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도를 생각하는 것 같다.

여당과 야당에서 모두 재산기본소득 도입문제가 물건너간사이에 그동안 별로 존재감이 없었던 김승수 전주시장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5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결정을 했다. 지방차지단체로는 처음이다. 여기저기의 지자체장들이 말은 했으나 아직 아무도 행동하지 않았는데 김승수 전주시장은 지자체 예산을 재편성하여 263억원을 취약계층을 위한 재난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했다. 그러고 보면 착한 임대인 운동을 제일 먼저 일으킨 곳도 전주시였다.

여기서 우리는 당연한 질문을 해야 한다. 왜 미래통합당과 문재인정권은 취약계층을 위한 재난기본소득을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 왜 중소상공인이나 임대인에게 주목하는 것일까? 당연한 질문이다. 원래대로라면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재난기본소득을 제일먼저 주장했었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그러지 않은 이유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소위 취약계층은 어차피 자신들을 찍어줄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외연을 널피기 위해 중도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보수정당이다.

미래통합당이 재난기본소득을 반대하고 중소상공인들에 대한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어차피 자신들을 찍어주지 않을 취약계층은 신경쓸 것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이나 미래통합당 모두 이번 총선을 앞두고 중소상공인들로 대표되는 중간계층에 구애를 하는 것이다.

환율정책으로 상황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듯 하다. 재정정책으로 정부가 직접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홍남기의 입장은 이해가 된다. 정부재정이 무너지고 외환이 빠져나가버리면 재2의 IMF가 올수도 있다. 자기주장이 없기로 알려진 홍남기 부총리가 직을 걸겠다고 한 것은 그가 지켜온 균형재정이라는 가치관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재정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지금의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백신이 개발되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일때까지는 모든 방법을 다해서 지금의 상황을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취약계층을 살려야 한다. 굶어 죽어면 안되는 법 아닌가? 당연히 중소상공인도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당연히 취약계층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우선순서 인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극성스런 더불어민주당지지자들이 취약계층에 대한 조치를 말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는 보수주의자면서 진보를 표방하는 위선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권을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 예산을 재편성하는 것과 같은 비상한 조치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방예산과 같은 분야는 과감하게 재조정해야 한다. 각종 SOC 사업도 줄여서 취약계층과 중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예산을 재편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은 부유층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상위 5-10%가 지금보다 훨씬 세금을 많이 내지 않으면 국가재정이 무너지고 우리 사회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간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절실한 것이다.

황교안이 재난기본소득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심재철에게 하극상을 당하고서도 아무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역시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전략적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취약계층을 버리고 있을때, 황교안이 재난기본소득을 관철해 내면 선거는 끝난다.

황교안이 선거를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재난기본소득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만일 그가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고 한다면 평생의 소신을 거두고 표를 찍어줄 생각도 한다. 정치도 사람 살자고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다음에 대선후보 반열에 올라가야 할 사람이라고생각한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과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 평생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미국 패권상실의 전조?

피의 목요일이라고 한다. 간밤에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 며칠전부터 심각한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번 증시폭락으로 전세계는 앞으로 전대미문의 대공황으로 빠져들게 될지 모른다. 미국이 1조 5천억 달러를 푼다고 하지만 그런 조치로 이번 문제가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에 발생하는 문제는 오바마가 2008년의 문제를 대충 지나 왔고 트럼프도 뭔가 할 수 있는 기회를 방기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는 이런 위기를 조장했다. 2008년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철저한 금융자본에 대한 철저한 구조조정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구조조정은 커녕 문제를 일으킨 금융자본을 지원하는 모랄 해저드를 저질렀다. 결국 미국의 보통 국민들은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고 금융자본을 살려준 것이다.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운동도 있었다. 가장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나 미국적 분위기에서는 찻잔 속의 태풍이 되고 말았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받은 오바마는 문제의 핵심을 교묘하게 감추는 역할을 수행한 금융자본의 충실한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금리를 올려서 다음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극히 타당한 요구를 무시했다. 결과적으로 연준은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계속 낮추기만 했다. 돈은 풀렸다. 트럼프는 자신의 재임기간중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일이 기도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법이다. 이번 버블이 최고상태에 이른 것은 트럼프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경제적 위기상황을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위기는 2008년과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특별한 원인을 지적하기 어렵다. 이는 미국의 경제가 갈데까지 갔는데 더 이상 갈곳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매우 심각하다.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

2008년 처럼 위기의 원인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돈을 아무리 풀어도 위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금융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문제라면 이번 사태는 백약이 무효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금융자본이 망가질 때까지 망가져야 다시 올라올 수 있다. 그러나 금융자본으로 세계를 지배해온 미국이 금융자본의 힘을 상실한다는 것은 세계의 패권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제는 그런 규모의 전쟁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기간이 훨씬 길어질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수 없다.

이번 위기가 공황으로 전화되면 어떻게 될까?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미국이 세계패권을 상실하는 계기가 될 확률이 높다. 미국은 자신의 경제위기를 전세계의 경제위기로 전화시킨다. 미국은 그런 방법으로 자신이 입는 타격을 줄여왔다. 2008년 당시에도 사고는 미국이 쳤지만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은 유럽과 일본이었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금융이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겪은 심각함 정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과 금융이 긴밀하게 연관된 나라들은 심각하게 피해를 입을 것이다. 당장 유럽과 일본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2008년 보다 훨씬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는 피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회복노력을 방해할 것이다.

이번 경제위기상황에서 가장 타격을 적게 입는 나라는 역설적으로 세계경제에서 소외된 나라다. 북한은 전혀 타격을 입을 것이 없다. 1929년 경제공황 때에도 소련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 결과 소련은 미국은 위협할 수 있는 패권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유럽 일본이 겪는 것 보다 훨씬 가벼운 충격을 입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금융이 연결되는 것을 극구 피해왔다. 러시아도 미국과 경제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왔다. 물론 전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적은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번 주가폭락이 경제공황으로 이어지면 세상은 변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살게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당연히 옳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미국이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힘의 균형은 서서히 중국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다. 회복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미국은 당장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끄느라고 북한핵문제는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이익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COVID-19의 또다른 특이점, 구로의 집단감염

구로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세상 일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항상 특이한 점이 발생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제일 처음 특이점이라고 주장하면서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대구의 31번 환자가 발생했을 때다. 정부와 당국은 미적미적거렸고 그 이후 신천지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다.


두번째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이점이 발생한 것은 불과 며칠전이다. 신천지보다 일반인 확진자수가 더 많이 발생했을 때다. 전혀 다른 감염의 양상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대처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쉬운 것은 감염의 양상이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사회는 신천지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데에는 이재명과 박원순 같이 이번 기회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얻어 보려고 얄팍한 짓을 한 정치인의 책임이 크다. 일반인 감염 확진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는 순간, 조금이라도 민감한 사람이었다면 앞으로 방역의 방향이 뭔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 신천지 두들겨 잡는 놀음하느라고 감염확산의 경향을 제대로 읽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신천지 뒤꽁무니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물론 그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희생양을 만들어 곤경에서 빠져 나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세번째 특이점이 발생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이제까지 정부와 당국은 3월 첫째주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예측이 무색하게 갑자기 서울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이런 성격의 집단감염은 추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금 발견된 확진자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미 감염된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 수라고 보아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제 진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 같다.

정치적 계산은 내려놓고 어떻게 방역을 해야 할지 고민부터 해보아야 할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이제까지 남의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했다. 이제 서울에서 발생했으니 자기일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실력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제까지는 특별한 일아니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앞으로는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할 상황이 된 것 같다.

COVID-19 위기관리,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대구지역의 코로나 19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당국의 발표를 보면 뭔가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듯하다. 강력하게 감염시킬 수 있는 확진자들을 입원시키지 못하고 있다. 확진자들을 입원시키는 것은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시키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입원실이 부족하다고 자가에 격리하라고 하는 것은 감염확산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방역을 포기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이제까지 몇번의 포스팅에서 했던 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31번 환자가 발생하자 마자 즉각 대구지역을 봉쇄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모든 물류와 보급을 대구로 집중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와함께 오염원 차단을 위해 중국 유학생들의 입국을 재고하라고 했다.

두번째, 대구지역에 군의관 간호장교 의무병, 특전사 의무특기 장병을 즉각 투입하라고 했다. 대구 의료진이 지치고 피로해지면 감영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의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세번째, 즉각 병상을 확보하되, 콘테이너와 같은 시설도 동원해서 입원실을 확보하라고 했다. 군대와 공공 병원과 시설을 즉각 동원해서 입원실을 확보하라고 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는 전쟁과 같이 급박한 조치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치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대통령이 조기에 종식될 것이다’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은 무섭다. 대통령이 그렇게 말을 하면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해야 하는 기관들이 움직이지 못한다. 적극적인 조치를 하면 대통령의 말을 거역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고사령관은 함부로 말을 하면 안된다. 무책임한 정치인과 책임있는 지도자의 차이는 말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에게든 그런 보고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종식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질병관리본부장은 우회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이것은 대통령이 야전사령관인 질병관리본부장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고 있으며 중간에 누가 끼어 들어서 지휘계통을 문란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중간에 끼어 드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정황상 보건복지부장관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뭔가 다른 계통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자기가 항상 여러가지 경로로 보고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보고들을 취합해서 자기 나름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번에는 그런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대구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언론을 보면 어느정도 대응방향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그중에서 확진자 중에서 중증만 입원치료하고 경증은 자가 격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향은 크게 잘못되었다. 경증환자도 전파를 한다. 환자가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중증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전파차단이 가장 중요하다.

경증환자도 절대로 자가격리하면 안된다. 대형시설을 징발하든 대형 콘테이너를 설치하던, 체육관 시설을 동원하든 확잔자는 무조건 격리시켜야 한다. 집에가면 온식구가 다 감염된다.

지금 대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의료진의 지원보다 기획과 행정능력의 지원인 듯하다. 대구시도 행정적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정부도 제대로 개입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상황을 예측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개념을 설정하고 방책을 구상하고 자원을 할당하고 지휘 감독하는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무능력이다. 그들은 위기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해야 할지 전혀 교육받지 못한 것 같다.

손발은 열심히 움직이려고 하고 있으나 머리가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머리를 질병관리본부가 해야 한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의학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기획과 행정능력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의사들 보다 오히려 일반 행정가가 전체적인 상황을 정리하는데 더 많은 훈련이 되어 있다. 전문가와 일반행정가는 각각 다루는 영역이 다르다.

군대에서는 장군을 General이라고 하면서 일반 전문가들보다 우위에 둔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서 결정을 하는 것이 일반행정가들의 역할이다. 지금같은 위기관리 상황에서는 군대의 지휘관 같은 일반행정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우한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지금 대구의 상황은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일로에 있다. 언론에서는 다음주 한주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예측의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즉 언제 고비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대구의 확진자 자가격리 조치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많다. 우한 상황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대구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행정능력의 결여다.

샌더스의 네바다 예비선거 승리와 워렌 버핏의 위선적 태도

2월 24일 민주당 네바다주 대선 예비선거에서 샌더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초반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부티지지는 뒤로 가라 앉았다. 백인 오바마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바이든이 2등으로 올라왔으나 샌더스와는 너무 격차가 많이 떨어졌다.

워렌버핏은 자신은 골수 자본주의자라고 하면서 블룸버그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폴 그루그만은 뉴욕타임즈에 자신의 샌더스를 지지한다는 기고를 발표했다. 미국의 일부언론에서는 러시아가 트럼프를 도와주기 위해 제일 손쉬운 상대인 샌더스를 지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선거판이 진흙탕인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느니 아니니 하는 것은 미국판 북풍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미국민주당 대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민주당 내부에서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 주장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자본가들을 위한 정당이다. 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조금 넓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이 봉사하는 경제적 계층은 본질적으로 자본가들이다. 월스트리트가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샌더스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하는 민주당 주류의 비난과 우려는 대부분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네바다 예비선거의 의미는 이번 민주당 대선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주류의 입김이 예비선거에 그리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미국 보통 및 하층 시민의 삶이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샌더스의 공약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의료보험과 학자금 지원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가히 살인적이다. 코로나-19 검사 한번 받으려면 400만원 가까이 내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파도 웬만하면 병원에 갈 수 없다.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으로 확산되면 미국은 재앙이다. 공공 의료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다.

샌더스가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트럼프의 지지층과 겹치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계층은 소위 러스트 벨트의 하층 백인들이다. 가난한 백인들이 국수적 경향을 띠는 것은 충분히 설명가능하다. 문제는 그동안 트럼프의 정책이 실질적으로 러스트 벨트의 백인하층민들의 삶을 별로 개선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러스트 벨트의 백인들도 점차 샌더스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번지면 미국판 ‘이게 나라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우리나라가 어떤 의료보장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지 볼 것이다.

이 와중에 워렌버핏이 블룸버그를 지원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그는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블룸버그의 지지는 그가 그동안 보였던 태도가 얼마나 위선적인 가를 보여주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금융자본가로서 어떠한 이익의 침해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와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워렌 버핏의 위선적 태도는 지금 미국이 처한 분열적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자본이익을 위해 미국이 어떻게 되든 아무 관심도 없는 욕심많은 늙은 베니스의 상인에 불과한 것이다.

샌더스는 우리식 개념으로 하면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자에 불과하다. 미국적 이념 지형속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불렸지만 그는 일은 미국이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을 막아보겠다는 지극히 개혁보수주의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서 생산수단의 사적보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정책도 추구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는 유럽적 개념에서 보면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다.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만일 그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민주당을 지지하던 월 스트리트는 모두 트럼프 쪽으로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번에 샌더스의 개혁을 하지 못하면, 미국은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다. 로마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졌다.

기생충의 모르스 부호와 가난한 사람들

영화 기생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모르스 부호’였다. 이젠 군대에서도 모르스 부호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아한 가정부 ‘문광’의 남편 ‘근세’는 지하에 숨어 살면서 모르스 부호를 보낸다. 모르스 부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박사장도 ‘근세’가 보내는 모르스 부호를 그냥 전기불이 고장나서 깜박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근세는 열심히 모르스 부호를 보낸다. 그것은 신호다. 아무리 열심히 신호를 보내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

가난한 두 가족간의 혈투가 벌어졌고 ‘근세’는 필사적으로 모르스 부로를 보낸다. 마침 스카우트 교육을 받은 박사장네 막내 아들 ‘다송’이 모르스 부호를 풀어보려고 시도를 하지만, 시도에 그치고 만다.

모르스 부호는 빈자들이 세상에 보내는 신호다. 삶의 극단에 몰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르스 부호를 내 보낸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빈자들이 보내는 신호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관심을 가지더라고 읽지 못한다. 어린 ‘다송’은 모르스 부호라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 내용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아버지 박사장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절박한 구조 신호는 무시되었다. 만일 박사장이 그 모르스 부호를 알아 차렸다면,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다. 극단에 몰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는 주로 자살이다. 생활이 어려워지니 가족 단위로 자살을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어제는 80노인이 종이박스를 수집하다고 그 안에 있던 감자 5알을 훔쳤다는 이유로 지명수배를 당하고 50만원 벌금 추징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난에 지친 중년부인이 길에서 주은 체크카드로 약 5만원어치 라면과 참치캔을 사서 아들과 함께 먹으려다 체포당하고 백 수십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자들이 보내는 신호가 도처에 널리고 널렸다.

우리사회는 고장이 났다. 빈자들이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무슨일이 생길까? 영화 기생충에서는 다소 비뚤어진 빈자들의 모반을 보여준다.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 가진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수동적인 신호는 적극적인 신호로 바뀐다. 신호가 행동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중국혐오증 그리고 공론의 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중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고 있다. 어느 사회건 외국인과 외국에 대한 혐오증이 발생하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중국에 대한 혐오증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별력을 가진 사람은 다 알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중국 굴종이나 예종(심한 말이다)으로 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초기대처에 대한 비판과 중국에 대한 정치외교적 비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중국 정부의 초기대응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의 초기 대응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최근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 책임론은 시진핑 개인을 넘어 중국의 국가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 살펴볼 것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간단한 기준을 선호한다. 아마도 구석기시대에 형성되었다는 우리 내부에 탑재된 소프트웨어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적과 아군, 흑과 백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원시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다르다.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조금 복잡해질 필요가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정부와 보건 당국의 대처가 철저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특히 비판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정부와 보건당국의 대처는 솔직히 말해 썩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일선 행정력들이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정보가 통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벌써 담당자들은 지쳐있는 것 같다. 현정부 제일의 우선순위는 방역일텐데, 대통령은 공수처 운운했다. 정치는 우선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부분을 비난한다면 옳다.

그러나 정부가 중국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출입제한을 하지 않은다고 해서 중국에 예종적이라는 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중국인들의 출입에 관한 문제로 정치인들이 나서는 것 자체도 옳지 않다. 그동안 자한당은 현정부를 중국에 굴종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한당의 이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

의사협회가 제안했다는 중국인들의 입국금지 조치도 매우 정치적으로 읽혀진다. 의사협회장이라는 사람이 수구보수적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안이 과연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정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간혹 뉴스시간에 의사들이 찔끔 찔끔 하는 이야기로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정부가 시진핑 6월 방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정부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이유가 순수한 보건정책적 관점인지 시진핑 6월 방한을 위한 것 때문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시진핑 방한때문에 중국인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면, 이것은 대통령이 탄핵받아야 할 사안이다.

WHO의 조치에 대한 비판도 언론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중국에 불리한 발표는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중국정부의 자료만 가지고 입장발표를 한다는 말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WHO는 심각한 신뢰성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신뢰의 붕괴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자초한 측면도 많다. 감염병은 방역하고 치료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모두 문제가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 협오증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중국에 대한 혐오증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순수 의료적인 관점인지 아니면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보다도 의료적 관점보다 정치외교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담론을 전개하는 시기과 장소가 틀렸다. 그런 문제는 순수하게 대외전략적 측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가가 왜곡된다. 왜곡된 평가와 기준은 결국 국민들의 손해로 되돌아 온다.

국민들도 속지 않고 살려면 적지 아니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걱정되는 것은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허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공론의 장이다. KBS는 그런 것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왜 그런 공론의 장이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공론의 장을 막아 놓은 것인가? 왜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저희들끼리 저러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렇듯이 세상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가라 앉을 것이다. 백신도 나오고 치료법도 나올 것이다. 마치 세상 끝인 것처럼 하지않아도 된다. 지금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말들의 뒤에 숨어 있는 사악한 음모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

뱉어 놓은 말들에 책임을 지지 않으니 아무말이나 다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북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 협력 절실하다.

북한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와의 관계를 모두 차단했다. 육로는 물론이고 선박 항공기의 출입도 차단했다. 북한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전염이 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전염되면 오랜기간 동안의 경제재제로 인해 치료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정부는 지금 당장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전면적인 지원을 북한에 제안해야 한다. 북한이 외부와의 접촉을 전면적으로 차단했다고 하나 바이러스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이 곤궁해지면 북한 주민들이 중국과 밀무역에 나서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염의 위험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북한은 지역과 지역의 이동도 차단했다고 한다. 호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배고픔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축한 식량과 생필품이 바닥나면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동할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북한 주민들은 과거처럼 앉아서 굶는 것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북한이 차단하더라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북한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청정지역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북한으로 침입하면 대규모 감염사태를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의료수준으로 볼 때 한번 감염되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확산될 수도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어느 정도의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외부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정부는 북한의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제의해야 한다. 북한도 우리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하면 정치적 인고려를 하지 말고 바로 수용해야 한다. 남측 정부로부터 물자를 받았다고 자존심 상해할 문제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르면 적어도 초여름까지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지속될수도 있다고 한다. 북한이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완전차단하고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몇개월을 지금과 같은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북이 싸우고 반목할 시간은 많다. 그러나 서로 협조하여 인민의 삶을 지켜나갈 시간은 별로 없다. 북측 당국이 남측의 도움을 거부하여 전염병이 확산되거나, 우리 정부가 북한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

정치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남북 양측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방역을 위한 협력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

영남반동, 호남반동, 시민단체 반동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낸 세대가 군부독재보다 저열한 독재의 압잡이가 되어가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같은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리게 만든 제1의 책임은 황교안과 나경원에게 있다. 학교다닐때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라도 있는 것 처럼 자한당은 오로지 투쟁 일변도로 일관하다가 더민당에게 말려들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도록 만들었다. 만일 당시에 다른 야당과 긴밀한 협의를 하면서 더민당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전략에서 실패했다. 전략의 실패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능력한 자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을 사춘기 청소년 처럼 폭발하도록 만든 것은 광화문의 열기와 영남의 반동적 지지 때문이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박근혜를 탄핵했으면서 탄핵에 머물러 있던 영남의 반동적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열한 독재의 아가리’를 벌려주는데 일조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의 무능력을 발휘하고도 저렇게 남아 있는 것은 확실하게 정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사태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호남의 반동성에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조국과 유재수, 그리고 송철호의 행위는 올바른 시민적 삶을 왜곡하고, 국민의 삶을 유린했을 뿐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행위를 영웅담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일조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국의 행위는 영웅담이 아니고 저잣거리의 ‘기타잡범’의 행태와 견주어도 매우 비열하고 악랄한 수준의 범죄다. 죄질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잘 보아 주려고 해도 ‘기타잡범’의 수준밖에 안되는 조국을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만들어 가는데 가장 기여한 것은 호남이다.

호남은 문재인 정권이 내준 압잡이 자리에 취해 김대중이래 정신적으로 우월감을 지니고 있던 진보적 가치를 서슴없이 시궁창에 던져 버리고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영남보다 더한층 반동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영남이야 원래 보수적인 동네니 조금만 움직이면 반동화된다.

호남은 원래 진보였다. 이상한 것은 호남이 이번 정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반대에 있는 반동의 영역에 서슴없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호남이 영남보다 더 반동화되었다. 영남이 저러고 있는 것은 그래도 박정희와 박근혜의 향수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해 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전에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반동적 상황에 머물고 있다.

호남의 반동적 상황은 영남의 반동적 상황보다 한층 더 저열하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를 하면서 주어지는 조그만 떡 고물에 취해서 반동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동안 지향했던 진보적 가치를 헌신짝 처럼 내 던져버리고 시궁창에 떨어진 엿조각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이다.

호남이 제정신을 차렸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시궁창의 떡고물을 찾아 헤매기 보다는 김대중의 정신과 5.18의 정신을 고양시켰어야 했다. 지금은 지하의 김대중과 5.18 영령들이 땅을치고 통곡할 상황이다.

영남은 자기연민에 빠져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 호남은 떡고물을 찾아 스스로 반동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점에서 영남보다 더 저열한 반동의 길을 가고 있다.

진보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한다. 보수는 가치보다 이익을 더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호남은 완전하게 반동화되고 말았다. 반동화된 것은 호남뿐이 아니다. 참여연대와 민변, 우리법연구회 같은 과거 진보적 시민단체와 직능단체들도 예외없이 문재인 정권의 압잡이가 되면서 반동화되었다.

김경률 같은 사람이 참여연대를 박차고 나온 것이 그들이 얼마나 반동화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양승태를 적폐라고 고발하던 양심적 판사들이 대거 더민당의 품에 안겨 총선에 출마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심이란 아무때나 유리할 때 엿바꿔먹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일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의 본성은 변한다. 개혁도 그렇다. 이승만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대구였다. 박정희와 전두환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광주였다. 문재인 때 가장 개혁적인 지역은 서울이 될 것같다. 기득권에 포섭되면 바로 반동으로 변한다. 그래서 항상 경계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경계선은 수도권이다. 영남과 호남은 기득권 반동일 뿐이다.

진중권은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를 찍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더민주만 안찍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있는 한 자한당도 찍으면 안된다. 실패한 자들을 지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민주도 안찍고 자한당도 안찍으면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하나 ? 정의당 ? 그들은 더민당보다 더 나쁘다.

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인가 ?

성경에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라’고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필요한 이유는 어둠과 세균 그리고 곰팡이 때문일 것이다. 빛은 강해질수록 어둠은 더 짙어진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세균과 곰팡이들이 판을 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누가 빛인지 어둠인지, 누가 소금이고 누가 곰팡이 덩어리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누가 빛이며 누가어둠인지, 누가 소금인지 누가 세균 곰팡이 덩어리인지 알 수 있다.

검찰은 소금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검찰이 그동안 비판을 받은 것은 소금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금의 짠맛은 한결같아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어떤 때는 짜다가 어떤 때는 맹물이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왜 소금이 한결같이 맹물같지않고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서초동이나 광화문 모두 비슷하다. 소금이 왜 짜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항상 소금의 짠맛을 지켰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집권 초중반까지는 항상 정권을 위한 맹물역할을 하다가 정권이 힘을 잃을 때가 되면 짠맛을 냈다. 검찰개혁은 소금이 항상 짠맛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짠맛 싱거운맛을 조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소금의 짠 맛을 없애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소금이 짠 맛을 잃어 버리면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이 판을 친다.

윤석렬의 검찰이 문재인 집권초기부터 권부에 대해 짠맛을 뿌렸으면 조국도 사모펀드가지고 장난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재수와 송철호 같은 사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이 일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소금이 짠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소금을 상처에 뿌리면 쓰리다. 아프고 쓰리면 비명을 지른다. 지금 누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가 ?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어지는 법이다. 지금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일까 ? 윤석력의 검찰이 빛인가 어둠인가 ? 조국일가, 송병기, 송철호, 백원우가 빛인가 어둠인가 ? 소금이 뿌려졌을 때 비명을 지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세균 곰팡이 덩어리다.

빛이 그 밝음을 잃어 버리면 어둠과 빛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지금 빛에게서 그 밝음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 빛을 흐리게 하는 자들은 절대로 빛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의 자식일 뿐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을 찬양해야한다. 어둠과 세균 곰팡이 덩어리를 찬미할 수는 없다. 물론 때에 따라 밝음을 잃어 버리는 빛과 짠 맛을 잃어 버리는 소금을 찬미해서도 안된다. 세균과 곰팡이 덩어리들은 빛과 어둠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곳에서 더 창궐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