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죽음

며칠동안 혼미한 상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책도 읽히지 않고 글도 써지지 않는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만 든다. 세월호가 가라 앉는 장면을 TV로 보았을 때 보다 더 힘든 것 같다. 한달넘게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은 나지 않는데 힘은 더 든다.

세월호 때는 분노했다. 정인이의 죽음을 들으면서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노보다 실망이 더 앞선다. 애써 정인이에 관한 뉴스를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 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세월호때는 어른들의 실수와 잘못으로 아이들이 죽었다. 정인이는 악마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 고의로 죽였다.

많은 죽음을 보았다.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것도 대량으로 많이 죽이는 것이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죽어야 하지 않는 죽음은 슬프게 만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죽음이었다. 아무죄도 없이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 어린 것이 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정인이의 죽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종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다. 한국사람들은 우리가 싫어하는 일본인들보다 훨씬 종자가 나쁜 것 같다.

한국인들은 인간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유래없이 동족을 노예로 삼았다. 세계에 여러 민족들이 있지만 자기 동족을 노예로 만든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부분 전쟁포로를 노예로 만들거나 다른 곳에 가서 노예를 포획한다. 우리나라만 동족을 노예로 만들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발싸개만큼도 여기지 않는 이유는 자기동족을 노예로 삼았던 전력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민이 죽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김태균의 죽음이 그랬고 구의역 김군의 죽음이 그랬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있으나 마나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역사의 유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못한 자들, 나보다 돈이 없는 자들, 힘이 없는 자들은 언제든지 짓밟아도 되는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고서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

우리 모두는 지구에서 가장 못된 종자인 것 같다. 돈만 있으면 뭐하나 ? 인간이 아닌데…

북한의 제8차 당대회 인사를 보고

제8차 당대회를 통해 몇가지 주목할만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첫번째 핵능력 강화다. 두번째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남한이 북한에게 약속을 지키는 것이 관계회복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세번째 인사가 있었다. 김여정과 최선희가 강등되었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숫한 전망들이 있었으나 제대로 된 것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북한 고위직에 있다가 탈북한 사람들의 전망도 엉터리였다. 그만큼 북한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김여정과 최선희가 강등된 것은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거나 성과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저 북한이 향후 정국운영에 중점을 두는 것이 조금 바뀌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번 인사를 보면서 북한이 대외정책분야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대부분의 전망이 틀린 것은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평가라기 보다는 희망과 기대가 너무 많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세상일은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북한 전문가들의 전망이 대부분 헛방을 날린 것은 있는대로가 아니라 보고자 하는대로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문제에 대해 무슨 전문가라는 것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저 건전한 상식과 논리적인 추론 능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김여정이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내려온 것은 그녀의 위상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왕족에게 직책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최선희가 당중앙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떨어졌다. 김성남 당국제부 제1부부장이 당국제부장이 되었다.

북한이 대외정책을 담당해오던 사람들의 formation을 바꾼 것은 앞으로 어떻게 대외정책을 운영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최선희와 김성남의 기용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북한이 당분간 미국과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인정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단계별 접근이니 뭐니 하지만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완성한 입장에서 완전한 핵무기 보유국가로의 인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최선희의 강등은 북한이 미국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그널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하자면 상당기간 지금과 같은 제재국면은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제재를 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의 입장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비난을 하지 않은 것은 남한은 그냥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남한이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강압을 하기 보다는 일정한 여지를 줌으로써 미국과 남한의 관계를 벌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비교적 여유있는 입장을 취한 것은 일종의 자신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제8차 당대회에서 북한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아직 제8차 당대회 이후 북한의 인사에 대해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아마도 경제분야 인사들이 조금 더 진출하지 않았을까 예측해 본다.

<수구>와 <극우>를 넘어서

문재인 정권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남은 기간도 별로 없거니와 그들에게서 희망을 바라기 어렵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반성과 고민이 없으면 우리는 시계추 처럼 이러저리 왔다갔다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문재인 이후의 대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까지 대안을 사람에게서 찾았다. 사람을 대안으로 삼은 대가는 참혹했다. 정의와 공정을 기대했던 문재인 정권은 노태우 이후 어떤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파시즘적 현상을 보였다. 문재인 정권이 보여준 파시즘적 현상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막장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는 노동정책, 부의재분배, 안보문제, 의료문제, 교육문제, 원자력 문제 등 심도깊게 논의되어야 할 사안에 대한 정당과 정치인들의 구체적인 입장과 철학에 무관심했다.

그냥 그때 그때 분위기에 따라 이사람 저사람을 전전했다. 경제가 문제된다고 하니까 이명박을 뽑았고 어영부영 박근혜를 뽑았다. 촛불혁명이후 어떤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문재인을 뽑았다. 프랑스 68혁명이 토론의 혁명이었다면 촛불혁명은 단순한 봉기에 불과했다.

권력을 잡은 문재인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권력을 붙들고 얼떨떨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자기 확신이 없다보니 이미 죽어버린 정치세력과 싸우다 시간을 다 보냈다. 죽어버린 정치세력을 오히려 부활시켜준 결과가 되었다. 혁명적 변화를 이루지 못한 정치변동을 혁명이라고 하지 않는다. 촛불혁명은 혁명적 사회변화를 동반하지 못했다.

우리는 정권만 바꾸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문재인과 <더불어 민주당>은 급격하게 수구보수로 방향을 바꾸었다. 촛불혁명이후 우리사회의 병폐들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갑자기 떨어진 권력으로 마음껏 해드셨고 이제는 정신이 들어 잡혀갈 걱정을 한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은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어떻게든 덮어 보겠다는 마지막 몸부림에 불과하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역사를 다시 <극우세력>의 손으로 되돌려 놓을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며칠 한국사회와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그 이유는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가면서 다시 <극우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진보정치세력은 없다. 자신들이 보수라고 하는 <국민의 힘>은 <극우세력>이며, 스스로 진보라고 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수구보수>에 불과하다. <정의당>은 제1차세계대전 당시 조국수호를 외치면 전쟁에 뛰어들었던 독일과 프랑스의 사회주의 세력과 비슷한 기회주의자들이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사회주의 세력은 자신들의 윤택한 생활이 식민지 착취로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에 찬성했다. 오늘날 한국의 <정의당>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속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1차세계대전 당시 서구의 사회주의 세력들의 멘탈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분별력이 아닌가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수구보수를 버리고 <국민의 힘>이라는 <극우세력>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한다고 해서 <극우세력>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을 비난하면 극우세력들이 좋아한다. 착각은 자유다. 수구보수를 비난하는 것이지 극우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한국사회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개혁적 보수>다. 지금처럼 해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수구>거나 <극우>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노예

이념의 노예라고 할때 이념은 통상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다.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왜 사회주의는 실패했을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했다는 것이 자본주의가 정당하고 옳다는 말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수탈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옳지 못하다. 돈이 인간보다 중요한 세상을 어떻게 정상적이라고 하겠는가 ?

사회주의가 이념적으로 강고해진 것은 자본주의체제의 기득권을 척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강고하겠는가 ? 기존에 존재하는 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하니 혁명을 위한 강력한 이념이 필요했을 뿐이다.

무릇 이념이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항상 문제를 초래한다. 사회주의에서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이념은 매우 강력한 이념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단순하게 가장 현실적 체제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자본의 자유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이 국가운영의 중심이 되는 체제와 이념을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

자본이 중심이란 말은 자본가들의 이익이 국가운영의 최우선이 된다는 뜻이다. 개인의 사상과 인신의 자유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적 자유는 자본의 자유가 보장되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인간의 본래 모습에 가장 부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1500년대 부터 시작되었다.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고 잘먹고 잘 살려고 하는 이기심 자체를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가 생존하는 것이 자본주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을 자본주의라고 한다면 산에 도토리를 묻어 놓고 겨울에 먹으려고 하는 다람쥐도 자본주의자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6-700년 정도 되었다.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졌다. 오늘날 한국은 냉전의 산물이다. 그러다 보니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 고착이 너무 심하다. 한국에서 문제는 사회주의적 이념에 고착된 사람들보다 자본주의 이념에 고착된 사람들의 폐혜가 더 심하다.

인민민주주의가 사회주의를 나타낸다면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이념을 나타내는 용어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사실상 같은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좋은데 자본주의는 나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이념의 노예나 자본주의 이념의 노예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의 삶, 사회 정치적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자유민주주의냐 인민민주주의냐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 공리민복에 기여하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 인간 공동체의 삶에 유익한가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 이념이 옳으냐 자본주의 이념이 옳으냐로 싸우는 것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노동자들이 일년에 2000명 넘게 사고로 죽어간다.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가장이다. 그들이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사회는 망해야 한다. 존재할 이유가 없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면 그는 악덕 자본주의자다. 그는 악덕 자유민주주의자다.

국민의 50%이상이 절대빈곤층이고 인구 10%가 국가부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도 망해야 하는 국가이며 사회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을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나 국가는 망해야 한다.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한 오늘날 혁명적 이념으로 무장하여 자본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정신병자일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가 지고지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념의 노예이긴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이념이 붕괴된 지금, 정말 우리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은 옹고집 자유민주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사상과 이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억압과 강요된 가난으로부터 고통받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음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에 무관심하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체제가 무너진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자고 하면 눈이 벌게가지고 사회주의니 뭐니 하면서 몰아붙이는 자들이 진정 이념의 노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노예 말이다. 사회주의 이념의 노예나 자본주의 이념의 노예나 나쁘기는 둘다 마찬가지다.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이 공동운명체인 이유

역사는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한다. 소련이 없었더라면 제2차세계대전이후 식민지해방은 어려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식민지들이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의 영향이 컸다. 소련이 아니었다면 제2차세계대전이후의 세계는 제1차세계대전이후의 세계와 크게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에도 세계는 여전히 제국주의지배하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에도 다시 제국주의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영국이 이집트를, 프랑스가 베트남을 다시 점령하고자 했다. 모두 소련의 간섭에의해 무력화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이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 대우가 비교적 좋아졌다. 소련 덕분이다. 노동자들에 함부로 하다가는 국가가 공산화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이후 미국의 중산층이 가장 많았고 부유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작용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사라지면서 세계 노동자들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한국전쟁이후 북한의 존재는 남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시대에 경제개발을 위해 노동탄압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회유하기 위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과 같은 제도적 마련을 했던 것은 순전히 북한 때문이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경직되어 있고 극단적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런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전에 한국의 자본가들의 성장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동운동이 극단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몫을 내놓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희생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경직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한국의 사업가들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했기 때문이다. 자본 형성의 초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 어느정도 살만큼 되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면 달라져야 한다.

만일 한국의 사업가들, 기득권들이 지금처럼 계속 노동자들과 대중을 착취하려고 하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기득권들은 황금의 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 처지가 극단적으로 어려워진 것은 IMF 이후다. IMF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대중의 처지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진보 정치인인 김대중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상황과 함께 북한의 처지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중반이후 북한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북한은 무시해도 되는 존재였다. 남한내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무시당한 노동자들이 굶어죽어가는 시체가 즐비했던 북한을 동경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었다. 김정은이 제8차 당대회를 소집했다. 북한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완전하게 자주국방을 달성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미국 아니라 미국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한반도에서 재래식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 미국이 뉴욕과 워싱턴이 핵무기로 사라지는 위험을 각오하고 북한과 전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살지 못하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의 빈부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면, 남한내부의 동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남한이 지금과 같은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적 번영을 계속하려면 노동자들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해서는 안된다. 노동자들이 하루에 7-8명씩 일하다가 죽어가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들의 절반이상이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면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좀 더 있으면 남한보다 북한에가서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남한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니면 국가경제가 유지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편향된 교육의 결과다. 역사상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자본주의체제가 아니라도 그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살았던 역사는 있었다.

문재인에게 희망을 완전하게 접은 것은 그가 남북간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 였다. 내가 보기에 남북간 체제경쟁은 지금부터다. 우리가 총액기준으로 북한보다 비교할 수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부의 불균형이 계속되고 더 심화되면 노동대중의 질적인 삶은 북한 주민들보다 훨씬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가진자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를 자신들의 능력 덕분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런 착각 때문에 노동자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 대중의 마음이 무너지면 모두 다 무너진다.

북한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기득권자들이 지금과 같은 오만을 버려야 한다. 난 지금의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없이 무임승차하면 쫓겨나야 한다.

남한의 노동자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려면 북한이 성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려면 북한이 더 잘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의사당 점령,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다.

현대 민주주의의 본산인 미국 국회의사당이 폭도들에게 점령되었다.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모두들 입을 모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미국에서 발생한 사태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만 하면 문제는 매우 간단하고 단순해진다. 그저 불법 무도한 폭도들이 의사당에 진입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무식하고 배운 것 없어서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그냥 정해진 질서와 규정을 착실하게 지키는 것일까? 정해진 질서와 규정을 착실하게 잘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체제가 요구하는 덕목이다.

민주주의는 순종과 복종 그리고 질서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이순간 국회의사당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요구하며 단식하고 있는 김용균의 어머니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도다.

민주주의는 반항과 저항, 대규모 스트라이크와 데모를 의미한다. 정치적 시위, 반항이 불가능하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민주주의와 독재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기준은 저항과 반항이다. 저항과 반항이 가능하면 민주주의고 저항과 반항이 불가능하면 독재다.

미국의 의사당 점령은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사당 점령자체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미국은 민주주의라기 보다 과두정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투표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미국의 국가운영방식은 전형적인 과두정이라고 할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가진자들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미국 의사당 점령을 단순하게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규정하는 순간, 소위 폭도들이 의사당을 점령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다. 트럼프가 폭도들을 선동했다고 한다. 그것은 문제의 핵심을 왜곡시킨다. 우리는 왜 트럼프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트럼프는 몰락하는 중하층 백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국내 삶의 질을 점차 악화되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소위 미국의 금융자본은 역대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중하층 백인계층은 하층계급으로 추락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트럼프는 하층계급으로 내몰리는 백인 중하층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정치인일 뿐이다. 의사당을 점령한 그들은 하층계급으로 내몰리는 위기상황에 대한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행동을 단순하게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들의 폭력적인 행동뒤에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미국의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주류들은 자신의 재산을 더 늘리기 위해 자본주의체제가 위기에 빠지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세상에 어떤 질서와 체제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자본주의도 시대적 변화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후퇴한다. 자본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길로틴으로 보내는 짓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큰 걱정없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지 못하는 체제는 존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존속되어서도 안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개혁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지금 미국의 자본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위기에 처해있다. 부자들은 재산이 많아서 감당을 하지 못한다. 반면 도시에는 노숙자가 널려있다. 이런 사회가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백인 중하층민들은 자신들이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미국 자본주의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부를 재분배하는 방법 밖에 없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자본주의는 선이 아니라 악이다. 존속가능하지 않다. 돈이 없다고 계속 사지로 내몰리는 체제는 없어지는 것이 옳다. 그러지 않으려면 자본주의도 변해야 한다.

미국의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이제 자본주의 체제를 죽이는 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의사당에 난입한 폭도들은 미국이 처한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다.

19세기의 자본주의 개념을 21세기까지 고수하고 있으니 세상이 조용할리가 있나?

북한을 보는 눈, 같은 사실, 다른 해석

북한이 제8차 당대회를 시작했다. 제8차 당대회에서 어떤 문제가 논의되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발표된 내용을 보면 김정은이 경제실패를 자책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항상 그렇듯이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 언론들은 북한에 대한 편향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보니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전체적으로 북한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으니 문제다라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

나는 김정은의 발언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김정은이 경제정책에서 실패했다고 자인하고 내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자신감의 발로다. 제일먼저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정책의 실패는 권력의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북한을 일반적인 사회주의 체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사실을 모를리 없는 김정은이 경제정책의 실패를 공공연하게 밝힌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확고하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아도 역대 대통령중에서 정책실패를 자인한 경우가 있었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역대 어떤 정권보다 부동산 문제에 실패한 문재인도 절대로 사과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정은의 자신감은 권력의 장악과 함께 차후 경제문제를 다루어나감에 있어서도 자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공개적으로 경제정책의 실패를 자인했으니 앞으로의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경제문제는 자신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될 지는 좀 더 두고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핵무기와 보복능력의 완성으로 북한은 안보문제는 완전하게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한 안보를 바탕으로 앞으로 모든 역량을 경제발전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앞으로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북한은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우리는 개방경제체제라서 북한의 자급자족식 경제체제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폐쇄적인 체제였던 소련이 1930년대에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했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경제발전을 이루어나갈 것인가 살펴보는 데 이해의 실마리를 주지 않나 생각한다.

소련의 1930년대 경제발전은 너무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 다가오는 제2차세계대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비상시의 상황은 소련의 사회주의 발전방향을 한정적으로 고착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북한은 그런 측면에서 소련보다 훨씬 여건이 좋다. 안보문제를 해결했으니 향후 경제발전의 경로를 안정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김정은의 경제정책 실패 시인을 혹시 어떤 이들은 앞으로 북한이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까 걱정이 되어 글을 올린다.

북한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대한 해석에 따라 우리의 대북정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문제 평가의 제일 첫째 고려사항은 나에게 유리하게 사물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나쁜 족속들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 적폐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세웠다.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3년반이 지난 지금 그때의 뜨거운 기대와 열망은 쓰라린 자책과 차가운 냉소로 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죽쒀서 개준 꼴이 되어 버렸다. 혁명이후 권력을 잡은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혁명을 팔아먹었다.

혁명으로 들어선 자들이 혁명이전의 적폐보다 더 질이 나쁜 자들이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누구에 치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이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는 것은 그래서 어리석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은 믿으면 안된다. 권력을 가진자들은 어떤 일을 할 지 모른다. 그래서 감시를 잘 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말도 안되는 상황은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시대는 가고 있다. 새로운 인물들이 떠오른다. 수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에 함몰되어 있다. 그래서 레닌의 팜플릿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 제목만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윤석열과 이재명, 이낙연의 지지도가 뉴스거리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전혀 모른다. 부의 불균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 노동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 남북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 아무것도 모른다.

이재명과 이낙연은 대중에게 많이 노출된 사람이지만 그가 어떤 정책과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지 제대로 알 지 못한다. 그들의 모습이란 아주 단편적으로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문재인도 조작된 이미지로 지금까지 대통령을 해왔다. 이제 본모습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래서 윤석열이 그리고 이재명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어리석다. 윤석열과 이재명 그리고 이낙연 중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지금의 상황보다 나아지기 어렵다. 그들 역시 자본에 봉사하는 충실한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대의정치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은 절대로 우리의 의사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공천해준 자들의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겉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거대한 사기극에 불과하다.

대중들은 사기짓에 쉽게 놀아난다. 문재인이 쇼통을 하는 것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에 분노하면서 다시 새로운 인물을 바라보는 것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중대재해처벌완화법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은 대중과 서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사람이나 정당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중대재해처벌완화법에 동의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 당 모두 서민과 노동자가 아니라 재벌과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정의당>은 방조자. 방조자가 더 나쁜 족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쁜 족속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지 못하면 우리는 쓰레기 신세를 면키 어렵다.

선과 악, 이익과 손해 사이, 삼성문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측이 악마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보통 나쁜 것들은 스스로 좋은 것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최악의 악마는 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선인줄 알고 따라갔는데 그것이 악마였던 경우가 적지않다.

스스로 지고지순한 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는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악일 경우를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가 옳은 길이라고 확신했던 많은 것들이 옳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리가 믿고 따랐던 지도자들이 우리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다. 우리가 정말 옳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옳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확신이란 그래서 어리석은 자들의 전유물인지 모르겠다.

종교에서는 선과 악이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겠지만 현실에서는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인지가 중요하다. 종교적 선과 악의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적 삶의 영역에서 이익과 손해의 기준을 따지는 것은 쉽지 않다.

종교와 달리 현실에서는 누구에게 이익이며 손해인가 하는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가진자의 이익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이익은 서로 정반대의 입장이다. 가진자의 이익이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몫을 빼앗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평불만을 악으로 규정한다. 냉철한 이익과 손해의 영역이 되어야 할 정치에 동원되는 선과 악의 가치관은 대부분 가진자들이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도구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기를 쓰고 비난하는 많은 것들 속에는 우리가 확보해야할 이익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악마화하는 사이에 우리의 이익이 사라저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북한을 악마화하며서 북한과 함께 경제적 번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일본을 악마화하면서 일본과 함께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삼성을 악마화하면 우리의 경제적 성취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없으면 대한민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삼성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많이 나쁜짓을 했다. 이재용에게 9년 징역이 선고되는 것을 보면서 속이 시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재용에게서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는 알 수 없다. 혹시라도 삼성전자가 휘청하면 우리 경제는 타격을 입는다. 이재용을 감옥에 집어 넣은 것을 당연한 선의 구현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에 눈독드리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삼성이 그동안 해온 나쁜 짓을 그냥 방관하고 묵과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않된다. 삼성이 주인없는 회사가 되어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삼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가차없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모두에 선과 악, 이익과 손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그러나 비난이 무섭다고 해서 닥쳐올 수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모른척 회피해서는 안된다. 비난이 두려워 리스크 관리를 회피하면 아무런 대책없이 태풍속으로 들어가는 일엽편주와 마찬가지가 된다. 나의 운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와 부동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삼성이 휘청하면 코로나와 부동산 가격상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쓰나미가 몰려올 수도 있다.

켐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사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한 추가적인 논의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것은 다루는 사안의 우선순위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제일 마지막으로 우선순서가 밀린다. 가장 쓸데 없는 일들에 모두 목을 메고 있다. 경중완급에 대한 기준이 다른 것이다.

문재인은 자신의 이미지 관리가 국가 경영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다. 그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윤석열이 대안일까?

국가 경영의 양대 축은 안보와 경제다. 전직대통령 사면으로 시끄럽지만 대통령의 국가경영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지금의 전직대통령 사면은 국민통합이라는 원래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야당을 흔들기 위한 일종의 꼼수이거나 차후 문재인이 감방에 가게 될때를 대비하기 위한 전례를 만들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윤석열이 갑자기 강력한 대선후보로 등장하면서 때이른 정치바람이 우리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에게 기대했던 것은 어떤 경우이든 가리지 않고 공정하고 정당한 법집행을 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본격적인 대선후보로 등장하게 되면 그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질 것이다. 권력에 맞선다는 반항정신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 준비안된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이 가장 많이 지지를 받는 지금의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윤석열의 검찰이 공정한 법집행을 통해 거악을 척결하는 것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러나 그가 국가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국가지도자의 능력과 훌륭한 검사의 능력은 다르다. 훌륭한 검사가 최악의 국가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윤석열 현상을 기존의 정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당은 대안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국민의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국민들은 코로나와 부동산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그런 국민의 고통과 동떨어진 검찰과의 싸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불쌍하다. 국정을 책임진 문재인과 여당은 자신들의 안위문제에 허덕거리느라고 국민들의 삶을 도외시하고 있으며, 야당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국민들이 윤석열을 다음 대선 후보로 생각하는 오늘의 현실은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진정 대안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