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과 이낙연의 차이

이낙연이 추미애에게 윤석렬의 항명을 처벌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회창을 떠올렸다. 이제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유는 국무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대통령제하에서 국무총리란 책임있는 자리라기보다는 명망가가 내각의 얼굴마담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무총리가 대통령후보로서 경쟁력이 있으려면 자신의 독자적인 입지를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이 이회창이다. 이회창은 김영삼에게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을 요구했다가 짤렸다. 그러나 이회창은 그의 결기를 보여줌으로써 당을 장악하고 김영삼 다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이낙연이 대선후보라고 하면서 매번 높은 지지율을 받지만 그것은 허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선 현재의 체제에세 이낙연이 무엇이라도 독자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한 적이 없다. 그가 잘 한 것이라고는 국회에서 요령있게 야당의 질문을 받아 낸 것 뿐이다. 그러나 그정도는 요령있는 배우정도라면 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민들이 자한당에 대한 불만이 워낙 많다 보니 자한당을 까는 답변하는 이낙연이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낙연이 윤석렬을 처벌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처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은 현재 문재인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 크게 두가지 정도의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PK 친문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것, 두번째, 검찰이 계속 수사하면 자신도 뭔가 찝찝한 부분이 있을 경우다. 그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둘다 일수도 있다.

이낙연은 윤석렬을 처벌하라고 하는 지시하나만으로 그가 어떤 경우에도 문재인을 넘어 서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김영삼 때의 상도동 계는 PK 친문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결집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회창이 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당을 장악할 수 있었고 대통령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

이번에 이낙연은 어떤 경우에 있어도 더민당을 장악하지 못한다. 그렇고 그런 문재인의 평범한 심부름꾼이나 마름에 불과한 이낙연이 어떻게 강고한 이해찬의 벽을 뚫고 당을 장악할 수 있겠는가 ? 혹여 이번 검찰수사로 문재인의 PK 친문과 더민당이 곤경에 처하더라고 이낙연은 구원투수가 되기 어렵다. 그도 청산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낙연은 잘 해봐야 문재인과 PK친문들의 마름에 불과하다. 아마도 이낙연은 용도가 다하면 조용이 사라질 것이다. 문재인과 PK 친문은 이낙연과 호남의 몇몇 인사들을 자신들이 이용하기 위한 대상으로 활용할 뿐이지 호남과 연합 정권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에 빠지니 호남인사들을 전면에 대거 등장시켰다. 국무총리 그리고 검찰의 빅4가 모두 호남사람들이다. 이렇게 문재인과 PK 친문들이 앞으로 내세운 호남출신들은 호남의 배신자다.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김대중 이래 호남이 지켜온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깡그리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은 사태가 진정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토사구팽 신세가 될 것이다

그들은 호남을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비난해오던 TK보다 더 퇴행하게 만들었다. 정의는 정의를 추구하는 자에 의해서 구현된다. 말로만 정의를 말하고 실제로는 서슴치 않고 부정과 불의를 행하는 지금의 문재인과 PK 친문 그리고 호남의 부역자들은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모두 역사적 유례없는 부정과 부패의 방패막이이자 부역자들 뿐이다. 그 부역자들의 대표가 이낙연 아닌가 ?

이회창이 비록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적어도 이낙연보다는 격이 높았다.

미국과 이란, 미국패권 종말의 서막

세계패권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패권을 확보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많다. 그러나 그런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패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패권은 세계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금융시스템은 패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적 규모의 금융시스템도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폴 케네디 교수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군사비를 많이 쓰기 때문에 강대국이 무너진다는 주장을 했다. 폴 케네디 교수가 생각한 강대국은 패권국가였다. 폴 케네디교수는 주로 군사비를 생각했지만, 오늘날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은 기축통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군사력도 결국은 기축통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이 기축통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달러를 받고 원유를 수출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댓가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안위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홍콩에서 학생 시민들이 중국에 반대해 민주화 시위가 한참 일어나고 있을 때, 민주화란 국민국가의 틀안에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 국제사회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취지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상의 가치로 생각했다면 우선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제적 왕정을 민주정으로 바꾸라고 요구했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미국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수단이지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라크를 민주화시킨다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서로 전쟁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한다. 전쟁은 체제를 막론하고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전쟁은 당사국들이 민주주의 국가인지 전체주의국가인지를 막론하고 이익이 결정적으로 충돌하고 이를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그래서 전쟁은 항상 외교의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란은 신정체제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매우 민주주의적인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대통령과 내각은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다. 물론 신정체제로서의 구조도 있다. 신정과 민주주의의 기묘한 동거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은 중동지역에서 대표적으로 가장 민주주의적인 국가중 하나다.

미국의 패권유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동의 석유수송을 보장하는 것이다. 석유수송을 보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호르무즈해협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익을 보장해줄 수 없다. 결국 그것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셰일가스의 채산성이 높아지면서 중동을 버려도 미국은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피터 자이한 이라는 사람이 <셰일혁명과 미국없는 세계>라는 책을 썼다. 미국은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우스운 이야기다. 어떻게 미국인이 자신들이 어떤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을까 ? 이 책이 미국 지식인들에게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줄여나가면 그 공백은 중국과 러시아, 유럽, 한국과 일본이 메운다.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달러로 원유를 받을 수 없다. 아마도 위안화나 유로화가 결재통화가 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전세계에서 달러는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럼 미국은 세계패권을 상실한다. 만일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만족하게 살겠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리고 미국의 세계금융자본의 통제력을 내려 놓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올 때 피터 자이한과 같은 생각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은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패권유지를 위해 들어가고 있는 비용을 줄이고자 한다. 미중패권경쟁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막대한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어마어마한 비용의 군사비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서는 미국의 내적 발전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트럼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와 같은 대응이 현명할 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자본들은 그런 영향력의 축소로 인한 세계적 영향력의 상실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 트럼프가 북핵문제와 이란 문제로 혼란을 겪는 것을 설명할 이유는 이것 빼고 달리 없을 것 같다. 결국 미국내 정책적 혼선이 국제정치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군사적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중동지역에서 어마어마한 권위의 손상을 초래할 것이다. 아마 가장 쇼크를 받은 국가가 사우디아라비아일 것이다. 앞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이란과 유화적인 관계를 맺고자 할 지도 모른다. 중동지역에 광범위하게 펼쳐저 있는 반미세력들은 이번 사태로 힘을 얻을 것이다.

미국이 이란에 경제제재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제 유엔차원의 제재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이미 북핵문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게다가 이란과 중국은 서로 특수관계이다. 중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참가할 수 없다.

게다가 이란의 대응수단도 강력하다. 만일 미국이 독자적인 제재를 한다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버릴 수도 있다. 상호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가면 누가 더 피해를 볼까?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다. 말이 경제제재이지 실제적인 제재는 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하면 당분간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이 틈을 타서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당연히 북한은 마음대로 핵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그들이 언급한것 처럼 태평양에 수소폭탄 실험을 할 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을 지원할 것이고 미국은 또 전쟁의 수렁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미국은 이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두가지 옵션을 앞에 놓고 있다. 급격한 헤게모니의 상실과 천천히 완만한 헤게모니의 상실이다. 급격한 헤게모니의 상실보다 완만한 상실이 훨씬 용이하다. 운이 좋으면 그런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완만한 헤게모니의 약화를 견디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간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좋은 것은 서로 감정을 내려놓고 타협을 하는 것이다. 열받는다고 송사로 가면 둘 다 망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외교적으로 적당하게 타협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지 못하고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강요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이후 수없이 많은 전쟁을 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군사적으로 정리한 경우는 한번도 없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의 소규모 작전은 성공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분단으로 끝났다. 월남에서는 패망했고, 아프간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라크도 오히려 문제만 더 크게 만들었다. 세계최고 최대의 군사력으로 중동의 한나라도 제대로 완벽하게 제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중동과 아랍권은 미국의 권위가 손상된 지금의 상황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서서히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지도 모른다.

대통령 인사권 ? 공화주의의 붕괴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다 다르다. 다양한 시각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다. 이번 청와대와 추미애의 검찰인사를 어떻게 보는지 모두들 평가와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인사권을 행사했다는 주장부터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각각의 주장들은 모두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다. 완전한 악과 완전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자한당을 참아야 하는 것은 민주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공화적 가치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주 자주 전제주의적 경향을 띤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제주의적 발상이다. 대통령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이 독재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에 의해서 견제될 수 있다. 검사 인사를 법무부 장관이 인사안을 만들어 검찰총장과 협의를 하고 이를 청와대에 제청하고 여기서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전제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인사는 그런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법에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행사했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 아니고 헌법에 정해진 우리의 공화적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로마시대에 시저는 인민의 지지를 받아 황제가 되고자 했다. 그의 양아들(실제는 사생아 친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부르투스는 공화정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 나란히했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비교적 그 배경이 분명한 것 같다. 당연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수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울산시장 선거의 개입과 유재수 문제 때문일 것이다. 조국 수사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조국 때문에 문재인과 추미애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추미애는 5선의 국회의원이다. 자신의 조치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분명하게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말도 안되는 사법방해를 한 것은 당연히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송철호를 울산시장 민주당 후보로 단독공천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유재수 건과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스스로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위는 그 자체로서 탄핵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대통령이지 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대통령을 뽑았지 법위에서 군림하는 왕을 선출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상당기간 검찰을 수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수사검사 모두가 교체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새로 교체된 검사들이 와서 자료 살펴보고 하다 보면 수사는 동력을 상실하고 총선이 끝날 것이다. 그리고 유야무야 이번 사건은 묻혀질 것이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바로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문재인과 추미애에게는 다행스럽게 자한당을 위시한 야당은 아무런 조치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문재인과 추미애 그리고 친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시간의 문제이지 이번 사건은 반드시 다시 수면위로 올라 올 것이다.

다음 대선에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꿈깨시라. 지금처럼 정치하면 민주당에서 대통령 나오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오더라도 지금의 쿠데타적 행동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수사는 다시 진행될 것이고 문재인과 추미애는 그때 처벌을 받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후 들어선 노무현 정권이 대북송금문제로 동교동계를 모두 숙청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한 불쏘시개가 호남이라는 점이다. 이번 정권을 호남사람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남사람들은 자신들이 문재인 정권에게 이용당하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권은 일부 몇명의 호남 부역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호남의 지지를 호소한다. 정신없는 호남사람들은 그런 부역자들의 선동에 즐겨 따라간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생전 외치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붕괴시키는 일등공신이 호남인 셈이다.

이제 호남은 민주주의의 성지가 아니라 전제주의의 조력자가 되었다. 호남은 그 입으로 더 이상 진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대통령 신년사에 실망하다.

마치 뒷북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남북협력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말을 듣고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여건이 좋을 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다시 남북협력 카드를 빼들었다. 대통령의 남북협력 멧세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가장 진정성 있는 마스크를 가진 대통령이 가장 진정성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무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정책을 주장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정책을 주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을 추진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만일 그것이 무능의 소치가 아니라면 교활함의 결과다.

애시당초 북미회담이 시작된 것은 한국의 중재역할 때문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고서라도 북핵문제를 당시 수준에서 동결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북미회담이 가능했을 뿐이다. 북한이 남한과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던 것도 북미회담을 추진하면서 최소한으로 남북문제를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이 열세인 재래식 군비통제문제도 추진하고 남한으로 부터 경제적 지원도 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과 우호적인 관계는 북미회담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2018년도 남북간 밀월관계는 북한과 미국의 상황변화의 산물일 뿐이었다.

남북관계를 추진해나가려면 많은 반대를 무릅써야 한다. 우선 국내 수구세력들의 무조건적 반대를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와의 협조도 해야한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것을 견디고 나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지난 2년동안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낮뜨거운 욕설을 하는 것도 이유없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남북협력을 고민하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문재인 정권의 정치적 들러리라고 느꼈고 문재인 정권이 실제로 현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남한과 거의 모든 관계를 단절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구상을 밝히자 마자 해리스 한미대사는 남북관계 추진은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문재인 정권이 해리스 미국대사가 이야기한 협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두고보면 현정권을 절대로 미국의 주장을 넘어설 수 없다. 넘어설 의지와 능력 모두 없다.

한미동맹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주권국가인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사사건건 승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을 보면 마치 일제강점기의 일본 총독같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이다. 얼마나 정권이 우습게 보였으면 일개 미국대사가 대통령 신년사 그 다음날 저런 이야기를 하겠나?

해리스 대사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현정권이 미국에게 뭔가 크게 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소미아 연장문제, 방위비 분담금 문제, 중동에 파병문제등 현정권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거의 예외없이 수용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언급은 국내 지지자들을 위한 국내 정치용 프로파간다에 불과할 뿐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말은 북한의 조소만 살 뿐이다.정말 걱정되는 것은 이렇게 뻔한 결말과 반응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성서적 계시를 기대하기 때문인가 ? 그것은 조물주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변여건과 상관없이 내생각만을 내뱉는 자폐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무능함인가? 교활함인가 ? 아니면 자포자기인가 ?

호르무즈 파병문제, 접근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호르무즈에 파병키로 한 정부의 입장이 곤란해진모양이다. 청와대에서 NSC를 긴급하게 개최했다는데 별 내용이 없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은 안보실의 책임자들의 무능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우리 정부는 미국에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겠다고 이미 사전에 동의를 한 것 같다. 그 결정은 이미 오래전 일본의 경제침략 문제로 한일관계가 복잡해질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의 안보라인들은 한일문제에 미국이 지원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약속했을 것이다. 기억해보면 미국이 그런 말도 끄내지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그런 약속을 한 것 같다.

그 당시 호르무즈로 해군함정을 보내는 것은 새로운 의미의 파병이므로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의 국회 파병동의안을 확대해석해서 국회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호르무즈로 해군함정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해군함정을 호르무즈로 보내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중동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며 우리가 어떤 피해를 당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 하원에서도 트럼프가 이란과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항상 미국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일본도 호르무즈 파병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파병하겠다고 했던 때와 상황이 완전하게 달라졌다. 상황이 바뀌면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는 문제를 정부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것은 외교적 카드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및 정부 안보부처는 그런 판단이 부족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상황이 초래하게된 담당 책임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호르무즈 파병은 전쟁 혹은 준전쟁지역에 보내는 행위다. 따라서 정부가 기존의 국회동의안 해석을 확대한 것도 원천무효다. 당연히 전쟁 혹은 준전쟁 상황에 군함을 보낼 때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가 이번 파병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정부는 그런 능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다시 번복하기도 매우 어려운 상태일 것이다.

파병해서 작전을 하는 방법과 형식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연합함대의 일원으로 우리 군함을 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미국과 이란이 전쟁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이란과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리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이란과 교전당사국이 된다.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일본의 입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군함을 파견하되 독자적인 작전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마도 일본은 이미 지금과 같은 상황을 충분하게 예측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일본과 해상수송로의 안전에 관해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동에서 동북아까지 연결되는 해상 수송로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과 같은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한일 연합함대를 편성해서 독자적으로 작전하되 미군과 협조관계를 유지하면 될 것이다. 이번기회에 해상수송로 보호와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해군이 보다 긴밀하게 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역내에서는 서로 반목하기도 하지만 눈을 넓게 뜨면 서로 협조할 부분은 많다. 반목할 부분은 줄여 나가고 협조할 부분은 넓혀 나가는 것이 양자에게 훨씬 유리하다. 비슷한 지정학적 여건에 처해 있으면서 서로 갈등만 할 경우 서로 손해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질것은 따지되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일이 호르무즈 지역에서 공동입장을 취하면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정부 당국자도 잘 생각하길 바란다. 다툴 때 다투더라도 힘을 합할 때는 힘을 합해야 한다.

안보정책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국회의 개입을 피곤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회를 개입시켜야 우리에게 손해가 없다. 국회가 제동을 거는 것을 대외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도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정부 안보팀들의 무능 때문이다.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제거가 실책인 이유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어제 올린 글에서 이라크를 공식방문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미국이 살해했다는 것은 이라크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의 행동은 이란이 앞으로 세계 어디서든지 미국의 주요인사를 살해할 수 있도록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도 언급했다.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내가 했노라고 알리는 것이 아니고 비밀공작의 형식을 빌려야 했다. 솔레이마니는 후세인이나 빈 라덴과 같은 경우가 아니다. 후세인과 빈 라덴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제거했다고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솔레이마니의 경우는 미국이 자신이 살해했다고 밝힐 경우 뒤따르는 문제가 더 많다. 그래서 통상 이런 경우는 비밀공작을 한다. 순니계열의 IS를 사주한다거나 또 다른 정적을 내세우는 것이다. 아니면 이들에게 뒤집어 씌우거나 해서 미국이 직접 살해했다는 것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경우는 미국이 제거했다고 공개해서 이익을 볼 것이 별로 없다. 아마 앞으로 당분간 미국의 주요인사들은 미국 땅을 떠나 마음대로 다니기가 어려워질 지 모른다. 미국은 왜 비밀공작의 영역을 공개하는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을까? 아마도 올해 미국 대선을 의식해서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와 대이란정책은 트럼프의 중동정책이 매우 비상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세계문제보다 미국의 문제 해결을 우선시 해야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해외주둔 미군의 비용을 절감하고 전비를 줄이고자했다. 그래서 아프간에서의 철군도 추진하고 중동에서도 군대를 줄이고자 했다.

그러자면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해 이란과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란은 시아파로 순니의 극단세력인 IS와 대척점에 있다. 중동에서 미군의 부담을 줄이려면 이란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집권하자 마자 이란과의 핵합의를 깼다. 유엔안보리5개국+독일과 이란의 핵합의는 핵없는 세계를 추구해오던 오바마 행정부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런 것은 트럼프는 단번에 파기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이란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방위비를 아낀다고 중동지역 미군을 감축했다. 중동지역에서 군대를 줄이는 문제로 매티스 전국방장관과 갈등을 빚고 결국 사임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것이다.

지금 미국의 중동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트럼프는 이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여러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석유자본의 요구이다. 미국 석유자본의 중동시장 장악이라든지, 혹은 중동의 석유 수송에 혼선을 초래하도록 하여 세계를 궁지에 몰아 넣되, 자신들은 세일석유로 문제없이 번영을 구가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중국이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서 고의로 혼란을 유도할 수도 있다.

세번째는 중동에서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유일한 국가인 이란을 제거하기 위한 유대자본의 흉계를 들 수 있다.

넷째, 10여년 마다 주기적으로 전쟁을 해야 돌아가는 미국 군산복합체가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을 부추긴 것과 같이 여러가지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이유든 간에 현재 미국의 행동은 미국자신의 국제정치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현재 행동은 미국 일반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패권유지에 정확하게 반대되는 경로를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세상일은 원래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번 솔레이마니 제거로 그동안 앙숙이던 시아파와 순니파가 손을 잡게 만들지도 모른다. 벌써 이라크 의회는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의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천년 넘도록 앙숙이던 시아와 순니가 서로 손을 잡는 계기를 미국이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이라크전과 같이 이란을 공격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란은 이라크와 지리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보낼 수 있는 기지확보자체가 어렵다. 지상군이 투입되지 않으면 공중타격과 같은 방식이 될 것인데 그것만으로 이란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일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은 고립무원의 이라크와 같이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지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란은 이런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이 중국 러시아와 연합훈련까지 실시했다.

실제 미국이 군사공격을 언급하지만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설사 실행한다하더라도 요망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이란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 방식의 대응보다는 좀 더 은밀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의 이슬람 세력과 연계해서 미국을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미국이 직접 대응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혼란이 야기되는 이유는 미국의 중동지역에 대한 정책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의 이런 행동은 이란의 핵무장 속도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책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니 제대로된 전략이 수립될리 없다. 내가 왜 미국 걱정을 해주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이란 솔레이마니 살해를 보면서 이라크를 생각하다.

새해 벽두부터 독감으로 고생을 했다.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아서다. 독감예방주사 맞는 시기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독감에 걸렸다. 이제야 겨우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아파도 세상은 돌아간다. 비몽사몽간에도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북한은 예상한대로 미국과 대화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다. 미국은 이라크에 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드론 폭격으로 살해했다. 한반도와 중동지역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군사령관을 이라크에서 살해한 것은 국가의 주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공식방문한 이란 군사령관을 이라크 땅에서 살해한 것에 대한 책임문제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라크 정부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라크 정부는 미국에게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 이라크에는 그런 합리적인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자체가 사분오열되어 있어서 말로만 국가지 정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란 중요인사를 제거했으니, 이란도 이라크에서 미국의 주요인사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결국은 최소한 지켜야 할 룰을 어겼으며 이는 미국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다.

이라크 전쟁이후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져 버렸다. 이라크를 통합했던 후세인은 팔레비축출이후 신정체제로 돌아선 이란의 확산을 저지했던 방패막이었다. 이라크 후세인이 독재자로 낙인이 찍힌 것은 쿠웨이트 침공문제였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유전문제 때문이었다. 쿠웨이트에서 채굴하는 유전의 상당부분이 이라크 지하에 있었다. 이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있어났다. 당시 후세인은 주이라크 미국대사에게 쿠웨이트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의 동의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불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으며, 후세인은 이를 동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쿠웨이트를 공격했다. 그 이후 미국주도로 사막의 폭풍작전이 전개되었다.

사막의 폭풍작전(91년 1월)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미국은 쿠웨이트를 해방시키고 이라크 남부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보했다. 아직까지 당시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한다고 동의를 구했을때 왜 미국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당시까지 이라크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친미국가였다는 것이다.

그 이후 아들 부시가 들어서면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국에서는 석유에너지 장악이 중요한 아젠다중의 하나였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 자체내에서도 텍사스에 기반을 둔 석유자본들이 중동의 석유를 장악하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했다는 분석이 꽤 많았다. 물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표면적인 이유는 대량살상무기 보유혐의였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미국 CIA의 정보분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IA와 국방부 정보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어차피 CIA와 국방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명분을 위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려고 한다고 꾸며댔을 뿐이다.

제1차 및 제2차 이라크 전쟁이 텍사스에 기반을 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는 어렵다. 두번의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라크는 시아와 순니가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 정점에 후세인이 있었다.

91년 걸프전의 여파로 알 카에다가 창궐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후과로 ISIS가 창궐했다. 지금 중동은 누가 들어가더라도 질서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사우디아아비아와 특수관계이다. 달러는 오일가격에 페깅이 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일을 달러로 결제하는 댓가로 사우디왕가는 미국의 보호를 받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에 적대적인 알카에다와 ISIS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순니계열이라는 것이다.

이라크 전을 위해 미국은 어마어마한 전비를 투하했다. 조사를 해보아야 겠지만 지금 미국의 재정적자는 대부분 이때에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린턴은 적어도 미국이 다시 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균형은 맞추어 놓았다. 끊임없는 이라크 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의 재정적자는 눈덩이 처럼 늘어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전에 투입된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미국이 냉전 종식이후 유일한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지속하기 어렵게 된 것은 바로 두번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때문일 지도 모른다. 국력을 전쟁에 투입하다보니 미국내 사회문제는 뒷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미국의 힘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것은 중국의 상승때문이라기 보다 미국 스스로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시 미국이 이라크와 쿠웨이트간 유전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면, 지금 쯤 미국은 중동의 완벽한 균형자라는 위치를 장악했을 것이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용하여 이란을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시리아도 점차 미국의 영향력에 조금씩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평화롭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미국이 대외정책을 수행하면서 외교보다는 군사력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정책의 또다른 수단이라고 통찰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전쟁을 정책의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클라우제비츠적 전쟁관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화와 타협보다 군사적인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문제를 대화와 타엽이 아닌 군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부른다. 미국이 솔레이마니 이라크 군사령관을 살해한 것은 반작용을 부를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제거를 승인한 것은 그가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또한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이라크 전에서 대량살상무기 문제처럼 이란에서 전쟁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정보도 조작될 수 있다.

한때 중동 국가중 가장 친미국가였던 이라크가 걸프전과 이라크 전을 통해 완전하게 붕괴된 것을 보면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동맹관계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국제사회에서 동맹과 우호관계라는 것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다. 국제사회는 항상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그래서 동맹이나 우호관계도 자신의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두번째, 미국의 힘이 강력한 힘이 지닌 이중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는 국민국가내에서의 가치이지 국제사회에서의 가치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정의는 힘의 정의일 뿐이다. 즉 미국의 힘이 강한 만큼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면 이라크처럼 한방에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원하는 것으로 따라가면 천천히 쫄딱 망하기 십상이다. 그 기묘한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자주파니 동맹파니 하는 말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의 지향방향 모두 우리가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얼마나 지혜롭게 주변 정세와 여건을 활용하느냐갸 중요하다.

중동에 전운이 감도는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중동은 제국주의 시대부터 열강의 이해가 충돌했던 지역이다. 100년이 넘었지만 중동은 제국주의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동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때까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중동문제는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부분이 많다.

독감으로 정신이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이란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 사건을 보면서 미국이 전쟁보다 외교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힘을 사용하면 할 수록 세계적 패권유지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경자년 아침, 선택적 정의를 생각하다.

경자년 새해아침이 밝았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다. 새로운 출발이다. 새로운 출발에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아침에 여기저기서 카톡이 들어왔다. 울산시장 선거부정과 관련한 핵심 관계자 송병기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또 명재권 판사다. 그가 밝힌 기각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 지수가 OECD 국가중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그 부정부패라는 것이 재산이 많은자와 권력을 지니고 있는자들의 문제라는 것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권력과 재물을 많이 가진자들이 부패해 있는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부패한 권력으로 재물을 모으는 것이다. 부패한 권력은 부정한 재산보유자와 결탁하고 국민의 세금도 도둑질한다.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유감스럽게도 여러분야에서 부정과 부패의 흔적이 보인다.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와 유재수의 국정농단 혹은 개입, 울산시장 선거의 개입과 같은 것들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혁명을 해도 또 썩는다. 그러나 적어도 드러난 부정부패만이라도 제대로 척결하지 않으면 그 부정부패세력은 점점 그 세력권을 넓혀간다.

부정부패 척결은 좌우를 가려서는 안된다. 진보의 부패는 용인할 수 있고 보수의 부패는 용인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부정부패는 모두 척결의 대상이다. 선택적으로 처벌하고 말고의 대상이 아니다.

법원은 문재인 정부들어 정의의 선택적 실현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원래 정의가 제대로 살아있으려면 살아있는 권력에 더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법원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까지 조국의 개인핸드폰은 확보를 하지 못했고, 조국의 개인 계좌는 들여다 보지 못했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재수의 개인계좌도 들여다 보지 못했다.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송병기의 구속영장도 발부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검찰이 조국을 기소하고 유재수를 기소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청와대와 여당에서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한다. 법원이 핵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 놓고 어떻게 증거를 재대로 확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청와대에서 조국의 기소를 두고 무리한 수사의 결과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적폐수사에서 법원은 양승태 전대법원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검찰이 요구하는 구속 및 수색영장을 발부해주었다. 조국과 유재수의 경우 경제사범의 혐의가 짙다. 당연히 핸드폰과 계좌는 압수수색을 해 주었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가장 강력한 대처와 처벌을 해야 한다. 정부 여당은 지금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회든 핵심질서와 가치가 무너지면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정의는 선택적이어서는 안된다. 선택적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악이다.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선택적 정의가 악이기 때문이다. 정의 메타포는 칼과 저울과 눈을 가린 것 세가지다. 그 중에서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정의는 구현되지 않는다.

결국 선택적 정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한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든다. 안보와 국방에 아무리 많은 돈을 퍼부어도 내부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되면, 그런나라의 군대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국정이 혼란해지면 군대가 구데타를 한다. 그것은 군인들이 그런 혼란을 틈타서 권력을 장악해서 잘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혼란한 국정이 국가안보를 약화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쿠데타가 국정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 것은 역사적인 경험이지만, 단순 무식한 군인들은 자신들이 뭔가 정리정돈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노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 선택적 정의가 마치 정의인양 호도되어서는 안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자칭 보수정당이라는 자한당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원래 부정하고 부패한 자들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인 듯 하다.

정치권에 희망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가장 큰 이유는 야당에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야당은 없다.

새해아침 희망에 찬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송병기 구속영장기각 소식을 보고 올해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공수처법이 통과되었으니 새해에는 법원개혁에 매진했으면 좋겠다. 제일먼저 영장전담판사제도를 없앴으면 좋겠다.

공수처법 통과를 보면서, 국회와 국민의 거리 그리고 공론의 장

그 말많던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더민당이 이번 회기에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꼼수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조국 수사와 유재수 그리고 울산시장 송철호의 선거부정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는 술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수처 법은 이번에 통과시키되 그 시행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방안을 나름대로 고민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사실은 사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더라도 공수처장을 선출하고 검사를 선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정작 공수처가 제대로 작동을 하게 되면 검찰에서 이미 이번 문재인 정권에 관한 수사는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조치는 매우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하고 있다. 야당이 반대를 하면 대통령이 아무리 임명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또 청와대와 공수처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법을 명문화시켰다. 청와대에서 공수처에 전화하는 것도 불법이 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정도라면 어느정도 정치적 중립에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야당의 비토권이다. 공수처 법에 반대해서 자한당이 의원 총사퇴한다고 한다. 그럼 공수처장 선발과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된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자한당을 완전무시하고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끝없은 정치적 중립시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아마 공수처장으로 추천된 사람도 야당의 지지없이는 수락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검찰의 태도다. 검찰이 이번에 권력의 핵심을 수사하는 것은 정말로 찬성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검찰이 해온 행태를 지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검찰도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를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검사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만 생각하겠다는 윤석렬 같았으면 검찰이 국민들에게 지금처럼 불신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는 물론이고 정치에 직접 개입해왔다. 정권초중반에는 정권의 개가 되고 정권후반부에는 주인을 물면서 검찰의 이익을 확보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점에서 검찰도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 검찰의 칼은 정권의 부침과 시기에 상관없이 언제나 정의롭게 사용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조직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다.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공수처법 통과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공수처법 뿐만 아니라 선거법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법이지만 국민들은 그 논의의 과정에 철저하게 국외자였을 뿐이다. 도대체 TV와 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쟁점이 되는 조항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도하고 분석 평가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번에 공수처법과 선거법 처리 과정이 이렇게 난항을 겪게 된 것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처리되려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이해보다는 자기들의 당파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종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공수처법과 선거법에 대한 토론을 했으니 서로 싸우기 바빴지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대로된 전문가들이 나와서 시간을 두고 여야가 주장하는 문제를 분석 평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아마 TV와 신문에서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왜 국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무엇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번 공수처법이나 선거법 처리과정에서 국민들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외면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국민들에게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에 관한 국회의 논의가 제대로 보도되었으면 어떤 국회의원들이 실력과 능력이 있고 없는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을 도외시한 이런 의사결정과정은 국회의원들의 피해로 되돌아간다. 우리 사회에는 마타도어를 이용해서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사회가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마타도어식의 선전선동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공수처법의 조항에 대한 건전한 문제제기도 공수처 법을 반대하는 반민주적이고 반개혁적인 정치인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를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세력들이다. 이런 세력들이 힘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은 공론의 장을 확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공수처법의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대부분 공론의 장이 건전하게 열렸으면 국민들이 충분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공수처법은 통과되었다. 제대로 운영이 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부정부패를 하는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깨끗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법과 제도보다는 운영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길을 잃다.

우리의 삶은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속에서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삶을 제대로 편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중요한 것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우리네 인생은 그런 폭 녋은 관심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관심은 풍요롭고 정의로운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도 잘사는 국가가 되었지만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점이 여럿있는 것 같다. 단기간에 잘 살게 되었으니 오랫동안 경험과 역량이 축적된 나라보다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이 아닌가 한다. 미국신문이나 일본신문 같은 경우는 주변안보환경이나 국제정치와 관련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 정도되는 국력을 가진 국가들이 주변국제정세에 대한 관심에 비해 우리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원래 안보와 외교는 대통령의 고유영역이라 한다. 왕정시대에는 국왕의 영역이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안보와 외교는 우리 삶을 규정짓은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에 합당한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전쟁이후 우리는 한미동맹의 안보틀에서 살아오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최대의 우방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서 한일합방을 할 수 있었다. 동맹이란 영원하지 않다. 지금 미국이 우리에게 6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방위비로 요구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의 한미동맹이 과거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세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12월 28일자 동아일보에서 ‘김순덕’은 ‘중화제국의 속국으로 살 것인가?’라는 칼럼을 실었다. 그 내용을 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문의 논설위원의 세계와 안보에 대한 인식을 보면서 적지 아니 실망을 했다. 김순덕은 문재인 정부를 친중정부라고 먼저 규정했다. 이어서 대원군을 청나라로 잡아간 것을 지적하면서 중국이 몰려온다고 하면서 안보위협국이 중국인지 일본인지를 분명히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중국으로 부터 굴욕을 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서두에는 홍콩인권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 비판을 했다.

우리네 지식인들은 항상 이편 아니면 저편을 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뿌리깊은 노론적 사고방식의 연속인 듯 하다. 개화기의 역사에서 우리가 교훈을 삼아야 하는 것은 주변의 강한 나라에 빌붙어서는 제대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먼저 문재인 정부가 친중정부라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과 너무 다르다. 문재인 정부는 친중정부가 아니라 친미정권이다. 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친미정권이다. 속성상 친미적이면서도 외형상 친중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정권이 친중이냐 친미냐는 그정권이 어떤 정책을 펴왔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제까지 문재인 정권은 미국편에 붙어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문재인 정권이 친중정권이라면 그동안 한중관계가 지금처럼 경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순덕이 현정권을 친중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중국보다 미국에 더 가까이 가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묻고 싶다. 지금보다 미국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 주한미군 주둔비용 달라는 대로 다주어야 하나? 지소미아 같은 것은 종료하겠다는 시늉도 내면 안되고 그냥 눈만 끔뻑 끔뻑 거리고 있어야 하나? 한국에 중국을 목표로 하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한다고 해도 그냥 좋다고 해야 하나? 유엔사 회원국에 일본을 집어 넣어 일본군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허용해야 하나 ?

일부 보수인사들의 걱정하는 한미관계의 한계는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더 이상 들어 줄수 없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은 없다. 정상적으로 한미관계가 발전하자면 이제는 미국이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항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시소를 타려고 하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편을 설 것이냐 중국편에 설것이냐라는 생각은 지금의 우리 국력에 비추어서 볼 때 더 이상 타당한 전략이 아니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우리가 중국이냐 미국이냐로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확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보다 훨씬 국력이 약한 필리핀도 중국과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성장과 발전의 한계선에 도달한 것 같다.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히고 우리의 가능성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19세기 구한말의 상황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외연을 넓혀가도 시원찮은데 스스로 접촉면과 외연을 줄여나가면 어찌 성장하고 발전을 하겠는가 ?

아직 우리는 미국과 중국사이의 미로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