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코로나-19 상황, 지금처럼 하면 안된다.

대구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지역감염 수준으로 접어들었다. 31번 확진자는 자기가 어디서 감염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자체로도 심각한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염을 시켰다. 아마 지금 상황이라면 정상적인 역학조사도 어려울 것 같다. 동시에 이렇게 사건이 발생하면 통상적인 조치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즉각 대구시 전체를 격리하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통상적인 대응으로 조치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통상적인 대응으로 조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제 본격적인 전파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대구시 전체를 통제하면 어마어마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확산을 방지하지 못하면 그 이후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부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방법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이제까지 정부와 보건당국이 조치하는 과정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장이 너무 많이 TV에 나온다. 질병관리본부장은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하는데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TV까지 나와서 인터뷰를 하고 설명을 한다. TV에 나오려면 상황판단과 조치에 관계없는 잡다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왜 이런 상황에서 계속 질병관리본부장을 앞에 내세우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것은 보건복지부장관이나 해당 정책 담당자들이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옳다. 전쟁을 하는데 전선에 있는 사령관에게 전황브리핑 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청와대의 대응도 미흡한 듯 하다. 위기관리실이 사건초기부터 개입했어야 했다. 그런데 청와대 안보실도 꽁무니를 빼는 것 같다. 괜히 달려들었다가 덤튀기 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런 문제는 청와대에서 직접 개입해야 한다. 당연히 군의무 계통을 동원하기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화생방사령부가 조치할 사항도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보이지 않은 것 같다. 보도에 나오지 않는 것인지 아무런 조치도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구를 봉쇄하면 어마어마한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비난을 받더라도 초기에 감염전파를 통제할 수 있으면 문제가 안된다. 만일 초기에 단호한 결심을 하지 못해 전파가 확산되면 제대로 사태를 장악하지 못한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

선거도 중요하지만, 이번 사태를 제대로 막지못하면 집권여당의 선거는 날라가는 수 있다. 이미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총리나 장관등 책임지고 조치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질병관리본부장 한사람에게 모두 맡겨 놓고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면 안된다. 어려울수록 책임지겠다고 앞으로 나와야 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사람을 잘못 뽑았다.

지금 북한핵문제, 미국이 협상팀을 해체하다시피한 이유

미국 대선과 우리 총선 때문에 북핵문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 들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북핵문제에 대한 관심의 정도는 현격하게 떨어졌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분위기 모르고 도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고집불통이라고 하더라도 코로나-19문제로 모두 정신없는데 도발하면 어떤 욕을 먹을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북핵문제도 사람이 살아가는 절박함 앞에서는 그 힘을 잃어 버리는 것 같다. 코로나-19문제로 끝이 있는 법이고 보면, 북핵문제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최근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응방식이 조금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크게 두가지 정도 눈에 띈다. 첫번째는 북핵협상팀을 거의 해체하다 시피했다. 두번째는 사드의 성능 개량과 추가배치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핵협상팀을 거의 해체하다시피하니 언론은 미국이 북핵문제에 대한 대화의 필요성을 재고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설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핵문제는 미국이 관심을 멀리하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면 전세계는 시끄러워진다. 미국이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화에 소극적인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더 이상 대화를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다 확보한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핵을 제거하는 협상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북한핵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협상팀을 해체하다시피한 것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사드 성능을 개량한다는 것은 북한핵을 대화로 해결하기 어려우니 방어적인 능력을 최대한 강구해야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차에 걸쳐 언급했지만 사드문제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북한핵을 핑계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이다. 두번째는 어차피 사드성능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록히드 마틴을 위시한 군산복합체들이 한몫을 보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한핵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드 추가배치나 성능개량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

우리는 미국과 중국사이에 끼어서 어마어마한 압력을 받을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도 쉽지 않아진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미국편을 꼭 붙는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물론 중국편에 붙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압박은 심해질 것이다. 6월 시진핑의 방한은 우리에게 또다른 어려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태섭의 당내경선 결정,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다.

<이글을 작성하고 나서 뉴스에 김남국 변호사가 출마를 하지 않는다는 속보가 올라왔다. 그래서 다행이 민주당이 제대로 작동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글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순간 다시 속보가 올라왔다. 김남국 변호사가 출마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친문일파와 민주당내 합리적인 세력간 갈등이 있었고, 처음에는 합리주의 세력들의 입김이 강했으나 나중에 다시 친문일파가 다시 역공에 성공한 것 같다.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래는 조금전에 작성한 글이다. 다시 올린다.>

<아래 글에서 잘못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공직선거법 제57조 2항은 당내 경선에 참여한 예비후보자들은 경선 탈락 후 같은 선거구에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금태섭은 의원총회에서 김남국이 경선에 참가하면 바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가겠다고 했을 수도 있겠다. 아래글은 그런 내용을 감안하고 읽으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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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에 김남국 변호사가 민주당 당내 경선에 참가할 예정이라 한다. 조국 백서 저자중 한 사람인 김남국 변호사가 이번 당내 경선 참가경위가 석연치 않다. 정봉주가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되자 친문세력들이 급조하여 김남국을 금태섭 대항마로 내세운 것 같다. 친문세력들이 총결집하여 금태섭을 경선에서 떨어뜨리려고 하는 모양이다. 분위기가 그렇다면 금태섭은 당내 경선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떼를 지어 달려들면 천하의 금태섭도 속수 무책일 수 밖에 없다. 

만일 친문세력들이 금태섭을 떨어 뜨리면 어떤 일이 생길까? 금태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가지 정도일 것이다. 당내 경선에 승복하고 출마를 포기하는 것, 두번째는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다. 다른 당으로 가는 것은 금태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출마를 포기하는 것은 정치를 그만 두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금태섭이 경선에서 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금태섭은 친문세력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가운데 그나마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죽은 것이다. 그런점에서 금태섭은 민주당이 당연히 지켜야 사람이다. 금태섭이 탈락하면 민주당은 “민주당 빼고”의 제2탄에 시달리게 될 지 모른다. 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총선은 심각한 결과에 초래할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생각하더라도 금태섭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된다. 민주당 지지세력은 조국을 지지하는 사람과 조국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어졌다. 선거는 표를 많이 받아야 되는 게임이다. 금태섭을 축출하면 그래도 아직 민주당에 연민의 정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은 완전하게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금태섭이 공천을 받느냐 아니냐는 앞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친문세력위주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흘러가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항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소중하다. 금태섭은 민주당에서 더할 나위없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내치는 민주당은 총선승리고 정권창출이고 아무런 관심이 없는 친문세력의 놀이터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친문세력들은 자신들끼리 옥쇄라도 하겠다는 심사인 듯 한다. 이제까지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런 희얀한 정치세력은 없었다. 

금태섭이 당내 경선에서 탈락하면 어떤 길을 걸을까? 그냥 포기할까? 만일 포기하면 더 이상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포기할 이유가 별로 없다. 당연히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다. 지금은 민주당과 자한당의 양당구조가 견고한 듯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민주당에 실망하고 자한당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갑자기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었다. 지난 총선에서 갑자기 국민의당 바람이 강력하게 불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 총선에서도 양당 체제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제3당을 만들었다. 이번에 금태섭이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그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안철수가 국민의당을 붕괴시키고 보수화되는 길을 걸어가면서 제3당 실험은 실패했다. 그때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양당체제로 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성급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오히려 제3시대가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 모른다. 그렇다면 금태섭이 무소속으로 나오더라도 승산이 없지 않을 것이다. 

금태섭의 당내 경선은 경우에 따라서 민주당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자꾸 만들가는 민주당 지도부는 상황 파악능력이 떨어진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지금 분위기는 예상과 달리 민주당이 매우 어려운 듯하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행동했던 민주당이 이제는 추락하는 분위기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추락하기 전에는 강력하게 보이지만 한번 추락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막아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항상 추락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법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추락하고 있다. 알고 있어도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기생충의 모르스 부호와 가난한 사람들

영화 기생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모르스 부호’였다. 이젠 군대에서도 모르스 부호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아한 가정부 ‘문광’의 남편 ‘근세’는 지하에 숨어 살면서 모르스 부호를 보낸다. 모르스 부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박사장도 ‘근세’가 보내는 모르스 부호를 그냥 전기불이 고장나서 깜박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근세는 열심히 모르스 부호를 보낸다. 그것은 신호다. 아무리 열심히 신호를 보내도 아무도 읽지 않는다.

가난한 두 가족간의 혈투가 벌어졌고 ‘근세’는 필사적으로 모르스 부로를 보낸다. 마침 스카우트 교육을 받은 박사장네 막내 아들 ‘다송’이 모르스 부호를 풀어보려고 시도를 하지만, 시도에 그치고 만다.

모르스 부호는 빈자들이 세상에 보내는 신호다. 삶의 극단에 몰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르스 부호를 내 보낸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빈자들이 보내는 신호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관심을 가지더라고 읽지 못한다. 어린 ‘다송’은 모르스 부호라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 내용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아버지 박사장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절박한 구조 신호는 무시되었다. 만일 박사장이 그 모르스 부호를 알아 차렸다면,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도 마찬가지다. 극단에 몰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는 주로 자살이다. 생활이 어려워지니 가족 단위로 자살을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어제는 80노인이 종이박스를 수집하다고 그 안에 있던 감자 5알을 훔쳤다는 이유로 지명수배를 당하고 50만원 벌금 추징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가난에 지친 중년부인이 길에서 주은 체크카드로 약 5만원어치 라면과 참치캔을 사서 아들과 함께 먹으려다 체포당하고 백 수십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는 가난한 자들이 보내는 신호가 도처에 널리고 널렸다.

우리사회는 고장이 났다. 빈자들이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무슨일이 생길까? 영화 기생충에서는 다소 비뚤어진 빈자들의 모반을 보여준다. 가난한 자들의 싸움이 가진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수동적인 신호는 적극적인 신호로 바뀐다. 신호가 행동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프랑스의 핵과 북한의 핵

유럽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은 2월 1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유럽대륙이 프랑스의 핵우산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나토가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다며 프랑스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문제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문제가 아닌 듯하다.

프랑스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와 미국간 무역협상에서 프랑스의 농업부문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지나치게 미시적이다. 마크롱 이전의 올랑드 때부터 프랑스는 현 유럽 안보체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 유럽의 균열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 유럽은 냉전종식이후 상황에 부합하는 변화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NATO의 틀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상황의 변화는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분열과 경쟁속에서 발전해온 지역이다. 분열과 경쟁은 유럽의 역동성을 낳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전개된 냉전은 유럽을 단일 사회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물론 그런 움직임의 핵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이제 미국이 과거에 자신들이 해왔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변화는 불가피하다.

지금 유럽은 마치 제1차세계대전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듯하다.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를 적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러시아는 비스마르크 시대처럼 고립될 것을 두려워하여 프랑스나 독일과 손을 잡으려고 하는 유럽의 변방이 아니라는 점이다. 루드비히 데히오가 말했던 ‘측익강국’의 가장 강력한 전형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냉전당시에 소련은 유럽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러시아는 냉전당시보다 훨씬 강력하게 유럽내부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장 고민스러운 나라는 독일일 것이다. 경제력으로 보면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다. EU는 독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적으로 강력하다고 해도 핵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군사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지금처럼 미국제일주의를 주장하게 되면 독일은 진퇴양난에 빠질 것이다. 독일이 미국에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냥 조용하게 프랑스의 핵우산을 받아 들일까? 아니면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할까? 영국은 독일의 옵션이 되기 어렵다. 독일이 러시아와 가까이 하는 순간 유럽의 국제정치는 소용돌이 치는 용광로로 변할 수도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유럽에서 떨어져 나와 버렸다. 영국은 핵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처럼 세력균형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명예로운 고립을 향유하던 Britain은 앞으로 외로운 유럽의 변방 England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미국이 과거 영국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미국이 유럽의 맹주역할을 어느 정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패권의 약화는 내부문제에서 비롯된다. 패권국가의 사회구조가 취약해지면서 붕괴의 징후는 변방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로마가 내부에서 무너지고 게르만으로 부터 침략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도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프랑스가 핵국가로서의 역할을 천명하고 나섰다는 것은 앞으로의 미국이 과거의 미국이 아니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얼마전에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핵무장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한번 둑이 터지면 다시 원상 회복시키기 어렵다.

프랑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핵무기라는 것이 이렇게 강력한 국제정치적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이상, 국제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 유럽과 동북아는 다르고 프랑스와 북한은 다르다. 그러나 핵무기가 어떤 국제정치적 상황을 초래할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하는데는 큰 차이가 없다.

민주당 빼고, 대안을 찾아서

민주당이 정신이 없나보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 빼고’라는 말을 ‘자한당으로’라는 말로 들었던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자한당’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민주당은.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 빼고’라는 말 앞에는 당연히 ‘자한당은 절대 안되고’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시야가 좁아지면 이것 저것이 안보이는 법이다. 민주당이 심각하게 몰려 있는 모양이다.

너나 할 것없이 멘탈을 상실한 이유는, 민주당이 더 이상 진보정당이자 개혁정당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를 지나오면서 문재인 정권은 민주당은 ‘삼성’과 뭔가 모를 모종의 관계를 강력하게 맺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박근혜 정권과 자한당이 저지른 국정농단과 부정부패를 찜쪄먹는 행동을 한 기득권 세력이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다들 고민한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안철수인가? 그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참신한 때문이었다. 이미 참신함을 잃었다.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과 방향을 찾을 수 없다. 절대로 자한당하고 합치지 않는다고 하는 그의 말은 그의 경향이 자한당과 가깝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 지지해준 지역을 버린 사람이다. 기회주의적인 사람이다. 권력을 지향하는데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런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총선은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니 그 당의 주요인물을 보고 선거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각각의 후보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 굳이 민주당을 뺄 필요도 없고 자한당을 배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사람을 뽑으면 된다. 훌륭한 사람을 뽑기 위한 방법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훌륭하다고 뽑아 놓은 사람들이 저지른 죄업이 수미산을 덮을 정도였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다.

훌륭한사람 보다는 안좋은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더 쉽고 분명하다. 어떤 사람을 배제할 것인지 나열해 보자.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안되는 사람든 뽑지 말자이다.

1. 원칙과 정의가 없는 사람은 배제하면 된다. 기회주의적으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은 배제하면 된다. 너무 많아서 언급하기가 어렵다.

지소미아 종료에 반대했던 사람을 제외하자. 지소미아 연장해야 한다고 한참 주장하다가 정부가 종료를 선언하니 아무말없이 조용해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

조국을 옹호했던 사람을 배제하면 된다. 국가와 사회 보다 진영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정치를 하면 안된다.

2.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재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 사람들을 배제하면된다. 현정부는 삼성공화국이라는 참여정부를 계승한 것 같다. 삼성의 이익을 위해 목숨바치려면 정치를 하지 말고 삼성에 입사하는 것이 좋겠다.

3. 외세에 의존하는 사람을 배제하면 된다. 무조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 된다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정치인이 아니고 미국정치인이다. 우리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뽑아서 국민 세금으로 봉급 줄 필요는 없다.

한편, 죽창가 부르면서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인들도 외세의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일감정을 이용하는 것은 국가전략적인 차원에서 금기다. 그런 금지를 서슴치 않는 사람들은 정치가로서 자질이 없다.

최근 친문세력들이 이번 총선을 ‘반일’로 몰아가려는 경향이 보인다. 지소미아 종료 문제가 대두되는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인 듯하다. 이미 친문세력의 누군가가 이번 총선을 ‘반일’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고 한 모양이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4. 이벤트 정치인들을 뽑지 않아야 한다. 자한당 민주당 할 것 없이 총선을 앞두고 이벤트로 영입을 했다. 인재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 인재인지 알 수 없다. 젊은 사람들이라고 훌륭한 것 아니다. 참신한 사람 중에서 능력있는 사람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XX 판사처럼 신분세탁하는 경우도 많다.

인재는 갑자기 나오지 않는다. 오랫동안 키워지는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5. 물러갈 때를 모르고 노욕을 부리는 사람은 찍으면 안된다. 손학규나 정동영 처럼 스스로 물러갈 때를 모르고 노욕을 부리는 사람은 더 이상 정치무대에 나서면 안된다. 그들의 역할을 끝났다.

손학규가 주장하는 미래세대와의 통합이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지금 미래세대와 어떻게 통합하나? 미래세대라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나 ? 존재하지도 않은 정치세력과 어떻게 통합하나 ? 그리고 왜 하필이면 손학규가 미래세대와 통합의 주역을 해야 하나 ?

정동영은 소상공인 세력과 통합을 한단다. 우리나라에 소상공인 정치세력이 있나? 그런 점에서 정동영은 손학규와 다르지 않다. 그저 정당보조금 나오면 그거 받아서 생활을 윤택하게 해보려는 것 밖에 없다. 정당보조금 사용내역을 정확하게 공개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에게 나이 많은 것이 결격사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샌더스는 79세의 고령이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초지일관 지켜왔다. 우리나라에도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초지일관 혁신적인 정치를 하려고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늙은 정신을 지닌 사람보다 많은 나이에 젊은 정신을 가진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런 저런 배제해야할 조건을 정리해보면 대충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 것인지 정리가 될 것이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 빼고’이후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세상에 갑자기 뾰족한 대안이 나오기는 어렵다. 하나하나 따져나가면 뭔가 나아진다. 그러나 따지지 않고 분위기에 묻어가면 맨날 그나물에 그밥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동향,샌더스에 대한 공격을 보며

샌더스는 79세의 고령이다. 게다가 작년에는 심장수술도 했다. 그는 평생 사회주의적 신념을 유지했다. 미국적 풍토에서 사회주의라고 하기 어려우니 이런 저런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적 기저에 사회주의적 영향이 흐른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정치생활 내내 무소속으로 일관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샌더스가 버몬트 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것도 미국적 상황에서 일반적인 것인 것은 아니다.

아이오와 주에서 부티지지에 0.1% 차이로 2등을 차지한 샌더스는 뉴햄프셔에서 1등을 차지했다. 샌더스가 1등 그 뒤를 이어 부티지지가 2등 그리고 3등은 의외로 에이미 글로부처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이 차지했다. 4등은 워런 상원의원 5등은 바이든이다.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특징적인 것은 샌더스가 1등을 했다는 것, 부티지지가 2등을 차지하면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 3등인 에이미 글로부처 상원의원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주자로 알려졌던 바이든이 5등으로 처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바이든이 줄곳 1등을 했던 여론조사 결과도 샌더스가 1등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2월 11일 몬머스 대학의 여론소사에 따르면 샌더스가 26%로 1등, 바이든은 16%로 2위, 워런과 부티지지가 각각 13%로 3위, 블룸버그가 11%로 5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직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블룸버그가 11%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샌더스가 여론조사에서 1등을 차지하고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1등을 차지하자 미국 월가에서는 즉각 경계심을 드러냈다. 골드만 삭스 회장과 CEO를 지낸 로이드 플랭크 파인은 샌더스가 후보가 되면 미국사회가 극단적으로 나뉘며, 경제를 망치고 군도 망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샌더스 같은 사람이 미국 민주당 대선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미국사회가 내부로 부터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자본의 탐욕에 의한 빈부격차다. 2008년 위기때 이 문제를 정리할 기회가 있었으나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는 커녕, 가장 월가에 유리한 정책으로 문제를 덮어 버리고 회피했다.

미국의 금융자본들은 흑인대통령을 내세우면서 미국의 구조적 문제를 감추는데 급급했다.

오바마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트럼프의 공약이 놀랍도록 샌더스와 비슷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다 모두 빈자를 위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전세계의 부를 끌어 들여서 ‘가난한 자’들을 부양하려 한다. 미국에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런 이야기다.

샌더스는 부와 직접적인 분배를 주요 정책으로 제시한다. 부유세율을 올리고 법인세를 올려서 거둔 세금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식 문제해결 방법은 거의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벌써 트럼프와 파월 연방준비제도(FED)는 양적완화를 한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다 만다 하고 설전을 벌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미국 경제가 잘 굴러간다고 하는데, 정작 트럼프와 FED는 마이너스 금리냐 양적완화냐로 논쟁을 하고 있다.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잘은 모르겠으나 언론보도와 달리 미국경제가 매우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월이 미국의 채무가 너무 많다고 하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미국은 아직 2008년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적완화를 통해 전세계 다른 나라들의 부를 빼앗아서 억지로 틀어 막았는데 성공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비상조치들이 언제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슈퍼 화요일이 지나면 미국 민주당의 월가주의자들은 바이든을 버리고 블룸버그로 갈아탈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샌더스의 개혁을 막아보려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번 기회가 미국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이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결국은 미국도 스스로 체질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자체내의 경쟁력 강화에 실패하면 아무리 강력한 미국도 뒤로 나가 떨어진다. 그것이 역사의 운명이다.

미국 주류사회의 동맹은 강고하다. 그들이 샌더스와 같은 개혁을 허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 제도는 복잡해서 민중의 뜻이 선거에 직접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진정한 개혁에 실패하면 세계패권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패권상실과정은 비교적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일어난다. 항상 그렇듯이 이미 미국 패권을 이어가기 위한 잠재적인 후보군들이 대기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력을 강화하면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번지수를 잘못찾았다.

핵시대 이후 패권경쟁의 최전선은 군대와 전쟁이 아니다. 내부적 경쟁력이 패권경쟁의 최선선이다. 과거 시대의 관념에 머물면 아무리 강국이라도 쇠퇴할 수 밖에 없다. 내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빈부격차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능력을 총동원할 수 없다. 국민 대부분이 하루 하루 먹고 살기위해 전전긍긍한다면 어떻게 국민들의 정신적 지적 능력을 총동원하여 국가 경쟁력을 향상 시킬 수 있겠는가?

미국뿐만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도 분배의 문제다. 분배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서서히 침몰하거나 급격하게 가라 앉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외면하면 후과가 따를 뿐이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에나 들어맞는 이야기다. 지금은 열심히 일해도 극빈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보화사회에는 정보화 사회에 부합하는 제도가 갖추어져야 한다. 정보화 사회의 과실을 다 따먹으면서 산업사회의 규범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기생충을 보고, 관계의 측면에서…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야 기생충을 보았다. 재미있었다. 한국사회의 모습들이 여러가지 메타포와 구조로 표현되어 있었다. 많은 평론가들이 기생충을 해석했다. 평론가들은 주로 ‘선’과 ‘냄새’같은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를 구분하는 메타포에 관심을 가지는 듯 하다.

영화는 가진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냄새는 인내하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과 자신들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을 침범당하는 것에는 인내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워낙 많은 평론가들의 각자 생각들을 쏟아 내었기 때문에 그들이 주목하지 않은 부분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사회적 존재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진자들은 가지지 않은 자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가진 자들은 ‘선’을 그려 놓고 가지지 않은자들이 그 ‘선’을 넘지 않으면 용납한다. 비록 냄새가 나더라도 그 정도는 용납한다.

기생충에서 그리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착취와 피착취와는 다르다. 기생충의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든 서로 어떤 관계도 없다. 착취와 피착취도 아니다. 그저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자의 배려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이중적인 계급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관계, 그리고 가지지 못한자들 상호간의 관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영악하며 악랄하다. 생존을 위해 도덕과 윤리는 아무런 장애로 작용하지 않는다. 기생충에서 정말 주목해야 할 부문은 이집의 집사로 나오는 ‘문광’의 가족과 ‘기택’의 가족이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관계는 매우 치열하다. 기택의 가족은 문광을 결핵이라는 누명을 씌여 쫓아 낸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갈등이 치열한 것은 그것이 생존과 직접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우아한 집사로 살아가던 ‘문광’은 쫓겨나면서 자신이 부리던 ‘우아함’이 자신이 아니라 가진자들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을 때나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진자와 관계가 끊어진 ‘문광’은 처절한 생존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영화를 어떻게 읽고 감상하는가는 각자의 해석과 기호에 따라 다르다. 가장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가지지 못한 두 가족의 모순이다. 결국 가장 치열한 투쟁이 일어나는 곳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세계다. 투쟁은 가진자들의 제공하는 떡고물을 차지하려는 못가진자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서로 같은 처지지만 죽고 죽이는 처지로 몰려간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투쟁이 더 치열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가진자들의 착취를 알아챌 수 없다. 요즘의 착취는 아주 정교해져서 가진자가 못가진자를 착취한다는 식의 단순한 공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사장’ 그리고 ‘문광’과 ‘기택’의 가족 사이에는 그 어떤 긴장과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진다. 모순과 갈등은 ‘문광’과 ‘기택’의 가족간에만 존재한다. 왜곡된 계급적 갈등이 왜곡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자들간의 투쟁은 치열하지만 아무런 생산적 결과도 없다. 그렇게 운명지워진 자들의 한계이다. 관계의 파탄은 ‘박사장’의 죽음이다. ‘박사장’의 죽음은 모든 문제를 종식시켰다. ‘기택’이 ‘박사장’을 살해하는 것은 박사장의 눈앞에 벌어진 사건보다 정작 냄새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사장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냄새를 참지 못하는 순간 죽임을 당한다. 가지지 못한자와 가진자의 관계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자의 냄새를 참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선’은 상호 존재한다. 가진자는 가지지 못한자의 순종적인 행동양식을 ‘선’으로 생각한다면, 가지지 못한자들은 가진자의 ‘최소한의 인내’를 ‘선’으로 생각할 뿐이다.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냥 끝날 뿐이다. ‘박사장’의 죽음은 가진 자가 베풀던 온정과 배려의 종식을 의미하는 동시에 가지지 못한 자들의 모순과 갈등도 동시에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지지 못한자들의 갈등도 가진 자들의 세계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은연 중 보여주는 것이리라.

계급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계급적 영화가 아니다. 계급 갈등이 아니라 계급내 갈등에 관한 영화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했다. ‘기택’과 ‘문광’ 가족의 싸움을 통해 마치 노동자와 노동자의 갈등,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갈등과 모순을 떠올렸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아쉬운 점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사회와 세상의 모습은 분명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 모순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만일 ‘문광’과 ‘기택’ 두 가족이 싸우지 않았더라면 그 기묘한 생존은 더 연장될 수 있었을 뿐이다.

매우 잘 만들었다. 시나리오도 탄탄하다. 그러나 그 결말이 우울했다.

수사 기소 분리, 지소미아 종료, 총선용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다.

현 상황과 정세를 제대로 평가하고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음 행동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국정운영이 상당히 이상해졌다. 그런 조짐은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할 때부터 느껴졌다. 그 이후 문재인 정권은 모든 역량을 조국 사태 이후 벌어지는 문제 확산을 방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어리석기 그지 없다. 그 당시 수없이 많은 범 여권 인사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반대했다.

진보진영의 분열도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비롯되었다. 우리는 몰랐지만 아마도 그 당시가 문재인 정권의 부정부패의 임계선이었던 모양이다. 그냥 놔두면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그들이 염려했던 상황을 더 빨리 재촉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아니다.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와 경제문제 해결이다. 메르스 때도 경기가 심각하게 나빠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경기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다. 거의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경기가 얼마나 더 나빠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정부의 노력은 당연히 방역과 경제문제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주요 노력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경기회복이 아니라 온통 울산시장 부정선거의 여파를 방지하기 위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추미애는 자고나면 하나씩 문제를 일으킨다. 이제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단다. 아무리 옳다고 해도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인가?

국정운영도 노력의 집중이 필요하다. 이렇게 전선을 넓히면 정권이 더 어려워진다. 아마도 울산시장부정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검찰개혁문제로 옮겨보려는 얄팍한 수작인 듯하다. 그런데 그런 의도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의 문제는 상대방을 너무 무시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구보수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핵심은 평균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국민들도 알만큼 다 안다.

정부는 어제 난데없이 지소미아 종료를 검토할 수 있다는 외교부 언론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해하기 어렵다. 지소미아 종료를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정부의 지금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소미아 종료 문제를 통해 반일감정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울산시장부정선거를 위시한 권력형 부정부패를 덮어보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아무리 옳은 일도 때와 장소가 있다.

지금 전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일본도 심각한 것 같다. 매사에 철저하던 일본정부도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대응은 평균이하인 듯 하다. 지소이마 종료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정신차리기 어려운데 갑자기 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옳지 않다.

설사 이번에 지소미아 종료가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 그 결정을 뒤로 연기하겠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이 아무리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하더라도 대외정책을 국내문제에 지나치게 이용하면 후과가 따른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장이라도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지금은 일본과 갈등을 일으키기 보다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방지를 위한 협력을 고민할 때다. 불과 얼마전까지 일본에 부드럽게 나가더니 갑자기 지소미아 종료라는 강수를 꺼내든 이유를 총선용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덮으려고 할 일이 아니다. 그러려고 하면 더욱 무리만 따른다.

추미애는 지금과 같은 초법적 행동을 계속하면 특검이나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것이고 결국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지금 추미애의 검찰 수사 방해 행위는 박근혜의 공천개입보다 훨씬 중하다. 총선에서 어떻게든 이기고 다음 정권을 장악하면 지금 저지른 문제가 덮여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차라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방지에 최선을 다하고 경기회복에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전략이다. 결국 지금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이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의 결여다.

호남에서 중도개혁을 이야기하는 엉터리들

바른미래, 민주평화, 대안신당이 모여 호남을 기반으로 중도개혁을 지향하는 통합을 하겠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 ‘앙천대소’이자,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말은 한다고 다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중도개혁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이는 조국의 ‘나는 자유주의자이며 사회민주주의자입니다’라고 하던 말과 다르지 않다. 말이 안된다는 뜻이다. 그들이 말하는 중도란 무슨 의미일까? 진보적 정책과 보수적 정책의 중도를 말하는 것인가 ? 아니면 개혁의 속도를 현재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중간 정도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저 갖다 붙였지만 무의미하다. 개혁에는 중도란 없다.

중도개혁의 방점은 개혁이 아니라 중도에 찍혀져 있다. 여기서 중도란 ‘보수’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호남에 기반을 한 정치인들 일부가 추구하는 중도개혁이란 그저 호남의 정치적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보수적인 정당으로 거듭(?) 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남의 개혁적인 성격을 제거해버리겠다는 계략이다. 통할리가 없다.

호남은 미우나 고우나 개혁과 진보의 아이콘이다. 해방후에는 대구와 영남이 그랬다. 그러나 박정희 이후 진보와 개혁의 아이콘은 호남이 되었다. 문재인 정권과 친문세력들이 희대의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이 그들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은 자한당에 돌아갈 반대급부 때문이다. 호남은 최악과 차악중에서 차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띤 ‘중도개혁’을 추구하는 통합을 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이 중도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손학규와 정동영과 같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고 보면 어제 비판했던 박지원은 손학규와 정동영에 비하면 양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호남의 새로운 통합신당은 당연히 개혁과 혁신을 화두로 던져야 한다. 민주당의 문제는 말로만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고 실제 행동은 가짜개혁과 가짜진보였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문제는 너무나 비개혁적 정책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실정을 중도개혁이라는 빌미로 보수적인 방향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오히려 올바른 진보 올바른 개혁의 방향으로 나가야 새로운 신당의 가능성이 있다. 차악이 아닌 차선이나 최선을 제시해야 호남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손학규와 정동영같은 사람들이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학규와 정동영에서 개혁과 진보를 읽을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호남 민중을 배반하고 중도개혁을 주장하는 것이다.

제1단계는 호남을 중도개혁으로 묶고 다시 제2단계는 안철수 일파와 묶으려고 할 것이다. 누가 기획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런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런 구도도 성공하기 어렵다. 병법에 한번 실패했던 방법을 다시 적용하는 것은 패배로 가는 고속도로라고 한다.

현재 민주당과 한국당사이에서 중도란 무슨 의미인가 부터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사이비 진보와 사이비 보수 사이에서의 중도는 사이비 중도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진보이자 진정한 개혁이다. 원래 보수는 사이비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보수니 어쩌니 하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진보는 항상 분열한다. 그것은 진정한 개혁과 진정한 혁신을 지향하는 노선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자본과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은 기득권만 지키면 되기 때문에 분열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다양한 약자들의 집합체인 진보와 개혁정당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노선이 첨예하게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노동문제와 환경문제만해도 그렇다. 둘다 진보적 개혁적 주제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서로 입장이 달라진다. 페미니스트 문제도 그렇다. 당연히 진보와 개혁은 노선이 중요하다. 분명한 노선을 밝히지 못하면 진보도 아니고 개혁도 아니다. 그냥 사꾸라가 될 뿐이다.

대안신당, 민주평화, 바른미래는 지금과 같은 중도개혁 타령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개혁정책을 중심으로 모이면 된다. 그게 싫으면 안철수와 손을 잡으면 될 일이다. 그것도 안되면 자유한국당으로 가시면 된다.

호남 민중들은 전통적으로 개혁적 진보적 정치세력의 담지자였다. 그들에게 중도개혁운운하는 것은 나 이제 그만 정치하겠소 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층민중의 최소한의 요구도 담아내지 못하는 지금의 통합논의는 그만 두는 것이 상책이다.

만일 지금과 같은 말도 안되는 통합논의를 계속하면 호남은 갈 곳을 잃어버리고 모두 민주당에 몰빵하고 말것이다. 대안을 만들에 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호남이 믿을 수 있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온갖 잡탕으로 쓰레기 정당을 만들면 안된다. 국민들이 식상해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더 이상 말도 안되는 통합논의는 그만두고 제대로된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법이다. 뚜벅뚜벅 가면 언젠가 알아 줄 때가 있다. 총선을 앞두고 경거망동하면 다 망한다. 그럴 자신없으면 정치 관두시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