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미사일 협정수정, 방위비인상과 무관하게 추진해야

한미가 미사일 협정의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800km인 사거리를 늘리고 액체연료가 아닌 고체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모양이다. 보도된 대로 추진된다면 우리의 국방력은 크게 신장될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 종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한미미사일 협정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미국의 기술을 도입해야 했다.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면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능을 개발할 때는 미국의 허락을 받기로 약속했다. 당시는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북한이 미사일을 고도로 개발하는 상황이되었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이 열세를 미사일로 대체하고자 했다. 미사일은 빈자의 무기이다. 기술적으로 개발하기도 어렵지 않고 비용도 싸다. 그동안 우리는 한미미사일 협정을 개정하여 미사일 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북한의 미사일능력에도 대응해야 하고 주변의 안보불안정 상황에도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미사일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야 한다. 주한미군이 언제 어떻게 철수할 지 모른다. 중국은 우리에게 압박을 계속해올 것이다. 다양한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사일 능력과 같은 전략적 억제수단을 보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미국은 이제까지 한국의 미사일 능력확대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것은 한국이 독자적인 군사능력을 가지는 것이 미국의 동북아지역 전략구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이 미국이 아닌 중국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미국이 그런 판단을 하게 만드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이 한국이 미사일 능력 확대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을 혼자서 막아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이 군사력이 강화되면 미국도 중국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능력 확대를 허락하는 이유가 단지 중국의 위협확대와 같은 안보적 이유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6조원의 방위비를 요구했다. 대선에서 불리한 상황에 있는 트럼프가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미사일 능력 확대를 허용줄테니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를 더 내라는 것이다. 당장은 그런 보도가 보이지 않지만, 트럼프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없다.

미사일 능력은 주권국가의 기본권이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에게 주권국가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약당해 온 것이다. 처음 미사일 기술을 도입하면서 외교부 과장이 쓴 서신하나로 수십년간 미사일 개발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미 미사일 협정 개정은 우리가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를 되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미사일 능력을 확대하면서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우리도 중국의 미사일 사거리 안에 놓여있다. 앞으로 동북아지역에서 중국의 군사력 확대는 누구라도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점차 힘이 빠지고 있다. 우리가 안보상황에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눈치를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할 것이 따로 있다. 우리가 독자적인 미사일 능력을 갖추는 것은 눈치를 보고 말고할 일이 아니다. 전작권 전환도 결국 우리가 미국의 군사력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미사일 능력 확대를 비난하고 있다. 일고의 고려할 가치도 없다. 북한이 우리의 미사일 능력확대를 비난하려면 자신들의 미사일 능력을 제거하고 나서 할 일이다. 자기들은 마음대로 하고 남은 하지말라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

중국이 미국을 봉쇄하는 상황이 되면

중국은 미국의 봉쇄에 어떻게 대응할까? 미국이 냉전시대처럼 중국을 완전하게 봉쇄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적이있다. 유럽이 중국과 점면적인 관계중지보다는 화웨이처럼 미국이 특별하게 지정하는 품목이나 상품이나 서비스 봉쇄에 참가하는 것이다. 미국은 화웨이에 이어서 틱톡을 선정했다. 모두 차세대 대표적인 상품이자 서비스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더라도 중국을 봉쇄한다는 정책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지금보다 더 치밀하게 중국을 봉쇄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이번 2분기 미국의 GDP가 32.9%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중국은 같은 기간 3.2% 성장했다. 2분기 GDP 만 보면 미국과 중국의 GDP가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금년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2.5%정도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GDP 역전이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미중패권의 관점에서 COVID-19는 중국에게 있어서 절호의 기회인 것같다.

중국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중국지도부도 앞으로의 세계전략에 대한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변화한 중국의 세계전략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단초는 주영중국대사가 영국을 대놓고 경고한 것이다. 7월 30일 류샤오밍 주영중국대사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영국이 우리의 파트너나 친구가 되고 싶지 않고 중국을 적대적 국가로 다룬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발언이 협박이 아니라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며, 영국이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샤오밍의 발언은 앞으로 중국이 미국에게 정면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 같다. 중국은 미국의 요구에 양보하면서 사태를 대충 봉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류샤오밍의 발언은 분명한 협박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중국이 영국을 직접적인 위협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영국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기 때문이다. 영국을 직접 노린 것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경고다. 중국은 미중간 세력경쟁의 무대가 될 유럽에서 도버해협을 경계선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영국에 다양한 무역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본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의 중국봉쇄 요구에 선선히 따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태도를 보건데, 중국은 미국의 대중봉쇄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오히려 미국을 봉쇄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 같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봉쇄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은 미국시장을 포기할 경우, 사회주의 사상을 주장하면서 빈부격차를 줄여나가면서 내수시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이를 강제할 능력도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인구가 15억이다. 주변의 우호적인 국가까지 포함하면 최소한 20억은 넘는다. 20억이라는 인구는 별도의 경제체제를 돌릴 수도 있는 규모다.

최근 중국의 일각에서 자력갱생과 같은 용어들이 간혹 나오는 것은 여사일이 아니다. 중국이 최악의 경우 미국을 위시한 외부세계와 문을 걸어 잠글 각오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전세계는 급격하게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중국 지도부가 미국의 봉쇄를 당하는데 머물지 않고 오히려 미국을 적극적으로 봉쇄해 나갈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만일 중국이 미국을 봉쇄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중국은 미국의 외곽부터 때릴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영국인 것이다. 중국은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나갈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외곽을 좁혀 나가면서 미국을 봉쇄해나가려 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스스로 외부세계와 차단하면 중국없는 공백을 메우기가 어렵다. 미국은 지금보다 내수시장을 더 키우기도 어렵다. 내수시장을 키우려면 빈부격차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그런 조치는 현재의 미국에서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미국은 취약한 사회구조를 지니고 있다. 최근 권총이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우려하는 것을 보여주는 척도다. 미국의 경기악화는 즉각적으로 심각한 사회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남미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물론 미국도 그런 상황까지 가도록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후 서구역사의 발전이 동양의 전제정치라는 장애물앞에서 멈춰 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프랑스 혁명이후 서구사회가 추구해온 가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이 중국의 거센 도전을 당하게 된 것은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져서라기 보다는 그간 역사발전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고 진보시키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유리하면 가치를 내세우고 불리하면 그런 가치가 있기나 했었느냐듯 무시하던 행동들이 축적되면서 동양의 전제적 효율성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앞으로 미중간 갈등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미국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압력이 강해질 것이다. 특히 우리같은 나라는 중국과 미국의 압력을 동시에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을 선택할 것인가 중국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양자택일은 우리의 전략이 될 수 없다. 친미냐 친중이냐는 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무시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양자택일의 함정에서 벗어나면서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미래통합당은 이번에 통과된 임대차 법안이나 부동산 법안에 반대라고 한다.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다 보면 선의의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런 선의의 피해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는 안된다.

미래통합당은 무조건 부동산 법안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 것인지를 잘 살펴보고 그런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을 제시해야했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반대부터하고 토론에도 참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서민이 아닌 가진자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미래통합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미 가진자들의 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지지의 기반이 가진자들이라는 점에서 둘다 동일하다. 정책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문제에 대한 입장인 듯 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북한문제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도 북한과 진정성있는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북한문제를 국내정치적 지지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의 다주택 각료들에 대한 비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래통합당이나 그런 자들은 버젓이 각료에 남아 있는 더불어민주당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진정한 차이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아닌가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자신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를 감추기 위해 검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제 검찰은 거의 무력화되었고 권력은 경찰에게 집중되었다. 경찰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던 이승만 정권과 별차이가 없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렇게 폭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미래통합당 덕분이다. 그들은 제대로된 야당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과 안목 그리고 비전을 가지지 못했다. 미래통합당의 국회의원들은 존재감이 없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들 대부분이 구시대의 기름진 얼굴과 과거 시대를 옭죄었던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자신도 다를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야당이라고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파렴치한 것도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총선의 의미는 미래통합당을 해체하라는 것이었다. 구시대의 정치인들은 모두 물러나라는 이야기다. 똥묻은 놈이 겨묻은 놈 나무란다고, 미래통합당은 똥묻은 놈들이라는 것이다.

군사독재시대를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절망감을 느낀적은 없었다. 그때는 대항해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저항이라고 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고 외치던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비판하고 대항해서 싸울 사람과 세력이 없다. 대학은 이미 문제의식없이 내 일신만 생각하는 공부기계들로 채워져버렸다. 시민사회는 문재인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게 포섭되어버렸다. 시민사회도 문재인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이익공유에 참가했다.

경실련이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악을 비난하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울림이 없다. 시민사회도 한번 무너지고 나면 다시 도덕적 권위를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비고비 권력을 견제하던 호남은 권력의 부역자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만 이들 모두 필부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절망감은 해체되어야 할 미래통합당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으면서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기 대문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미래통합당이 해체해야 한다. 문재인 독재를 막아내고 저항하기 위한 중심이 새롭게 만들어저야 하는 이유다.

미래통합당이 망해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이유다.

검찰총장 투표로 선출하자

미국의 2분기 GDP 성장률이 -32.9%라고 한다. 미국 뿐만 아니라 거의 전세계가 최악의 상황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모른다. 3분기라고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오히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내 정치권의 관심은 세계적 경제위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번 7월은 유난히 시끄럽고 복잡한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대부분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오만과 실정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검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개탄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이 어떤 것이 문제인지에 대한 판단과 인식이 분명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 검찰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검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민군관계의 수립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보건데 군대는 헌정질서를 중단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서양에서도 군대가 직접 정권을 장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두번이나 군대가 직접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행사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민군관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의 원칙이 정립되었다.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의 원칙은 군대를 정치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같은 정치적 중립이라도 검찰에 요구하는 것과 군대에 요구하는 것은 그 내용이 다르다. 군대에는 아예 정치근처에 오지말라는 것이다. 여당이나 야당 사이에서 저울질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예 정치에서 분리되어 있으라는 의미다. 군대의 속성상 일정정도 보수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군대는 지키는 것이 기본임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토건 국민이건 이념이건 가치이건 마찬가지다. 군대를 정치에서 완전히 분리시키고 국가의 정책적 도구로 만드는 것이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의미에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들어섰지만 군에 대한 올바른 문민통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들은 군대를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 만드려고 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군장성의 인사와 보직을 통해 자신들과 가까운 장교들을 진출시켰다. 소위 정치군인들을 양성한 것이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이라고 하는 정권이 정치군인들을 양성하고 있는 것은 올바른 의미에서 문민통제와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권은 군인들을 정치에 끌여들임으로써 문민통제원칙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와 조금 의미가 다른 것 같다. 검찰에 요구하는 민주적 통제는 검찰을 군대처럼 아예 정치와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여당이나 야당에 편향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과거에 보지 못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정립된 원칙인지 아니면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만들어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까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통제’로 바뀐 의미가 무엇일까?

보도를 보면 검찰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에 선출된 권력이 통제를 해야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것은 검찰이 여당에게 호의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라는 것을 좋은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군대를 정치에 아예 접근도 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면, 검찰은 여당과 야당사이에서 저울질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지 않으면 국가의 기본이 무너진다. 선거도 무의미하다. 일방적으로 여당에 유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하면 민주적 절차가 붕괴된다. 검찰은 여당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입으로는 원칙을 말하고 뒤로는 원칙을 어기고 검찰이 정권의 개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운운하는 것은 정권의 개가 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정권의 개였다. 이제까지 모든 개혁은 검찰을 정권의 개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즘 다시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정권의 개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노골적이다.

만일 검찰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어서 문제라고 한다면 개혁의 방향은 검찰권력을 선출하게 만들면 된다. 그것을 민주적 통제라는 교묘한 말로 속여서 정권의 개로 다시 만들려고 하는 속셈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검찰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정권의 개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검사들과 정권의 개가 되어서라도 양명을 하고 싶어하는 검사들의 싸움이라 하겠다.

지금이 검찰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을 지키느냐 못지키느냐 하는 갈림길이다. 지금처럼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검찰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쉽지 않다. 윤석렬과 한동훈 같은 검사들은 그냥 돌연변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검사들 개인의 소신만으로 정치적 중립은 달성하기 어렵다.

만일 검찰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어서 문제라고 하면 검찰총장과 고검장들을 투표로 뽑으면 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감 선거도 하는 판인데, 국가의 근본을 흔들 수 있는 검찰권력을 투표로 뽑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검찰총장을 투표로 뽑자. 그래야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대로된 민주적 통제가 될 것이다.

미국의 중국봉쇄, 중국의 대응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고 하더라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언급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인 유럽의 사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이 중국과 교역을 중단하거나 차단하면 그 공백을 메우기가 어렵다. 미국이 그런 공백을 대신할 수도 없다. 유럽이 미국의 중국봉쇄에 참가한다고 하더라도 천천히 그리고 미국이 특별하게 요구하는 일부 품목에 한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과 교역을 줄여나가려면 대체할 수 있는 시장과 공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인도나 아프리카 혹은 남미를 발전시켜서 중국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매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실제로 중국에 별로 타격을 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도 그 사이에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미국의 봉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고 가정하면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이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들과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베네주엘라와 같은 국가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세계적 규모의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베네주엘라와 같은 국가들을 규합해서 새로운 세계경제체제를 구축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체제와 경쟁을 하는 양상을 고려할 수 있다. 이미 이란도 중국 러시아 이란의 전략적 관계 강화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베네주엘라가 서로 동맹체제를 구축한다면 전세계적으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체제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세력이다.

미국과 중국간 서로 경쟁하는 양상의 세계경제체제가 형성되면 그 가운데 회색지대에 위치한 국가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각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들은 그런 회색국가들을 향한 경쟁을 할 것이다. 경쟁의 대상이 되는 나라들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이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연결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도 미국이 자신들의 앞마당이라고 생각하는 중남미지역으로 진출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베네주엘라는 중국의 중남미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이미 일부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이런 동향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만이 가장 대표적인 국가라고 할 것이다. 대만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하는 것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미국으로부터 특혜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런 대만의 전략은 냉전시기 당시 자유진영의 쇼윈도우였던 한국의 경우와 비슷하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당시 자유진영의 쇼윈도우라는 특수한 지위 때문이었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서 미국편을 서고 중국을 배척함으로써 스스로 미국의 쇼윈도우와 같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확보한 것도 자신들의 지정학적 의미를 최대한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 만을 완벽하게 봉쇄해서 세계경제체제에서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중국을 세계체제에서 밀어내면 낼수록 반대세력의 결집은 더욱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체제에서 밀어내려면 동맹세력의 규합이나 결집보다 먼저 중국과 러시아, 중국과 이란, 중국과 북한, 중국과 베네주엘라의 관계를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백배는 더 효과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을 다루는 미국의 대전략은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냉전에서의 승리 경험이 너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대응도 바뀌어야 한다. 냉전에서는 자신들의 진영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진영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략의 우선순서는 상대방의 결속을 약화시키고 분리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중국 봉쇄, 유럽의 선택은 ?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 자본주의체제에서 축출하려고 하면 중국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 봉쇄이고 축출이지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완전하게 축출하고 봉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축출과 봉쇄도 냉전시대와는 양상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중국이 너무 많이 자본주의세계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봉쇄에 맞서기 위해 크게 두가지 정도의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미국의 봉쇄시도를 무력화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중국과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중국이 이제까지 구사해온 일대일로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이 자신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대일로를 구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은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럽은 중국으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을 하며 미국에게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아래는 2018년의 통계표다.

이미 프랑스는 화웨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독일도 화웨이 수입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하는 것도 미국과 유럽의 교역상황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최근들어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미국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유럽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며 무역흑자도 미국을 통해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은 우리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유럽은 중국과는 무역적자다. 미국은 유럽과 중국과 경제관계를 차단하거나 줄여나가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할 지도 모른다. 미국이 중국과 갈등을 냉전당시와 비슷하게 이념전쟁으로 몰아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한편, 유럽도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유럽은 교역규모의 축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미국이 유럽에게 중국과 관계차단을 지나치게 강요하면 유럽도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금까지 유럽은 존재감이 떨어졌다. 미국과 소련의 압도적인 힘에 눌려있었다. 유럽이 통합되면서 지금은 세계 제1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에 비해 영향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갈등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유럽도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유럽은 화웨이를 위시한 몇몇 사안에 대해서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되,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과 극단적인 교역축소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중국과 교역규모를 축소하면 그 자리를 노릴지도 모른다.

현재의 상황에서 중국을 냉전시대와 같이 봉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미 중국은 너무 많이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미국이 유럽을 중국봉쇄에 참가하도록 강요하는데 성공했다면 중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파트 짓자고 사관학교 옮기자는 나라

어제 언론사 한곳에서 최근 부동산 대책으로 검토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 이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어왔다. 기고를 부탁했지만 그냥 의견을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현재 태능지역은 육군사관학교의 위치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필요성은 있다. 지금부터 서서히 이전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도권 아파트 대책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옮긴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손으로 국가를 건설하지 않았다. 통상 국가건설을 전쟁의 역사이다. 서양에서 군인들을 우대하는 것은 국가가 군인들의 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가를 만든 것은 국가의 기득권층들이다. 서양 국가는 기득권층들의 피가 담겨져있다. 당연히 국가를 위한 희생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약속한다.

반면 한국은 국가를 그냥 주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득권층들은 국가를 위해 피를 흘리지 않았다. 한국전쟁도 미국이 대신 싸워준 것이다. 공짜로 국가를 그냥 얻다보니 국가이데올로기에 대한 개념들이 별로 없다. 사관학교를 아파트 짓기 위해 옮긴다는 것도 그런 국가이데올로기의 부재에서 나온 웃픈 코메디다.

서양에서 장교들은 주로 기득권층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관학교 가는 사람들 중에서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비율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사회의 기득권 층들은 대중의 희생에 기생해서 사는 것이 습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생해서 살 수 있는 자들이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군대에 갈 리가 만무다.

군대는 외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생명을 걸고 지킨다. 자신의 생명을 걸려면 한국이 지킬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한국을 지킬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려면, 오늘날 한국의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충분하게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와 국가의 일원이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풍요로움이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면을 포함한다. 문화적인 풍요로움이 주는 삶의 의미는 대단하다. 문화적 결핍에 살아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병사들이 약2년간의 군생활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문화적 소외라고 생각한다. 그냥 훈련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랜기간 동안 사회와 격리되고 문화적으로 소외되는 것이 힘든 것이다. 직업군인들은 거의 평생동안 문화적인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에서 소외된다.

퇴직하고 연금 주는 것만으로는 목숨을 거는 희생을 요구하기 어렵다. 퇴직군인들 중에서 반사회적 혹은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니는 것도 스스로 그런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을 경험하지 못한 반감의 일종이 아닌가 생각한다. 군인들에게 한국을 목숨걸고 지키게 하려면 그런 문화적 풍요로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사회와의 소통을 충분하게 경험토록 해야 한다.

경기도에서 때는 이때다 하고 사관학교를 접경지에 옮기자고 하는 것을 보고 그 경박함에 혀를 찰 뿐이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사관학교를 옮기고 거기에 아파트를 짓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국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가 군인들에게 어떤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기생적 기득권층에 불과하다.

장교로 임관하면 그 이후 한번도 서울에 와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은퇴하고 서울에서 주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게 하려면 적어도 사관학교 생도때 충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종로와 광화문을 걸어보고 연인과 데이트도 해보아야 한다. 멋있는 커피숍에서 여유도 즐겨보아야 한다. 너는 사관학교 들어왔으니 그냥 전방오지로 그냥 가라고 하는 것은 국가가 할짓이 아니다.

사관학교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방의 상징이라고 하는 사관학교를 아파트 짓자고 옮긴다는 것이 말이 되나? 옮기더라도 교육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좀 더 넓은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것도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수 있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 주변으로 옮겨야 한다. 그냥 보기싫은 놈 구석방에 쳐박아 놓듯이 접경지역 오지로 사관학교를 보낼일은 아니다.

경기도가 그런 제안을 한 것은 경기지사 이재명의 개인적 성향과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한몫보겠다는 기회주의적 태도로는 국가를 경영할만한 그릇이 될 수 없다. 국가는 경영의 효율성보다 철학이 더 중요하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 이재명까지 국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필요한 것 같다.

군대도 과거의 군대가 아니다. 사관학교 이전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공식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국방부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이나 정부의 정책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수용되지도 않을 것이 뻔한 주장을 비난을 무릅쓰고 할 것 같지가 않다. 그리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사관학교 이전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중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미국이 중국을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몰아내려 한다면, 중국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국의 최근 행동을 보면 이미 미국이 자신들을 세계경제체제에서 몰아내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미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전에 먼저 중국이 어떤 성격의 국가인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해 볼 필요가 있다. 분석하고자 하는 대상의 행동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그 정체를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점부터 정리해보고자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상당부분 자본주의체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자유화되지 않았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화되면 정치적으로 자유화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서구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같이 발전한 과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자본주의발전은 부르주아지들이 이끌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자유주의가 필요했다. 만일 자본주의적 발전에 전체주의가 더 유용했다면 전체주의적 경로를 택했을 것이다. 그런 점은 나찌독일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발전이 정치적 자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틀린 공식이다. 경제적 발전이 정치적 자유를 이끌어내는 것은 경제적 발전의 주체가 부르주아지일때만 가능하다.

국가주도로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정치적 자유가 같이 발전하기 어렵다. 한국은 국가주도로 경제발전을 했지만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경로를 거쳤다. 경제발전의 수혜자들인 한국자본가들은 정치적 자유보다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독재권력의 편에 섰다. 한국 자본가들은 경제적 이익은 국가권력을 통해 확보하고 정치적 자유는 시민들을 통해 얻었다. 한국자본가들이 서구자본가들보다 훨씬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자본가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어떤 국가적 사회적 희생도 치르지 않고도 이익만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가들의 행태도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한국의 재벌가에서 군대에 간 남성이 희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도 한국과 비슷하다. 중국의 경제발전도 국가주도로 이루어졌다. 중국의 자본가들도 국가정책의 일방적 수혜자일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번영을 가능케한 현재의 정치체제를 지키려하지 정치적 민주화를 추구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경제적 발전을 통해 중국의 정치적 변화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계산이 틀어지게 된 이유이다. 역사발전을 추동하고 있는 주도세력의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동양에서 특히 중국과 한국의 경우, 경제가 아닌 정치권력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중국은 2천년전부터 지금까지 자본이 역사를 움직인 경우가 별로 없다. 정치권력이 역사를 지배했다. 그리고 정치권력의 주체는 왕조였다. 그런점에서 현재 중국 공산당은 왕조나 마찬가지다. 청왕조에 이은 공산당왕조이다. 현재 중국에 있어 사회주의란 공산당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라 할 수 없다. 중국에 있어서 사회주의 이념이란 정치권력의 유지와 장악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청왕조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전체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은 전체주의 국가라고만 규정하기 어렵다. 중국국민들은 과거 유럽의 전체주의 국가들과 매우 다르다. 소련이나 나찌독일 치하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 중국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만 자제하면 거의 무한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정치적 참여를 제외하면 국민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상황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양상을 보인다. 과거의 용어로는 현재 중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미국이 중국을 전체주의 국가라고 몰아가는 것도 또다른 실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전체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지도층과 인민대중을 분리시키기 위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중국을 전체주의라고 규정하고 공격할 경우, 중국에서 오히려 역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인민대중과 공산당권력의 결속을 훨씬 더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미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문제는 영토적 분열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나뉘어지고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중국의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려면 전체주의라는 공격으로 정치권력과 인민대중을 분리시킬 것이 아니라 지방과 중앙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써야 했다. 중국이 기를 쓰고 홍콩을 장악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중국은 홍콩을 완전하게 장악 함으로써 미국이 중국의 지방을 분열시킬 수 있는 근거지를 완전하게 봉쇄하려 한 것이다.

원래 중국의 대응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삼천포로 빠졌다. 삼천포 갔다 온지 며칠되지 않아서 그런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는 이유, 패권경쟁을 넘어

미국이 중국과 교역을 상당부분 차단하려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이 월남전 이후 중국을 개방으로 유도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지금 미국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어느정도 납득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주기적인 경기 순환사이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인구도 늘어야 하고 시장도 커져야 한다. 소위 말해서 유효수요가 창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1920년대 인구가 20억이었는데 2020년대 인구는 70억이 넘는다.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문제는 인구가 증가해도 생산능력 확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초중반 전세계 경기가 하락하기시작했다. 미국이 중국의 개방을 결정한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로 추정가능할 것이다. 첫번째는 공산권의 분열이다. 미국은 중국을 개방시켜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을 노렸을 것이다. 두번째는 중국을 개방시켜 세계경제체제에 포함시켜 자본주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라도 이미 세계경제는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코로나19는 그런 경향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미국은 경기하강 국면에서 중국과 교역을 줄여나가려고 하고 있다. 현재는 화웨이를 노리고 있지만 앞으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과 교역규모를 줄여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은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비정상적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다. 미국이 중국과 관계를 단절하면 미국의 소비자들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값싸게 공급해오던 생필품 가격이 상승하고 미국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빈부격차가 격심했던 미국의 중하류층은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국내안정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일부 미국의 언론과 경제학자들도 그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과 경제관계를 줄여나가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앞으로 다가오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경기불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 두번째는 생산력과잉을 해소하는 것. 통상 두번째 생산능력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전쟁을 하곤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나 제2차 세계대전 모두 불황과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인정하는 바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셈이다. 유효수요의 확대로 해결할 수 없다. 사회주의에 필적하는 분배가 아니고는 수요를 창출할 수 없다. 가진자들은 아무리 망해도 자신들이 가진 것은 내놓지 않는다. 게다가 생산력 과잉도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을 할 수 없다. 핵무기의 시대에 전쟁이란 자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생산력 과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을 퇴출시키는 것이다. 물론 한꺼번에 퇴출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서서히 중국의 비중을 줄여나가면 충분히 생산력 과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즉 미국이 중국과 교역규모를 줄여나가는 것은 생산력과잉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중국의 거대한 생산능력을 배제함으로써 생산력 과잉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30년간 중국과 여타 국가들의 수출과 수입규모를 보면 미국이 어떤 길을 택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중국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수입의 비중과 비교해 보면 중국이 매년 어마어마한 흑자를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중국을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분리시키면, 결국 상당한 정도로 생산능력 과잉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미국은 공화 민주 모두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입장은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패권경쟁차원을 넘어, 아예 자본주의 무대에서 밀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지금 미국의 행동은 패권경쟁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런 경향은 지속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앞으로 상당부분 지속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냉전처럼 완전한 차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과 교역규모를 상당부분 줄여나갈 것이다. 결국 유럽 국가들도 상당부분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럼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

미국과 중국이 심상치 않다.

미국이 중국과 전면적인 관계단절을 결정한 것 같다.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요구했고 앞으로도 추가적인 중국 총영사관 폐쇄도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청두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요구했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외교갈등은 단순한 마찰을 넘어 미중관계 전반의 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에게 심각한 위기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단절하는 상황이 되면 한국도 미국과 중국중 어느 한쪽을 택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그런 요구를 받아 오고 있다. 최근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던 ‘경제번영네트워크'(EPN)이라는 것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봉쇄하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유럽과도 중국봉쇄를 위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려 하는 모양이다. 영국은 오래전에 미국편에 섰고 프랑스도 미국쪽으로 돌아설 모양이다. 아직 독일은 버티고 있는 모양이지만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고민과 대응방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자하는 이유를 추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의 조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그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외교전략이란 그런 다양한 상황의 전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국내문제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빠져있지만 국제정치적 분야에서도 지나치게 한쪽편만 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국내문제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무엇을 선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윤리적 도덕적 판단은 별로 쓸모가 없다. 오히려 윤리적 도덕덕 기준은 자국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지키는 수호자는 국가이며, 그 국가내에서만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의미있을 뿐이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도덕과 윤리란 상대방을 견제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그냥 이익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해지면 질수록 앞으로 우리사회는 친미냐 친중이냐로 갈등을 겪고 분열하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경향을 보면 앞으로의 국론분열도 냉정한 상황판단의 결과라기 보다는 기분과 분위기에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냉정하게 결정해야할 문제를 대중들의 기분과 분위기에 휩싸여서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 유불리를 따지는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닥치고 친미라든가 닥치고 친중이라든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익보다는 손실을 초래한다.

현재 정부는 국내정치의 실정으로 인해 쓰나마처럼 다가오는 당면한 국제정치의 격랑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

그동안 국내정치분야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중 패권경쟁이 향방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씩 정리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