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금강산 남측시설 제거언급의 의미

김정은이 금강산 남측시설을 제거하라는 의미는 기존의 남북경제협력의 틀을 무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앞으로 남북경협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자체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언급은 문재인 정부 등장이후 약 2년간의 남북밀월관계는 완전하게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분석은 다양할 수 있다. 먼저 북한의 불법무도함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은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상당한 잘못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잘못은 한쪽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존재다. 부정한다고 없어지지도 않고 싫다고 해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존재자체를 인정하고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 김정은의 발언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첫째 김정은이 먼저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해서’라고 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측이 일방적으로 해체하기에 앞서 남측과 대화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북한은 금강산에서의 이런 저런 시설을 제거하기에 앞서 ‘남측 부문과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대화를 요구해 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두가지 방향이다. 첫번째는 북한이 요구한대로 시설을 제거하고 금강산에서 완전하게 철수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지금이라도 시설을 새로 개보수하고 금강산 관광을 실시하는 것이다. 현정부가 북한이 요구하는대로 금강산에서 완전하게 철수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정부는 다시 시설을 개보수하고 관광사업을 재개하는 쪽을 선택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간 현정부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입장인 듯하다.   

관광은 유엔안보리에서 금지하고 있지 않지 않지만, 지금의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정부의 국제 국내 정치적 위상으로는 북한과의 관광을 추진하고 나갈 만한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만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지금과 다른 계산을 요구할 확률이 훨씬 높다. 북한은 지금보다 더 많은 댓가를 요구할 것이다. 과거에는 장소를 빌려주고 임대료나 받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동업자 이상의 관계를 요구할 것이다. 

김정은이 남측시설을 싹 걷어 내라고 지시한 것은 남북경협이고 뭐고 다 그만두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측과 합의해서’라는 한마디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두번째로 사실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은 ‘남에게 의존하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이라고 한 것이다. 그 선임자들이 누구인가 ? 김정은에게 선임자는 김정일이다. 이는 북한의 체제에서 매우 심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이 자신의 아버지를 비판하는 듯한 이야기를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부언론에서 평가한 것처럼 백두혈통의 신성함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으로 보아야 할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아버지인 김정일의 정책적 오류를 비판하는 행동을 하기 어렵다. 김정은은 북한의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다. 앞으로 적어도 30년간 우리는 김정은을 상대해야 한다. 매우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다. 이제까지 보여준 것을 보면, 그는 권력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어떻게 행사해야하는지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김정은의 발언은 나는 북한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으며, 권력을 행사하는데 어떤 거리낌도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김정은의 이번 발언은 앞으로의 남북협력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화해협력 이후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오던 기존의 남북간 협력의 공식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정일시대의 남북관계는 사실 남한의 시혜적 지원과 이를 바탕으로한 남한 기업들의 잠재적 특권을 내포하고 있었다. 김정일이 그런 관계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북한의 경제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 이후 북한은 상당히 많은 점에서 변화하고 있다. 먼저 경제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지고 있다. 김정은의 이번 발언은 그간의 경제운영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남북간 경제협력도 대등한 관계로 가져나갈 것임을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우리정부의 소극적인 행동과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정부는 유엔안보리의 제재가 아닌 부분, 즉 관광과 같은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지 않았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의 인도적 지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북한이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우리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앞으로 북한은 현정부와는 아주 제한된 대화정도만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리 북한의 속내는 평양에서 벌어진 남북축구대회에서 분명하게 보여준 바 있다. 북한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비난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의 그런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김정은의 이번 발언은 북한이 북미 핵협상이 실패했을때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이라고 선언한 의미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우 좋은 기회를 놓친 것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남북관계는 쉽게 풀고 가기 어려울 확률이 높다. 

쿠르드에서 한국을 보았다.

중동지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는 중동지역을 거대한 단일지역으로 본다. 중동지역을 하나로 보게 하는 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다.

그러나 중동지역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종교적으로도 이슬람은 수니와 시아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계속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뉘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인종적 언어적으로도 다르다. 이란은 아랍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란 문명은 그리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왔다. 적어도 문명에 있어서 이란은 그리스보다 앞선다. 그런점에서 시리아와 이라크 그리고 이집트같은 국가들은 인류문명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사막한가운데에서 아무것도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슬람이라는 아주 얊은 덥개 하나로 중동을 모두 싸잡아 보지만, 조금만 들어가보면 각자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중동지역을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의 경험이다.

중동지역을 하나의 동일한 지역으로 규정하려 한다면 가장 공통적인 것이 종교가 아닌 과거의 경험, 즉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한 경험이라는 것이다. 지금 중동이 겪고 있는 현상은 제국주의 지배의 후유증에 다름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한때 인류문화에서 가장 앞섰던 지역들이 모두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한 것이다. 그런 피지배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중동을 동일한 하나의 집단으로 보게 만든 것이다. 터키는 그런 점에서 다른 중동지역과 차이가 있다. 터키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역사내내 유럽의 국제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의 외교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세력균형을 이야기하면서 그 구성요소로 5개국가를 언급한다. 즉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 오스트리아다. 그러나 중세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터키는 유럽의 국제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력이었다.

유럽외교사의 기틀을 잡은 랑케는 유럽을 그리스 로마적 문명의 연속으로 파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터키는 유럽의 외교사에서 빠져버렸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를 빼고 어떻게 유럽의 외교사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력균형은 5개국가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평가도 지극히 유럽 일방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책을 읽어보면서 흔히들 너무나 당연한 상식처럼 이야기하는 세력균형과 5개국론이 어쩌면 편견의 산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르드 족은 영웅적인 역사를 지닌 비운의 민족이다. 십자군 전쟁때 유럽의 침입을 막아낸 것은 쿠르드의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떠돌고 있다. 유대민족보다 더 강인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쿠르드 족이다. 그들의 인내와 끈질김이 경의롭다.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 연민을 느낀다.

미국이 터키의 쿠르드 족 침공에 대해 오불관언하다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미국은 지금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군인들이 동맹인 쿠르드를 터키가 침공한 것을 허용했다고 해서 들고 일어난 모양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어가보면 그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터키야 말로 미국의 진짜 동맹이다. 터키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지중해로 나오는 것을 막아내는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말을 바로하자면 지금 터키와 쿠르드는 미국의 큰 동맹국과 작은 동맹국간의 싸움이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당연히 큰 동맹국의 편에 섰다. 그러나 비난이 거세지니까 쿠르드 편을 조금 드는 것 같을 뿐이다.

쿠르드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터키의 쿠르드 공격은 미국의 또 다른 동맹국이 공격해오면 미국도 꺼벙하게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쿠르드에서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면 국제정치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터키는 일본과 비슷하고 쿠르드는 한국과 비슷하다. 둘도 강한 동맹과 약한 동맹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터키의 쿠르드 공격에 대해 미국이 터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터키가 기존의 일방적인 미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러시아와 손을 잡을 것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서 미국은 터키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한국 경제침략을 손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 터키와 쿠르드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미국은 더 강한 일본에 의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작은 동맹의 이익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관건은 우리가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국가가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하나로 단합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둘다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국민들이 해야 한다. 정치에 그만 쓸려다니고 사실을 직시하자.

지도층의 거짓말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말이 많은 사람은 경솔해지고 교만해지기 쉽다. 그래서 옛날부터 침묵은 금이라고 하는 거란다. 너희들도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해라.” 부모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유독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50년가까이 귀에 생생한 것은 그것이 교육의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책을 읽어보고 스스로 생각도 해보았다. 천성적으로 원래 말이 많고 떠들고 놀기 좋아했지만 시간이 가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조금씩 말이 줄어들게 된 것도 아마 초등학교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교사는 가장 위대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바꾸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육여건이 좋지 않아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해도 교사는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살아오면서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물론 좋게 생각되지 않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 그분들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아 한다는 것을 일러주셨다는 점에서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직접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분들도 있었다. 수십년이 지나 동창들끼지 선생님들 이야기할때면 선생님들에 대해 거의가 비슷한 평가를 한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요즘 들어서 실감을 한다. 지금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자들은 별로 공부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은 공부잘하던 사람들이다. 좋은대학 나온 사람들이다.

그 좋은 머리로 세상을 속인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대중을 무슨 바보 멍청이로 안다. 자기가 쏟아 내는 말들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당장 지금 상황만 모면하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은 초등학교 교실보다 못하다. 나이가 들고 배움이 늘면 현명해지고 똑똑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내린 결론이 어떻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보다 못하고 더 용렬할까.

남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속여야 한다고 한다. 자신을 속이는것이 너무 일상화되어버려서 이제는 죄책감도 없는 것 같다. 유시민이 증거를 보전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반출했다는 말을 듣고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얼굴하나 붉어지지 않고 할 수 있을까? 그는 KBS와 JTBC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했다. 잘못알고 하는 말과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그는 분명히 거짓말을 했다.

그는 말을 많이 한다.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다보니 말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하늘은 한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주지 않는 법이다. 그는 말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재주는 가졌으나 절제를 하고 참는 법은 몰랐다.

유시민은 이미 공인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말이 세상에 나오고 돌아다니면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학교에서 똑바로 살아야 한다고 도덕교육을 아무리 하면 뭐하겠는가 ?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도층이 되는데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 이런 현상을 그대로 받아 들이려면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도덕 교육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어떻게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하는가. 거짓말을 하고 나서 걸렸을때 빠져 나오는 법. 대중을 속이기 위한 방법 들. 그런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따로 세상사는것 따로라면 그런 교육은 할 필요도 없다.

정경심이 뇌경색과 뇌종양이라고 하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매우 의심스럽다. 뇌경색과 뇌종양이라면 매우 위험한 병이 아닌가? 우리가 알기에 뇌경색과 뇌종양이라면 생명이 경각에 걸려있는 것이다. 당연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고 군대가 구데타를 하고 재벌이 중소기업을 훔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기본인 도덕적 가치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는 지탱하기 어렵다. 우리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거짓말이다. 잘못을 할 수는 있다. 인간인 이상 어떻게 완벽하겠는가 ? 그러나 거짓말은 차원이 다르다. 특히 권력을 가지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거짓말은 어떤 경우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조국도 많은 거짓말을 했다.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한말 중에 많은 것들이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그의 거짓말을 옹호하는 것이다. 진영논리가 윤리적 가치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진영논리를 주장한다. 아무리 진영논리를 주장하더라도 사회를 붕괴시키는 거짓말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사회가 무너지고 나서 진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공자가 정치의 기본은 도덕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서로 믿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정부패보다 더 큰 잘못은 윤리적 기반을 무너 뜨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정부는 정치의 기본에서 실패했다.

자식들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인생을 올바르게 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책임을 어떻게 지나.

공수처 결정과 시행시기를 따로하자

조국이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수처 법안 문제로 국론은 여전히 극단을 달리고 있다. 광장과 광장에서 서로 서로 비난하고 있다. 국민을 사이로 두고 양 극단의 세력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 통상 이렇게 양극단으로 나뉘는 것은 서로의 이익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이 이렇게 양극단으로 나뉘어서 집안싸움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검찰개혁해야 한다. 검찰이 너무 지나친 힘을 가졌다는 것은 누구도 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검찰이 그렇게라도 했으니, 권력층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비리를 행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저도 마찬가지다. 조국의 수사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탈탈 털어서 한가족을 인격적으로 살해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저는 조국이고 뭐고 권력층에 있는 사람은 특별히 잘못한 것을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엉뚱한데 마음을 쏟으면 국가가 무너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정감사때 윤석렬이 국회의원들에게 답을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복잡했다. 1980년대 국부독재시대 무법천지였던 군인들도 국회의원들에게 그런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용렬하고 못났다 할지라도 그들은 국민의 대표이다. 윤석렬의 태도는 국민을 상대하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의 그런 태도를 보고 뭐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수측에서 그를 차기 대선후보로 고려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저는 윤석렬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수사에 매진하는 것을 보고 그를 좋아했다. 그를 제대로된 검찰로 좋아한 것이지 정치인으로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는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수쪽에서 쑤신다고 해서 정치권에 발을 딛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공수처와 관련하여 또다른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았다. 자한당 곽상도 의원이 문재인 정권이 공수처를 추진하는 목적을 문재인 대통령의 딸 문다혜의 뭔지 모를 잘못을 비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곽상도 의원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곽상도 의원은 검사출신이니 검찰에 연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정치적인 모략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기는 어렵다. 뭔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공수처를 회기내에 통과시켜서 현정권에서 공수처를 구성해서 실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너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정권에서 공수처를 너무 밀어붙이면 문재인 대통령의 딸문제 보다 더 한 모략과 선전이 난무할 수도 있다. 이미 그런 경향이 보인다.

지금은 공수처 법안 통과문제가 마치 자존심 싸움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일부러 여당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다른 모든 아젠다를 빨아들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

정치권력은 국가를 잘 운영하고 미래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행사하는 것이다. 그냥 권력 자체를 보유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정치인으로 지도자가 된자는 항상 국민의 통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서로 싸우지 말고 조금씩 양보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즉 현정권에서 공수처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되, 그 시행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것이다.

지금 자한당에서는 문재인이 공수처를 만들어 장기집권과 자신들의 비리를 은폐하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공수처장의 임명과 시행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 이런 방식은 미국에서 주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당장 내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도 지나친 욕심이다. 너무 내가 많은 것을 하려고 하면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정치인에게 진정성은 생명이다. 그것은 신뢰이기 때문이다.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인은 생명을 잃어버린 고목이나 마찬가지다.

대학생들이 미대사관저 담벽을 넘는 뉴스를 들었다.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한동안 대학생들이 현실문제에 나서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미대사관저의 담을 넘는 것은 국회가 제대로 할일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공수처에 매몰되어 마비되었으니 대학생이 나서게 되는 것 아닌가? 모두들 정신좀 차리자.

우리정부의 일본정책 방향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요 며칠새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한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 느껴진다. 최근 일본과 관련된 특이사항은 크게 세가지 정도다.

첫째는 이낙연 총리의 방일이다. 일본 천황의 즉위식에 참가해서 한일관계를 이야기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두번째는 정경두 국방장관이 국정감사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취소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세번째, 그동안 지속되어오던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동력이 떨어졌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유니클로는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유니클로 광고에서 ’80년도 더 된일을 어떻게 기억하니?”라는 광고 카피를 내보내면서 한국인들을 조롱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위의 세가지 일들이 각자 다른 것 같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제전쟁이후 그토록 견실하게 유지되어 오던 일본상품 불매 운동이 이렇게 붕괴되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국사태 때문이다. 온통 조국사태에 매몰되어 있는 바람에 일본에 대한 정책을 냉정하게 세워나가는 일을 하지 못했다. 조국이 법무장관으로 출사할때 죽창가를 부르면서 일본과의 싸움을 예고했지만 결국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조국사태가 진행되면서 일본과의 외교 경제전쟁은 친일파 척결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애시당초 조국을 위시한 정부여당은 일본과 제대로된 관계를 설정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조국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마치 북한 김정은과 대화나 회담을 국내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과 똑 같다.

북한은 무관중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일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때 꽉찬 스터디움에서 연설을 하게 하고 환영한 것과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무관중 축구대회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당신과 관계는 끝났다’는 사인이나 마찬가지다.

국제관계나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게 되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정치가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면 국가가 위험해 진다. 우리는 그것을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표현하곤 한다.

일본 불매운동의 동력이 상실된 것은 현정부와 여당의 책임이 크다. 괜히 아무 결과도 없을 조국사태를 자초하여 국민들의 여론을 집결시키고 단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유니클로 매장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을 우리 국민의 냄비근성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정부 여당이 제대로 정책의 우선순서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니클로에서 80년 이야기를 만든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통상 할머니와 손녀는 기껏해야 50년이나 60년 차이가 정상이다. 그 범위를 넘어가면 통상적이지 않다.

모든 이상한 것들에게는 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80년을 일본의 과거사와 연관시키는 것은 광고를 만들때 그런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론의 분열은 일본 유니클로라는 개인 기업으로부터 조롱을 받은 상황까지 초래한 것이다.

두번째 정경두 국방장관의 발언은 이미 우리정부가 일본과 지소미아를 지속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일본과 상당한 싸움을 하면서 지소미아 파기라는 강수를 두었다. 현정부와 여당이 처음부터 지소미아 파기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에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한 것은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였다.

정경두 국방장관이 이런 발언을 하게 된 것도 조국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아마 국방장관의 발언은 사전에 청와대와 교감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정부와 여당이 지소미아 파기를 취소하기로 결심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것은 국내정치여건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정권이든 국내에서 지지도를 상실하면 외부의 지원을 기대한다. 국내정책을 잘못하면 대외정책에서 그것을 메꾸려고 하는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를 취소하면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혹시 일본과 사전 교섭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봐서는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댓가없는 우리의 일방적인 파기 취소가 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정부에게 지소미아 파기 취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만일 이번에 아무 댓가없이 지소미아 파기를 취소하게 되면 한국은 일본에게 외교적으로 결례를 범했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즉 앞으로 한국은 일본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낙연 총리가 일본을 방문해서 아베총리를 만났을때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가 지소미아 파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낙연은 이 문제를 잘 풀어서 국내정치에 화려하게 등장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친문세력이 궤멸한 상황에서 자신이 김경수나 조국의 대타로 대선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이낙연 총리가 일본에 가서 우리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까지 일본내부의 여론과 분위기가 그리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아베 정부가 지금 한국과의 관계에 조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얼마전 태풍사건에 안이하게 대처해서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 아베수상은 이낙연 총리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지금보아서는 문재인 정권의 대일 정책은 총체적인 패배로 끝날 확률이 높다. 아쉽다. 조국사태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문재인 정권은 상종가를 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잘못하면 그 잘못이 연속해서 되돌리킬 수 없게 상황을 악화시킨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그런 경우에 처한 것 같다.

너무 성급하게 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망치는 수가 있다. 급할수록 천천히 해야 한다.

조국사퇴이후 상황, 정치인의 책임

조국 사태이후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조국이 사퇴하고 나면 그에 따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조국의 임명과 지지 그리고 사퇴는 정치적 결정과정이다. 조국이 완주를 하기 어려운 것이 뼌히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한 것은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약 3개월 동안 국정을 혼란으로 몰아 넣은 것은 당연히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청와대 참모진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대통령이 결심했으니 나는 모르겠다고 하고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면 안된다. 청와대 참모진들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대신져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정치 그렇게 했다. 그런 정치적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곧바로 대통령이 지게 된다. 박근혜가 탄핵당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도 청와대 참모들이 스스로 대통령을 대신해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더라도 너무 늦게 졌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 모든 공격이 집중되었다.

현정부의 청와대 참모들은 박근혜의 청와대 참모보다 더 못한 것 같다.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임명 결정을 막아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퇴를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마치 남의 일보고 있는 것 처럼 해서는 안된다.

조국의 임명을 지지하고 그를 지원했던 정치인들도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범여권의 거의 모든 중진 정치인들이 조국을 지지지했다. 이낙연 총리,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 내표, 유시민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부겸 장관 심지어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까지 모두 조국의 임명을 지지했다.

정치인이 누구를 지지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이다.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조국이 불명예스럽게 마치 도망가듯이 사퇴하는 상황이 되었으면 당연히 자신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결정을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른 과실은 자신이 진다. 시장에서 조그만 좌판을 놓고 장사를 하는 상인도 결정에 따른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져야 한다. 손실을 짊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 자한당이 민주당을 초월하려는 기세로 올라가는 것은 민주당 사람들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보아하니 이낙연 총리를 당으로 불러서 이해찬을 대신하는 비대위 비슷한 것을 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문재인 주변의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낙연도 조국문제의 책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낙연은 총리로서 각료에 대한 제청권을 가지고 있다. 조국의 임명은 이낙연 총리의 제청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이 제청한 조국이 중간에 낙마했으면 이낙연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자리를 바꾸어서 민주당을 혁신한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문재인 주변의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만 하다. 아마도 이낙연을 앞에 내세워서 호남의 민심을 붙들려고 하는 것이리라. 만일 호남사람들이 이낙연을 보고 민주당이 이런 상태로 그대로 가는데 지지를 한다면, 호남은 스스로 왕따를 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호남은 스스로 사망신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낙연 총리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옳다. 지금은 이낙연 총리가 당으로 가서 쇄신을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때다. 어떻게 그런 것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국의 사퇴가 언론과 검찰의 결탁에 의해 무고한 일가족이 무참히 짓밟힌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조국을 사퇴시킨 대통령과 여당이 모두 비겁한 일을 한 것이다. 만일 조국과 그 일가가 무죄가 된다면, 무고함에도 여론에 떠밀려 조국같은 위대한 개혁가를 내다 버린 문재인과 청와대 그리고 민주당 지도부는 어마어마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인은 순간순간 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최근 민주당에서 정치인같은 사람을 딱 한사람 보았다. 금태섭 의원이다. 오로지 그 한사람만 일관된 윤리적 가치와 정치적 비젼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은 금태섭과 박용진 등 몇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원직 사퇴하고 물러나야 한다.

떨어지는 지지도를 만회시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해야 한다. 대충 사태를 무마하려고 해서는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내 목위로 떨어지는 칼날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손가락으로 잡으려다가는 그 중력에 내목이 짤린다. 내 팔로 목을 막고 뼈로 칼날을 막아야 한다. 팔하나는 완전하게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을 구할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칼날이 처음에 떨어지려고 할때 재빨리 잡았으면 손가락 두개로도 칼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그 칼날이 한참을 지나서 내목에 떨어지기 직전의 상황이 되면 내 두팔을 모두 내놓아도 그 칼날이 내목을 치는 것을 막기 어렵게 된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조국 사태가 발생했을때 기를 쓰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뻔한 일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으니 어리석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조금만 더 지나면 정권은 넘어갈지도 모른다. 자한당으로. 뼈를 깍는 혁신이 없으면 민주당은 해체되고 대통령도 탄핵될 지 모른다. 이미 블룸버그 통신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

반성, 화풀이 하려고 정치하면 안된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정치적 분위기의 변화를 느낀 것은 노무현 때부터다. 노무현 당시의 대선은 그 이전과 상당히 다른 것을 느꼈다. 소위 ‘노사모’라는 것이 생겼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두사람은 모두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의 이상과 비전에 공감을 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그 어떤 정치인들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무현과는 매우 달랐다. 사람들은 양김의 개인적인 매력보다는 가치를 지지했다.

노무현 당시의 대선은 일종의 팬덤현상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노사모’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노무현은 연예인과 비슷한 형태의 지지를 받았다. 마치 ‘오빠 부대’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우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이후 한국정치는 이념과 이상 그리고 가치보다는 개인적 매력을 중심으로 하는 팬덤현상이 지배한 듯 하다.

보수정당도 그런 현상을 띤 듯하다. 박근혜도 노무현과 비슷한 방법을 이용했다. ‘박사모’가 만들어졌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파악할 틈도 없었다. 그런 현상을 이미지 정치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라는 사람의 본질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국민들을 지배했다. 박근혜의 탄핵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박근혜 뒤를 이은 문재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위 문빠라고 하는 개인적 팬덤층이 형성되었다. 문빠라고 하는 집단은 그 이전의 노빠들보다 훨씬 그 힘이 강력해졌다. 노무현때는 팬덤을 통해 대통령을 만들었다. 그러나 문빠의 시대는 팬덤들이 문재인을 움직이는 상황에 까지 오게 된 듯하다.

최근 조국 사태를 보면서 문빠와 조빠가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빠보다는 조빠가 훨씬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같았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미래권력이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 조빠들에게 지금의 문재인 정권은 조국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인큐베이터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조국사태로 인해 드러나 조빠들은 전통적인 도덕과 이상 가치와 같은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일부 평론가들이 최근의 현상을 파시즘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은 거의 예외없이 다 거기에서 거기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한다.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그 중 일부가 목숨을 걸고 이상과 가치 그리고 비전을 위해 헌신한다. 우리는 그것을 도덕적 용기라고 한다. 일반 대중들은 그런 사람에게 빚을 지고 산다. 그런 사람들은 존경을 받아야 하고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대접과 존경도 합리적인 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최근 조국을 둘러싸고 그를 목숨걸고 옹위하는 문인과 지식인들을 보면서 글을 읽는자들에게 실망을 많이 했다. 거의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신앙적 수준의 믿음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정상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집단광기’라고 한적이 있었다.

모든 인간은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다. 그것은 그가 위대한 성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성스러울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스스로 자신을 경계하고 주변에서 비판해주지 않으면 마음가는대로 간다. 그때 마음은 본능이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조국이 지금과 같은 사태에 직면한 것은 그가 비판과 비난을 했지만, 스스로 비판받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정수석이란 강력한 정치권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누구로터 제대로 견제를 받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한다. 행동이 누적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누적되면 성격이 된다고 했다.

아무도 자신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으니 무엇이 무서웠겠는가? 민정수석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도 조국이 사모펀드 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는 권력에 취했고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정치 문화는 빠들의 세상이 될뻔했다. 노빠에서 박빠로 그리고 문빠로 다시 조빠로 이어질 뻔 했다. 빠들이 이어지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조빠가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소위 글깨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586의 기득권 이야기로도 해석하기 어려운 것 같다. 뭔가 모를 ‘가치의 아노미 현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뭔지 모를 것들이 사람들에게 마치 예수와 미륵같은 구세주를 바란 것이 아닐까? 조국은 조빠들에게 마치 예수나 미륵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명심할 것은 인간은 더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규제되지 않고 서로 견제되지 않으면 인간은 끝까지 간다.

그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보다는 그사람이 추구하는 이상과 비전을 보고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된 지도자를 찾을 수 있고 그래야 우리의 삶 우리 후대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

정치는 화풀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제 팬덤 정치 할만큼 해봤으니 다시 돌아가자 도덕과 가치 이상 같은 다소 고리타분한 것으로.

정치의 역할, 우선순서 정하기

정치를 자원의 분배라고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것이 돈이던 물건이든 혹은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간도 중요한 자원에 속한다. 성공하는 정치를 위해서는 목표를 잘 수립하고 자원을 적시적절하게 투입해야 한다. 물론 투입하는 자원과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서 우선순서를 잘 정하는 것을 빼 놓을 수 없다. 우선순서를 잘 정해야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조국 정국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중요한 아젠다들을 모두 다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정국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국정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의 경제침략이었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정아젠다였다. 모처럼 국민들의 뜻이 하나로 모였다.

결국 지소미아가 파기되었고 우리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정부 관료, 기업 그리고 국민들이 모처럼 혼연일체가 되었다. 국민들은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일본상품 불매를 했다. 기업들은 국산화를 위해 노력을 했고 정부부처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국문제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그냥 사그라져 버렸다. 지금 국산화와 기술자립을 위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중요한 일들은 그 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하고 있고 그 중에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불똥이 튀어 떨어질지 알 수 없다. 북미대화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미국이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위비 분담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노동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노동문제란 민노총이 주장하던 것과 다르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노동문제는 거의모두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의 분출이다. 진보정권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이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뒤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든 것을 뒤덮을 만큼 조국문제가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정권출범하고 나서 2년이 넘도록 검찰개혁이란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국이 튀어나오면서 검찰개혁이란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국정 아젠다로 등장했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잘 보아주려고 해도 지금 갑자기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조국이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한 얄팍한 꼼수라는 것 이외에 어떤 납득도 하기 어렵다. 복잡계 이론에 프랙탈 구조라는 것이 있다. 조국이 보여주는 행태는 일반적으로 현정권 전체에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부패와 부정의 프랙탈 구조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개혁을 주장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조국에 대한 수사는 법원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방해받고 있다. 이제는 어떤 수사결과가 나오더라도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특검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법원의 영장발부문제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아마 국회에서 특검이 아니라 특별법원 설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회가 제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국민들의 직접적이고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확률이 높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정말로 바란다. 지소미아를 끝까지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그래야 우리나라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문재인 정부가 해주길 바랬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가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대학생인 아들과 아침에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나 중요한 변곡점에 있는 것으로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조금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답답했다.

늦다고 생각할때가 빠른법이다. 조국을 사퇴시키고 우리는 살아가자. 조국이 우리의 삶을 대신해주지는 않는 것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께서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장악하기 바란다.

잘못하면 앞으로 2년반을 혼란과 혼돈속에 살아야 한다. 그런 상황이 초래되면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최악은 피해야 하는 법 아닌가 ? 지금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이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다가는 정말 권력을 말도 안되게 자한당에게 넘겨주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자한당이 민주당보다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다행히 조국의 퇴진문제가 나온다고 한다. 빨리 뭔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더 이상 늦으면 안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권력과 재물

우리가 사회와 국가를 이루고 사는 이유는 그런 혼란함을 정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정하기 위한 것이 하닐까 한다.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 이유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뭔가 기여하기 위한 이타적인 이유일 것이다. 권력행사가 이상하게 되어가는 배경에는 그런 이타적인 마음이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일본을 통일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권력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모양이다. 그는 권력을 가진자는 재물을 가질 수 없게 했고, 재물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가질 수 없게 했다. 철저하게 균형과 배분을 강조했다. 막부의 권력행사도 그러했다. 큰 번들은 막부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했다.

권력을 가진가자 재물에 욕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타락하고 그로 인해 정치는 무너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현대사 이후 우리나라 정치는 대부분 부패한 경우가 많았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돈을 탐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누군가 메이지 유신이후 정치를 할 수 있는 자격으로 일가의 생계는 충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스스로 자기 식구 먹여 살릴 정도의 능력이 없으면 정치에 나설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부패를 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메이지 당시의 그 유명인사가 한 재산이라는 것은 많은 돈을 말하지는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저 식구들 건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며칠전에 국회의원들의 재산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공시가격으로 20억대 중반이라고 한다. 쇼크였던 것은 진보를 표방하는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의 재산이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금 머리가 복잡했다. 돈이 많다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대표가 가진자들이라면 그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들이 가진 돈은 분명 일가의 생계를 책임지는 범위는 넘는 것 같다.

궁금해졌다. 그들은 무슨생각을 할까? 조국 문제로 586을 기득권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재산을 보면서 그런 비난과 비판이 틀린 이약기가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진 것에 의해 사람의 행동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렇게 보면 민주당 이나 자한당 국회의원들은 우리 사회 최상층의 기득권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그들은 공동이익운명체이다. 최근 정치상황을 보면서 자한당과 민주당이 국민들을 좌우 양쪽으로 갈라치기 하려고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들의 재산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들을 양 극단으로 몰아가면 결국 어떤 방향이든 기득권의 틀로 국민들이 갖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정부 들어와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문제에 대한 정책과 재벌문제에 대한 정책이 보수정권의 경우와 별 차이가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양 극단에 있는 것은 서로 통한다고 한다. 결국 서로 반대를 주장하지만 그들은 몸통의 꼬리와 머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국면을 타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그러나 국민들의 무당파가 급증하고 있다니 그나마 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촛불혁명의 완성은 우리 사회에 이런 양극단의 기득권을 몰아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말은 쉽지만 과정은 쉽지 않으리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은 국민의 몫이 아닌가 한다. 국민들이 판단하고 평가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정치는 오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보수 진보 기득권들도 그동안 자신들이 누린 것에 만족해야 한다. 정치는 후대를 위해 해야 한다.

국회의원 재산을 보면서 우리도 토쿠가와 이에야스시대처럼 권력을 원하면 돈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웨덴 정치인들은 돈없이 깨끗하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가 잘 된다고 한다.

권력이 돈과 결탁하면 지저분해진다. 그것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실망과 분노사이, 윤석렬 음해 건을 보면서

한겨울 그 매서운 추위속에서 광장을 서성였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그 자리에 같이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지애를 느꼈다. 전쟁이 나면 옆에 전우가 있어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해 겨울 나를 그렇게 분노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저를 가장 분노하게 했던 것은 소통의 부족이었다. 청와대에 앉아 있던 여왕께서는 몇년동안 군림하고 통치를 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신하이자 백성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게다가 군사통치시대의 암습한 기억의 유산들이 여기저기에서 소환되기 시작했다. 특권과 불공정 그리고 정보부처의 공작 등등이다.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었다. 이제는 정말 잘 해주기를 바랬다. 내가 광장에서 칼바람 맞아가며 만들었던 정권이었다. 80 노모와도 큰소리로 싸워가며 만든 정권이었다. 그런지 2년동안 실망만 했다. 그 2년동안 무엇을 했나?

재벌개혁?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의 이재용을 자주 만나서 지원사격해주는 것이 재벌개혁이라면 그렇다.

선거법 개혁과 개헌 ? 정권을 수립한 이후 곧바로 착수했으면 이미 끝나고 말았을 일이다. 지금처럼 패스트 트랙이니 뭐니 할 일도 아니었다.

검찰개혁 ? 그때 했으면 이미 끝났다. 2년동안 적폐청산하면서 반대파에 대한 정치보복하다가 시간 다 보냈다. 그중에서 꼴보기 싫은 사람들 처리한 것은 시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검찰개혁 운운하는 것은 이상해도 한참은 이상하다.

난 정치권력이 일정정도 검찰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을 것 같으면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나? 정치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정치중립은 오히려 더 큰 악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정치권력을 벗어난 검찰권력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일을 잘 아는 지인 한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왜 문재인 정권이 이런 상황에 빠졌을까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사람은 정권초기에 야당이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냥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제대로된 개혁을 하기보다는 엉뚱한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엉뚱하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부정과 부패’라고 했다. 최근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이다. 세상에는 경륜을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 분은 이미 오래전에 문재인 정권이 부패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김태우 수사관이 반발하는 것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정권의 실세들이 부패에 물들어 있지 않으면 김태우같은 말단 관리들이 저렇게 반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패? 어느 정권이든지 적당히 다 썩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박근혜 정권때는 지금보다 부패의 냄세가 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통 부족으로 울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부패가 우리 사회를 덮고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국정농단 수사들 했지만 무엇을 받아 먹었다는 것이 최순실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순실이 받아 먹었다는 것도 냉정하게 보면 지금 사모펀드니 뭐니 하는 것 보다 그리 질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유라 건은 조민의 건에 비해보면 어벙벙한 수준에 불과하다. 조민 건은 아주 지능적이다. 아무리 보아도 정유라 건보다 조민 건이 나쁜 듯 하다.

채동욱은 실제 문제라도 있었다. 처음에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 그가 그런 것을 몰랐을까? 아마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해서 채동욱을 검찰총장에 임명했을 것이다. 아주 나쁜 짓임이 분명하다. 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누구였을까? 그는 지금이라도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윤석렬이 건축업자의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보도는 질적으로 더 나쁘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윤석렬 음해 사건은 누가 일으킨 것 일까?

조국은 당장 자신이 검증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그것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꼬리 짜르기를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냥 신문만 보고 있는 사람도 이번의 윤석렬 음해 사건 배후에 뭔가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정원이 공작한 것보다 더 나쁘다. 국정원이야 애시당초 공작하는 것이 그들이 임무다. 그런데 이런 정치공작은 누가하는 것인가

실망스럽다. 이런 것은 밝히고 넘어가지 말아야 하나?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이런 꼴을 보려고 내가 광화문 광장에 서 있었나.

한겨레 신문에서는 이런 것을 몰랐을까? 제 생각에는 한겨례 편집진은 모두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겨레 기자가 아닌 한겨레 21 기자를 이용한 것 아닌가 ?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남을 이용하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다. 만일 그렇다면 한겨레 신문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분노를 느꼈었다. 그런데 이제는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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