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가치의 붕괴, 트럼프와 문재인의 공통점

몇년전 잘 알고 지내던 미국인 노교수와 이야기 하다가 트럼프가 남북관계에 전향적으로 나오고 있으므로 한국의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더 좋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그 교수가 뭐라고 말은 하지 못하고 그냥 그 큰 눈으로 놀란 듯이 날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 말하지 않고 나를 바라만 보는 얼굴에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읽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는가? 하는 것 같았다. 나와 개인적인 관계를 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화가 나서 실신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얼마전 선배님 한분과 그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무리 한반도의 남북관계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세계사적 보편적 가치에 정면도전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선되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 아마도 제대로 된 지식인으로 받아 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이비란 지적이다.

우리는 다양한 차원의 삶을 살고 있다. 가정과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다양한 차원의 삶이 일관되기란 매우 어렵다. 사회적 가치가 가정의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면 사회적 가치가 붕괴될 수 있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국가와 세계도 그렇다. 한마디로 우리는 서로 모순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살고 있다.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가는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가장은 가정을, 사회지도자는 사회를, 국가 지도자는 정치를, 세계의 지도자는 세계의 미래를 우선시 해야 한다. 만일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가 가정을 우선시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런 것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이 지식인이다. 현재 한국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아야 할 지식인이 문제를 일으키고 더 나아가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조국과 윤미향을 질타하는 것은 그들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국가와 사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조국을 백번을 털던 천번을 털던 비오는날 먼지나게 털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로서 의당 지녀야할 <보편적 가치>를 지니기는 커녕 훼손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을 비판하는 것은 국가의 지도자라는 자리에 않자 의당 지켜야할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고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당적 이익을 위해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라는 것도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충돌할 수 있다고 본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입장에서 보편적 가치란 남북관계의 발전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인의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란 남북관계와 같은 지엽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이 그 노교수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본 이유일 것이다. 그녀에게 난 세계사적 보편적 가치를 한반도의 협량한 이해관계로 훼손하려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마치 내가 조국이나 윤미향 그리고 문재인을 지지 옹호하는 사람을 바라 보는 시각과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트럼프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거짓말장이고 사기꾼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사회를 통합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를 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미국의 불행이 되고 그것은 세계의 불행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와 문재인의 케미가 너무 잘 맞았는지 모르겠다. 한참전 남북관계에 관여한 분에게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케미가 잘 맞아서 남북관계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트럼프와 김정은의 케미보다 트럼프와 문재인의 케미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트럼프와 문재인의 케미가 잘 맞는 것 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 둘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보다는 증오와 혐오 같은 부정적인 기재를 즐겨 이용하고 끊임없이 원인과 결과를 왜곡시켜 나가는 점에서 너무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미국인 노교수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고 나는 겨우 한반도에 머물고 있었다. 어떤 세상에서 사느냐에 따라 생각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 같다.

각설하고 트럼프와 문재인은 둘 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닮은 꼴인 것 같다.

바이든이 트럼프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될 것 같다. 미국은 혼란을 겪었다. 그래도 잘못갔던 길을 돌아오는 복원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둑맞은 촛불혁명, 그러나 포기는 말자.

문재인 정권은 사이비 촛불혁명 정부다. 촛불혁명 세력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혁명으로 등장한 정부가 혁명세력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 경우는 촛불혁명만 그런 것이 아니다.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도 그랬다. 1830년과 1848년 혁명의 전투원들은 노동자들이었다. 혁명이후 들어선 정부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표했다. 혁명의 최전선에서 싸운 사람들은 노동자들이었지만 그들은 혁명이후에는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노동자들은 조직되지 않았고 구심점이 없었다.

촛불혁명도 1830년과 1848년의 혁명과 비슷하다. 촛불혁명의 전투원은 상식적인 일반시민들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과실은 문재인 정권에게 돌아갔다. 문재인 정권은 참칭 촛불혁명세력일뿐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는 혁명의 주도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사이비들이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을 도둑 맞은 것이다.

현재의 문재인 정권은 굳이 비교하자면 1848년 혁명이후 등장한 루이 나폴레옹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혁명을 통해 등장했지만 혁명을 배신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권과 너무나 비슷하다.

촛불혁명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촛불혁명이 완성되려면 촛불혁명의 대의가 구현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때 광화문 거리에서 무엇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는가? 그때 마음에 새긴것이 지금의 문재인 정권에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

현재의 문재인 정권은 당시 대중들의 바람을 정확하게 역행하고 있다. 너무나 닮은 꼴로 이명박근혜를 닮았다. 권력형 부정부패는 이명박 정권보다 더 했으면 더했고 국정농단은 박근혜 정권도 혀를 찰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이 건재할 수 있는 것은 민주당 권리당원의 26%중에서 당헌당규를 바꾸는데 찬성한 86%의 소위 대깨문이라고 불리는 문재인 홍위병들 덕분이다.

혁명은 주도세력이 권력을 잡지 못하면 실패한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촛불혁명을 완성시키려면 촛불혁명 주도세력이 권력을 잡아아 한다. 촛불혁명 주도세력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시민이다. 그런 시민들의 갈망을 담아 내는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촛불혁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상식적인 세상은 결코 그냥 오지 않는다.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다. 다행히 우리사회에는 그런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촛불혁명세력은 촛불혁명의 대의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촛불혁명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고 한 사람들은 촛불혁명의 배신자이다. 문재인 정권과 그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 촛불혁명의 배신자들인 것이다.

배신자들을 철저하게 단죄해야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촛불혁명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한 상태로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도둑맞았다고 좌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포기가 실패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

앞으로의 미국은 어떻게 될까?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오늘 저녁 정도면 어느 정도 선거 결과의 윤곽이 잡힌다고 한다. 트럼프는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때부터 파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트럼프 당선이후 극심한 분열을 보였다. 남북전쟁이후 미국이 지금처럼 분열한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런 분열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겪는 분열은 다름아닌 경제적 한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고 했다. 미국 경제가 괜찮을 때는 인권과 자유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그들이 주장하던 인권과 자유 같은 이상을 더 이상 추구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이 인종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경우는 백인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유색인종들을 여유있게 바라 볼때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면 인구면에서 다수인 백인들 중심의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다.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나선 것도 미국의 경제가 갈수록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때문일 것이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중국에게 추월당하면 미국은 이등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만일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냥 경제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더 이상 미국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미국은 거대한 인종적 문화적 통합을 바탕으로 구성된 나라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런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시기에 드러난 인종주의적인 경향은 미국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통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통합은 점차 불가능해진다.

미국은 연방국가를 유지해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각 주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가 남부 시실시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으려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는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처럼 언어외에 다른 접착제가 없는 국가의 경우 분열을 통한 각자 도생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

트럼프가 되느냐 바이든이 되느냐에 전세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누가 되는지 간에 현재 미국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그는 전통적인 미국의 태도로 돌아갈 것이다. 전세계적인 동맹정책을 통해 중국을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하려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은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역할을 손절하려 했다. 어느 정도 미국의 역할을 줄여나가면서 미국 내부의 발전을 통해서 급격한 위상추락을 방지하고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바이든은 아마도 미국의 지도적 지위를 과거처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런 방식은 미국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전세계적 리더십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의 미국은 그런 대가를 지불하기 어렵다. 결국 바이든이 생각하는 미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더 빨리 무너지게 되는 현상을 초래할지 모른다.

트럼프는 미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처방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세계패권국가에서 패권국가중 하나로 위상을 떨어뜨려가는 과정을 연착륙으로 해결하려 한것이다. 현재 미국이 처한 실력으로 볼때 바이든 보다 트럼프의 정책이 훨씬 합리적일 수도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합리적인 정책을 비합리적인 행동과 태도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되든 바이든이 되든 미국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트럼프가 되면 미국의 분열을 통합해나가기 어려울 것이고, 바이든이 되면 오히려 극격하게 미국의 패권을 상실하는 경착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안보도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결국 한국도 각자도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시기가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시민혁명; 후안무치와 시대착오를 넘어

바야흐로 국민들이 다시 한번 혁명을 이끌어갈 시기가 다가 오고 있다. 어제 더불어민주당은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문재인이 당대표때 만든 당헌을 이낙연이 당대표로 와서 고쳤다. 허세이며 허수아비에 불과한 이낙연이 문재인의 뜻을 거슬렀을리 없다.

당연히 문재인이 그렇게 시킨 것이다. 다른 해석은 가능하지 않다. 문재인은 자신의 말을 당원들의 뜻이라며 손바닥 뒤집듯 바꾸었다. 전체당원 26.63%가 투표에 참가하여 86.64%가 당헌당규 변경에 찬성했다고 한다. 압도적인 찬성이라고 하는데 압도적인 찬성이라기 보다 압도적인 기권으로 읽힌다.

당원의 의지를 팔기보다는 차라리 문재인이 직접 당헌당규를 바꾸게 되어서 송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유리하면 취하고 불리하면 버린다. 문재인은 항상 그렇게 행동했다. 치사하다.

통상 여당이 이정도되면 야당이 반등 하는 것이 정상이다. 여전히 야당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진작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종자들이 남아 있으니 <국민의 힘>당은 국민들의 힘을 빠지게 만든다. 아무리 더불어민주당이 망해도 <국민의 힘>은 지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역사는 거꾸로 흘러갈 수 없다. 다시 <국민의 힘>이 나온다면 그것은 국민들 스스로 촛불혁명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국민의 힘>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하지 않으니 홍준표, 김문수 같은 인사들이 나서서 설친다. 우스운 일이다. 과거역사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 무슨 얼굴로 입을 여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할 때다.

오만방자하고 후한무치한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진작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시대착오적인 국민의 힘 모두 국민이 직접 심판해야 올때가 된 것이다.

내선 4월에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에서 적어도 서울시장만큼은 시민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국민후보를 내세워 역사의 장애물이 된 양 개 기득권 정치세력을 모두 일소해야 한다.

정상적인 시민단체와 진영보다 상식을 우선시하는 시민들이 모여서 서울시민후보를 내세워 부패한 기득권 정당을 모두 심판해야 한다. 그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아직 구심점이 없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차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는 오늘에 살아서는 안된다. 미래를 위해 자손들을 위해 오늘을 준비해야한다. 그저 해처먹기 바쁜 부패한 인간들에게 자식들의 미래를 저당잡혀서는 안된다.

그것이 시민후보가 필요한 이유다.

미중 패권경쟁과 동맹의 대가

어제의 중국 공산장 19기 5중전회의 미중관계와 우리의 입장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은 어제의 내용을 이어간다.

우리가 처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상황은 남한은 미국에 붙고 북한은 중국에 붙어서 서로 갈라져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쟁을 하는 경우다. 중국과 미국은 가급적 북한과 남한을 각각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동맹정책이다.

동맹은 경우에 따라 안전할 수도 있지만 위험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제1,2차 세계대전은 동맹정책으로 전쟁을 억제하지 못해 발생한 경우다. 멀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부터 시작되었지만 동맹정책은 19세기 유럽 세력균형정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을 방지하고 현상유지를 목표로한 동맹정책이 가장 최악의 전쟁을 초래한 것은 역사적 경험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동맹정책을 강대국이 약소국의 분쟁에 말려드는 경우를 연루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에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강대국의 투쟁에 약소국이 말려드는 것이다. 소위 제한 전쟁가 대리전쟁이라는 것이 그런 현상을 초래하지 않았나 한다. 핵무기로 인해 강대국이 전쟁을 하지 못하니 약소국을 앞세워 전쟁을 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그렇고 베트남전쟁이 그랬다. 그렇고 보면 강대국들이 말하는 동맹이란 결국 약소국을 강대국간의 갈등에 연루시키는 역개념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중패권투쟁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욱 두르러지게 될 것이다. 만일 남한이 미국과 북한이 중국과 동맹관계를 공고하게 하면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남한과 북한사이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미국과 중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파멸을 초래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전쟁은 할 수 없다. 당연히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이용해서 서로의 힘을 겨루려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구도에서 대리전쟁으로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극적으로 낮추어 놓았다. 만일 북한이 중국과 동맹관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일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미국은 직접적인 참전을 유보할 가능성이 높다. 핵을 가진 북한과 직접적인 충돌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와중에서 대만에서 전쟁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 김일성이 남침전쟁을 한 것은 그가 국제주의를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북한의 행적을 살펴보면 김일성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국제주의에서 민족주의로 전환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주체사상이란 사회주의의 국제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김정은의 북한도 당연히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중국의 사주를 받아 전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벌려 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미중패권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아마도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세력, 즉 군산복합체들이 북한까지 적으로 돌리게 만든지도 모른다. 남한과 대만 그리고 일본에 무기를 더 팔아먹기 위해서 미중패권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장기적 전략의 유리함을 포기한 것이다.

만일 대만과 중국간 전쟁이 벌어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중국과 대만은 서로를 치고 받는 전투를 벌일 것이다. 대만과 중국이 서로 치고 받게 되면 중국은 당연히 국제교역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대만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겠지만 중국도 그에 못지 않는 피해를 입게 된다. 아마도 서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나면 그때 미국이 개입해서 차단할 것이다. 결국 중국은 대만을 점령하려는 목표를 이루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나 중국과 동맹을 맺으면 안전보장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전쟁에 연루될 위험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시진핑 제19기 5중전회에서 자립경제를 주장한 의미

시진핑이 19기 5중전회에서 자립경제와 기술발전을 주장했다. 이번 시진핑의 연설은 미중패권의 진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자립경제를 방법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중국이 그렇게 나올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예측한 바 있다. 결국 중국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미중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중국과는 장사하는 사이다. 무릇 동맹이란 경제관계와 안보관계가 서로 상응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동맹관계는 매우 어긋나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교의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적 관계가 깊은 중국과 동맹을 맺은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이후의 적대관계에 대한 공식적인 정리를 하지 못했다. 법적으로 적대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동맹에 버금가는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의 교역규모가 중국과의 그것보다 적다고는 하지만 미국과의 경제관계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과학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거의 모든 혁신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확산된다. 미국이 과학과 기술 그리고 학문의 원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교역규모만 가지고 미국과 중국 중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최상층부에 앉아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중국은 코로나 19로 미국의 경제규모를 추월하는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의 압박을 회피하기 위해 자립경제를 확대하고 기술을 개발한다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중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투자를 한다고 해도 미국을 능가할 첨단과학기술을 창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첨단과학기술의 창조는 개인의 개성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선두에 나서기 어렵다. 그저 매우 빨리 선두와의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겉과 속이 다른 국가다. 겉으로는 인권과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한다. 물론 그런 점에서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강대국들은 모두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 하는 말과 속의 꿍꿍이는 다르다는 말이다. 당연히 겉으로 하는 말이 속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가치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이 아무리 사악한 자본주의 국가의 전형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중국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이 아무리 제국주의적인 세계질서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중화주의적 세계질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다.

국제관계는 매우 간사하다. 조금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즉각적으로 국가관계도 바꾼다. 중국의 경제력이 강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동맹에 즈음하는 관계를 새로이 맺으면서 기존의 안보구조를 바꾸어 가는 국가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강력해진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과거 비단길을 재건하겠다는 회고적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중국은 세계를 앞서는 첨단국가였다.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은 유럽이 생산하지 못했다. 상품들은 필요에 따라 유럽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와중에 비단길이 생겼을 뿐이다. 비단길이 있어서 중국과 유럽이 교역을 한 것이 아니라, 상품이 있어서 교역로가 생겼던 것이다.

중국은 지금 교역로를 만들어 상품을 교역하려는 것 같다. 일대일로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중국이 앞으로 어떤 국가를 지향하고 주변국과 어떤 관계를 지향하는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중국이 지니고 있는 불확실성이 중국과의 관계강화를 저어하게 만든다. 강력한 중국이 세계사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미국의 힘이 빠지면 유럽과 미국이 합쳐서 중국을 견제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에 중국을 견제할 수 있도록 NATO의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유럽국가들도 이에 동조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유럽국가들 중 독일과 프랑스도 중국에 대항하는 NATO에 동의하는 것 같다. 화웨이와 관계를 차단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거부하는 독일과 프랑스가 중국에 대응하는 NATO라는 개념에는 반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은 중국과 경제관계는 유지하되 NATO를 통해 미국과 힘을 합쳐서 중국의 세력확산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시진핑이 자립경제발전과 과학기술발전을 주장했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과의 경쟁단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미국은 중국없는 세계가 오더라도 이를 감내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지도부는 최악의 경제공황이 오더라도 이를 감내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미국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패권을 중국에 넘겨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힌 모양이다.

세계경제가 앞으로 매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만일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면 우리도 별 방법이 없다.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국과 같이 하는 수 밖에 없다. 다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만일 그런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북한의 윤석열 비난 유감

10월 30일 북한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가 남한내 친북매체인 ‘자주시보’의 만화를 인용하면서 윤석열을 비난했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북한이 남한내부 정치에 간섭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못하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남한을 아직 통일전선전술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남북한 관계가 발전하는 것은 남한만의 노력으로는 안된다. 북한도 그에 상응한 행동을하고 태도를 지녀야 한다. 손뼉도 두손으로 쳐야 한다.

지금껏 남북관계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미국의 간섭이다. 둘째는 남한내 보수층의 완고한 반대, 셋째는 북한의 태도다.

미국의 간섭과 개입은 남한과 북한이 손잡고 노력하면 충분하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한과 북한의 의지에 따라 미국의 태도도 어느정도 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둘째와 셋째 요인이다. 남북한 관계가 발전하려면 남한내 보수층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진정한 남북관계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진보층이 아니라 보수층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남한 사회는 점차 보수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보수계층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어차피 남한내 소위 진보세력들은 북한과의 관계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이번 문재인 정권의 실정은 앞으로 남한내에서 진보세력의 집권을 영영 불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미 문재인 정권은 신형 보수정치세력이되어 버렸다. 남한 국민들은 앞으로진보라면 치를 떨게 될지도 모른다. 문재인 최대의 잘못이다.

윤석열과 같은 사람들은 앞으로 등장하게될 새로운 정치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윤석열같은 사람은 지금의 <국민의 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정치세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잠재적인 대화의 상대가 될 지도 모르는 윤석열을 직접 비난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윤석열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진행된 남북관계 발전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남한이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은 남한의 노력뿐만 아니라 북한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실질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막무가내로 남한을 윽박지르고 거친 언사로 남한 주민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수층들은 그런 행동을 보면서 과연 북한이 남북관계 발전에 진정성이 있는가를 의심해 왔다.

북한이 남한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남한내 보수층들은 북한의 적화통일을 두려워한다. 북한은 거친 언사와 행동으로 남한의 보수층들을 더욱 움추리게 만들어 왔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바라는 남북관계 발전이 어떤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남북관계 발전은 남한과 북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싸움이라고 생각해서는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북한이 진정 관계발전을 위한다면 남한 국민들이 선택한 어떤 정권과도 대화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남한의 정권은 남한주민들의 정치적 의지의 표상이다. 이제까지 북한은 잠재적으로 권력을 장악할수 있는 남한의 정치인과 정파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행태를 보였다.

북한의 그런 행태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미리 비난을 퍼붓고 북한을 상종 못할 족속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대화에서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협상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둘째는 북한권력이 공고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한과 적절한 수준의 적대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한다는 인식이다. 마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서로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구조와 같다. <북한>은 <남한>과 적절한 수준에서의 적대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행태를 경험하고 그 실망감에 미리 새로운 집권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는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질렀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남북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 북한도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북한도 미래를 보고 남한내 정치에 간섭하면 안된다.

당장 윤석열은 북한의 비난을 보고 3대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이 나를 보고 검찰독재 운운할 처지가 되나? 고 반문할 것이다. 정치도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제아무리 이성도 감정적 앙금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남한내부 정치에 간섭하게 되면 남한도 북한의 내부정치에 간섭하게 된다. 그럼 남북한관계는 발전하기 어렵다.

권력이 끝나는 지점, 일선검사들의 반발

세상 모든 일에는 탄성한계 혹은 임계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동안 세상 모든 악의 원천으로 비난받던 검찰의 집단반발이 시작된 느낌이다. 추미애는 항명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항명을 가장 엄격하게 처벌하는 곳이 군대이다. 그런데 군대의 항명도 자세하게 보면 부하보다 상관이 잘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상관의 리더십이 부족해서 부하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부하들이 일부러 상관을 능멸하기 위해 반항하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검사들 몇몇이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항명에 해당하는 글을 올렸다. 이렇게 되면 추미애는 법무부를 운영하는데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하기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권위를 지녀야 한다. 법에 보장된 지위와 감독권만으로는 조직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 그래서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리더십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에서 시작된다. 법에 보장된 권한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에는 자신이 이끄는 조직에 대한 배려심이 기본이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지 무엇이 애로사항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해주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구성원의 동의를 이끌어야 한다.

일선검사들의 반발은 검찰조직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선검사들이 저렇게 나서는 것은 지휘하는 간부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과 추미애는 검찰총장과 지검장들만 바꾸면 자신들 마음대로 검찰을 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추미애가 임명한 정치검사들은 일선검사들을 제대로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아마 그런 정치검사들은 스스로 위축될 것이다. 일선검사들은 그런 간부급 검사들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무엇인지 잘모르겠다. 검찰이 너무 지나친 힘을 지니고 있다면 분산하거나 상호견제하게 만들면된다. 만일 검찰이 필요없는 조직이라면 해산하면 된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쓸모없는 부패한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을 부패한 정권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고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부패한 집단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누가 옳은지는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것 같다. 권력은 5년에 불과하지만 검찰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계속된다.

일선검사들의 반발은 그래도 우리나라 검사들이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사들의 반발은 문재인 정권스스로 자초했다. 야당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상태에서 문재인정권의 부정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검찰 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의 부정부패를 감추기 위해 검찰개혁을 주장했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을 주장한 배경에는 노무현 전대통령 사건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때 정말 괴로웠다. 대통령이 저렇게 세상을 떠나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은 검찰때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집안에서 뭔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못견딘 것은 검찰의 수사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집안에서 그런 뇌물을 받았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논두렁에 던졌는지 밭두렁에 던졌는지 창문밖으로 던졌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받은 것이 문제지.

윤석열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조국을 그렇게 많이 여러번 압수수색한 것을 문제삼는 것 같다. 여러번 압수수색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탈탈 털든, 털털 털든 안나오면 되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증거를 은닉하는데 어떻게 여러번 압수수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나 털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죄를 지었느냐 아니냐가 문제일 뿐이다.

조국 정도되는 인물이라면 열번을 털든 백 번을 털든 안나와야 정상이다. 검찰은 권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백 번이 아니고 천 번 만 번이라도 뒤집어 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문제는 권력 층이 부패해서 문제가 많았다.

조국을 탈탈턴 것이 문제라면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모두 적당하게 털고 적당하게 해먹자는 이야기인가? 그럴 것 같으면 왜 이명박을 탈탈 털어서 잡어넣었는가? 그럴 것 같으면 돈도 받은 적 없는 박근혜를 왜 잡아 넣었는가?

일선검사들이 반발하는 것을 보면 이제 문재인 정권은 더 이상 검찰을 통제하지 못하는 수준에 와버렸다. 적당하게 했어야 했다. 너무 지나치게 나가다 보니 이런 상황에 직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왜 추미애를 기용했을까? 이해하기어렵다. 다만 추미애가 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제일먼저 해체한 것을 보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라임과 옵티머스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문민화이후 한국정치권력의 레임덕은 대부분 내부에서 비롯되었다. 측근의 국정농단과 권력혁부정부패가 정권의 종말을 장식했다. 문재인 정권도 다르지 않은 길을 갈 것 같다.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 낙선 유감

WTO사무총장 후보로 지원했던 유명희 외교산업통상부 교섭본부장의 당선이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미국만 한국을 지원하고 유럽, 일본 그리고 중국이 나이지리아를 지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WTO 사무총장에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다. 한국과 일본은 무역분쟁으로 WTO 에 제소를 했다. 유명희 교섭본부장이 WTO 에 가서 당찬 모습을 보여준 것은 매우 훌륭했다. 그런데 재판 당사자인 원고 한국의 유명희가 재판장이 되겠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이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 입후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게임의 룰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만 그랬을까? 아마 다른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으리고 추측 해본다.

언론들은 왜 정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이익만 떨어지면 아무런 상관도 없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일본의 식민통치도 비난할 바가 못된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조선을 제물로 삼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익이 눈앞에 보여도 지켜야할 선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우리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지키고 감수해야할 기준과 규범이 있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엄격한 도덕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지켜야 할 것은 이미 초등학교때 다 배웠다. 몰라서가 아니라 정의와 도덕을 이익을 위해 저버리거나 팔아버리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런 행동을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하고 보고 있는 것일까? 남이 하면 불률이고 내가하면 로맨스라는 행태를 우리가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유명희는 WTO에 입후보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 뿐만 아니라 유명희도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정도 나이면 정부와 국가가 밀어준다고 해도 해서 안될일과 아닌일을 구분할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유명희가 그정도로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WTO 사무총장에서 떨어진 것이 세계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똑똑한 것과 분별력은 상당히 다른 정신적 영역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국내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태가 대외관계에서도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규범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입장에 서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최근 들어서 그런 것들이 무너지는 것 같다. 촛불혁명이후 문재인 정권을 열렬하게 지지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을 이명박근혜 정권보다 더 혐오한다. 권력형부정부패보다 더 혐오하는 것은 바로 세대가 바뀌고 역사가 흘러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희의 WTO 사무총장을 미국이 끝까지 지지했다고한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는데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사회에는 공짜가 없다. 내가 지지를 받았으면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명시적으로 대가를 약속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청구서는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한 것을 보면 문재인 정권과 트럼프 정권이 어떤 관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문재인 정권은 미국에게 뭔가 단단하게 약속을 해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이 유명희를 지지해준 대가로 날아들 청구서가 걱정된다.

한국전쟁 논란 유감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올해 국내에서는 아무런 행사도 없었다.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하는 반성적 행사가 있었음직한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하는 정부위원회에 참가하라는 권유가 있었으나 거절했다. 애시당초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 명함만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손 놓고 있는 사이에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 해석은 당파적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은 한국입장에서, 미국은 미국입장에서, 중국은 중국입장에서 그리고 북한은 북한입장에서 해석하고 평가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전쟁의 의미를 중국이나 북한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이 사실이고 아니고 분명히해야 한다.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왜곡되어 있으면 당파적 역사해석과 평가도 오류에 머물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전쟁의 오래된 쟁점은 남침이냐 북침이냐 하는 것이었다. 남한 내에서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이 문제는 소위 진보적 성향을 지닌 학자들이 한국전쟁을 남한이 먼저 북침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일어났다. 이런 주장은 러시아 문서고가 개방되면서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사실보다는 이념을 앞세우면서 일어난 학문적 참사였다.

스탈린과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이 공모해서 남침한 것이다. 한국내의 소위 진보적인 학자들 상당수가 북침설을 지지했는데, 러시아 문서고 개방이후 자신들이 잘못된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소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학계나 정치계나 한번 싸질러 놓고 아니면 말고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정치계는 원래 그런 곳이지만 학계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학문적 엄밀성보다는 이념적 편향성에 한국 학계가 좌우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면 솔직하게 틀렸다고 과오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학문이 발전한다. 학계가 엄밀해야 아무리 정치계가 혼탁해도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 학계는 정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마치 시민단체가 정치화된 것처럼 학계도 정치화 된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스탈린의 꾀임과 강요에 의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중국이 한국전쟁 참가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것이으므로 책임이 없다는 의미다.

중국의 한국전쟁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중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도 한국전쟁에 대한 책임론에서 벗어나면서 한국과의 관계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어느 수상식에서 말한 것 때문에 중국의 네티즌이 반발하면서 갑자기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변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전쟁을 이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사일이 아니다. 뭔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을 이슈화하는 것은 목하 진행중인 미중패권경쟁의 일환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이하여 그들이 미국을 이겼다는 자신감을 중국국민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보다 미국과의 갈등과 충돌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변화를 통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중국이 침략했느냐 아니냐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각각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두고 각각의 국가가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도 중국은 한국전쟁을 역사가 아니라 현실로 보고 있다.

역사를 단순한 과거로 보면 무엇이 사실인가 주장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 있다. 중국 정부가 어떤 역사적 해석을 택하는가를 보면 그들이 어떤 정치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앞으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일정하게 선으로 그으려는 것 아닌가 한다. 아마도 한국이 미중패권경쟁에서 어차피 미국의 편을 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대한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거의없다. 중국은 한국전쟁만 연구하는 학자들이 부지기수다. 솔직하게 말해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쟁점에 대해 토론하면 한국학자들이 백전백패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학자란 전통적 해석에 선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이 각각 존재하고 있는한 어쩔 수 없이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한국가의 기반은 역사학과 철학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전쟁 논란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